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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정원 생활] 양산보의 소쇄원, ‘출처지의’의 본보기로서 도의적 삶의 실천 현장
인간 양산보
짧은 유학, 긴 산림처사
양산보(1503 ~ 1557, 호는 소쇄공瀟灑公또는 처사공處士公) 는 조선 중기 사화의 소용돌이를 비켜 살았던 사람이다. 나이 17세 되던 해에 스승 조광조가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목격하고는 그길로 벼슬길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다시는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생을 마쳤다. 한참 세상을 향한 푸른 꿈을 키우던 청년 양산보에게 탁월한 학식과 도덕적 가치로 당시 조정을 쥐락펴락했던 스승이 졸지에 사약을 받아 죽임을 당한 사건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10대 후반에 좌절된 청운의 꿈 대신에 택한 은자로서의 삶을 죽을 때까지 흐트러짐 없이 지켜낸 그는 진정한 처사(處士)로 높이 평가받았다.
비록 본의 아니게 포기한 벼슬이었지만 중년 이후 몇 번에 걸쳐 들어온 벼슬 제의에 일절 응하지 않았던 그가 평생 지키려 애썼던 가치는 ‘소학(小學)’으로 대표되는 도의와 윤리적 규범이었다. 양산보와 비슷한 시대를 산 율곡 이이는 “참된 유자(儒者)는 벼슬길로 나가서는 당대의 도를 실천하여 백성들에게 자유로운 즐거움을 누리게 하고, 물러나 은거하면 만세에 가르침을 전하여 배우는 이로 하여금 큰 깨우침을 얻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양산보는 근처에 있던 옛 절터에 죽림재라는 서당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가난한 이들의 혼인이나 장례를 돕는 등구휼에도 힘써 인근에서 두루 칭송과 존경을 받았다. 조선 선비의 신념으로서 출처지의(出處之義)를 제대로 실천한 그의 삶은 당대는 물론 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정원가로서 소쇄옹 양산보
평생 단 하나의 정원을 조영했지만 양산보는 한국 최고의 정원가로 손색이 없다. 필자는 그 근거를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정원 자체가 심미적으로 빼어나다는 점이다. 소쇄원은 흔히 한국 정원의 특질을 가장잘 보여주는 현장으로 불린다. 기존 계류와 지형에 맞춰 자연스럽게 구성한 공간의 영역이나 요소의 안배, 그리고 그것들이 이루는 시각적 연계와 동적 연결성이 자연스러우면서도 극적 효과를 연출한다. 둘째, 정원에 담긴 뜻과 이상이 각별하다는 점이다. 정원을 작정자의 이상이나 신념이 표상되는 장소라고 보면 소쇄원은 그 대표적 현장이라할 수 있다. 소쇄원 곳곳에는 양산보의 도가적 꿈과 유가적 이상이 담겨 있다. 광풍각과 제월당의 이름은 물론 대, 오동, 버들, 복숭아, 연 등의 식물 그리고 애양단, 오곡문, 대봉대, 도오(복숭아나무 둔덕)등이 그 대표적 산물이다. 셋째, 소쇄원은 양산보 당대는 물론 이후에도 수많은 문인이 찾아 시를 짓고 문예를 즐겼던 곳이다. 문화 예술 발전소이자 향유 무대로서 정원의 효용을 한껏 발휘한 대표적 현장인 것이다. 문예 창작보다는 예학(禮學)과 수신(修身)에 더 치중했던 양산보가 남긴 글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가 교유했던 송순 (1493 ~ 1582), 김인후(1510 ~ 1560), 김윤제(1501 ~ 1572) 등은 수시로 소쇄원을 찾아 많은 시문을 남겼다....(중략)...
*환경과조경364호(2018년8월호)수록본 일부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지금은 대학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선유 도공원 계획 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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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스케이프] 영국보다 낫네!
