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스 왈드하임, 하버드 GSD
2009년 가을 학기부터 하버드 디자인대학원 조경학과에는 새로운 학과장이 임명되었다. GSD의 교수진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저명한 디자이너도 아닌, 더군다나 건축 교육을 받았으며 건축가로서 실무 경험만을 쌓은 찰스 왈드하임의 조경학과 학과장 임명은 누군가는 혹시 기대는 했을 수 있으나 대부분 예상을 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AA스쿨에서 모센 모스타파비를 디자인스쿨 전체 학장으로 위촉한데 이어, 조경 실무 경험이 전무한 젊은 이론가인 찰스 왈드하임을 조경학과 학과장으로 모시고 왔다는 사실은 지난 50여년간 전 세계의 건축 관련 학교들 위에 군림해 온 하버드 GSD에 본격적인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시사했다.
찰스 왈드하임은 임명과 함께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기존의 교수진을 배제하고 동시에 아니타 베리즈베이타, 피에르 베랑저, 크리스 리드 세 명의 교수를 뽑았다. 유펜 조경학과의 가장 중요한 교수진 중 한 명이었던 아니타를 데리고 온 것은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제대로 지어진 프로젝트가 몇 개 있지도 않은 크리스 리드, 그리고 역시 아직은 두드러진 학문적 업적이 없는 피에르 베랑저를 데리고 왔다는 것도 일종의 파격이었다. 여전히 어느 정도 제임스 코너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이들 교수진들의 기용은 당연히 무수히 많은 소문을 불러 일으켰다. 혹자는 GSD와 유펜 조경학과의 연대를 점쳤으며, 혹자는 이 개혁을 그동안 최고라고 자부하던 GSD의 오만함에 대한 유펜의 반격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아직 어떠한 변화가 구체적으로 나타날지는 가시화가 되지는 않았으나 단순한 학교 이상의 학교인 GSD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GSD의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 서있기 때문에 현재 찰스 왈드하임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GSD의 방향보다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때문에 찰스 왈드하임이라는 인물은 한 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대상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지향하는 조경가들의 그룹이 있다기 보다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찰스 왈드하임이라는 인물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따라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찰스 왈드하임이라는 인물을 거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학자로서의 치열함이 엿보이는 그의 건축 관련 연구에 비해 선언문에 불과한 듯한 인상을 주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관련 저술들. 그리고 그가 건축에서 조경으로 관심을 바꾸면서 등장하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배경. 미국의 도시를 말하면서 유럽의 사례를 인용하는 다소 모순적인 태도들. 찰스 왈드하임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매혹적이기는 하나 결코 그 전체가 명확히 보이지 않는, 특정한 곳에 닻을 내리지 않고 부유하는 수수께끼였다. 따라서 <환경과조경>과의 논의를 거쳐 찰스 왈드하임과의 인터뷰를 기획했고, 두 달에 걸친 연락 끝에 힘들게 찰스 왈드하임을 인터뷰할 수가 있었다. 이번 인터뷰는 크게 두 가지 의도로 기획되었다. 세계 조경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학교인 하버드 GSD의 새로운 방향을 예상하는 것이 하나이며, 여전히 국내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직접 이론의 주창자에게서 듣고자 함이 그 둘째였다.
