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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그래서 노들섬은 어떻게 될까
글로벌 예술섬. 화려하면서도 모호한 이름을 달고 진행된 노들섬 설계공모의 당선작이 지난 5월 29일 선정됐다. 서울시 보도자료 첫 줄은 당선작 ‘소리 풍경(Soundscape)’을 출품한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을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묘사한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헤더윅의 당선작은 기존 건축물을 최대한 살려 주변부를 계획했으며 공중부에 다양한 곡선으로 한국의 산 이미지를 형상화한 특별하고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헤더윅(=다빈치), 곡선, 산, 환상. 이 네 가지 키워드만으로는 사업을 둘러싼 본질적인 의문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무엇을/누구를 위한 글로벌 예술섬인가. 누가 원하는/누구를 위한 랜드마크인가.
가장 안타까운 건 이번 당선작 발표에 사회적 반응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보도자료를 받아쓴 몇몇 짧은 기사 외에는 별다른 해설, 비평, 토론, 반론을 찾아보기 어렵다. 강 한가운데 유기된 섬에서 유원지와 관광지로, 오페라하우스로, 예술섬으로, 텃밭으로, 예술창작기지로, 다시 글로벌 예술섬으로. 지난 50년간 노들섬에서 주기적으로 들끓었던 도시의 욕망에 이제 모두가 지친 것일까. ‘한강르네상스’나 ‘그레이트 한강’ 같은 슬로건은 이제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기시감과 피로감 때문일까. 한강에 랜드마크‘들’을 만든다며 쏟아내고 있는 서울시의 화려한 구상‘들’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전문가 사회도 조용하다. 요악하자면 무관심이거나 냉소. 노들섬 공모와 당선작에 대한 건축, 조경, 도시계획 분야의 토론이나 비평을 거의 접할 수 없다. 그나마 소셜 미디어에 간혹 올라온 단편적인 반응을 간추려 보면 크게 세 가지 갈래다. 노들섬을 지금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라는 주장, 헤더윅의 설계안이 뉴욕 리틀 아일랜드(본지 2022년 2월호)의 재탕 아니냐는 의구심, 서울시의 랜드마크병에 대한 피로감 호소.
이번 설계공모 출품작들의 게재 여부를 두고 본지 편집부의 의견은 다소 엇갈렸다. 다루지 않는 게 곧 비평이라는 의견과 설계안의 기본 정보라도 제공해야 그나마 추후의 토론을 낳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 후자로 결론 내고 촉박한 마감에 쫓기며 서둘러 지면을 꾸렸지만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특히 사회적 관심을 모으기 위해 공모전 성과를 적극 홍보해야 할 서울시가 의외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토론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비평 필자를 팔방으로 찾던 중 페이스북에 올라온 건축 전문 번역가 조순익의 글을 발견했다. 급박한 원고 청탁에도 조순익 선생이 흔쾌히 수락해준 덕분에 포스팅 글을 확장한 평문을 지면에 실을 수 있게 됐다. 그의 글은 피로감을 주는 서울시 랜드마크 사업의 의도 자체를 다시 따져 묻는 피로를 행간에 감추고, 오히려 출품작들의 형태에 내재된 의미를 질문하고 탐사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토론의 방향을 제시한다. “헤더윅의 당선작은 서울시의 아이콘주의에 동원된다는 의심을 피해갈 수 없지만, 작품 자체는 단순한 아이콘을 넘어 사회적 자연의 매력을 보여준다”(94쪽)는 그의 관점은, “ ……헤더윅의 안은 자연과의 유비 속에 비교적 자유로운 인공을 녹여낸다. …… 인공이 자연을 모방하는 충동으로 나타난다. …… 이번 공모의 결과는 인간-자연 이분법에 기초한 자연중심주의보다 자연 속에서 공생하려는 인간의 유토피아적 충동, 말하자면 인간의 자유와 자연의 적극적인 어울림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96쪽)라는 의견으로 이어진다.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피드백을 초대한다.
노들섬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이미지대로 한강대교 위에 한국의 산을 형상화한 환상적인 경관이 만들어질까. 우리는 그 위를 산책하며 한강의 매력적인 노을을 감상하게 될까. 서울시는 헤더윅 팀과 오는 7월 설계 계약을 체결하고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진행한 뒤, 내년 2월에 공사를 시작해 2025년까지 1차 조성(수변부 팝업 월, 수상 예술 무대, 생태 정원), 2027년까지 2차 조성(공중부=‘한국의 산’, 지상부 보행로와 라이프 가든) 완료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간의 반복 경험에 비춰 예상해본다면 수변부 일부를 고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예감. 예감이 아닌 소망인가? 너무나 당연한 주장이라 독자들에게 피로감을 주겠지만 그래도 한번 더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오래, 계속, 많이 토론해야 한다.
