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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400호 시대를 맞으며
    1982년 7월, 국내 최초의 조경 전문지 계간 『조경』이 창간됐습니다. 1985년 6월에는 『환경 그리고 조경』으로(통권 9호), 10호부터는 『환경 & 조경』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습니다. 1987년 1월에는 한 해에 네 번 나오는 계간지에서 두 달에 한 번 나오는 격월간으로 전환됐고(통권 15호), 월간지로 바뀐 1992년 1월호(통권 45호)부터 쓰기 시작한 제호 『환경과조경』이 지금껏 유지되고 있습니다. 2013년 10월, 박명권 발행인 체제로 옷을 갈아입은 『환경과조경』은 2014년 1월호(통권 309호)를 기점으로 laK 브랜드를 새로 내걸며 대대적인 리뉴얼을 했습니다. 개편 첫 호 에디토리얼의 몇 구절이 생각납니다. “『환경과조경』은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꾼다.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동시대 세계 조경의 보편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기지’ 이 세 가지 비전을 지향한다.” 한 차례의 결호도 없이 간행되어온 『환경과조경』은 한국 현대 조경의 살아있는 아카이브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조경의 성장사를 기록하고 저장해왔으며 동시대 조경의 담론과 쟁점을 발굴하고 그 경계를 확장해왔습니다. 통권 400호가 더 중요한가, 창간 40주년이 더 의미 있는가. 2021년 8월호는 400호, 2022년 7월호는 40주년 기념호입니다. 작년 늦가을 어느 오후의 편집회의, 다음 해 지면의 큰 흐름과 줄기를 구상하다가 예정에 없던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일이 커지고 말았습니다. 느슨하게 시작된 편집 구상이었는데, 400호 기념 일회성 콘텐츠를 기획하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2021년에는 『환경과조경』의 발자취를 다각도로 되돌아보며 한국 조경의 현대사를 촘촘히 되짚는 지면을 ‘매달’ 배치한다는 대형 기획으로 확장됐습니다. 연중 기획의 하나로 이번 호부터 7월호(399호)까지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가 시작됩니다. 여덟 명의 필자가 매달 50권씩 과월호를 리뷰하는 기획입니다. 창간호부터 통권 50호까지 시간 여행을 떠나는 첫 주자는 무려 20세기부터(1999년 1월호부터) 『환경과조경』을 만들어온 남기준 편집장입니다. 다음 달에는 최장수(2014년 1월호~현재) 편집위원인 박승진 소장(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이 51호부터 100호까지 이어 읽기를 맡습니다. 여러 편집위원과 편집자가 매달 50권씩 릴레이 리뷰를 이어갈 것입니다. 4월호에 다룰 편집 디자인 변천사는 독자 여러분의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게 될 것입니다. 5월호에는 전직 편집자들이 참여합니다. 우리 기억 속에 희미하게 묻힌 특집 기사와 작품을 그들의 기억을 통해 다시 길어 올리는 지면을 꾸립니다. 7월호에는 『환경과조경』의 옛 얼굴, 399장의 표지와 재회하는 기획을 마련합니다. 잡지 한 권으로 40년 가까운 긴 시간을 가로지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가장 궁금한 건 통권 400호인 8월호의 내용과 형식이겠죠? 독자 여러분의 테이블에 잡지가 놓이기 전까지는 일급 비밀이랍니다. 독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안도 다듬고 있습니다. ‘다시 읽고 싶은 연재 원고는?’이라는 설문에 곧 독자 여러분을 초대할 계획입니다. 독자들이 뽑은 10대 연재물의 옛 필자를 초청하는 지면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편집부와 편집위원회는 조경설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국 현대 조경 대표작’을 묻는 설문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 기획은 2022년 세계조경가협회IFLA 학술대회 광주 개최 및 한국 조경 50주년을 맞아 출간될 『한국 조경 50+50』(가제)과도 연계됩니다. 400호 시대를 맞이하는 2021년, 『환경과조경』은 한국 조경의 지난 50년을 기록하고 다음 50년을 설계하는 최전선에 서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2021년의 문을 여는 이번 호는 ‘제3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인 최영준 특집입니다. 