대화는 문자와는 다른 종류의 정보를 선사한다. 예상되는 비판에 대비하고 사고의 허점을 감추기 위해 방어적인 자세로 쓰여지는 논문이나 저술에 비해서 대화는 자유롭다. 문자에 비해 사고의 치열함이나 논리적인 견고성은 부족하나 우리는 대화를 통해서 그 어느 저술에서도 알 수 없었던 생각의 근원을 보기도 한다. 또 대화를 통해서 드러나는 생각의 단편들은 때론 극히 개인적인 사례에서 출발을 할 수도 있으며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한 시간이 채 못되는 제한된 시간에서 행해진 이 대화는 일부 유학파들의 허세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던 하버드 GSD라는 학교의 본질, 그리고 지금까지 저술들이나 작품에서는 보지 못했던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이면이나 핵심을 부분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GSD 조경학과의 새로운 방향
김영민 _ 우선 인터뷰에 응해주신 것에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학과장이 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왈드하임 _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김영민 _ 이 인터뷰는 한국의 조경 전문지인 <환경과조경>의 요청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환경과조경>이 GSD의 학과장을 인터뷰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약간 특별한데요. 많은 사람들이 교수님의 학과장 임명과 함께 GSD 조경학과의 근본적인 변화, 혹은 적어도 상당한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GSD의 새로운 방향이 이번 인터뷰의 중요한 질문사항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과 관련된 교수님의 명성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조경뿐 아니라 건축이나 도시 분야에서도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인터뷰에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에 관련된 질문 역시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첫 질문은 GSD 조경학과의 새로운 방향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다른 학과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GSD 조경학과에서는 학과장이 과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조경가들이 교수진으로 포진하고 있던 조지 하그리브스 재임 당시 GSD는 참신하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디자인에 상당한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지난 학과장인 니얼 커크우드는 기술적인 측면과 생태적인 측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요. 이제 사람들은 학과의 새로운 방향이 어떠할지, 혹은 학과가 이전의 방향을 얼마나 유지할지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해주실 수 있을까요?
왈드하임 _ 다시 한번 방문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학과장으로서의 책임을 맡게 된 것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GSD 조경학과는 이 분야에서 가장 유서 깊고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갖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저희 학과는 많은 강점을 지녀왔습니다. 학교 시설, 훌륭한 교수진과 학생들, 열성적인 직원들, 그리고 전 세계에 비교할 수 없는 동문들이 그러한 강점들입니다. 따라서 조경 실무에 초점을 맞추어온 역사적 전통과 세계 최고의 조경가들을 교수진으로 모시는 일은 계속해서 우리의 우선 과제가 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저희 과의 전통적인 전문 분야인 오염지 복원과 경관 생태학, 이 두 분야는 뛰어난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강점들을 유지할 것입니다. 저는 학과장으로서의 임무를 보다 넓게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스톤 스캇(건축과 학과장)과 학장인 모센 모스타파비는 각자의 목표를 대학교 전체와 저희 디자인대학원에 따라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움직임이 우리가 역사적 전통을 반영하는 한편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몇 가지 전략적인 조정이 필요할 때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조정은 무에서 시작되지는 않는 법입니다. 드류 파우스트(하버드대학교 총장)는 하버드 대학이 각 교수진들의 집단이 아니라 대학교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디자인대학원은 각 학과로서 역할을 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의 학교로서 역할을 하도록 그 목표를 규정해왔습니다. 저는 이러한 목표가 고도로 전문화되고, 생태적이며 기술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직제와 디자인으로서의 조경 분야의 세계적인 위상을 갖고 있는 GSD와 조경학과에 대한 인식을 더 굳건히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제 학과장 임명은 단지 한 가지 변화일 뿐입니다. 우리는 아니타 베리즈베이타, 피에르 베랑저, 크리스 리드 외 여러 명을 교수진으로 초빙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학과의 전통을 반영하고 숙고할 기회며, 우리는 더 나아갈 것입니다. 저는 비록 학과가 전통적으로 역사와 이론에서 강점을 보여왔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저명한 역사가들과 이론가들이 학과 교수진으로 있지만 저희의 조경 이론과 역사와 관련된 전반적인 수업 구성을 본다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이루리라고 기대하셔도 좋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조경 표현 방법론에 관련된 수업을 본다면 우리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조경을 그려내며 더 나아가 전반적으로 조경을 어떻게 표현하려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분야는 이미 우리가 많은 것을 이루었고 현재 뛰어난 인재들을 갖고 있는 분야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분야가 우리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는 전통적으로 영역적 생태학, 즉 과학의 하부 분야로서의 생태학에 많은 초점을 맞추어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리처드 포먼(경관 생태학자)과 다른 세계적으로 저명한 전문가들을 교수진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생태학적 관심을 유지하면서 저는 앞으로 몇 년 안에 특정한 주제나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니라 학과가 제공하는 전반적인 프로그램에서 흥미로운 생태학적 주제를 보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기는 합니다만, 저는 생태학이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범위까지 이 주제를 끌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앞으로 더욱 많은 수업과 관심 사항을 공유하면서 각 프로그램들과 학과 사이에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며, 각 프로그램들을 통틀어 생태학적 관심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디지털 미디어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추며, 역사와 이론 분야에도 역시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김영민 _ 다른 학과와의 연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교수님께서는 어바니즘 혹은 도시적 맥락과 관련하여 경관의 개념을 재구축해왔습니다. 조경학과는 앞으로 건축학과, 그리고 도시계획과와 어떠한 관계 를 맺게 될까요?
