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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지사(地史)를 돌보고 가꾸는 조경가
한국 조경 50년사를 대표하는 1세대 조경가 정영선. 그의 삶과 작업을 조명하는 전시회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식목일부터 9월 2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4월 17일에는 그의 조경관을 담은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감독 정다운)가 극장 개봉한다. 세계조경가협회IFLA 제프리 젤리코 상을 받은 지난해에 이어 2024년은 가히 정영선의 해라고 할 만하다.
지난 50년간 정영선(조경설계 서안)의 손을 거친 작품은 정확한 목록을 작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개인과 기업의 정원, 도시 가로와 광장, 근린공원, 기념공원, 생태공원, 산업시설 재활용 공원, 선형 공원, 묘역, 병원, 오피스, 상업시설, 복합문화공간, 공동주택단지, 공장, 캠퍼스, 종교시설과 단지, 테마파크, 리조트, 하천. 그가 다룬 프로젝트의 유형은 조경 직능의 다양성과 복합성 그 자체를 예시한다. 이 방대한 작업을 관통하는 ‘정영선 조경’ 고유의 특징은 무엇일까. 흔히 말하는 ‘자연스러움’, ‘꾸미지 않은 듯한 꾸밈’, ‘한국적 풍경’ 같은 형용어로 그 특징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정영선 조경 특유의 미감을 낳는 설계의 기반은 땅의 시간과 이야기를 읽어내고 주변 경관과 관계 맺는 태도다. 그의 작품은 즉물적이고 감각적이지만 그가 자신의 태도를 설명하는 방식은 관념적이고 이론적이다. 정영선의 글과 말에서 그의 태도를 대변하는 개념을 단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지사(地史)”를 택할 것이다. 그는 ‘지사’란 지형, 지질, 토양, 인문, 사회, 역사, 문화 등을 포괄하는 시공간적 맥락을 뜻한다고 말한다. 한 인터뷰에서 정영선은 매우 간명하게 조경의 직능을 정의한다. “조경가는 연결사”다. 지사, 즉 땅의 시공간적 맥락을 섬세하게 독해해 설계의 조건과 연결하는 태도가 그의 작업을 가로지른다. 지사를 잇고 엮는 태도를 담은 그의 문장 몇 구절을 옮긴다. “우리가 다루는 대지[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절대 독립되지 않고 시‧공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조경이라는 작업[에서는] …… 관계를 다듬고 설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경관은] 글자의 선택과 배열, 호흡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시’처럼 세심하게 다뤄져야 한다.”
지사를 돌보고 가꾸는 정영선의 설계는 대표작인 희원과 선유도공원을 비롯한 여러 작업에 구현되었지만, 그것을 가장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오설록 티뮤지엄(+이니스프리 제주 하우스)일 것이다. 제주도의 필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오설록 티뮤지엄은 아모레퍼시픽이 1983년부터 일궈온 차나무 재배지인 서광다원 한구석에 있다. 24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차밭은 불모의 황무지인 곶자왈을 개간해낸 역동적인 생산 경관이다. 곶자왈은 지하 깊숙한 곳까지 돌과 자갈이 덮여 있어 지형이 울퉁불퉁하고 가시덤불과 양치류가 얼크러져 정글처럼 빽빽한 제주도 특유의 야생 숲이다. 정영선과 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loci)은 오설록 티뮤지엄의 새 경관을 직조하면서 건물에 맞붙은 거친 곶자왈 숲의 지형과 수목, 돌과 풀을 그대로 받아들여 재해석했다. 제주 중산간 저지대 고유의 ‘지사’가 쌓인 곶자왈의 원풍경을 돌보고 가꿔 장쾌한 녹차밭 경관의 지사와 연결한 것이다. 오설록 프로젝트는 현재진행형이다. 함께 작업해온 건축가 조민석(매스스터디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둑알을 하나씩 놓아 바둑판 위에 ‘집’을 키우듯 …… 환경과의 관계성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확장해나가는 느리고 섬세한 과정이었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는 한 원로 조경가의 회고전이 아니다. 조경설계를 개척하고 이끌어온 한 개인의 업적뿐 아니라 한국 조경 50년의 성장사와 그 이면을 새롭게 읽을 수 있다. 다음 50년의 좌표를 질문하고 설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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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감각] 여전히 남아있는 풍경이 있다
설계 수업을 들을수록 책이 늘었다. 조경은 나무를 심는 게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하며 수강한 1학년 기초 설계 스튜디오. 교수님은 대상지를 분석하고 좋은 개념과 콘셉트를 제시하는 것이 나무를 고르는 일보다 먼저라고 했다. 대상지 분석? 좋은 개념? 콘셉트? 이것들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선배들에게 도움을 구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줄기처럼 촉감만 스쳐 갈 뿐 좀처럼 움켜잡을 수 없었다. 책 속에서 단단한 것을 건져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알쏭달쏭한 단어를 만날 때마다 책을 사 모았다.
조경설계를 그만두면서 이 책들을 버렸다. 자취방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책을 볼 때마다 조경가를 꿈꾸었던 지난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문 앞에 모으니 손수레로 두 짐이 되었고 빠르게 치우고 싶어 고물상에 팔기로 했다. 그런데 한 짐을 내려 두고 집으로 돌아오니 나머지 책이 사라져 있었다. 폐지를 모으는 이웃 할머니가 그새 챙겨간 것이다. 내 책을 뒤적이고 있는 할머니에게 마음대로 가져가시면 어떡하냐고 돌려 달라고 했다. “버리려고 내놓은 거 주워 간 게 잘못이냐?” 할머니는 역정을 냈지만 꿋꿋이 책을 되찾아 와 고물상에 팔았다.
