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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A]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다
한참을 망설였다. 분홍빛이 살짝 도는 여린 꽃잎이 마치 겹겹이 두른 여인의 농염한 치맛자락처럼 화려한 작약과, 한 달쯤 물을 안 주어도 끄떡없이 늘 푸르름을 선사할 스투키 사이에서 한동안 움직이기 힘들었다. 결국 스투키 화분을 옆구리에 끼고서 아쉬운 발걸음을 L의 사무실로 향했다. 실용주의자인 L은 “꽃은 금방 시들 잖아”하며 스투키를 반겨주었다. L은 공동으로 쓰던 사무실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개인 사무실을 열게 되었다. 한동안 집 서재를 사무실로 꾸밀 것인지 고민하다가 얼마 전 작은 사무실을 얻었다. 계획된 일은 아니었지만 막상 닥치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며 고객 유치를 위한 궁리로 부산한 눈치였다. 특히 새로 마련한 공간이 비좁다며 엄살을 떨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가구 배치계획을 들려주곤 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자기 자리를 찾아간 화분을 보니 지난달 창업 특집(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을 위해 찾았던 강연주 소장과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사실 번듯한 사무실 공간을 마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직원을 뽑은 것은 회사를 만들고 1년쯤 지났을 때다. 당시 자리를 빌려 쓰던 사무실에서 나오게 되면서 신혼집 거실에 책상을 놓고 직원들 한두 명을 불렀다.”
강 소장의 마지막 말은 나를 순식간에 30년 전으로 데려갔다. 지금은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이사 후 갓 생긴 내 방이 다시 없어지고 동생과 한 방을 쓰게 된 것이 불만스러웠던 것 같다.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어느 날 얼굴이 하얀 아저씨가 “오늘부터 매일 올 거야”라고 말하던 장면이다. 그리고 집에서 넘쳐나는 청사진 뒷면에 그림을 그리던 기억, 버스 타는 법을 교육시킨다며 청사진 굽는 가게에 혼자 보냈던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지 못해 울면서 돌아왔던 장면들이 끊어진 필름을 이어붙인 듯 재생되었다. 아버지가 창업했을 때가 당신 나이 40일 때였다. 당시 어렸던 나는 집에서 설계사무소를 시작했던 아버지가 이상하게 느껴졌고 그런 인상은 그대로 내 안에 봉인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번듯한 사무실을 열었고 그 후로 오랫동안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러한 부침 가운데서도 ‘설계’를 고집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그것을 대물림하려는 바람은 끝까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사업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차분한 목소리로 창업 당시를 설명하는 강 소장을 바라보며 기억의 빗장이 풀리고 지금 내 나이가 30년 전의 아버지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업 전선에 뛰어든 이래로 나에게 창업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제 주변의 가까운 선후배들이 사무실을 열거나 창업 계획을 세우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소심한 월급쟁이인 나는 지인들이 새로 오픈하는 사무실을 보면, ‘저 임대료를 감당하려면 일을 얼마나 해야 할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혹은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 당당하게 뛰어드는 (혹은 떠밀려가든) 그들의 용기가 부럽기도 하다. 심리 상담을 업으로 하는 L은 이런 나의 넋두리를 듣더니 엷은 미소를 지었다.
“용기의 임계점은 변화의 시작이야. 용기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변하기 싫다는 거고. 대신 남이 변하길 바라지.”
“망설인다는 것은 회피인 거로군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또 피하다보면 고여서 썩게 마련이지.”
“흔히 ‘창업한다’를 ‘독립한다’고 표현하잖아요.”
“그래, 독립은 새로운 시작이지.”
“지난 달 칼럼에서 김정윤 소장이 ‘사무소에서 일하되 소장처럼 일하면 된다. 그렇게 주인처럼 설계하다 보면 자연히 어떤 위치에 있던 소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한 말도 창업만큼 주도적인 삶을 말하는 듯해서 인상적이었어요.”
“그 집단에서 자아가 독립했다는 의미지.”
“이제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요(웃음)”
“음. 용기를 낼 때 말이야. 접어야 할 것과 접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아는 게 아닐까?”
“어렵네. 그런데 용기인줄 알았는데 객기일 수도 있잖아요.”
“용기는 미래를 예측하는 거고, 객기는 예측을 하지 않는 거지. 용기가 낙천이라면 객기는 낙관?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전체로 볼 때와 하나의 점으로 볼 때의 차이가 있어. 전체로 받아들이면 용기가 없어지지만 멀리서 점으로 보면 용기가 생겨. 지금의 실수도 멀리 보면 과정이거든. 점들이 모여 삶이 되는 거니까, 멀리서 보면 용기를 못 낼 이유가 없어. 근데 말이야, 저 화분은 창가에 놓는 게 더 어울리지 않아”
그날 우리는 옥상 달빛 아래서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수다를 떨었다. L은 주변 아파트 단지의 불빛을 가리키며, 주민들을 모두 고객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들려주었다. 30년 전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미래를 낙관했을까, 혹은 변화가 두렵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두렵지만 용기를 냈던 걸까?
