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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정원의 기쁨과 슬픔
    『환경과조경』 2014년 4월호를 펼치면 이번 호 특집과 유사한 제목을 단 기획 지면, ‘다시, 정원을 말하다’를 만날 수 있다.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획 의도는 똑같다. 이례적인 정원 열풍의 이면을 되짚어 보자는 것. 바뀐 게 있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그 열풍의 강도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정원 ‘열풍’ 앞에 붙일 수식어로 ‘대중적’과 ‘사회적’뿐 아니라 ‘국가적’을 골라도 전혀 과장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도시의 수장고에 곱게 모셔두었던 정원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정원 현상, 정말 뜨겁다. 정원이 건강하고 안전한 공간에 대한 관심, 비인간 생명체와의 정서적 교감, 돌봄과 가꿈의 실천을 담아내는 것을 넘어 트렌디한 이미지 상품으로까지 소비되면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전국 곳곳의 도시가 경쟁적으로 정원박람회를 열고 있다. 서른 곳 이상의 지자체는 ‘정원도시’를 선언했다. 서울시는 “어딜가든 서울가든”이라는 구호까지 내걸고 정원을 공원, 선형 녹지, 입체 녹지, 둘레길, 하천변, 도시재생지 모두를 포괄하는 우산 개념으로 삼고 있다. 모든 게 정원이어서 정원이 아무것도 아닌, 정원의 시대. 정원을 국가의 법과 제도로 지정하고 계획하는 유례없는 사업도 펼쳐지고 있다. 산림청이 지원하는 국가정원과 지방정원이 여러 지자체의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정원 프로젝트를 지역 발전 전략의 한 축으로 삼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정원이 도시의 기반 공간으로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정원은 사람과 자연이 어울리는 장소이고, 사색과 휴식의 장이며,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잘 디자인된 정원은 지역의 정체성을 담는 문화적 장소로 진화할 수 있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녹색 인프라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열된 최근의 정원 현상을 반성적으로 되짚어 보면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는 전시 행정의 난맥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정원 개념이 지나치게 표피적으로 소비되는 양상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일부 정원박람회와 정원도시 프로젝트는 정원 문화 형성보다는 관광객 유치를 위한 브랜딩 전략에 가깝다. 단기간에 화려한 경관을 꾸미는 데 치중하면서 지역성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원이 선출직 지자체장들의 포퓰리즘 공간 정치의 단골 메뉴로 동원되는 사례, 무분별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조경가―와 이른바 ‘정원 작가’―들이 정원이라는 이름의 녹색 면죄부를 발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번 호 특집 ‘다시, 정원을 읽다’는 정원 현상의 이면을 살펴 정원과 동시대 조경 사이의 관계를 다시 검토하고 조율해 보고자 하는 작은 시도다. 편집부와 함께 지면을 기획한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는 정부와 지자체 주도의 정원 정책과 정원 사업이 장차 유효한 성과를 내기 위해 풀어야 할 난제들을 점검한다. 황주영 박사(조경사 연구자)는 정원 열풍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혼란한 정원 개념을 재검토하고, 돌봄의 정원과 모두가 누리는 정원의 의미를 전한다. 권진욱 교수(영남대학교)는 정원박람회가 모방과 자기 복제에서 벗어나 고유의 정원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최재혁 소장(오픈니스 스튜디오)은 조경계의 전면에 부상한 정원이 조경 설계에 가져온 변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논의한다. 정홍가 소장(쌈지조경)은 지역 공동체의 형성과 협력을 이끄는 사회적 공간으로 정원을 작동하게 하는 정원 활동 사례를 살펴보고 주민 참여형 정원 문화의 방향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조혜령 소장(조경하다열음)은 정원이 그린워싱 이미지로 소비되는 정원 시대의 난맥을 짚는다. 이번 특집에 참여한 필자들은 오는 4월 18일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열릴 한국조경학회 춘계학술대회의 특별 세미나에서 같은 주제로 발제하고 열띤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번 특집만으로 정원 열풍의 잠재력과 난점을 밀도 있게 살피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마침 번역 출간된 『정원의 기쁨과 슬픔: 인간이 꿈꾸는 가장 완벽한 낙원에 대하여』(어크로스, 2025)를 함께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 책은 『외로운 도시』로 널리 알려진 작가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이사한 집에서 정원 만들기를 탐닉하며 희망의 에덴을 가꿔나간 기록이자, 배제와 공존이 교차하고 추방과 해방이 공존하는 모순의 정원 개념에 대한 세밀한 탐구이기도 하다. 원제는 ‘시간을 거스르는 정원: 공동의 낙원을 찾아서(The Garden Against Time: In Search of a Common Paradise)'다. 책의 마지막 문장을 옮긴다. “모두의 정원이라는 그 이단적인 꿈.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씨앗을 털자.”
  • [풍경 감각] 목련이 피지 않는 봄
    희끗한 봉오리를 부풀리던 백목련이 허리가 잘린 채 길가에 누워 있었다. 몇 십 년은 돼 보이는 왕벚나무와 은행나무도. 지난 계절의 꽃과 녹음, 그리고 단풍이 아름다웠던 건강한 나무들인데……. 낡은 시설을 부수고 신축 공사를 한다는 소식을 기쁘게 알리는 현수막 아래로 부러진 가지들이 쓰레기처럼 흩어져 있었다. 봄 햇살을 받은 탓일까. 꽃봉오리를 하나 주워보니 보드랍고 따뜻했고, 그래서 우주개 라이카가 떠올랐다. 라이카는 우주 환경에서 생명체가 생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우주로 보내진 최초의 우주개다. ‘우주개’라는 단어가 낭만적인 느낌을 주지만, ‘우주인’ 닐 암스트롱과 달리 라이카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과학자들이 돌아올 계획조차 세워두지 않은 로켓에 실어 쏘아 보낸 탓이다. 심지어 설비 오작동으로 인한 과열과 스트레스로 라이카의 생명 신호는 한나절 만에 끊겨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 실험을 통해 생명체가 위성 궤도에 진입하는 과정과 우주의 무중력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귀중한 데이터를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정보가 강아지 한 마리의 목숨보다 소중한 걸까. 가족들에게 버려져 추운 길거리 생활을 하고, 낯선 연구소로 잡혀 오고, 침착하고 영리하다는 이유로 너무나 먼 곳으로 보내진 라이카가 내게 훨씬 애틋한데. 새 건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예전처럼 꽃 피는 정원도 딸려 있을까. 그 건물은 꽤 선량한 목적으로 지어지는 중이니 많은 사람이 누리는 좋은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다만 축포를 터뜨리듯 떠들썩한 완공식에 모인 사람들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며 칭찬만 한다면, 조금 아득한 기분이 들 것 같다.
