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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여운으로 남는 다섯 가지 쟁점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설계 국제공모’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소식을 전한 이는 스페인의 한 건축가였다.그는 공모전에 같이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이메일로 물어 왔다.
흥미로웠다.정원도 아니고 공원도 아니며 건축도 아닌 경관을 설계하는 것이,그것도 국제 공모로 진행하는 것이,이메일을 통해 이름을 알게 된 스페인 건축가가 참여하고 싶어 애달아 하는 것이.아쉬웠다.그와 같이 경관을 설계하는 공모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지난8월은 연구년을 보내기 위한 출국 준비로 분주했기 때문이다.기대도 됐다.참가자들은 경관 설계에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나갈까.정원,공원 같은 영역별 접근이 아니라 경관이라는 포괄적 접근은 다른 결과를 보여줄까.경관 설계를 평가하는 심사위원은 어떤 관점으로 참가작을 바라볼까.걱정도 있었다.주상절리는 좀 놔두면 안 되나?주상절리를 좀 더 가깝게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이유로 제거하기 어려운 시설을 설치하는,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더는 가기 싫게 만들던 조악한 목재 데크를 교체하는 정도에서 머무는 것은 아닐까?흥미와 아쉬움,기대와 걱정이 뒤섞여 다가왔다.
경관 설계인가,공원 설계인가
주상절리대 상부 공간의 녹지,산책,전망,전시와 체험 등을 다루는 일은 공원 설계와 다르지 않다.통상적이라면 지질 공원 설계 공모전이었을 것이다.산림청의 후원이 있었다면 지질 정원 설계 공모전이 될 수도 있겠다.공모전을 기획한 이가 건축 우선주의자였다면,건축이 지배적 경관 요소이고 공사비 비중과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측면에서 건축 설계 공모전이 되었을 수도 있다.이 모두를 어떻게 극복하여 경관 설계 공모가 열릴 수 있었을까?
경관은 그 자체가 지역의 과거와 현재,미래의 집적체이며 이를 서로 연계하려는 관성을 가진다.시간적 누적의 결과물인 경관은 지역적 가치이자 땅에 관한 문제다.땅의 기억과 조건이 다른 대상지는 모두 다른 정체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정원,공원,건축 전문가들은 대상지의 기억이나 성격과 관계없이 작가의 아이디어를 투사해 왔다.각기 다른 대상지에 작가의 의도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정체성을 만든다.개성이 사라진 얼굴을 어느 성형외과 출신이냐로 구분하듯이,디자인된 대상지는 설계자(설계사무소)에 의해 균질화되어 왔다.
이런 측면에서 경관 설계는 대상지 그 자체가 정체성임을 강조하여 작가의 의도를 적절하게 제어하는 효과가 있다.경관 설계라는 포괄적 접근이 정원,수목원,공원 같은 각론으로 영역화하는 탐욕을 제어하는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그리하여 경관 설계가 상처받고 점점 더 파편화되어 가는 경관을 치유하고 통합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그런 기대가 섣부르다는 것을 심사평이 일깨운다.심사평은 주상절리대 경관 설계 프로젝트를 제주 섬이라는 지질 공원(geo-park)의 한 부분으로 본다.공원이라는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심사평은 장소의 스토리텔링 구현,자연 풍경과 인공 구조물의 관계 설정,주변 지역이나 자원과 적절한 관계 맺기,주상절리를 경험하는 다양한 방식 제안,운영·관리 측면에서 풍부한 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 제시 등이 평가 기준이었다고 밝히고 있다.어느 공원 설계 공모전에나 적용할 수 있는 기준들이다....(중략)...
