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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광화문광장 설계공모에 참가하는 조경가들에게
    지난 8월부터 한 일간지에 3주마다 칼럼을 쓰게 됐다. 전국의 불특정 독자를 상대하는 지면이라 글감 택하기가 쉽지 않다.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10년도 안 된 광화문광장을 1,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뜯어고치는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걸로 첫 글의 주제를 잡았다. 대중 일간지라는 부담 때문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힘이 과하면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는 법. ‘시민의 일상과 조화된 보행 중심 공간화’와 ‘잃어버린 역사성의 회복’이라는 서울시 논리의 맹점을 꼬집은 후, 서울역 고가 공원화 못지않은 속도로 전개될 이 사업의 과정을 경계하는 다음 문단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점은 이 사업의 속도다. ‘토건시대’를 연상시키는 속도전으로 진행할 일이 아니다. 서울시는 7월 말에 전문가와 시민 150명이 참여하는 시민위원회를 출범시키고 토론회를 열었다. 초대장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광화문시대를 여는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조성함에 따라 … 광화문시민위원회를 구성하여 논의를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논의를 다시 시작한다면서 동시에 8월 말 설계공모, 내년 말 설계 종료, 2021년 5월 완공이라는 과속 주행 스케줄이 정해져 있다. 이 프로젝트가 전시성 포퓰리즘 공간 정치의 산물이 아니라면,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와 진정한 광화문시대를 여는 과정의 첫걸음이라면, 광화문광장의 온전한 미래를 다음 세대가 선택할 수 있도록 긴 호흡으로 ‘논의를 다시 시작’하기 바란다”(배정한, “광화문시대를 연다?”, 「한겨레」 2018년 8월 11일). 당연히 볼이었다. 10월 12일, “역사성과 장소성을 살린 시민중심 대한민국 대표공간 조성을 목표”(공모 지침서 초대의 글)로 하는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가 공고됐다. 가까운 조경가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공모에 참가한다고 한다. 건축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최적의 드림팀을 꾸리느라 거의 모든 세대의 조경가와 건축가가 동분서주하고 있다. 몇몇 조경가(L)와의 대화 몇 토막을 추려서 옮긴다. J. 광화문광장, 할 건가? 한다면,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L.당연히 한다. 어떤 안을 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침서에 적힌 ‘10가지 이슈와 과제’는 사실 ‘아무 말 대잔치’나 ‘뻔한 말 대방출’처럼 읽힌다. 진지하지만 지극히 낭만적인 말들이다. 그 과제들을 조금 더 고급진 어휘로 바꿔 보고서에 다시 적고 패널에는 한두 가지 강한 아이디어를 세련된 CG로 산뜻하게 담을 생각이다. J. ‘보행 중심 공간화’는 결국 현재의 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여 확장하는, 이른바 ‘편측 광장’화다. ‘잃어버린 역사성의 회복’은 광화문 앞 월대와 해태상의 제자리 찾기에 다름 아니다. 어길 수 없는 정답이다. 이 두 문제가 현재의 광장, 즉 밀실에 유폐된 진실을 시민의 힘으로 밝혀낸 촛불의 광장을 지금 당장 고쳐야 하는 합리적 이유일까. L. 시급히 고칠 이유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바꾸면 광화문광장이 더 나아질 것 같기는 하다.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비판에 일리가 있지 않은가. J.물론 현재의 광장 구조, 형태, 디테일이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10년 전에 많은 전문가의 의견처럼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여 광장을 만들었다면 시민의 일상과 더 넓은 접면을 가지고 문화적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보다 쾌적한 보행 환경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은 필요할 때 차도를 막아서 유연하게 쓰고 주변의 빈 공간들을 잘 엮어서 써도 되지 않나. 당장 뜯어고칠 당위성은 없는 것 아닌가. L.동감이다. 바꿀 거면 확실하게 바꾸는 게 맞다. 기왕이면 입체적 교통 계획을 세워 세종로 전체를 보행 광장으로 완성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하지만 그런 그랜드 플랜에는 오랜 시간에 걸친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선 단기 처방을 하자는 게 이번 프로젝트 아닐까. J.