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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식물의 선
    3회 연재의 마지막 글이다. 첫 회에는 ‘분위기, 맥락, 주제’라는 키워드로 설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소(설계적 개념)를 다루었고, 2회 차에서는 ‘스케일’을 주제로 개념을 실재화하는 구체적인 방식(설계적 문법)을 논의했다. 이번 3회 차에서는 물리적 실체가 있는 설계 요소, 즉 설계 재료(설계적 어휘)에 대한 생각을 이어 간다. 조경이 다루는 설계 재료는 꽃과 나무 같은 식물 재료, 돌이나 철 같은 무기 재료, 빛, 바람, 습도 같은 물리적 환경 요소 등 무수히 많지만, 본 연재에서는 조경 설계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식물에 관한 개인적 관점을 소개한다. 자연을 다루는 작곡가 “저는 조경학과를 나왔지만 나무는 잘 몰라요.” 업계에서 일을 하다보면 이렇게 말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미학, 계획, 설계, 역사, 이론, 생태학 등 그 앞에 조경을 붙일 수 있는 다양한 세부 학문이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가 설계가라면 분명히 문제다. 조경 설계에 있어 식물은 가장 중요한 설계 재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식물에 대한 이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다. 재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설계가는 악기의 소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작곡가에 비유할 수 있다. 악기 소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화성학 같은 음악 이론을 바탕으로 곡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만든 곡이 듣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더욱이 그 곡이 하나의 악기로 연주하는 독주곡이 아니라 여러 악기를 함께 연주해야 하는 협주곡이라면 어떨까? 다양한 소리가 함께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해 작곡가는 각 악기의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그 소리들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음색의 변화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조경가는 자연을 다루는 작곡가 같은 역할을 한다. 악기 소리에 해당하는 식물 재료의 특질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설계 재료로서 식물을 어떻게 배우고 익혀야 할까? 악기 소리는 직접 연주해 보고 그 음을 들어 봐야 깊게 이해하고 다룰 수 있듯이, 식물 재료도 직접 보고 만지고 심어 봐야 알 수 있다. 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것이 있지만 적어도 식물을 다루는 방법은 글로 익히기 어렵다. 설계가의 몸이 직접 식물과 만나면서 배워야 하는 일이다. 식물 없는 식재 설계 학창 시절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 있었다. 바로 ‘빵빵이를 돌린다’는 말이다. 식물에 일자무식이었던 신입생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스튜디오 수업의 과제는 주택 정원 설계였다. 지금은 잘 쓰지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제도용 손 도구 중 여러 가지 크기의 원이 뚫린 도형자가 있었다. 그때의 식재 설계란 하얀 바탕 위에 나무를 상징하는 여러 크기의 원을 보기 좋게 배치하는 일이었다. 때로는 컴퓨터 툴을 활용해 나무 이미지를 붙여 넣는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도형자의 원이 나무 형태의 심벌로 바뀌었을 뿐 결국 하는 일은 같았다. ‘빵빵이를 돌린다’는 말은 나무를 잘 모른 채 식재 설계를 하는 행위를 향한 자조 섞인 표현이었다. 이렇게 작성한 도면이라면 그 안에 진정한 의미의 식물이 있을 리 만무하다. 실체는 없고 공허한 개념만이 부유할 뿐이다. 학생이 아니라 현업에 있는 동시대의 젊은 조경가들은 식물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종종 젊은 설계가와 교류할 기회가 있는데, 공간에 대한 예리한 감각, 창의적 표현, 세련된 의사 전달 방식 등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이들조차 정작 식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식물의 생물학적 특성을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공간을 구성하는 회화적 표현 재료로써 식물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색과 질감, 양감 같은 공간의 구성 요소를 식물 재료로 표현하는 데 미숙한 젊은 조경가가 많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담론이 중요했던 지난 십여 년간 한국 조경은 공원 스케일의 프로젝트에 전념해 왔다. 조경가를 양성하는 대학도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추어 왔다. 공간에 대한 종합적 구성, 빈틈없는 프로그래밍, 설계 개념을 전달하는 강력한 표현 전략같이 큰 프로젝트를 다룰 때 유용한 방법을 주로 다루었다. 반면에 식물 소재의 선, 색, 질감 등에 대한 교육은 부족했다. 몇 차례의 특강 또는 실습만으로 이를 해소하고자 했다. 이런 주제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므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배워 나가야 하는 부분이라 간주하고 미루어 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조경 설계 실무를 시작하면 식물을 배울 기회가 많은가?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법적 조경 감리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설계가들은 식물을 가까이 마주하며 다루어 볼 기회를 좀처럼 갖기 어렵다. 학교 교육에서 모자랐던 부분이 실무에 종사하면서도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다. 