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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스케이프] 공원을 즐기는 방법
    ‘한강의 섬’ 하면 어디가 생각나나요? 얼핏 떠오르는 곳이 여의도, 아니면 핫플레이스가 된 선유도? 이제 목록에 추가할 것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지난 9월 노들섬이 복합문화시설로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미 기사나 SNS를 통해서 보신 분도 많을 겁니다. 저도 용산역에서 회의를 마치고 잠깐 짬을 내서 다녀왔습니다. 노들. 이름부터 부드러운 느낌이 들지 않나요? 노들이라는 지명은 용산 맞은편을 노들, 노돌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백로鷺가 노닐던 징검돌梁’이란 뜻인데, 한자 음과 한글 발음을 하나씩 따와서 부른 모양입니다. 강 건너근처 나루터였던 곳은 그냥 한자어로 읽어서 노량진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명에 얽힌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은데 주소 체계가 도로명 형식으로 바뀌며 이 같은 이야기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습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0호(2019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스완 스트리트 브리지, 빅토리아 대학교 선샤인 캠퍼스
    스완 스트리트 브리지 스완 스트리트 브리지(Swan St Bridge)는 멜버른 도심을 가로지르는 야라(Yarra)강에 놓인 다리로 1940년대 중반에 지어졌다. 근래 비약적으로 증가한 멜버른의 보행자와 차량을 수용하고자 기존 다리의 양측을 각 4m씩 확장해 3차선을 5차선으로 늘리고, 자전거 및 보행자 겸용 도로를 넓히는 공모가 있었다. 맥그리거 콕샐(McGregor Coxall)에 근무할 때 BKK 아키텍츠(BKK Architects)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맡았다. 흥미롭게도 클라이언트는 설계자가 모든 디테일 도면을 책임지고 납품하는 전형적인 방식과 달리, 대략적 디테일만 보여주는 수준의 도면DD(Design Development)을 납품하도록 했다. 추후 선정된 시공사가 이를 바탕으로 모든 실시 설계 상세도CD(Construction Documentation) 작업을 하도록 계획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시공사가 현실에서 시공 가능한 작업을 하게 만들어 효율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는 반면, 설계자의 세심한 설계 의도가 시공사의 편의에 의해 쉽게 변질될 수 있는 단점도 있다. 한편으로 이 프로젝트는 기초 도면에 대해 전략적으로 접근할 기회를 주었다. 제한된 조건 속에서 설계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가 찾은 해법은 단면도에 렌더링(rendering)이미지를 결합하는 것이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0호(2019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이홍인은 호주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쳤다. 한국의 오피스박김, 호주의 맥그리거 콕샐(McGregor Coxall)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현재 하셀(Hassell) 멜버른 오피스에서 BIM 모델링,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가상 현실 등 신기술을 조경 실무에 응용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
  • [그리는, 조경] 만드는 드로잉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에요. 한 학생이 말한다. 기초 디자인 수업 시간,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하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사진만 넘겨보길래 네 아이디어는 무엇이냐 물으니 돌아온 대답이다. 요새 직장에 1990년대생 신입 사원이 들어오면서 이들을 이전 세대와 다르다고 규정하고, 하나의 사회 현상처럼 다루고 있다. 직장에 1990년대생이 왔다면, 강의실에는 2000년대생이 앉아 있다. 핀터레스트와 유튜브의 수많은 이미지와 영상을 스스럼없이 넘겨보며 창조를 위해 모방을 하는 풍경이 처음엔 낯설었다. 돌이켜보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란 말은 내 학창시절에도 썼던 말이다. 나는 1983년에 태어나 재수로 입학한 03학번이다. ‘즐’과 ‘뷁’이라는 말이 유행한 그 시절에도 창조의 어머니는 모방이었다. 유명한 디자이너의 패널 이미지를 외장 하드에 간직하거나 도서관의 최신 국내외 잡지와 작품집을 뒤적이고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부지런히 이미지를 소비했다. 디자인 프로세스의 사례 조사라는 단계에는 창조 이전의 모방이라는 메커니즘이 은밀히 스며들어 있다.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은 없다. 그렇다고 모방이 표절과 동의어는 아니다. 이전의 것들을 보고 배우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모바일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요새 친구들은 원하기만 하면 수많은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누구나 좋은 작품의 이미지를 맘껏 소비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으니 이미지 소비의 평등이 이루어진 셈이다. 사라지는 손 드로잉 달라진 풍경이 또 있다면 손 드로잉 수업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내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현상이다. 조경 소묘와 조경 구성 수업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 그려본 손 드로잉은 트레이싱지에 끄적인 다이어그램과 기사 실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그린 사례 도면이 전부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활용이 격려되면서 손 드로잉 수업은 더 축소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 조경학과는 이공계열에 설치된 경우가 빈번해 나 같은 이과 출신이 손 드로잉에 익숙해지는 건 어렵고 컴퓨터 시대에 적합하지도 않다고 여겨진다. 