가끔씩 오래 전의 책장을 떠올린다. 어떤 책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무엇을 찾았는지 기억을 되짚는다. 가물가물하다. 왜 동네 할머니와 다투면서까지 책을 되찾아 왔는지 생각해본다. 그냥 두었다면 그 무거운 짐을 챙겨 귀찮은 걸음을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을 텐데. 이해하기 어렵다. 책을 색깔과 크기로 나누어 꽂아 두었던 책꽂이와 해가 갈수록 색이 옅어지던 책등, 테두리가 노랗게 변색된 내지, 그리고 지저분하게 붙여 놓은 포스트잇만큼은 선명하다. 손가락을 적시는 물줄기의 촉감처럼 여전히 남아있는 풍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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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유청오
공감 너머의 공명
‘빛 우물’에서 처음 만났다. 2015년 12월, ‘유청오의 이 한 컷’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동그란 중정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식물들 위를 가로지르며 죽죽 뻗은 단풍잎을 닮은 빛줄기가 인상적이다. 우물을 수식하는 단어로 빛을 쓰기에는 그 양이 좀 부족하지 않나. 사진을 두어 번 더 들여다보고 나서야 해가 내리쬐는 각도에 따라 저 우물이 빛으로 가득 차는 시간도 있겠다는 걸 깨달았다. 사진 찍는 일이 시 쓰는 일과 닮아 보였다. 막연히 사진 찍는 일은 낭만적일 거라 상상했다. 카메라를 메고 현장의 분위기를 흠뻑 탐미하다가 시적 풍경을 포착하는 순간 멈춰 셔터를 누를 거라고. 하지만 실제는 전혀 달랐다. 사진 촬영은 체력전이다. 종일 뛰어다니고 무거운 장비를 지고 끌고 다녀도 온몸의 관절이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사진가로 살아남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름이면 유청오는 기능에 충실한 테크웨어를 입고 팔에 토시를 낀다. 목 뒷덜미와 귓바퀴 바깥에까지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카메라 서너 개와 드론을 들고 현장을 뛰어다닌다. 해가 대상지 전역에 고루 뿌려지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기에, 겨울이면 더욱 바빠진다. 시간, 날씨와 싸우는 동시에 설계 의도를 캐내기 위해 조경가와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인다.
인터뷰를 함께 갈 때면 유청오는 사진가를 넘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조경을 전공하고 실무를 경험한 전 조경가로서 “저 하나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하고 말을 뗀 그는 내가 생각지 못 한 질문을 던진다. 그 방식이 무례하지도 흐름을 깨트리지도 않는다. 렌즈 앞에 서는 걸 어색해하는 인터뷰이를 위해 일부러 농담을 던지거나 대신 포즈를 취하며 딱딱한 분위기를 녹인다. 사람과 잘 어울리는 게 천성이냐는 내 물음에 유청오는 답했다. “사람을 찍을 때는 공감과 존중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요. 일종의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거예요. 서로 일 때문에 만난 게 아니라 공유하는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함께 만들지 않은 이미지를 일방적으로 사진에 담는 것은 기억을 박제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좀 거창하게 말했네요. 결국 소통이 중요하고 촬영은 그 다음이라는 말이에요.” 어쩌면 유청오의 사진은 프레임 안과 밖에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쓴 시일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뭐했나요?
단순히 어제의 일과를 묻는 게 아니라 인생에 대한 질문처럼 느껴져서 고민했어요.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내가 무엇을 찍고 있는지 고민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어요. 올해가 조경사진가라는 단어를 명함에 새기고 일한 지 10년이 되는 해에요. 그런데도 일은 언제나 어렵고 사진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 더 나은 사진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하는 중간 틈틈이 답을 구하려 애쓰고 있어요.
『환경과조경』과 함께하게 된 지 10년이에요. 첫 작업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나요.
마로니에공원, 잘 찍고 싶은 욕심에 자꾸 갔어요. 고생은 기억에 남는 법이라더니 지금도 생생해요. 2014년 『환경과조경』이 리뉴얼 하면서 전속 포토그래퍼를 찾고 있었고 제게 연락이 닿았어요. 운이 좋았죠. 『환경과조경』의 첫 의뢰로 마로니에공원을 찍게 됐는데 그 자체로도 의미있었지만, 10대 후반을 거쳐 20대 시절을 대학로에서 보낸 터라 마로니에공원에 얽힌 추억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더 잘 찍고 싶었고요. 이 작업을 하며 ‘익숙한 것에 대한 낯섦’이 뭔지 알게 됐어요. 자주 가던 곳이니 공원이 리뉴얼되며 바뀐 곳이 어디인지도 명확했고, 미리 전달받은 설계 자료를 통해 어떤 부분이 중요한지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개인적 경험과 잘 찍고 싶다는 욕심과 뒤엉켜 헝클어졌던 것 같아요. 서너 번 방문한 후에야 그냥 현장에 집중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런데도 카메라를 들기 어려웠어요. 하루 종일 앉아서 보기만 한 적도 있고, 두어 시간 주변을 돌다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공원 특성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당시 마로니에공원은 무대와 광장, 배후 건물들과의 연결 고리로 작동하고 있었거든요. 어디에서 어떻게 찍어야 공간의 유기성이 보일지, 프로그램도 함께 담을 수 있을지 고민했던 거 같아요. 그렇게 큰 규모의 공간도 아닌데, 현장에 열 번도 넘게 방문했어요. 그런데도 육체적 고통보다 심적 고생이 더 컸던 작업이었습니다.