조경가는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정리하고 보관할까. 7월호 특집 ‘조경가의 기록법’에 열 명의 조경가를 초대했다. 소중한 글과 그림으로 기억과 기록의 켤레를 선보여준 조경가 김기천, 김지환, 박승진, 신영재, 안동혁, 이수학, 이홍인, 조용준, 최재혁 그리고 비평가 정평진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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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감각] 힘을 내요, 보험이
지난 5월 말 나팔꽃을 심었다. 물에 적신 키친타월에 올려둔 씨앗 세 알은 이틀도 되지 않아 껍질을 채 벗지 못한 머리를 들어 올렸다. SNS 속 친구들의 정원에는 벌써 나팔꽃이 피었던데. 봄 한철인 프리지아와 수선화가 늦게까지 베란다 자리를 비워주지 않아서 여름 꽃 준비가 늦고 말았다. 벌써 반쯤 새싹이 된 씨앗을 보니 놓친 계절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바로 플라스틱 포트로 옮겨주었다.
다시 이틀이 지나자 V자를 그리며(나팔꽃 떡잎은 V자 모양이다) 새싹 두 개가 불쑥 솟아올랐다. 역시 나팔꽃이라서, 그리고 더운 계절이 되어서 빠르구나. 그런데 돋아난 싹이 새잎을 펼치며 자라는 동안 나머지 하나가 감감무소식이었다. 기다리다가, 궁금해하다, 마침내 땅 속을 파헤쳐볼 결심이 섰을 때 막내가 돋아났다. 떡잎 대부분을 잃고 줄기만 남은 모습으로.
뿌리파리의 소행일까. 나팔꽃에는 수선화 화분의 흙을 재활용했는데, 지난 봄 수선화가 뿌리파리를 겪었다는 것이 뒤늦게 떠올랐다. 보드라운 떡잎과 연약한 새 뿌리를 갉으며 얼마나 신났을까. 어쨌든 불상사를 대비해 세 개나 심은 거니까 허름한 녀석은 솎아내고 튼튼한 녀석만 기르면 된다. 식물을 뽑아내는 일은 필요할 때마다 해왔고 어렵지도 않다. 식물에는 사람의 신경계나 뇌와 같은 부분이 없으며, 따라서 통증을 느끼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을 테니까.(각주 1) 그렇지만 올해는 막내를 끝까지 기르기로 했다.
나팔꽃은 잃어버린 떡잎에 아파하지 않는다. 작은 잎 조각으로도 다음을 준비하고 줄기를 뻗을 것이다. 다른 형제보다 느리고 작고 볼품없겠지만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뽑아버리거나 또다시 실수하지 않으면 된다. 나팔꽃 덩굴을 시들게 하는 찬바람은 11월에야 불어온다. 꽃과 열매를 경험할 수 있을 만큼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있다고, 막내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 나팔꽃에게는 응원도 무의미하겠지만. 참, 막내에게 이름도 붙여주었다. 보험을 들듯 여분으로 심었던 것이니 보험이라 부르기로 했다. 짓궂은가 싶지만 보험이는 모르니까 괜찮다.
**각주 정리
1. “식물은 접촉을 느끼지만 통증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리고 동물과 달리 식물의 반응은 주관적이지 않다 …… 식물은 뇌가 없기 때문에 주관적 제약에서 자유롭다.” 대니얼 샤모비츠, 『식물의 감각법』, 도서출판 다른, 2019,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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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만든 도시] 도시의 기능
도시라고 부를 만한 맹아가 나타난 수천 년 전이나,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각주 1)이 도시에 살고 있는 공히 도시의 시대인 현재나, 우리는 도시의 어떤 곳에서는 생산하고 거래하며, 어떤 곳에서는 교류와 유흥을 즐기고, 어떤 곳에서는 쉬면서 사적인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구분되는 서로 다른 활동, 즉 도시의 기능이 도시 내 특정 위치를 점한 모습은 당연히 사회적 결과물이며 임의적이거나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도시 기능의 특정한 공간 배열은 여러 곳에서 유사하게 반복된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앞에는 달달한 냄새를 풍기는 빵집과 사은품을 쌓아둔 핸드폰 가게가 있고, 골목길 어귀 편의점에 꼬맹이와 편맥족(편의점 맥주+족)이 모여드는 저층 주거지의 흔한 풍경이 그런 예다.