손 드로잉이 조경 교육에서 반드시 필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꼭 사라져야 하는지 의구심도 생긴다. 손과 컴퓨터는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시각화 테크놀로지일 뿐 그것을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환경과조경』 2019년 7월호 참조). 조경가는 화가나 그래픽 기술자가 아니라 경관 디자이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0호(2019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 비평과 교육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방법, 조경 아카이브 구축, 조경 디자인과 드로잉 교육,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원광대학교 디자인학부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중국 허베이 지질대학(河北地.大.) 환경디자인학과에 파견되어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오픈스페이스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 [공간의 탄생, 1968~2018] 대한민국 공간의 미래는?
    한국의 도시화 50년, 앞으로의 50년 2020년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공간의 탄생, 1968~2018’을 마무리하며 한국 도시화 50년 이후 다가올 50년에 대해 살펴본다. 앞으로 대한민국 공간은 과연 어떻게 될까? 미래 공간에 대한 구체적 전망에 앞서, 오래전 기억 속의 2020년을 떠올려본다. 나에게 2020년은 초등학교 시절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공상 과학 애니메이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2020 Space Wonder Kiddy)”(이하 원더키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시기였다. 1989년에 방영된 원더키디는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이후, 충만한 자신감으로 수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순수 국산 애니메이션이었다.1 원더키디에서 서기 2020년은 인구의 폭발적 증가, 자원 고갈의 위기, 환경오염의 문제 등으로 인류가 새로운 행성을 탐사하는 시기로 묘사되었다. 다시 말해, 30년 전의 원더키디는 2020년을 인류가 지구를 넘어 우주의 행성마저 탐색할 수 있을 것 같은 머나먼 미래로 여겼다. 원더키디를 제작한 김대중 감독이 수년 전 별세한 것을 보면, 30년 이후의 미래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국의 창업자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 X(Space X)’를 설립하여 화성 유인 탐사 및 식민지 건설을 시도하는 것을 보면, 원더키디가 아주 허무맹랑한 미래를 전망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3 조금 더 가까운 과거, 1992년 중학교 시절을 회상해 본다. 당시에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1학교, 1과학자’ 프로그램으로 매년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박사를 초빙해 미래 과학 기술 개발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박사는 벽걸이 TV, 홈 오토메이션, 핸드폰 등으로 인해 편리해지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주로 보여 주었다. 이제는 그가 말한 미래의 소품들이 모두 개발되어 우리의 현재이자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 같은 미래 전망과 수많은 기술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미래 전망 역시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미래 전망에서는 현재에 대한 분석력보다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공간은 어떻게 변화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표1에서 한국의 도시화 50년(1968~2018)과 앞으로의 50년(2018~2068)을 비교해 정리했다. 이 연재에서 반복적으로 주지한 바와 같이, 한국의 도시화 50년은 정부 주도의 도시화와 대규모 물리적 개발로 규정하여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50년은 정부 주도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이며, 대규모 물리적 개발 역시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의 도시화 50년을 지탱한 계획 국가로서의 메커니즘과 리더십은 도전 받을 것이며, 1인 가구,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인한 전반적인 인구 구조의 체제 변환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4 이와 같은 미래 공간 전망에 대한 변수와 시나리오를 살펴보고자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0호(2019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위키백과, 2019년 11월 10일 접속(https://ko.wikipedia.org/wiki/2020%EB%85%84_%EC%9A%B0%EC%A3%BC%EC%9D%98_%EC%9B%90%EB%8D%94%ED%82%A4%EB%94%94). 2. 윤고은, “‘2020원더키디’, ‘은비까비’ 김대중 감독 별세”, 「연합뉴스」 2017년 9월 14일. 3. 다케우치 가즈마사, 이수형 역, 『엘론 머스크, 대담한 도전』, 비즈니스북스, 2014.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 아파트라는 상상의 무대 ‘ㅇㅍㅌ: 서울풍경’ 전, 연남장, 10. 30. ~ 11. 24.