  • [우먼스케이프] 빌헬미네 폰 바이로이트
    남매 이야기, ‘비할 바 없이 근심 없는 곳’ 나란히 세계문화유산을 남기고 간 남매가 있다. 누나 빌헬미네 폰 바이로이트(Wilhelmine von Bayreuth)(1709~1758) 공비는 독일 바이로이트에 산스파레유 기암괴석 풍경정원(Felsengarten Sanspareil)을, 동생 프리드리히 대왕은 포츠담에 상수시(Sanssouci) 궁전과 바로크 정원을 남겼다. 산스파레유는 ‘비할 바 없는 곳’이라는 뜻이고 상수시는 ‘근심 없는 곳’을 말한다. 근심이 너무 많았던 프리드리히 대왕은 자신의 여름 별궁과 정원의 이름을 그렇게 지어 불렀다.(각주 1) 누나 빌헬미네는 딸의 결혼식에 맞춰 산스파레유 정원을 완성하고 하객들에게 보여주었는데, 그들 중 어느 프랑스 귀부인이 “와, 비할 곳이 없네!”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 외침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 마치 둘이 짜기라도 한듯 남매는 산스파레유와 상수시를 거의 동시에 조성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정원의 조성 개념 차이다. 빌헬미네는 시대를 앞질러 풍경정원의 개념을 적용했고, 프리드리히는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었다. 모두 1744년에서 1745년 사이의 일인데, 이 시기는 바로크 정원의 권세가 사그라지고 풍경정원이 서서히 대두될 무렵이었다. 영국에선 이미 태동했지만 독일에는 수십 년 뒤에나 상륙하게 되는데, 빌헬미네가 홀로 훌쩍 앞질러 간 것은 기이한 일이다.(각주 2) 그러나 빌헬미네가 산스파레유 정원을 의도적으로 풍경정원으로 꾸미려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기존 지형 자체가 매우 독특했는데 그걸 그대로 이용하다 보니 풍경정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드물게 석회암층에 나도밤나무 숲이 울창하게 자란 곳이었다. 폭 약 15m, 연장 약 700m의 골짜기 여기저기에 석회암, 정확히 말하자면 돌로마이트 암석이 녹아 형성된 기이한 바위와 동굴이 많았다. 빌헬미네의 말대로 “자연 자체가 건축가”였던 곳이다. 이곳에 산책로를 만들고 누각을 배치한 것이 전부였다. 수백만 년에 걸쳐 자연이 만들어놓은 기암괴석의 지형에 인간의 설계가 결합된 이 정원은 바이에른주 환경부가 지정한 가치 있는 지오톱(Geotop)이며 세계문화유산이다.(각주 3) 남매는 무척 사이가 좋아 죽는 날까지 소울 메이트로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둘의 험난한 성장 과정을 보면 공주나 왕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아버지의 엄격한 군국주의적 통치와 궁정 생활의 억압 속에서 몹시 힘들게 자랐다. 남매의 아버지는 그 이름 높은 프로이센의 ‘군인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였다.(각주 4) 빌헬미네의 묘사에 따르면, “그는 비록 위대한 인물을 특징짓는 모든 자질을 갖추었으나 너무 다혈질이어서, 종종 격렬한 행동으로 치닫고 나중에 후회하곤” 했다.(각주 5) 군인왕은 변덕이 심해 너그럽다가도 불쑥 포악해졌는데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황태자 프리드리히를 때리고 발로 차기까지 했다. 훌륭한 군인으로 성장해 주기를 바랐던 황태자가 책만 읽고 음악과 예술에 심취해 있는 것이 못마땅해서 부자간 갈등이 심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황태자가 도주하려다 발각된 사건이 유명하다. 그때 함께 도주하려 했던 절친한 친구는 결국 사형을 당했다. 법정에서 무기형을 받았으나 왕이 우격다짐으로 형을 바꾼 것이다. 빌헬미네도 동생의 도주 계획을 도왔다는 비난을 받고 일 년간 감금되었다. 남매는 그때 자기들도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각주 6) 모두 평생의 트라우마를 얻게 된 것인데 그 때문인지 둘 다 예술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1740년 군인왕이 타계하자 왕위를 계승한 프리드리히는 곧 프로이센 궁중에 음악이 가득 울려 퍼지게 했다. 남매 모두 음악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프리드리히의 플루트 연주와 빌헬미네의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 연주는 대가의 경지였다고 한다. 연주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둘 다 협주곡, 교향곡, 오페라 아리아 등을 작곡했는데, 그들이 작곡한 음악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연주된다. 물론 프리 드리히가 플루트 솜씨 때문에 대왕이란 칭호를 얻은 것은 아니다. 희한하게도 그는 홀연히 전쟁의 화신이 되어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등 숱한 전장을 누비며 프로이센을 강대국으로 이끌게 된다. *환경과조경444호(2025년 4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프리드리히 대왕과 상수시에 관해서는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나무도시, 2008), 222쪽 “프리드리히 대왕과 상수시” 참조. 2. Adrian von Buttlar, Der Landschaftsgarten. Gartenkunst des Klassizismus und der Romantik. Erweiterte Neuausgabe, DuMont Buchverlag, 1989, pp.135~138. 3. 관련 내용은 다음을 참고. www.bayreuth-wilhelmine.de/deutsch/sanspar/felseng.htm 4. Friedrich Wilhelm 1세(1688~1740). 프로이센을 강대국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군사력을 길러야 한다고 믿고 강력한 군사 조직을 구축한 왕이어서 군인왕(Soldatenkonig)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독일 왕족 남자 이름은 프리드리히 아니면 빌헬름이어서 빌헬미네의 생애에 중요했던 세 남자인 아버지, 남동생, 남편 모두 우연찮게 프리드리히였기 때문에 잘 구분해야 한다. 아버지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남동생은 그냥 프리드리히, 남편은 프리드리히 3세였다. 5. 빌헬미네 회고록 29쪽. Wilhelmine Friederike Sophie, Wilhelmine von Bayreuth, eine preussische Konigstochter. Glanzund Elend am Hofe des Soldatenkonigs in den Memoiren der Markgrafin Wilhelmine von Bayreuth , Ingeborg Weber-Kellermann ed., Frankfurt am Main: Insel Verlag(Insel-Taschenbuch, 1280), 2016. 6. 빌헬미네 회고록 157쪽.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고정희 / 2025년04월 / 444
  • [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안기수 대담하면서도 섬세하게
