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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과 정(情)
10년 전 쯤 지인의 소개로 부산을 처음 여행했다. 부산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해운대였다. 하지만 해운대 근처는 가지도 못했고, 지인은 시장골목과 용두산을 소개했다. 8월 초 (사)한국전통조경학회의 편집위원회를 부산에서 개최한다고 하길래 내심 휴가라 생각했다. 편집위원장은 부산 동아대학교의 강영조 교수님이다.편집회의를 마친 후, 강 교수님은 일상의 부산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내심 바다를 보고 싶었으나, 부산사람들은 여름에는 아예 해운대쪽을 바라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향한 곳은 국제시장, 부평시장, 깡통시장, 자갈치시장이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여러 장소를 접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매력적이고,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풍경 안에서 영화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부산의 시장은 골목길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인간적 척도에서 경관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그 골목길은 서민들의 삶이 있고 정이 있는 곳이다. 같은 상품을 판매하지만 소통과 배려가 있는 곳이다.대학원 시절, 경관론 수업시간에 했던 첫 번째 과제는 서울 피맛골의 경관맵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골목길 마니아가 되었다. 골목길만 나타나면 발길을 옮긴다. 피맛골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왠지 사람을 끄는 따뜻한 정(情)이 느껴진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고관대작들이 말을 타고 종로를 지나갈 때 서민들이 행차를 피해 들어가 음식을 먹던 골목이다. 이후 이곳은 서울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묻어나는 장소가 됐다. 골목길 모퉁이 허름한 술집에 들어가 보면 ‘OO과 OO가 사귄 지 100일’, ‘젊음이여 영원하라’ 등 벽마다 빽빽하게 적힌 낙서를 만나게 된다. 정다운 사연을 담은 수많은 낙서가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낙서는 골목길 곳곳을 메우고 있다. 아쉽게도 재개발로 이전에 북적거리던 술집은 거의 사라졌지만 몇 집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피맛골에 들어서면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인상적이다. 처음 가본 사람은 미로와 같은 골목길에서 방향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서울의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과거로의 여행이라 할까. 피맛골은 서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비계획적 장소다. 계획된 장소는 도로의 선이 기하학적인 반면 비계획적인 장소는 그 선이 부정형적이다. 마치 물고기가 자유롭게 유영하듯, 흘러갈 때는 흘러가고 모일 때는 모이는 자연스러운 장소가 연출된다. 이곳의 친근한 골목길, 투박한 막걸릿잔, 술집의 낮은 천장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피맛골에 비하면 인접한 인사동거리는 상당히 세련된 곳이다.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를 한글로 써 붙인 커피 가게의 ‘애교’도 인사동거리에선 어색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골동품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형성된 인사동거리는 2000년 역사문화탐방로 조성공사로 거듭났다. 골동품 가게와 갤러리, 찻집, 뒷골목 전통 음식점과 현대적 술집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사동 남단 들머리에 가면 일월오악도상이 세워진 광장이 있다. 가끔 자선단체들이 공연을 하는 이곳에서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이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 옆에 인사동문화마당이 있다. 직선으로 뻗은 인사동거리에 여울과 소물고기가 모여 있는 웅덩이의 역할을 하며, 작은 규모지만 대나무 숲이 조성돼 있어 운치가 있다. 인사동의 묘미를 만끽하려면 과감히 골목길로 발길을 옮기는 것도 좋다. 예기치 않은 공간에서 고즈넉한 카페와 갤러리들이 얼굴을 내밀고 사랑의 밀어(蜜語)를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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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공존하는 삶의 정원
“강은 변함없이 묵묵히 흐르고 있다. 강은, 이윽고 재가 되어 자신 속에 흩뿌려질 시신에도, 머리를 그러안고 꼼짝도 않는 유족 남자들한테도 무관심했다. 이곳에서는 죽음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이 똑똑히 느껴졌다.”요즈음에 읽은 소설의 어느 한 구절을 옮겨보았습니다. 갠지스 강(Ganges R.)과 그 강변풍경을 묘사한 구절입니다. 힌두교도들에게 갠지스 강은 성스러운 어머니의 강입니다. 강은 죽어서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어머니의 너른 품이기도 합니다. 죽은 사람을 화장하여 그 재를 강에 뿌리는 장례풍습이 갠지스 강가에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또 강은 산 자들과 함께 있습니다. 아이들은 헤엄을 치고 여인들은 강변에서 빨래를 합니다. 순례자들은 강물에 몸을 담그고 기도를 합니다. 아이들의 외침과 빨래하는 여인들의 고단함이 죽은 이를 잊지 못하는 슬픔과 뒤섞여 강물을 따라 흐르고 있을 테지요. 위에서 인용한 문장처럼, 갠지스 강에는 죽음이 산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있습니다.얼마 전에 갠지스에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다시는 갠지스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주검이 산 사람들의 일상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수습되는 갠지스 풍경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 때문에 귀국해서도 곧바로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곳에 가기 전에 그는 갠지스의 장례풍습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는 예상하지 못했던 수치스러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죽음을 대면한 듯했습니다. 죽음은 그에게 수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병원과 장례식장과 화장시설을 찬양했습니다. 도시인들의 주검을 깔끔하게 처리해주는 시설들 말입니다. 그는 깔끔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강가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죽음을 떠올렸습니다. 너 또한 반드시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갠지스 강이 묵묵히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한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죽음을 어떻게 대우해야 마땅하겠는가?’ 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유족들의 비탄 곁에서 자신이 한 주검을 향해 품게 된 수치스러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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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사운고택
홍성 사운고택은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산성리 309번지 일원에 위치한 13,860㎡의 민가주택으로, 17세기 후반 조태벽(趙泰碧, 1645~1719)이 조영한 이래 조중세, 조응식 등에 의해 중건 및 정원 조영이 이루어졌다. 가옥의 전체 구성은 중부지방 가옥의 평면구성에 남도풍이 가미된 것으로 안채, 사랑채, 대문채, 안사랑채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1984년 12월 24일 중요민속자료 제198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Hongseong Saun old house which is located in 309, Sanseong-ri, Janggok-myeon, Hongseong-gun, Chungcheongnam-do has an area of 13,860m². There has been reconstruction and gardening by Cho, Jung Se, Cho, Eung Sik and etc since the construction in the latter half of the 17th century by Cho, TaeByeok(1645~1719). It has the ground plan type of the central part of Korea adding the type of the southern part. The aesthetic of adaption is connected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on Anchae, Sarangchae, Daemunchae and Ansarangchae. It was appointed as Important Folk Material no.198 in 24th of December,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