이번 달 칼럼이나 오피니언 란에 도착한 독자편지를 보면 지난 창업 특집이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창업을 앞둔 이들 뿐만 아니라 학생과 직장인들, 그리고 오래 전 창업했던 선배들까지.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변화를 도모해야 할 순간이 언제인지 고민하고 시작을 망설인다.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나를 포함해 용기 있는 독립을 꿈꾸는 많은 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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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Editor’s Library: Hallo?-er det noen her?
때 이른 더위가 서울을 덮쳤다. 지난주에는 32도를 웃도는 날씨에 올해 첫 폭염 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굳이 최고 기온을 확인하지 않아도, 출퇴근길에 만나는 사람들의 가벼워진 옷차림과 태양의 열기에 익어 말랑말랑해진 아스팔트 도로가 여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낮도 길어졌다. 퇴근 후, 집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해 역사를 빠져나갈 때면 어두웠던 하늘이 전보다 밝아졌다.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오기 전의 초여름 밤은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점점 마음이 급해진다. 낮이 길어져 밤이 짧아진 데다가 열대야가 찾아오면 사라져 버릴 이맘때의 여름밤이 문득 아까워지는 것이다. 요즘엔 땀이 나도 집으로향하는 계단을 뛰어서 오를 때가 많다.
서양에서는 예로부터 한여름 밤—일 년 중 가장 낮이 긴 하지의 전날밤—에 신비로운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고 셰익스피어는 이에 착안해 『한여름 밤의 꿈』1을 썼다. “깊은 밤 아름다운 그 시간은 이렇게 찾아와 마음을 물들이고 영원한 여름밤의 꿈을 기억하고 있어요. 다시 아침이 와도 잊히지 않도록”2이라고 여름밤을 몽환적으로 묘사한 김현식의 노래가 수차례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여름밤에 진행되는 각종 행사의 홍보 문구에 ‘환상’이라는 단어가 곧 잘 쓰이는 걸 보면, 꽤 많은 사람이 여름밤에 신비로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의 주인공인 요아킴도 여름밤의 기이함에 대해 알고 있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 요아킴의 동생을 임신한 어머니가 출산이 임박해 아버지와 함께 집을 비운 사이 믿을 수 없는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곧 태어날 동생에 대해 생각하며 밤하늘을 바라보던 요아킴은 어둠을 쏜살같이 가로지르는 별똥별하나를 발견한다. 뒤이어 정원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정원의 사과나무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외계인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삽화에 표현된 외계인 ‘미카’의 외양은 영화 ‘이티E.T.’의 외계인과는 조금 다르다. 머리카락이 없고 머리가 몸보다 상대적으로 크지만, 팔다리의 길이나 눈, 코, 입의 형태와 위치 등이 사람과 상당히 비슷하다. 무엇보다 미카에게는 손가락 끝을 통해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이 없다. 대신 미카는 유창하게 지구의 말(정확히는 노르웨이어)을 구사할 줄 안다. 미카는 자신을 보고 혼란에 빠진 요아킴에게 태연하게 묻는다. “너는 누구니?”3
책의 저자인 요슈타인 가아더Jostein Gaarder는 철학 입문 소설로 불리는 『소피의 세계』의 작가다. 『소피의 세계』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냈던 그의 능력은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그는 주인공 요아킴과 외계인 미카의 대화를 통해 우주의 탄생과 인간의 역사, 삶의 가치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심오한 물음의 답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 초반의 미카와 요아킴의 대화는 독자에게 열린 마음으로 책을 읽어줄 것을 은근히 요구한다.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미카는 요아킴에게 왜 물구나무를 서있냐고 묻는다. 요아킴은 황당해하며 미카를 땅 위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미카는 자신이 거꾸로 요아킴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어 미카는 달에 갈 때 위쪽으로 여행하는지, 아래쪽으로 여행하는지 묻고 요아킴은 자신 있게 위쪽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넌 달에 내릴때 달 표면으로 날아와 앉잖아”, “그리고 네가 그 곳에 가 있을 때는 이 지구를 올려다보잖니”, “그럼 이 별과 달의 중간 어딘가에는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되는 데가 있겠네”4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미카의 질문에 요아킴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게 맞다고 답한다. 단순히 보자면 ‘중력’이라는 과학적 개념을 깨닫게 하는 대화지만, 이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과 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사실도 함께 다루고 있다. 이 둘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져 ‘진화론’에 다다른다. “그렇지만 우린 다른 별에서 왔는데 이처럼 닮았다는 게 이상하지 않니”5라는 대목에서 미카의 생김새가 사람과 비슷하게 설정된 이유를 깨닫게 된다. 둘은 눈과 코, 입, 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더 나아가 온 우주의 생명체는 하나의 지점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비록 산 꼭대기로 오르는 길은 많을지 모르지만 산은 하나야. 우리가 많이 닮은 이유는 우리 각자가 산을 오르는 사람이기 때문일 거야. 우린 그 곳에서, 그 산 꼭대기에서 함께 커다란 기념비를 세울지도 몰라”6
요아킴의 부모님이 요아킴의 동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미카는 한여름 밤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자는 동안에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단다”7는 요아킴의 말처럼 그날 밤의 일이 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책을 통해 요아킴과 미카를 만났고 그들의 대화를 통해 생명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벌써 6월이다. 1년의 반이 흘렀고 자연스레 지난 반년을 뒤돌아보게 된다. 알찬 시간을 보낸 이에게는 즐거운 일일지 모르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삶을 평범하다고 느끼며 자신이 아무 쓸모 없는 존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에게 힘이 될 만한 미카의 말을 전한다. “그냥 돌멩이라고? 이 세상에 있는 건 아무것도 평범하지 않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모두 그 커다란 수수께끼의 일부분이니까. 너와 나도 마찬가지야. 우린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수수께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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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시대에 반응하는 몸
Wandering Eyes, Curator's View: Bodily Reactions to an Era
붕괴로부터 저항의 몸으로
몸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세기말적 불안과전환 속에서 몸은 여러 화두로 전개되었다. 당시 미술계에서는 몸과 욕망, 몸의 풍경,몸의 정치학, 몸의 변형과 확장 등을 소재로 한 전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2010년이 넘어가며 몸은 예술의 주된 화두에서 사라져 가는 듯 했다. 사회적 침체,경제난, 재난, 파국 등 연일 반복되는 충격의 상황에서 몸이 더 이상 도발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반응하는 몸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계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최근 몸의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몸짓은 미미하나 거센 진동으로 감지된다.