조경이라는 피사체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누군가 내게 조경 사진을 찍어달라고 카메라를 쥐여 준다고 상상하니 막막하더라고요. 프레임에 무엇을 얼마큼 담아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혀요.
도발적인 답이지만, 그걸 알았다면 사진 일타강사가 됐을 겁니다. 워낙 조경이라는 범위가 넓고 다루는 대상도 많아 프레임에 담아야 하는 것을 꼬집어 말할 수 없네요. 누군가 조언을 구한다면 되도록 정면을 찾아보라고 권할 겁니다. 이때의 정면은 촬영자, 설계자, 시공자, 의뢰인 등 누구를 위한 것이냐에 따라 달라져요. 이에 따라 어디까지 찍어야 할지 경계를 만들어 찍고 있어요. 클라이언트는 종종 거울로 본인 얼굴을 보듯 공간을 바라봐요. 즉 보고 싶은 것을 보기 원하죠. 사진은 객관적 매체지만,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빛의 화장술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또 담을 것을 찾기보다 담을 수 있는 것을 찾습니다. 현장의 이론적 배경, 날씨, 장비, 자신의 능력을 아는 게 중요하죠.
건축 사진의 경우, 건축물을 오브제처럼 담거나 건축물의 각을 회화적 요소로 사용하기도 하죠. 조경 사진에서 이런 시도를 해본 적이 있나요.
‘조경에서 무엇이 오브제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 비슷한 고민을 해본 적 있는데 결국 사람이 조경의 오브제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조경은 대지에 흩어져 있는 나무, 벽, 땅, 시설, 포장 등 여러 요소가 만들어낸 공간이거든요. 공간(空間)이라는 단어의 뜻 자체처럼 채워지지 않은 곳을 찍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꼭 여집합을 찍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예를 들어, 수벽으로 공간을 위요시키는 개념을 보여주려면 수벽이 아닌 수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찍어야 하는 식이죠. 결국 공간의 의도를 보여줄 수 있는 오브제는 그 수벽 안에서 아늑함을 즐기는 사람이 돼요. 인체 스케일을 넘어 넓게 펼쳐진 광장에서는 뛰노는 아이들이, 잔디밭에서는 피크닉을 온 가족이 오브제가 되는 셈이죠. 조경 안의 모든 피사체가 오브제로 치환될 수도 있다고 상정하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담을 것을 찾기보다 담을 수 있는 것을 찾는다는 것도 여기에 기반을 둔 생각이고요.
대상을 어떤 관점으로 담느냐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낼 수 있어요.
조경이 식물을 많이 다루다보니 식물로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회화적으로 찍을 수도 있고 현대적으로 느껴지게 할 수도 있죠. 비슷한 도구를 쓴다고 해서 비슷한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같은 붓으로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말이죠. 악보를 보며 운율을 상상하는 음악가나 시나리오를 쓰는 감독과 같은 마음으로 대상지에 깔려 있고 솟아나오는 모든 조경 요소를 바라보고 있어요.
사진은 언제부터 좋아했나요.
고등학교 시절 두 살 터울인 형에게 큰 영향을 받았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군대에 사진병이라는 보직이 있었어요. 부대 내 행사나 훈련 내용을 촬영하는 일을 하죠. 대학에 입학한 형이 사진병 준비를 시작하면서 사진 학원에 등록했고 카메라를 샀습니다. 펜탁스에서 나온 SLR 카메라였어요. 완전한 수동 카메라가 주는 감각이 새로웠어요. 전에는 일회용 카메라나 소위 똑딱이라 부르는 카메라 정도만 다뤄봤거든요.
조리개나 셔터 스피드 같은 카메라의 메커니즘 자체도 매력적인데, 그 결과물이 이미지로 남는다니 관심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형이 군 제대를 한 후에 카메라를 물려받았고, 손에 쥐고 쓰다 보니 궁금한 게 생겼죠. 책을 읽으며 답을 찾아보고 사진에 대한 호감이 더 깊어지고 하는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 듯 반복된 거죠.
처음 갖게 된 본인 소유의 카메라는 뭐였나요.
캐논의 20D. 20대 중반 정도에 취미 생활을 본격적으로 할 생각으로 들였는데, 샀을 때의 그 설렘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민감한 기계라 끌어안고 자진 못했지만, 머리맡에 두고 자고 틈만 나면 손에 쥐고 있었죠. 벌써 20년이나 됐네요. 전 디지털 카메라의 수혜를 받은 세대에요. 만약 필름 카메라밖에 없었다면 과연 내가 사진을 업으로 삼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하거든요. 필름 값과 현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으니까요.
