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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다시, 변신을 꿈꾸는 샹젤리제
도시계획의 종주 도시 파리가 또 한 번의 변신을 꿈꾼다. 지난 1월 초, 안 이달고(Anne Hidalgo)파리 시장은 샹젤리제 거리를 ‘특별한 정원(extraordinary garden)’으로 개조하는 계획을 발표해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가로로 이름 높지만 자동차와 오염, 관광과 소비에 점령당한 샹젤리제 거리를 생태적이고 포용적인 장소로 되살려낸다는 장기 프로젝트다. 2030년까지 약 2억5천만 유로3,34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개선문이 있는 샤를 드골 광장과 콩코르드 광장을 잇는 길이 2km, 폭 70m의 샹젤리제 거리는 프랑스의 국가 상징 가로이자 화려한 명품 쇼핑 거리로 유명하다. 1667년, 태양왕 루이 14세의 정원사이자 베르사유의 설계자인 앙드레 르 노트르가 튈르리 정원에서 도시로 뻗어 나가는 길을 설계하면서 가로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랑 쿠르(Grand Cours)라 명명된 넓은 산책로 양쪽으로 두 줄의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늘어섰고 프랑스식 정원도 조성됐다.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치가 즐겨 걸어 ‘여왕의 산책로’라고도 불리던 이 길은 18세기에 들어서며 변모한다. 1709년, 산책로를 확장하면서 ‘엘리제의 들판’이라는 뜻의 샹젤리제(ChampsElysees)로 이름도 바뀌었다. 엘리제는 그리스 신화의 낙원이다. 18세기 말, 가로수가 하늘을 덮을 정도로 높고 풍성하게 자란 샹젤리제 거리는, 혁명의 도시 파리 시민들이 일상의 산책과 피크닉을 즐기는 대중적 공공 공간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파리가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된 1944년 8월 25일, 드골 장군은 개선문에서 출발해 콩코르드 광장까지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시민들과 함께 행진했다. 프랑스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샹젤리제 거리는 파리를 대표하는 역사적 장소로 발돋움한다. 파리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대부분 샹젤리제 거리를 안다. 감미로운 멜로디의 샹송, ‘오aux 샹젤리제’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어를 모르더라도 부를 수 있는 경쾌한 후렴구를 따라 부르다 보면, 마치 열병식 장면처럼 가로수가 직선으로 늘어선 파리의 도심을 흥겹게 산보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 노래의 가사처럼 “샹젤리제에는…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있다.”
하지만 임대료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번화한 거리, 도시의 욕망과 소비가 겹겹이 쌓인 샹젤리제는 고유의 장소성을 잃은 지 오래다.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 메르세데스 벤츠 같은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만 즐비하다. 시간당 평균 3천 대의 차량이 통과하는 혼잡한 대로는 파리를 순환하는 고속도로보다 대기 오염을 더 많이 유발한다고 한다. 코로나19로 관광이 중단되기 전에는 매일 10만 명이 이 길을 걸었는데 그중 72%가 관광객이었다고 한다. 정작 파리 시민은 찾지 않는 ‘한물간’ 관광지, 고급 공항 면세점의 야외 버전 같은 이곳을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e)식으로 말하면 바로 비장소(non-place)일 것이다.
엘리제(낙원)의 영예를 더 이상 담지 못하게 된 샹젤리제 거리를 개선하기 위해 2018년 ‘샹젤리제 위원회’가 결성됐고, 시민 9만6천 명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구상이 이번에 아달고 시장이 발표한 ‘특별한 정원’ 프로젝트다. 차도를 반으로 줄여 보도 폭을 두 배로 넓힌다. PCA 스트림(Stream)의 설계안 동영상을 보면, 2030년의 샹젤리제 거리는 넓은 녹지대와 풍성한 나무 터널 사이를 마음껏 걷고 어디서나 앉아 쉴 수 있는 도시 산책자의 낙원이다. 파리 올림픽이 열릴 2024년까지 콩코르드 광장과 그 주변을 개선하고 나머지 구간은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바꿔나간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의 배경에는 지난해 6월 재선에 성공한 안 이달고 시장의 도시 혁신 공약, ‘파리를 위한 선언’이 있다. 이달고는 새 임기 6년간의 시정 비전으로 생태, 연대, 건강을 제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도시가 직면한 위기에 맞서기 위해 사회 정의와 환경 보호를 모든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경제적 효율성 때문에 생태적 이상을 포기할 때가 아니다. 도시를 회복해야 건강도 지킬 수 있다. 생태는 미래를 위한 가치의 중심이다.” 이번 샹젤리제 거리의 ‘특별한 정원’화는 파리 전역의 차량 속도 시속 30km로 제한, 집과 직장과 학교를 15분 안에 오가는 ‘15분 도시’로 차량 교통 제어, 주차장 면적을 절반으로 줄이고 도시 전체에 자전거도로·보도·녹도 형성, 고층 개발 백지화와 대형 숲 조성, 시민들의 새로운 연대 등의 공약을 구현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다.
