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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오슬로의 추억
노르웨이 오슬로에 거점을 둔 글로벌 디자인 그룹 스뇌헤타(Snøhetta)의 최근 조경 작업들로 이번 호 특집을 엮었다. 스뇌헤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조경가 이슬의 메일을 처음 받은 게 지난해 7월이니, 기획과 편집에 여덟 달 가까운 공을 들인 셈이다. 스뇌헤타 네 글자만 믿고 곧바로 특집호 편집을 결정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스뇌헤타 특유의 수평적 작업 문화가 디자인 과정과 작품 생산으로 연결되는 지점을 조명하고 싶었다. 부산 오페라하우스 설계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스뇌헤타의 공동 대표 셰틸 토르센(Kjetil Thorsen)이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의 인상적인 구절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스뇌헤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 하나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민주적”이라고 답했다(월간 『디자인』 2018년 9월호). 스뇌헤타 뉴욕 오피스를 취재한 어느 기자는 작업 공간을 가로지르는 아주 긴 대형 테이블을 자세히 관찰해 묘사하며 그들의 작업 태도를 “투명성, 다양성, 교차성”이라고 표현했다(『Metropolis』 2015년 11월 10일). 이번 특집 지면 곳곳에서 볼 수 있듯, 스뇌헤타가 생산한 작품들의 핵심 개념인 대화와 관계, 맥락과 문지방(threshold)은, 시니어와 주니어 디자이너가 평등하게 발언하며 교류하고 건축가, 조경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가 고유 영역을 허물며 협력하는 그들의 작업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스뇌헤타의 제안 메일에 가슴이 뛴 더 큰 이유는 실은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의 추억 때문이었다. 2019년 9월, 피오르와 뭉크의 도시 오슬로에서 열린 세계조경가협회IFLA 학술대회에 참가했다. 매일 비가 내려 뭉크의 ‘절규’보다 더 우울했던 첫 방문 때와 달리, 두 번째 여행에서 만난 오슬로는 맑은 공기, 깨끗한 바다, 아름다운 언덕이 절묘한 비율로 혼합된 녹색 도시 그 자체였다.
낙후한 구도심 항만에서 활기찬 워터프런트로 탈바꿈한 비외르비카(Bjørvika) 지역의 문화적 앵커가 오슬로 국립 오페라하우스다. 배를 타고 다가가며 보거나 해변을 산책하며 멀리서 보면, 오페라하우스의 형태가 바다에 떠다니는 거대한 빙산이 육지에 얹혀 있는 모습임을 누구나 직감할 수 있다. 스뇌헤타는 순백의 대리석과 화강석 판을 힘찬 수평선과 사선으로 엮어 북구와 노르웨이 자연의 아이콘인 빙산의 형상을 재현했다.
직설적이고 직관적인 형태 재현의 강렬함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건 완만한 경사의 외부 공간이 바다로, 건물 지붕으로 바로 연결되는 경험의 흐름이었다. 맥락을 존중하고 경계와 관계를 넘나드는 스뇌헤타 디자인의 특징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고급 공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마치 뒷산에 오르거나 공원을 산책하듯 부담 없이 걷다 보면 오페라하우스 지붕 위에 오를 수 있다. 도심의 낭만적인 경관과 협만의 피오르 풍경을 한눈에 품고 내려다볼 수 있다. IFLA 행사 마지막 날, 오페라하우스 지붕에 몸을 눕히고 오슬로의 장엄한 석양을 마음에 눌러 담았다. 곧 코로나19 시대가 닥쳤고, 오슬로는 나의 마지막 해외여행 도시로 남게 되었다. 스뇌헤타로부터 날아온 메일에 가슴이 쿵쾅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최종 교정을 보며 남기준 편집장은 “이번 호는 정기구독 외에 서점에서도 많이 팔릴 것 같다”는 전망을 했다. 25년 잡지 경력의 편집자 말이 틀릴 리 없을 테다. 비교적 잘 알려진 타임스퀘어와 킹 압둘아지즈 세계문화센터는 물론이고 라스코 Ⅳ, 맥스 Ⅳ, 오르드룹가드 미술관, 트라엘비코센, 페르스펙티벤베그 등의 근작에서 스뇌헤타의 조경을 관통하는 적응과 경계의 디자인을 직관적으로 만날 수 있다. 참, 조경가 이슬의 열정적인 협력이 없었다면 이번 스뇌헤타 특집을 꾸리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화여대와 서울대에서 환경디자인과 조경을 전공하고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에서 도시설계‧계획을 전공한 그는 MVRDV를 거쳐 2019년부터 스뇌헤타 인스부르크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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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풍경 도둑
나의 산책 코스는 동네 아파트 단지였다. 곳곳의 작은 쪽문을 통해 들어서면 산수유 길, 조팝나무 길 같은 산책로가 있었고, 이 길들은 크고 작은 정원과 어린이 놀이터, 연못과 인공 실개천, 광장, 테니스장으로 연결되었다. 꽃 사진 찍는 사람들과 재잘거리는 아이들, 비 오는 날의 개구리 소리, 우비 입힌 강아지와 산책하는 우비 입은 사람. 무해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지난 봄부터 발길을 끊었다.