    획일적이고 삭막한 도시의 상징, 부동산 열풍과 치솟는 집값의 주범으로 여겨지는 아파트는 줄곧 건축적,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아파트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일상을 보내는 장소이고,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 키드’들은 아파트를 마음의 고향이자 추억과 애착이 담긴 장소로 인식한다. 근래 들어서는 재개발되어 사라질 위기에 놓인 오래된 아파트를 기록하고 추억하는 다큐멘터리, 도서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아파트의 역사가 길어지는 만큼 이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서울 연남동 ‘연남장’에서 열린 ‘ㅇㅍㅌ: 서울풍경’ 전은 아파트를 자유로운 상상의 무대로 전환한 전시다. 전시를 주최한 하스HaaS는 국내 건축 문화 콘텐츠의 확산과 한국 건축의 우수성을 알리는 관광 스타트업으로,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서울에는 경복궁이나 창덕궁 같은 문화재부터 첨단 기술이 집약된 DDP, 랜드마크로 기능하는 롯데월드타워 등 다양한 건축물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단일 건물을 제외할 때 서울 풍경의 주를 이루는 것은 아파트다. 전시 총괄을 맡은 김현정 대표(하스)는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아파트를 좀 더 색다르게 바라보기로 했다. 그는 “아파트를 비판적으로만 보기보다 관객들이 자유로운 상상을 펼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일상에 무언가를 더해주는 전시를 구성함으로써 아파트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추억을 얻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전시장 내부는 전형적인 아파트 내부 구조를 본떴으며, 사진가부터 일러스트레이터, 미디어 아티스트 등의 예술가들이 아파트에 관해 가진 다양한 인식을 담아냈다. 전시장 입구에서 익숙한 형태의 출입문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ㅇㅍㅌ’라는 전시 이름을 호수판처럼 붙인 현관문이 있고, 동그란 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선과 도형이 현란하게 겹치는 영상을 마주하게 된다. 아파트 내부에 이르기 전 복잡한 단지를 헤매는 경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안용진의 ‘숲’이다. 작품은 본격적인 전시 공간에 이르기 전 지나는 전이 공간에 배치되어 그 의미를 한층 부각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0호(2019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 2019 디에스디삼호 조경나눔공모전 보행가로환경 디자인 학생 아이디어 공모, ‘리와인드, 길음’ 대상 선정
    지난 11월 10일 환경조경나눔연구원이 주최·주관하고 디에스디삼호와 월간 환경과조경이 후원한 ‘보행가로환경 디자인 학생 아이디어 공모’(2019 디에스디삼호 조경나눔공모전)의 심사 결과가 발표됐다. 공모 대상지는 서울 길음역 인근에 위치한 ‘신길음 도시환경정비사업’ 구역의 보행 가로다. 가로의 상업 활동을 활성화하고, 지속가능하고 회복탄력적인 환경을 제안하는 것이 목표다. 총 51개 팀이 참가 신청을 했으며, 38개 팀이 작품을 제출했다. 11월 7일, 박명권 심사위원장(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대표)과 주신하 전문위원(서울여자대학교 교수), 강주형 대표(생각나무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 이윤권 대표(디에스디삼호)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11개의 수상작을 선정했다. 대상은 곽규빈·김사무엘·백지웅·이지혜·이현승(경희대학교)의 ‘리와인드(Rewind), 길음’이 차지했다. 최우수상에는 신영은·이정민·장예주(서울여자대학교)의 ‘더블 웨이(Double Way)’와 김민지·권태연·김은선·유다연(서울여자대학교)의 ‘어스페이스(UsPACE)’가 선정됐다. 우수상에는 김인호·박성주·이정빈(전북대학교)의 ‘플렉스(Flex)’, 박세경·박효주·임호경(서울여자대학교)의 ‘하이 퍼 링크High Per Link’, 김가영·김홍준·박태영·정호재(경희대학교)의 ‘IoT길음: 폭 좁은 가로, 폭넓은 활동’을, 가작에는 김경록·김주희·김희수(배재대학교)의 ‘신길음, 빛으로 떠오르다’, 도소정(부산대학교)의 ‘푸르내’, 김나연·송유진·진영은(건국대학교)의 ‘길음동의 새로운 저녁 만들기 프로젝트Have a New Evening’, 민재웅·이상준·이성균·최지원(계명대학교)의 ‘미니모Minimo: 최소한의 요소로 최대한의 효과’, 강동균·백승헌·손현진·조희현(건국대학교)의 ‘템포 오브 시티 라이프Tempo of City Life’를 선정했다.…(중략)… * 환경과조경 380호(2019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 2019 조경비평상 심사평 조경비평 봄 심사