중국과 미국, 한국을 넘나들며 다국적 조경설계사무소 랩디에이치(Lab D+H)를 이끌고 있는 최영준, 그의조경관을 요약하는 가장 중요한 어휘는 오피스 이름의 H, 곧 희망(hope)입니다. 특집 지면에 담은 그의 에세이, 열두 가지 설계 키워드, 인터뷰에서 우리는 “디자인을 통해 희망과 사회적 책무를 구현”하기 위해 “이웃을 향한, 이웃을 위한 조경”을 실천해온 그의 젊은 조경 정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와 협업해온 건축가 이치훈(SoA)이 말하듯(본문 63쪽), “최영준의 젊음은 조경…이 처한 사회적 조건의 불합리함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정확하게 대응”합니다. “불합리함에 불평하기는커녕 조경가가 다루어야 하는 공간의 구조에 관한 다채로운 제안으로 대응”합니다. “변죽을 울리는 일 없이 늘 핵심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런 태도를 기반으로 한 그의 “지속적 작업은 한국 사회에서 조경가의 유의미한 역할 모델을 만들어가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 지면뿐 아니라 그의 3년 전 연재 원고 “그들이 설계하는 법”(2018년 1월호~3월호)도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새 꼭지 ‘나의 미개봉작 상영기’를 엽니다. 3개월씩 이어갈 꼭지의 첫 필자는 이남진(바이런소장)입니다. 윤정훈 기자의 지면은 ‘편집자의 서재’에서 ‘기웃거리는 편집자’로, 본문 마지막 쪽 김모아 기자의 지면은 ‘CODA’에서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로 새 제목을 답니다. 물론 이름만 바뀐 건 아니겠죠?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풍경 감각] 햇빛을 주워가도 될까요?
    모교의 새 건물을 보고 떠오른 생각은 ‘햇빛 안 쓸 거면 나한테 주지’였다. 해가 들창을 하나도 내지 않고 벽돌로 외벽 전체를 마감했기 때문이다. 솔방울 날개처럼 어슷하게 배치된 벽돌 한 장 한 장에 떨어지는 작은 그림자들이 아름다웠지만, 내 방 창으로 드는 조각 빛을 조금이라도 더 쬐여주려 아침저녁으로 화분을 옮길 때마다 할 수만 있다면 건물에 닿는 햇빛을 주워 오고 싶었다. … (중략) *환경과조경393호(2021년 1월호)수록본 일부
  •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4.12m 이어달리기
    올해 8월, 통권 400호가 출간된다. 책상 바로 앞에 있는 창간호부터 2020년 12월호까지 총 392권의 잡지를 줄자로 재보았다. 4.12m였다. 페이지로는 7만 장이 훌쩍 넘을 것이다. 무게도 재볼까 싶었지만, 김모아 기자가 그러다가 한 권씩 밖에 없는 보관본이 상하기라도 하면 어떡할 거냐며 고개를 저었다. 김기자가 퇴근한 후 재볼까, 아주 잠깐 고민했다. 다행히 사무실에 줄자는 있는데 저울은 없었다(나보다 많이 무겁겠지 따위의 싱거운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400호 돌아보기’란 숙제를 끌어안고 시작된 고민은 쉽게 해결되었다. 일단 나눴다. 그래서 8과 50이란 숫자를 얻었고, 나누기를 먼저 주장한 탓에 첫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1호부터 50호까지가 내 몫이다. 1998년에 입사한 탓도 있다. 잡지사에 제일 오래 다녔으니, 가장 오래된 파트를 맡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 나는 역으로 편집부 막내인 윤정훈 기자를 적극 추천했지만, 편집주간이 나를 지목하자 윤기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던 것 같다(뭐, 기분 탓이었겠지만 말이다). 1990년대나 2000년대였다면 400호에 대한 감흥이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영화 잡지만 해도 『씨네21』, 『키노』, 『스크린』, 『프리미어』, 『필름2.0』, 『무비위크』 등등 다종했고, 『씨네21』은 한 때 주간 판매 부수 7만부를 기록했다. 한 달이면 20만부를 훌쩍 넘는 부수다. 문학 잡지나 패션 잡지는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독립 잡지들이 속속 생겨나서 잡지 생태계의 다양성은 커졌지만, 휴간과 폐간의 고비를 넘기며 장수하는 종이 잡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여기까지 쓰고 나니,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간다). 1998년 12월에 입사해 1999년 1월호인 129호부터 마감에 참여했고, 중간에 3년 동안 나무도시 출판사를 운영한 기간을 빼면 19년 동안 잡지사에서 일했다. 대략 230여 권의 잡지 제작에 직간접으로 손을 보탰다. 