식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더 좋은 식재 설계를 하기 위해 젊은 설계가들은 나름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어떤 이는 정원을 설계하는 회사에 취직하거나 정 원박람회에 참여해 개인적 차원에서 식물을 익히고자 노력한다. 어떤 이는 식재 설계가 중요한 프로젝트에 서 정원 디자이너와 협업해 부족한 부분을 배우고자 한다. 또 어떤 이는 식물을 깊게 알고 싶어서 설계 사무실에서 퇴사하고 식물원에 취직을 하는 강수를 두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을 하는 이들이 마음에 품은 공통된 생각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더 이상 식물 없는 식재 설계를 하고 싶지 않다.” 식물의 선 학생일 때 나는 식물의 색, 질감, 형태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있었지만, 형태의 세부적인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선線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계 관점이 없었 다. 식물이 갖는 선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기 시작한 것은 정원 설계를 하는 회사에 취직하고 식물을 일상 적으로 마주하며 일하면서부터다. 우리는 흔히 어떤 대상의 외양을 묘사할 때 ‘선이 곱다’ 혹은 ‘선이 투박하다’는 표현을 하곤 한다. 선이 아름다운 사람, 선이 아름다운 자동차, 선이 아름다운 옷, 선이 아름다운 풍경 등 우리는 일상에서 아름다운 선을 수없이 보고 경험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문해 보자. 선이 아름다운 나무, 선이 아름다운 풀, 선이 아름다운 꽃이란 어떤 것일까? 누군가 이에 대해서 나름의 생각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면 그(녀)는 평소 식물의 형태를 눈여겨본 사람이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 식물도 선을 가지고 있다. 땅에서 하늘을 향해 자라면서 아래부터 위를 향해 점점 얇아 지며 뻗어나가는,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선이 바로 식물의 선이다. 이런 선은 수종마다 다르고 또 같 은 수종이라도 개체 하나하나마다 다 다르다. 여름철 이면 이 선들이 잎에 가려져 두드러지지 않지만, 잎이 진 겨울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눈에 띄는 가지가 없 는 풀과 꽃에도 선이 있는가? 당연히 그렇다. 봄부터 겨울까지 성장하는 가느다란 줄기 또는 억새처럼 가늘 고 긴 잎 등이 풀과 꽃의 선을 만든다. 어떤 선은 가늘 고 섬세하며 어떤 선은 굵고 투박하다. 어떤 선은 가지 런하고 어떤 선은 어지럽게 교차한다. 큰 나무에도 선이 있고 작은 풀과 꽃에도 선이 있기에 정원 안에서는 수많은 선이 교차한다. 정원 전체의 풍 경이 아름답게 느껴지려면 그 안의 무수히 많은 선이 질서를 가지고 조율되어야 한다. 선을 어떻게 조율하 는가? 나름의 방식이 있겠지만 내가 배운 방법은 제일 먼저 큰 선, 그 다음에는 중간 스케일의 선, 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선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화가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과 유사하다. 큰 밑 선을 먼저 그리고 나서 단계적으로 작은 선 을 정리해 나간다. 이런 점에서 정원 일은 회화와 많이 닮아 있다. 다만 회화에서는 대개 평면 작업이 주를 이루지만, 조경은 3차원의 공간을 다룬다. 이 때문에 선을 조율하는 일 역시 다각도의 시선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시점에서 볼 때 아름다운 선의 흐름이 다른 시점 에서는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한 시점에서의 완벽함을 포기하더라도 전체적으 로 좋게 보이는 최적의 선을 찾아야 할 때도 있다. 경 험 많은 설계가라면 최선이라 할 수 있는 선을 빠르게 찾아내겠지만, 식물의 선을 읽는 경험이 적은 설계가 라면 이를 쉽사리 발견하기 어렵다. 나무의 선 식물의 선 중에서도 나무의 선은 특히 중요하다. 큰 나 무의 선은 공간의 골격과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무를 심을 때는 전체적인 수형뿐만 아니 라 나뭇가지 선 하나하나의 흐름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선의 흐름은 나무가 본래 어느 방향으로 자라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그 선을 잘 살려 심으면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느껴지고 곁에 다가선 사람에게 편안함을 준다. 반대로 선에 대한 고민 없이 무 심하게 심긴 나무는 주변 풍경과 부조화를 이룬다. 수많은 종류의 나무는 저마다 고유한 선을 갖는다. 예를 들어 단풍나무는 기둥부터 중간 가지 그리고 잔가 지에 이르기까지 그 선이 큰 굴곡 없이 매끈하게 이어 진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고운 곡선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에 반해 배롱나무는 잔가지가 적고 가지가 분지되는 부분마다 큰 굴곡이 있어 꺾인 선 이 강조되는 특징을 갖는다. 단풍나무보다는 투박하게 보이는 선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조형성을 느끼게 한다. 어떤 나무의 선은 다른 나무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느티나무의 선은 가지에 비해 기둥부가 굵은 특징을 지 니는데, 마치 큰 붓으로 그린 나무처럼 묵직한 인상을 준다. 매화나무의 선도 흥미롭다. 다른 나무보다 상대 적으로 키가 작고 큰 가지가 옆으로 퍼진 후 작은 가지가 이리저리 불규칙하게 자라는 매화나무의 선은, 얼핏 보았을 때는 어지럽고 산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불규칙한 선이 독특한 조형미를 보여 준다. 과거 선비들이 그린 사군자 속의 매화나무에도 그런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노각나무의 선도 독특하다. 노각나무는 자작나무처럼 주 가지가 수직으로 길게 자 란다. 그런데 보통의 나무는 가지가 나무 바깥쪽에서 나무 기둥 쪽으로 안으로 굽듯이 자라는 반면, 노각나 무는 종종 가지가 안에서 바깥으로 꺾이며 자란다.비유하자면 팔꿈치가 몸 안으로 굽는 것이 아니라 몸 바깥으로 굽는 격이다. 