    생각을 말이나 글로 잘 표현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머릿속 생각은 도서관의 서가처럼 항상 잘 정리된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성급한 말로 튀어나오거나 다듬어지지 않은 글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자신의 머릿속에만 머물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의 문제이며 통제가 가능하지만 말이나 글의 형식으로 표출되는 순간, 듣고 읽는 이와의 ‘관계’가 성립된다. 사람의 말과 글은 소통을 전제로 하기에 태생적으로 고도의 사회적 행위에 속한다. 때때로 말이나 글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갖는 고민이다. 요즘같이 IT 기술을 바탕으로 한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삶 속 깊이 침투한 상황에서는, 말과 글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져 당황하기도 한다. 글이 말보다 앞서는 시대, 말이 문장으로 정제되지 않고 즉흥적으로 문자화되는 시대를 살면서, 좋은 글과 좋은 문장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느끼게 된다. 올해의 조경비평상 공모에는 세 명이 응모했고, 예년과 마찬가지로 조경비평 봄의 회원들이 심사를 맡았다. ‘비평’은 일상의 글쓰기와 다르고, 더욱이 ‘조경’이라는 복잡하고 모호한 대상을 비평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라서, ‘조경비평’은 어려운 글쓰기임이 분명해 보인다. 하나의 대상을 보더라도 설계 작업과 설계자, 그것이 구현되는 장소, 장소와 관련된 사회적 맥락,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각, 이 모든 과정에 개입하는 행정 행위 등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로 인해 어떤 측면을 겨냥해 가치 판단을 논해야 할지 글을 쓰는 입장에서 난감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글의 완성도나 공모의 수상 여부를 논하기 전에,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조경비평상에 응모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0호(2019년 12월호) 수록본 일부
  • [이달의 질문] 조경,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가?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한 독서 모임에서 ‘번역’의 문제를 다룬 책에 대해 토론을 했다. 이 질문 역시 어쩌면 번역의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조경(造景)’이라는 한자어는 언제부터 이렇게 번역되어 쓰였을까. 요즘 ‘정원’, ‘가드닝’이 뜨면서 조경이라는 말과 뒤섞여 사용되다보니 그 뜻이 더욱 모호해진 것이 사실이다. 덩달아 ‘조경가’, ‘조경 설계’ 같은 말들로도 의미 전달이 잘 안된다. 제법 긴 설명이 필요하다. 명함이나 프로필에 ‘조경건축가’라고 쓴 적이 있다. 딱히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라도 무슨 일을 하시냐는 질문은 좀 뜸해졌다. 번역의 문제인지 용례의 문제인지, 아무튼 이 질문은 현재 진행형이다. 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영국의 사례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한국조경협회와 상응하는 영국의 단체 이름은 ‘Landscape Institute’다. 영국에서 학과 단위로 독립된 조경학과는 유일하게 셰필드 대학(University of Sheffield)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학과 이름은 ‘Department of Landscape’다. 이 같은 전문가 단체와 대표 교육 기관 모두 우리의 조경협회, 조경학과와 동일한 의미와범위를 갖는다. 물론 이들이 “우리 업역을 명확하게”, “학과를 지원하는 수험생들이 쉽게 인지하도록” 등의 이유로 ‘Architecture’를 더한 ‘Landscape Architecture Institute’, ‘Department of Landscape Architecture’로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결과는 협회 회원과 학과 교우회의 압도적 반대로 무산. 왜일까? “결국 우리 업역을 제한하게 될 것이다”, “학제 간 교육이 필요한 우리 학생들에게 ‘조경’만을 가르치라는 말인가?” 등이 다수 의견이었다. ‘조경’이 ‘조경가’의 사고와 신념의 범위를 담기에는 적어도 그들 생각에는 충분하지 못했던 듯하다. 