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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쓰는 농부사전
블루메미술관, 5월 18일부터 11월 17일까지
좋아하는 대상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탐구하다 보면, 그 대상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까지 관심이 확대되기 마련이다. 개관 이후 줄곧 정원을 좇던 블루메미술관의 눈길이 농부에 닿게 된 까닭도 같았다. 땅을 기반으로 한 노동을 펼친다는 점이 닮아서인지 많은 정원가가 농부의 일과 삶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정원사가 왜 그들을 관찰하는지 궁금했던 블루메미술관도 농부에게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는 ‘같이 쓰는 농부 사전’ 전시 기획에까지 이르게 했다.
5월 18일, 블루메미술관에서 개최된 ‘같이 쓰는 농부 사전’ 전시는 농부를 단순한 식량 생산자를 넘어 가치 생산자로서 바라보며, 농부의 일과 생각에 담긴 무형의 가치를 조명한다. 농업의 산업화를 위해 대량 생산에 몰두하는 대농 대신, 작은 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소농 네 팀을 초대했다. 소농의 목소리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를 작품으로 보여줄 네 명의 작가를 매칭해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선보였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농사를 짓지 않아도 누구나 ‘농부적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그 삶의 방식이 아직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기에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이번 전시의 제목에 ‘같이 쓰는’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농부사 전을 관객과 함께 써가는 여정은 농업 안에만 갇혀 있던 여러 농부의 삶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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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공원 풍경놀이터
서울시 2호 거점형 어린이 놀이터
지난 6월 6일 보라매공원 풍경놀이터(이하 풍경놀이터)가 개장했다. 서울시의 제2호 거점형 어린이 놀이터인 풍경놀이터는 서남권 보라매공원 테마놀이터 조성 설계공모(2022)의 당선작 ‘놀이풍경: 어린이 스스로 만드는 무한의 놀이 세상’(바이런+지엘에이디자인)을 기반으로 2년 여의 설계와 시공을 거쳐 탄생했다. 5,000m2가 넘는 대규모 어린이 모험 놀이터는 잔디마당과 놀이탑, 낙서 벽 등 다양한 놀이 시설과 정원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거점형 어린이 놀이터는 보통 주거 단지 내에 소규모로 조성되는 단편적 놀이 시설을 벗어나 대규모 공간에 어린이의 창의성 향상과 폭넓은 활동을 유도한다. 미끄럼틀, 그네, 시소 등 획일적인 시설보다는 자유로운 신체 활동이 가능한 공간을 확충하는 데 중점을 두고 조성된다. 서울시는 2026년까지 시내 5개 권역에 1개소씩 거점형 놀이터를 조성할 계획으로, 지난 2022년 광나루한강공원(동남권)에 제1호를 조성한 데 이어 현재 북서울꿈의숲(동북권), 용산가족공원(도심권) 놀이터를 설계 중이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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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느린 걸음의 풍경
아버지의 골방 서재는 일종의 분더카머(wunderkammer)였다. 그 방에는 집안 조상의 내력이 적힌 족보를 읽는 게 취미였던 아버지가 신줏단지 모시듯이 보관했던 족보부터 역사, 풍수지리학, 자서전 등 아버지의 취향이 담긴 헌책이 장르와 연도별로 구분돼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매해 쓰셨던 일기 노트들도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아버지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적으셨다. 방학 숙제였던 일기와 독후감을 벼락치기로 쓰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 모습은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방대한 책을 관리하는 성실한 사서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분더카머의 장인이었지만, 나는 중도 포기의 달인이었다. 절세 무공을 가진 고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실력에 미치지 못해 좌절하는 무협지 주인공들처럼 나도 분더카머를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무언가를 수집하고, 기록하며 나만의 취향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했지만 늘 실패했다. 해마다 문구 편집숍에서 새로 나온 노트와 필기구를 사며 필사 노트를 만들고, 일기도 꾸준하게 적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세상에 큰 뜻을 펼치지 못한 채 초야에 묻힌 유배지의 선비처럼 모두들 쓰이지 못한 채 서랍 속에 고이 보관됐다. 읽는 책보다 읽지 않는 책이 너무 많아서 가스 검침하듯이 주기적으로 중고 서점에 책을 팔기 바빴다.