수동적 몸의 저항: 히지카타 다쓰미-방언
얼마 전 광주에 다녀왔다.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에서 ‘히지카타 다쓰미-방언’(5월 6일~8일) 프로그램을 보았다. ‘히지카타 다쓰미-방언’은 1960년대 일본의 전후 사회적 암흑기에 탄생한 ‘부토舞踏’를 오늘날의 관점으로 조명한다. 당시 일본의 암울한 정치ㆍ사회적 상황에 가역적으로 반응한 히지카타 다쓰미HijikataTatsumi(1928~1986)는 쇠약한 모습으로 무대 위에 쓰러져 다시 서지 못하는 수동적인 몸을 격하게 보여주었다. 마치 나병 환자와 같이 허물어지는 그의 몸은 주저앉은 채로그 움직임을 이어나간다.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지고 있는 인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는 인간,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지고 있는 인간… 이런 완전한 수동성에는, 그럼에도불구하고, 인간적 자연의 바이탈리티가 역설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분명하다.” _ 히지카타 다쓰미, 형무소로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건축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신지도제작자’(송원아트센터, 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송원아트센터, 2014), ‘Hidden Dimension’(갤러리 스케이프, 2013)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스케이프 책임큐레이터, 갤러리킹 공동디렉터,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15년 동북아시아 도시 리서치(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를 진행했으며, 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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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헤일, 시저!
Cinema Scape: Hail, Caesar!
나는 비디오 가게에서 어떤 영화인지 모르고 첫 번째 칸부터 차례로 비디오를 빌려보던 시절부터 코엔 형제 감독의 팬이었다. 그들의 초기 영화인 ‘아리조나 유괴 사건’(1987)은 여러 번 봐도 재미있다. 코엔 형제 특유의 코미디 코드가 나와 맞았는지 사소한 장면에도 배를 잡고 웃었다. 최근 그들의 영화는 무거워졌고 잔혹해지기도 했지만 이번 ‘헤일, 시저!’(2016)는 코미디에 가깝다. 다시 그들의 초창기 영화에 반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해서 반갑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는 가볍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에 종사하는 이들의 민낯과 이들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대형 영화 제작사 매니저의 27시간을 통해 대중문화인 영화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대 배경은 할리우드 시스템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접어드는 시점인 1950년대 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사람이든 사회든 사유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없지만 그럴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 되면 기존 노선에 반기를 드는 집단이 생기고, 새로운 비전을 가진 혁신이 밀려온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새로움을 받아들일 것인가. 고된 현재를 유지할 것인가.
세계 대중문화를 이끄는 대형 영화 제작사의 총괄 매니저가 하는 일은 허접하기 짝이 없다. 그의 일과는 새벽부터 멍청한 배우가 친 사고를 수습하는 일로 시작된다. 진행 중인 촬영과 편집을 점검하는 기본 업무 외에도 수중 발레극 주인공의 임신 문제 같은 배우의 사생활도 해결해야 한다. 뉴욕의 사장은 서부 영화 전문 배우를 드라마 주인공으로 낙점하는데 감독은 그의 ‘발 연기’에 결국 폭발하고 영화사 대표 에디 매닉스(조슈브롤린 분)에게 불평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대형 시대극 ‘헤일, 시저!’의 주인공이 가장 중요한 라스트신을 앞두고 납치당한다. 이런 문제들에 봉착한 그의 주변에는 쌍둥이 기자가 기삿거리를 캐내기 위해 번갈아가면서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코엔 형제다운 유머는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헤일, 시저!’의 종교적인 부분에 대한 사전 검토를 위해 자문 회의를 개최하지만 계파를 대표하는 종교인들은 엉뚱하게도 신의 본질에 대한 논쟁만 한다거나, 납치당한 주연 배우가 약 기운에서 깨어날 때 문 밖에 들리던 무시무시한 기계 소음이 알고 보니 청소기 소리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몸값인 10만 달러를 마련했지만 가방이 작아서 잘 잠기지 않아 애를 쓰는 모습도 웃음을 자아낸다.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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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중세, 정원의 암흑 시대였나?
