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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갇힌 물, 흐르는 물, 춤추는 물
1960년대의 미국은 백인 남성이 주도하는 시대였다. 천재 여성 수학자의 실화를 다룬 ‘히든 피겨스’는 차별과 편견을 딛고 성공한 당대 흑인 여성들을 그린다. 흑인 전용 화장실에 가기 위해 구두를 신고 먼 거리를 뛰어다니는 그들의 상황이 애처롭다. 식당이나 버스에서도 좌석을 분리한 인종 차별의 시대였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시대 배경도 1960년대다. 장애를 가진 여성, 흑인 여성, 노인 게이, 소련 스파이, 심지어 괴생물체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말 못하는 여자 사람과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인 생물체의 사랑을 그린 19금 영화다.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서사지만 영화를 보는 중에 나도 모르게 왜 눈에서 물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주인공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는 강에서 버려진 채 발견되어 고아원에서 자랐다. 말을 알아듣지만 하지는 못한다. 그녀의 직업은 비밀 우주 연구소의 청소부다. 밤 아홉 시에 일어나 자정에 출근해서 동틀 무렵 퇴근한다. 허름한 극장 건물 위층에서 혼자 살지만 외롭지는 않다. 옆방에 사는 화가인 노인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분)와 텔레비전을 함께 보며 식사를 하고 고민을 들어주는 일상을 공유한다. 그는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났고 단골 파이 가게의 남자 점원을 짝사랑한다. 따뜻한 심성의 직장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분)는 가부장적인 남편 험담으로 시작해 일하는 내내 말하기를 쉬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와 가정 모두에서 핍박 받는 소수자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0호(2018년 4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국가 권력과 정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워싱턴 포스트」 여성 발행인의 내면을 다룬 영화 ‘더 포스트’는 울림을 준다. 남자들에 둘러싸여 힘든 결단을 해야 하는 그순간, 메릴 스트립의 떨리는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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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게 정원은 어떤 의미인가
'예술가의 정원’ 전, 닻미술관, 2018. 3. 17. ~ 5. 27.
정원은 오랫동안 인간이 꿈꾸지만 닿을 수 없는 낙원을 상징하며 우리를 매료시켜왔다. 특히 “누구보다 감성적이고 예민한 촉으로 정원을 바라보는 시각 예술가”에게 정원이란 어떤 의미일까.
경기도 광주에 자리 잡은 닻미술관은 2018년 첫 전시로 ‘예술가의 정원(The Artist’s Garden)’을 지난 3월 17일부터 5월 27일까지 개최한다. 강민정 학예실장(닻미술관)은 “시공간을 아울러 무엇보다 오래, 강력하게 예술가의 뮤즈(Muse)가 되어온 그 ‘비밀의 화원’에서 예술가들은 언제나처럼 내밀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며 이번 전시를 소개했다. ‘예술가의 정원’ 전은 이혜승, 이혜인, 허구영 세 명의 화가와 사진가 조성연을 초대해 예술가에게 정원이 어떤 의미인지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혜승은 크고 작은 화분을 자신만의 정원으로 삼고 느리게 바라보며 그만의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내고, 이혜인은 정원을 자연과 인간이 대화하는 공간으로 해석하며 수년 전 그렸던 베를린의 한 겨울 정원을 다시 번역한다. 허구영은 우연히 찾은 정원에서 체험한 순수한 감동과 즐거움을 오랜만의 회화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 조성연은 식물의 고요한 성장 과정을 긴 호흡으로 관찰하고 교감하며 그 시간의 일부를 빛의 드로잉인 사진으로 담아낸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0호(2018년 4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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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길을 모색하는 이들의 이야기 ‘경청 시간’
조경모색 주최, 김지환 소장의 ‘100가지 줄넘기 아이디어’
조경을 화두로 고민하는 청년 조경가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가 마련됐다. “스스로의 길을 모색하는 이야기 ‘경청 시간’”은 2016년 광주에서 글, 스케치, 도면을 통해 서로의 작업 방식과 생각을 공유하는 전시를 연 ‘조경모색(造景摸索)’이 새롭게 기획한 강연 프로그램이다. 조경모색 멤버인 이상기 대표(조경설계사무소 온), 이대영 대표(스튜디오 엘), 장재삼 대표(지드앤파트너스), 이진형 부소장(조경설계 서안)과 사회를 맡은 김연금 소장(조경작업소 울)은 이 강연을 통해 젊은 조경가가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길 바랐다고 한다.