왈드하임 _ 늘 그래왔듯이 GSD 내에서 우리는 한편으로 하나의 독립된 학교로서 존재해왔고 어떤 때에는 GSD의 한 부분으로 역할도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GSD는 최근 여러 학과와 연계된 수업을 개설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과목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주제와 우리가 지금까지 개설한 과목들을 보시면 우리가 경관 생태학, 태양열 건축 환경분야, 그리고 다른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전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교수진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문가들은 학과라는 틀 안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우리 학생들이 이러한 지식을 배우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때문에 한편으로 이는 구조적인 질문이 될 것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다양한 범위의 지식을 배울 수 있도록 수업이나 일정을 조정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일이기도 합니다. 학교는 학장의 리더십에 따라 최초로 여러 개의 여러 학과를 넘나드는 수업을 개설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지속가능성이며, 하나는 디지털 미디어이고, 하나는 도시와 관련된 수업들입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수업은 이번 학기에 시작되었고 이제 매우 특별한 과목이 되었습니다. 그 수업은 이제 건축학과 1학년과 조경학과 1학년생들의 필수전공 과목입니다. 이는 지금의 학과 구조나 전통, 미래를 바꾸지 않으면서 학교 재원을 기반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제시하는 과목들을 만들어가는 간단한 예가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 분야에 대한 학생들의 많은 관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아마도 이와 비슷하게 하버드 대학교 환경센터가 연구자들을 위한 특별한 자원이며 매년 대학교 전체에 환경 관련 수업을 제공하는 포괄적인 카탈로그를 출판하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러한 일들이 우리 조경학과 학생들이 통합 교과목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조경학의 전문적인 지식을 탐구하고 유지해야 하는 한편 그 핵심인 지식들을 증진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볼 때 이 두가지 목표는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가 두 가지 일을 함께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현재 지도적인 디자인 학교들의 현위치를 말해줍니다. 저희는 조경의 미래를 키워온 학교의 명성을 유지해야하며 유지할 것입니다.
-
스튜디오 101, 설계를 묻다(10) SCALE MATTERS: 조경설계에 있어서의 스케일
“여성들은 정원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뛰어날 지 모르지만, 큰 규모의 땅을 다루는데는 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여성들은 귀여움, 다양함, 고상함, 세함이 요구될 때 빛나지만, 큰 규모를 다루는 조경은 결국 남성적인 예술인 것이다. 또한 조경은 남성적인 열성과 주저하지 않는 독재성을 요구하지만, 여성들은 그러한 덕목을 잔인하고 불필요하다고 반대한다.” - 찰스 사전트
내가 조경에 있어서 스케일에 대한 최초의 의문점을 가졌던 건 사실 설계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조경사를 공부하던 중 읽은, 위에 인용된 짧은 단락 때문이었는데, 여학생으로서의 발끈 + 울컥하는 반응과 더불어 정말 여성이 큰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천성적으로 다루는데 한계가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위의 인용문은 사적 영역 스케일의 뉘앙스가 강한 정원사로부터의 전통을 스스로 거부하는, 공공영역의 스케일에 기반한 근대적인 개념의 조경의 태동과 궤를 같이 한다. 당시의 조경가라는 작명은 센트럴 파크와 같은 프로젝트의 “대규모성”을 담당할 수 있는 권위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이러한 측면을 남성성과 동일시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조경이 궁극적으로 남성적인 학문이라면 도대체 여자인 내가 이 전공을 계속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지금에야 순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꽤 중요한 인생의 결정을 초래할 질문이 본질적으로는 스케일에 관련된 것이었다. 