내 몫이 된 통권 1호부터 50호까지와는 무관하지만, 400호와 관련된 일련의 기획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201호에 실었던 ‘열 개의 공간, 다섯 가지 시선’이란 특집이다. 조경설계 전문가 200인을 대상으로 ‘한국 조경 대표작’ 설문조사를 진행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다섯 편의 리뷰 원고를 꾸렸다. 어떤 일은, 어떤 시기에만 할 수 있거나 어떤 시기이니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4월에서 5월로 넘어가는 순간과 12월에서 1월로 넘어가는 시기는, 아무래도 다르다. 정리하고 돌이켜보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1월이 제격이다. 129호나 400호나 그저 잡지 한 권일 뿐이지만 400호니까 ‘할 수 있는’ 기획이 있다(‘할 수 있는’ 기획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닌데, ‘할 수 있는’을 ‘해야만 하는’으로 느끼는 건 역시 기분 탓일 게다). 월간지라면 통권 50호까지 펴내는데 만 4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환경과조경』통권 1호부터 50호까지는 10년이 걸렸다. 창간호는 1982년 7월, 50호는 1992년 6월에 발행되었으니 정확하게 만 10년이다. 계간지로 시작해 격월간(통권 15호)을 거쳐 월간지(통권 45호)로 자리 잡아서다. 제호도 『조경』에서 『환경 그리고 조경』(통권 9호), 『환경 & 조경』(통권 10호)을 거쳐 지금의 『환경과조경』(통권 45호)으로 바뀌어 왔다. 종로의 공평동 한미빌딩에서 시작해 뚝섬 시대를 지나, 내가 입사했던 역삼동 사무실에서 분당의 오피스텔로, 첫 사옥이었던 파주출판단지에서 지금의 방배동 사무실까지, 편집부의 책상도 일정 시기마다 옮겨 다녔다. 2007년도에 『조경세계』가 창간될 때까지만 해도 국내 유일의 조경 잡지였지만, 지금은 정원 잡지도 많이 생겼고 라펜트, 한국조경신문 등 조경 매체 상황도 꽤 달라졌다. 통권 306호인 2013년 10월호부터는 박명권 발행인 체제로 바뀌어 영문 제호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변화가 시도되었다. 그럼에도 1호부터 392호까지 펴낸 38년 동안 바뀌지 않은 점이 있다면, 직사각형 국배판을 유지한 판형과 제호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조경’이란 두 글자다(TF팀을 구성하여, ‘조경’이란 두 글자를 빼고 제호를 ‘스케이프’, ‘랜드스케이프 플러스’, ‘Landscape KOREA’, ‘L and Scape’ 등으로 바꿔보려는 시도를 100일 넘게 추진한 적은 있었지만 말이다). … (중략) *환경과조경393호(2021년 1월호)수록본 일부
  • [나의 미개봉작 상영기] 경의선숲길 감독판
    설계안이 실제 작품이 되기까지, 19.3% 설계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설계안이 그대로 시공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을 꿈꾸며 하루하루 영혼을 끌어 담아 작업 중일 것이다. 나는 2007년부터 조경 설계에 발을 담그고 일을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설계를 배우며 연구실에서 설계사무소와 협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09년 동심원조경에 입사해 조경 설계업의 최전선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2007년부터 2020년까지 14년간 총 124건의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중 실시설계를 거쳐 실제 완공된 현장은 24건으로 약 19.3%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80%를 상회하는 100건의 프로젝트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미개봉작’이 됐다. 대형설계공모의 수상작 정도가 아니라면 『환경과조경』을 비롯해 세상에 공개하지 못한, 회사 서버에 고이 모셔둔 수집품인 것이다. 왜 수많은 프로젝트가 실현되지 못하는 것일까? 우선 각종 공모전 및 제안 입찰에서 고배를 마신 낙선작이 있겠다. 전체 미개봉작 중 약 25%다. 다음은 공모전, 입찰 당선, 발주처의 지명 등을 통해 설계를 진행했으나 실시설계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기본계획이나 기본설계에서 중단된 42.7%의 경우다. 실시설계까지 했지만 공사를 하지 못한 경우도 12.9%로 상당하다. 사유는 다양하다. 발주처의 도산, 대상지 변경, 의사 결정권자의 단순 변심, 발주처의 인사 개편, 공사비 부족에 따른 조경 공사 최소화 등. 착공하더라도 온전히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거치는데, ‘개봉작’ 중에서도 설계안이 그대로 완성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시공 과정에서 다양한 검열을 통해 상당한 편집이 가해진다. 