정해준 계명대학교 교수 조경의 이름이 부끄럽다면 그것은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일들이 비루했기 때문일 것이며, 조경의 이름이 자랑스럽다면 그것 역시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일들이 찬란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경의 이름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었고 자랑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조경이 스스로의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돌이켜보면 그 이름은 내가 조경의 이름으로 행한 부끄러운 일들과 자랑스러운 일들을 담기에는 충분했다. 김영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조경의 의미를 담는 이름이 부족하기보다 그 의미를 전달하는 우리가 부족한 게 아닐까? 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조경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니 누군가 그런 것도 박사가 있냐고 되묻길래 당황한 기억이 있다. 1970년대 ‘Landscape Architecture’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래 있던 ‘조경’이라는 말을 가져다 썼고, 이 용어가 더 넓은 범위의 토지, 도시, 경관 디자인을 포함하지는 않으니 완벽한 번역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름이 잘못 지어졌다고 푸념하기엔 한국 조경이 태동한 이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간 우리 분야의 전문성을 제대로 대중에게 인식시키지 못한 건 아닐까. 조경이란 말이 현재 근사하게 통용되고 있다면, 과연 “조경,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인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이명준 기술사사무소 이수 연구소장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꾸밀 수 있다면 충분해지지 않을까. 조경으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면 말이다. 남수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팀장 유물의 형태를 가리키는 말 중에 ‘완(盌)’이란 단어가 있다. 그릇이나 대접, 주발이라는 용어가 있지만 가장 많이 통용된다. ‘조경(造景)’은 그 의미를 담기에 모자란 느낌이지만 너무 많이 사용되는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김충식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우리가 아는 ‘조경’은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한 이름이다. 그런데 그 의미 있는 이름을 쓰지 않는 조경 분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원 디자이너’,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 ‘랜드스케이프 건축가’, ‘경관 건축가’, ‘경관 계획가’, ‘농촌 계획가’, ‘가로 시설 디자이너’, ‘어린이 놀이 전문가’ 등이다. ‘공원 전문가’와 ‘공원 디자이너’는 데뷔를 기다리고 있다. ‘조경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름은 자신을 나타내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그 이름 ‘조경’이, 그가 하는일을 한정하고 제한하는 상황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조경’과 우리가 아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우리가 아는 ‘조경’이 같아지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우리가 ‘공책’을 ‘연필’로 부르자고 설득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아닐까? 최정민 순천대학교 교수 조경이란 단어가 쓰인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그 의미는 건설의 조경, 훼손된 경관을 꾸미는 분야로 특정 지어졌다. 조경이란 이름으로 생태 복원에 참여하려 하면 생물, 생태, 환경 공학 분야로부터 배척당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조경은 생태계 기본 원리에 따르기보다 공간을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기에, 환경 복원 분야에 조경이란 이름으로 참여하면 전문성을 내세우기 곤란하다. 근래 조경이라는 이름에서는 과잉성도 엿보인다. 아파트 조경을 비롯한 대규모 조경 공사에서 시공 초 극적인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과도한 식재를 한다는 비판이 들린다. 과잉 섭취로 인한 병으로도 사람이 죽는 시대다. 