그래서 성실한 수집가의 기록에 괜히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잡문집 『무라카미 T』(2021)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티셔츠 수집 무용담이다. 자신의 이름과 동명인 시에서 주최하는 마라톤에서 받은 티셔츠, 하루키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팬이 디자인한 티셔츠 등 티셔츠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내며 자신의 티셔츠 취향을 소개한다. 이러한 티셔츠 수집은 하루키에게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마우이 섬에서 1달러 주고 산 토니 타키타니(Tony Takitani)라는 영문이 적힌 티셔츠에서 모티브를 얻어 동명의 단편 소설을 쓰기도 했다.
하루키처럼 이야기를 국수 가락 뽑듯이 솜씨 좋게 술술 풀어낼 수 있는 대단한 문학적 재능이나 통찰, 아름다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특별한 미감은 없지만 소소하더라도 나의 일상과 삶에 조금이나 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수집은 없을지 궁리하다가 공간 일기를 써보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이러한 다짐을 하게 된 건 『건축가의 공간 일기』(2024) 덕분이다.
이 책은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공간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가 30여 년간 공간을 둘러보며 일기처럼 남긴 글과 그림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그는 지난 세월 동안 펜을 바지런히 움직이며 손으로 그날의 감정을 기록하고 공간을 더 정확하게 묘사하고 그리기 위해서 유심히 관찰하는 행위를 꾸준히 해왔다. 또한 유명한 공간보다 제철 음식을 사러 가는 망원시장 등 자신의 일상과 생활에 스며들어 있는 공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생활 속 공간이 주는 위로와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들려주며 생활 속에서 좋은 공간을 발견하고, 일기로 남기는 일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좋은 공간에 나를 두고, 공간이 건네는 목소리를 들으면 우리의 삶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 어쩌면 좋은 공간을 찾아가는 것도 수단에 불과할지 모른다. 인생 공간을 발견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바쁜 시대에 무언가를 경험하며 우리의 감정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결국 공간 일기란 삶이라는 사건을 이해하는 배경에 대한 기록인지도 모르겠다. 오롯이 그 사건 자체로만 바라보면 오해나 왜곡이 있을 수 있지만, 사건을 둘러싼 배경을 이해하고 바라보면 그 사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이해하려면 어쩌면 잠시 시간을 내 삶을 둘러싼 배경에 대해서 찬찬히 바라볼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나의 생활 반경 속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아름다운 장면과 공간을 소소하게 기록하고 싶다. 먼 훗날 이 기록들이 모여 하나의 분더카머가 될 수 있다면 그 방 앞에 ‘느린 걸음의 풍경’ 이라는 명패를 가지런히 놓고 싶다. 중도 포기 달인의 소박한 소망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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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지금 우리의 관심 영역은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을 배제하고 있지 않은가
또 정원 생각을 하게 된 건 한 영화 때문이었다. 스포일러를 좋아하지 않아, 미리 어떤 정보도 눈과 귀에 들이지 않으려 한 탓이다. 물론 영화 소개글 한가운데 정원이라는 단어가 떡하니 있기는 했다.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의 가족이 사는 그들만의 꿈의 왕국 아우슈비츠. 아내 헤트비히가 정성스럽게 가꾼 꽃이 만발한 정원에는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집. 과연 악마는 다른 세상을 사는가?” (각주 1)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조나단 글 래이저, 2024).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다.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 ‘존’을 영역(지역, 구역, 지대 등)으로 바꾼다면, ‘인터레스트’에 대응하는 단어로는 무엇을 고를 것인가. 우선 제목이 지칭하는 땅의 정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격리한 땅이다. 수용소 주변 지역의 농지를 폴란드 지주에게서 몰수하고 그 빈 땅에 수용소의 포로들을 노역시켜 이득을 취득했다. 따라서 인터레스트를 나치 독일이 취한 금전적 ‘이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러닝 타임 내내 귓가를 울리는 굉음, 하늘로 솟는 연기, 늦은 밤에도 폭력적으로 이글거리는 시뻘건 불길을 없는 것처럼 여기며 관심 밖에 두(려)는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인터레스트 위로 ‘관심’이라는 단어가 겹쳐진다.