한참 동호회가 유행하던 시기라 사진 동호회에 가입해 형, 누나들에게 많이 배웠어요.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만 했던 상상을 사진으로 찍어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죠. 이즈음에 사진으로 용돈벌이를 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회사마다 웹진을 내는 게 트렌드였거든요. 웹진 사진 전문 포토그래퍼도 있던 때였어요. 동호회에서 만난 형 소개로 웹툰 회사와 건설사와 연이 닿아 사진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죠. 그때의 경험이 지금 도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투박하고 쑥스러움을 타는 경우가 많아요.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어색해하시죠. 그 딱딱한 분위기를 말랑하게 풀어내고 자연스러운 표정과 자세를 끌어내는 방법을 조금 배웠어요. 공사 현장을 둘러보며 그 복잡하고 정신없는 분위기에 익숙해지기도 했어요. 현장 시스템이 어떤 순서로 흘러가는지도 경험했고요.
설계사무소를 다니다가 조경사진가로 전향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조경사진가를 꿈꾸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경제적 측면에서 괜찮은 편인가요.
대단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닙니다. 훗날 사진가가 될 거라면 지금 당장 시작하자는 생각이었어요. 무모했죠. 금전적 기반도 없었고, 촬영 능력도 사진과 관련된 배경도 부족한 상태였거든요. 그래도 신났던 기억이 나네요.
경제적 측면은 의식주의 목표를 어느 선에 맞추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봅니다. AI 기술이 발달하며 의도한 이미지를 좀 더 쉽게 만들 수 있게 됐잖아요. 현실을 반영하는 사진가라는 직업을 과연 유망하다고 말할 수 있나 싶기도 해요. 하지만 AI와 달리 사람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구현하려 하잖아요. 분명 사람이 찍은 사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해요. 카메라를 매개로 하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먹고사는 건 가능합니다. 얼마를 버느냐는 문제는 다른 차원의 일이겠지요.
대학원에서는 무엇을 공부하셨어요.
넓은 시야를 배운 것 같아요. 대학원은 그냥 무언가를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진학한 거였어요. 학부를 졸업할 즈음 막상 조경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특출 나게 잘하는 것 없이 운 좋게 입학했고 그때의 결정에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닌 대학원은 학부 때와 다른 특유의 공기와 분위기가 있었어요.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 가볍고 무거운 사건들을 겪는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보고 배우게 된 것들이 있어요.
늘 사진 잘 찍는다는 소리를 들었었나 봐요.
쑥스럽지만 제법 듣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사진을 더 좋아하게 되고, 자존감도 올라가고 그랬죠. 학생 때는 학과 행사 사진 촬영은 모두 제 몫이었죠.
대학원과 설계사무소에서의 경험이 사진을 찍는 데 미치는 영향은 없나요.
이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을 겁니다. 대학원은 시야를 넓혀 주었고 설계사무소는 조경의 구조를 아는 데 도움이 됐어요. 대학원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 과정에서 겸손함을 배웠고 모르는 것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하는지 터득했어요. 작은 울타리에서 한 발 밖으로 나가는 법을 배웠달까요. 설계사무소에서의 실무는 조경 자체를 알게 해줬죠. 같이 일했던 선후배는 현실 감각을 일깨워줬죠. 대학원과 설계사무소에서 각각 삼 년 정도의 짧은 시간을 보냈는데,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준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작업을 함께 하며 사진에 대한 대화를 종종 나눴잖아요. 그때마다 상업 사진과 작품 사진 사이의 괴리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한다고 느꼈어요. 그 작업의 균형점을 찾아나가고 있나요.
답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상업 사진이 무엇이고 작품 사진은 무엇인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어요. 선을 긋는 게 맞는지도 혼란스럽고요. 제 사진에 아직 작품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낯 뜨겁기도 하고요. 조경설계와 비슷한 부분도 있어요. 조경설계에 클라이언트가 있듯 제가 의뢰를 받아 찍는 사진에도 클라이언트가 있거든요.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장면이 있기도 하고, 말하지 않아도 저 스스로 클라이언트 성향을 의식해 작업하기도 해요. 다루는 피사체 자체가 조경가의 작품이기도 하잖아요. 상업적 속성과 작품으로의 방향을 둘 다 품고 싶은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환경과조경』에 ‘유청오의 이 한 컷’을 연재하고 있죠. 글이 없는 지면이라 늘 제목만 보고 담긴 의미를 추측하곤 했거든요. 어떤 마음과 목표로 이 지면을 채워나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경 미디어에 실리는 사진이라는 점을 의식하고 두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어요. 첫 번째는 현장 스케치나 설명적인 사진을 지양하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여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쉼표 같은 지면을 만드는 겁니다. 굳이 해석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는 꼭지가 되어도 좋고요. 제목도 되도록 추상적으로 짓고 있어요. 두 번째는 반드시 조경 현장에서 찍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의도적으로 작정하고 이 한 컷을 찍기도 하고, 찍어 온 사진 중 하나를 이 한 컷으로 선정하기도 하죠.
서울식물원에서 진행한 ‘더 튤립’ 전을 인상 깊게 봤어요. 조경을 전공한 사람이 찍은 식물 사진이니, 식물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찍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회화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사진이 가득했어요. 작업 과정과 의도가 궁금해요.