History of Landscape Architecture with 100 Scenes: Was the Medieval Age the Dark Age of Gardens?
#84
중세와 이상도시 - 성 갈렌 수도원의 설계도
“너희 동양인들이 최고의 문명 수준을 누리고 있을 때 우리는 아직 원숭이처럼 나무에서 살고 있었어.” 독일 친구들로부터 여러 번 들었던 말이다. 물론 심하게 과장된 자기 폄하적 발언이지만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칸디나비아 등 현재 유럽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국가들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이슬람 문화는 유럽 대륙을 빙 둘러 감싸며 전개되었다. 주변에서 고대문명이 나타났다 스러지는 동안 유럽 대륙은 문화의 블랙홀이었다. 아시리아의 공중 정원, 페르시아의 파라다이스를 거쳐 주옥같은 이슬람 정원이 만들어지고 있을 때, 유럽 대륙의 정원은 아직 태동도 하지 않았다. 정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정원은 먹고살기 위한 필수 품목이었으므로 사방에 존재했다. 다만 현대인이 기대하는 정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정원, 즉 아름다운 휴식 공간, 도시 속의 자연, 혹은 장식 정원 등에 부합하는 개념이 없었을 뿐이다. 중세에는 정원이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쓰였고 때로는 몹시 모호했다. 현실적인 개념과 상징적인 개념이 나란히 공존했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는 와일드한 자연을 일궈서 얻어낸 결과물을 모두 정원이라고 했다. 우리의 밭에 해당한다. 채소밭, 약초밭, 사과밭 등이 그들의 정원이었다. 중세는 기독교가 삶의 구석구석까지 지배했던 시대다. 죽은 뒤 돌아가게 될 천국의 정원과 이 세상의 정원을엄격히 구분했다. 이슬람 정원처럼 하늘나라의 것을 미리 앞당겨 이 세상에 재현해 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중세 유럽인들에게는 성당이 바로 하늘을 대신하는 곳이었다. 성당에 들어서면 우선 전실을 통과해야 하는데 바로 이곳을 파라다이스라고 불렀다. 중세 기독교의 파라다이스는 의외로 정원이 아니었다.
5세기 말엽, 게르만족이 로마를 무너뜨리고 중부 유럽의 주도권을 차지했던 시점. 거기서부터 고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대를 중세라 한다. 고대의 게르만족은 짐승 털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농경 생활을 했으며 나무를 신으로 모셨고 많은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뛰어난 전사였다. 이 전사들이 로마를 멸망시킨 뒤 나라를 세우고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이제 막 자리 잡아가는 국가적 체계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종교가 필요했다.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가 합당해 보였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로마 제국의 멸망, 유럽 패권의 북상, 그리고 전쟁. 이렇게 부산했던 중세 초기는 예쁜 정원을 만들기에 적합한 토양이 아니었다. 게르만족의 프랑크 왕국이 로마 문화를 계승했다고는 하나, 아직 문화 생활을 할 수준은 아니었다. 중세의 사회는 기사, 수도사, 농부의 세 계층으로 이루어졌다. 기사는 국가의 안보를 담당하는 전사들이었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왕이었다. 농부는 양식을 생산하여 모든 사람을 먹여 살렸다. 수도사에게는 가장 복합적인 역할이 주어졌다. 이들의 본업은 영혼을 구제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지만, 그 외에 학문과 기술의 연구, 교육, 질병의 치료도 이들의 몫이었다. 왕과 기사들이 대개 문맹이었으므로 왕실에 출장을 나가 사무와 재무를 돌보는 것도 수도사들의 과제에 속했다. 그러므로 수도원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했다. “왕과 그의 무리는 수 세기 동안 전쟁에 길든 전사였다. 게다가 왕들은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이 역시 중세만의 특징이었는데 새로획득한 영토의 통치권을 확립하고 백성들에게 ‘내가 여기 있다’라는 사실을 알려야 했으며 또한 변방이 늘 시끄러웠기 때문에 왕은 말과 수레에 부하와 식솔을 태우고 이 지방에서 저 도시로 떠도는 생활을 했다. 왕실만 떠돌았던 것이 아니다. 황제가 큰 원을 그리며 떠돌았다면 영주들은 각자 자기 영토에서 작은 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리고 그 사이를 수많은 상인이 떠돌았고, 수도사들과 순례자들이 떠돌았으며, 기술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돌았고, 도적들이 떠돌았고 기사들이 전쟁과 모험을 찾아 떠돌았다. 심지어는 농부들도 떠돌았다. 바이킹에 쫓겨 남쪽으로 가고, 북에서 오는 낯선 사람들을 피해 서쪽으로 가고, 새로운 농지를 찾아 동쪽으로 갔다. 10세기까지 중세는 이렇게 번잡한 시대였다. 이렇게 부산하던 시대에 유일하게 부동의 정점을 이루었던 곳이 수도원이었다. 당연히 수도원에서 정원이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1
수도원에는 두 가지 유형의 정원이 있었다. 하나는 실용 정원으로 의약을 생산하는 약초원이 핵심을 이루었고 식량을 자급자족했으므로 방대한 농경지와 저수지 및 과수원을 소유했다. 이들은 속세에 속하는 곳이었다. 한편 수도원에는 세속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별개의 공간이 있었다. 대개 성당 동쪽에 수도사들의 거처가 붙어있었는데 그곳의 중정은 사제들만의 공간이고 신성한 곳이었다. 이를 ‘클로이스터cloister’라고 했다. 기독교의 성당과 수도원 건축은 새로 고안된 것이 아니라 고대 다신교 시절의 신전 건축에서 출발했다. 본래 존재했던 비너스 신전이나 이시스 신전에서 주인을 몰아낸 뒤 그 안에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당으로 썼던 것이다. 기독교가 동쪽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전파되었으니 전달 루트를 따라 소아시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지역의 신전들이 먼저 성당으로 탈바꿈했고 그 곳에 최초의 수도원들이 설립되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건축 양식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하여 오리엔트와 지중해 지역의 특징적 건축, 즉 주랑으로 둘러싸인 ‘ㅁ’자 형태의 건축이 수도원 건축 양식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팔라이스트라2나 로마의 페리스틸리움3을 기억할 것이다. 