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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 그림만 그리기 1
    설계의 정의 설계의 목적은 그림을 그리는 데 있지 않다. 설계design는 “특정한 대상의 형태와 기능을 결정하는 행위다.” 이때 특정한 대상은 반드시 건물이나 정원 같은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옷도, 가구도, 일상용품도 설계의 대상이며, 요즈음에는 심지어 감정이나 행위도 설계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설계를 할 때 우리는 대상의 형태와 기능을 결정하기 위해 다양한 요소들을 생각해야 한다. 크기, 색, 질감, 위치와 같은 물리적 성질들뿐만 아니라 대상의 목적, 의미, 만드는 과정, 심지어 변화까지도 디자이너가 고려해야 할 설계의 요소들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는 글이나 소리로 기술된 계획을 설계라고 하지 않는다. 설계 과정상의 모든 생각과 결정들은 그림을 통해서 구현된다. 설계의 매체는 결국 그림이다. 설계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설계 행위는 기능과 형태의 구체적인 그림을 만듦으로서 이루어진다는 전제가 붙어있다. 다시 온전한 정의를 내리자면 설계는 “특정한 대상을 만들기 전에 구체적인 그림을 통해 그 형태와 기능을 결정하는 행위다.”1 이렇게 본다면 설계의 목적은 특정한 대상의 형태와 기능을 구현하는 데 있지만, 모든 수식어와 관계사들을 제거하고 나면 설계는 본질적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된다. 두 가지 그림 그동안의 설계 경험을 떠올려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만 그리는 데 쏟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실제의 공간을 직접 대면할 때라고는 고작 대상지 답사를 간다든가, 현장 실습 시간에 먼발치에서 콘크리트가 부어지는 모습을 바라본다든가, 모종삽으로 꽃포기들을 몇 번 심어본 기억밖에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졸업을 하고 회사에 취직하더라도 설계의 경험은 그림이라는 매체 바깥으로 나가기가 힘들다. 정원을 전문적으로 다루거나 시공을 겸하는 회사가 아니라면, 업무상으로도, 계약상으로도 설계의 모든 최종 결과물은 공간이 아닌 그림이 된다. 누군가는 공간을 만들면서 그림만 그려야 하는 설계의 현실에 괴리감을 느낄지 몰라도 이는 전혀 비정상적인 일이아니다. 근대적인 의미의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생기면서 공간을 창조하는 작업도 분업화된다.2 이제 설계가의 업무는 나무를 심고 석재 포장을 까는 일이 아니라, 어디에 나무를 심고 어떠한 모양으로 석재 포장을 깔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되었다. 오늘날의 설계가는 구상에서부터 제작까지의 전 과정을 수행했던 중세의 대석공Master Mason이나 조선시대의 대목장과는 다르다. 설계가가 다루는 매체는 그림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림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다. 예술가도 설계가도 모두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이 중 설계가만이 전문적인 기술자로 인정받는 이유는 설계가의 그림이 작가의 개인적인 표현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전문적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기술적 매체이기 때문이다(그림1, 2).3 우리는 이를 도면이라고 부른다. 도면은 정확하게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 전문적인 기술자로서 설계가는 이 규칙들을 숙지하고 지켜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건축학과와 조경학과 학생들은 저학년 때 도학과 제도라는 수업을 들어야 하고 평생 이때 배운 언어를 반복해서 구사한다. 그런데 공학도들 역시 제도 수업을 통해 동일한 도학의 원칙을 배우며 그들의 실습 과목 역시 설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는 설계가가 따라야 할 그림의 규칙이 예술가들이 익히는 표현기법보다는 공학자들이 요구하는 정보의 체계에 가깝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공학자의 도면과는 달리 디자이너는 기술적 정보의 전달을 넘어 대상의 미적인 아름다움과 작가가 부여하고자 하는 의미까지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빠지는 함정이 있다. 바로 설계의 매체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설계의 그림은 기본적으로 정보로서의 가치를 지니면서 예술적인 표현을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의 그림은 이도 저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면의 형식을 취하지만 전달하는 정보는 오류 투성이고 그렇다고 대상의 아름다움도, 본인의 생각도 드러내지 못하는 그림. 다시 말하지만 설계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다. 때문에 설계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잘못된 설계를 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앞으로 두 번에 걸쳐 할 이야기는 설계 매체에 대한 이야기다. 앞에서 나누었던, 그리고 이후 계속해서 하게 될 개념, 직관, 이론, 분석, 맥락, 의미와 같은 설계의 방법과 대상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잊어두자. 설계의 매체에 대한 이야기는 곧 설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면의 논리 가장 기본적인, 그러나 의외로 그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도면을 구성하는 그림들은 무엇인가? 조경학과 2학년 정도가 되면 누구나 이 질문에 쉽게 답을 한다.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 이 셋이 가장 기본적인 도면의 형식이다(그림3, 4, 5). 그런데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현실의 공간도, 설계가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공간도 삼차원이다. 그런데 왜 도면의 기본은 삼차원적 형태를 보여주는 그림이 아니라 이차원적정보만을 보여주는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일까? 물론 이차원적인 그림들이 더 그리기 쉽겠지만, 고도로 복잡한 공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교량도, 마천루도, 심지어 우주선의 설계 역시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로 그려진 이유가 단순히 설계가들이 그리기 쉬워서였다면 수긍하기가 힘들다. 고대 그리스어로 인위적인 것은 노모스Nomos라고 부른다. 노모스는 인간의 정신 문화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노모스의 반대말인 피지스Physis는 인간 문명과 대립되는 자연을 뜻한다. 문명이 발생한 이래로 인간은 자연 상태의 피지스를 노모스의 세계로 편입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설계는 단순한 자연의 변형을 넘어서 건축물과 같이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노모스의 공간을 창조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이를 위해 인간은 기하학이라는 사고 체계를 발명했다. 모든 문명을 막론하고 기하학은 건설, 치수, 천문, 경작 등 공간을 다루기 위한 모든 분야의 기반이 되는 지식이었다. 그래서 설계를 지배하는 사고의 체계, 그리고 설계 매체인 도면의 특수한 형식을 이해하려면 기하학의 사고를 이해해야 한다. 김영민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함께 공부하였고 이후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SWAGroup에서 6년간 다양한 조경 설계와 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USC 건축대학원의 교수진으로 강의를 하였다. 동시대 조경과 인접 분야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으며, 설계와이론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역서로 『랜드스케이프어바니즘』이 있으며, 『용산공원』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 김영민[email protected]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 2014년06월 / 314
  • [조경가의 서재] 책은 빨갛다 사랑도 빨갛다 아니 처연하다