물론 십오년이 훌쩍 지난 오늘, 훈련과 학습을 통해 스케일에 대한 공포를 일정 정도 극복한 이상, 스케일이라는 주제에 관한 나의 고민은 그때와는 다른 층위에 있다. 그러나 변함없는 생각은 조경에 있어서 스케일의 문제는 설계가가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본질적인 반성과 태도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스케일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실제 크기와 지도, 다이어그램 등 그 사물을 재현하는 매체 사이의 관계이다. 척도, 축척, 규모, 크기로도 번역되는 스케일은 엄밀히 따지자면 크기와 같은 개념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사전적 정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스케일은 “사물들의 상대적인 관계”를 측정하는 개념인 반면, 크기는 어떠한 사물의 절대적인 규모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스케일은 항상 무언가와의 관계성(체험자와 공간과의 관계, 공간과 도면과의 관계, 공간과 공간간의 관계 등)에 근거해서만 논의할 수 있다. 또다시 관계로 돌아왔다. 이번호의 주제는 스케일이라는 화두를 관계성의 관점을 통해, 조경설계가 다루는 프로젝트 규모의 엄청난 진폭과 그에 따른 의미, 프로젝트의 대형화가 요청하는 시대적·설계적 임무들, 그리고 실제공간과 설계도면 사이에서 나타나는 괴리감에 대한 내용을 다룰 것이다.
“BIGNESS IS ULTIMATE ARCHITECTURE…… ITS SUBCONTEXT IS FUCK CONTEXT”: 건축에 있어서의 규모의 문제
2002년 미국의 9.11 사건에서 폭격을 당한 건물들은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과 지위를 상징하는 두 개의 건물(펜타곤, 월드 트레이드 센터)이다. 유럽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난 첫 번째 미국적 건축양식이라고도 이해되는 초고층 마천루 중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대한 폭격은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경제적 힘이 수직적 규모로 형상화된 상징성에 대한 공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제는 여느 도시나 초고층 혹은 초대형 개발이 흔해졌지만 건축물의 대규모성에 대한 의미있는 문제제기는 1995년 렘 콜하스의 “Bigness or the problem of Large”라는 매니페스토에 집약되어 있다. 그는 건축물의 “거대함”이 가지는 함의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데 큰 것은 작은 것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그 자체의 독자적인 논리와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절대적 크기를 일컫는 거대한 건축과 건축의 거대함은 다른 개념이다. 건축에 있어서의 거대함은 현대사회가 혼란과 분열과 해체의 과정임을 인정하며, 이러한 상황적 지형에 있어서 새로운 건축의 역할과 기능을 규모의 관점을 통해 제기하는 것이다. 그는 거대함의 이론을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명제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건축이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단일한 제스처로는 통제되지 않는다. 이는 부분이 전체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의 독자성을 갖게 한다. 두 번째는 엘리베이터와 같은 기술적 혁신은 고전적인 건축적 원리들을 무효화한다. 더 이상 건축의 “예술”적 측면은 무의미하다. 셋째는 건축의 내부와 외부는 더 이상 긴밀한 관계를 갖지 못한다. 입면은 내부의 공간과 별도의 논리를 갖는다. 넷째,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은 좋고 나쁘다의 질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건축의 거대함은 더 이상 도시조직의 일부가 아니다. 그 자체가 도시이므로 거대함은 도시적 맥락을 무력화한다.
선동적이긴 하지만 위의 명제들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교훈은 일정 규모 이상의 프로젝트는 그것 자체의 독자적인 기획, 설계, 조성, 운영의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복합성과 상충성에 대응하려는 건축의 규모에 대한 반성은 현대의 조경설계 담론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줄리아 처니악도 대형공원의 규모성에 대한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과연 건축의 규모에 대한 문제의식이 조경설계에 있어서도 유의미한 질문들로 변형될 수 있을까?