산수유가 지고 조팝나무 꽃이 하얗게 필 무렵 아파트 단지 외곽에 진회색 울타리가 들어섰다. 누구나 드나들던 쪽문에는 입주자 카드나 비밀번호가 없으면 열리지 않는 문이 설치됐다. 낯선 인기척에 잠 못 이루는 이가 있었던 걸까. 소음, 보안, 그리고 코로나19……,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짐작 가는 원인은 여럿이다. 여전히 경비원이 상주하는 정문과 배달 차량 출입로는 열려 있지만 풍경을 도둑질하는 기분이라 들어갈 수 없다.
닫힌 문 앞에는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들이 서성이곤 했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시장에 다니던 분들인데, 입주자가 지나갈 때 열린 틈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먼 곳으로 작업실을 옮긴다. 내가 다른 산책 코스를 만드는 동안, 그 아파트의 문은 계속 잠겨 있을까? 할머니들은 계속 기다릴까? 아니면 장본 것을 끌고 빙돌아 집으로 돌아갈까? 봄이 오면 진회색 울타리 안에 노란 산수유와 하얀 조팝나무 꽃이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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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만든 도시] 제도의 한계: 제도는 효율적인가?
지난 첫 연재에서는 제도를 정당화하는 가치인 ‘공공의 이익’이 어떤 한계를 지니는지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측면에서 제도의 형식과 실행 방식이 가지는 한계를 우리 도시의 여러 사례를 통해 짚어 보려고 한다.
제도는 효율적인가? 형식의 경직성
어떤 도시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이 의도한 바를 실현하는 여러 방안 중 가장 적절하여 그 적용의 강제가 납득되는 경우, 그 제도가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의 공간 이슈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확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좁은 길에서는 보도와 차도를 구분해 디자인하는 게 보행자에게 더 안전할까, 반대로 경계를 뚜렷하지 않도록 만들어 자동차의 서행을 유도하는 게 더 안전할까? 산을 가리고 늘어선 아파트 높이를 계단식으로 만들면 도시 경관이 나아질까? 작은 부정형 필지, 좁은 골목길은 없어져야 할까? 도시 제도는 이런 질문들에 확정적인 형식으로 존재한다.
◯◯◯ 지침, ◯◯◯에 관한 규정, 표준 ◯◯◯ 등은 보편적으로 최소의 수준을 보장할 수는 있지만, 제도가 최적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에런벤–조셉(Eran Ben-Joseph)이 말하는 바처럼 경직된 기준에 근거를 더하는 노력보다는 궁극적으로 제도가 목적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다른 대안들을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1 그렇다면 제도의 유연성과 포용성을 저해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여기서는 다양하고 복잡다단한 도시 공간을 다루는 제도가 취하고 있는 형식에서 오는 한계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단속적 제도 공간 vs. 연속적 현실 공간
모든 도시 공간 제도의 작동 형식은 제도가 적용되는 대상을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시기본계획, 공원녹지기본계획, 지구단위계획 등 소위 ‘구역계’라든가 용도지역·용도지구·용도구역 등은 도시 공간 안에 확정적 구획을 그려 해당 제도가 적용되는 범위를 구분 짓는다. 또한 2층 이상 건축물에 적용되는 내진 설계나 대지 면적 200m2 이상일 때 확보해야 하는 대지 안의 조경과 같이 각종 법규는 확정적 숫자를 기준으로 적용 범위를 설정한다. 이러한 공간적 범위와 양적 범위를 가르는 선과 수치는 실제의 연속적 도시 공간이나 연속적 공간 현상 속에서는 실체가 없으며 임의적이다. 물론 도시 제도뿐 아니라 모든 제도는 그 적용 대상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매번 적용의 당위를 다퉈야 한다. 제도라는 사회적 장치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연속적 공간과 이를 임의적으로 구분하려는 도시 제도의 본질적 차이가 도시 공간에 야기하는 파열과 부조리가 있다는 점만큼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연속적 공간을 불연속적으로 다루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도로를 기준으로 구획하는 것이다. 물론 도로는 공간을 구획하는 경계로서 근거가 단순하고 인지와 운영이 용이하다. 그러나 고속도로가 아닌 이상 도시의 일반적인 도로는 도시 가로로 활성화되어 있을수록 사람들이 양측을 빈번하게 오가고 도로 양측의 기능적·공간적 특성이 해당 도시 가로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때 도로는 그 지역의 중심이지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편의 상 도로를 구획의 경계로 삼기 때문에 실제 도시 공간의 인식적 구분과 제도의 운영이 어긋나게 된다.