    개양귀비 꽃잎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아 본 적이 있다. 한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붉은 빛은 그 강렬한 덧없음으로 인해 비현실로 각인된다. 그에 비해 동백꽃은 붉은 눈물방울처럼 툭 떨어져버리는 처연함에 속수무책이다. “빨간색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한계가 없고 특징적인 따뜻한 색이다. 그것은 생기에 차 있고 활동적이며 동요하는 색으로서 내적으로 작용하지만, 사방으로 자기 힘을 소모하는 노란색이 지닌 경솔한 성격은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빨강은 모든 에너지와 강렬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목적을 의식한 무한한 힘을 강력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거의 외부로 향하지 않고 주로 자기 내부에서 분출하고 작열하는 빨강은 소위 남성적으로 성숙한 색이다.”1 칸딘스키가 ‘남성적’이라고 얘기했던 속성은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의 영화 ‘하이힐’2을 보면 단순히 남성적인 것보다는 ‘여성 안에 갖고 있는 남성적인’ 빛깔로 욕망과 슬픔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색이 어느 정도 이면을 가지고 있지만,특히 빨강은 그 강렬함으로 인해 그 안에 숨겨진 슬픔과 부서지기 쉬운 감성을 간과하게 된다. 강렬함과 다치기 쉬운 감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빛깔. 그런 면에서 개양귀비 꽃잎은 빨강이 가지고 있는 빛깔의 본성을 가장 적절한 물성으로 보여준다. “나는 여기에서 당신들의 눈에 말을 걸고 있다. 이것이 나의 신중함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동시에 나는 공중에서 당신의 시선을 통해 날아오른다. 이것이 나의 가벼움이다.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못한다. 나는 숨기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섬세함은 나약함이나 무기력함이 아니라 단호함과 집념을 통해 실현된다. 나는 나 자신을 밖으로 드러낸다. 나는 다른 색깔이나 그림자, 붐빔 혹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를 기다리는 여백을 나의 의기양양한 불꽃으로 채우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내가 칠해진 곳에서는 눈이 반짝이고, 열정이 타오르고, 새들이 날아오르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나를 보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를 보라, 본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다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다. 나는 사방에 있다. 삶은 내게서 시작되고 모든 것은 내게로 돌아온다. 나를 믿어라!”3 오만하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 나오는 ‘빨강’의 얘기다. 파묵의 빨강은 말 그대로 불꽃이다. 그래서 그것은 살아 있음 자체다. 그러고 보니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불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지만 영원하고 싶은 그러나 영원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술탄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고,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바뀌고, 그들이 시대를 거슬러서도 지탱하고자 했던 양식이 바뀌는, 이전의 모든 것들이 소멸되어 가는 얘기. 그러니까 빨강은 소멸의 시간을 얘기하는 유일한 빛깔이다. 이수학은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이원조경에서 4년 동안일했다. 프랑스 라빌레뜨 건축학교와 고등사회과학대학원이 공동 개설한 ‘정원·경관·지역’ 데으아(D.E.A.) 학위를 받았고, 현재 아뜰리에나무를 꾸리고 있다.
    • 이수학 / 아뜰리에나무 소장 / 2014년06월 / 314
  • [그들이 설계하는 법] 디자인 검산법, 경관 모형 실험
    1 조경은 글자 그대로 경관을 만드는 행위다. 실제의 경관이 장소를 구성하는 다양한 물리적구성 요소 간의 상호 작용에 의해 그 장소만의 공감각적 시스템을 형성하는 것처럼, 경관을 디자인하는 것 역시 대상지라는 물리적 바탕과 그 장소를 채우게 될 새로운 물리적 구성 요소의 조합을 통해 구현된다. 설계자만의 깊이 있는 개념과 태도도, 남다른 눈으로 해석한 대상지의 의미와 감흥도, 경관적 컬티바landscape cultivar로서 새로이 장소를 작동시키기 위한 창의적 전략도 물리적인 디자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모든 과정이 그 장소에 가장 적합하고 합리적이고 의미 있는 물리적 디자인을 위한 과정인 셈이다. 결과물로 디자인된 물리적 요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경관적 감흥이 미학적 가치를 갖고 이용자들로부터 사랑받을 때, 그러한 과정도 의미를 얻게 된다. 혹자의 말처럼 우리가 디자인하는 물리적 경관은 일단 예쁘고 봐야 한다. 그래야 할 말이 있는 것이다. 2 무언가를 실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검증이 필요하다. 경험 많은 작가일수록 보다 안정적인 결과물을 담보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은 그만의 노하우가 된다. 하지만 흔히 말하듯 조경은 잡학이다. 가장 통합적이고 복합적인 디자인 단위라 할 수 있는 경관을 다루다 보니 비슷한 디자인 분야 중에서도 고려해야 할 것이 더욱 많고, 그러한 요소들 간의 모든 조합을 경험하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수많은 현장 경험을 수십 년 해온 대가가 아니라면 디자인과 실제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충실하게 디자인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머리가 아니라 눈과 손을 통해 이루어질 때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이 때 모형model을 통한 스터디는 가장 손쉽지만 가장 효과적인 검증 도구가 된다. 3 나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디자인과 실제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모형 스터디 작업을 시도하고자 노력한다. 단순히 최종 디자인을 재현하는 프레젠테이션 도구로서의 활용을 넘어, 대상지의 3차원적 현황을 보다 쉽게 이해하는 분석 도구로서, 개념적 전략이 대상지에 적용되었을 때 발생하는 현상을 관찰하여 그로부터 대상지만의 시스템을 도출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서, 계획안의 형태, 스케일, 공간감 등을 빠르게 검증하고 발전시키는 디자인 도구로서 모형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실험해 본다. 뿐만아니라 디지털 모형의 활용은 복잡한 구조물의 기초에서부터 마감까지 실제 시공의 전 과정을 가상적으로선행해 봄으로써 시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순서상의 오류를 파악하고 시공 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효과적인 검증 도구가 되기도 한다. 4 모형을 통해 디자인 스터디를 하는 경우 나에게는 다섯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실제로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직접 모형을 만들도록 한다. 물론 단순히 대상지 지형을 재현하는 모형이나 전체적인 베이스를 만들거나 하는 것은 누가 해도 상관이 없겠지만, 디자인 스터디 모형의 경우에는 제작 과정 자체가 디자인의 과정이 되므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디자이너가 직접 깨닫고 느끼고 수정하면서 디자인을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모형 제작이 두세 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한다. 아주 디테일한 스터디를 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형 제작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효율적인 스터디가 가능하다. 셋째, 디테일한 설계를 제외하고는 디지털 모형보다 물리적 모형physical model을 만들도록 한다. 화면의 한계 속에서 벗어나야 하며 손을 통해 디자인을 느끼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넷째, 재료 선정 시 가급적이면 모형용 소재가 아니라 스케일과 재질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창의적 소재를 찾도록 한다. 다섯째, 쉽게 분해되거나 변경이 용이하도록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지속적인 스터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5 ‘Gubei Pedestrian Promenade Central Folly’(2009). 대부분의 프로젝트에서 디지털과 물리적 모형이 병행되는 경우가 많다. 센트럴 폴리는 상하이의 대규모 주거 단지 내 보행자 가로인 구베이 골드 스트리트Gubei Gold Street의 중앙 광장에 설치된 카페, 매점, 꽃집, 관리실 등으로 구성된 소규모 편의시설이다. 폴리 디자인의 거의 모든 과정은 디지털로이루어졌다. 기본구상 단계에서부터 디자인은 라이노 3D를 이용하여 완성되었고, 프로그램으로부터 추출된 평면, 단면, 입면을 베이스로 모든 캐드 도면이 작성되었다. 유일하게 디지털로 진행되지 않은 것은 바로 디자인의 검증 단계였다. 디지털 모형은 정교함에서는 뛰어나지만 유연하지 못하고, 모니터의 한계 또는 가상공간의 왜곡된 화각 탓에 대상을 통합적으로 관찰하고 인지하는 데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 마우스의 반복된 클릭과 옵셋offset이나 카피copy 같은 명령어 없이 손끝으로 느끼면서 하나하나 완성되는 과정의 정교함은 디지털 세계의 오차를 검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 것이다. 김현민은 1975년생으로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조경가협회(ASLA)에서 수여하는 우수졸업자상을 받았으며, 미국의 SWA Group에서 Shanghai Gubei Gold Street Plan, Symphony Park Competition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기술사사무소 렛, 비오이엔씨에서 계획, 설계 및 정원 시공에 이르는 폭 넓은 실무를 경험하였고, 국내 여러 대학에서 조경 설계를 강의하였다.