나무를 바라보는 설계가의 관점은 모두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경가가 나무가 갖는 고유한 선을 섬세 하게 읽어 내고 자기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설계 재료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의 전체 수형 만 생각하고 진행하는 설계와 가지의 디테일한 선까지 고려하는 설계에는 큰 차이가 있다. 후자와 같은 방식 으로 설계를 하고 시공할 때 기존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조경가 김용택이 설계한 여주 주택은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적절한 사례다. 주택의 현관 옆에 심은 낙상홍 한 그루에 관한 이야기다. 건축을 압도하지 않는 적절한 스케일의 나무를 선정하고 가지의 선을 공간에 맞추어 심어, 마치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공들여 키워온 나무 처럼 보이게 했다. 기둥이 하나인 큰 나무를 심지 않고 땅에서부터 가느다란 가지가 여러 개 올라오는 다간형 나무를 심음으로써, 큰 선에 해당하는 건축의 외곽선이 그대로 느껴지도록 하는 동시에 공간에 적절한 양감을 부여했다. 초화의 선 나무에 선이 있듯이 초화에도 선이 있다. 초화의 선을 만드는 요소는 나무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하다. 나무 의 선은 가지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지지만, 하나의 정원을 만들 때도 수십 가지 종류가 쓰이는 초화 식물 의 경우, 선을 구성하는 요소도 매우 다양하다. 바늘 꽃이나 부처꽃처럼 긴 줄기가 큰 선을 만들기도 하고, 범부채나 유카처럼 독특하게 생긴 잎이 선을 형성하기도 한다. 톱풀이나 원추리같이 꽃이 필 때만 올라오는 긴 꽃대가 선을 느끼게 하기도 하며, 꼬리풀처럼 독특 하게 생긴 꽃 자체가 흥미로운 선을 보여 주기도 한다. 털수염풀처럼 하늘을 향해 나풀거리는 선을 만드는 식 물도 있고, 줄사철 같이 땅을 기는 듯한 수평적 선을 가진 식물도 있다. 모닝라이트 억새같이 길고 섬세하 게 느껴지는 선을 갖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은쑥처럼 잎이 짧고 촘촘해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는, 그래 서 선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질감이 더 드러나 보이는 식물도 있다. 초화를 식재할 때 단일 수종을 군식하기도 하지만 비 교적 작은 공간에 수십 가지의 수종을 혼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수많은 종류의 초화의 선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 화가가 캔버스 위에서 선과 질감을 표현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듯, 조경가도 저마다 초화 의 선을 조율하는 방식이 모두 다를 것이다. 나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원칙을 가지고 초화의 선을 조율한다. 첫 번째 원칙은 식물의 선이 서로 상충하지 않도록 식재하는 것이다. 만약 한 지점에 큰 선을 갖는 식물을 심었다면 그 주변에는 선이 강한 식물을 심지 않고, 대신 색, 질감, 양감 등을 보충하는 식물을 함께 심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강한 선의 아름다움은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공간에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부여한다. 두 번째 원칙은 식재 시점의 완성도에 관한 것인데, 식 물이 갖는 선의 결을 맞추는 것이다. 조금 모호하게 들 릴 수 있겠지만, 이는 앞서 나무의 선을 결정할 때 본 래 그 자리에서 자란 나무처럼 심는다고 한 것과 같 은 맥락의 이야기다. 즉 여러 가지 초화를 혼식하더라 도 식물들이 본래 그 자리에서 함께 태양을 바라보며 자란 듯 선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식재하는 것이다. 크고 작은 선이 방향성을 가지고 켜켜이 쌓 이면 하나의 결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심을 경우 비교 적 단기간에 안정되어 보이는 초화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초화의 색과 질감만을 고려하고 작은 선을 읽지 않은 채 식재할 경우, 누군가 헤집어 놓은 듯 어수선한 모습의 공간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식물들이 태양을 따라 반응하며 자연스럽게 선을 잡아 나가겠지만, 제 법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잔잔한 것이 더 아름답다 자연을 담은 공간을 설계하고 짓는 일을 하면서 느낀 점 한 가지를 공유한다. 주로 정원을 만드는 설계 사무소에 취직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질문을 한 적 이 있다. “소장님은 어떤 나무가 좋으세요?” 설계가로 서의 기호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글쎄, 다 좋다. 다 좋은 점이 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답 을 조금씩 이해해 가는 것 같다. 나무도 꽃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일견 개성이 없고 평범해 보 이는 풀 한 포기도 자세히 바라보면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 잔잔한 아름다움을 갖는 풀이 없다면 그 옆에 있 는 화려한 꽃의 아름다움도 드러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을 빛나게 하는, 자기 본연의 가치를 드 러내는 그런 잔잔한 것이 더 아름답다(연재 끝). 최재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조경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정원과 조경 설계 실무를 익혔다. 수상 경력으로 제8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상, 제3회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대상 설계공모전 대상, 2017 코리아가든쇼 대상 등이 있다. 2017년 한강예술공원 시범사업의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스튜디오 오픈니스(Studio Openness)를 창업하여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원, 공공예술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명주의 경관 이종기 오미나라 대표