지난달 영국의 도시재생 프로젝트 현장을 답사하고 왔습니다. 여러 곳을 둘러보고 왔는데, 많은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요약하자면 생산 기반의 과거 도시의 체질을 새로운 산업 구조에 맞춰 개선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산업 구조의 변화가 진행 중인 우리나라 도시도 참고해야 할 교훈이 많았습니다. 우리보다 한두 발 정도 앞서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답사 직후 지인들과 부산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간 김에 잠시 틈을 내 최근 새롭게 단장한 ‘F1963’이란 곳에 들렀지요. 암호처럼 보이는 이름은 1963년에 처음 지은 공장 factory 이라는 의미라는군요. 이곳은 2008년까지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고려제강 공장이었는 데, 2016년 부산비엔날레를 계기로 서점, 전시 및 공연장, 커피 전문점, 펍 등이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건축가 조병수의 꼼꼼하면서도 감각 적인 아이디어가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공장 지붕을 일부 걷어내어 만든 중정, 기존 부재에 새롭게 덧댄 재료의 신선한 조화, 와이어로프를 활용한 소품들까지. 공간을 둘러보는 내내 보는 즐거움이 아주 쏠쏠하더군요. 시간 여유가 좀 더 있었다면 한참더 있고 싶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4호(2018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 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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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88세의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Agnes Varda)와33세의 사진작가 제이알JR이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며 공동 작업한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다.아녜스 바르다는 영화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장 뤼크 고다르(Jean Luc Godard)등과 함께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다.누벨바그는1950~196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영화 운동으로,기존의 영화 형식과 문법에 대항하는 새로운 영화 세계를 지향했다.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평생 작업해 온 영화감독과 혁신적 작업 방식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사진작가는 포토 트럭을 타고 다니며 즉석 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다.
발터 벤야민은‘사진의 작은 역사’에서“카메라에 비치는 자연은 눈에 비치는 자연과 다르다”고 말한다.인간이 의식을 갖고 엮은 공간에 무의식적으로 엮인 공간이 개입 한다는 것이다.그는‘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도 사진과 영화의 기술은 육안으로는 포착할 수 없던 익숙한 사물의 숨겨진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주위 환경을 다시 인식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영화‘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면 이20세기 매체 미학자의 사유를 이해할 수 있다.카메라 렌즈가 어떻게 평범한 이웃 사람과 주변 공간을 예술로 만드는지 느낄 수 있다.
바르다와 제이알의 여정은 프랑스 북부의 쇠퇴한 탄광 마을에서 시작한다.그곳에서 평생 일한 광부들과 철거가 예정된 집에서 마지막까지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수습 광부 시절의 전신사진을 확대해2층 벽돌 건물의 벽에 붙이고,최후 거주자의 집 벽면 전체에 얼굴 사진을 확대해 붙인다.주민들은 그곳의 삶 자체를 상징 하는 오래된 집에 담긴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눈물짓는다.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건물,벽,컨테이너,자동차 등에 사진을 붙이는 작업은 프랑스 전역을 다니며 이어진다....(중략)...
*환경과조경364호(2018년8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지방 도로를 지날 때면 특산물을 직설적으로 형상화한 조형물이나 가로등이 자주 눈에 띈다. 키치도 하나 둘이면 모를까, 전 국토의 경관이 한줌의 상상력도 허용하지 않는 게 너무나 아쉽다. 지난 주말 고속 도로 변에서 보았던 난데없는 조형물 꽃은 코스모스였을까 채송화 였을까. 궁금하게 만들어 졸음 운전을 방지하려고 했다면 성공한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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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아시아 국가 간의 공유와 연대의 가능성을 지닌 땅
2018 호주 경관 컨퍼런스, 5월 5일 시드니에서 개최
호주의 조경 전문지 『LAA Landscape Architecture Australia 』가 주최한 ‘2018 호주 경관 컨퍼런스Landscape Australia Conference’가 5월 5일 시드니 공과대학UTS(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에서 열렸다. 『LAA』는 2018년 4월호에서 조경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이동 하고 있음을 선언하고 아시아를 주제로 다양한 기사를 다루었다. 이 컨퍼런스는 그 연장선상의 기획으로, 『LAA』에 소개된 한국의 오피스박김과 홍콩의 루럴 어반 프레임워크Rural Urban Framework를 비롯하여 싱가포르, 태국, 인도, 뉴질랜드에서 활동 중인 조경가를 초청해 현시대의 쟁점과 작업을 공유하고 연대를 형성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유럽 정착민에 의해 형성되었고 공식적으로 아직 영국 연방에 속하는 호주는 아시아 국가와 같은 시간대, 태평양을 공유하는 시공간적 입지로 인해 아시아와의 경계가 모호하다.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 호주인에게 아시아인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기 어렵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을 놓고 호주와 경기를 벌일 때는 아시아 태평양 그룹에 속한 호주가 크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호주인도 이러한 ‘주변부적’ 입지를 인지하고 있다.1세계 여러 나라, 특히나 아시아로부터의 유학생과 이민자의 급증을 경험하고 있는 호주는 대학 프로그램과 전문 영역에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아시아 국가 간에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연대를 형성 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할 잠재력을 지녔다.
