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돈, 조경설계 서안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 개장 후 한 달여가 흘렀다. 개장 초기보다는 많지 않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물결이 광장 곳곳에 흐르고 있고, 각종 매체에도 아직까지 광화문광장에 대한 기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10월 9일 한글날 추가로 설치되는 세종대왕 동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광화문광장의 상징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 상징성 때문일까? 오랜 시간 차량에 점거되었다가 시민의 품으로 되돌아온 광화문광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반가움 못지않게 우려와 안타까움도 담겨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플라워카펫과 프로그램분수, 완공 후 추가된 각종 시설물들이 광장다움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물론 플라워카펫이나 프로그램분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고, 추가된 가설 시설물에서 그늘을 피해가며 휴식을 취하고, 그럼으로써 지금의 광화문광장을 즐기는 시민들도 상당하다.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만약 지금과 달리 최종 당선안대로 공사가 되어서 완공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당연히 완공 이후 그늘과 쉴 곳이 부족하다는 여론에 떠밀려 급하게 설치된 상당수의 그늘막과 벤치도 없었을 테고, 설계자와 소통도 없이 들어선 플라워카펫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부터 광화문까지의 너른 공간에는 지금 설치예정인 동상보다 작은 규모의 세종대왕 동상과 우측으로 흐르는 역사물길만이 있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광장다움의 멋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그늘과 쉴 공간을 요구했던 여론은 오랫동안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가며 공사를 하더니 볼거리 하나 없다고 타박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참 쉽지 않은 문제다.
아이디어공모 당시 선정된 5개 당선작 가운데 조경설계 서안의 안은 가장 광장답게 공간을 비워낸 안이었고, 턴키 당선작 역시 그러했다. 오죽하면 설계자인 신현돈 소장은 이렇게 공간을 비워도 아이디어공모나 턴키에서 당선될 수 있을까, 고심이 컸다고 한다. 그럼에도 결국 비워냈고, 당선이 되었다. 그렇지만, 완공된 모습은 사뭇 다르다. 전체적인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비워졌던 곳에 추가된 몇 가지 요소들이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뉴스를 통해 미리 선보여졌던 조감도와 다른 모습으로 시민들을 맞이한 광화문광장을 보며 들었던 궁금증과 의아함은, 사실 지난달에 수록된 집담회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테마파크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주요소인 프로그램분수는 설계 지침에서 꼭 포함시키도록 명문화되어 있던 부분이고, 플라워카펫 등은 전술한 바와 같이 협의 없이 추가되었고, 특정 기간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세종문화회관 계단부터 광장까지를 폭넓게 야외 행사를 위해 쓸 수 있도록 우측에만 계획했던 역사물길이 시공과정에서 좌측까지 추가되었다는 이야기 등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집담회 이후 신현돈 소장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지면에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들과 다른 프로젝트에 대한 경험을 예로 들려준 대목에서, 특히 그러했다. 하여 이번달 조경가 인터뷰에서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청계천(1공구와 청계광장)에 이어 광화문광장을 설계한 조경설계 서안(주)의 신현돈 소장을 모시고, 광화문광장부터 초기 작품인 승지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남기준_아이디어공모에 이어 턴키까지 두 차례의 경쟁을 거치며 고민도 많았을테고, 특히 광화문광장 일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을 것 같다. 광화문광장 조성의 가장 큰 의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신현돈_과거 육조거리가 있던 한양의 도시 용량은 인구 10만의 수도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거대도시의 하나로 인구 1,000만이 넘는 메가시티가 되어버렸다. 광화문광장이 육조거리가 있던 터에 들어섰지만, 과거의 장소와는 아무래도 다른 역할과 도시기능(교통, 도시인프라, 상업지구 등)을 수렴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광화문광장이 세계에서 가장 큰 중앙분리대라는 비판적 시선도 있는데, 이번에 조성된 광화문광장은 하나의 시발점이자 허브로서 현대판 육조거리의 비종결적Open Ended 설계로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의 광장 조성이 그 자체로 자기완결적인 사업이 아니라 새로운 원도심 구조의 재편을 촉발하는 발화점이 되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다. 즉 광화문광장을 허브로 해서, 주변의 경복궁, 정부종합청사, 시민열린마당, 미대사관, 문화체육관광부 건물 등이 새로 네트워킹 되고 재편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이 일대가 서울다운 경관 브랜드, 한국을 상징하는 문화브랜드로서 재탄생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대사관 뒤편인 중학천길에 있던 한양 북촌과 백운동천이 흘렀던 효자동 일대의 서촌과 같은 문화적 잠재자원들도 있으니, 그런 큰 틀에서의 도시공간 재편이 체계적으로 추진되기를 바래본다.
남기준_9월호 에디토리얼에도 썼지만, 개인적으로 해치마당에서 점진적으로 올라가면서 바라보이는 스카이라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설계자로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신현돈_이번 광화문광장 설계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차량과 은행나무가 점령하고,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왜곡된 국가상징축을 바로 잡는 것이었다. 서울의 원도심을 과거의 기억으로 환원시키고 서울의 역사자원을 드러내고 경관을 강화시킴으로써 국가 상징축의 회복이라는 이상을 실현코자 했던 것이다. 아울러 세계의 어느 나라 수도에도 없는 서울만의 독특한 경관요소이자 잠재력이라 할 수 있는, 주산인 북악산과 조산인 북한산, 정궁인 경복궁과 광화문이 만들어내는 웅장하고 서정적이며 서사적인 경관을 점진적으로 연출하여 국가상징 경관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기억을 담아내고 싶었는데, 이를테면 육조거리의 폭은 역사물길로 표현해놓았고, 국가 중심축은 광화문 홍예문의 중심에 장대석 포장으로 되살렸으며, 해태상의 원위치 복원과 월대 표현, 황토현 재해석 등을 시도했다. 또 역사물길은 경복궁의 명당수 개념을 재해석한 것이고, 물의 출수부 디테일은 향원지의 열상진원과 창경궁 통명전의 열천 등에서 선인들의 지혜를 빌어온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광화문 사거리를 횡단하는 역사물길도 좋아하는 부분인데, 획일화된 도시에서 작은 제스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검토 단계에서 차량 통행으로 파손될 수 있다며 우려가 많았는데, 과거 한양의 물길을 재해석한 이런 작지만 의미 있는 디테일이 역사 고도古都의 시각적 흔적을 표현함으로써 서울 도심의 경직성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아이디어 현상 때는 세종문화회관 지하 유턴 차도를 도심재생 문화갤러리로 만드는 제안을 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