    누구에게나 술에 관한 기억이 있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사발을 들이키던 시큼털털한 상투적 레퍼토리, 언젠가부터 속속 생기기 시작한 와인바에 여친을 데려갔다가 높은 가격에 놀란 자존심을 지켜 주었던 고마운 칠레산 와인, 할아버지 묘소 잔디 위에 뿌려 주고 마시지도 않았던 제례주, 동네 성당의 신부님이 맛보라며 권해 주신 달달한 국산 포도주 마주앙 등 주량이 매우 적은 나에게도 술과 얽힌 인연은 지겨울 만큼 많다. 술은 억지로 마셔야 하는 것 혹은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등식은 다행히 사양할 줄 아는 나이가 되면서 점점 사그라들었지만, 잔뜩 취해야만 하는 우리 문화만 탓했지 우리 술의 단조로운 시시함이 그 원인일 거라는 의심은 꿈에도 하지 못했었다. 스물다섯 즈음이었나, 일본 구마모토에서 그들이 소주라며 내온 술을 마신 그날 밤은 내 알코올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이후 외국에서 술을 접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동안 술의 전부라고 알아왔던 소주와 맥주에 배신감이 들 정도였다. 술은 당연히 수입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세상 좋은 술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고 꽤 고가의 술을 나누며 행복할 수 있어 좋지만, 그럼에도 여느 전시회 오픈식에 가서 으레 서빙되는 와인을 홀짝거리자면 뭔가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국산 와인을 접했다. 토종 농산물 오미자로 만든 술이었다. 왠지 소비해 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으로 잔을 들긴 했지만 의외로 품질이 놀라웠다. 국산 와인 몇 가지에 대한 그리 탐탁지 않던 기억을 말끔히 밀어내는 멋진 경험이었다. 몇 달 후 전시회 오프닝 때 내놓았는데 반응이 좋아 금방 동이 났다. 술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답해 주기 위해서 약간의 리서치를 한다는 게 그만 인터뷰로 이어졌다. ‘오미로제’가 만들어지는 문경은 경북 내륙의 첩첩산중이다. 고속 도로 개통으로 접근성이 훨씬 높아졌지만 소백산맥 언저리의 이 지역은 여전히 가 볼 일이 별로 생기지 않는 국토의 구석이다. 이종기 대표의 구상은 크고도 아름다웠다. 프랑스의 부르고뉴, 미국의 나파 밸리, 일본의 구마모토처럼 계곡마다 양조장들이 자리 잡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과일로 술을 빚는다면, 더군다나 우리 사회의 거친 술 문화를 바꿀 만큼의 세계적 명주가 생산된다면, 그건 단순히 풍경이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화의 저변을 개혁하는 의미 깊은 작업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와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정원 탐독] 식물, 인간 그리고 가능성
    큐가든과 카를로스의 추억 2008년 9월부터 2009년까지 나는 정원 디자인 학업을 중단하고 영국 왕립식물원인 큐가든에서 인턴 정원사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일했던 곳은 열대 식물 재배 온실(Tropical Nursery)인데, 이곳의 주된 업무는 전 세계 열대 우림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재배하고 보존하는 일이었다. 매일 온실에 도착해 씨앗에서 발아되어 손가락 한마디쯤 자란 열대 식물을 더 큰 화분에 옮겨 심어 주거나, 벌레를 잡아 영양분을 보충하는 식충 식물에게 물을 주고, 사막 기후에서 자생하는 식물의 상태를 점검하곤 했다. 내가 하는 일을 관리·감독하는 매니저가 있었는데, 그들은 큐가든의 3년제 대학을 졸업한 식물·원예 전문가였다. 그중 한 사람이 스페인 출신의 카를로스(Carlos Magdalena)였다. 카를로스와는 매일 아침 회의가 있을 때 마주하고 그로부터 작업을 지시받기도 했다. 스페인어 억양이 강한 영어 탓에 다른 사람들보다 그의 말에 더 많이 집중해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자신은 원래 소믈리에 출신으로 레스토랑에서 일했고 큐가든에 들어온 후에는 멸종 위기의 식물을 다시 살려내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등의 수다스러운 대화가 추억으로 남아 있다. 1년 후 큐가든과의 인연이 끝나면서 그와의 인연도 끝인가 싶었다. 하지만 2017년 그의 책 『식물 메시아(The Plant Messeiah: Adventures in Search of the World’s Rarest Species)』를 영국의 어느 서점에서 만나면서 카를로스의 활약을 좀 더 깊게 알 수 있었다. 번식이 중단된 식물, 라모스마니아 카를로스의 책은 인도양의 섬 로드리게스에 자생하고 있는 멸종 위기의 식물을 큐가든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려냈는지에 대한 노력과 성공의 기록이다. 수십 제곱킬로미터 넓이의 산호로 둘러싸여 보호되고 있는 섬, 로드리게스는 지금도 산호 때문에 배로는 진입이 불가능해 비행기로만 착륙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 탓에 로드리게스 섬은 그간 외부 식물의 침입 없이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식물의 보고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섬도 서방 세계와의 접촉이 생기면서 자생 식물이 자라던 숲이 사라지고 대규모 농장이 들어서는가 하면, 도로가 발달해 자생 식물은 물론 그 식물을 터전으로 삶고 사는 동물의 멸종이 급속화되는 후유증을 앓고 있다. 식물의 멸종은 어느 날 갑자기 식물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다. 식물이 더 이상 씨앗을 맺지 않는 일이 먼저 발생한다. 식물의 보고였던 로드리게스 섬은 지금은 더 이상 번식을 하지 않는 식물이 즐비한 “죽은 생명체의 섬”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살아 있지만 번식이 끝난 죽은 식물 중 하나가 바로 카를로스가 살려낸 식물 라모스마니아(Ramosmania rodriguesi)다. 라모스마니아라는 식물이 과학계에 처음 등장한 것은 이 섬의 원주민이자 교사인 레이먼드 아키로부터였다. 