튤립의 특성과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은 사진은 서울식물원이 펴낸 『튤립 도감』에 실렸어요. 더 튤립 전은 이 도감 작업의 연장선인 셈이죠. 튤립은 장미와 더불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종이에요. 육종가들이 다양하고 화려한 꽃을 피우도록 개량을 거듭해왔고 그 종수가 셀 수 없이 많아요. 서울식물원에는 200종이 넘는 튤립이 있었어요. 싹을 틔우기 전 튤립 구근이 쫙 깔려 있는데, 막막했어요. 튤립은 대부분 같은 시기에 꽃을 피우거든요. 2주 내 200송이의 꽃이 천천히 피어날 예정이었죠. 또 햇빛을 받으면 받을수록 꽃잎이 벌어져서 아침, 점심, 저녁의 모습이 달라요. 즉, 200여 종의 튤립 모습을 비슷한 조건으로 찍기 위해서는 제가 그만큼 부지런해져야 한다는 말이었죠. 예상은 했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웠어요.
전시를 위한 사진 작업은 또 색달랐어요. 튤립은 꽃받침이 없어 구조적으로 찍기 좋은 꽃이에요. 또 다른 종과 접붙여 개량되다보니 수국처럼 피는 튤립, 난을 닮은 튤립 그 형태가 무궁무진하죠. 그렇게 다양한 꽃들을 매일 꾸준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꽃송이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서사를 가진 인물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오랜 시간을 들여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구근 식물인 튤립은 길어야 3~4년을 살고 대부분 한해살이에요. 사진 찍던 중 제가 튤립의 온 생애를 다 지켜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꽃이 핀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 튤립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기록하는 일이라 생각하니 슬퍼지더라고요. 자신이 가진 옷 중 가장 좋은 것을 차려입고 화려하게 단장한 사람들의 영정사진을 찍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묘한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다채로운 튤립의 색에서 전통인물화를 떠올렸어요. 먼 이국에서 한국에 온 튤립을 존중하고 그 특성을 기록하고자 동양적 느낌을 내고 싶었어요. 그렇게 더 튤립 전이 완성됐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후에 수선화 도감 작업도 진행했어요.
사진을 찍다보면 조경과 관련된 사회 문제나 이슈가 보이기도 할 것 같아요.
조경은 인간의 삶이 반영된 결과물이라 생각해요. 즉 제가 찍는 촬영 대상은 이미 사회적 결과물로 빚어진 방증인 거죠. 몇 년에 걸쳐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친 코로나19, 계절마다 이슈가 되는 미세먼지와 황사,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안전하고 다양한 방식의 휴게 공간 등에 대한 인식을 담아 사진을 찍는 게 제 일이기도 합니다. 어린이를 보기 힘들어진 어린이 놀이터와 공원을 보며 새삼 인구 감소 문제를 실감하기도 해요.
조경 외에 관심 있는 피사체는 뭔가요.
잊히는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구도심의 모습, 사람의 흔적을 좋아합니다. 언제까지 새것을 지향하기는 어렵잖아요. 새롭고 물질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시대라 그런지 피고 지는 계절이 더 값지고 의미 있게 느껴져요.
찍기에 가장 까다로운 대상도 있을 것 같아요.
목적성이 보이지 않는 공간을 찍는 게 쉽지 않아요. 명확한 의도 없이 좋아 보이는 것을 섞은 공간을 촬영할 때면, 저 역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미지를 재생산하게 되더라고요.
앞서 말하기도 했지만 빈 곳을 찍는 것도 어려워요. 보통 조경가의 의도와 공간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사람을 함께 담는 방식을 택하는데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하면서 찍어요. 때로는 나무와 벤치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찍기도 하죠. 의식하고 찍지 않았는데 그런 이야기가 공간에 씌워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해요. 진입 공간을 설계할 때 입구성을 강조하기 위해 큰 나무를 심거나 너럭바위, 벤치 등을 놓기도 하잖아요. 같은 맥락입니다.
조경이라는 단어를 풀어 해설하면 경관을 짓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 경관이라는 단어를 참 넓게 풀이할 수 있는데, 때로는 사람을 품기도 해요. 사람을 프레임에 담을지 담지 않을지를 어떻게 결정하나요.
사진(寫眞)의 한자 풀이가 사실을 베낀다는 뜻이니 조경 사진은 경관을 베껴 넣는 일이기도 할 겁니다. 사진은 사실에 의탁하고 조경은 경관에 의탁을 하니 둘이 속성이 비슷한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조경과 사진 모두 사람을 위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라 생각해요. 조경은 사람을 전제한 경관을 만드니 조경 사진은 그 경관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면 되는 것이겠죠.
공간 안에서 사람이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찍지는 않습니다. 현장에서 목격하는 무수히 다양한 사람의 행태를 예상하거나 조정하는 건 바람의 방향을 맞추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에요. 사람을 중심에 두기보다 현장의 나무, 꽃, 튀어 오르는 물방울, 새어나오는 빛을 의인화해서 생각하곤 해요. 조경 요소를 ‘미녀와 야수’의 마법에 걸린 사물들처럼 여기는 거죠. 그러면 팽나무의 뻗은 나뭇가지가 지나는 사람에게 흔드는 손이 되기도 하고, 일렬로 선 단풍나무가 그려내는 모양이 기차놀이 하는 아이들의 행렬이 되기도 해요.
사진을 찍으며 생긴 루틴, 철학, 원칙은 없나요.
공간의 정면을 찾는 데서 시작하는 게 루틴이 됐어요. 사진 한 장에 모든 단계와 모든 규모의 공간을 담을 순 없죠. 그렇기에 전 공간을 관통하는 통일된 이미지를 사진에 담아야 하기 마련입니다. 사진으로 조경을 읽는 방법이라 일컬어도 될 것 같아요. 모든 작업에서 공간의 대표이미지―얼굴―를 찾는 일을 가장 먼저 합니다.