지나치게 높은 밀도로 오히려 경관을 해치고 식물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 홍태식 한국생태복원협회 회장 명명이란 행위는 단순하지 않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저 있기만 할 뿐 인지되지 않았던 대상을 수많은 대상으로부터 선택하고 분리하여 특정한 존재로 불러내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대상에 이름을 붙일 때는 그의 정체성을 온전히 파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며, 파악한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적확한 개념어를 찾는 일이 이어져야만 한다. ‘조경’이라는 명칭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는 것은 아마도 이 용어가 지칭하는 행위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 인식은 본래부터 ‘조경’이란 용어가 실재하는 행위를 온전히 포괄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지난 40여 년간 조경이란 분야가 다루는 영역이 확장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건 ‘조경’이란 이름이 적확한 명칭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이름은 무엇일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적절한 이름이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경’이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기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인식은 변화의 시작이다. 몇 년 후면 한국 조경도 50돌을 맞는다.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한국 조경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조경’이란 명칭의 적절성에 관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진환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과장 유튜브를 실행한다. ‘조경’을 검색하고, 조회순 정렬을 클릭한다. 가장 위에 위치한 영상의 제목은 “최상의 조경! 강원도 횡성군 별장 전원주택 연수원 매매”. 조회수는 무려 33만이다. 영상은 약 6분 정도 진행되며, 말없이 5,000평 고급 별장의 외부 공간을 살핀다. 뒤로 돌아가 스크롤을 내린다. “래미안의 클래스를 경험하라”는 제목으로 아파트 조경을 홍보하는 여섯 번째 영상과 미국의 건축 평론가 세라 윌리엄스 골드헤이건(Sarah Williams Goldhagen)의 책『공간 혁명』을 소개하는 여덟 번째 영상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상 제목에 ‘주택’과 ‘조경’이 함께 놓인다. 전공자가 기대하는 영상은 스크롤을 한참 내려도 찾기 어려운 걸 보니, 유튜브 세계와 전공자의 머릿속 간극은 꽤 넓어 보인다. 이제 질문에 대답해보자. ‘조경’은 그 의미를 담기에 충분하지 않은 이름이다. 유튜브 안에서도. 이형관 서울시 동대문구
    • / 2019년12월 / 380
  • [편집자의 서재] 82년생 김지영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2010년대에 때아닌 금서라도 나타난 것일까?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 소녀시대의 수영, 배우 서지혜는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개인 SNS 계정이 악성 댓글로 도배되며 갖은 모욕적 언사에 시달렸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출연한 배우 정유미도 비난을 면치 못했다. 이들의 ‘죄목’은 공인으로서 페미니즘 성향을 드러낸 것이지만, 같은 책에 대한 감상을 공식적으로 밝힌 남자 국회의원과 대통령, 보이그룹 멤버를향해서는 이 같은 비난적 여론이 가시화되지 않았다. 책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공감’과 ‘혐오’ 양극단을 달리며 갈수록 합의점에서 멀어졌다. ‘내 이야기다’, ‘엄마 생각이 난다’는 의견이 속속들이 나오는 가운데 ‘여친이 ‘82년생 김지영’ 보자는데 헤어져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웹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청와대 게시판에는 소설의 영화화를 반대하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백만 명이 넘게 봤다고 해도 좀처럼 책을 읽을 의욕은 나지 않았다. 유행에 편승하고 싶지 않은 심보도 한몫 했지만, 극성 페미니스트라고 낙인찍히는 것도 골치 아프고, 피해주의에 매몰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혼의 1992년생에게 경력 단절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책은 뻔한 불행을 예고하는 점괘나 다름없었다. 출간부터 계속된 논란이 영화 개봉으로 정점을 찍으며 누그러질 즈음, 안 봐도 본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을 뒤로하고 뒤늦게 책을 펼쳤다. 