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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 IFLA 2022가 남긴 것
    이번 달 특집 지면에서는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예술과 혁명의 도시 광주에서 열린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2022)를 기록한다. 40개국 1,500여 명의 조경가가 참여한 IFLA 2022는 기후변화와 도시 위기에 대응하는 조경가의 비전과 전략을 깊이 있게 논의하고 지혜를 모으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대회는 2019년 9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 개최에 발맞춰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발표한 ‘기후행동공약’의 실천적 토론장이기도 했다. IFLA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달성을 위해 전 세계 조경가의 전환적 협력과 행동을 촉구하며 “1.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의 실천, 2. 204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 3. 살기 좋은 도시와 커뮤니티의 수용력과 회복력 강화, 4. 기후 정의와 사회 복지 지원, 5. 문화 지식 체계의 학습, 6. 기후 리더십 발휘” 등 여섯 가지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광주 세계조경가대회는 한국 조경계에도 변화와 혁신의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경학계와 업계가 협력해 성공적으로 치러낸 이번 대회는 한국 조경계의 난맥을 교정하고 조경 직능과 학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조 강연, 논문 발표회, 라운드 테이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펼쳐진 여성 조경가와 미래 세대의 활약은 한국 조경의 다음 50년을 기대하게 했다. 이번 IFLA 2022의 무엇보다 큰 성과는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Re:public Landscape)’라는 현재와 미래의 좌표를 한국은 물론 세계 조경계에 제시했다는 점일 것이다. ‘리:퍼블릭’은 서로 연관된 세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리:퍼블릭의 ‘리’를 ‘어떤 것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이라는 뜻의 접두사 리(re)로 생각한다면, 리:퍼블릭은 ‘공공(성)에 다시 주목하는’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다시 공공성의 경관과 조경을 지향하는’ 의제라 볼 수 있다. 둘째, 리:퍼블릭의 ‘리’를 ‘~에 대한, ~를 주제로’라는 의미의 전치사 리(re)로 여긴다면,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공공적 조경 행위라는 주제’로 해석될 수 있다. 셋째, 리퍼블릭(republic)은 군주제 반대편의 정치 체제인 공화제에 해당한다. 본래의 경관(landscape) 개념에 배태된 수평성을 떠올린다면, 군주제의 수직적 위계와 권위에 대항하는 공화제가 경관 개념과 조응하는 체제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리퍼블릭의 어원인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는 ‘일, 사건, 상황, 문제’를 뜻하는 명사 ‘레스’에 ‘공적인’이라는 뜻을 지닌 여성형 형용사 ‘푸블리카’가 결합된 말로, 공적인 일(또는 문제)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곧 ‘공적인, 공공의 경관’ 그 자체이기도 하다. 대회의 주제문을 다시 옮긴다. “전 세계는 팬데믹 확산, 기술 혁명, 정치적 갈등과 같은 급격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건강, 행복, 미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할 사명이 조경 전문가에게 주어졌다. 국지적 지역부터 전 지구적 스케일까지 포괄하는 조경의 다양한 이슈를 논의하기 위해 조경가들이 모인다. 조경의 공공 리더십을 강조하는 2022년 세계조경가대회의 주제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다음과 같은 세부 주제를 포괄한다. 조경의 전문적 성취와 학문적 성과를 되짚어보고(re:visit),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이론과 기술을 통해 지구 경관의 재구성을 실험하고(re:shape), 일상의 생활과 환경을 건강하고 활력 있게 되살리며(re:vive), 자연과의 연결을 추구한다(re:connect).”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봉건 시대의 장식적 조원 전통과 결별하고 근대 도시의 공공 환경을 구축하는 전문 직능으로 탄생했던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의 이념을 다시 소환하고 회복한다.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인류세의 지구가 마주한 기후위기, 도시의 파국, 도시 정의와 형평성, 라이프스타일과 미감의 변동 등 복합적 난제를 풀어갈 조경의 좌표다. IFLA 2022를 통해 제시된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 개념을 구체화하고 실천할 과제가 한국 조경에 주어졌다. [email protected]