    사진 촬영과 인터뷰를 함께 진행하기 때문에 장소 섭외에 공을 들인다. 되도록 인터뷰이의 색채가 드러나는 곳을 택한다. 예컨대 업무 환경을 엿볼 수 있는 사무실. 인물 뒤편으로 책장을 빼곡하게 채운 책들, 흐트러져 있는 도면, 테이블 한쪽 커피 드립백 같은 것을 보면서 글에 담지 못한 인터뷰이의 성향과 취미 같은 것들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안기수 소장과의 대화를 통해 인터뷰 장소는 두 곳으로 좁혀졌다. 사무실 또는 안기수 소장이 시공한 현장. 그는 긴 시간 고민한 끝에 경기도 포천의 카페 ‘포옥’(건축 설계: 에스엔건축사사무소 건축, 조경 설계: 랩디에이치, 조경 시공: 공간시공 에이원)에서 만나는 게 좋겠다고 말해왔다. 인터뷰 전날, 때 아닌 눈이 내렸다. 다행히 도로는 얼지 않았고 덕분에 눈 맞은 나무가 만든 풍경을 실컷 봤다. 온몸을 검정색으로 무장한 채 지프차에서 내린 안기수 소장에게서 조금 위압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큰 보폭으로 걸음을 옮긴 그는 먼저 카페의 중정을 살폈다. 자작나무 몇 그루가 죽었고 중정 가장자리를 덮고 있어야 할 이끼가 없다는 사실에 속상해했다. 건축주에게 다시 한번 정원은 만든 뒤 관리해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러주어야겠다고 말했다. 성큼성큼 계단을 오른 그는 커피와 함께 먹을 디저트를 골랐다. 의도한지는 모르지만 맛과 식감이 모두 달랐다. 어쩌면 편견에 그를 가둬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지만, 자꾸 지인들이 그에 대해 해준 말들이 떠올랐다. 털털하고 호전적인 면이 있어서 투박할 것 같지만 상상 이상으로 섬세한 사람이라는 말. 어제는 뭐했나요? 보라매공원에 있었어요.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보라매공원에서 열리거든요. 정원 조성과 박람회 개최에 필요한 기반 작업을 하는 중이죠. 3월 28일에는 식목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에요. 중간에는 성북동에 들러, 주택 정원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조경 시공은 외부 공간과 식물을 다루기에 겨울에는 어쩔 수 없이 휴식기를 가질 줄 알았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계절과 상관없이 바쁘군요. 어떤 프로젝트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요. 관급 프로젝트는 겨울철 저온으로 인한 콘크리트 양생 불량, 식재 하자 발생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서 공사 중지 명령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동절기 시공 계획서, 보양계획을 세워 제출하면 공사할 수 있지만 겨울철 공사비가 더 높아서 꺼리는 경우가 많죠. 공공 기관에서 발주하는 프로젝트를 주로 하는 사무소는 겨울철에 쉬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공간시공 에이원(이하 에이원)의 일감은 민간 프로젝트 위주이기 때문에 사계절 내내 고루 고루 일하는 편입니다. 폭설이 내리면 2월에 보름 정도 쉬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요. 오래전부터 소장님이 시공의 대가라는 말을 들어왔어요. 어떤 분일지 궁금해 지인들에게 물었더니, 털털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예상 외로 섬세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섬세하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감성적인 면도 있고요. 작년 연말에 가족과 함께 ‘소방관’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극장의 어둠에 숨어 몰래 울고 있는 절 발견한 딸내미가 아내에게 놀리듯이 “아빠 운다”며 속삭이더라고요. 현장에서 피어난 꽃이나 식물이 만들어내는 장면에 감탄할 때도 많은데, 그런 섬세함이 제 외형과 퍽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유청오: 주변에서는 다 알 것 같은데요.) 나름대로 자제했지만 다 티 났을지도 모르겠네요. 살아 있는 재료인 식물을 다루고 치밀한 디테일을 만들다보니 섬세함이 생긴 건지, 타고난 섬세함으로 조경 일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호전적이고 대범하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듣습니다. 현장에서 작업자들을 지휘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며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대차게 밀어붙어야 할 때가 많거든요. ULC 6호 『조경 시공의 최전선』에 실린 인터뷰(“디자인의 관철”, 유엘씨 프레스, 2023)를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조경으로 진로를 정하게 된 일화가 꾸밈없이 솔직하더라고요. 공익 광고에 나온 현장 속 건축가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고, 건축과 토목에 대해 알아보다 조경에까지 시선이 닿았다고 했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미지에 끌린 것 같은데, 이유가 있나요. 자식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는데, 제 아버지가 건축 현장에서 일하던 분이었어요.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청도를 들여다보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해요. 아버지가 일하는 곳이니 자연스럽게 현장에도 자주 놀러갔어요. 아버지의 직장 동료 분들이 용돈을 주거나 맛있는 걸 사주시곤 했는데, 그들이 서로 힘을 모아 일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어요. 그때부터 은연중에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식이 같은 일을 하겠다고 하면 반대하는 부모도 있잖아요. 조경 시공으로 진로를 정했을 때 아버지의 반응은 어땠나요. 좋아하셨어요. 그때만 해도 조경 시공이 나무 심는 일로 인식되는 때였는데, 오히려 내 전문성이 높다면 건물 외부 공간을 모두 다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저와 아버지 모두 현장에서 일하는 걸 부끄러워하거나 꺼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노가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제가 그 단어를 정말 좋아하지 않아요. 시공하는 사람의 전문성을 낮잡아 보는 느낌이 물씬 나거든요. 현장에서 작업하는 모두가 엔지니어이자 전문가라고 생각해요. 회사 직원에게도 농담으로라도 노가다라는 말을 못 쓰게 하고, 예술가라는 마음으로 일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인터뷰 질문지를 쓰는데 시공가라는 단어가 참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본인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무엇이라 지칭하나요. 보통 조경가라고 하면 설계를 하거나 디자인 빌드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을 떠올리는데, 시공하는 사람 역시 조경가라고 말하면 되지 않나 싶어요. 한때 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김지환 소장(조경작업장 라디오)이 절 빌드 디자이너라고 칭하더라고요. 