평소에 스냅 사진도 찍나요.
갑자기 반성하게 되네요(웃음). 요즘 일상 스냅은 자주 찍지 않아요. 일부러 안 찍는 건 아니고, 일이 바쁘다보니 작업을 하는 중 틈이 나거나 눈을 사로잡는 장면이 있으면 스냅을 찍는 식으로 바뀐 것 같아요.
닮고 싶은 사진가가 있다면요.
제임스 낙트웨이(James Nachtwey)를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전쟁사진가 혹은 포토저널리스트로 불리는데, 전쟁의 최전선에서 폭력과 상처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어요. 20대에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 ‘워 포토그래퍼(War Photographer)’(2001)를 통해 그를 알게 됐어요. 사실 제목만 보고 고른 영상이라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사진가들의 모습을 다루는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제임스 낙트웨이를 다룬 인물 다큐멘터리더라고요. 전장을 누비는 낙트웨이의 모습을 추적할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 인터뷰를 통해 그의 다채로운 면면을 탐구하는 영상이었죠.
흥미로운 장면이 많았지만, 그중 제 마음을 사로잡은 건 인터뷰를 통해 엿본 낙트웨이의 진중한 자세였어요. 큰 감명을 받았죠. 총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전장을 누비다 돌아오면 현장에서의 흥분감이 안전지대의 숙소로 돌아온 후에도 가라앉지 않기 일쑤거든요. 보통의 사진가들은 함께 모여 술을 마시고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정돈되지 않은 마음을 돌본다고 하는데, 낙트웨이는 이에 동참하지 않고 조용히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고 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진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걸까? 그들의 고통과, 그들의 불행이… 내 성공의 밑바탕이 되었던 걸까? 나는 그 사람들을 착취하는 걸까? 나는 카메라를 든 흡혈귀인가?” “가장 힘든 건 내가 타인의 불행을 이용한다고 느낄 때다. 이 생각은 날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매일같이 내가 되새겨야 하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최대한 대상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노력한다. 외부인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인간애에 어긋나는 일일 수 있다. 나의 입장을 내가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존중하는 것이다. 내가 존중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은 나를 받아들이고 또 그만큼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 낙트웨이가 끊임없이 들려주는 고민과 갈등에서 사진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읽을 수 있었고, 그런 마음가짐을 닮고 싶다고 생각했어요.사진가는 아무리 피사체에 깊이 몰입하더라도 그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대상에 깊이 공감하더라도 현장에서 빠져나오면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죠. 피사체와 나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걸 인정하되, 그 대상을 무례하게 대하지 않는 방법이 필요해요. 전쟁터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제가 찍는 조경 현장 역시 설계, 시공, 기획 등 여러 사람의 손과 노력을 거쳐 완성된 결과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늘 존중하려 애씁니다. 단순히 내 눈에 보기 좋은 장면을 포착하기보다 공간 기획 의도와 만들어지기까지의 서사를 담을 수 있는 사진을 찍으려 노력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엄청난 사명감으로 셔터를 누르는 건 아니지만, 무책임하지 않으려 해요. 촬영 전에 설계 도면과 자료를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설계자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죠. 그러면 공감을 넘어 공명하는 순간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어요.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진, 보는 사람을 더 몰입시키는 사진을 찍을 수있게 됩니다. 마이클 케냐(Michael Kenna)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스물세 살 무렵 길을 가다 본 포스터에 반해서 그와 그의 작업을 열심히 찾아봤던 기억이 나네요.
후 작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많이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에요. 의도에서 벗어난 것들이 현장에 놓여 있는 경우도 있고 날씨의 영향을 받는 날도 있거든요. 이런 요소를 약화시키고 강조해야 할 것을 강화해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조정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 모든 작업을 ‘뽀샵’이라 치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진 후 작업은 필름을 현상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어떤 가공도 되지 않은 로우raw 파일을 보여드리면 대부분 사진이 굉장히 흐릿하다고 느낄 거예요. 또 카메라 기종마다 색감이 조금씩 다른데 이런 톤 앤 매너를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죠. 하지만 빈 땅에 나무를 심거나 사람을 합성하는 등의 CG 작업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매체의 변화가 빠른 시대에 살고 있어요. 조경을 기록하는 방법도 글, 도면, 사진을 넘어 영상, 드론 영상 등으로 더 확대되고 있어요. 앞으로 사진은 우리에게 무엇이 될까요. 혹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이지만, 달라지지 않는 건 외부의 자극을 느끼는 감각이 오감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많은 부분을 시각에 의존하고 이로 인해 판단을 내린다는 점도요. 인공 지능의 놀라운 발전으로 이미지가 생성되고 소비되면서 사람들은 오히려 갈증을 느끼게 될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인공 지능을 통해 마주한 상상의 벽이 사람들을 현실로부터 탈출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어 박탈감을 일으키지 않을까 싶거든요. 기술의 발전에 물론 적응해야겠죠. 사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저도 그 변화를 수용하고 작업에 이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아직까지 두 손으로 눈높이에서 보이는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사진이 좋습니다. 시간의 흐름에서 기억이 잠시 머물다 가는 찰나가 사진이 됩니다. 사진이 있기에 그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더 애틋해지고, 휘발되는 것을 유형의 무언가로 남기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는 것 같거든요. 사진은 제게 참 고마운 존재에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조경 사진의 골격을 잡아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풍경 사진과는 또 다른 조경 사진의 구조를 주관적으로라도 정리해보고 싶어요. 그 형태가 작품이 될지, 자료가 될지, 책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요.