* 환경과조경 369호(2019년 1월호) 수록본 일부
최정민은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설계 실천과 교육 사이의 간극을 고민 중이다.대한주택공사에서 판교신도시 조경설계 총괄 등의 일을 했고,동심원 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다양한 프로젝트와 설계공모에 참여했다.제주 서귀포 혁신도시,잠실 한강공원,화성 동탄2신도시 시범단지 마스터플랜 등의 설계공모에 당선되었다.조경비평‘봄’동인으로 현실 조경 비평을 통해 조경 담론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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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바탕과 꾸밈이 어우러질 때
새롭게 변모한1월호,즐겁게 읽고 계신지요.리뉴얼 이후5년 만에 변화를 시도했습니다.매달 빠듯하게 마감을 쳐내는 스케줄,디자인을 대폭 개편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이번에는 팽선민 디자이너가 작심하고 능력을 발휘해 표지는 물론 본문 곳곳의 편집 디자인을 빛의 속도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새 디자인의 키워드를 물으니,언젠가 어느 잡지의‘에디토리얼’에서 읽고 공감한‘문질빈빈(文質彬彬’)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문질빈빈’은『논어』의‘옹야(雍也)’에 나오는 말로 내용과 형식이 충실하게 조화에 이른 상태라고 합니다.바탕내면이 꾸밈외형을 이기면 촌스러워지고,꾸밈이 바탕을 누르면 허세가 된다는 뜻도 품고 있습니다.과월호를 뒤져보니, 2015년1월호‘에디토리얼’에‘아름다운 잡지’라는 지향점을 말씀드린 적이 있군요.까마득히 잊고 있던4년 전의 다짐을 다시 새겨“내용과 형식이 적절하게 호응하는,텍스트의 메시지와 이미지의 효과가 하나로 움직이는,디자인이 콘텐츠를 지배하지 않고 콘텐츠의 본질을 드러내는‘아름다운 잡지’에 한 걸음씩 다가서기 위해”문질빈빈의 정신으로 늘 연구하고 실험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새해 첫 호에는 디자인의 변화만 있는 게 아닙니다.네 개 꼭지를 새로 기획해보았습니다.이명준 박사(기술사사무소 이수)가1년간 연재할‘그리는,조경’은 조경 설계에서 사용되어 온 다양한 드로잉 유형,매체,기법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드로잉의 도구성과 상상성이 작동하는 양상을 살펴보는 기획입니다.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추적하고 진화 방향을 예감하는 지면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김충호 교수(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는‘공간의 탄생, 1968~2018’을1년간 연재할 예정입니다.대한민국의 공간을 탄생시키고 변화시킨 거대한 힘과 물리적 세계의 단절적 전환,그리고 이에 따른 사회.생태적 영향을 리질리언스(resilience)의 렌즈로 탐사할 계획입니다.한국의 도시화50년사에 대한 공간.문화 비평을 시도하는 야심 찬 지면입니다.
‘도면으로 말하기,디테일로 짓기’는 한 명의 조경가가 석 달 동안 자신의 도면과 디테일을 소개하는 꼭지입니다.유용한 정보뿐만 아니라 실험적 아이디어와 독특한 설계 해법을 독자들과 공유할 이 지면의 첫 필자는 나성진 소장(얼라이브어스)입니다. ‘당신의 사물(思物)들’은 설계할 때 주로 쓰는 도구,설계에 영감을 준 사물,조경가의 일상을 드러내는 물건 등에 얽힌 짧은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구성하는 지면입니다.매달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될 이 꼭지의 첫 주자는 박경탁 소장(동심원 조경)입니다.
프로젝트 지면에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국내외의 근작과 설계공모를 엄선해 싣겠습니다.이번 호에는 최정민 교수(순천대학교 조경학과)의 비평과 함께‘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설계 국제공모’의 당선작과 가작들을 소개합니다.제주도의 대표적 지질 유산인 주상절리대의 경관 잠재력을 창의적으로 회복시키고자 한 여섯 팀의 작품,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평가하실지 궁금합니다.
2019년1월호는‘제1회 젊은 조경가’수상자인 김호윤 소장(조경설계 호원)특집호이기도 합니다.디자인과 현장의 균형,기술적 사고와 디자인의 조화에 방점을 둔 그의 작업 성향을 에세이,작품,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2월호는 공동 수상자인 이호영·이해인 소장(HLD)특집호로 꾸릴 예정입니다.한국 조경의 내일을 설계해나가길 기원하며,다시 한 번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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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탄생, 1968~2018] 한국의 도시화 50년, 그 공간 문화 비평에 들어가며
2019년 새해가 시작된다. 나는 이제 만으로 마흔 살이 된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 20년이었고, 대학 입학 후 20년이 지났다. 40여 년의 시간을 살면서 언제부턴가 나의 개인적인 삶이 사회와 역사의 도도한 흐름과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특별히 뛰어나거나 독특한 존재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의 삶이 지극히 평범하고 전형적이라는 일종의 깨달음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사회와 역사에 밀어붙이는 힘보다 거대한 사회 시스템과 격동하는 역사가 나를 주조하는 힘이 지금까지 훨씬 컸다.