엔지니어 등 다른 이름도 생각해봤는데, 결국 빌더가 제일 어울리는 표현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 시공가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어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대상이 보여져야만, 그 대상을 어떻게 부를지 고민할 수 있잖아요. 현재 한국에서 조경 시공하는 사람이 크게 부각되거나 조명 받는 상황이 아니니, 그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을 수밖에요. 말주변이 부족하다거나 주목 받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시공 전문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좀 드러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용기를 낸 시공가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면 더욱 좋고요. 어떤 방식이든 한번 붐이 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대학 생활 중 실습에 굉장히 큰 흥미를 느낀 것 같아요. 당시 상지영서대학교 조경학과의 학과장이었던 김승현 교수님이 교내에 실습장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주도했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 실습장 조성이 연구과제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교내에서 쓰지 않은 땅을 찾아 학생들이 직접 돌을 캐서 땅을 고르고 묘목을 심었죠. 선배 중에 현장에서 일을 하다 뒤늦게 학업에 뜻을 갖고 학교를 다니고 있던 형이 많았어요. 형들에게 목도 작업부터 시작해서 로프를 감는 법, 전지하는 법을 배웠죠. 전지를 잘못해서 멀쩡한 나무를 작대기처럼 만들어 혼난 적도 있는데 그마저도 즐거웠어요. 좋은 비료가 없어 작업을 끝마치고 나면 온몸에서 비료 냄새가 났는데, 다른 과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인상 쓰면 좀 부끄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열심히 만든 결과로 교수님에게 인정받아 뿌듯한 마음이 더 컸죠. 학교마다 중요시하는 전공과목과 커리큘럼이 다 다르죠. 저는 대학 시절 시공을 이론으로만 접했어요. 무엇이든 배우지 않으면 흥미를 가지기도 어렵죠. 맞아요. 학교마다 지향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원하는 학생에 한해서 가벼운 실습을 해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시공을 하겠다는 결심이 흔들린 적이 없나요. 시공을 하겠다는 마음이 변한 적은 없지만, 서울시립대학교로 편입 준비를 해본 적이 있어요. 막연히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 시작했던 건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상지영서대의 수업 과정이 2년이라 충분히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시공만을 쫓다보니 내가 정말 시공을 하고 싶은 건지 헷갈리더라고요. 설계든 뭐든 공부를 더 해보면 결론이 나올 거라 생각했죠. 결과적으로는 편입에 실패해서 초림조경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게 됐지만요. 3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었는데, 회사 대표님과 사수가 절 좋게 평가해서 자연스럽게 취직으로 이어졌어요.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가 무언가를 공부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요. 시공을 하고 싶지만 무엇부터 공부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사람에게 조언을 전해도 좋습니다. 식물 공부를 많이 하세요. 토목, 건축 등 다른 분야와 조경이 차별화되는 지점은 식물임이 분명해요. 식물의 특성을 잘 아는 걸 넘어 식물을 잘 다루게 되고, 식물에 대한 나름의 관점과 철학을 갖게 되면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또 조경과 다른 분야 사이에 선을 긋지 말고 건축 내외부, 토목 등 여러 작업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조경이 아닌 것에서도 조경을 읽고 내 것으로 습득하는 자세가 중요해요. 큰 설계사에서 근무하게 될 경우, 하도급으로 받은 도면을 볼 기회가 많을 겁니다. 그런 도면을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왜 이런 구조로 설계되었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습관을 들이면 실력이 늘고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공이라는 게 책만 들여다본다고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보니 가장 빠르게 배우는 방법은 현장에 뛰어드는 겁니다. 일을 먼저 하면서 부족하다 생각되는 부분을 후에 배울 수도 있어요. 에이원에도 일을 하다가 조경을 좀 더 공부하고 싶어서 뒤늦게 학교에 간 친구가 있어요. 동국대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방학 때마다 에이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보니 또래보다 나이는 많지만 문제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현업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 어린 친구들이 먼저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15년 정도 두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주로 어떤 일을 했나요. 두 회사의 일에 차이가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첫 아르바이트 현장이자 첫 직장이 된 곳이 초림조경이에요. 초림조경은 종합건설면허를 가진 회사였어요. 큰 공사를 수주해 직영으로 시공할 수 있는 여건의 회사였죠. 덕분에 온갖 종류의 공사를 다 경험했어요. 첫 일터가 커다란 도로의 아스팔트 콘크리트를 전부 걷어낸 뒤 새로 도로를 만드는 현장이었어요. 이런 큰 규모의 공사를 다루는 건 토목인 줄만 알았는데 놀랐죠. 다양한 공종을 하다 보니 조경은 모든 외부 공간을 다루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식 자체가 바뀌는 계기였죠. 업무 습득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고요. 두 번째 회사인 태상조경은 단종면허를 가지고 있었고, 주로 종합건설회사에서 하도급을 받아 일하는 곳이었어요. 하도급을 받아 공사를 하니 공사비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었고, 초림조경과는 또 다르게 다양한 프로젝트를 접할 수도 있었어요. 산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사방댐을 만들고, 수로를 깔아보기도 했어요. 제 인생에 큰 의미가 있는 서서울호수공원 프로젝트도 이곳에서 진행했습니다. 두 회사가 각기 다른 장점이 있네요. 첫 직장을 골라야 한다면 어떤 회사를 추천하나요. 