  • [조경의 경계를 넘어, 조경 속으로] 코랄리 윈 갭 필러 설립자
    갭 필러Gap Filler는 뉴질랜드 캔터베리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파괴된 도시를 시민의 손으로 재건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시민 단체다. 지진으로 생긴 수많은 공터들이 영구적으로 개발되기 전까지 무작정 비워두는 것이 아니라, 공터를 임시적으로 활성화하고 커뮤니티의 요구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갭 필러의 목표다. 2010년 9월 4일에 전 도시를 뒤흔든 첫 번째 지진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이듬해 2월 22일에 또 한 번의 파괴가 이 지역을 충격에 빠뜨리면서 갭 필러의 역할과 임무는 빠르게 늘어났다. 설립자 코랄리 윈은 호주 애들레이드Adelaide 출신으로 원래 로스쿨을 다녔다. 그러나 연극과 영화,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어 법학을 그만두고 뉴질랜드 캔터베리 대학교의 문학부로 교환 프로그램을 갔다. 당초 반년을 염두에 둔 계획이었지만, 크라이스트처치의 매력에 빠진 그녀는 호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지진 이전에는 미술관의 파트타임 매니저로, 그 후 아트센터에서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관람객 프로그램을 짜기도 하고, 웹사이트 관리, 마케팅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았다고 한다. 각종 페스티벌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기도 하고, 무료 연극단Free Theatre Company에서 실험적 연극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극단에서는 거의 보수를 받지 못했고, 가끔 급여가 지급되면 시간당 200원꼴이었다고 한다. 생활고와 타향 생활에 지쳐 방황하고 있던 코랄리 윈에게 지진은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크라이스트처치 곳곳에서 수천 채의 건물이 붕괴되었는데, 그녀의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건물이 무너져 벽돌더미로 변하기 직전에 그녀는 가까스로 뒷문을 통해 빠져 나왔다고 한다. 집 뒷마당에 천막을 치고 바비큐 그릴로 음식을 만들며 생활해야 했고, 가졌던 모든 물건을 잃었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한다. “왠지 모르게 자유스러워진 느낌이었어요. 떠난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때로는 우리의 물건들이 오히려 우리 삶을 지배하죠. 차 안에 있는 것이 내게 필요한 전부라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나니, 사실 갑자기 신나는 기분이었죠.” 그녀는 목숨은 건졌지만, 첫 번째 지진 후 아트센터에서 해고되었다. 출장 가는 남자친구를 따라간 웰링턴의 거리에서 “I Love Christchurch” 포스터를 보고선참을 수 없어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갭 필러의 아이디어는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솟아났다. 실직 후 한 달 반 만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모든 것이 부정적이었던 상황에서 갭 필러는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단 하나의 기회였다. 함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초기 멤버인 라이언 레이놀즈Ryan Reynolds나 앤드류 저스트Andrew Just와 달리 갭 필러에서 코랄리 윈이 항상 중심적인 역할을 맡은 이유는, 다른 정규직 일을 하고 있던 두 사람과 달리 오직 갭 필러에만 매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갭 필러 설립 후 약 1년간 그녀는 무보수로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 거의 매일 일했다. 2011년 8월, 갭 필러는 드디어 크라이스트처치 시청으로부터5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현재 갭 필러는 6명의 유급 직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갭 필러의 중요한 역할은 버려진 도시 공간을 사용하는 데 갖가지 걸림돌을 제거하는 일이다. 법적인 난관과 책임 보험 등 시민들에게 생소한 어려운 절차들을 해결해 줌으로써 아이디어를 샘솟게 하고 현실화되게 돕는다. 갭 필러의 프로젝트가 주장하는 것은, 굳이 큰 예산의 공공 사업이 아니더라도 작은 시민 활동을 통해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상처가 치유되고 동시에 도시의 성장 방향이 제시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작은 프로젝트라고 모두 쉽게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실망스럽기도 하고 기대했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코랄리 윈이 말하는 바는,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생각, 짐작, 대화만으로는 어떤 것이 성공하고 어떤 것이 관심을 끌지 알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다. 길을 아는 것과 실제로 걸어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러기에 실패한 프로젝트 또한 나름대로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갭 필러가 효과적인 것은, 이러한 실패가 비교적 적은 자본과 시간 투자로 진행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시행되는 커다란 시행착오와 달리 재빨리 실패의 교훈을 흡수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공공 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갭 필러는 일종의 길잡이 프로젝트로서의 성격도 가진다. 최근 조경 계획과 설계에서 대형 자연 재해와 각종 사회적 재난에 대비한 효과적인 대응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예방도 중요하지만, 많은 경우 재난은 제도적 준비를 무색하게 하는 압도적인 규모로 닥쳐온다. 그중 하나가 지진이다. 한반도는 그간 지진 안전지대로 인식되어 왔지만 상식을 뒤엎는 각종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뉴질랜드 남섬의 중심 도시로서, 관광지일 뿐만 아니라 지역 산업과 문화의 구심점이 되어 왔다. 6개월 간격으로 일어난 두 차례의 지진은 도시 전체를 사실상 폐허로 만들었다. 살아남은 상당수 건물 또한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일시에 발생한 대규모의 잔해, 공터, 그리고 충격적인 기억들은 대부분의 젊은이를 떠나게 했고, 일상적 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제한된 인프라와 자본 탓에 복구와 재건은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운 좋게 일자리를 유지하고, 삶터를 지키고자 도시에 남은 이들에게도 광대한 면적의 공터와 폐허 지역은 그날의 아픈 경험을 환기시키는 상처가 되고 있다. 갭 필러는 예술, 조경, 건축적 개입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다시 웃음을 가져오고 새로운 모습의 도시에 대한 희망을 열고 있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 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해 왔다.