-
영ㆍ녕릉
여주 영ㆍ녕릉(驪州 英ㆍ寧陵)은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 83-1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2,008,536㎡(약 602,560평)으로, 영릉(英陵)은 제4대 세종대왕(1397~1450)과 소헌왕후 심씨(1395~1446)의 능이고, 녕릉(寧陵)은 제17대 효종대왕(1619~1659)과 인선왕후 장씨(1618~1674)의 능으로 조성된 이후, 조선 전ㆍ후기 왕릉 조영의 전형으로서의 가치 및 봉분형식, 석물 등의 능의 상설 및 정자각, 비각, 수복방, 수라간, 지당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지형적, 공간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70년 5월 26일 사적 195호로 지정되었다.
造營 _ 세종이 1450년 영응대군(永膺大君)의 사제 동별궁에서 승하한 후, 문종 즉위년(1450) 5월 21일 묘호(廟號)를 세종으로 능호(陵號)를 영릉이라 하였으며, 이해 6월 12일 경기도 광주 대모산 아래 헌릉 서쪽 산줄기 소헌왕후 심씨의 영릉 서실에 합장하였다.1 녕릉의 경우 1659년 5월 효종이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한 후 현종 즉위년(1659) 5월 11일 묘호를 효종이라 하고 능호를 녕릉이라 하였으며, 이해 10월 29일 양주 건원릉(楊州 健元陵) 서측 산줄기에 예장하였다. 녕릉 석물에 틈이 생겨 능침의 누수우려로 인한 천릉론에 따라 현종 14년(1673) 10월 7일 여주 영릉 동측 언덕 자좌오향(子坐午向)에 천릉하였으며 이에 앞서 능역내의 민가와 총묘를 옮기게 하였다. 이후 현종 15년(1674) 2월 24일 경희궁 회상전에서 효종대왕의 비 인선왕후 장씨가 승하한 후, 이해 3월 2일 시호를 인선(仁宣)이라 하였으며 6월 4일 효종 능 아래 자좌오향에 예장하였다.
立地 _ 영릉은 주산인 칭성산을 배경으로 중허리 부분에 봉분을 이루고 있으며, 그 좌우측에는 청룡과 백호가 겹겹이 봉분을 감싸주는 형세를 취하고 멀리 남쪽으로는 조산인 북성산에서 떨어져나온 작은 산맥인 안산을 바라보게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형세를 회룡고조형이라고 하고, 또한 모란반개형인 형국을 지닌 명당지라고 한다. 한편 녕릉은 영릉의 내청룡에 해당하는 구릉과 외청룡에 해당하는 구릉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구릉들이 자연스레 좌청룡과 우백호가 되어 봉분을 감싸고 있으며, 영릉과는 달리 지세의 중허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상, 하 각각 두개의 봉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주변 환경으로는 북쪽으로는 구양리와 한강, 남쪽으로는 월송리, 동쪽으로는 하리, 서쪽으로는 번도리가 인접하고 있다.
空間構成 _ 1)配置形式
영릉은 조선 최초의 합장릉으로서 능상구역을 살펴보면 능침에 병석을 세우지 아니하였으며, 현궁의 석실은 회격(灰隔)인데, 이는 개천 영릉(改遷英陵)의 조영연대가 예종 원년(睿宗元年)으로서 예종의 부왕인 세조의 광릉 조영시(1468) 세조의 유명(遺命)으로 병풍석을 세우지 아니하고 석실을 회격으로 바꾼 뒤여서 이를 따랐다. 또한 능침 주위로 12간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양석(羊石)과 호석(虎石)각 2쌍이 교호배치되고 능전에는 혼유석 2좌를 설치하였다. 혼유석 양측으로 망주석 1쌍이 위치하며 3면의 곡장이 있다. 한 단 아래에 문석인, 마석 각 1쌍이 마주보고 있으며, 그 중앙에 명등석(明燈石) 1좌로 중계(中階)가 이루어졌고 그 아래에 무석인, 마석 각 1쌍이 문석의 예와 같이 배열되어 하계를 이루었으며 능상 및 상설은 단릉의 형식이다. 능 언덕 아래에 능하구역은 정자각이, 동측엔 비각이 있으며, 비각 남측 아래로 수복방, 정자각 서측에는 수라간이 있다. 정자각 남측 참도가 시작되는 곳에 홍살문이 있으며 홍살문 서남쪽에 방형의 연지가 있는데 용두로 축조된 입수구로 맑은 물이 흘러 들어오게 하고 있다. 또한 남측으로 내려와 홍살문 밖의 진입공간에는 영릉 참배로 동쪽에 재실이 위치하는데, 이는 1972년에 복원된 것이다. 1977년도 대통령의 지시로 영릉 정화사업이 있었으며 훈민문, 세종대왕 동상, 세종전 등은 이때에 조영된 것이다.