도시 스케일에서도 마찬가지다. 구분되는 서로 다른 도시 기능의 배열을 ‘도시 공간 구조’라고 하며, 특정한 패턴이 다수의 도시에서 발견된다.(각주 2) 예를 들어 모든 도시 기능이 옅어지고 있는 구도심, 그에 인접한 기차역·버스터미널 주변으로 병원·상가·재래시장이 모여 있는 상업 지역, 그 밖으로는 1980~1990년대 구도심에서 옮겨온 시청과 금융·세무·법무 사무실 등이 모인 (이제는 오래된) 신시가지의 중심과 그 주변을 둘러싼 아파트 단지, 시가지에서 벗어나 고속도로 나들목 근처에 위치한 산업 단지와 그곳의 젊은 근로자가 사는 원룸촌 등은 한국 많은 지방 중소 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형적인 도시 기능의 배열이다.
도시에서 특정한 기능의 위치는 다수의 도시
구성원에 의해 긴 시간에 걸쳐 자연스레 결정되기도 하지만, 소수에 의해 매우 의도적으로 설정되기도 한다. 전자의 예로 세계의 오래된 많은 항구 도시는 항만을 바라보는 경사지에 형성된 주거지와 같은 전형적인 도시 경관을 공유한다(그림 2). 사람의 힘으로 바꾸기 어려운 지리·기후적 특성과 특정 도시 기능에 요구되는 사회·공간적 조건을 따르는 집합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후자는 비단 근대 이후 도시계획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세계의 여러 역사 도심에는 그 시대의 관념적 가치와 위정자의 정치적 의도가 투영되어 있고(그림 3), 왕조가 사라진 현대 도시 공간에서도 공간을 매개로 한 정치가여전히 시도된다.(각주 3)
현대 도시계획에서 도시 기능의 위치를 인위적으로 정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물론 공적 이익이다. 산업 단지나 위락 시설로부터 주거와 교육 시설의 환경을 보호하고, 접근성이 높은 지역은 고밀도의 상업 및 업무 시설을 짓도록 하는 등 토지의 ‘합리적 이용’이 그 공적 이익에 해당한다. 공적 이익을 위해 특정 도시 기능이 도시 내 적정 위치에 들어서도록 하기 위한 대표적 제도가 제2종 일반주거지역, 근린상업지역 같은 용도 지역, 즉 조닝(zoning)이다. 한국 국토의 모든 부분은 예외 없이 9개 용도 지역(각주 4)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종류에 따라 어떤 용도의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혹은 지을 수 없는지, 어떤 규모로 지어야 하는지가 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실제 도시 공간의 기능 배열은 용도 지역의 배열과 일치할까?
그림 3. 청의 수도였던 북경(베이징)은 무려 우주의 중심으로서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통적 우주관을 따라 자금성을 중심에 두고 환이라 불리는 사각형의 위계 구조를 이룬다. 내부는 격자형 블록인 리방(里坊)과 일정한 간격의 내부 도로인 호동(胡同)으로 분할된다. 호동은 사회 통제의 공간 단위이며, 호동에 면한 획지의 너비는 곧 신분과 권력 혹은 부의 가늠자다. 전봉희, 『中國 北京 街家 風景: 2000년 북경 서구렴자호동 현장기록』, 서울:공간, 2003.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2050년경에는 인류의 70%가 도시에서 살 것으로 예상된다. www.worldbank.org
2. 버제스(Burgess), 호이트(Hoyt)를 비롯한 여러 학자는 도시에서 나타나는 CBD와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른 주거지 및 소비 공간, 산업 단지, 느슨한 교외 주거지 등이 이루는 특정한 배열을 유형화한 토지 이용 모델(land use model)을 제시했다.
3. 지금은 없어진 여의도광장, 서울 이곳저곳에 추진되고 있는 국가 상징공간이 그 예다.