그 첫 번째 강연이 3월 20일 오후 7시, 을지로의 작은 카페 ‘작은물’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김지환 소장은 외부 공간을 기획, 설계, 조성하고, 평범한 소시민 창작 집단을 표방하는 조경 기반 미디어 플랫폼 ‘라디오LADIO’를 운영하고 있다. 조경을 단순히 설계, 시공 등으로 구분하지 않고 열린 태도로 다양한 영역을 오가는 활동을 펼쳐 조경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것이 목표다. 회사의 독특한 성격만큼이나 김 소장의 강연 또한 재기발랄했다. 그는 ‘100가지 줄넘기 아이디어’라는 주제로 정원박람회 참여 작품부터 완충 녹지, 리조트, 마을 만들기 등 그간의 작업을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틈틈이 휴대폰에 기록한 메모를 보여주며 조경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털어놓았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0호(2018년 4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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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와 함께 숨쉬는 예술가의 도시재생
전공은 조소, 관심사는 다른 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 예술 작업뿐만 아니라 공연 세트를 디자인하고, 돌연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뛰어들기도 하는 고대웅은 다양한 분야를 자유롭게 오가는 예술가다. 2017년에는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 서울정원박람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에 참여해 조경가와 함께 정원과 쉼터를 조성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국악인으로 등록되기도 한 그는 현재 2018 파리 패션 위크에서 선보일 브로치와 배지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 중 을지로의 장인을 기념하는 공간인 ‘장인의 화원’을 가장 흥미로운 프로젝트로 꼽는다. 사람과 주변 환경이 어떻게 버무려지는지에 관심이 많고, 을지로에 머물고 있는 고 작가가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가치를 찾아 ‘이런 게 여기에 있었어. 어때, 재밌지?’하며 공유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한다는 고 작가를 만나 을지로와 도시재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고 작가가 을지로에 빠져들게 된 건 2015년, 세운상가에서 연 첫 개인전 ‘청두淸豆’를 위해 을지로를 오가던 때다. 근대 건축물과 현대 건축물이 뒤섞여 만들어낸 여러 레이어가 그의 관심을 끌었다. 무엇보다 임대료가 쌌다. 이곳에 작업실을 구해야겠다고 결심한 차에 중구청이 을지로 내 빈 점포를 저렴하게 임대하는 ‘을지로 디자인·예술 프로젝트’ 공모를 열었고, 이에 선정돼 2016년부터 고 작가의 을지로살이가 시작됐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0호(2018년 4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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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가의 일과 일상 사이
박승진 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 소장
2007년, 신사동에 조경설계사무소 ‘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design studio loci)’(이하 로사이)가 문을 열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뭇 사람이 그렇듯 박승진 소장도 “가슴 뛰는 흥분과 엄습하는 두려움”에 가슴이 울렁였다. 그런 그의 눈에 사무소가 자리 잡은 건물의 텅 빈 옥상이 들어왔다. 이 옥상에 직원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보면 어떨까. 마침 따뜻한 3월의 봄이었다. 그렇게 콘크리트 옥상에 텃밭이 만들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시멘트 바닥에 직원들과 함께 플랜터를 놓고, 흙을 채우고, 물을 주어 수확한 ‘첫’ 작물이 고추였다. 어떤 건 덜 익고, 어떤 건 볕에 타서 마른, 완벽하지 않아 아름다운 고추의 사진은 고스란히 『DOCUMENTATION(도큐멘테이션)』의 표지가 되었다.