  • [풍경감각] 작은 잎사귀는 너른 평원이 되고
    그냥 풀을 그린 그림,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거죠? 북 페어에서 받은 질문이다. 식물 세밀화는 풀을 그린 그림이 맞고, 그림은 보이는 것이 전부이며, 각자의 감상법이 있기 마련이므로 “보이는 그대로니 천천히 감상해보시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그는 다른 부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풀, 그 잎사귀 한 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은 세계가 펼쳐진다. 작은 잎사귀는 너른 평원이 되고, 그 사이를 물길 같은 잎맥이 가로지른다. 울퉁불퉁한 산맥 사이로 하얀 협곡이 구불거리거나, 평행한 녹색 이랑이 끝없이 이어진다. 식물 세밀화는 이런 풍경을 보여주는 그림이라 생각한다. 식물을 매개체로 어떤 의미나 심상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작은 식물의 세계가 작아만 보이지 않도록 캔버스의 크기를 키우고 확대 비율을 높인다. 털, 턱잎, 수술과 암술, 꽃받침, 줄기의 단면처럼 전체 모습에서 보여주기 어려운 작은 디테일도 따로 담는다. 이 작은 풍경들이 누군가의 발걸음을 붙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조경그룹 이작 장소와 시간의 힘을 믿는 창작 공동체
    이번 작업(this work)을 줄여서 말하면 이작이다. 말 그대로 이번 작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스튜디오 이름을 지었다. 생생한 설계실 현장의 치열함과 진지함, 즐거움과 고단함. 이 모든 단어가 성남시 분당에 있는 우리의 구성원 이자커스(eejaacers)에게서 들리는 숨소리의 표정들이다. 늘 현재진행형이다. 2008년 탄천이 흐르는 작은 오피스에 둥지를 틀었다. 지치지 않고 열다섯 해를 천천히 산책하며 산에 올라가듯 지나왔다. 동네도 떠나지 않고 잘 지키고 있다. 함께하는 동행들도 서서히 늘어나서 그런지, 요즘은 산책 같은 작업이 더 재미있고 즐겁다. ‘이작’이라는 한자어의 말장난을 통해 우리를 설명해 본다. 아마도 보편적인 얘기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조경그룹 이작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異作, 다를 이 모든 디자인 오피스가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 다름에 대한 강박감이 있다. 태생적으로 디자인은 ‘다르게 하기’와 같은 뜻이라고 본다. 접근 방식이거나 태도이거나, 혹은 도구이거나 결과물이거나, 그중 하나라도 다르면 그때부터 안테나가 쫑긋 선다. 소위 안달이 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다름의 오리지널리티는 결과일 수도 있지만 과정이기도 함을 늘 명심하려고 노력한다. 理作, 다스릴 이 질서에 대한 이야기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나아가 감각과 무감각의 영역에서 세상의 순리를 따르고 현상에 귀 기울인다. 우리가 하는 모든 작업이 자연과 문화의 순환 고리 안에서 잘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거스름이 없다. 시간과 진화에 열려 있다. 지속가능하다. 이런 문장들이 떠오른다. 창의적 발상이 자연의 이치와 손잡을 때 비로소 우리의 작업은 순전한 날개를 달게 된다. 利作, 이로울 이 윤리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과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이로움을 지향한다. 대부분의 작업을 공공의 영역에서 진행하는 우리에겐 특히 중요한 문제다. 공간을 통해 공공에 전달될 ‘경험의 기회’는 곧 혜택과 복지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롭고 이롭지 않은가에 대한 판단의 문제는 삶의 질과 연결된다. 그 최전선에서 일하는 공급자 그룹의 어딘가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두렵다. 以作, 써 이 이렇든 저렇든 결론은 결국 작업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작업물로 세상과 연결된다는 사실이 좋다. ‘만든다’라는 범주는 도면에서부터 완성작까지 모두를 아우르며 우리가 추구하는 의미 영역 안에 있다. 페이퍼워크는 전문가 집단과, 완성작은 일반인들과 나눌 수 있으니 좋다. 작업물로써(以作) 전달하는 조경가의 언어가 비로소 세상에 낯을 내밀기까지, 너무도 고단한 프로세스가 있다. 그래서 설계는 과정의 마술이다. 육체적, 사회적으로 힘들다. 우리는 오늘도 짓고, 만들고, 작업한다. 