팬데믹의 충격에서 세계의 어느 도시도 자유롭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선진적인 경제 시스템과 정치 체제를 자랑하던 도시일수록 공간적 기반 자체가 흔들렸다. 코로나 이후의 도시가 가야 할 길을 예견하는 많은 목소리가 녹색과 공공성에 초점을 맞추는 지금, 이달고의 파리 선언과 샹젤리제 계획은 ‘뉴노멀’을 준비하는 지구촌 많은 도시들이 뒤따를 모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샹젤리제와 파리의 변신에 마냥 환호를 보내는 태도에 대해서는 경계의 시선도 필요하다. 자동차의 추방, 자동차의 도시에서 사람의 도시로의 전환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구상에 왜 ‘정원’이라는 상표를 달았을까. 복잡한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얽힌 도시 혁신에 낭만의 정원을 대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은유로서의 정원은 시민의 공감을 얻기 쉽지만, 이 낭만적인 은유가 다른 도시들로 속속 전파되면 피상과 장식으로 흐를 우려도 적지 않다. 우리는 자연의 외피를 흉내 내며 녹색을 앞세운 계획들이 졸속의 전시적 화장술로 치달은 선례를 숱하게 목격하지 않았던가.
이번 호에는 『LA+』가 실험한 ‘생물체 설계공모’, 한국전쟁의 민간인 희생자를 기억하는 ‘진실과 화해의 숲 설계공모’, 신도시의 조경 네트워크를 짜는 ‘행정중심복합도시 5-1생활권 조경 설계공모’ 수상작들을 싣는다. 전혀 다른 성격의 세 가지 설계공모에서 동시대 조경의 넓은 스펙트럼과 쟁점들이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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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풍경의 주인
차들이 빼곡한 지하 주차장에서 자신의 자동차를 찾는 친구의 모습이 꽤나 능숙해 보였다. 대학 시절 학교에 차를 몰고 다니는 동갑내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믿기 어려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꽤 많은 친구들이 차를 소유하고 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친구 뒤를 쫓으며 나란히 세워진 차들을 살핀다. ‘큰 건 버스(혹은 트럭), 작은 건 승용차’인 나 같은 까막눈은 혼란스럽다. 룰을 모른 채 무작정 바둑판을 보는 느낌이랄까.
문득 자동차도 표정이 있다고 했던 후배가 떠오른다. 헤드라이트는 눈과 눈썹, 그 사이를 코, 아래 긴 부분을 입이라 생각하면 표정이 보인다나. 그래서 어떤 차는 화가 나거나, 놀라거나,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했다. …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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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지금은 맞고, 그때도 맞다
오래된 기억 하나를 들춰 본다. 학부 때 일이다. 조경 관련 수입 서적을 방문 판매 하는 분들이 있었다. 아마도 기억날 것이다. 여러 학교와 사무실을 다니면서 책을 팔았기 때문에, 나름 조경계의 유명인사로 통했다. 학부생 형편에 화려하고 무겁고 비싼 책들을 살 여력이 없었기에, 나는 그분들의 단골이 되지는 못했다. 어느 날 처음 보는 좀 젊은 분이 왔는데, 비싼 수입 서적이 아니라 『환경과조경』 합본을 팔고 있었다. 대략 열 권 정도 되는 잡지를 모아 하나의 소장본으로 묶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딱히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창간호부터 묶은 것이라 책값의 일부를 외상으로 남기고 덜컥 사고 말았다. 다음에 오시면 나머지를 드리겠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뒤로 만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입대 휴학을 하고 또 복학을 하는 사이에도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도 그 두꺼운 책을 꼭 챙겨 다녔는데, 책값을 다 치르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부터 책장에서도 사라져버린 책. 내가 『환경과조경』을 처음 접한 기억이다.