평소에도 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레이먼드는 자신의 학생에게 인근에 보이는 식물 채집을 과제로 시켰고, 이렇게 채집된 식물을 수업 시간에 활용했다. 식물의 학명을 확인하고 그 식물이 자라는 환경과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공부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때 학생 중 한 명인 헤들리 매넌이 가져온 식물이 좀 이상했다. 로드리게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지만 식물의 속과 이름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 어떤 식물과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 리틀 칼리지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정원생활자』,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이미지 스케이프] 칠면초의 숲
    그야말로 기록적으로 뜨거운 여름입니다. 40도에 육박하는 온도가 이젠 그리 낯설지 않네요. 이 글을 읽으실 때는 좀 더위가 꺾였겠지요? 더운 여름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을까 해서 아주 잠깐 짬을 내 제부도를 찾았습니다. 한두 시간의 여유를 상상하고 찾은 바닷가지만, 역시 뜨거운 햇빛만 기다리고 있더군요. 이런. 제부도는 경기도 화성시에 속한 작은 섬인데, 썰물 때면 물이 빠지면서 육지와 연결되는 특이한 곳입니다. 하루에 두 번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데 물때를 놓치면 한참을 섬에 갇혀 있어야 합니다. 바다도 바다지만, 사실 제부도를 찾은 건 최근에 여섯 개의 컨테이너를 쌓아 새로 만들었다는 제부도 아트파크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다를 향한 조망 장소와 전시 공간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더군요. 아트파크를 둘러볼 때 까지만 해도 잘 몰랐는데 구경을 마치고 나니 더위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끼게 됐습니다. 게다가 밀물이 되기 전에 나와야 해서 허둥지둥 서둘러야 했습니다. 물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도로를 따라 겨우 섬을 빠져나오니 그제야 주변을 가득 메운 빨간 색의 귀여운(?) 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칠면초. 칠면조 아닙니다! 칠면초는 바닷가에서 군생하는 붉은 색의 한해살이풀입니다. 군락을 이룬 칠면초를 멀리서 보면 마치 단풍이 물든 것 같은 모습인데 비현실적인 붉은 색 해변이 아주 장관입니다. 제부도 칠면초 군락은 그리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둑길에서 아주 가까워서 몇 걸음만 내려가면 자세히 볼 수 있더군요. 가까이에서 본 칠면초는 군락으로 보일 때와 상당히 달랐습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시네마 스케이프] 더 스퀘어 공간과 비공간, 그 경계 더 스퀘어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의 인터뷰로 영화가 시작된다. 전시와 비전시, 공간과 비공간 등 현대 미술에 대한 개념적이고 모호한 의미를 기자가 묻는다. 수석 큐레이터인 크리스티안은 당황한다. “제가 그렇게 이야기했나요?” 미술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 무엇이냐는 첫 번째 질문에 단호히 ‘예산’이라고 대답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더듬거리며 억지로 대답을 만들어내자 이해 못 한 표정이 역력한 기자는 잘 알았다고 얼버무린다. 설치 작품 ‘더 스퀘어(The Square)’는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Ruben Ostlund)가 2015년에 스웨덴과 노르웨이에 설치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 ‘더 스퀘어’는 이 작품을 매개로 만들어졌다. 작품은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전면 광장에 설치된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전통적 외관의 미술관은 왕궁을 개조한 것으로, 그 자체로도 웅장하고 아름답다. 작품 설치를 위해 중앙에 있던 청동 기마상을 들어 올리자 기마상이 덜컹거리며 파손되는 장면은 두 시간이 넘는 긴 상영 시간 동안 벌어질 소동을 암시한다. 파상형으로 깔린 사고석 포장 위에 가로세로 4m의 사각형을 따라 포장 면을 커팅한 후 돌을 걷어 낸다. 같은 재료인 사고석을 선에 맞추어 다시 놓는다. 두 줄의 사고석 사이에 띠 조명을 설치하고 면을 다진 후 고르게 만든다. “‘더 스퀘어’는 신뢰와 배려의 공간으로 이 안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라는 해설판을 붙이는 것으로 공사가 마무리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크리스티안은 곤경에 처한 사람 누구나 스퀘어 안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애를 강조하려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전형적인 북유럽풍의 훤칠한 신사인 크리스티안은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크고 작은 어려움에 휘말린다. 출근길에 곤경에 처한 여자를 도와주다가 소매치기를 당하는 것으로 문제가 시작된다. 지갑과 핸드폰을 찾기 위해 벌인 엉뚱한 행동은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지고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개인적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이 팔려 전시 홍보 영상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하고, 자극적 영상이 널리 퍼지면서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을 받자 큐레이터직을 사임하기에 이른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미술 작품을 설명하는 내용이 작품 자체보다 더 난해할 때가 많다. 과연 몇 명이나 그 의미를 알까라는 의심은, 이 영화를 보면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예술을 구구절절 설명한다는 시도 자체가 어쩌면 난센스일지도.