흥미롭게도 사회와 역사의 거대한 힘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이었지만, 때때로 개인의 삶과 사회의 물결을 되돌릴 수 없이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중요한 시점들이 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내가 태어난 1979년에는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정치적 체제 변환이 일어났으며, 고3이던 1997년에는 외환 위기로 경제 체제의 변환이 일어났다. 미국에서 박사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2017년에는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이 있었고, 이후로 사회 체제의 변환 역시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체제 변환은 사건 이전과 이후가 확연하게 다른 단절적 전환이었다.
이 연재는 우리 사회와 역사가 가졌던 거대한 힘과 이것이 초래한 여러 단절적 전환이 어떻게 오늘날의 물리적 세계에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이 연재는 시간적으로 지난 50여 년을, 공간적으로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물리적 세계의 변화를 ‘한국의 도시화 50년’으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일어난 대한민국 공간의 탄생과 변화를 비평적으로 논하고자 한다. 한국의 도시화는 일견 사회적 현상이자 역사의 기록으로만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은 내 부모 세대의 이야기이자 내 세대의 이야기이며 내 자식 세대의 이야기다. 따라서 내가 듣고 보고 경험한 것은 우리 사회의 편린을 넘어 우리 역사의 단면과 전형을 증언하는 중요한 도구라 할 수 있으므로, 사회적 통계나 역사적 기록물 못지않게 활용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객관적 자료와 과학적 논증을 지향하는 일반적인 연구 저작물과는 다른, 직관적 경험과 풍부한 영감을 전달하는 자유롭고 탐색적인 글쓰기를 하고자 한다. 최종적으로, 이 연재를 통해 나 스스로 대학 입학 이후 오랫동안 품었던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인가’에 대한 본질적 물음에 공간적으로 답을 내리고자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9호(2019년 1월호) 수록본 일부
김충호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도시설계 전공 교수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시설계·계획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우설계와 해안건축에서 실무 건축가로 일했으며,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워싱턴 대학교, 중국의 쓰촨 대학교, 한국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수행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건축, 도시, 디자인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적 대안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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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조경] 드로잉, 도구와 상상을 품다
공들여 채색된 이 그림은 험프리 렙턴(Humphry Repton)(1752~1818)이 영국 노팅엄셔(Nottinghamshire)의 웰벡 영지(Welbeck Estate)의 설계 이전과 이후 모습을 그린 것이다(그림 1). 서양 조경사에서 렙턴은 설계 전후의 경관을 덮개를 이용해 보여주는 테크닉과 높은 완성도의 조경 드로잉을 선보인 조경가로 소개된다. 그는 최초의 전문 정원가(landscape gardener)로 평가되기도 한다. 가로로 긴 파노라마 형식의 이 드로잉에서 렙턴은 양쪽 전경에 잎이 풍성한 교목으로 화면 전체의 프레임을 만들어 안정감을 주고, 그 사이로 넓은 영지의 모습이 점점 후퇴하는 것처럼 묘사해 그림에 깊이감을 부여했다. 중앙에는 자신의 장기인 덮개를 설치해 설계 이전과 이후의 변화된 경관의 모습을 극적으로 연출했다.