김모아 기자로부터 오는 전화나 메일에는 조금 긴장을 하게 된다. 원고 청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환경과조경』에 꽤 많은 글을 썼는데도 원고를 청탁받으면 늘 부담이 된다. 400호 기념 기획에 대해 들었다. 내가 맡은 부분(51호~100호)의 시기를 따져보니, 거의 30년 전이다. 1992년 6월호부터 1996년 8월호까지, 4년이 조금 넘는 시간. 옛 추억들이 떠올랐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 연구소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설계사무실로 옮겨 실무 초년병 시절을 보낸 시기다. 원고 청탁서와 함께 전달된 목차 리스트를 살펴보았다. 오래된 프로젝트들이 보였고 반가운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소식이 감감한 선배들의 흔적들도 보였다. 청춘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중년의 시간이 지나고 있음에도 지나간 청춘의 시간은 너무도 가깝다. 우리 회사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소개되니 반갑기도 하고, 지금은 조경계의 중추 역할을 하는 동료 선후배들의 호기 넘치는 패기를 지면에서 마주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잡지가 발행된 시기(1992년~1996년)는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리우환경회의의 결과로 지 구 환경에 대한 이슈가 어느 때보다 활발했고, 정부 조직에서도 환경처가 환경부로 승격되는 변화 가 있었다. 1995년에 실시된 지방 선거로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열렸다. 1989년에 전격 시행된 해외여행자유화 조치로 많은 사람이 손쉽게 해외여행을 하기 시작했던 반면, 새로운 무역 기구의 출현으로 시장 개방이라는 압력을 견뎌야 했던 시기다.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컴퓨터 기술로 인해 설계 환경이 비약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인터넷이라는 낯선 세계를 접하게 된 것도 이때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잡지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환경과조경』은 조경 분야의 유일한 잡지 매체로서, 전문 분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특집, 특별기획, 기획시리즈, 긴급진단, 긴급제안, 특별기고와 같은 다분히 전투적인 제목의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생성된 수많은 글은 당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선배 세대의 생생한 기록이 되었다.
‘환경’과 조경이라고?
계간지로 출발한 『조경』이 『환경 그리고 조경』으로 제호를 바꾼 때가 통권 9호(1985년 여름호)다. 어떠한 연유에서 ‘환경’을 삽입하게 되었는지 짐작만 할 뿐,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있다. 2014년 1월 309호로 새 출발을 하면서도 『환경과조경』의 제호는 유지됐다. 조경 분야에서 환경의 이슈를 다루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환경처가 환경부로 승격되던 1990년대 중반은 꽤 진한 러브콜이 오고 갔던 시기로 보인다. 장관 인터뷰 기사와 여러 환경 관련 이슈들이 특집이나 특별 기획의 형태로 자주 등장한다.
71호(1994년 3월호)와 72호에서 ‘지구환경오염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와 전망’이라는 특집을 연속으로 기획했고, 연이어 73호에서는 ‘환경보전적 21세기 농촌상’을 다뤘다. 81호(1995년 1월호)에는 신년 특별기획으로 ‘친환경적 도시관리’, ‘산림생태자원보전’, ‘녹색서울과 남산’이라는 정책적 주제를 다룬 글들이 실렸다. 86호(1995년 6월호)에서는 ‘환경영향평가의 재조명’이라는 특집으로 무려 7명의 필자가 등판해서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63호(1993년 7월호)에서는 긴급진단이라는 구성으로 ‘지금 우리는 지구환경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절박한 이슈가 등장하는데, 막상 내용을 살펴보니 조경사업법 제정, 조경공사 표준품셈 합리화 방안, 수목단가의 합리적 산정 등 업계 현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주제에서 벗어난 좀 뜬금없는 구성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통권 100호(1996년 8월호)에서 다룬 특집 ‘하천환경 복구 진단’은 12명의 필자가 총출동하여 하천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룬 역대급 기획이었다. …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박승진은 『환경과조경』 5호가 발행될 때 대학에 입학해 조경을 공부했다. 47호가 나올 때 학교 연구소에서 생애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69호와 함께 설계사무실에 들어가서 실무를 익혔다. 그리고 13년을 다녔다. 227호가 발행되던 날, 작은 설계 스튜디오를 열었다. 며칠 전, 393호가 배달되었고 여전히 작업실에서 설계 도면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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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개봉작 상영기] 설계공모의 뒤끝
선택받지 못한 결정체
지난 연말 동심원조경에 잠시 다녀왔다. 종무식을 앞두고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 최근 ‘춘천 시민공원 마스터플랜 설계공모’에 당선된 승자들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안계동 대표에게 공모의 뒷이야기를 들으며, 총성 없는 전쟁터에 발을 담그지 않아 다행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그 판에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이 들었다. 당선되지 못한 입상작들을 보며 여러 팀의 고뇌와 열정을 상상했고, 한편으로 예전에 참여했다 떨어졌던 공모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가슴 한 켠이 시려왔다.