컨퍼런스는 2015년 철도 부지에서 공원으로 탈바꿈한 굿즈 라인The Goods Line(『환경과조경』 2016년 3월호, pp.12~25 참조)과 연결된 닥터 차우착윙 빌딩Dr. Chau Chak Wing Building에서 열렸다. 시드니를 포함한 호주의 여러 도시 그리고 뉴질랜드의 조경 및 건축 관련 전문가가 회의에 참여했으며, 아시아 각국에서 초청된 여섯 팀의 강연, 진행자와의 토론, 휴게 시간 등 세 세션이 진행 되었다.
태국의 도시 인프라 문제와 대안
방콕에SHMA 조경설계사무소를 설립하고 활동 중인 요사폰 분섬Yossapon Boonsum과 프로판 나파웡디Propan Napawongdee는 태국의 많은 도시가 부실한 배수 시설, 원활하지 않은 교통 체계 등 열악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고 진단하고, 어떻게 이를 개선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들은 방콕에서 조깅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방콕 북쪽 대중교통의 종점인 차우투착Chatuchak으로부터 남쪽 강변까지 이어지는 녹지축을 제안한다.10km에 달하는 이 구간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강력한 축으로 기능하며, 도처에 단절되고 버려진 공간을 연결하는 동시에 출퇴근 보행 루트가 된다.
또한 ‘BKK 10KM’라 명명된 이 프로젝트의 마스터플랜을 제안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동영상을 통해 10km 구간을 시민들과 함께 뛰면서 프로젝트가 도시에 불러올 긍정적 변화를 이야기하고,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버려진 다리 밑과 강변, 그리고 육교 등이 어떻게 탈바꿈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시도에서 시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그들의 고민을 느낄 수 있다. ...(중략)...
*환경과조경364호(2018년 8월호)수록본 일부
이홍인은 호주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에서 조경학과를 졸업 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하셀(Hassell)의 멜버른 오피스에서 BIM 모델링,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가상 현실 등의 신기술을 조경 실무에 응용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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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통해 옛 동네의 기억을 이어가다
‘두 동네의 기록과 기억’ 전, 돈의문 박물관마을 돈의문전시관
아무리 반짝거리는 새 도시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낡기 마련이다. 버려야 할 부분을 덜어내고 필요한 기능을 얹어 고쳐 쓰면 좋으련만, 대부분의 도시는 그대로 방치되어 슬럼화되거나 허물어져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개발되기 일쑤다. 육중한 건설 장비에 스러져 가는 낡은 도시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함께 사라질 오랜 정취와 추억이 아쉬워진다.
지난 4월 16일 돈의문 일대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돈의문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2003년 돈의문 일대(새문안 동네와 교남동 일대)가 ‘돈의문 뉴타운’으로 지정되자 서울 역사박물관뿐만 아니라 민간 연구 그룹이 자발적으로 모여 돈의문 일대의 모습을 기록하고 조사했는데, 이 작업을 모형, 영상, 패널 등으로 전시해 돈의문마을을 기억하고자 했다.
돈의문 박물관마을 내에 위치한 전시관은 전시실 세 동과 교육관 한 동으로 구성된다. 기존의 동네 식당을 복원하고 활용한 것이 특징인데,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던 ‘아지오AGIO’와 한정식집 ‘한정韓井’의 구조를 그대로 살리고, 두 건물을 연결해 전시실로 사용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옛 돈의문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중략)...