원칙은 그와 같지만 용도가 달라지니 이름도 새로워져서 클로이스터라고 불렀다. 클로이스터는 본래 사제들의 통행 공간이었으므로 기능에 맞게 잔디를 깔거나 석재로 포장했다. 그러나 어느 모로 보나 정원이 될 운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중앙에 분수나 우물을 두고 자연스럽게 사분 정원이 자리 잡아갔다. 지금은 클로이스터를 정원과 연결 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세에는 아무도 이곳을 정원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만큼 중세의 정원 개념이 지금과 달랐다는 뜻이다.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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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질리언스 읽기] 21세기 패러다임의 변화, 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Reading the Resilience: Beyond the Sustainability
지속가능성의 두 얼굴
1990년대 이후 국제 사회가 주장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성장’은 매우 모순적인 용어다. 지나친 경제 개발과 무분별한 환경 파괴로 촉발된 이 용어에는 사회·경제·환경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선량한 인간’과 자원을 착취하는 ‘교활한 인간’의 모습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활한 인간’은 친환경 기술이라는 명목으로 고효율의 녹색 기술을 개발하여 자연 자원을 착취했으며, 착취한 자원의 이용을 통해 인간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연자원에 대한 비용을 자연에게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으며, 이는 자연 자원 고갈을 비롯한 기후 변화, 자연 재해 등을 초래했다. 즉, 우리 사회는 현재 닥친 위기의 핵심을 보지 않았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여 안일하게 대처했다. 그 결과, 오늘날 인간 사회는 오히려 ‘지속불가능한 성장’에 갇혀 경제 침체, 생태계 붕괴 등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현대 과학 패러다임으로의 혁명을 일으켰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기존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그는 ‘빛=파동’이라는 물리학계의 정설을 뒤엎고 ‘빛=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안했으며,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때까지 풀리지 않았던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인류에게 닥친 새로운 위기도 ‘지속가능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현재 직면한 위기의 핵심은 ‘지속가능성’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거보다 복잡해진 사회 시스템이 ‘최적화’, ‘효율성’과 같은 일부 가치에 치중되면서 예측하지 못한 변화와 교란들이 인류를 위협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원한다면, ‘효율적인 최적화된 시스템’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교란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 무대 뒤에 있는 ‘선량한 인간’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무대 위로 올리기 위해서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기발하고 새로운 사고’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기존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지구 환경을 하나의 평형 상태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평형 상태란 물질 혹은 에너지의 유입과 유출의 양이 같아서 마치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안정된 상태를 말한다. ‘지속가능성’ 패러다임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지구의 ‘안정된 상태에 최적화된 시스템’1을 구축했다. 그러나 지구 환경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간단한 예로 여름철 강우 패턴을 살펴보자.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1시간 동안 50mm 이상 폭우는 5.1회에 그쳤으나 2000년대 들어서서 12.3회로 급증했다. 급증한 국지적 폭우는 수질 오염, 토양 침식, 도심 홍수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이러한 위협은 근래에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나 강남역 침수 등으로 가시화되었다. 이와 동시에 최근 2015년에는 극심한 가뭄도 찾아왔다. 중부 지역의 누적 강수량이 평년 대비57%에 그쳤고, 바닥을 드러낸 소양강댐은 방류량을 80% 이상 줄여 생활용수 제한 급수를 단행하게 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다. 과거의 강우 패턴에 최적화된 우리나라의 수자원 확보는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큰 사회적·경제적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 겨울철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겨울 제주도에서의 예상치 못한 이틀간의 폭설은 9만 명의 여행객의 발을 묶었고, 59억 원의 피해와 86억 원의 복구 비용이라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했다. 변화하고 있는 환경에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점차 마비되고 붕괴되고 있다.