  • 제1회 LH가든쇼 LH·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세종시 공동 주최, 순천가드너협동조합 주관 세종시 무궁화테마공원에서 개최
    지난 8월 16일 세종시 무궁화테마공원에서 LH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세종시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순천가드너협동조합이 주관하는 제1회 ‘LH가든쇼’가 개최됐다. 이번 LH가든쇼는 나라꽃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행사로, 지역 주민에게 정원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공공 정원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국내외 디자이너가 조성한10개의 정원을 선보였으며 정원 투어, 정원 상담소, 시민 정원 교육 등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무궁화테마공원 곳곳에 세계 3대 정원 축제 중 하나인 쇼몽 국제정원 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 샹탈 콜뢰-뒤몽(Chantal Colleu-Dumond)과 프랑스의 디자이너 베르나르 샤퓌(Bernard Chapu)의 ‘향기, 그리고 물거품’을 비롯해 국내 디자이너가 만든 9개 정원이 조성되었다. 디자이너 선정은 지난 5월 1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공모를 통해 이루어졌다. 무궁화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 공공 정원으로서 역할 할 수 있는 창의적 디자인, 지역 주민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친숙하고 친환경적인 디자인이 요구되었다. 6월 4일 심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고태영의 ‘자연과의 숨바꼭질’, 김경훈의 ‘어머니의 마음은 하늘 같아서, 어머니의 마음은 세종 같아서’, 김효성의 ‘우리꽃 소리원’, 박종완의 ‘동천洞天, 꽃은 피고 지고 다시 또 피네’, 윤종호의 ‘품 안에서 피어나다’, 이상국의 ‘와류원(渦流園)’, 정성훈의 ‘무궁원’, 정은주의 ‘더 픽션(The Fiction), 비밀의 정원’, 최재혁의 ‘무궁산수원(無窮山水園)’이 참여작으로 선정되었다. 각 정원의 규모는 150m2내외이며 5,500만원의 조성비가 주어졌다....(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 쓰레기 소각장의 진화 부천아트벙커 B39
    쓰레기 소각장에서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1995년 가동을 시작한 이래, 삼정동 소각장은 부천 주민 갈등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루 수백 톤의 쓰레기를 처리하던 소각장은 기준치의 20배가 넘는 다이옥신을 뿜어냈고, 시민들은 소각장 폐쇄를 위한 대책 위원회를 구성했다. 결국 소각장은 운영을 시작한 지 15년 만인 2010년에 폐쇄되었다. 멈춰버린 소각 시설은 그렇게 방치되다 사라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14년 삼정동 소각장이 ‘문화체육관광부 폐산업시설 및 산업단지 문화재생사업’의 대상으로 선정되며 새롭게 활용될 준비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올해 6월, 1년여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소각장은 ‘부천아트벙커 B39(이하 B39)’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B39에서 39는 39m에 달하는 쓰레기 벙커의 깊이를 뜻한다. 고치고 남기고 ‘삼정동 소각장 문화재생사업 건축설계공모’에서 당선된 김광수 건축가(스튜디오 케이웍스 대표, 건축사사무소 커튼홀 공동대표)가 소각장의 리모델링 계획을 맡았다. 그는 건축적 개입을 최소화했다. 과거의 기억을 남김과 동시에 부족한 예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기존 건물의 골격을 거의 유지하되, 건물 동쪽에 긴 통로를 새로 만들었다. 노출 콘크리트 통로는 소각장과 비슷한 스케일과 재질로 만들어진 덕분에 원래 건물의 일부처럼 보인다. 거대한 회랑을 닮은 통로를 따라 방문객은 자연스럽게 건물 내부로 향하게 된다. 소각장은 현재 1, 2층만 재단장된 상태다. 나머지 3, 4, 5층은 향후 예산을 확보해 순차적으로 바꿔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1층의 로비와 카페, 2층의 직원 사무실과 스튜디오 룸에서는 이곳이 과거 소각장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지만, 곳곳에 소각장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적절히 남아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 10 : 13 : 14 ‘세월호 선체 활용 방안 공모전’ 대상작
    지난 8월 22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가 주최한 ‘세월호 선체 활용 방안 공모전’의 대상작이 발표됐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기획된 이번 공모는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 세월호 선체를 의미 있게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선조위는 선체를 활용한 콘텐츠, 선체를 융해하여 다른 형태로 재창조하는 방안 등 형식과 범위의 제한 없이 다양한 선체 활용 아이디어를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심사위원회는 작품의 실현 가능성, 창의성, 효율성, 효과성, 적용 범위 및 계속성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박우성(삼육대학교)의 ‘10 : 13 : 14’를 대상으로 선정했다. 앞으로 선조위는 유가족과 자문 위원회, 지차체 등과의 협의를 거쳐 대상작의 아이디어 일부를 세월호 추모 공원 설계안에 반영할 계획이다. 10 : 13 : 14 전남 진도군 팽목항의 2만 4,000여m2 규모 임야에 선체를 활용한 시각적·체험적 추모 공간을 조성한다. ‘10 : 13 : 14’는 세월호 참사 당일 선체가 90도로 기울었을 때의 시각 10시 13분 14초를 의미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5호(2018년 9월호) 수록본 일부