    • 최이규 /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뉴욕지소장 / 2014년06월 / 314
  • 여성 친화적 공원 캠프 하야리아의 새로운 이름, 부산시민공원
    새로운 공원 문화 최근 새로운 공원 문화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하다. 그런데 공원 문화가 무엇인지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 했다. 공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인지, 공원이 갖춰야할 요소인지, 공원의 분위기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공원이 어떤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공원이라 하면 초록이 흐드러진 풀밭과 나무, 이름모를 꽃과 벌, 나비, 곤충이 나풀거리고, 그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흐르고, 일상의 노곤함을 달래며 유유자적한 걸음을 옮길 수 있는 길들이 어우러진 싱그러운 자연의 공간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자연의 축복을 받은 공간, 자연을 폭탄 투하한 공간…. 그런데 그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하게 하는 건 그곳을 즐기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의 손을 부여잡고 깡충깡충 거리는 아이들, 유모차를 미는 부부, 휠체어에 의존한 장애인들, 삼삼오오 친구를 동반한 노인들, 데이트를 즐기는 청춘들, 조깅을 하는 나 홀로 운동인 등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공원을 찾는다. 공원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공원이다. 풀과 나무만 있다면 그곳은 그냥 숲이다. 자연이라는 환경에 사람의 숨결과 활동을 불어넣기에 공원은 더욱 가치 있는 공간이 되는 것 같다. 도시 공원은 더욱 그런 듯하다. 도시의 삭막함 속에서 사람들은 공원에 가면 뭔가 편안하고 싱그럽고 막힌 숨을 쉬게 해 줄 것 같은 그런 기대감이 있다. 갑갑한 숨을 토해내고 자연으로부터 위안을 얻고 삶을 치유하는 등 공원은 사람들의 욕구가 결집되고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이것이 도시민이 공원에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공원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연구자로서의 숙명이었지만 그 가치를 빛나게 한 것은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공원을 이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욕구에 불을 지핀 것이 사람 중심의 공원을 이야기한 필자와 하야리아공원포럼의 역할이었던 것 같다.1 공원에서 사람을 찾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전의 공원이 공원을 만드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들어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제공하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의 공원은 단순한 자연 공간의 개념을 넘어 사람들이 모이고 즐기고 공유하고 교류하는 활동의 장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다. 공원은 있는데 이용하기 어렵고 즐길 수 없다면 그 공간은 공원이 아니라 수목과 조형물의 전시 공간에 불과하다. 이제 사람들은 그런 공원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스스로 참여하여 즐기고 싶어 하고, 함께 만들어 가고 싶어 한다. 결국 이러한 생각들이 새로운 공원 문화를 창출하는 힘이 될 것이다. 공원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과 공원에서 얻고 싶은 다양한 요구들, 공원을 통해 느끼고 싶은 크고 작은 만족감들로부터 또 다른 문화가 시작되지 싶다. 여성과 가족을 고려한 공원의 도시·사회적 역할 공원을 보는 또 다른 시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문은 공원의 여성 친화성과 가족 친화성이다. 『부산의 꿈』과 『부산시민공원조성사업 성별영향평가』를 통해 설명한 바 있지만 이 글의 독자를 위해 간단히 소개를 하겠다.2008년 당시 여성 친화적 공원 조성은 성 평등 정책분야에서는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 2007년 서울의 ‘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 일명 ‘여행프로젝트’에 자극을 받아 공원에서도 성별의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개진되기 시작했다. 마침 부산은 2008년 ‘부산시민공원 조성사업’의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그에 대한 성별 영향을 분석하여 고려할 사항을 점검하는 성별영향분석평가 연구가 진행되었다. 공원 조성에 ‘여성·가족 친화성’이라는 변수를 넣어 생각해 보면 공원은 아주 다른 모습으로 조성될 수 있다. 공원은 여성 혹은 남성 그리고 가족이 이용하는 공동의 공간이다. 그런데 여성의 요구와 남성의 요구를 얼마나 고려하고 있을까? 또 얼마나 가족 중심일까? 엄마만 공원에 아이를 데려 가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발생하고, 이혼 가족과 한 부모 가족이 증가하는 추세에 여자아이를 데리고 혼자 공원에 온 아빠는 유아 변기가 없고 기저귀 갈이대가 없는 남자화장실에서 상당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남자아이를 데리고 혼자 온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들에게 공원은 즐거움의 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소외감을 느껴야 하는 공간일 수도 있다. 홍미영은 부산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여성가족부 성별영향분석평가센터장을 맡고 있다. 관심 분야는 정책의 성별영향분석평가, 지방재정 및 성 인지 예산 분석, 도시 정책의 여성 친화성 등이다.최근 논문으로는 “도시공원의 여성친화성 평가를 위한 탐색적 연구”,“지방정부 성 인지 예산의 도입과 발전방향에 관한 연구”가 있으며, 공저로 『부산의 꿈』이 있다.