아직 조경 사진의 이론이라고 부를만한 게 없어요. 조경의 정의 자체도 아직 불분명하니 당연한 일이지만요. 어떤 이들은 풍경 사진이 조경 사진 찍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물론 로직은 닮아 있을 겁니다. 조경 사진 역시 경관을 담아내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조경 사진은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설계 의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같은 산책로를 찍더라도 단순히 아름다운 산책로의 모습을 담아내는 게 아니라 산책로 선형이 왜 그렇게 뻗어 나가야 하는지, 길 주변을 따라 심긴 높고 낮은 나무의 존재 이유, 벤치의 간격과 그 거리로 인해 생기는 공간감 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해요. 조경에는 독립적인 피사체가 거의 없어요. 서로 관계를 맺고 있고, 그래서 조경 사진은 대지에 펼쳐져 있는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요소를 아울러야 하죠.
조경의 의도를 담기 위한 방법론을 만들어나가야 해요. 그래야 아직은 흐릿한 조경 사진이라는 분야의 틀이 조금씩이라도 보이기 시작할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빤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거에요. 예를 들면, ‘조경의 전체 구조를 보려면 하늘에서 전체 대상지를 내려다본 사진이 한 장 이상 필요하다’처럼 너무 당연해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이요. 당연한 것들을 소소하게 기록하면 아카이브가 되고, 그 아카이브가 분야의 전문성을 높여줄 겁니다. 더불어 ‘나는 이렇게 찍는다고’ 말하는 조경사진가가 많아지면 더욱 좋겠죠.
유청오 본지 전속 사진 작가. 조경 작업을 기록한다. 현재 ‘유청오의 이 한 컷’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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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인 오피스] 조경작업소 울
울의 조경작업 소울, 경계를 넘나드는 질문과 도전
조경작업소
최근 조경작업소 울은 어린이공원이나 근린공원 설계 이외에도 몇 가지 흥미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역사적 가치가 큰 공원 입구에 상징성이 강한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몇 년 전 함께 일했던 실무자는 이 프로젝트의 중심을 스토리텔링으로 보았고, 조경작업소 울이 공간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능하다고 판단해 의뢰했다고 한다. 다양한 주제의 연구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에 숨겨진 패턴과 원리를 발견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장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상호 이해를 도모하고, 이를 공간 설계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야외 공간뿐 아니라 실내 놀이터도 디자인한다.
조경작업소 울이라는 이름, 특히 ‘울’이라는 단어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울타리’의 ‘울’이라고 보통 대답하지만, 사실 깊이 고민한 단어는 아니다. 오히려 ‘조경작업소’라는 명칭에 더 많은 생각을 기울였었다. 조경작업소라는 단어를 통해 설계사무소를 넘어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공간임을 나타내고자 했다. 2009년 상상어린이공원 설계공모에 당선되며 회사를 설립했지만, 회사의 정체성은 설계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의 공부와 연구자로서의 훈련, 시민단체 활동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를 운영하고자 했다. 다행히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형태의 조경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여느 조경설계사무소처럼 도면 작업은 기본이고 어린이 대상 워크숍을 위해 색종이를 자르며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들기도 한다. 배워야 할 지식과 습득해야 할 기술의 범위도 넓다. 식물의 특성과 구조물 설계도 탐구해야 하고, 어린이의 성장 발달과 놀이 환경에 대한 이론은 물론 통계도 공부해야 하고, 워크숍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기술 개발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최근 팝업 놀이터 프로젝트를 해 볼 기회가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된 전문 지식과 노하우도 축적해 가고 있다.
넓은 스펙트럼의 작업은 장점인 동시에 도전이다. 설계와 연구, 워크숍, 팝업 놀이터 운영은 각기 다른 태도와 능력을 요구한다. 연구자로서 깊이 있는 분석은 흥미로운 과정이지만, ‘왜 그런데?’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데?’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설계자로서 정밀한 데이터는 오히려 거추장스럽기도 하다. 설계는 단순한 분석을 넘어서는 창의력과 통합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 워크숍이나 팝업 놀이터 운영은 순발력과 대화의 기술을 요구한다. 그래서 조경작업소 울의 정체성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고,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하라는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조경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가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면, 연구, 설계, 워크숍, 현장 활동이라는 여러 경로를 통해 이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 자체가, 각 분야가 만나는 경계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정체성이지 않을까. 각 영역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이해하고, 요구되는 근육을 안다는 것, 다양한 분야가 어떻게 서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는 점, 그리하여 영역 간의 ‘번역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은 조경작업소 울의 큰 자산일 것이다. 또한 우리가 부족한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소통하고 협력할 줄 아는 자세 역시 우리의 강점이라고 내세워본다.