한편 녕릉은 동원상하이봉릉(同原上下異封陵)으로서 왕과 비의 릉이 상하로 쌍릉 형식을 이룬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이다. 능상구역을 살펴보면 왕릉엔 3면의 곡장을 설치하고 능침엔 병석을 세우지 아니하였으며 12간의 난간석을 설치하였고 난간석 밖으로 양석, 호석 각 2쌍이 외향 배치되었다. 능전에 혼유석이 1좌, 그 양측으로 망주석 1쌍이 설치되어 상계(上階)를 이루고, 한 단 아래 중계(中階)에는 문석인과 마석 각 1쌍과 중앙에 명등석 1좌가 있으며, 하계(下階)에는 무석인과 마석 각 1쌍이 위치하고 있다. 왕릉 아래의 비릉(妃陵)에는 곡장만 설치되어 있지 아니할 뿐, 능상 의물(陵上儀物)은 왕릉과 같이 되어 있으며, 단릉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정자각은 비릉 언덕 아래에 있고 비각은 정자각 동측에 있으며, 비각 아래에는 수복방이 배치되고 건너편에는 수라간이 배치되어 있다. 정자각 남측 참도 시작 부분에 홍살문이 있는데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삼도(三道)를 가로질러 금천(禁川)이 흐르고 있는 바, 금천은 홍살문 밖으로 흐름이 상례임인 것에 비하여 특이하다. 홍살문 밖의 진입공간에는 소로 동쪽에 재실이 위치하고 있다.
-
통일신라 삼층석탑 비롯, 다양한 석물의 매력
30여년 동안 석물 수집한 개인 소장가의 콜렉션 들여다보기
돌은 그 형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기원전 1500〜400년대에 건립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영국 스톤헨지나 신라 혜공왕 10년(774년)에 완공된 석굴암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그 신비스러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풍화되어 변화하기 때문에, 영원불멸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영원하지 않으나, 영겁의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데에 돌의 매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소개하는 통일신라 삼층석탑, 고려 삼층석탑과 부도를 비롯한 20여점의 석물들은, 지난 30여년 동안 돌의 매력에 푹 빠져 전국을 돌아다니며 석물을 수집한 한 개인 소장가의 콜렉션이다. 석물은 전통적인 조경공간은 물론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정원, 개인 정원 등에 첨경물로 많이 활용되고 있기에, 소장자에게 협조를 구해 대표적인 석물 20여점을 간략한 설명과 함께 지면으로 소개한다. 시대별 석물의 특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고, 쉽게 지나치기 쉬운 석물의 매력을 새롭게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천년이 넘도록 조형미를 간직하고 있는 석물에서, 그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했을 석공의 숨결을 느낀다는 소장자는, 보관 장소 등의 문제로 일부 석물은 자신보다 더 아껴줄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참고로, 석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은 석물 전문가인 소장자로부터 제공 받았음을 밝혀둔다.