    • 홍미영[email protected] /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선임연구위원 / 2014년06월 / 314
  • 진화하는 시민운동과 도시 공원 캠프 하야리아의 새로운 이름, 부산시민공원
    팽팽한 줄다리기였다. 미국 정부와 부산 지역 시민단체 사이에서였다. 100여 년 동안 일본과 미군이 점령했던 하야리아 미군 기지의 국내 반환을 두고서였다. 결국 한국과 미국 정부의 협상 결과 하야리아 미군 기지 철수와 이에 따른 반환이 결정됐다. 땅을 다시 빼앗아 올 때는 시민의 여론이 뜨거웠다. 공원으로 조성하자는 취지도 좋았다. 하지만 과연 되찾은 땅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후대에 어떤 역사적 의미로 남겨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못했다. 하야리아 미군 기지 반환과 공원 조성 결정, 공원 조성계획의 변화와 개장에 이르는 20년 역사는 시민사회단체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몇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미군 기지 반환 및 공원 조성 운동, 지원 특별법 제정 및 무상 반환, 공원 조성 및 운영에의 전문가 참여와거버넌스governance가 그것이다. 미군 기지 반환 운동: 1993~2004년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한 하야리아 땅 되찾기 운동이 시작이다. ‘부산 땅 하야리아 되찾기 시민 대책위’ 등이 그 주인공이다. 1993년 문민 정권 시대였지만, 여전히 미국과 주한 미군에 대한 반대라는 정치적 부담을 무릅쓴, 시대를 앞서간 판단이었다. 대책위는 하야리아 반환 원년 선포 대회, 주한 미군 항의 서한 전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반환 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 운동의 핵심은 일본과 미국에 빼앗겼던 우리 땅을 되찾자는 맥락이었다. 1997년 당시 범시민추진위원회 김희로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무상으로 사용 중인 우리 땅을 쉽사리 내놓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한국 정부가 대등한 위상에서 반환 협상을 벌여나갈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하겠다”고 천명했다. 1990년대 초반에 씨를 뿌린 하야리아 미군 기지 철수운동은 1993년 이후 본격적인 반환 및 공원 조성 운동으로 전환된다. 시대적 흐름의 변화에 따라 진보적 사회단체 중심으로 제기된 ‘미군 철수’라는 정치적 구호가 ‘우리 땅을 되찾자’는 대중적 구호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 걸음 나아가 외국 군 기지에 ‘생명과 평화의 터전으로서 공원을 조성하자’는 시민사회운동으로 바뀌었다. 그 주인공 중 한 명이 ‘하야리아 부지 시민공원추진 범시민 운동본부’ 허운영 공동운영위원장이다. 그는 1993년 민주주의민족통일 부산 연합 시절부터 미군 기지 반환 운동에 관여하기 시작해 1999년 통합 ‘미국 점유 부산 땅 되찾기 시민 대책위’를 거쳤다. 허운영은 2005년 “시민사회단체가 반환 운동에 급급해 하야리아가 가지는 상징성, 즉 상像의 정립을 적극적으로 제안하지 못했는데, 어떤 내용성을 담보할 것인지, 공원의 실질적인 내용을 둘러싼 논쟁이 앞으로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이어서 “하야리아 부대를 정치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볼 게 아니라 역사·환경·문화·생활 교육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원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표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다. 특별법 제정과 무상 반환 운동: 2004~2006년 하야리아 기지의 폐쇄 결정 이후 부산시와 시민단체는 중앙 정부에 기지의 무상 반환과 특별법 제정 촉구를 요청했다. 2004년 시민사회단체들은 ‘하야리아 부대부지를 시민 공원화하기 위한 범시민 운동본부’를 발족했다. 당시 공원추진본부에는 ‘미군 점유 부산 땅 되찾기 범시민 추진위원회’ 등 부산 지역 76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했다. 공원추진본부는 단기적으로는 국방부로부터 부지를 무상 양여받고 부지를 도시 환경과 녹지 등을 고려한 시민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후 오염 조사 및 복원을 촉구하는 지난한 싸움에 나섰다. 하야리아공원포럼과 공원 콘텐츠: 2009년 이후 문제는 기지의 반환 이후였다. 공원 조성이 결정되고 설계가 시작됐지만 관계자는 물론이고 시민과 부산시조차 미군 기지 안에 어떤 건물이 남겨져 있으며, 어떤 것을 보존해야 하는지 감조차 잡지 못했다. 부산시는 ‘세계적인 명품 공원을 만든다’는 구실 하나로 ‘국적 없는 공원 설계’, ‘토목 중심의 행정 편의주의’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부대 주변에는 ‘시민공원 주변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초고층 주거단지가 계획됐다. 이대로라면 하야리아 시민공원은 좁은 지역의 근린공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단절된 공원이 될 게 뻔했다. 부산시는 2010년 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착공을 서두르는 모습까지 보였다. 부산시는 공원 운용 방안과 프로그램은 공원을 조성한 뒤에 고민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누가, 왜, 어떻게 공원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공원 설계와 조성 과정에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병철은 1967년생으로 부산 출신이다. 서강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이후 미국 미주리 대학교 저널리즘스쿨과 미국탐사보도기자협회 연구원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부산 동의대학교에서 저널리즘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부산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도시와 환경에 대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한국기자상과 봉생문화상, 일경언론상 등 다양한 언론상을 수상했고, 저서로는 『백산의 동지들』, 『황령산온천반대보도백서』, 『부산의 상권』, 『아빠는 생태박사』,『CAR 데이터베이스로 취재하기』, 『세상을 깊게 보는 눈』 등이 있다.
  • ‘공원 도시 서면’을 꿈꾸며 캠프 하야리아의 새로운 이름, 부산시민공원
    2005년의 제안 10년 전 필자는 캠프 하야리아의 공원화 방안에 대한 발표 기회를 두 차례 가졌다. 당시 H공원(캠프 하야리아에 대한 가상의 공원) 조성은 부산의 새로운 도시 자본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규정하고, ‘서면에 있는 H공원’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H공원이 있는 서면’이라는 시각으로의 확대와 전환을 요청했다. ‘도시와 자연이 공생하는 도심urban core in harmony with nature’이라는 핵심 개념 속에서 H공원을 중심으로 주변의 자연자원, 단절된 동천 등과의 연계를 통해 백양산에서 북항까지 모두를 잇는 3가지 ‘파크웨이park way’ 개념을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그린 네트워크는 백양산에서 황령산으로 이어지는 생태적 도심 녹지 축선 상에서 끊긴 구간들을 연결하는 것으로, 백양산의 녹지를 H공원으로 끌어 오고 또 H공원의 녹지를 서면과 도심 너머의 황령산으로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블루 네트워크는 복개와 인공화를 통해 원 기능을 잃어버리고 단순한 하수 처리 공간으로 취급되고 있던 동천의 복원을 제안한 것이었다. 백양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들은 H공원을 거쳐 서면을 지나 북항에 이르게 하고, 사람들과 각종 생물들이 맘대로 다닐 수 있는 산에서 바다로의 물길을 열자는 생각이었다. 마지막 옐로우 네트워크는 H공원이 서면과 불과 700~800m 떨어져 있다는 입지 조건에 착안한 것으로, 서면로터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업 지역의 활력을 H공원과 보행으로 다양하게 연결하여 단일 활동권으로 통합하자는 제안이었다. 