책장을 넘기며 곳곳에 놓인 차별의 지점에 멈춰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고 때론 의구심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복잡해진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논란이 이해되면서도 책에 대한 공감 자체가 공격당하는 점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소설 도입부의 시점은 2015년 가을, 두 살짜리 아이를 둔 서른 네 살의 김지영이 다른 영혼이 빙의된 듯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할 때다. 이후의 이야기는 그 원인을 찾으려는 듯 지영이 태어난 시점으로 돌아가 시간순으로 전개된다. 지영의 문제는 비가시적이고 과소평가되기 쉬운 마음의 질병이다. 작가는 한 사람의 고통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기엔 효용성이 떨어지는 노선을 택한다. 중간중간 남아 선호 사상,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 등이 등장하나 지영에게 ‘결정적으로 위협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물 설정도 극적이지 않다. 주인공은 크게 부족함 없는 가정에서 자라나 원하는 대학에 가고 (회사의 장기 프로젝트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되기 전까지는) 직장에서도 인정받는다. 막장 드라마에 나올 법한 못된 시어머니도 없고, 남편은 자상하다. 여성이라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치명적인 사건’을 배제한 채 일상의 흐릿한 위기를 다룬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이 소설이 더 많은 이에게 공감 혹은 외면 받는 원인이기도 하다. 조남주 작가는 10년 동안 방송 작가로 일하다 육아로 일을 그만둔 시기에 이 소설을 썼다. 그가 그린 미세한 차별과 폭력은 여성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상황인데,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니라 여겨온 것들이다. 어린 지영을 괴롭히는 남자애를 두고 “널 좋아해서 그렇다”며 다독이는 선생님,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 그만한 직장 없다”며 지영의 언니에게 교대 진학을 권하는 부모님, 집안일이든 육아든 “열심히 도와주겠다”며 지영의 퇴사를 자연스러운 일로 인식하는 남편의 모습이 그 예다. 특정 성별에 대한 비난이 담겼다는 지적은 소설의 본질을 흐릴 뿐이다. (본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지영이 임신이 잘 되도록 약 한 재 지어주라는 고모, 지하철에서 임신한 지영을 보고 불쾌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젊은 여자처럼 지영의 고충에 가담하는 인물은 남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책 속 인물과 상황은 고착화된 관습이나 혐오적 시선, 근본적인 구조 문제를 인격화한 문학적 장치에 가깝다. 공공연히 알려졌다시피 소설의 결말은 무력하다. 마지막 장에 서는 앞선 이야기가 지영과 그의 남편이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한 내용임이 드러난다. 의사는 지영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안과 전문의였지만 일을 그만둔 채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자신의 아내를 돌아보고, 지영을 이해하며 응원한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쉽다. 곧바로 그는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라며,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대한 작가의 자포자기한 심정일까? 그보다는 우회적 화법을 통해 ‘(무엇이 차별인지) 알지만 실은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읽힌다. 작가는 어쩌면 이것을 말하기 위해 김지영의 삶을 지나 먼 길을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 [CODA] 쉽게 미워하지 않기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올 때면 많은 이들을 미워하며 산다.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스치는 사람들이 애꿎은 표적이다. 내 어깨를 핸드폰 거치대처럼 쓰는 사람, 더 이상 여유 공간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지하철에 몸을 밀어 넣는 사람. 평소라면 이해할 법한 일에도 화가 치민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미워할 이유를 찾다 보면 금세 밤이다. 잠들기 직전에야 내 모습이 부끄러워 귓가가 홧홧해진다. 지친 몸은 자꾸 마음을 쪼그라트린다. 보기 싫게 찌그러진 마음의 날은 엉뚱하게도 지하철이나 길거리의 사람들을 향하곤 한다. 