시공에도 다양한 업무가 있지만 가급적 현장에서 일해 볼 수 있는 회사를 추천합니다. 고생은 하겠지만 혼자서 공무도 보고 현장에서 삽질도 하고 현장소장을 맡아 프로젝트도 이끌어볼 수 있는 회사가 제일 좋아요. 일을 빨리 배울 수 있고 현장을 보는 감각과 시야 자체가 달라지거든요. 또 시간이 흘러 독립을 해야 하는 시점이 오면 분명 한 가지 업무만 했던 사람과는 다른 출발점에 서게 될 겁니다. 시공 현장을 지휘하는 사람을 현장소장이라고 부르죠. 처음 현장소장으로서 이끌었던 프로젝트가 뭔지 궁금해요. 햇병아리 시절에 사수가 들려주었던 “현장에서는 현장소장이 대통령이야”라는 말이 지금도 가슴 깊이 각인되어 있어요. 현장소장은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며 모든 작업자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자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는 자리인 거죠. 입사한 다음 해에 거의 혼자서 현장을 지휘하게 된 적이 있어요. 농구장을 만드는 프로젝트였죠. 간단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빗물 배수 시설 설치부터 시작해서 콘크리트 타설, 마감, 우레탄 포장을 순서대로 진행해야 하죠. 대상지가 북악터널 출입구 근처였는데 바로 옆에 왕복 4차선 도로가 있었어요.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레미콘이 들어설 공간이 차도뿐이었죠. 겁도 없이 도로 한 차선을 막아두고 작업을 했어요. 우레탄을 깔기 위해 콘크리트 피니셔 장비로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은 뒤에 화물차에 들어가서 밤새 보초를 섰어요. 다듬어 놓은 표면이 망가지면 다음 공정에 문제가 생겨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야 했거든요.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제가 잠들어 있더라고요. 화들짝 놀라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다섯 시였어요. 설마 하면서 주변을 살폈는 데 할머니 너덧 분이 산책 삼아 콘크리트 위를 거닐고 있는 거에요. 바로 뛰쳐나가서 할머니들이 나가도록 안내했죠. 살펴보니 표면에 옅게 발자국이 남았더라고요. 도착한 작업자가 우레탄 작업에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자국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식은땀이 흘렀던 순간이에요. 연세대학교 정문 앞 양버즘나무를 베었던 일도 생각나네요. 두 사람이 양팔로 마주 안아도 기둥을 다 감쌀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였거든요. 유동인구가 많아 평일에는 작업이 불가능했고 일요일에 베기로 마음먹었죠. 정문 앞 도로 중 세 차선을 막아버리고 크레인을 세우고 나무 기둥을 자르기 시작했어요. 원래 가지부터 시작해 위에서 아래로 차근차근 잘라나가야 하는데 멋모르고 오토바이 엔진이 들어가는 커다란 엔진톱으로 기둥 아래를 겨냥해 자르기 시작했어요. 한참 걸려 기둥을 잘라냈는데 그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더라고요. 때마침 계절이 가을이었고 나무기둥이 완전히 넘어가 바닥과 부딪치는 순간 양버즘나무 꽃가루가 확 터져 퍼지는 그 풍경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진짜 무모한 방식으로 벌인 짓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낭만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 과정이 서툴러도 갖은 방법으로 원하는 결과를 냈을 때 느끼는 도파민이 정말 커요. 한번 맛보면 절대로 이 일을 포기할 수가 없게 돼요. 시공하면 현장에서 몸만 쓰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기 쉬워요. 체력이 부족하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겁먹기도 하고, 외향적이지 않으면 일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하기도 하고요. 우선 체력적인 부분은 시공이 아닌 일을 하더라도 필요한 부분입니다. 설계하는 사람도 필요한 경우 밤샘 작업을 하니까요.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타고난 자신의 성향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어요. 하지만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은 길러야 하죠. 시공을 하려면 육체적인 체력도 필요하지만 단단한 정신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신력을 길러주는 건 다양한 상황에 대한 경험입니다. 근육에 과부하를 주어 상처를 내고 다시 회복시키는 과정을 통해 근력을 키우듯 정신력도 그렇게 기를 수 있어요. 시공을 하고 싶은데 ‘체력이 못 따라갈 것 같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면 잘 대응할 자신이 없다’ 걱정하면서 해보지도 않은 채 지레 겁먹고 도망칠 필요는 없습니다. 공간시공 에이원으로 독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두 번째 회사인 태상조경에 다니던 중, 초림조경에서 일할 때 사수였던 선배가 독립을 하면서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해왔어요. 1년 반 정도 그곳에서 일하면서 주로 정원 시공을 하게 됐죠. 그때 이대영 소장(조경상회엘), 이상기 소장(조경설계사무소 온), 김지환 소장을 알게 됐고 정원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여갔어요. 김지환 소장이 최영준 교수(서울대학교, 당시 랩디에이치 소장)를 소개시켜줬는데 이야기도 잘 통하고 뜻이 잘 맞아 자주 만났고, ‘지붕감각’ 프로젝트를 계기로 팀 동산바치를 결성해서 활동하게 됐죠(“팀 동산바치”, 『환경과조경』 2018년 5월호). 서로가 쌓아온 경험과 그로 인해 얻은 노하우가 다른데, 그걸 조합해서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조경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죠. 너무 재미있어서 이 활동을 조금 더 이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 열망이 은연중에 드러났는지, 선배가 먼저 “이제 독립해서 네 갈 길을 가는 게 좋겠다”고 말을 꺼내고 제 독립을 응원해주었어요. 그렇게 2016년 11월 에이원을 열었죠. 팀 동산바치는 소장님이 평소와는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룹 같아요. 더 좋은 시공을 위해 설계에 의견을 더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닌가 싶어요. 설계 뒤 시공을 논하는 게 아니라 설계와 시공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팀 동산바치의 프로젝트에서는 모든 부분을 다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지붕감각, 원심림(『환경과조경』 2017년 10월호), 설리번학습지원센터 학생점자도서관까지 함께한 뒤로는 각자의 일이 바빠 새로운 일을 벌이지 못하는 상황이라 아쉽습니다. 우선 각자의 위치에서 잘 성장해서 후에 경로당, 어린이 보육원 등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정원을 만드는 일을 하자고 약속한 상태입니다. 