이러한 개념의 전개를 위해서는 ‘공원’의 고유 영역에 대한 파괴가 전제되어야 하며, 특히 조경을 넘어 도시, 건축 등 관련 분야와의 친밀한 조우를 위한 공공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H공원과 서면의 유기적인 관계 형성을 통해 지역 쇄신을 도모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공원부, 경계부, 외연부로 구분하여 제안했다. 2014년의 상황 10년 전의 논제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당시의 제안 중 공원부의 설계와 시공과 관련된 것을 제외한 대부분의 것들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부산시민공원은 온통 회색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부산시민공원이 도심 공원으로 제대로 작동하려면 공원이 주변의 회색빛 콘크리트를 뛰어넘거나 품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부산시민공원=고립된 녹색 섬’이 아니라, 주변 가로변과 블록 내 골목길들, 고가도로와 철도 시설들, 넓은 대로와 공공 시설들과 함께 공원이 호흡하며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 찾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부산시민공원이 있는 서면 일대는 광복동과 함께 부산의 지역 경제와 문화를 이끌고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도심이다. 바다와 맞닿은 광복동의 역할과 달리, 서면은 ‘내륙 도심 활력의 확산점이자 결집점’으로 역할해 왔다. 하지만 서면의 환경은 온통 인공적이고, 고개만들면 보였던 산들도 건축물 틈새로 산정만 겨우 보일뿐이다. 서면을 맑게 흐르던 동천은 코를 잡고 걸어야 하는 도시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고,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던 5개의 지류(호계천, 부전천, 전포천, 가야천, 당감천)는 모두 복개되어 현재 남은 동천은 단지 2.6킬로 미터에 불과하다. 이러한 서면의 환경 변화사는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시작되었다. 부전역을 지나 부산역으로 가는 철길과 연접했던 캠프 하야리아는 서면을 서면로터리를 중심으로 하는 남쪽과 캠프 하야리아 주변으로 하는 북쪽으로 양분시켰다. 철길과 군부대는 서면의 상업 활력을 차단했고 백양산에서 흘러내리던 녹지 흐름도 끊어버렸다. 이러한 막히고 단절된 상황 속에서 백 여 년의 세월이 지난 것이다. 결국 지역의 퇴락과 정체를 낳았고, 철도와 군부대로 단절된 서면의 북쪽은 불균형하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서면과 같은 도심은 땅이 무척 귀하고 풍요로운 곳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크고 웅장해서 풍요한 것 같아 보이면서도 그 이면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경관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취약한 곳이 도심이다. 서면 일대는 우리나라 대도시의 도심 중 그 취약성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곳 중 하나다. 좋은 도심에서 느낄 수 있는 창의적 힘과 활력이 거의 없다. 부산 시민 스스로도 서면은 그저 그런 모습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운대와 광안리에 매달리고, 낙동강에 허황된 에코델타시티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강동진은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하였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와 역사 경관에 대한 꿈을 키웠다. 현재 경성대학교도시공학과에서 자연, 문화, 역사, 경관 등을 키워드로 하는 ‘도시 재생작업’을 통해, 학생들이 도시재창조에 대한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지도하고 있다. 특히 버려지거나 황폐해 가는 도시 유산들(산업유산, 근대화유산, 역사마을 등)을 지키고 힘을 싣기 위한 방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더불어 캠프 하야리아 부지의 시민공원화를 위한전문가 그룹인 ‘하야리아공원포럼’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강동진[email protected] / 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 2014년06월 / 314
  • 부산시민공원 설계 이슈의 변천 캠프 하야리아의 새로운 이름, 부산시민공원
    도심 공원을 비롯한 도시 공공 공간은 시민 가치의 표상이고, 그 설계안은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욕망과 가치의 역학이 작용한 결과이다. 따라서 공공공간의 설계 작업은 최종적인 계획안의 내용보다 그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가치가 소통되고 합의되는 과정을 어떻게 반영하였느냐에 의해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 과정을 통하여 시민들은 타자의 상이한 가치와 기준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그에 대한 담론 참여와 다양성 공유를 통하여 공공 공간을 공동체 공간으로 수용하게 된다. 이 글의 목적은 부산시민공원 설계 이슈의 변천을 살펴봄으로써 공원 조성에 있어서 설계의 역할과 구현된 공공 공간으로서의 위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설계 이전 상황: 2005년 5월 이전 부산시민공원은 조성 그 자체가 커다란 정치적 과제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원만한 합의를 통하여 부지를 돌려받고, 마치 당연한 듯 이곳에 공원이 들어섰지만, 그 과정은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부터 미군 부대로 이어진 약 100여 년 동안 시민들에게 금단의 땅이었던 이곳의 주권을 회복하는 일이었고, 도심의 요지에 남아있는 군부대 이전적지를 다른 용도가 아닌 공원으로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시민운동의 결과였다. 그 과정에서는 부지 반환과 환경 치유 협상과 같이 국내 최초의 선례를 남기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해야 했고, 개발 비용 부담을 이유로 공원 외 다른 용도로 개발하려는 정부와 개발업자들과의 정치경제적 문제를 넘어서야 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시민들이 부지반환을 제기한 1980년대 후반부터 개장까지는 25년 이상의 긴 기간이 소요되었다. 기본 구상안 작성: 2005년 5월~2006년 12월 초기 부산시민공원 조성은 정치 경제적 이슈들이 장악하였다. 설계는 부지 반환과 무상 양여 주장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으로, 2005년 5월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을 발주하며 시작되었다. 당시로서는 부지가 반환되기 전이라 대상지에 대한 조사가 불가했기에 백지에 개념을 구상하는 수준이었다. 공원 설계를 마치토목 공사 수준으로 성급하게 발주하여 선정된 설계사는 만족할만한 계획안을 작성하지 못했고, 몇 달 후 용역 안에서 ‘시민공원 국제공모전’이라는 또 다른 형식을 통하여 계획안을 공모하는 이상한 설계 과정이 시작되었다. 국내 6개 업체가 지원한 첫 공모전에서는 당선작을 선정하지 못하여 설계 용역이 중지되었고, 이듬해 다시 국제 제안공모전을 개최하여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를 선정하고, 소위 ‘세계적인 명품 공원’ 설계를 의뢰하게 되었다. 결국 100여년 외세가 점유했던 땅의 설계 역시 외국인에게 의존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문제는 누가 설계했느냐가 아니라 선정된 설계안의 내용이었다. 대지에 대한 아무런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시민과의 소통이 부재했던 2006년 11월, 설계자는 대상지에 대한 4개(구획(안), 주머니(안), 펼침/접힘(안), 물결(안))의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을 제시하였고,위원회는 이 중 ‘물결(안)’이라고 불리는 구상안을 설계안으로 확정한다. 당시 회의록엔 결정 사유를 ‘한국적인 이미지가 부여된 물결(안)에 대다수가 동감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사항은 그 회의에서 기본구상안의 후속 조치로 공원 프로그램을 선정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즉 이곳에 무슨 공원을 어떻게 만들지 보다 세계적인 조경가가 그린 멋진 조감도가 먼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는 그 기본구상안을 원래의 한국 용역사에게 그대로 실시설계로 옮길 것을 지시하여, 2008년 2월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을 완료한다.그때가 부지가 개방되기 2년 전이었다. 김승남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환경대학원을 졸업한 뒤, 독일 카이저스라우터른 대학에서 건축 및 도시설계, 조경을 전공했다. 영화 연출, 시나리오 작가, 프로젝트 매니저 등 영화, 건축, 도시 분야의 다양한 경력을 거쳐 현재 일신설계 종합건축사사무소 사장이자 동아대학교건축학과 겸임 교수이다. 이밖에도 광안리사람들(공동대표), 지역문화지 『안녕광안리』, 부산도시학교, 하야리아공원포럼, 부산공공건축포럼,도시건축포럼B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부산신항배후 국제산업물류도시 도시개념공모와 행정복합도시 중앙오픈스페이스 국제현상공모 등에서 당선된 바 있으며, 부산시 경제기반형 도시재생계획, 산복도로 르네상스 마스터플랜 등 다양한 조경 및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수행하고있다.