4. 도시지역 4종(주거, 상업, 공업, 녹지)과 관리지역 3종(보전관리, 생산관리, 계획관리), 농림지역, 자연환경보전지역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 디자인과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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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인 오피스] 랩디에이치
하늘을 공경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사람을 섬기는 탁월한 조경 작업
조경에 대한
진심과 믿음으로
그래도 나름 (조경에) 진심입니다
조경을 한다는 것.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아직 조경의 불모지라 불리는 한국에서 조경 그리고 조경 설계를 계속해 나간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일생 전부를 걸 정도의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에 임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조경을 향한 진심을 마음 한편에 품지 않으면 때로는 버티는 것조차 힘에 부칠 때가 있다.
랩디에이치 서울(Lab D+H Seoul)(이하 랩디에이치)은 조경에 진심을 품은 사람들이 모인 디자인 그룹이다. 물론 각자 마음에 품은 진심의 크기와 형태는 제각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상 중에 그리고 프로젝트에 임할 때 틈틈이 같이 나누는 대화에서 우리가 각자 나름의 모양새로 진심으로 조경을 대하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구성원 전체의 민주적 협력 과정을 통해 조경설계라는 방법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동참하고 있다.
진심은 믿음을 동반한다
조경에 진심인 우리는 함께 공유하는 몇 가지 믿음을 바탕으로 프로젝트에 임한다. 조경설계가 환경의 근간을 형성하고 도시의 작동을 돕는 적극적 역할을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또한 조경의 업역이 물리적 공간의 설계와 단순한 구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조경의 사회적·환경적 책무와 문화적 중요성을 믿는다. 조경설계라는 창조적 행위가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오길 바란다.
랩디에이치는 조경에 대한 믿음을 구체화하는 방법으로 대상지의 고유한 맥락을 고려해 정교하고 결정적인 맞춤형 설계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각 프로젝트는 대체 불가한 독창적인 의미를 가지며, 이용자에게 새로운 공간 경험을 제공하리라 기대한다. 우리가 만든 공간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지역과 사회,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더 나은 생활 환경과 지속가능한 향상된 도시 기능을 제공하기를 바라며 매일 작업에 임한다.
랩디에이치의
랜드그라피(각주 1)
한강에 만든 456개의 앉는 쉼터
2020년 한강변 보행네크워크 설계공모 당선을 시작으로 다양한 성격과 규모의 한강변 프로젝트를 연속으로 진행했다. 일종의 프랜차이즈 시리즈 성격의 ‘한강변 공공 쉼터 만들기’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들 프로젝트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접근을 통해 연속된 소규모 대상지 꾸러미에 적절한 창의적 해결책을 제시했다. 한강공원을 이용하는 서울 시민에게 한강의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수많은 접점을 제공해 일상 속 삶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외부 공간 기획과 브랜딩으로서의 조경
개업 초창기 진행한 중국 대형 개발 사업은 한국과 달리 프로젝트의 색과 방향성을 정하는 기획 과정이 일반적으로 수반됐다. 그런데 최근 한국 시행사와 진행하는 개발 사업에서도 이러한 기획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외부 공간 브랜딩의 완성도와 개성에 따라 프로젝트의 생명력이 결정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성공 사례의 힘을 함께 목도한 결과로 보인다.
우리도 과업의 기획이 결정된 뒤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설계 전 선행 작업이라 여겨지던 기획 및 브랜딩 과정부터 참여한 적이 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프로젝트들은 이러한 참여 방식을 통해 조경적 관점을 기반으로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요소를 발굴하고 프로젝트의 성격을 규정하는 앞 단계와 준공 후 이용 행태 예측까지를 포괄하는 전체 단계를 조화롭게 아우르려 노력한 결과물들이다.
S사 복합상업시설은 새로 만들어질 대형 상업 공간 옥상 조경 프로젝트로 실내 리테일의 보조적 역할로만 규정된 기존 옥상 외부 공간을 하나의 매력적인 목적지로 재설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고메 포레스트(Gourmet Forest)와 키즈 와일더니스(Kid’s Wilderness)라 명명하고 구성한 두 층의 옥상정원을 실내외와 두 층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고유한 장소성과 목적성을 가지는 입체적인 옥상 공간으로 기획 및 디자인했다.