지난 몇 년간 완공된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면서 고민했던 흔적과 남겨진 것들, 혹은 사라진 것들을 정리해본다. 군포송정 중앙공원 도시공원 설계공모 첫 당선작이다. 아파트 단지와 공원의 공적 관계를 사적 관계 영역으로 재해석한 작업이다. 뒤뜰만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기억을 공공의 공간에서 구현하고 탐색해보려 했다. 가끔 슬리퍼를 신고 뒷마당에 나온 것 같은 이웃들을 공원에서 만나게 된다. 절반 이상의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한국적 정서의 마당을 대표적인 도시 공간인 아파트로 옮겨 보려 했다. 공간의 서정성을 투박한 물성, 단정한 구획, 친근한 단차, 그리고 계절과 자연 현상을 감지하는 식물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용산 고가 하부도로 정원 서울시 공공 프로젝트로 진행한 도시 인프라 개선 작업이었다. 고가 하부의 죽은 공간 살리기를 주제로 빗물과 수 순환, 습도와 식물의 기법과 적용, 공공 공간의 미적 기준 제고,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등을 고민했다. 치장과 단장의 디자인 방향을 완전히 배제하고, 도시 구조물과 식물로만 밀도 있게 조직한 정원 구조체를 제안했다. 엔지니어링 기술과 조경의 협업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던 프로젝트로 기억한다. 아쉽게도 정원 구조체는 몇 년 후 철거되고 보도블록 포장과 오토바이 주차 금지 펜스만 있는 다리 밑 공지가 되어버렸다. 진도 쏠비치 리조트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다녀온 뒤 한참 동안 우리 마음속에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던 차 잔잔한 바닷가, 전라남도 진도에 있는 리조트 설계를 맡게 됐다. ‘마음과 영혼에 접속하는 정원’을 주제로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정원을 배치하는 작업을 했다. 개개인의 작업물을 독려하고 비평하고 수정하고 도와가며 조성했다. 조형적 탐구, 관점과 차원의 전환, 낯설게 전달하기, 내적 움직임의 실체 등 깊숙이 들어가서 작업한 짧지 않은 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결과적으로 상업적 리조트와 충돌하는 상황이었지만 곳곳에 고민의 흔적들로서 소울 가든(Soul Garden)들이 자리하게 되었다. 개입한다는 것의 의미와 어떻게, 얼마나,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배웠다. 성남 은행동 소공원 옹기종기 모인 다가구 주택이 즐비한 산동네에 위치한 공원이었다. 경사가 가파른 지형을 생활 언덕으로 바꾸려고 했다. 가장 친근하고 알차게 사용할 수 있도록 멀리 보이는 산자락과 대조를 이루는 도시 언덕을 화강암으로 테트리스 쌓듯이 조성했다. 테트리스 언덕의 활용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치맥(치킨+맥주) 하기, 나물 말리기, 태양초 널기, 생활 품앗이, 낮잠 자기 등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채우는 생활 언덕의 일상은 다채로웠다. 화강암 언덕은 도시의 산자락을 은유하는 동시에 경사지 구조체로도 요긴한 장치였다. 동탄 신리천 교각 하부 공공 디자인 동탄 신도시 신리천을 따라 다섯 개 다리 밑 공간을 공공 디자인하는 작업이었다. 하천을 따라 북측은 갤러리와 같은 공공 미술 벤치로, 남측은 친근한 마을 카페로 변신시켰다. 색깔과 틈, 빛과 장소 브랜딩을 탐구하며 황폐한 교각 하부를 ‘얌전한 화려함’이 살아나도록 하는 갤러리 벤치 공원으로 조성했다. 따뜻한 감성의 브리지 카페는 주민들에게 쉽고 친근하게 접근하려는 시도였다. 수변을 따라 매일 산책하는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활력을 불어넣는 장소가 되기를 기대한다. 의정부 고산지구 공원 지역성으로 시작해서 지역성으로 마무리한 작업이다. 신도시의 4개 공원과 녹지를 설계했다. 기억과 유산이 풍부한 산야의 공간을 도시 속에서 새롭게 정리해갔다. 산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들판과 물줄기를 핵심 장치로 가장 지역성이 잘 드러나는 공원이 되기를 기대하며 작업했다. 도시를 뚝딱뚝딱 순식간에 만드는 한국의 조급한 방식 때문에 사라지는 것들이 많다. 남겨야 할 것, 기억해야 할 것, 지켜야 할 것, 알아야 할 것들은 지역 박물관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원을 통해 온몸으로 공간을 느끼고 도시의 기억을 경험하고 읽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해당 지역 곳곳을 누비며 멍 때리기와 파헤치기를 한 덕분에 술술 풀어나갈 수 있었다. 지역성은 옛 풍경의 내적 질서를 발견하고 새롭게 정리해 만드는 공원의 중요한 주제어다. 대구 복현자이 공동주택 아파트 놀이터 공간의 주인공을 바꾸고 싶은 생각에서 시작했다. 공터에 이것저것 매달 조합 놀이대를 포기하고 중앙에 놀이마루를 제안했다. 원형 놀이마루에서는 자유로운 놀이가 생겨난다. 마을 사랑방으로 활용되고, 때로는 아이들이 뒹굴뒹굴 나뒹구는 툇마루로 변신한다. 벤치의 높이가 주는 심리적 친근함과 만만함을 동그란 잔디마루 위에 재구성했다. 놀이터의 주인공은 놀이 기구가 아니라 마루다. 