    • 김승남[email protected] / 일신설계 종합건축사사무소 사장 / 2014년06월 / 314
  • 부산시민공원 캠프 하야리아의 새로운 이름, 부산시민공원
    다시 시민의 품으로 시민공원이 위치한 범전동 일대는 선사시대부터 주거가 이루어질 정도로 농경지가 발달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농토로 이용하던 지역민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1930년, 당시 부산의 외곽 지역이었던 이곳에 일제에 의해 들어선 경마장은 삶의 터전을 앗아 갔고, 중일전쟁 발발과 함께 병참기지화 되어 군사 시설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캠프 하야리아는 한국전쟁 종전후 설치되어 물자와 장병의 이동을 관리하는 대한민국 최대 군수 기지 역할을 하였으며, 2006년 폐쇄되기까지 50여 년간 인근 지역의 도시개발 및 생활권 기능형성에 있어서 저해 요소로 작용했다. 더욱이 도시가 확장되자 도시 외곽에 자리했던 부지가 도심에 놓이게 되면서 철거 논의를 비롯한 다각적인 검토가 이루어졌다. 특히 슬럼화된 군 기지 주변 지역의 생활권 기능 회복과 더불어 센트럴 파크와 하이드 파크 등과 같이 도심 오픈스페이스 확보를 통한 도시의 질적인 발전을 위해 공원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결국 2004년 근린공원으로 최초 결정되었고(300,000m2), 주변 낙후 지역의 재정비 촉진 계획과 맞물려 부지 정형화 및 조정을 거쳐 현재의 시민공원 부지로 결정(470,748m2),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기본 구상 시민공원에 대한 기본 및 실시설계는 유신으로 결정되었으나, 시민공원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감안, 전문가 자문 및 공청회 등을 거쳐 인지도가 있는 해외사 중 참여 의사가 있는 설계사무소를 선정하여 지명 현상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의 ‘얼루비움ALLUVIUM’ 안이 선정되었다. 해외사의 기본구상(안)과 더불어 민관협치기구인 라운드테이블round table이 구성되어 시의원, 언론인, 시민운동가, 조경 전문가, 장애인 등 30여 명의 전문위원을 통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공원 조성에 반영하였다. 얼루비움은 부산의 지리적 위치에서 시작한다. 비옥한 낙동강 하구의 삼각주 충적지에 위치하여 번성한 땅의 역사를 되새겼으며, 얼루비움이 갖는 의미와 가능성을 통해 3개의 공간 주제와 5개의 활동 주제를 설정하여 새로운 의미의 공원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3개의 공간 주제: 흐름, 쌓임, 연결 충적지는 하천의 흐름flow과 토양의 퇴적accumulation으로 형성되며, 강과 바다가 연결connectivity된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하야리아 미군 부대가 주둔해온 지난 한 세기 동안의 대상지는 적체된 공간이었다. 얼루비움은 막혀있던 도시의 흐름을 뚫어주고 갇혀있던 하천의 흐름을 되살리며 단절된 녹지의 흐름을 회복할 것이다.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동선 체계는 부지 주변에 위치한 공원, 문화 시설, 상업 시설, 도시 기반 시설 간의 원활한 흐름과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부지 내에 복개되어 있던 부전천과 전포천은 생태적으로 복원되어맑은 물로 다시 흐르게 될 것이며 잘려나갔던 화지산과 황령산의 녹지축은 공원 내를 가로지르는 넓은 폭의 숲길들에 의해 다시 회복될 것이다. 대상지에는 부산 시민들이 잊지 말아야 할 아픔과 질곡의 역사가 쌓여 있다. 얼루비움은 이러한 과거의 역사 위에 새로운 미래의 기억을 쌓아갈 것이다. 시민 공원은 새로운 기운이 흘러들어와 기억과 문화, 즐거움과 자연, 그리고 시민의 참여가 쌓이는 모든 사람에게 열린 공간이 될 것이다. 이러한 쌓임의 의미는 지형의 쌓음이라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시작된다. 미세한 지형의 쌓음을 통한 조형적인 대지 조작은 거대한 공원 부지를섬세한 휴먼스케일의 복합 공간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공원 안팎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위계와 규모의 동선체계는 공원 구석구석을 감아 돌며 모든 이에게 최적의 접근성을 제공한다. 공원 내부를 도는 순환 동선은 단차 없이 완경사로 조성되어 모든 이들이 불편 없이 공원 곳곳을 감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5개의 활동 주제: 기억, 문화, 즐거움, 자연, 참여부산시민공원은 기억, 문화, 즐거움, 자연, 참여 5개의 주제 숲길과 그 사이사이 공원 안팎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보조 동선으로 공간을 구획하고 또 유기적으로 연계하였다. 총괄 및 조경설계 유신(유만재 전무, 김석기 이사, 정규현 과장) 기본 구상 James Corner Field Operations(James Corner, 정재윤) 토목 설계 길평(박기만 사장, 윤회철 이사, 김세훈 부장) 시공 화성산업 감리 유신, 길평 발주 부산광역시 위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시민공원로 73 (범전동) 공원 면적 470,748m2 완공 2014. 유신은 1966년 1월 설립된 이후, 꾸준히 성장하여 대표적인 엔지니어링 컨설팅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신 레저조경부는 1980년대 중반 88골프장 기본 및 실시설계와 감리를 시작으로, 보광 휘닉스파크 리조트, 강원랜드스키장 턴키, 서대전 대중골프장, 운북 복합레저단지, 하이원 스위치백 리조트, 평창동계올림픽 슬라이딩센터(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경기) 턴키 등 다양한 레저 관련 계획, 설계 업무 및 월드컵공원, 송도 국제업무단지 중앙공원, 연인산 도립공원 턴키 등 조경 계획 및 설계 분야에서 많은 실적과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James Corner Field Operations는 뉴욕에 기반을 둔 도시설계와 조경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오피스다. 대규모 도시설계 프로젝트나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사이트부터 작지만 섬세한 디테일을 요구하는 디자인까지 다양한 규모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 뉴욕시의 하이라인과 프레시 킬스, 라스베이거스의 시티 센터, 중국 칭하이 지역의 도시설계 마스터플랜, 시애틀 워터프론트의 마스터플랜, 필라델피아의 레이스 스트리트 피어, 산타모니카의 통바 파크, 런던의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 홍콩의 침사추이 워터프론트 등이 있다. 모든 설계 실천에 있어서 사람과 자연의 생태를 연구하고, 생기 넘치고 역동적인 공공 영역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유신 / 유신 +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 / 2014년06월 / 314
  • 부산시민공원의 조성 과정 캠프 하야리아의 새로운 이름, 부산시민공원