평창 청옥산 지방정원은 만개한 샤스타데이지 군락이 매력적인 평창군 청옥산 정상부 고원 들녘에 새로운 지방정원을 기획·설계하는 프로젝트다. 현재의 고유한 경관의 조건과 매력을 면밀하게 존중하면서 다채로운 매력을 더하는 정원 브랜드와 공간 배치, 프로그램부터 제안했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실시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공공 오픈스페이스의 질은 도시의 품격이다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 그 도시의 품격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팁은 가장 일상적 공간인 공공 오픈스페이스를 방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실현의 완성도가 보장되지 않는 공공 공간을 다룰 때도 세심한 조경설계를 통해 완성도를 높이고 문화적으로 성숙한 장소를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도시 속 공공 공간의 인접한 도시 맥락, 주변 경관과의 조화 등 거시적인 부분부터 손스침의 높이, 너비, 각도, 소재 및 마감의 부드러움 정도 등 디테일한 부분에 이르는 모든 사항을 고려하며 디자인한다. 제반 조건과 실익보다는 공공성에 의미를 두고 공공 프로젝트 설계공모 참여나 지자체의 요청 등에 호응해 왔고, 프로젝트에서 공개 공지의 완성도를 본 설계 영역에 못지 않게 신경써왔다.
석남완충녹지 도시바람길 숲 조성사업에서는 완충녹지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도시 바람길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환경적 역할의 숲을 조성했다. 동시에 인접한 구도심의 고질적 문제였던 주차난을 해소하고 지역 주민의 일상 속 필요를 채우는 복합 커뮤니티 장소를 조성해 질 높은 도시 속 공공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이용의 숲을 디자인했다.
성수동 오피스 타워 공개 공지 시리즈는 새로운 공개 공지에 성수동만의 고유한 특별함을 부여하는 프로젝트다. 성수동의 혼란한 변화 속에서 건물 외형의 독창성에만 매달리다 보면 자칫 공공 공간의 질은 뒷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역 주민의 일상을 뒷받침하는 열린 공공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은 건축의 특별함을 배가하는 중요한 무기가 된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각각에 걸맞은 고유한 특별함을 찾아가며 성수동에 위치한 일련의 오피스 타워 공개 공지와 조경 공간의 디자인을 제안했다.
6개월에 한 번은 호미를 들자
현장 연출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경우, 우리는 가능한 시공 현장을 찾아 도면 위 선들이 현실에 구현되는 과정을 눈으로 지켜본다. 단순히 지켜보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며 현장 상황에 맞게 설계를 조정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식물을 나르고 배열한 뒤 호미를 들고 손에 흙을 잔뜩 묻히며 땅에 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생생한 현장감과 설계안에 대한 반추의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현장과 끊임없이 마주하는 경험.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최저선의 태도다.
포옥 정원은 포천에 위치한 대형 카페의 정원을 만드는 디자인빌드 프로젝트였다. 카페 건물은 간선도로에서 꽤나 내측으로 깊숙이 감춰진 위치에 있었지만, 그만큼 앞산과 지천을 정면으로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좋은 배경이 있었다. 건물 1층의 80% 이상을 필로티 구조로 수평적으로 열어놓았고, 하천변으로는 계단식 테라스를 내렸으며, 중정은 2층 위 옥상층까지 수직적으로 열려 있어 입체적 성격을 띤 여러 정원이 공간에서 주연과 조연 역할을 했다. 공간시공 에이원과 시공에 함께 참여하고 현장 식재를 주관하면서 서로 다른 자연 설정의 정원을 연출하는 경험은 책상 위에서의 설계만큼이나 즐거운 과정이었다.
노태우 대통령 메모리얼 파크는 서쪽 지근거리로 북한 지역이 보이는 파주 동화경모공원 내 위치한 고 노태우 대통령의 묘역이다. 이곳에서는 수시로 현장을 방문하여, 현장 사진과 현황 측량도만 계속 들여다보다 자칫 대상지가 위치한 주변의 맥락을 놓치게 되는 경우를 방지하고자 했다. 직접 현장에 가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추모공원의 전경은 아직 진행되지 않은 메모리얼 파크 2단계 설계안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동빙고동 옥상정원은 고급 빌라 개인 정원의 디자인빌드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때론 오래 고민한 도면 위의 배열보다 감각에 의존한 현장에서의 직관적 결정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음을 다시금 느꼈다. 특히 소규모 정원에서 식물을 식재할 경우 직관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수급 불가로 대신 들여 온 식물과 발주서와 너무 다른 크기의 식물을 마주하면 막막함이 앞서지만, 직관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배열하고 심다 보면 이윽고 새로운 아름다움과 마주하게 된다.