흥미로운 건 드로잉의 주제인 경관의 개선보다 드로잉 앞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다. 오른편에 위치한 활엽 교목 한 그루 아래에 두 쌍의 인물이 있다. 왼편에는 토지 측량 기구를 든 사람이 그의 조수와 함께 토지를 측량하고, 그 반대편에는 또 다른 신사가 그의 조수와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다. 이 인물들은 가까스로 덮개에 가려지지 않도록 신중히 배치되어 설계 전후의 장면에 동시에 등장하도록 연출되어 있다. 렙턴은 왜 두 쌍의 사람들을 그림 전경에 그려 넣었을까. 보통 조경 설계 드로잉에는 설계된 경관의 이용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하게 그 경관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배치하기 마련이다. 렙턴이 경관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측량하고 스케치하는 사람을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조경가는 그리면서 설계한다
질문에 답하기 전에, 조경에서 드로잉이 중요한 이유를 우선 이야기해 보자. 조경학과에 들어와 본격적인 설계보다 먼저 배우는 건 드로잉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혹은 조경학을 시작하는 학생들에게서 “조경을 하려면 그림을 잘 그려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가 많다. 물론 그렇지 않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서 조경 설계를 잘하는 것은 아니며, 조경을 하기 위해 그림을 잘 그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조경은 경관을 조성하는 것이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조경 설계 과정에서 드로잉은 반드시 포함되고 또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경관을 설계하고 조성하기 전에 설계가의 머릿속에 설계된 경관은 오로지 드로잉의 형태로 물질화되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선택이라기보다 필연인 셈이다....(중략)...
* 환경과조경 369호(2019년 1월호) 수록본 일부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 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 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가천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조경비평 봄’과 ‘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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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으로 말하기, 디테일로 짓기] 파라메트릭 정원
사실은 하고 싶었던 얘기가 바다 위의 거품만큼 많았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전통적인 하드록 밴드 구성으로 정원박람회라는 무대에 오를 때, 혼자서 미디 컨트롤러(MIDI controller)를 들고 드럼 앤 베이스(장르)를 연주하러 올라갔으니까. 우리가 ‘설계 도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전형적인 플랫 베이스를 생각하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건, 디자이너 스스로 그의 가능성을 오랜 아날로그의 가동 범위 안에 제한하며 시작한다는 말과 같다. 라디오헤드가 ‘오케이 컴퓨터(Ok Computer)’ 앨범 이후 밴드의 근본적인 방법론을 바꾸지 않았다면, 우리는 3집 이후 쇠락해가는 흔한 뮤지션의 자기 소모를 지켜봐야 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숙련된 전문가라는 말이 갖는 양가적 모순을 지향하기보다, 새로운 이해의 영역에서 시작하는 노력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즐겁게 구성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전적인 정원 설계는 본래 단순 미학을 지향했다. 패턴과 밀도, 볼륨, 색채의 조합은 디자이너의 세심한 조정을 거쳐 보편적인 아름다움으로 새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념의 시대에 그 단순한 디자인 구조를 탈피하려는 노력이 이제는 다소 과해져, 정원의 본질과 변형들을 되려 오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공간을 실제적으로 디자인하는 노력보다 전시적 주제를 백일장처럼 구현하는 유행이 정원박람회장마다 흘러넘쳤고, 쇼가든은 해변을 가득 메운 산란기의 바다거북만큼이나 부담스러워졌다.
그래서 정원박람회장의 무대에 서기로 했다. 텔레캐스터(telecaster)가 아닌 미디 컨트롤러를 등에 메고, 고전적인 정원 설계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며 누가 시키지도 않은 사명을 홀로 작성해서. 프로세스 설계는 하나의 중심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오픈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새로운 변수들을 매개하여 여러 가능성을 시도하는 방법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9호(2019년 1월호) 수록본 일부
나성진은 서울대학교와 하버드 GSD에서 조경을 전공했다. 졸업 후 한국의 디자인엘, 뉴욕의 발모리 어소시에이츠(Balmori Associates)와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CFO)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West 8 로테르담과 서울 지사를 오가며 용산공원 기본설계를 수행했다. 한국, 미국, 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파트너들과 함께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대안적 그룹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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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물들] 바람
‘사물’은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자연물과 인공물, 보이는 물질과 보이지 않는 물질로 이루어진 모든 것이 사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과학은 물질을 계속 파고들어 그 밑바닥까지 도달했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물질의 최소 단위인 양자(quantum)는 입자이자 파동이다. 즉 모든 사물은 물질이자 에너지다.