『도큐멘테이션』은 로사이의 10년간 작업 기록을 담은 책이다. 작업 기록이라 하면 흔히 작품집을 떠올리기 쉽지만, 『도큐멘테이션』에서는 설계 철학이나 에세이, 작품 설명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간단한 아이디어 스케치, 좀 더 공력을 들인 드로잉, 캐드 도면, 스터디 모형, 어떤 날의 작업 테이블, 공사 현장, 출장과 휴식을 겸한 소소한 여행의 기록 등 500여 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책 말미의 ‘찾아보기’에 적힌 날짜나 장소 외에는 사진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다. 박 소장은 이처럼 사진을 따로 구분하여 정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삶이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일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교차되고 그렇게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과연 박 소장의, 또 조경가의 일과 일상은 어떻게 뒤섞이게 되는 것일까. 보통 사람의 일이 마무리되어 가는 오후 다섯 시, 그의 사무실을 방문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0호(2018년 4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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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I 미래포럼]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의 속담에서 유래했지만 마을 공동체 활동이나 교육에서 자주 인용하는 표현이다. 이때 마을의 의미는 놀이터처럼 아이들의 상상력과 모험심을 키워주는 공간ㆍ환경을 포함한다.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사회적 공간, 그래서 아이들의 인생을 보조하는 공간, 그것이 놀이터다. 우리가 놀이터를 마을과 연계해 바라보는 것은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하는 다양한 인생의 보조 공간에 구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놀이터가 마을에 열려 있고, 아이들의 놀이와 상상이 놀이터에서 마을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 그럴 때 아이들에게 마을이 온통 놀이터가 될 수도 있고, 또 놀이터가 아이들이 생각하는 커다란 세상 모두가 될 수 있다.
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의 『놀이터 생각』 맨 앞 장에는 “어린이 놀이터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고자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바칩니다”라는 말이 쓰여 있다. 어린이 놀이터가 더 인간적이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한 참여와 일방적 배려를 넘어 놀이터를 꿈꾸고 만들고 이용하는 모든 과정에서 놀이의 주체인 어린이가 중심에 설 때 인간적 공간이 실현될 수 있다. 놀이터는 ‘놀이’와 ‘터’로 구성되어 있고 이 둘은 아이들에 의해 연결된다. 놀이터가 놀이를 하는 터, 즉 노는 장소를 의미한다면, 놀이를 담는 그릇으로서 터를 디자인하는 일에는 우선 놀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놀이는 문화와 삶의 양식에 따라 다르고, 나이와 성별 그리고 성격에 따라서도 다르다. 혼자 놀 때의 놀이와 함께 어울려 놀 때의 놀이 또한 다르다. 놀이는 자신의 능력을 실험하고 한계를 경험하여 향후 살아갈 삶의 지지대가 될 도전 정신을 키워줌과 동시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집단 놀이를 통해 리더십을 키우고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익히고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를 경험하게 한다. 우리는 이런 놀이터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 아이들은 이런 놀이터에서 맘껏 뛰어 노는가?
안타깝게도 우리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놀이터를 발견할 수 있기는커녕 시설 안전 기준에 미달되어 용도 폐기된 채 방치된 놀이터가 많다. 우리는 통상 놀이터를 놀 수 있는 기구가 있는 곳으로 인식한다. 즉 놀이터를 놀이 시설물과 동일하게 여긴다. 그러다보니 놀이터의 기능이 놀이 시설물에 의해 제한되고, 아이들의 놀이도 시설물의 기능에 의해 획일적으로 규정된다. 놀이터가 놀이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놀이 시설물을 담는 터로 전락한 것이다. 아이들이 선호하는 미끄럼틀과 그네 등 주요 놀이 시설물의 기능은 매우 한정적이다. 안전 기준에 맞춘 주요 놀이 시설물 디자인의 폭 역시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다보니 전국 곳곳에 비슷한 놀이터가 마구잡이로 들어섰다.
옛 기억을 더듬어보자, 무엇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지배한 놀이였는지. 골목 하나로도 온갖 놀이가 가능했다. 그렇다. 골목이 놀이터인 시절이 있었다.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에게 놀이는 자유를 의미했고, 놀이 원정대처럼 몰려다니던 동네 개구쟁이들에게 온 마을은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이런 골목의 경험을 지금의 놀이터에서 살릴 수 없을까? 놀이터를 좀 더 열린 시각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놀이 기구로 아이들의 행위를 미리 규정하지 않고, 사용자에 따라, 욕망에 따라, 그날의 기분에 따라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놀이를 만들 수 있으려면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 놀이 기구에 의존하지 않는 창의적 놀이 공간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디자인할 때 기존 놀이터의 경직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놀이터를 조성할 때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듣고, 실제 아이들이 노는 걸 보면서 행동 패턴이나 어울려 노는 방식 등을 관찰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 공간을 디자인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아이들이 만들어진 놀이터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는 일이다.