연재 순서
1. 21세기 패러다임의 변화,지속가능성을 넘어 리질리언스로
2. 리질리언스 개념의 등장과 확장
3. 새로운 사고의 틀, 리질리언스 사고
4. 리질리언스 향상을 위한 전략, 적응과 전환
5.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1: 도시 리질리언스
6.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도전2: 해안 리질리언스
전진형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습지생태계 조성과 생태환경회복기술 개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활용한 도시 내 저탄소 경관 디자인 요소 개발 및 야생생물 군집 변화 모델링 등 생태계 복원 및 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학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다양한 디자인 시뮬레이션을통해 설계 단계부터 시공 후까지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여 대상지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생태적 조경 설계와 유지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태환경의 보존과 인간의 이용 및 개발의 조화라는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한 생태회복성(eco-resilience)에 관심을 갖고 이를 조경 분야에서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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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의 경제학] 공원의 적정량을 비용편익분석으로 도출할 수 있을까
Economics of Landscape Architecture: Can We Estimate the Proper Amount of Parks by Cost-Benefit Analysis?
비용편익분석, 벗어나기 힘든 굴레
비용편익분석cost benefit analysis은 실용적인 수단이다. 이름 그대로 해석하자면 어떤 사업 또는 투자에 소요되는 비용과 기대되는 편익을 비교하는 (그래서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타당성 검토feasibility study는 정부의 공공사업이나 민간의 수익사업뿐만 아니라 개인이 대학에 진학할지를 결정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경제학에서는 비용편익분석이라는 단어를 주로 정부가 공공재를 공급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사용한다. 정부가 공원의 조성여부를 비용과 편익을 비교하여 결정하는 것은 비용편익분석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호에서 설명했듯이 공원과 같은 공공재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장기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적정량이 얼마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용편익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정부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편익이 비용을 초과하는 공원만 빠짐없이 조성하면 사회적으로 적정한 공급량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비용과 편익이 제대로 추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공원뿐만 아니라 어떤 공공재에 대해서도 우리는 비용과 편익을 정확하게 계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 철도, 발전소 등 공공사업에 비용편익분석은 널리 활용되고 있다. 때로는 고속도로가 산을 뚫고 교각을 놓아가며 울창한 수림을 관통해야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고압의 송전탑이 신성한 능선들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비용과 편익을 추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비용편익분석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이를 대신할 합리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할 능력은 없지만 대체할 수단 또한 없는 것. 이것이 비용편익분석에 대해 우리가 가진 딜레마다.
공원에 드는 비용
비용을 추정하는 것이 어려운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비용편익분석에 필요한 것은 회계적 비용accounting cost이 아닌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다. 경제학에서는 어떤 자원을 사용하는 데 드는 기회비용을 ‘그 자원을 다른 용도로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 중 가장 큰 값’이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공원에 심는 나무의 기회비용은 그것을 얼마에 샀는가(회계적 비용)가 아니라, 그것으로 집을 짓든 젓가락을 만들든 공원에 심기 위해 포기한 다른 모든 용도의 가치 중 가장 큰 값이다. 그런데 이 값을 어떻게 일일이 계산하여 비교한단 말인가? 다행히 경제학자는 시장이 완전하다면 시장가격market value에 이 값이 잘 반영된다는 논리로 수고를 피해간다. 공원에 드는 비용은 공원에 투입되는 자원들의 시장가격을 합하여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장가격은 내가 시장에서 나무를 사는데 지불한 액수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나는 상황에 따라 나무를 싸게 살 수도 있고, 비싸게 살 수도 있다. 때로는 원래 가진 나무가 있어서 추가적인 현금 지출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상황일지라도, 내가 나무를 공원에 심는다면 나는 합리적인 당사자들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주고받았을 시장가격을 지불한 것이다. 바로 이 값들을 합해야 공원에 드는 비용이 계산된다.
한편 공원에 드는 비용이 오늘 전부 지출되지 않고 미래에 조금씩 지출되는 것도 비용의 추정을 어렵게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슈가 숨어 있다. 첫째, 비용이 미래에 지출되면 우리는 그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예측’해야 한다. 경제학자가 아닌 점쟁이에게도 미래의 예측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비용의 추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틀린다고 봐야 할 것이다. 둘째, 총지출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점의 미래 지출을 오늘의 값으로 환산해야 한다. 오늘의 백만 원과 10년 뒤의 백만 원은 그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환산의 비율이다. 이 비율을 정하는 과정에는 분석가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결국 누가 추정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값을 놓고 우리는 공원의 조성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셈이다.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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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디테일] 톤
다르게 할 것을 요구 받는다. 아주 노골적으로. 새롭지 않으면 늘 뒤쳐진 낡은 것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한다. 심지어 능력 부족이라는 오명과 함께 지켜온 자리마저 위협받는다. 경쟁 시대의 현실이다. 종교는 없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경의 한 구절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 이런 내게 혹은 나와 닮은 이들에게 새로움을 강요하는 현재의 분위기는참 견디기 힘들다. 조경은 살아있어 항상 변하는 재료를 사용하는 아주 독특한 분야다. 입이 아프게 말하고 귀가 따갑게 듣던 이야기다. 이렇게 늘 새롭게 변화하는 재료를 사용해 계획하고 만드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새로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혹시 말(보고서)로는 시간이 지나며 더 아름답게 변하는 경관 중심의 공간을 계획했다고 하지만, 변화는커녕 낡아빠진 형형색색의 시설물로 가득한 공간을 보여주었기에 사람들이 우리의 거짓말을 알아채 버린 것일까.