    일본군과 미군이 사용하다 100여 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온 부산시민공원의 개장식이 지난 5월 1일 열렸다. 473,000m2 부지는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인들이, 한국 전쟁 이후에는 미군이 사용하다 2010년 1월 13일 부산시에 반환됐다. 총사업비 6,679억 원의 예산으로 2011년 8월 공원 조성에 착공하여 이번에 준공한 것이다. 축구장 74개 규모의 공원에는 기억·문화·즐거움·자연·참여의 숲길 등 5개의 ‘테마 숲길’이 조성되고 2개의 하천이 복원되었다. 공원에는 150여 종 100만여 그루의 각종 나무가 식재됐다. 특히 참여의 숲 34,987m2에는 시민들이 헌수한 10억여 원상당의 나무와 초화류 등 6만여 그루가 심어졌다. 하야리아Hialeah는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북서쪽에 있는 도시 이름으로 인디언어로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이다. 하야리아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50년 9월 주한 미군 부산 기지 사령부가 주둔할 당시 초대 사령관의 고향인 베이스 하야리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주택 133동을 비롯하여 사무실, 창고, 다용도 건물 등 338동, 연면적 89,331m2의 건물이 있었으며, 향나무 1,096주 등 4,700종이 넘는 수목이 있었다. 부산시민공원의 조성은 2006년 2월 부산시가 공원 조성 설계추진계획, 주변 지역 정비개발계획, 반환공여지 인수절차 이행계획, 캠프 하야리아 부지 반환과 관련한 시 조례 제·개정 등에 관한 로드맵을 담은 ‘부산시민공원조성 종합추진계획’을 확정, 발표하면서부터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공원의 조성과 함께 주변 지역에 대해서도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공원의 조성과 주변 지역의 연계 개발을 추진하였다. 이때부터 프로젝트 코디네이터의 역할로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의 대강을 정리해 보았다. 지난 8년 동안 공원 조성과 관련하여 일어났던 일들을 종합해 보면 부지 정비 및 기반 조성, 기본계획수립 및 설계 보완, 공원 조성 사업, 시민 참여 및 관련연구, 기타 관련 계획 및 사업으로 대별된다. 부지 정비 및 기반 조성 2010년 1월 13일 부산시는 부지의 관리를 인수하였다. 그리고 인수받은 부대의 관리를 전문 업체에 위탁하고 지장물 철거 공사와 환경 오염 정화 사업, 문화재시굴 조사, 전포천 공사, 공원 설계 용역 및 주변 지역재정비촉진지구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 등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2010년 4월 24일부터 10월 31일까지는 부지를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다. 6개월 동안의 개방 기간 중에 총 13만 8천여 명의 방문객들이 부지를 찾아 1일 평균 700여명이 방문하였다. 당초 9월 말까지만 개방하기로 하였지만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1개월 연장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장물 철거 작업, 전포천 복원 공사, 환경 오염 정화 사업 등 선행 공사의 본격 시행으로 안전사고 우려 등의 문제가 제기되어 부지 개방을 종료하였다. 2010년 12월부터 지장물 철거 사업이 이루어졌다. 이 사업을 통하여 건축물 315동, 석면 247동, 지중폐관 7,850m 등이 철거되거나 제거되었다. 그리고 건설폐기물 125,973톤, 폐아스콘 32,100톤, 소각폐기물 12,507톤, 지정폐기물 569톤도 함께 처리되었다. 2011년 4월에는 환경 오염 정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보다 1년 전인 2010년 4월 부산시와 국방부는 환경 오염 정화 위ㆍ수탁 협약을 체결하였는데, 국방부는 환경 오염 정화 사업 설계용역을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조사를 통하여 유류와 중금속 등이 50,234m2 면적에 73,468m3(중복 고려 시)인 것으로 파악되었는 데, SK건설 등이 참여하고 한국환경공단이 감독하여 2012년 7월까지 진행되었다. 오염 정화 사업은 토양 경작법(유류 오염토)과 토양세척법(중금속 오염토) 등을 적용하여 시행하였다. 사업 도중 22,477m3의 추가물량이 발생하여 최종적으로 95,945m3의 오염토와 35,500m3의 지하수를 처리하였다. 한편 2011년 2월부터 11월까지는 문화재 발굴 조사가 총 119,989m2에 걸쳐 실시되었다. 이 조사를 통하여 청동기 시대 지석묘를 비롯하여 총 298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다수의 미분류 토도편이 나왔다. 조사 구역 내 확인된 주요 유구는 공원 내 역사관 및 숲길에 전시ㆍ홍보하기로 하였다. 기본계획 수립 및 설계 보완 2006년 5월 부산시민공원의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제안서 공모를 실시하였다. 미국의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이하 JCFO)와 하그리브스 어소시에이츠Hargreaves Associates, 일본의 다카노 랜드스케이프 플래닝Takano Landscape Planning 등이 응모하였으며 심사 결과 JCFO의 안이 선정되었다. JCFO는부지 반환식에 참석하는 등 자료를 수집하고 실시설계사인 유신과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며 설계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부산시와 시민단체 등은 여러 차례 공청회, 토론회, 자문회의 등을 개최하여 의견을 수렴하였다. 2007년 3월 최종적으로 제출된 기본계획안의 제목은 얼루비움Alluvium으로서 비옥한 새 기운이 흐르고 쌓이는 21세기 부산의 새로운 도시 공원 조성을 목표로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세계 도시 부산을 향한 공원, 미래를 향한 공원, 모두를 향한 공원, 문화가 있는 공원, 도심 재생을 촉진하는 공원을 담고자 하였다. 디자인적으로는 흐름과 쌓임으로 형상화되는 얼루비움의 층위구조를 통해 대규모의 공원을 조직적으로 엮어 내고자하였다. 단편적인 지역적 연차 개발phasing이 아닌 지속적인 수평적 층위 개발을 지향함으로써 부산시민공원이 지닌 장소적 특수성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부지 내의 지하 공간 및 이와 연계된 도시 기반 시설의 개발, 공원 표면의 모든 공간 구성의 바탕이 되는 조형적 정지 작업, 이용자들의 접근성을 보장해 주는 동선 체계의 구축, 향후 프로그램의 설치 및 개발의 방향을 결정하는 공간 주제의 설정 등이 얼루비움의 층위 구조를 이루었다. 이유직은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부산의 미군 기지인 하야리아의 부지를 공원화하는 작업의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거창군 창조 도시 총괄계획가로 활동하고 있다. 마을만들기와 농촌 조경에 관심을 두고 현장에서 지역 재생과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조경학적 실천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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