자주 거론되는 예로 서울시의 강남대로는 두 행정구역(서초구, 강남구)의 경계이자 두 지구단위계획구역(서초로 구역, 테헤란로 제2지구 구역)의 경계다. 따라서 강남대로 양측은 두 지자체의 도시 공간 관련 조례부터 도시설계 지침, 가로의 경관 디자인까지 각각 다르게 적용된다(그림 2). 예전에 일했던 사무실 앞 성북로는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인데, 한편은 제1종 일반주거지역이어서 술을 팔 수 있는 일반 음식점이 가능했고 반대편은 제1종 전용주거지역이어서 불가능했다. 도로를 기준으로 용도지역을 가르다 보면 이런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환경과조경419호(2023년 3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Eran Ben-Joseph, The Code of the City: Standards and the Hidden Language of Place Making , Cambridge: The MIT Press, 2005.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 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 디자인 및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 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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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스케이프] 죽음이 이르는 곳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될 일이지만 이를 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특히 장례 문화는 종교와 사상, 신분, 환경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형성되기 때문에 문명권마다 특징적인 고유의 장례 형식이 있다.
씨족사회의 전통을 가진 한국은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산을 두고 후손들이 정성껏 가계 묘를 관리하는 게 오랜 관습이었다. 비공식적으로 음택 풍수의 이치를 따져 길吉한 묫자리를 찾아 몰래 매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반면 비천한 신분이나 무연고자처럼 개인 묘지를 가지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혹여 질병이나 자살 등 불경한 이유로 사망했다면 사정은 더 나빴다. 시신은 집장지集葬地라고 부르는 매장처에서 표식도 제대로 없이 처리됐는데, 사람들은 이곳을 북망산北邙山이라고도 불렀다. 집장지는 지금으로 치면 공동묘지 같은 시설이다.
서울은 예로부터 인구가 많은 탓에 도성 주변에 집장지가 여럿 있었다.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곳은 한양 도성 동남쪽의 광희문 밖 집장지다. 광희문의 별칭이 ‘시구문屍柩門(시체가 나가는 문)’이었을 정도니, 이곳 분위기는 문물 교류, 송별 연회 등 활기 넘치고 번잡했던 사대문 주변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도성 밖 집장지와 산자락 여기저기에 자리 잡은 묫자리가 문제로 떠오른 건 식민지기에 이르러서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1910년대에 이미 도성 주변에 19개소의 집장지가 있었다고 조사된 바 있다. 이들 외에도 이 산 저 산에 산소가 많이 있었을 터인데, 근대 도시로 전환하는 데 있어 마구 없애기도 뭣한 애매한 장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국유 임야를 개인이 사유화해 묫자리로 쓰고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도 문제였다. 국가 토지를 관리하는 총독부, 경성부와 가족묘를 지키려는 이들의 대립은 첨예해졌고, 결국 전통적인 한반도의 장례 문화는 여러 면에서 위기를 맞게 된다.
1912년 조선총독부는 ‘묘지·화장장·매장 및 화장 취체 규칙’을 공포하고 주요 도시부터 묘지를 정비하기 시작한다. 묘지 정리의 명분은 위생과 미관이었다. 다만 조선인의 오랜 관습을 건드릴 때 발생할 수 있는 격렬한 저항과 분쟁을 고려하여 천천히 진행했다. 1914년 경성부에서는 경성부 일대의 19개소 집장지를 미아리, 신당리, 아현리, 이태원리, 신사리(응암동), 수철리(금호동) 여섯 곳으로 정리하고 공동묘지라는 이름으로 공식 운영하기 시작한다. 기존 집장지 등에 있던 묘지는 이장이나 화장하는 방식으로 정리하고, 새로 운영하게 된 공동묘지에서는 화장과 매장의 원칙을 정하여 묘지 구획, 묘지 사용료 등의 규칙을 갖추었다.
*환경과조경419호(2023년 3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이향아, “공동묘지, 식민지 경성을 잉태하다: 식민지 경성 공동묘지의 정치경제학”, 『한국공간환경학회 추계학술대회』, 2014, pp.347~357.
다카무라 료헤이, “공동묘지를 통해서 본 식민지시대 서울: 1910년대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15, 2000, pp.131~165.
이의성, 『근대도시계획과정에서 나타난 공동묘지의 탄생과 소멸: 서울 사례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1
유홍준, “망우리 별곡”, 「중앙일보」 2022년 5월 12일.
정재정, “망우역사문화공원과 근현대사 탐방”, 「서울신문」 2022년 11월 30일.
“이태원공동묘지 이장공사 착수”, 「동아일보」 1936년 4월 9일.
“무연분묘삼만기 망우리로 이장”, 「조선일보」 1936년 10월 10일.
망우역사문화공원 manguripark.or.kr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