* 환경과조경 364호(2018년 8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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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이번만큼은 아니다. 두 번의 여름을 몹시 더운 곳에서 보냈다. 한 번은 필리핀, 또 한 번은 습기로 가득한 고온의 온실이었다. 하지만 올여름은 내가 겪은 그 어떤 여름보다도 견디기 어렵다. 연이은 폭염 속에서 ‘차라리 거기가 나았어’라고 중얼거리면서 하루하루 발갛게 익어가고 있다. 영화 ‘클릭’처럼 시간을 조종하는 리모컨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빨리 감기’ 버튼을 눌러 이 지독한 날들을 후루룩 넘겨버리고 싶지만, 1년 중 가장 활발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북극을 생각하면 버튼을 선뜻 누르지 못할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북극하면 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 풍경을 상상하지만 북극에도 여름이 있다. 한국에서 여름인 7월이 되면 북극도 여름을 맞이한다. 낮 기온이 영상 10도까지 오르고 온종일 태양이 떠 있는 이 시기는 극한의 추위를 피해 있던 각종 동식물이 움츠렸던 몸을 한껏 펴는 시간이다. 꽁꽁 얼어 있던 땅이 녹으면서 각종 현화 식물과 지의류, 선태류가 넓은 땅을 가득 덮고, 그 속에서 곤충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북극토끼는 마음껏 풀을 뜯어 먹으며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산란기를 맞은 새들은 갓 태어난 새끼들을 보듬기에 여념이 없다.
아쉽지만 북극의 여름은 길어봤자 한 달 남짓, 기나긴 겨울 속 잠깐의 따뜻한 시간이다. 8월이 지나면 또다시 찬바람이 불어와 길고 긴 겨울이 시작된다. 펄펄 끓는 올여름이 지나고 한국에 가을이 오면 북극의 동물들은 잠자듯 살테고, 꼬까도요와 세가락도요는 그린란드부터 유럽과 아프리카 해안까지, 남반구에서 북반구 끝을 오가는 긴 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 막 알에서 나와 솜털을 휘날리며 북극 위를 앙증맞게 돌아다니고 있을 작은 새들을 생각하니 이 지긋지긋한 여름이 조금은 더디게 흘러도 괜찮을 것 같다.
극지에서 동물을 연구하는 이원영은 북극의 동식물만큼이나 북극의 여름을 기다린다. 극지 연구소 연구원, 동물행동학자, 생태학자 등 그를 수식하는 단어가 여럿 있지만 풀어서 말하면, 동물에 대한 애정이 흘러넘쳐 해마다 여름과 겨울이면 극지로 향하는 사람이다. 그는 매년 남극에서 펭귄을 연구했지만 가슴 한편에 북극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지냈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꽁꽁 언 동토의 벌판 위에 눈을 맞으며 홀로 서 있는 사향소의 모습’을 본 후부터였다. 북극이나 남극이나 어차피 온통 얼음으로 뒤덮인 건 마찬가진데 다른 게 있을까 싶지만, 같은 극지라도 북극에는 펭귄이 없다. 북극흰갈매기, 회색늑대, 사향소는 북극 인근 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동물들이다.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는 바라고 바라던 북극 땅에 닿게 된 그가 두 차례에 걸쳐 그곳에서 여름을 맞이한 기록이다.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은 ‘기약 없는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야생의 땅에서는 더욱 그렇다. 예민한 북극토끼를 관찰하기 위해 오전 내내 토 끼 무리 옆에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아 기다리기도 하고, 광활한 대지에서 작은 새 둥지를 찾기 위해 몇 시간을 돌아다니는 것쯤은 가벼운 산책 정도로 여겨야 한다. 