  • [편집자의 서재] 아무튼, 잡지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당신에게는 그런 한 가지가 있나요?’ 에세이 시리즈 『아무튼』은 다양한 사람이 저마다 매료된 한 가지를 한 권의 책으로 소개한다. 1인 출판사 세 곳(위고, 제철소, 코난북스)이 따로, 또 같이 펴내는 이 책은 각 출판사가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필자도 주제도 가지각색이다. 피트니스, 서재, 망원동, 스웨터, 로드 무비, 일본 철도 등 이쯤 되면 다음 나올 책은 무엇을 다룰지 궁금해진다. 각기 다른 주제는 한 사람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데 일조했다는 공통점으로 묶인다. 그래서 『아무튼』의 부제는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다.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과 문화를 공유하고 전시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흐름 속에서, 이런 주제의 글들을 묶으면 좋은 시리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기획 의도로 볼 때, 이 책의 정체성은 가벼운 정보서라기보다 취향에 관한 소소하고 사적인 기록물에 더 가깝다. 각 책의 저자는 본인이 쓰는 주제의 전문가가 아니다. 『아무튼, 피트니스』는 십여 년간 폭식과 폭음을 일삼던 인권 운동가가 ‘살기 위해’ 운동을 결심하면서 점점 운동의 즐거움을 알아간다는 내용이고, 서재 편은 목수가 저자이며, 심지어 게스트하우스 편은 약사가 쓴 책이다. 이 시리즈에 입문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아무튼, 잡지』였다. 한 독립 서점에 들러 여유롭게 책 구경을 하던 중, 서가 한 칸에 나란히 나열된 책들을 발견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은 ‘잡지’라는 글자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탓이었다. 스스로에게 읽혀야만 할 것 같은 모종의 의무감이기도 했다. 잡지가 생산되는 주기에 삶의 박자를 맞춰가며 한 달에 한 번씩 노동의 집약체를 두 손에 받아 들었을 때, 서점 한 구석을 차지하는 잡지 코너에 누가 무슨 책을 읽고 있나 무심한 듯 곁눈질했을 때, ‘요즘 잡지 어렵지 않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웬수 같은 친구 놈 앞에서 괜히 발끈했을 때, 잡지의 무게는 얼마큼 인지 잡지가 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를 (답은 빤하니 어디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궁금해 했다. 취미가 독서인 사람은 여럿 봤어도 잡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닌 잡지를 다루는 책이라니. 소설도, 시도, 만화도 아닌 어떻게 잡지인 것인지, 어떤 사정이 들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했는데 ‘잡지 읽는 거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질문하는 사람이 잡지를 즐겨 읽는 이가 아니라면 ‘네, 뭐, 그렇군요’라는 식의 슴슴한 대답이 돌아온다. 잡지 읽기가 취미라는 저자 황효진은 상대방의 이러한 미적지근한 반응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잡지는 저자에게 오랜 서랍장 같은 존재다. 만화 잡지 『나나』로 입문한 순정 만화의 세계, 패션 잡지에 딸려 오는 화장품으로 어설픈 화장을 해 보던 시절, 각양각색의 일본 잡지에 반해 일본어를 더듬더듬 공부하던 기억 등, 잡지를 통해 차곡차곡 쌓아 올린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대부분을 공감하기 힘든 시대가 되어 버렸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도나도 잡지를 읽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나만 읽는 시간대에 놓인 저자는 퍽 당황스럽다. 그는 사라져가는 잡지를 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다가도, 잡지에 대한 책을 쓰자니 잡지를 읽는 이유를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그래서 잡지에 얽힌 에피소드 사이사이 잡지를 읽는 나름의 이유(속에 감추어 둔, 잡지를 읽었으면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 중 하나인즉슨 ‘좀 더 제대로 살고 싶어서’란다. 잡지를 안 보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닌가? 벌써부터 발끈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는 잡지에 있지도 않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속셈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잡지가 애당초 ‘꼭 필요한 것’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팩트를 짚고 넘어가며 잡지의 존재 이유를 대변한다. “나는 ‘그게 꼭 있어야 돼?’라는 말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그게 없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무언가는 아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다만 있으면 더 좋은 것들, 더 알면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왜 기본만 챙기며 살아가야 할까. ‘가성비’의 세계에서 벗어나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 무언가를 보고, 사고, 해보며, 우리는 조금 더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1 잡지의 무게를 가늠하니 조경의 무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인 산업의 규모를 떠나 필요성의 기준에서 볼 때 잡지의 무게와 조경의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조경을 공부하고 조경 전문지 기자라는 포지션에 놓인 나는, 멀쩡한 길을 놔두고 괜히 보도 경계석 위로만 걸어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알아챘어야 한다. 꼭 필요한 것에서 살짝 비켜난 길 위로 아슬아슬하게 걸어갈 거라는 걸.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만은 아닌 두 개의 중간에 걸쳐 있는 이 애매한 자리는 종종 약간의 씁쓸함을 삼키게 한다. 잡지에 실을 프로젝트를 찾다 빈곤한 조경 작품 수에 비해 차고 넘치는 건축 작품을 보면서, (작품은 훌륭하지만)압도적인 건물이 선심 쓰듯 제공한 공간에 마련된 아모레퍼시픽 본사 정원을 바라보면서, 취재를 준비하던 부천아트벙커 B39의 조경 계획이 무산됐다는 소식을 알고 나서, 조심스럽게 조경의 위치를 헤아렸다. 여유가 있으면 하고, 없으면 과감히 포기해버리는, 생략 가능한 것들의 목록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번 달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를 다루며 ‘아무튼, 조경’이라는 기획 목록에도 없는 책의 이름을 떠올렸다. 대상지에 일어난 미미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보며, 좋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청년들을 인터뷰하며, 잡지든 조경이든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든 공간이든 더 나아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잡지가 삶에 한 결을 더 해 좀 더 제대로 살게 해 주는 것이라면, 공간에 한 결을 더해 좀 더 제대로 된 공간으로 일구는 것이 조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헛헛한 마음을 조금 채웠다. 각주 1. 황효진, 『아무튼, 잡지』, 코난북스, 2017, p.105.