대중들은 조경 시공이라 하면, 단순히 조경 시설을 배치하고 식물을 심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실제로는 터를 다지기 전 필요한 기반 시설을 땅 아래 삽입하는 데부터 시작하는, 체계적인 계획과 전략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작업 시작 전, 계획을 세우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대상지의 현황을 제대로 살피는 겁니다. 땅의 상황을 모른 채 설계한 경우가 있어요. 배수가 잘 안 되는 땅이라 우배수 시설이 필요하진 않은지, 건수가 흐르고 있는 건 아닌지 파악합니다. 필요한 경우, 에이원에서 직접 필요한 빗물받이나 맹암거의 개수와 위치를 설계사에 제안하기도 해요. 현장에서 바로바로 빠르게 대처해 공사 일정과 과정에 차질이 가지 않게 하는 작업인데, 좀 수고롭기는 해도 에이원의 장점으로 뽑히는 부분입니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문제는 준공 도면에 표시된 땅의 레벨이 실제와 다른 경우입니다. LH 시그니처가든 ‘물의 기억’(『환경과조경』 2022년 7월호) 작업 때도 준공 도면과 현황이 전혀 일치하지 않아서 시공 작업 전 광파 측량을 통해 도면을 새로 만들어 설계사인 HLD에 보냈거든요. 다행히 HLD에서 그 도면을 토대로 다시 도면을 그려 보내줬죠. 물의 기억은 조경이 구조적으로 어떤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지,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을 다루는 동시에 얼마나 섬세하고 예민한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는 보여준 작업이었어요. 콘크리트 구조물에 수경 시설까지 더해야 하는 고난도의 프로젝트였는데,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참 웃겨요. 물의 기억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호영 소장(HLD)과 동갑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LH 시그니처가든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싶다는 전화가 왔죠. 설계안을 봤는데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예산이 얼마인지 물어봤는데 공사 작업에 비해서는 턱도 없이 작은 금액이더라고요. 그래도 욕심이 났습니다. 내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프로젝트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완성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어요. 그래서 우스갯소리처럼 “이 프로젝트는 너랑 나랑 친구가 되어야지만 할 수 있다”고 답했죠. 그렇게 이호영 소장과 친구가 되어서 함께 물의 기억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HLD가 시공에 필요한 준공 서류와 도면을 정말 꼼꼼하게 만들어줬고, 작업에 필요한 돌, 갱폼 등의 발주에도 큰 도움을 주었어요. 관건은 거대 콘크리트 구조체를 만들 때 필요한 갱폼(gang form)이었어요. HLD가 국내에서 제일 갱폼을 잘 만드는 회사에 발주를 한 상황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납품이 계속 연기됐어요. 예정된 납품 일정에 맞춰 콘크리트 타설, 철근 배근 준비를 다 해놓았는데 갱폼이 오지 않는 거죠. 난감했죠. 알아보니 갱폼 제작 난이도가 너무 높아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건축물이나 교량이 쓰이는 일반적인 갱폼은 일률적인 형태거든요. 그런데 물의 기억의 콘크리트 구조체는 곡률이 계속해서 달라지고, 완만하다가도 갑자기 경사가 치솟기도 하는 복잡한 형태예요. 회사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구조체를 세워야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데 갱폼 자체가 오지 않으니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LH가든쇼 개막식에 맞춰 완성시켜야 하는 상황이니 더욱 초조했죠. 당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허리 통증까지 생기더라고요. 공사 현장에서 살다시피 하고 야간 작업을 밥 먹듯이 하며 무사히 완료는 할 수 있었어요. 마지막에는 관계자 모두 모여 웃고 악수하며 헤어졌죠. 에이원의 대표작 하나를 뽑는다면요. 물의 기억이요(웃음). 2021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초청정원인 앤드류 그랜트의 ‘덩굴의 그물망’을 인상 깊게 봤어요. 균류 네트워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유연한 형태의 덩굴 구조물이 독특한 작업이죠. 앤드류 그랜트가 한국에 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코디네이터인 엘피스케이프와 협업하며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재료나 시공 등 여러 여건이 설계자의 나라와는 다를 수 있으니까요. 사실 디자인 계획안을 처음 받았을 때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라이노 형식의 파일이 전부였거든요. 한국의 경우, 구조물을 만들려면 꼭 캐드 형식의 상세 도면이 필요해요. 다행히 최영준 소장에게 부탁해 캐드 도면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구조물을 지지하기 위한 하부 기초 도면이 미비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엘피스케이프와 함께 의논하며 구조물의 하중을 받아내고 침하를 방지하기 위한 하부 기초를 설계하고, 구조물을 잘 지지할 수 있는 추가 구조를 만들었어요. 엘피스케이프가 앤드류 그랜트에게 도면을 전달하고 의견 조율까지 해주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덩굴의 그물망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구조물의 선형을 부드럽게 타고 오르는 조명입니다. 비용 문제로 설치하지 못할 뻔 했는데 와이엠일렉트로닉스의 신병기 대표님이 흔쾌히 후원해 주어서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죠. 조경가의 디자인을 그대로 관철하는 시공을 지향한다고 들었습니다. 설계자의 의도를 그대로 구현하는 것이 시공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결과물이 나왔을 때, 설계자와 시공자가 서로를 탓하는 게 참 소모적인 일이잖아요. 도면대로 시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 사실을 공유해 함께 타협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 효율적인 공정이 있다면 설계자에게 알리는 것 또한 시공자의 몫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지요. 도면 그대로를 시공하는 작업자를 넘어 시공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요. 시공가에게 ‘창의력’이란 어떤 지점에서 발휘되는지도 궁금합니다. 