하지만 기다린 만큼 보람도 있는 곳이다. 식사 도중 ‘얼음 위에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법의 새’라 불리는 북극흰갈매기가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일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사향소와 대뜸 마주친다. 무엇보다 호기심 많은 생태학자에게 산에 굴러다니는 배설물만큼 반가운 손님도 없다. 산 정상에서 말로만 듣던 회색늑대의 분변을 찾았을 때, 그는 손으로 집어 들어 냄새를 맡아보고, 손톱으로 한쪽 끝을 부서뜨려보면서 세상 진지한 태도로 분석한다. “연한 회색빛에 길이는 10센티미터, 두께는 3센티미터는 족히 되는 듯하다. 이 정도라면 작은 동물의 것이 아니다. … 레밍의 것으로 추측되는 뼈와 털잔해가 뒤섞여 나온다. 이 정도 크기의 배설물을 만들어내는 포식자라면 …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회색늑대다!’하고 외쳤다.”1 가방에서 지퍼백을 꺼내 조심스럽게 분변을 담고, 동료들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과장하지 않은 담백한 이야기가 좋다. 북극곰과 마주해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다던지, 새와 친구가 된다는 드라마틱한 내용은 없다. 아무 수확 없이 허탕 치는 날도 있고, 여전히 동물들은 그를 경계한다. 하지만 종종 걸음으로 새를 쫓아다니고, 들판에 핀 꽃의 이름을 찾아보는 이가 매일 밤 써내려간 일기에는 옆에서 듣는 듯 친근한 어투와 순수한 호기심이 가득 들어 있다. 덕분에 읽는 사람은 그의 여정에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책 속 북극의 풍경을 더듬더듬 그리다 보면 그곳의 서늘한 바람이 한차례 지나가는 듯하다. 더위에 많이 시달린 탓일까. 다음 문장은 여름 내내 가지고 다닐 것 같다. “바다에 떠 있는 빙산 중 하나가 뭍 가까이에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다. 나는 빙산에서 손바닥 크기의 조각을 떼어내 지퍼백에 담아 캠프로 가져갔다. … 우리는 얼음을 잘게 쪼개어 컵에 넣고 위스키를 조금 따랐다. 컵에 귀를 갖다 댔더니 얼음이 녹으면서 ‘톡 톡 톡’ 하는 경쾌한 음이 들렸다. 수만 년 전 빙하가 생길 때 그 안에 갇힌 공기가 빠져나오는 소리다. … ‘역사의 맛이야.’”2가 본 적 없는 그곳의 풍경이 그리워진다.
1.이원영,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 글항아리, 2017, pp.120~121.
2.위의 책,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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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새로운 공간, 독자와의 만남
7월 12일, 손 없는 날은 그 주에서 둘째로 더운 날이었다. 가장 더운 날은 짐 싸기에 이어 본격적으로 짐을 나르기 시작한, 이사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악귀는 없었는지 몰라도, 우리는 귀신보다 더 끔찍한 폭염과 함께 장장 3일간 사우나에서 헤매는 듯한 기분으로 짐을 정리해야 했다.
유월부터 호들갑을 떤 것 치곤, 이사 완료 소식이 늦었다. 예고한 바와 같이 『환경과조경』은 내방역 인근 평지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다. 역에서부터 도보로 3 분도 채 안 되는 거리, 초역세권이다! 게다가 2층이다. 지각할까 염려하며 북적이는 엘리베이터를 몇 번이고 놓치는 대신, 계단을 몇 번 겅중겅중 오르기만 하면 가벼이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다. 이사가 끝난 뒤에도 자잘한 정리 작업 때문에 일주일 정도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 제법 새로운 사무실에 적응한 직원들은 점심 시간마다 새로운 맛집 찾기에 여념이 없다.