울
협업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울은 폭넓은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다. 프로젝트 관리표의 주 담당자와 부담당자 칸 옆에 ‘협력’이라는 칸이 별도로 있을 정도다. 앞에서 언급한 상징 공간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는 건축가와, 주민과의 협력이 중요한 프로젝트는 시민단체와 협업하고 있다. 최근에는 식재 디자인 전문가와 협력하고 있다. 대상지가 산지라 실시설계의 난이도가 높은 프로젝트는 현장에서의 설계 변경 경험이 많은 전문가와 협력한다. 꼭 프로젝트 단위가 아니더라도 그때 그때 자문을 요청할 수 있는 이들과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항상 든든하다. 물론 그 협력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또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통합놀이터만들기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통합놀이터를 연구하고 관련된 시민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은 활동이 잠잠하지만 빅바이스몰의 일원이기도 하다. 빅바이스몰은 노들섬 현상설계를 준비하면서 조직된 이후 토론회나 교육 등의 활동을 함께했다. 최근 도시연대라는 시민단체와 함께 어린이와 도시라는 이름의 기금을 만들어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있다. 작년에는 어린이들과 그들의 일상에 어떻게 하면 놀이를 끼워 넣을 수 있을지 실험했다.
이러한 외부와의 협업과 협력은 ‘울’이란 이름에 담긴 의미로 살펴보면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처음 시작할 때는 울의 의미를 크게 두지 않았지만, ‘왜 울인가요?’라는 질문에 답하며, 울 자체가 느슨한 울타리, 개방성과 협력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아직은 이러한 바람을 현실화하기는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모든 조직은 그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이념이나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모인 곳도 마찬가지이지만, 의뢰받은 일을 수행해야 하는 회사라면 더욱 그렇다. 체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직 구조와 역할 및 책임에 따른 위계를 갖추어야 한다. 업무 처리 방식, 의사 결정 절차, 직원 행동 규범을 포함하는 규칙과 절차도 필요하다. 연구, 기획, 설계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의 상황에서 구성원이 야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효율성도 중요하다. 또한 공정한 보상을 위해서는 업무 성과 평가 시스템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맞추며 느슨한 울타리를 만들기에 운영자로서 나의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조경작업 소울
한계에 대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매일 매일 한계를 발견한다. 극복 방법은 모두가 아는 그것이다. 열심히 끝까지 해보는 것이다. 우리에게 끝까지 한다는 것은 의구심을 없애는 것과 같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세이브더칠드런의 ‘놀이터를 지켜라’ 사업의 일환으로 중랑구 상봉어린이공원의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맡아 설계부터 설계 감리까지의 전 과정을 진행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어린이 참여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을 찾고 있었고, 당시 조경작업소 울은 놀이터 디자인은 많이 해보지 않았지만 참여 디자인 경험이 많아 함께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놀이터에 대한 탐구가 시작됐다. 좋은 놀이터란 무엇인가? 놀이터의 역사는? 놀이란? 어린이는 어떻게 노는가? 놀이를 유발하는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공부하고 현장에서 실험하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답하다 보니 어느새 놀이터 디자인 전문 회사가 되었다. 놀이터에 대한 질문은 어린이들이 잘 놀 수 있는 도시란 어떤 도시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2017년도 씨프로그램(C-Program)의 지원으로 놀이 환경 측정 지표 도구를 개발했으며 2019년도에는 LH의 아동 놀이 행태를 고려한 도시 공간 조성 방안 연구를 진행했다. 지금은 서울시 도시공원의 어린이놀이 환경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어린이 참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껴 2018년에는 어린이재단과 함께 아동 참여 디자인 놀이터 조성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만들었다.
2015년 대웅제약이 지원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주관한 통합놀이터 조성 사업에 통합놀이터만들기네트워크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통합놀이터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사회적 확산이 가능한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 보니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많은 이의 도움을 받아 여러 주체와 함께 통합놀이터 조성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사회적 확산과 관련 법 개정을 위해 여러 차례 토론회를 개최했으며, 2018년부터 작년까지 총 네 번의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했다. 최근 통합놀이터라는 단어는 일반명사가 됐고, 조성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통합놀이기구가 한정되어 있어, 여러 놀이터 시설물 회사와 함께 통합놀이기구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때때로 조경작업소 울을 ‘조경작업 소울(soul)’로 듣는 사람들이 있다. 이전에는, 어떻게 회사 이름에 ‘소울’이라는 단어를 넣겠어? 영혼을 다해 일한다는 생각은 조금 구시대적이지 않아? 그리고 좀 무섭지 않아? 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오해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영혼을 좀 갈아 넣지 뭐. 아껴서 뭐 하겠어. 이 일의 끝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일상에서의 루틴을 꾸리고 있다.
항상 모래를 잡은 주먹을 꽉 쥐고 있을 수는 없다. 아무리 꽉 쥐더라도 모래는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열심히 끝까지 해보자는 결심도 마찬가지다. 숨가쁘게 보고서, 도면, 협의 사이를 오가다 보면 작업의 본질적 의미는 사라진다. 어느 초여름 밤, 우리가 설계한 공원 한 편에 중학생 소녀가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여기에 와 있으면 기분이 좋다고 한다. 또 한번은 우리가 디자인한 놀이터에서 만난 어린이들에게 이 놀이터를 디자인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더니, 이런 멋진 놀이터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이런 순간 손바닥을 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조경작업소 울은 설계, 연구, 공유의 선순환 관계를 지향한다. 특색 있는 놀이터,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주민 참여 디자인, 현장의 이해를 토대로 한 연구가 우리의 강점이며 우리를 찾는 공통적인 이유다. 우리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깊은 탐구와 체계적인 개념화를 통해 소외된 현장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전방위적 접근과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