불경기에 표류하는 프로젝트
자재비 인상과 금리 불안정으로 건설 경기가 악화된 지 오래다. 지난 몇 년간 설계한 몇몇 프로젝트도 변화한 건설 시장의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재작년에 설계한 오피스 프로젝트는 투자사의 사정으로 착공에 들어가지 못하고 프로젝트 자체가 대폭 축소되었으며, 작년 말 설계를 마친 또 다른 업무 시설은 공동 투자사의 경영 악화로 착공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공공 프로젝트의 사정도 그리 나은 것은 아니라서 겨우 착공은 들어갔으나 원자재비 급상승 등의 이유로 설계안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시공되는 경우도 늘어났다.
남산스퀘어 오피스 대수선 프로젝트는 충무로역(CBD)에 위치한 48년 된 오피스 빌딩을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다. 리모델링되는 기존 건물과 수평 증축 신축동 사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아트리움 공간에 두터운 녹색의 실내형 공개 공지를 설계했고, 기존 동 옥상에 명동과 남산을 직접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정원을 제안했다. 착공 직전 프로젝트가 축소되면서 아쉽게도 우리의 제안은 페이퍼 워크로만 남게 됐다.
수송동 도화서길 업무시설 개방형 녹지는 열린송현녹지광장 바로 맞은편 율곡로와 도화서길 가로에 연접하여 서울 중심부 랜드마크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 이곳에 지상층 공공 영역을 확장하는 넓은 폭의 생태적으로 건강한 시민 휴식 공간인 개방형 녹지를 제안했으며, 높은 공공성을 인정받아 작년 8월 서울시 도시건축 창의·혁신디자인 시범사업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후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설계공모 폴더를
백업하며
우리에게 설계공모는 현실에서 꿈꿔오던 흐릿한 상상을 설계안으로 또렷하게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지난 한 공모의 과정을 거치며 또렷해진 설계안은 공모 마감에 맞춰 제출되고 심사를 거친다. 어떤 설계안은 당선되어 물리적 공간에 실체화될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대다수는 낙선의 아픔을 겪고, 잠시 세상의 빛을 본 것에 만족한 채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만다. 그럼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설계 공모에 도전한다. 언젠가는 또다시 당선의 영예를 안고 우리의 디자인을 현실 공간에 구현하리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설계공모에 도전을 멈추지 않는 다른 이유도 있다. 공모를 준비하며 벼려지는 디자인 고민의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축적되어 우리를 발전시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축적되어 잘 숙성된 고민은 다른 공간을 설계할 때 불쑥불쑥 튀어나올 새로운 아이디어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대전아트파크 기획디자인 국제지명공모, 얼루비얼 아트 파크, 오픈 스레시홀드(Alluvial Art Park, Open Threshold)
삼면이 도로와 철도로 둘러싸인 한계를 가진 대지의 경계를 ‘다층적 통과’, ‘매개’, ‘중첩하는 면과 공간’으로 설정함으로써 새로운 아트파크와 공원의 외부가 다수의 관계를 맺게 하도록 제안했다. 다양한 연결 전략을 통해 고립된 부지의 조건을 도시에 기여하는 새로운 전이 공간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노들 글로벌 예술섬 조성 국제지명 설계공모, 프롬나드 링(Promenade Ring)
노들섬이 한강공원의 새로운 지구로 작동할 수 있도록 노들섬의 단절된 순환과 고립된 장소, 조각난 섬을 하나의 섬으로 이어주는 프로그램의 순환 고리와 동선 전략을 설정했다. 인공화된 현재 노들섬 하단부의 재자연화를 제안했으며, 다양한 하천 전략과 이를 통한 섬 안팎의 상호 전이를 바탕으로 무수한 경험이 가능하도록 공간 프로그램들을 배치했다.
오목공원 맞춤형 리모델링 지명 설계공모, 둥그런 능선의 재탄생
오목공원의 둥그런 능선을 품은 나지막한 둔덕과 오목한 중앙부 광장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땅의 매무새와 분위기를 담는 공간이다. 이 원형의 능선을 평평하고 굴곡진 고리 형상의 광장으로 재탄생시켜 기존의 다단과 벽 중심 공간에서 무장애의 유려한 땅의 생김새로 조형했다. 말 안장 형상의 쌍곡포물면 광장의 높은 부분은 기존 지형의 높은 지대와 연결되고, 낮은 부분은 공원의 지면과 연결되어 입체적인 보행 경험과 개방감, 위요감을 제공하고 가로 경관에서 공원의 내부로 진출입을 자유롭게 하도록 제안했다.