이사를 마치자, 두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남았다. 먼저(구)사무실에 세워졌던 붉은 벽. 베를린 장벽처럼 사무실 중앙을 가르는 이삿짐 바구니가 높게 쌓였는데, 그 안에 든 건 창고와 책꽂이를 채우고 있던 잡지와 단행본들이었다. 옮겨도 옮겨도 끝이 없는 책 꾸리기 작업을 계속하며, 지금껏 소리 내 본 적 없는(마음속으로는 몇 번 한 적이 있다)“잡지를 잘 만들고 잘 팔아서 절대 재고를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오래전 새로 산 아이패드를 자랑하던 친구의 말도 떠올랐다. 그는 온갖 잡동사니와 두꺼운 책으로 부푼 내 가방을 보며 그랬다. “미련하게 무거운 거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지 말고, 수시로 가지고 다닐 책은 이북e-book으로 봐.” 한 손에 든 아이패드를 종잇장처럼 가볍다는 듯이 흔들어 보이던 친구의 샐쭉한 미소가 얄밉기만 했는데, 이제 와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과 책장을 넘길 때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등 종이 책만이 지닌 낭만이 있지만, 나날이 집안 한구석에서 몸집을 키우는 책 더미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다음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몇 번이고 바뀌었던 가구 배치안이다. 궁금해 하실 것 같아 알려드리자면, 단체 카톡방에 공유된 가구 배치 아이디어(『환경과조경』 2018 년 6월호 코다 참조)는 모두 반려됐다. 사실 도면부터 다시 그려야 했다. 이놈의 건물 벽이 몰래 줄어들었다 늘어나기라도 하는 건지, 치수를 재러 갈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몇 번의 수고 끝에 정확한 도면을 만들고, 배치안까지 완성했는데 뜻밖에도 이삿날 문제가 발생했다. 일렬로 책장을 늘어놓으려 했던 자리에 형광등 스위치가 있었다. 가구 배치를 진두지휘하던 나창호 기자는 당황했다. 가구는 계속해서 밀려들어 오고, 인부들은 끊임없이 “이 가구는 어디에 놓냐”며 대답을 재촉했다. “도면은 근삿값 수준의 스케일로 작성하고, 최종 스케일은 현장에서 결정”1한다던 최재혁 작가의 글이 생각났지만, 이 노하우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미완의 악보를 작성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이를 최종 단계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완성시키려는 노력”2 은 어느 정도의 감각과 경험을 갖춘 조경 가에게 통용될 말일 테니까.
새로운 사무실은 전과 달리 세 면이 통유리다. 이제 고개를 틀면, 액자처럼 전깃줄과 느티나무 가지를 보여주던 작은 창 대신 대로변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창 때문에 전처럼 책꽂이를 많이 놓을 수는 없지만, 탁 트인 풍경이 야근의 피로를 잊게 해주길 바라본다. 또 하나 큰 변화는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점이다. 같은 사옥의 6층은 두 개 층을 합쳐 높은 천장을 확보한 공간으로, 복층을 두어 위층을 사무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래층과 위층을 연결하는 목재 스탠드는 각종 행사에서 훌륭한 객석이나 연단으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대망의 첫 행사로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 북토크 “여자 둘, 남자 둘의 수다스런 책 읽기”가 열렸다. 처음이기에 서투를 수도 있겠지만, 꽤 많은 독자가 찾아와 저자, 패널 그리고 다른 독자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북토크는 독서 인구 감소에 대항하려는 출판사의 생존 전략 중 하나지만, 독자가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지닌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소통의 장이기도 하다. 이 같은 행사가 『환경과조경』의 독자층을 풍부하게 만들 뿐 아니라, 새로운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걱정거리 하나를 덧붙이자면, 새로운 사무실은 전과 달리 중앙냉난방 시스템으로 사무실 온도를 조절한다. 이번 마감 내내 아홉 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관리인분이 찾아와, 언제 퇴근할 것인지(언제 에어컨을 끌 수 있는지)를 물었다. 어쩌면 앞으로 야근의 고통을 불볕더위와 함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코다를 쓰느라 야근하며 관리인분을 귀찮게 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래도 마감이 임박했을 때 쓴 코다가 현장을 더 생생하게 전달하지 않나 하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아 본다.
1.이번 호, p. 95.
2.위의 책, p.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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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효율적인 잔디 관리를 위한 키그린의 잔디보호매트
잔디 훼손을 근본적으로 방지해 관리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
키그린 keygreen 의 잔디보호매트는 보행자 통행으로 인한 잔디 손상을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제품이다. 매트 하부 공간을 아치형으로 설계해 통해 잔디 러너runner(줄기)가 활착할 공간을 확보하고 답압으로부터 잔디의 생장점을 보호한다. 2012년, 2017년 정부조달우수제품으로 지정된 바 있으며, 서울 시청을 비롯한 전국 관공서 및 공원은 물론 해외로까지 수출되는 제품이다. 잔디 유지를 위해 미관을 해치는 출입 금지 표지판이나 경계줄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고, 보식 횟수도 줄어 잔디 관리 예산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보도블록, 판석, 탄성 매트, 데크 등의 인공 구조물도 잔디밭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도심 내 녹지 공간 확보 및 보존, 도시 열섬 효과 저감, 친환경 녹지 공간 및 휴식 공간 조성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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