선택받지 못한 설계공모 낙선작. 한국 조경의 역사가 해를 거듭할수록 설계공모 출품작들이 쌓여가지만 세상에 드러나긴 어렵다. 당선작 공고문의 맨 위에 있지 못해 의미가 없다고 하기엔 아까운 결과물들이다. 한 설계사무소의 철학과 자존심, 모든 역량이 담긴 성과는 결과를 떠나 존중받고 알려질 필요가 있다. 설계공모는 당첨이 보장되지 않는 복권이라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고 위로하기엔 너무나 많은 사람의 영혼을 끌어 모은 결정체이기에 아쉬움이 크다.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나는 1년에 두 번 정도 설계공모에 참여하고 있다. 실시설계 프로젝트와의 균형을 고려해 감을 잃지 않을 정도로, 대신 의미 있는 공모를 잘 선별해 참여하고자 한다. 최근 참여한 공모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아쉬운 것은 2018년의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국제공모’다. 폐조선소의 인프라를 그대로 남겨둔 부지가 매력적이었으며 여러모로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과제였다. 통영이라는 도시와 대상지인 폐조선소가 그러했고, 산업 유산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이면서 부지 성격상 대규모 오픈스페이스를 품고 있는 점이 그러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하고,동심원조경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을 이끌고 있으며,좋은 설계는 좋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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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스케이프] 인류 최초의 환경 파괴범, 길가메시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가 찾아왔고, 변화를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 멀지 않았다는 불안한 예측마저 낯설지 않게 들려온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다시 살피며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길가메시(Gilgamesh)를 만나게 된다.
길가메시는 고대 수메르의 전설적인 왕이다. 그의 행적은 오랫동안 노래로 전해졌고, 이를 점토판에 설형 문자로 새긴 것이 인류 최초의 문학 작품인 『길가메시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다.1 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보다도 이천 년 앞서 쓰였고, 신화와 문학, 전설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길가메시의 3분의 2는 어머니처럼 신이지만, 3분의 1은 아버지처럼 인간이다. 신에 가깝지만 완전한 신이 아니기에 인간의 조건인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를 넘어서고자 분투했으나 실패한 인류 최초의 ‘히어로’로서 그의 행적은 수없이 노래되었다. 하지만 생태적 관점으로 보면 길가메시는 최초의 환경 파괴범이며, 톨킨J. R. R. Tolkien이 사루만에 대해 쓴 표현을 빌리자면 ‘나무 도살자’다.
길가메시는 강력하고 거대하고 현명하며 고귀했으나 또 소란스럽고 거만하며 충동적인 젊은 폭군이었다. 어느 날 그는 당시 장례 관습에 따라 성벽 너머 강으로 시체를 띄워 보내는 풍경을 보았다. 처음으로 두려운 생각이 든다. 모든 걸 다 가졌어도 죽으면 모든 게 사라지는 것이다. 죽음 후에도 남는 것, 즉 명예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
그는 삼나무 산의 나무를 베어 오겠다고 선언한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에서 나무는 귀한 자원이었다. 큰 재목을 구해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모험이자 업적이었다. 큰 나무가 자라는 숲은 신들의 영역이기에 이곳의 나무를 자른다는 말만으로도 우루크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떤다. 게다가 길가메시가 가려는 삼나무 산은 신들의 지배자인 엔릴의 영토다. 엔릴은 삼목이 우거진 거대한 숲을 보호하기 위해 괴물 후와와(또는 훔바바)를 숲에 두고 일곱 개의 후광을 부여했다. 후와와가 외치는 소리는 거대한 홍수이고 그의 입은 불덩이인 데다가 그의 숨은 바로 죽음이니, 숲에 들어가는 이는 누구든 병으로 쓰러진다. 우루크뿐 아니라 서구 문명에서는 오랫동안 숲 자체를 두려워했다. ‘야만적인’, ‘흉포한’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새비지(savage)는 ‘숲’이라는 뜻의 라틴어 실바(silva)에서 유래한다. 후와와는 숲에 살기에 신의 대리자가 아니라 악한 괴물로 여겨진다.… (중략)
*환경과조경394호(2021년 2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