놀이터의 핵심은 놀이가 아니라 모임이다. 원형마루에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한다. 둘러앉고 마주앉고 드러눕고 나뒹군다. 별다른 놀이가 필요할까. 우리는 장소와 시간의 힘을 믿고 탐구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공간을 통해 대화를 시도하는 도시의 화자(storyteller)들이 모여 즐겁게 작업한다. 주거 단지 정원부터 도시의 공공 공간까지 예민하고 깐깐한 조경가들이 참여한다. 트렌드에 얽매이기보다는 상상력이 이끄는 객관화된 낯선 공간의 실체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조경 공간으로 말하고 소통하면서 외롭지 않은 조경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의도적으로 외로워진다. 장소성과 브랜딩, 공공 디자인과 지역성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바우하우스 포스터를 수집해볼까 생각 중이다. [email protected] 조경그룹 이작(eejaac landscape architects)은 행복한 조경가를 꿈꾸는 이들의 창작 공동체다. 장소의 힘에 대한 믿음은 작업의 시작점이자 동력이다. 문제의식은 잠재력을 찾고, 잠재력은 상상을 이끌고, 상상은 사람을 생각한다. 넘치는 상상력과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사람을 위한 공간을 찾는 생각의 무한궤도, 그 어느 지점에서 오늘도 팽팽하게 산다.
  • [모던스케이프] 관광의 목적
    바야흐로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피서와 달리 여행에는 방문과 경험이라는 적극적인 행위가 따른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과 도전이 수반되는 여행, 벅차오르는 감동도 있지만 때로는 예기치 못한 고통스러움을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 여행에 해당하는 travel의 어원은 travail(고통, 고난) 아니던가. 그에 반해 눈으로 보고 안다는 뜻으로 새겨진 관광(觀光)은 주체의 시선이 더 강조되는 단어다. 눈으로 확인하고 참관하며 견학하는 의미가 담긴 관광을 이야기할 때 17~18세기 영국에서 크게 유행한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빼놓을 수 없다. 외딴 섬 영국에서는 사회가 안정되자 상류층 자제들을 대륙으로 보내 세련된 취향과 외국어를 학습하게 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견문을 넓히고 지식을 확장하는 목적을 가진 그랜드 투어는 근대적 의미의 관광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영국인 토머스 쿡(Thomas Cook, 1808~1892)은 570명의 관광객을 모집하여 영국 레스터(Leicester)에서 러프버러(Loughborough)까지 이동하는 기차 여행을 시도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부터 관광은 서서히 오늘날 통용되는 보편적 개념으로 자리 매김했고, 관광의 목적 또한 교양을 학습하는 것을 넘어 위락과 휴식, 기분 전환 등 즐거운 경험을 누리는 데까지 확장됐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선진 취향을 학습하고자 했던 그랜드 투어가 계몽주의적 측면에서 근대적이라면, 토머스 쿡의 기차 여행은 자본주의 시대에 급부상한 시민 계층을 여행객으로 흡수하고 산업혁명의 상징인 기차를 여행의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근대적이다. 그런데 관광의 대중화에는 각종 매체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컸다. 쿡이 그 시절에 수백 명의 여행객을 모집할 수 있었던 것도 광고라는 방식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급성장한 사진술과 인쇄술, 출판 기술 등 새로운 기술이 관광이라는 아이템과 엮이면서 엽서와 지도, 브로슈어 등 다양한 관광 안내물이 쏟아져 나왔고, 이러한 인쇄물은 다시금 관광의 대중화를 촉발하는 역할을 했다. 한반도에 근대 관광이 정착하게 된 양상은 표면적으로 서구와 닮았다. 개항 이후 왕족과 외교관 등의 관료들이 가장 먼저 해외 여행의 특권을 누렸고, 점차 선진 문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여행이 확산되었다. *환경과조경414호(2022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 『여행과 관광으로 본 근대』, 두산동아 한국문화사 시리즈 22, 2008. 김선정, “관광 안내도로 본 근대 도시 경성: 1920~30년대 도해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국문화연구』 33, 2017, pp.33~62. 한경수, “한국의 근대 전환기 관광(1880~1940)”, 『관광학연구』 29(2), 2005, pp.443~464. 阪野祐介·김윤환, “식민지도시 부산을 그린 요시다 하츠사부로(吉田初三郞)의 조감도(鳥瞰圖)와 타소표상(他所表象)”, 『문화역사지리』 33(2), 2021, pp.4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