회스는 실존 인물로, 4년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소장으로 일했다. 그의 가족은 수용소 인근 사택에서 삶을 꾸렸는데, 이 사택은 수용소와 담 하나를 두고 맞붙어 있었다. 영화는 수용소 내부의 모습을 한번도 보여주지 않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상하게 한다. 이는 헤트비히가 그 지옥의 땅 옆에서 낙원 같은 삶을 일구어 나가는 모습과 병치되며, 악이 얼마나 평범하고 그래서 더 끔찍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헤트비히는 이 사택에서 유토피아 같은 정원을 가꾼다. 고요에 빠질 수 있는 온실, 아이들은 물론 인근 이웃을 초청해 파티를 즐길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수영장, 고즈넉한 분위기의 퍼걸러와 의자가 있다. 파스텔 톤과 원색의 식물이 넘실거리는 잔디를 배경으로 자란다. 그는 친정 엄마에게 이 정원을 완성하기까지의 여정을 무용담처럼 풀어놓으며, 담벼락 너머가 보이지 않도록 넝쿨 식물을 기르겠다고 말한다. 결국 이 정원은 자신의 관심 영역에서 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밀어내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회스 역시 자연을 일종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수용소의 미관이 훼손되니 라일락 관목을 과도하게 꺾지 말라는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그의 얼굴이 지극히 차분해서 끔찍했다.
하지만 정원은 결코 모든 참극을 가리지 못한다. 치솟는 연기와 불길을 틈 없이 가리고, 비명 소리를 완벽히 차단할 담과 넝쿨이 있을 리 없다. 강에서 자녀와 함께 물놀이를 즐기던 회스는 위쪽에서 잿빛 물이 내려오는 걸 발견하고는 기함한다. 강은 수영장 속 물과 달리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보트에 아이를 태우고 돌아오는 회스의 표정은 드물게 초조하다. 비가 내려 분 강물이 거세게 그 보트를 떠밀며 묻는 것 같았다. “지금 우리의 관심 영역은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을 배제하고 있지 않은가?” (각주 2)
정원은 생활 영역에 자연을 들이려는 시도에서 출발한 공간이다. 자연을 닮았지만 아주 개인적인 공간이며, 대부분 외부로부터의 시선이나 간섭을 차단하고 아늑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드는 데 집중 한다. 지난 2월, 김동훈과의 인터뷰(각주 3) 녹취록에서 삭제된 내용 중 하나는 ‘정원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정원은 사적 녹지로 다루어지기에 경관법은 있지만 정원법이 따로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파트로 점점 빼곡해지는 도시가 내세우는 정원도시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꾸 궁금해진다. 단순히 정원이 많은 도시를 말하는 것일까. 많은 시민이 개인 소유의 땅 중 일부를 정원으로 만들도록 독려하는 도시, 혹은 공공이 조성한 정원이 많은 도시를 추구하는 것일까. 만약 공공이 조성한 정원을 공공 정원이라 명명하려 한다면, 그 관리의 주체는 누가되어야 하며 공원과는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각주 4)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싶어 덧붙이자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정원의 의미와 가치를 들여다보는 영화는 아니다.
**각주 정리
1. 존 오브 인터레스트 시놉시스
2. 김혜리, “[김혜리의 두 영화 이야기] 관심영역”, 위버스매거진 2023년 7월 11일.
3. 김모아, “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정원을 탐구하는 천착의 깊이 김동훈”, 『환경과조경』 2024년 2월호.
4. 이미 박희성 교수가 연재를 통해 공공의 정원을 다룬 적이 있다. “근대 초기, 공원은 파크와 퍼블릭 가든의 구분없이 모두를 아우르는 용어로 자리 잡게 되면서 퍼블릭 가든은 파크와 혼성되고 사라져버렸다.” 박희성, “모던스케이프: 공공의 정원”, 『환경과조경』 202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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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그늘 쉼터, 스마트 루프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그늘 쉼터
야외에서도 실내 같은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면 어떨까. 예부터 건축물은 비바람과 외부의 위험 요소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그에 따라 외부 공간은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곳, 내부 공간은 안락한 휴식을 할 수 있는 곳 등으로 쓰임새를 구분해왔다. 하지만 생활 수준 향상과 더불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그 경계가 흐릿해지고 실내 같은 외부 공간, 외부 공간의 기능을 수용하는 실내 공간에 대한 수요가 생기고 있다. 외부 공간 디자인 브랜드 ‘차양과 공간(Shade&Space)’은 이러한 복합적 요구를 반영해 다양한 외부 공간을 디자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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