아이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는 ‘유엔아동권리협약’ 12조가 다음과 같이 정한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아동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결정할 때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른은 아동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찍어내듯 천편일률적인 놀이터를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놀이터로 바꿔주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놀이터를 디자인하면서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해보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으로 담을 수 없는 무한 상상의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무한 세상이 펼쳐지는 놀이터에서 관찰된 아이들의 유형은 무척 다양하다. 처음 본 아이들이 바로 친해지는가 하면, 서로 특정한 놀이 기구를 먼저 차지하려고 심각하게 다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 스스로 규칙을 정하기도 하고, 기존의 놀이 기구를 묶어서 훨씬 더 큰 놀이를 상상해 어울려 놀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한 관계와 경험이 쌓이는 곳이 놀이터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다양한 관계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가능성은 놀이터 사업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정도를 디자인의 전 과정을 통해 얼마나 열어 두느냐에 달려 있다. 공간을 통한 놀이의 순환 구조를 만들고, 어린아이와 엄마가 함께 놀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주고, 영유아들이 커가면서 놀이의 발전 단계를 경험할 수 있는 영역도 만들어주고, 놀이 기구를 단순한 기능의 단계에서 사회적 놀이의 단계로 전환시키는 일은 아이들의 놀 권리를 확장시키는 작업이다. 이 일은 디자이너의 상상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놀이터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이 공간이 우리 것이다’라는 주인 의식은 아이들과 함께 하지 않고서는 결코 생기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영국의 놀이 정책을 담당하는 플레이 잉글랜드(Play England)가 펴낸 놀이 활동가 사례 연구 보고서 『사람이 놀이를 만든다(People Make Play)』는 제목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결국 좋은 놀이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좋은 놀이터는 아이들이 놀면서 완성해가는 놀이터이며, 아이들이 놀면서 여기는 ‘내 놀이터’라고 생각하는 그런 놀이터일 것이다. 모두가 내 놀이터라고 생각할 때, 놀이터는 세상을 향해 무한히 커지는 온 마을이 될 수 있다.
이영범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AA 스쿨 대학원에서 도시 공간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 시민단체인 도시연대에서 커뮤니티디자인센터를 설립해 주민참여 디자인을 통한 마을만들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저서로는 『안티 젠트리피케이션』(공저, 2017), 『세운상가 그 이상』(공저, 2015), 『유럽과 아프리카의 도시들』(공저, 2015), 『도시 마을만들기의 쟁점과 과제』(공저, 2013), 『우리, 마을만들기』(공저, 2012)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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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프리즘오브
겨울부터 봄을 살고 있었다. 늘 다음 달을 준비하는 잡지사 기자는 남들보다 먼저 새 계절을 맞이한다. 그러다 보니 종종 지금이 몇 월인지 헷갈리곤 하는데, 그럴 때면 친구들에게 유난이라는 장난 섞인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과 출신 친구들에게 기자라는 내 직업은 아직도 낯선 영역인가 보다.
“잡지사 기자로 산다는 것은 ‘시간’과의 불편한 동거다. 늘 무언가를 좇아야 하는 직업의식과 뭔가에 좇기는 강박관념” 우리에겐 “반복되는 약속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의 질량이 남들과 같을지라도 속도성이나 밀도, 구성은 전혀 다르다"(각주 1)한 달 단위로 사는 월간지 기자에게 월초와 월말은 기획과 마감 업무로 채워진 밀도 높은 시간이다. 특히 특집을 기획하는 달의 월초와 월말은 그 어느 때보다 빽빽하고 무거운 날들이 된다. 여러 콘텐츠를 하나의 주제로 엮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특집 주제에 맞게 프로젝트와 필진을 구성하고, 경우에 따라 좌담을 계획하기도 한다. 구성이 모나거나 빗겨난 구석은 없는지 몇 번이나 살피고 청탁에 들어갔는데, 몇 분이 고사하는 경우도 있다. 기우뚱, 공들여 짜놓은 기획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한번 더 설득해보지만 실패할 경우 새로운 필자를 찾는 여정이 다시 시작된다.