갖가지 까닭을 붙여 내가 쉽게 미워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린 딸을 둔 친구가 내게 건넨 고백이 떠올랐다. 작은 동물이 면 사족을 못 쓰던 친구는 한동한 강아지를 미워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와 공원에서 쉬다 마주친 행인이 마음을 온통 들쑤셔 놓은 탓이었다. 낯선 행인은 아직 걷지도 못하는 친구의 딸을 가리키며 신발을 신고 벤치에 오른 몰상식함을 지적했다. 대꾸할 틈도 없이 저만치 멀어진 그를 공원 입구 부근에서 다시 만났다. 함께 산책하던 강아지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웃고 있었다. 땅 한 번 디딘 적 없어 깨끗한 딸의 신발과 벤치와 흙바닥을 신나게 오가는 강아지의 발을 번갈아 보고 있자니, 강아지가 그렇게 미워졌다고 했다. 작은 동물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걷잡을 수 없이 미움이 커졌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다. 힘없는 무언가를 미워하는 건 참 쉬운 일이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어린이나 강아지처럼 제 의견을 낼 수 없고 대항할 능력도 없는 경우, 미움은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운다. 최근 SNS를 소란스럽게 만든 ‘노키즈관’ 논란 역시 이러한 미움의 연장선으로 느껴진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를 본 관객 중 일부가 아이들의 함성이나 떠드는 소리에 방해받지 않고 싶다며 노키즈관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어린이를 주요 타깃으로 한 영화가 상영되는 곳에서 어린이를 쫓아내려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더 이상하다. 우리는 꽤나 자주 영화 상영 중 전화를 받거나, 옆 사람과 떠들거나, 의자를 발로 차며 스크린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다. 불쾌하지만 참고 넘어가 거나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게 일반적이다. 핸드폰을 끄지 않은 사람을 상영관에 들이지 않거나, 특정 행동으로 세 번 이상 경고를 받을 시 퇴장시키는 방법 등 극단적인 타개책이 쉽게 대세로 떠오르지는 않는다.카페나 음식점 역시 ‘진상 고객 입장 불가’ 안내문보다는 ‘노키즈존’ 표식을 더 쉽게 내건다. 노키즈존은 흡연 금지, 주차 금지처럼 구체적 행위를 제재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라는 특정 집단을 배제한다. 키즈카페, 키즈관 등 어린이 전용 공간이 생겼지만, 이는 아이와 양육자가 더욱더 따가운 눈총을 받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왜 키즈카페나 키즈관에 가지 않고 이곳에 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느냐고 눈치 주기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셈이다. 이렇듯 공간의 분리는 어렵지 않게 단절로 이어진다. 단절은 무언가를 체험하고 느끼고 배울 기회를 손 쉽게 앗아간다. 아이는 공공장소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배울 기회를 몰수당한다. 수많은 조경 프로젝트가 섬처럼 놓인 공간을 주변과 연결하려 애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고립된 공간은 오래지 않아 낙후한다. 공간도 그러한데 사람은 당연하다. 아이는 혼자 다닐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노키즈존은 자연스럽게 아이와 양육자를 함께 사회 밖으로 격리한다. 물론 미성숙한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고 뛰어다니는 건 잘못된 일이지만, 무조건 공간 밖으로 밀어내는 건 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이 한때 논쟁거리였던 벤치의 모양으로 이어졌다. 노숙자가 누워 자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좌판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팔걸이를 설치한 벤치 말이다. 자연스럽게 아이가 앉을 수 없는 높이의 의자가 공원에 줄지어 선 모습을 상상했다. 터무니 없는 상상이라 생각했다가 왠지 실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닌 것 같아 무서워졌다. 쉽게 미워할 수 있는 사람 대신 진짜 미워해야 할 대상을 찾다보니 눈에 거슬리는 게 한둘이 아니다. 기저귀 갈 곳 없는 화장실, 외진 곳에 숨겨 놓은 것처럼 배치한 수유실, 유모차를 끌 수 없을 정도로 좁은 보행로. 미워해야 할 대상을 찾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도 쉽게 미워하기보다 불편하게 미워하는 일에 지치지 않고 익숙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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