이 연재를 하며 나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과연 소재를 많이 아는 것과 그 구법에 능통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게 굳이 필요한 것인가? 뻔하지만 답도 없는 생각으로 머리만 바쁘다.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좋은 공간적 ‘톤tone’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사전에서 찾아보면, 톤은 본래 음악 용어로 일정한 결합 관계를 가진 몇 개의 음이 융합되어 만드는 음조를 말한다. 회화에서는 개개의 색채가 명암, 농담의 차이에 따라 형성되는 조화를 말한다. 색의 명암, 강약, 농담 등이 나타내는 미묘한 차이와 그 혼합으로만들어내는 조화로운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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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커먼 그라운드
시커먼 남자 세 명이 함께 가기에 어색한 공간들이 있다. 백화점, 파스타 전문점 그리고 벽화마을…. 여자와 동행한 남자들을 간혹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왠지 자발적으로 방문한 표정들은 아니다. 이 장소들이 모든 여성들의 로망은 아니지만 여성이 우점 성별임에는 틀림없다. 화창한 5월에 방문한 건대입구의 커먼그라운드는 컨테이너 적층 건축의 인지도를 급격히 상승시킨 히트작이다. 비슷한 스타일의 프로젝트 가운데 유독 큰 주목을 받은 커먼그라운드는 오프라인 상에서 건축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해시태그에 의한 공간감의 확대 재생산을 논할 수 있는 곳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쇼핑, 파스타, 벽화의 세 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커먼그라운드는 여성 취향을 저격하는 종합 세트장으로서, SNS 게시물에 최적화된 다양한 배경을 제공한다. 배경이 주 임무가 된 공간을 부정적으로 볼 생각은 없다. 자칫 피상적으로 흐를 수 있었던 공간감은 구조와 디테일의 세련됨으로 극복하고 있다. 새로운 핫스팟에게 상위 검색 자리를 물려준다 할지라도 공간의 기본기가 제법 탄탄한 커먼그라운드는 계속해서 즐겁게 활용될 수 있는 공간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_ 정욱주
컨테이너는 물건을 운반하는 수송 수단이기도 하지만 대표적인 가설 건물이기도 하다. 커먼그라운드에는 일반 가설용 컨테이너가 아닌 좀 더 튼튼한 수송용 컨테이너가 쓰였다. 하지만 가볍고 쉽게 해체 가능하리란 이미지는 잃지 않았다. 어릴 적 최초의 가설 건물에 대한 기억은 원두막이다. 몇 개의 기둥과 짚더미를 대충엮어 만든 원두막에는 딴 세상이 있었다. 고작 2m 남짓한 높이였지만 그곳에 오르면 구름 위에 올라선 것 마냥 시원하고 아늑하고 세상을 내려다보는 다른 시선이 있었다. 가볍고 삐꺽거리는 위태로움이 높이에 대한 감각을 증폭시킨 것 같기도 하다. 어려서 그랬는지 그 가벼움과 시원함이 좋았다. 견고한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것과는 분명 다른 감각이었다. 게다가 원두막에는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감성이 있다. 그곳에 달달한 수박과 참외가 있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컨테이너로 쌓아올린 이 가벼운 건축에서 원두막의 감성을 떠올리는 것이 지나친 비약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곳에 모인 젊은 친구들이 훗날 이곳을 내 어릴 적 원두막과 같은 공간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젊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탈일상의 공간이면서 잠깐의 추억이 돼줄 수 있는 공간이니까. _ 김용택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 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 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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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설계를 찾아서
Column: Quest for Design
5월호 특집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을 읽고 몇 마디 거들고자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내용이었으면 좋겠다는 원고 청탁을 받았다. 편집주간의 글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젊은 그들의 참신한 태도와 작업 방식에 나 또한 박수를 보내며 내가 설계사무소를 열고 지금까지 운영해 오면서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몇 가지 이야기를 꺼낼까 한다. 학부 졸업 후 나 또한 풍운의 꿈을 안고 설계사무소에 입사했다. 첫 출근 날 강남역에 내려 사무실로 걸어가는데 지하 역사 안의 레코드 가게에서 아침부터 음악이 울려 퍼졌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환희의 송가가 등 뒤로 웅장하게 흘렀다. 마치 내 첫 출근의 위대한 첫 걸음을 환희로 채워주는 듯했다. 전율을 느꼈다. 영광스러운(?) 나의 조경 설계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7년이 흐른 후 내 사무실을 열었다. 마흔둘의 나이에 한 창업이라 주변에서는 좀 늦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동업으로 시작했기에 마음의 부담을 나눌 수 있었다. 건설 경기가 계속 악화되어 매출 대비 고정 지출의 규모가 너무 커 경영난을 겪게 되었고,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서로 독립해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되었지만, 처음의 선택은 옳았다.