공간을 많이 보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어떤 공간을 가든 인상 깊은 디테일이 있다면 자세히 살피고,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나라면 어떻게 풀어나갔을지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충분히 보내야 합니다. 자신의 작업도 들여다봐야 해요. 시공이 끝났을 때 바로 현장을 떠나지 않고 주변의 피드백을 들어보고 더 개선할 점은 없는지 고민해보는 거죠. 모든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의문을 가지고 바라봐야 합니다. 시공자에게는 창의력이라기보다 임기응변 능력이 필요한데, 요행을 바라라는 게 아닙니다. 꾸준히 관찰하며 익힌 것들을 응용하며 대응하는 기술, 그런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롤 모델이 있나요. 딱히 닮고 싶은 사람이 있지는 않지만 제게 가르침과 도움을 준 사람은 있죠. 서서울호수공원 프로젝트를 하며 만난 최신현 대표님(씨토포스)에게 감동을 받으며 배웠고, 에이원 개소 시절부터 이대영 소장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깨달은 바가 많아요. 롤 모델로 삼을 만한 훌륭한 분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많아요. 사실 닮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후학 양성도 활발해 지거든요. 현장에 가보면 시공 작업자의 연령대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새로운 인력이 유입되는 게 아니라는 증거죠. 그들의 노하우와 기술을 배우고 새로운 시공 스타일을 만들어갈 사람들이 없는 거예요. 소위 말하는 ‘기술’을 배우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이런 상황을 만드는 데 한몫하고 있고요. 시공 디테일이 뛰어난 답사 장소를 추천해주세요. 제가 시공했던 현장인 서서울호수공원의 몬드리안 정원을 좋아합니다. ASLA 우수상을 받은 곳인데, 최신현 대표가 “서서울공원은 설계에서 추구했던 부분을 시공 현장에서 디테일하게 표현해 낼 수 있었던 작품이다. 시공 현장에서 디테일을 표현할 수 있었던 건 서울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감리 역할을 부여했기 때문”이며 “디자인은 도면상에서의 미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장에서 보이는 디테일의 미가 중요하다”고 말한 곳이죠.(각주 1) 실제로 시공 현장에서 최신현 대표와의 작업을 통해 제대로 구현해낸 디테일이 많습니다. 도면을 보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물어 보면 최신현 대표님이 그 자리에서 펜과 종이를 꺼내 디테일을 그려 설명해주었습니다. 어떤 구조물을 만들 때 왜 반드시 각파이프를 써야 하는지, 도면 속 형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위치에 파이프가 들어가야 하는지도 제시해주었죠. 그림과 설명만으로 감을 잡을 수 없을 때는 목업(mock-up)을 만들어 디테일에 대한 이해도를 충분히 높인 뒤 시공 작업에 돌입했죠. 몬드리안 정원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의 난간을 환봉으로 바꾸면 어떤 분위기가 생길지 의논하며 만들어가기도 했고요. 완성도 높은 공간을 위해 설계자와 어떻게 협의하고 이야기해 나가야 하는지 알게 된 현장이었습니다. 지금껏 접한 시공내역서 중에서 인상 깊었던 도면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마당더랩과 HLD의 도면이 너무 상세해서 놀랐어요. 어떤 시설과 시설이 만나는 방식, 시설과 땅이 만나는 접점의 형태 등을 쉽게 이해해 시공할 수 있도록 상세도와 예시 이미지를 제시해주더라고요. 시공이 편할 뿐 아니라 공사비를 계산하기도 수월하죠. 안마당더랩은 기획, 설계, 시공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보는 사무소라서 그 노하우가 더 깊은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디자인을 실재로 구현하는지 보며 배운 점도 많아요. 저는 사실 단면을 일일이 끊어보면서 레벨이 바뀌는 부분, 시설과 시설이 만나는 방식, 높이 차 등을 계산하는 작업 자체를 즐거워해서 불친절한 도면을 받아도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좋은 도면을 받는다면 본래 도면 분석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시공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데 쓸 수 있을 겁니다. 에이원 같은 그룹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요.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상태라면 창업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건 클라이언트와 일감일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제게 매일 같이 했던 말이 “돈 따라가지 말라”였어요. 물론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니 모두에게 저 문장이 해답이 되진 않을 겁니다. 제가 세운 신념은 신의를 지키는 거였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제가 유일한 직원이자 대표다 보니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할 수 없었어요. 일감이 비슷한 시기에 여러 개 들어오면, 나의 흥미나 벌 수 있는 돈의 크기 등을 따지지 않고 가장 먼저 의뢰가 들어온 일을 했습니다. 이런 관계가 쌓이고 쌓이다 보니 에이원을 믿고 맡겨주는 클라이언트가 늘어나게 됐죠. 독립을 꿈꾸고 있지만 일이 없을 것 같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떤 관점에서 보면 조경 시공 분야의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에요. 만약 자신이 충분한 경험을 통해 시공 노하우와 한 회사를 이끌어 나갈 정도의 정신력,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상처받기보다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대응력을 갖춘 상태라면 겁내지 않고 출발해보기를 권합니다. 서두를 필요도 없고,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봐줄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다보면 자연히 독립해야 할 시점을 알게 돼요. 남과 자신을 비교할 필요도 없고, 가능하다면 우선 지금 일하는 곳에서 자신이 재미를 느끼는 일, 어렵더라도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을 충분히 해보기를 바랍니다. **각주 정리 1. 배석희, “서서울호수공원, ASLA 우수상 쾌거”, 「Landscape Times」 2011년 10월 5일. 안기수는 공간시공 에이원(A1)의 대표다. 상지영서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한 뒤, 초림조경과 태상조경(현 희담)에서 일하며 다양한 조경 공간을 만들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16년 공간시공 에이원을 열었다. 서서울호수공원, 남해 끽다원, KT 디지코가든, LH가든쇼 시그니처가든 ‘물의 기억’ 등을 시공했다.