청탁이 끝난 후에도, 편집을 통해 각 콘텐츠가 하나의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다듬는 작업이 진행된다. 각 필자가 의미하는 바는 같은 데 다른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는지, 그럴 경우 어떤 단어로 통일할 것인지, 또 흐름이 어색하진 않은지 순서를 바꾸어 보는 작업이 마감 직전까지 계속된다. 갖은 공을 들인 만큼 특집을 꾸린 달에는 잡지 나오는 날이 (내용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유독 기다려진다. 일종의 보상이다. 페이스북에 공유된 잡지 기사에 댓글이라도 달리면 그간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것 같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수줍은 독자들이 좋아요나 공유하기를 통해 마음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지만.
최근 두터운 여성 구독층을 가지고 있던 『여성중앙』이 기약 없는 휴간에 들어갔고, 영국의 음악 잡지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ew Musical Express)』가 폐간됐다. 손쉽게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미디어 시대, 잡지는 차근차근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독자의 호응을 얻고 있는 잡지가 있다. 2015년 12월 창간되어 비정기 발행, 격월 발행을 거쳐 올해 계간지로 자리 잡은 『프리즘오브(PRISMOf)』다. 사실 『PRISMOf』는 2017년 ‘다크 나이트’를 주제로 한 7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런데 영화 ‘불한당’ 팬들이 계속해서 『PRISMOf』에서 ‘불한당’을 다뤄 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2017년 11월 13일 『PRISMOf』는 ‘텀블벅’에서 ‘불한당’ 특별호 제작을 위한 모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단 10분 만에 목표 금액 1,100만 원이 모였고, 이는 『PRISMOf』가 다시 발간되는 계기가 되었다.
『PRISMOf』가 다시 살아날 수 있던 힘은 특정 대상이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를 깊게 파고드는 데서 기인했다. ‘잡지 한 권에 영화 한 편’을 소개하는 『PRISMOf』는 150쪽을 오로지 하나의 영화를 위해 사용한다. 매호가 특집이다. 감독, 배우의 필모그래피, 줄거리 등 기본적인 영화 소개에서 시작해 칼럼, 에세이, 비평, 가상 인터뷰, 가로세로 퍼즐, 각종 일러스트와 사진에 이르기까지 30여 개의 콘텐츠로 “영화를 여러 각도에서 재조망하여 관객의 영화적 경험을 확장”시킨다. 영화 속의 소품이나 장소, 배경, 음악을 소개하기도 하고 매호 예술가를 초대해 영화에서 받은 영감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표현하게 하는 ‘프리즘피스PRISM-piece’를 통해 독자에게 더 넓은 예술 분야를 경험하게 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 콘텐츠 중 몇몇은 고정된 코너가 아니며 각호에서 다루는 영화의 특성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과감히 생략되기도 한다. 인터뷰이나 필진의 범위도 넓다. ‘다크 나이트’를 다룬 6호에서는 범죄심리학자를 만나 조커의 심리에 대해 분석했고, 포스터가 화제가 되었던 ‘아가씨’를 다룬 5호에서는 ‘엠파이어 디자인 에이전시’를 찾아가 디자인 과정의 에피소드를 공유했다.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한 영화가 너무 좋아 80번을 본 사람이라면 인터뷰이가 될 수 있으며(『PRISMOf』 5호 “그 많던 80회는 누가 다 보았을까”), 배트맨을 다룰 땐 그래픽노블의 양대산맥 DC와 마블 팬의 대담을 공개하기도 한다(『PRISMOf』 6호 “매니아 인터뷰”). 매호가 역동적이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일러스트 역시 『PRISMOf』의 매력 요소다. 『PRISMOf』는 일반적인 영화 잡지와 다르게 스틸컷을 사용하지 않는다.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영화를 굳이 지면에 이미지로 재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는 이제 『PRISMOf』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스틸컷 대신 각종 일러스트와 인포그래픽을 적절히 배치해 보기 좋게 꾸려 놓은 책장을 넘길 때면 잘 포장된 선물 상자를 열어보는 기분이 든다.