당진종합체육관 및 반다비국민체육센터 건립사업 설계공모, 다섯 운동장과 여섯 공원
체육센터 외부 공간의 지형적 다양성을 야외 활동의 다채로움으로 승화시켜 하나의 체육공원이 아닌 여섯 개의 특징적 조경 영역인 ‘여섯 공원’으로 구분했다. 개별 공원은 이용 계층 간의 적절한 분리 및 교차를 유도하는 전략으로 두 가지 이상의 야외 활동 프로그램을 혼성시켰으며, 이를 통해 도시 중심에서 이격된 대상지를 방문하는 여러 계층 간의 통합 및 커뮤니티 형성을 촉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양천 목동교 하부 MZ스포츠플라자 조성 설계공모, 커플링 멀티-셰드(Coupling Multi-Sheds)
목동에 거주하는 다양한 세대의 도시·문화적 잠재력과 안양천을 따라 형성되는 자연의 생태적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엮고 연결하는 제안을 했다. 젊은 세대와 다른 세대가 함께 어울리고 동시에 사람과 자연이 어울리도록 다양한 수변 프로그램 공간을 제안했다. 활기와 생기가 넘치는 장소이자 젊은 세대의 새로운 외부 공간 문화를 창출하는 그릇으로 기능하도록 세심하게 매만진 공간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아웃트로
그래서 이렇게 쭉 간다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갑자기 20년이 늙는다면? 설계사무소를 못하게 된다면? 수많은 멀티버스의 가능성 중 하나를 살짝 들여다보자.
1,400만 605개의 가능성 중 하나. 아마도 그 안에는 조경문화재단 설립을 시작하고 부족한 기부금을 충당하기 위해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스케치를 그리고 광속 라이노 모델링 알바를 하는 파운더 YJ와 그 옆에서 일 좀 적당히 하라며 나무라는 BW, 자신이 모은 5만 권의 책을 돌보며 재단 도서관의 책을 또 주문하고 있는 84년생 사서 JH, 재단 건물 안팎에서 식물을 가꾸고 가든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는 88년생 가드너 BG, 글로벌 답사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 99년생 해설가 JN이 있을 것이다.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조경의 경계 안에서 느슨한 연대의 형태로 함께 하고 있을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며 줄인다.
각주 1. 그간 『환경과조경』에 특집 등으로 이미 소개된 프로젝트를 제외한 최근 3~4년간의 근작 위주로 담았다.
랩디에이치(Lab D+H)는 201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설립해 현재 서울과 상하이에 오피스를 두고 있다. 서울 오피스는 동시대 문화적 기반을 토대로 외부 공간 기획 및 리서치부터 실시설계 너머의 시공 및 완공 후 모니터링, 관리 및 운영에 이르기까지 외부 공간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 조경적 관점을 바탕으로 외부 공간의 지속적인 생명력을 책임지고 분명한 정체성으로 브랜딩하는 전문가 집단을 지향한다. 인스타그램 @labdh_seoul, 웹 포트폴리오 labdhseou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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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의 도시공원 이야기] 알아서 척척척, 신도시 어린이
에피소드 1. 깨진 무릎
올림픽공원 앞에서 배운 두발 자전거는 일산신도시에서 내 두 발이 되어주었다. 집에서 학원으로 가는 길, 넓게 그려진 그리드가 아닌 하나로 쭉 뻗어나가며 광장과 육교가 사슬처럼 엮여 주요 공간을 잇는 근린 녹지대는 힘차게 굴리는 바퀴 소리와 땅에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교차하는, 그리고 어른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어린이들의 공간이었다.