통일신라 삼층석탑
상륜부를 제외한 높이가 약 2m 60cm에서 2m 80cm 정도의 소탑인데, 오래된 탑에 상륜부가 없는 것은 대부분 당연시된다. 이 탑의 하대석은 1m 13cm의 방형으로 정사각형이다. 1석으로 곱게 이루어져 있으며, 받침 부분은 역원호(逆圓弧)로 다듬어져 있다. 갑석(기단부 덮개돌)은 1m 16cm의 정사각형으로 1석으로 되어 있는데, 하대석보다 약간 크고 엷어서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갑석은 제1탑신을 올리기 위한 받침대를 조성하고 있는데, 받침은 2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단은 원호형(圓弧形)이고 제2단은 방형이다. 이 탑신 받침은 당연히 갑석과 1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1, 2, 3층 모두 평박(平薄)하여 경쾌한 감을 준다. 낙수면(落水面)의 곡률(曲率)이 아름답고 전각(轉角)의 반전(反轉)이 역시 산뜻한 느낌을 더해준다. 추녀는 모든 신라탑이 그러하듯이 일직선으로 뻗어 의연함을 느끼게 한다. 추녀 밑에는 눈에 잘 뜨이지 않으나, 낙수홈이 마련되어 있다. 옥개 받침은 제1, 제2옥개는 4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제3옥개는 3단으로 되어있다. 통일신라 말기에 접어들면서 옥개 받침은 5단에서 4단으로, 그리고 3단으로 축소되는 경향이었고, 소탑인 경우에 제일 작은 제3옥개는 받침을 줄이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탑의 제3옥개에는 상륜부를 지탱했던 철간(鐵竿)이 박혀있던 구멍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이 탑은 안타깝게도 기단부의 면석(面石), 속칭 병풍석 부분이 없어졌다. 이 부분은 후대에 만들어져 보완되었다. 그러나 이 탑의 조형양식이나 규모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의 탑이 분명하고 탑 전체의 조형감각이 황금율을 이루고 있어서 참하고 아름다운 탑이다.
-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
우리 모두가 디자이너다; i-Design
올해로 2회째를 맞이하는 서울디자인올림픽은 서울시가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개최하는 시민디자인축제이다.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의 주제는 ‘i-Design’. ‘우리 모두가 디자이너’란 뜻이다. 감성의 시대에 디자인으로 도시경쟁력을 상승시킨다는 서울시의 의지가 담겨있다. ‘디자인으로 불황 극복’도 같은 이유에서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서울시 주최로 잠실주경기장과 한강공원, 그리고 서울 도심지 곳곳에 걸쳐 10월 9일부터 21일동안 진행된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는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쏟아내며 그 성대한 막을 내렸다. “21세기 경쟁력인 디자인은 그것을 알아봐주는 소비자층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디자인올림픽은 시민들에게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안목을 길러주는데 목적이 있다”라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개회사. “디자인은 어려운 시기에 더욱 발전한다”라는 뉴욕타임즈의 기사(2009년 1월 3일자)를 동시에 떠올려보며, 우리시대 불황극복의 실마리로 떠오르는 ‘디자인’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작년에는 플라스틱 벽, 올해엔 ‘디자인 하늘’
지난해 잠실종합운동장을 둘러쌌던 거대한 플라스틱 벽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올해는 잠실주경기장 하늘 속에서 ‘디자인 하늘i-Sky’을 볼 수 있었다. 열린 하늘에 희망을 상징하는 하얀색 천들이 경기장 하늘을 가득 메우며 색다른 볼거리를 연출하였다.
해치 퍼레이드, 엣지 넘치는 해치 모형 한가득
궁궐 입구에서 근엄한 자태를 뽐내는 해치상이 잠실에도 둥지를 틀었다. 풍자와 해학을 입혀서. 플라스틱 페트병으로 형태를 만든 대형 해치를 비롯하여, 선글라스를 쓰고 있거나 공작날개를 등에 달고 있는 해치,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있는 해치까지 각양각색 해치 모형들이 호돌이광장과 종합운동장 내부에 서서 사람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
조경의 정의 및 (사)한국조경학회지 제호 개정 토론회
‘조경’과 ‘Landscape’의 경계에서 조경 정체성 찾기
1973년에 국가정책적으로 조경 전문분야가 도입된 이래 조경의 함의는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그리고 지식정보화, 세계화, 그리고 혼성과 융합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는 현시대 조경은 다양한 도전과 변화의 선택지 위에 서있다. 지난 10월 9일 (사)한국조경학회(회장 조세환)는 “조경의 정의 및 한국조경학회지 ‘제호 개정’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37년의 한국조경 역사에서, 조경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이다.