지난 호에 실린 소장들의 창업 이야기를 읽으며 참신한 작업 방식과 환경은 물론 남부럽지 않은 스펙을 가진 젊은 그들의 역동성을 느꼈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를 이겨나갈 능력을 지닌 그들에게 안도감을 느꼈다. 부러움이 앞선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상상력 충만한 분위기에서 좋은 설계안이 나온다고 믿고 직원들과 허물없이 호형호제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설계사무소라 하더라도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아무리 참신하고 의욕 충만한 새로운 설계사무소여도 대표자에게는 결코 뒤로 할 수 없는 책임이 따른다. 설계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나 오류는 일 잘하는 임원이 해결할 수 있다. 세금이나 회계 문제는 전문 세무사에게 맡기면 된다. 하지만 대표 소장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첫 번째는 직원과의 약속이다. 최근 몇 년간 경기가 계속 나빠지고 회사의 수주가 바닥을 찍는 악순환이 연속되면서 사무실의 대표는 나름 최선을 다해뛰고 또 뛴다고 생각하는데 직원들이 그 노력을 반도 몰라주는 것 같다. 또 직원들은 열심히 하는데 대표가 보기에는 무언가 모자라고 성이 차지 않는 다. 대표의 눈에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불만이 생기고 다그치기 시작한다. 경영자와 직원 사이에 틈이 벌어진다. 서로가 이해해 주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서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거리라고 인정해 버린다. 어쩌면 ‘회사’라는 통념과 선입견 속에서 비롯된 사용자와 피사용자 간의 거리감은 아닐까?
이 어쩔 수 없는 입장 차이를 조금이라도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 하나 있는 듯하다. 내가 직원이었을 때를 기억해 내는 것. 나는 그 당시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무엇이 불만이었고 무엇에 만족했는지 다시 떠올리는 것. ‘나는 설계사무소를 이렇게 이끌어갈 것이다’라는, 처음 지녔던 자신만의 신념을 부적처럼 지니고 살아야 한다. 무언의 다짐도 약속이다.
대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해야 한다. 그리고 직원으로 채용한 사람을 믿어야 한다. 이런 약속이 직원들과 새끼손가락을 건다고, 계약서를 쓴다고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첫 생각을 잊기 마련이다. 이 정도면 됐다하고 마음을 놓는 순간 사무실 가족들과 함께 쌓아온 탑이 기초부터 흔들린다. 창업하면서 큰 꿈을 꾼 바로 그때 가슴 깊숙한 곳에 스스로 묻어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내 곁에 있는 ‘스마트 피플’들이 없었다면 나의 오늘도 없었다”는 빌 게이츠의 회고를 잊지 말자.
두 번째는 설계사무소의 생명력 문제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불을 찾아서Quest for Fire’(1981)라는 영화가 있다. 약 8만 년 전, 동굴에서 사는 울람 족은 자연에서 생겨난 불을 이용해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부족의 습격과 야생 동물의 공격으로 불을 꺼뜨리고 만다. 추위에 떨게 되고 불의 필요성을 새삼 절실히 깨닫게 된다. 울람 족은 불을자연에서만 얻어왔던 터라 다시 불을 구하기 위해 부족 중에 선발된 세 명이 멀고 긴 여정에 나선다.
목숨 걸고 불을 찾아 떠난 여정 속에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불을 가지고 돌아오지만 물속에 빠뜨려 천신만고 끝에 얻은 불을 잃는다. 결국 여행 중 구해낸 여성의 부족에게서 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어 다시 불을 얻게 된다. 영화에서 불의 의미는 생명이며 힘이다. 불을 중심으로 가족이 모일 수 있었고 불이 있어 맹수들의 위협으로부터 생명을 지킬 수 있었기에 목숨을 걸고 불을 지키려 애썼다. 불을 잃게 되자 모든 것을 걸고 불을 찾아 나섰다. 불은 반드시 구해야 할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불이 있는 종족이 곧 힘 있는 종족이었다. 설계사무소에서 불과 같은 존재는 누가 뭐래도 설계다. 설계는 우리가 지켜야 할 힘이며 생명이다. 설계사무소가 갖추어야 할 최종병기다.
가슴 벅찬 기대를 안고 새롭게 시작하는 그들, 꿈틀대는 생명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갖춘 그들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설계를 찾아서.
이재연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을 거쳐 2006년조경디자인 린을 설립했다. 2013년 조경박람회 초대 작가로, 2014년에는 정원문화 심포지엄 초대 작가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