그래서 천신만고 끝에 알을 깨고 나와 세상의 빛을 보는 19.3%의 프로젝트들은 더없이 소중하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잡지에 소개되는 프로젝트는 마치 훈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한편 아픈 손가락이 돼버린 미개봉작들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고 위로하기엔 너무 아깝다. … (중략) *환경과조경393호(2021년 1월호)수록본 일부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심원조경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을 이끌고 있으며, 좋은 설계는 좋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북 스케이프] 치유와 성장의 공간, 비밀의 정원
    작년에는 극장에 한 번도 못 갔다. 이제 영화관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마법의 공간이 아니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방문을 삼가야 하는 고위험 시설이 되어버렸다. 영화 ‘시크릿 가든The Secret Garden’(2020)도 하는 수 없이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보았다. 아끼는 소설이 원작이고 주제도 ‘덕업일치’하며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기에 오랫동안 기대했건만, 놀라울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내셔널 트러스트가 관리하는 영국 최고의 정원들을 배경으로 하여 ‘해리포터’ 미술팀이 촬영했으니 눈요깃거리도 화려한데 말이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영화 ‘시크릿 가든’의 아이들은 정원을 가꾸지 않는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Frances Hodgson Burnett)의 『비밀의 화원』(1909)은 원예 치료(therapeutic gardening)라는 용어가 보편화되기 전 이미 정원 가꾸기가 지닌 치유와 공감의 힘을 우리에게 알려준 소설이다.1 그런데 『비밀의 화원』에 담긴 ‘과정으로서의 정원’의 의미를 축소하고 막연히 정원은 모든 것을 치유하는 마법의 공간이라고 하니 영화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영화 속 아이들은 정원(이라기엔 너무 넓고 다채로우며 버려졌다기엔 지나치게 잘 가꾸어진 곳)을 가꾸기는커녕 흙 한 번 파보는 일 없는 방문자다. 원작 소설과 이전에 제작된 동명의 영화가 모두 성공한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일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잘해봤자 본전치기인 상황에서 전작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시크릿 가든’과 달리 소설 『비밀의 화원』 속 메리는 미슬스웨이트 저택의 숨겨진 정원을 리메이크하는 데 성공한다. 지난 10년 동안 방치된 정원이기도 했고 그녀의 본능적인 가드닝이 자신을 넘어 콜린, 그리고 콜린의 아버지로 확장되었기에 가능했다. 소년소녀세계명작 시리즈를 탐독하던 시절, 『비밀의 화원』의 메리에게 늘 마음이 쓰였다. 버넷의 다른 작품인 『소공자』(1886)의 세드릭이나 『소공녀』(1905)의 사라는 너무나 모범적이고 긍정과 인내의 미덕을 체현하는 인물이라 위인전의 위인들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그에 비해 메리는 예의상의 배려도 찾아볼 수 없는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응석받이가 아닌가. 외모마저도 허영심 많은 어머니가 외면할 정도로 볼품없어 세상에서 제일 정 안 가는 아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런 무관심한 부모마저 전염병으로 갑작스럽게 잃고, 나고 자란 인도를 떠나 일면식도 없는 영국의 친척 집에 맡겨졌다. 심리 치료가 필요해 보이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모두 메말랐던 메리가 정말로 회생시키려 한 것은 정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 … (중략) *환경과조경393호(2021년 1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황주영 / 2021년01월 / 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