조세환 회장은 인사말에서 “조경이 단순히 나무 심는 분야로 축소ㆍ왜곡되어 인식되고 있다. 더불어 조경이 경관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시행되고(경관법) 있으며, 공원이 법적으로 건축분야의 일이 되어버리고 있다(건축기본법). 동시에 도시공원이 숲으로 변형되어(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조경의 본질을 차지하는 환경(생태)디자인이 조경과는 또 다른 분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학회에서는 조경분야에서 경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조경의 정체성에 대해 매우 혼란스럽다”고 하였다. 따라서 “오늘 토론회는 단순한 제호 변경을 넘어 조경기본법 제정을 비롯한 조경의 패러다임과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토론회 개최의 배경과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특히 조경기본법 제정과 관련하여 “조경의 정의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통해 후학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지 않는 길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덧붙여 강조했다.
주제발표
이용훈 위원장(환경조경발전재단 조경기본법 추진소위원회, ((주)그룹21 대표)은 조경의 어원과 사전적 정의에 대해 설명하면서 주제발표를 시작하였다. 이후 ‘조경의 용어 탄생’에 대해 설명하며 “국내에서 ‘조경(造景)’이란 용어는 오휘영 명예교수(한양대, 환경과조경> 발행인)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Landscape Architecture’를 ‘조경’으로 번역하여 브리핑한 것이 계기가 되어 도입되었다”고 전했다. 이후 청와대 조경담당 비서관 직제 신설을 비롯하여 한국조경학회의 설립,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신설 등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조경의 정착과 확립에 대해 서술하였다.
이어서 이위원장은 1950년 미국대학사전, 2006년 임승빈 교수(서울대)의 정의, 2006년 ASLA의 정의를 짚어보며 조경의 학술적 정의 변천에 대해 발표했다. “현행법상 건축법에서만이 조경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으며, 건설산업기본법상 조경공사는 시대와 환경, 그리고 필요성에 따라 그 내용이 바뀌었다”고 말하며, 법령상 조경의 정의와 범위를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조경의 정체성에 대해 조경사회 회보 제59호에 실린 오휘영 명예교수의 인사말, “우리 이름은 조경”의 내용 중 “우리의 명칭인 ‘조경’의 유지는 장기적으로 분야의 고유영역과 권익을 보존해가는 우리 모두의 의무요 책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을 통해 밝힘으로써 ‘조경’의 용어적 가치와 의미에 대해 역설하였다. 한국조경학회지의 제호에 대해서는 한자를 반드시 첨가하여 국어, 영어, 한자 모두를 병기하는 것을 제안했다.
이유직 교수(부산대)는 학회 회장단 및 집행부 자체 의견수렴 결과 도출된 두 개의 대안을 중심으로, “한국조경학회지 조경 or 한국조경학회지 랜드스케이프 연구”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발표에 앞서 “건축분야 일각에서 사용하고 있는 ‘랜드스케이프 건축(Landscape Architecture)’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교수는 “건축분야에서 건축물 외부환경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고, 건축의 공공성에 관심을 가지게 됨으로써 본 용어가 등장하였다”고 말하며 ‘랜드스케이프 건축’이 대두된 배경을 설명하였다. 건축분야에서‘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담론 속에서 이루어진 조경적 성과에 대해 호도를 하며‘랜드스케이프 건축’을 부각시켰다고 전하고, 이는 조경의 무지, 또는 무시에서 이루어진 행위라 강조하며 외부로 향해 조경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Landscape planning’을 ‘조경계획’이라고 해석했던 그동안의 번역에 대해 “부분영역의 독립화로 조경학 본연의 내용적 층위가 옅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하였다. 더불어 “통합적 시각(경관ㆍ과학ㆍ예술을 아우르는)에 대한 순발력을 길러야 한다”며 복합적 함의를 가지고 랜드스케이프(Landscape)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조경학회지: 조경> _ 이미 학문적 용어로 정착되었으며,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용어로서 조경을 제호로 사용하여 용어 정착의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며 1안으로서 <한국조경학회지: 조경>을 제안했다.
<한국조경학회지: 랜드스케이프 연구> _ Landscape는 어원상 표피, 외관을 의미하는 Landskip과 기반, 생태, 환경 등을 의미하는 Landshaft 모두를 의미하고 있다. 현재 조경이 다루는 경관계획 및 환경생태계획 등을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용어로서 Landscape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전하며 <랜드스케이프 연구>를 2안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