  • [모두의 퍼니처] 아름다운길 공간의 미를 완성하는 길
    신뢰를 만드는 완성도 높은 시공 지난 세월 우리가 걸어온 길의 바탕에는 우리를 신뢰한 클라이언트가 있었다. 이러한 신뢰 관계는 직영 시공팀과 연구소, 현장 관리자가 하나의 팀처럼 한 호흡으로 움직이며 오롯이 완성도 높은 시공을 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덕분에 광화문을 포함한 국내 주요 랜드마크의 길을 맡아서 시공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아름다운 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이를 위해 프로젝트 시작부터 세심하게 시공한다. 추후 손상 가능성을 예상해 재료 배합비부터 마감 코팅까지 현장 상황에 맞춰 시공하며 하자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는 기술적 완성도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시민들이 공간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이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설계자의 비전을 실현하는 맞춤 시공 길은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닌 공간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요소다. 설계자와 여러 차례 협의하며 디자인 의도를 공간에 온전히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기존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려 한다. 또한 소재와 디자인을 고민하는 설계자가 더 나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에 따른 다양한 샘플을 제공한다. 대안으로 제시했던 소재를 실제 현장에 구현하는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스러운 표현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조화로운 길을 만들고자 한다. 인위적인 느낌보다는 재료 본연의 질감과 색감을 살리는 표면 처리 기술에 집중한다. 또한 공간의 특성에 따라 적절한 변주를 시도한다. 길이 공간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때와 조용히 배경이 되어야 할 때를 구분하고, 각 공간의 특성에 맞는 포장 해법을 제안한다. 현재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장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포장 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광화문 월대, 역사와 현대를 잇는 땅 광화문 월대는 우리의 정체성을 담은 프로젝트다. 15년 전 경화토 건식 포장 브랜드로 나아가던 시기에 광화문 앞길을 시공하며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2023년 월대 복원 작업에 다시 참여하게 된 게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특히 광화문은 한국의 대표적 랜드마크이자 문화유산이라 뜻깊은 프로젝트였다. 사실 유입되는 관광객과 차량 통행이 많아서 공기 내 완성도 높은 길을 구현하는 것이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때론 야간 작업을 불사하며, 역사적 가치를 존중하는 동시에 현대적 내구성을 갖춘 포장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광화문 앞길 시공 이후 시간이 흘러, 광화문 월대 복원을 하며 같은 공간에 우리의 기술을 적용할 수 있어 상당히 큰 보람과 의미를 느꼈던 감격스러운 프로젝트 중 하나다. 대전 신세계백화점 옥상정원, 혁신적 패턴의 공중 정원 SF(Smart Finish) 기술을 적용한 SF 콘크리트 포장이라는 새로운 공법의 기술력을 한 단계 발전시킨 프로젝트다. SF 콘크리트는 자연스러운 선형과 미려한 곡선 마감 후 표면 마감 처리를 통해 고급화하는 제품으로, 일반 콘크리트 포장과 다르게 세련된 표면 질감을 선사한다. 대전 신세계백화점 8층 옥상정원에 시각적 편안함을 제공하는 거친솔 마감과 골재 종류에 따라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워싱 마감을 조합해 국내 최초의 교차 패턴을 포장에 구현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설계자의 독창적인 곡선 교차 디자인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었고, 시공 중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극복해 나가며 성장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SF 콘크리트라는 포장 기술을 업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공간적 제약이나 디자인적 도전도 기술과 열정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됐다. 서울공예박물관, 지형의 미학을 담은 지형틀 서울공예박물관은 길 시공 외에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 현장이었다. 외부에서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진입로의 왕마사 포장과 측면 진입로 콘크리트 포장뿐만 아니라, 건물 양 옆에 배치된 지형틀 시공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 지형틀은 높이와 경관의 변화를 통해 지형의 미세한 차이를 표현하는 요소로, 자연스러운 선형 표현이 중요하다. 투수 콘크리트에 별도의 표면 처리를 통해 골재를 노출시키는 마감을 적용했다. 선형 표현을 위한 거푸집 설치부터 재료 선정과 설치 방법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곡선과 높낮이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두께의 합판과 함석을 활용하고, 일정한 폭을 유지하기 위한 고정 작업이 필요하기도 했다. 낯선 작업이라 쉽지 않았지만 완성된 결과 물과 함께 거푸집 제작에 관한 노하우를 얻게 된 소중한 프로젝트였다. 아름다운길은 앞으로도 ‘공간의 미를 완성하는 길’이라는 비전을 지향하며 더 나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나가고자 한다. 건축과 조경으로 구성된 공간 환경에서 시민들이 직접 만지고 걸으며 경험하는 길은 공간의 시작이자 끝이다. 길을 통해 공간 전체의 가치를 높이고, 나아가 공간의 정체성을 완성할 수 있는 특별한 요소가 될 수 있게 노력하고자 한다. 지속가능한 미래 도시를 위한 투수성 포장 기술 연구 등 끊임없는 기술 혁신으로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길을 만들고 싶다.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을 오랫동안 만들며 어제보다 더 나은 길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다. 2005년 설립된 아름다운길은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길을 만든다. 단순한 사명이 아닌 우리가 품고 있는 철학과 지향하는 비전을 함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클라이언트가 언제나 믿고 맡길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시공을 지향하며, 클라이언트를 포함한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에 맞춘 포장 해법을 제공하고자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