창간 5년만에 전 세계 비즈니스맨이 즐겨 읽는 잡지가 된 『모노클(MONOCLE)』의 대표 타일러 브륄레는 “생동감 있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디지털”에 대항하기 위해 “넘겨 읽는 손맛이 느껴지고, 재미있고, 수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매체”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각주 2)영화 ‘불한당’의 팬들에게 『PRISMOf』가 영화를 다양하게 조명하는 방식은 만오천 원을 기꺼이 지출하게 만드는 수집할 만한 가치였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좀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아직 많다. 잘 꾸린 특집이 우리 잡지의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음 작가 특집호에서는 조경설계사무소를 조명할 뿐 아니라, 설계사무소의 주 무대가 되는 장소에 관심이 있는 사람, 그곳을 여행하고 싶은 사람에게 독특한 안내서가 될 수 있는 특집을 꾸리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각주 정리
1. 박성진 외, “천국과 지옥의 교란”, 『페이퍼』 2005년 4월호.
2. 김유영, “年35% 성장하는 英잡지 ‘모노클’ 대표 타일러 브륄레, 『DBR』 2011월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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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호주를 아십니까?
호주는 어떤 나라일까. 호주의 대표적 조경설계사무소의 특집호를 준비하면서 계속 머리를 맴도는 생각이다. 워킹홀리데이나 어학연수를 떠나는 먼 나라, 코알라와 캥거루의 나라 정도가 호주에 대한 내 남루한 지식의 대부분이다. 그리고 하셀(Hassell), 맥그리거 콕샐(McGregor Coxall) 등의 설계사무소가 호주에 기반을 두었다는 정도.
이번 TCL 특집호는 독일의 토포텍 1(Topotek 1)(2015년 2월호), 프랑스의 아장스 테르(Agence Ter)(2016년 11월호) 이후 세 번째 조경설계사무소 특집이다. 토포텍 1이나 아장스 테르의 작품에서 독일적 특징이나 프랑스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 특집을 통해 ‘호주성/호주 조경의 스타일’을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로 호주나 뉴질랜드에 조성된 그들의 작업을 촬영한 사진은 낯선 대륙의 건조한 공기나 나른함, 드넓은 자연의 웅장함이나 밝은 태양을 강렬하게 느끼게 한다. 분명 유럽이나 북미의 세련됨이나 도시성과는 다른 종류의 인상이었다. 편집 디자이너 팽선민은 이번 특집의 메인 컬러를 ‘브릭 오렌지(brick orange)’로 정한 뒤, TCL의 시그니처 프로젝트인 오스트레일리아 가든의 붉은 모래가 “워낙 강렬해 다른 색은 생각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호주의 대표적 로드무비 중 하나인 ‘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2015)의 포스터도 광활한 호주 대륙의 붉은 황무지(outback)를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는 평생 호주 시골 마을인 브로큰힐을 벗어나 본 적 없는 택시 기사 렉스가 어느 날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존엄사 허용법이 통과된 다윈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몰고 무려 3,000km의 호주 대륙 횡단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 여정에서 난생 처음 바다를 보기도 하고,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이 받는 차별에 맞서기도 한다. 고향에서 렉스는 원주민인 폴리를 사랑하지만 백인 이웃에게는 비밀로 하고, 원주민에게는 술을 팔지 않는 바에 함께 가지도 못한다. 마을이나 도시에서 차별받는 원주민들이 숲 속에서 종족과 상관없이 어울리는 모습에서, 호주의 문화가 호주를 정복한 유럽의 것이라면, 숲이나 황무지로 대변되는 호주의 자연은 원주민과 더 가깝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TCL은 원주민의 화전 농법을 추상화한다거나(컬티베이티드 바이 파이어), 문화를 예술적으로 담기 위해 노력하고(애들레이드 식물원 습지), 그들을 도시로 불러들여 화합할 방법을 강구한다(빅토리아 스퀘어).