  • [CODA] 실패할 용기
    오전 11시 반이면 조금 이른 점심시간이 시작된다. 11시 반부터 1시까지, 좀 더 여유롭게 점심을 즐기라는 취지로 점심시간이 30분 늘어난 덕이다(대신 퇴근 시간이 30분 늦춰졌다). 6층 공간에 탁구대와 장기판 겸 바둑판이 놓이기도 했다. 새로운 시간표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나는 특별한 일을 하는 대신, 좀 더 맛있는 점심을 위해 시간을 쓰고 있다. 이제 맛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에도 단념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사실 새로운 맛집에도 도전하고 싶은데 선뜻 발을 들이기가 쉽지 않다. 기껏 가게 앞까지 가놓고서는 문 앞에서 식당 이름을 검색해보기 일쑤다. 그 이유는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고작해야 칠팔천 원이지만 맛없는 걸 먹고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발길은 안전한 가게를 향해 돌아선다. 이미 먹어 보았기에, 최고는 아니더라도 보장된 맛을 느낄 수 있는 그곳으로. 그렇게 다음번에는 꼭 가야지 한 가게가 가 본 가게가 되기까지, 길게는 1년여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최근 각종 이벤트나 홍보 문구에 자주 사용되는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유래했는데, 그는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서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작기는 하지만 확고한 행복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소소한 일상 속 에서 행복을 찾기를 권한다. 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욜로YOLO(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와 워라밸(work-life balance의 준말, 일과 삶의 균형)에 이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소확행은 욜로나 워라밸과 달리 소비 패턴과 좀 더 깊은 관계를 맺는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이나 “겨울 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도 소확행이지만, 늦은 밤 네 캔에 만 원 하는 수입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일이나 저렴하지만 좋아하는 물건을 수집하는 일 역시 소확행의 일종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등 여러 SNS에서 소확행을 검색해 보면 꽤 많은 사람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작다’를 ‘적은 금액’과 연관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부수현 교수(경상대학교 심리학과)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전망이 어둡다 보니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불확실한 큰 가치’를 획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소모적이라는 걸 깨닫고, 경제적 상황이 ‘작은’ 것밖에 즐길 수 없게 된 암울한 시대를 반영한 소비트렌드가 소확행이다.”1불확실한 가치를 기대하기를 포기한 모습과 실패를 두려워하는 일이 참 닮아 보인다. 내게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씁쓸하게 다가온 이유가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실패에는 도전이 선행되기 마련이다. 도전과 실패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몇몇 일화가 떠오른다. 첫 번째는 2017년 5월 공개된 ‘서울로 7017’.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고가 위의 식물원은 공모 당선작으로 선정되자마자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중 하나가 과연 콘크리트 위에서 식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2016년 4월 7일에 열린 특별초청강연회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지자 비니 마스가 답했다. “리스크가 없으면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서울수목원’이 실험의 장과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잇는 교량이 되기를 바란다. … 이 실험이 의미 있는 도전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왜 하필 그 실험을 다른 나라 수도의 한복판에서 하느냐는 불만이었다. 그것도 시민들의 세금으로. 조금 뒤에야 나 역시 그가 함께하자고 제안하고 있는 실험을 비니 마스라는 한 개인의 궁금증을 해결하려는 실험으로 치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그 실험이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형태로 진행되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옥수역 고가 하부에 들어선 ‘다락 옥수’의 설계자인 조진만 건축가와의 인터뷰다(『환경과조경』 2018년 6월호 p.121 참조). 그는 이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 공간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한 가지 실험을 하고자 했다. 바로 음지의 둔덕을 다양한 식물로 뒤덮인 정원으로 만드는 것. 하지만 이 실험은 설계안을 무시하고 둔덕 가득히 가장 흔한 음지 식물인 맥문동을 식재한 관할 구청 덕분에 수포가 되었다. 그는 “시범사업은 하나의 테스트라는 의미가 크다. … 둔덕에서 어떤 식물이 살아남는지 또 죽는지 살펴보며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잃었다. 시범사업이란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닌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시도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전했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험에서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던 아쉬움 가득한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모든 실패에 도전이 선행되듯,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험과 도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도전에 실패한 사람들이 어떤 비난을 받는지를 목격해왔다. 실패할 수 있는 용기는 실패해도 괜찮다 여길 수 있는,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여유에서 비롯된다. 맛없는 점심을 먹었더라도 맛있는 디저트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여유. 부산현대미술관 수직 정원의 디자이너 패트릭 블랑은 지난 5월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수직 정원은 정해진 식물 목록으로 만든다기보다 늘 새로운 도전이다. 왜냐하면 찾고자 하는 식물을 구할 수 없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식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공간에 맞춰서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매번 커다란 도전이다.” 말하는 내내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그에게 이제야 묻고 싶다. 도전과 실패를 즐길 수 있는 문화는 어떻게 해야 찾아오는 걸까? 각주 1. 이슬기, “경남 소비 트랜드도 ‘소확행’, 경남일보 2018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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