‘당신의 사물들’ 덕택에 조경을 접한 지 20년 만에 처음, 머릿속으로 내가 설계를 하는 모습을 관찰하게 됐다. 떠오르는 장면 속에는 익숙한 프리즈마 컬러 색연필과 지우개, 트레이싱지, 아내가 선물해 준 소중한 어린 왕자 볼펜도 보였지만, 장면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난 설계의 결정적 순간(inspiring moment)은 ‘집중에서 이완으로 이어지는 에너지의 변화 과정 사이,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 사이의 틈(공기)’에 있었다. 파동과 에너지 그리고 공기에 관한 이야기는 나만의 비밀이 아니라 많은 누군가의 비밀이며, 설계만의 비밀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많은 사건과 그 과정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비밀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9호(2019년 1월호) 수록본 일부
박경탁은 동심원 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서울시립대학교와 하버드 GSD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민우건축사사무소, O3scope, SWA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에서 설계 실무를 경험하고 2016년 동심원에 합류했다. ‘생각하기와 만들기는 분리할 수 없다(Thinking andmaking are inseparable)’는 철학으로 노들꿈섬, 이사부 독도 기념공원, 용산4구역 문화 공원, 인스파이어 복합카지노리조트 등의 조경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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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스케이프] 언제나 예상은 빗나간다
“야구 몰라요.” 이제는 고인이 된 하일성 해설위원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입니다. 뭔가 예상대로 경기가 진행되지 않을 때, 아니면 거의 가능성이 없는 상황을 기대할 때마다 특유의 억양에 실어 어김없이 외치던 대사였죠. 가끔은 거기에 뒷얘기가 붙을 때도 있었죠. 둥근 공과 둥근 배트가 만나는 경기라 공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이번 사진의 주인공은 낡은 야구공, 그리고 제 이야기도 야구 이야기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제가 야구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고교 야구가 한창이던 때부터 보긴 했지만, 역시 본격적으로 야구에 관심을 두게 된 건 프로 야구가 출범하면서부터입니다. 어린이 회원이 되면 예쁜 OB 베어스의 유니폼을 준다고 해서 베어스의 팬이 되긴 했지만, 역시 결정적인 이유는 박철순 투수였습니다. 늘씬하고 잘생긴 외모에 너클볼을 던지는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어 야구에 푹 빠지게 되었죠. 원년 우승 이후 수차례 등락이 있었습니다만, 지금까지 꾸준히 베어스의 팬으로 야구를 즐기고 있습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9호(2019년 1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했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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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집의 시간들
아카이브의 가치
‘집의 시간들’은 1980년에 지어진 후 재건축을 위해 2018년 철거와 이주가 진행된 둔촌주공아파트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제목이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143개 동5,930세대의 대단지 아파트를 다룬 영화지만 제목은 ‘아파트’가 아니고 ‘집’이다. 켜켜이 쌓인 시간과 집단의 기억을 기록하는 아카이브로서 삶과 집이 어떻게 관계 맺는지 생각하게 해 주는 영화다.
첫 장면, 어느 집의 거실이다. “집은 우리에게 가족이다. 이사를 자주 했더라면 돈을 더 벌었겠지만, 한집에 오래 살면서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컸다는 것에 만족한다.” 인터뷰가 흐르는 동안 거실 전경을 오래 비추던 카메라가 집안의 구석구석에 멈춘다. 색이 서로 다른 무거운 소파, 액자, 벽시계, 가족사진, 전화기, 신발장, 하회탈, 약이 놓여 있는 선반 등 집 안의 사물들을 사진첩 넘기듯 천천히 보여준다.
차례로 여러 집이 소개되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은 형식으로 들려준다.인터뷰이의 얼굴이나 정보를 알려주는 자막은 보여주지 않는다. 정보가 차단되니 말 하는 사람이 묘사하는 공간에 집중하게 된다. 마치 집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주인을 보여주진 않지만 침대 바로 옆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베란다에 화분이 얼마나 있는지, 책장에 어떤 책이 꽂혀있는지 보면서 그 집에 사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다.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사물들을 이렇게 오래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중략)...
* 환경과조경 369호(2019년 1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이제 새해에 지킬 세 가지 다짐 같은 건 안 해야겠다. 2018년 첫날 결심한 자기 전 핸드폰 안 보기, 운동하기, 일기 쓰기 중 단 한 가지도 안 지켰다.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안 지켰다. 2019년 새해엔 이 중 한 가지를 시작이라도 해봐야겠다. 어떤 게 제일 쉬울지는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