TCL의 오스트레일리아 가든이 호주 조경계에 미친 영향은 흥미롭다. TCL의 디렉터 중 한 명인 페리 레슬린은 오스트레일리아 가든이 호주 조경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냐는 질문에, “당시 호주에서 조경은 역사가 길지 않은 새롭고 젊은 전문 직종이었다. 대부분의 조경은 호주의 지질, 지형 문화, 기후, 식생을 반영하기보다는 유럽이나 아메리카에서 차용한 것이었다. 이후 호주의 경관과 식생을 사랑하고 호주에서 교육받은 열정적인 젊은 조경가들이 나타났지만 그들은 호주의 식생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우리의 접근 방식은 생태계를 복제하기보다는 그것을 재해석하여 추상적으로 묘사하거나 조형적, 예술적으로 승화하여 방문자에게 호주의 경관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다. … 우리는 방문자들이 이 정원을 통해 우리 대륙으로 은유적 여행을 떠나는 듯한 경험을 하도록 스토리를 구상했다”는 답변을 남겼다.(34쪽)
1966년 호주조경학회가 설립되었다고 한다. 한국조경학회가 1972년에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호주 조경가들의 고민이나 궤적이 먼 나라의 일로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얼마 전 한 젊은 조경가가 과연 한국 조경의 특색은 무엇인가(혹은 정체성이 있는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성에 대한 질문이 좋은 작업을 생산해내는 데 의미 있는 접근인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독창성이나 정체성(혹은 나만의 경쟁력)을 고민하면서 자신을 키워갈 수밖에 없는 디자이너의 숙명에 공감하기도 했다.
“TCL의 작업이 유니크하다고 생각하는가? TCL의 작업은 호주 고유의 문화나 기후에서 비롯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TCL의 디렉터들은 “전 세계의 조경가들이 서로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이유는 각각이 고유한 성장 배경, 교육, 관심,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 각 사이트마다 다른 특징이 있고 우리는 그저 그 땅의 맥락과 문화, 기후에 맞춰 디자인할 뿐이다. … 호주 조경의 스타일이 무엇이라고 단정 짓기는 불가능한 것 같다. 그저 호주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그 지역의 특성에 맞춰 디자인하고 호주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사용할 뿐이다. 아시아, 유럽이나 아메리카와 비교해 특별한 접근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나라의 조경가와 마찬가지로 사이트의 맥락을 이해하고 접근할 뿐”이라고 답했다.(114쪽)
세 번째 작가 특집호를 마무리하고 보니, 호주 조경가도 호주의 경관도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여러 독자에게도 동시대 조경가들의 고민을 공유하는,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지면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여 이번 특집을 위해 헌신적으로 또 열정적으로 뛰어준 호주 리포터 이홍인과 TCL의 마케팅 및 홍보 담당자 리키 레이 리카르도(Ricky Ray Ricardo)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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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건강한 인조 잔디 ‘푸르니’
안전 사고를 방지할 수 있으며 유지·관리 용이
스포츠 바닥재를 연구·개발해온 코오롱글로텍이 친환경 놀이터 바닥재인 인조 잔디 ‘푸르니’를 출시했다. 천연 잔디와 유사한 형태로 제작된 푸르니는 충격 흡수 효과가 좋아 아이들의 부상을 방지할 수 있으며, 모래나 고무칩 포장보다 유지·관리가 쉽다. 기생충이나 유충에 감염될 염려도 없다. 또한 친환경 인증(환경표지인증)을 받고, 완구재질 유해원소 기준과 인조잔디 KS인증 유해성 기준을 만족시킨 인체에 무해한 제품이다. 셀러리색celery(14-0264), 호박색amber(12-0764), 진홍색scarlet(16-1441), 짙은 청색cerulean(14-4810), 자두색plum(18-3218) 등 다섯 가지 색상의 제품을 만들어 바닥에 좀 더 다양한 패턴을 구현할 수 있게 했다.
TEL. 02-3677-5916 WEB. www.kolonturf.com
- / 코오롱글로텍 / 2018년04월 / 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