아직은 자전거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상당한 경사의 육교 램프를 타고 내려오는 도전을 즐겼다. 아주 가끔은 미처 정비되지 않아 옛 주택과 노출 콘크리트 시설물이 밀접해 있어 왠지 모르게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던 일산역 일대도 슬그머니 가보곤 했다. 인터넷이 막 보급되고 있던 때, 바깥 공간이 집보다 즐거웠던 시절, 공원은 어른들의 묵인 아래 ‘위험한 놀이’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실험장이었다. 공원에서 나는 총 세 번에 걸쳐 무릎이 깨졌다. 한 번은 조깅하다가, 두 번은 자전거를 타다가. 그 흔적은 희미하게나마 여전히 내 오른쪽 다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일산의 대단지와 호수공원
1989년 4월 27일 「동아일보」 1면에 실린 ‘1기 신도시’ 두 군데에 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정부는 최근 폭등하고 있는 서울의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 주택공급을 크게 확대하기 위해 경기 성남시 분당동 일대에 5백40만 평 규모, 고양군 일산읍 일대에 4백60만 평 규모의 주택도시 두 곳을 새로 건설, 총 18만 가구의 아파트 및 단독주택을 공급키로 했다. …… 일산 지구는 한수 이북 지역 개발이 그동안 지연돼온 점을 감안, 향후 수도권 개발의 우선순위를 강남에서 강북으로 전환해 수도권 인구를 재배치한다는 정부 의지를 보이기 위해 교육문화 교통시설을 고루 갖춘 한수 이북 지역의 중심도시로 건설키로 했다.”(각주 1)
같은 해 12월 13일 「조선일보」 기사는 “일산신도시 기본계획안을 보면 우선 서울 주변 어느 도시보다 면적에 비해 인구수가 단촐한 반면, 공원 호수 등 녹지 면적이 무척 넓다는 것이 눈에 띈다”며 일산을 “인구 28만 전원도시”로 설명하고 있다.(각주 2) 호수공원뿐 아니라 기타 녹지율에 대한 언급이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데, 기존 도시 개발 방식에서 탈피해 산과 공원을 중심으로 한 높은 녹지율을 지닌 자급자족형 신도시라는 점이 일산의 마케팅 포인트가 되지 않았나 싶다.(각주 3)
앞의 기사처럼 일산신도시 개발 사업의 기본 계획은 기존 도시 개발 방식에 비해 매우 높은 녹지율뿐 아니라 녹지의 분산을 제시했다. 주요 생활권은 모두 고층 아파트로 개발됐지만 그 사이에는 공원과 광장이 거미줄처럼 엮어져 녹지 그리드가 형성되었다. 즉 자가용이 없는 사람이라도 비교적 안전하고 편안하게 도시 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당시 서울의 빡빡한 주택난을 피해 일산신도시라는 새로운 주거지로 온 사람들의 결과 면면은 아마도 비슷했을 것이다. 넓은 녹지, 이제 막 새로 커지는 도시에 대한 낭만적 감상을 가진 3040 젊은 부부의 비율이 높지 않았을까. 간접적 증거도 있다. 1990년 24만 명이 조금 넘던 고양시 인구는 5년 후 50만 명을 넘어섰고, 2000년에는 80만 명으로 늘어났다. 10년 만에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에 더해 1990년대 초중반에는 고양시 인구의 95% 이상이 유년과 청‧장년층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각주 4)신도시 입주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으니, 1990년대 인구 증가의 많은 부분이 일산의 개발과 유관할 것이다.
이곳에 터를 잡았던 ‘신도시 아파트 입주민’들은 새롭게 개발하는 도시가 가진 장단점을 함께 겪으며 어떤 공통된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각주 3에 서술한 자급자족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일산신도시아파트입주민회가 1998년 창간한 잡지를 보면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다.
1998년 3월 1일 첫 호를 발간하고 9월호까지 출간된 『월간 일산』에 수록된 글을 보면 ‘아파트 관리 기술’부터 ‘신도시의 소비 패턴’ 등 신도시 살이의 장단이 보이는데, 매 호 표지를 호수공원의 모습으로 꾸몄다는 점도 눈에 띈다. 짐작하건대 일산신도시에 대한 공통적인 어떤 이미지란 넓은 호수공원 뒤편으로 깨알처럼 펼쳐진 아파트 단지들이었음이 분명하다.
*환경과조경435호(2024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분당 성남 일산 고양에 새 도시”, 「동아일보」 1989년 4월 27일, 1면.
2. “일산 인구 28만 전원도시로”, 「조선일보」 1989년 12월 13일, 7면.
3. 물론 그 이후 1990년대 중반에는 자급자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불거지며 일산신도시 입주자대표협의회의 주도로 정부와 한국토지공사를 상대로 손해 배상 움직임이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산신도시의 이미지는 베드타운에 가까운데, 이 ‘자급자족 도시’가 계획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4. 윤신희, 김지훈, 이세훈, 『데이터로 본 고양 변천』, 고양시정연구원 데이터센터, 2022.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와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문어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예술, 경험, 진정성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도시의 차원에 관심을 두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도시경관 매거진 『ULC』의 편집진이기도 하며, 종종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