단기 처방 후 또 새로 수술을 해야 할까. 역사성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역사와 전통 이야기만 나오면 왜 언제나 전근대의 조선만을 원형으로 설정하는 것일까. L.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몇십 년간 세종로와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진 철거와 복원 행위의 대부분은 조선 왕조의 공간적 흔적을 단편적으로 소환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현대사의 수많은 사건과 의미가 적층된,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J. 그렇다. 4·19 혁명과 1987년 민주 항쟁도, 붉은 악마의 월드컵 군무도, 촛불로 타오른 시민 혁명의 기억도 조선의 왕궁이나 육조거리, 월대나 해태상 못지않게 중요하다. L. 그 지점에서 참가작들의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분기될 것 같다. J.왜 이 공모가 나왔다고 생각하는가. “광화문광장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이 있습니다”라는 공모 지침서 첫 문장처럼 실제로 우리는 광화문광장을 문제라고 생각할까. 시민들도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L. 우문이다. 이 시대 도시·건축 정책을 이끄는 키맨들의 문제의식과 열망이 낳은 프로젝트다. 어느 정도는 순수한 열망이라고 본다. J. 그 순수한 열망이 왜 이렇게 급하게 실험되어야 하는가. 연구와 토론, 참여와 소통이 필요하지 않나. L.물론 2021년 5월 완공이라는 데드라인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그러나 키맨들은 자신의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환경이라고 판단하니까 과속하는 것 아니겠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생각. J.그렇다면 왜 이 땅의 대다수 조경가와 건축가도 이 과속 주행에 동참해야 하는가. L.잘 모르겠다. 그러나 뭔가 전문가로서 사명감 같은 걸 느낀다. 공모전 사이트가 가장 상징성 있는 서울의 대표 공간 아닌가. 내 설계 능력과 지식을 이곳에 펼쳐봐야 한다는 사명감이랄까. ‘서울로 7017’의 재판이 되는 걸 막아야겠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도 느낀다. 아무튼 정치는 정치고, 일은 일이다. 그들이 노 저을 때 우리도 노 저어야 한다. J.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건 좋지만, 그러다 쓸데없이 팔뚝만 굵어질 수도 있지 않나. 2017년 1월호부터 격월로 연재된 ‘정원 탐독’이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오경아 필자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 [이미지 스케이프] 그거 아세요?
    “그거 아세요? 크로스레일 플레이스의 옥상 정원에는 이곳의 모든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깊이 1m의 흙을 깔아 두었습니다. 일 년 내내 식물에게 물과 액체 양분을 자동 관수 시스템을 통해 공급합니다. 이 옥상 정원은 캐너리 워프와 계약한 질스피스 조경설계 사무소가 설계했고, 식재는 블레이크다운 조경이 맡았습니다. 현재 이 옥상 정원은 알렉 버처가 이끄는 캐너리 워프 조경 관리팀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알렉이 가이드 투어도 이끌 예정입니다.” 지난 여름 한국경관학회 해외 답사 프로그램으로 영국을 다녀왔습니다. 외국 답사를 가면 참 신기한 게 많지요. 자동차도 반대로 다니는 영국, 이번 답사에서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고 왔습니다. 정말 그림 같았던 풍경화식 정원 스투어헤드(Stourhead)도 직접 보고, 바로크 정원에서 풍경화식으로 변신했던 채스워스 하우스(Chatsworth House)를 산책하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인농촌 마을에서 새롭게 변신한 바이버리(Bibury)와 버턴온더워터(Burton-on-the-water)같은 곳도 둘러보고, 피크 디스트릭트(Peak District)국립공원에서 영국 특유의드넓은 구릉지에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책이나 인터넷으로 보는 느낌과 달리, 답사에서는 직접 대상과 교감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느낄 수 없는 다른 문화나 큰 스케일의 경관을 해외 답사에서 만나게 되면, 새삼 아직 내가 모르는 세상이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야말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규모가 큰 대상에서만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배려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때도 많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세밀한 감동이 더 오래 남고, 더 깊이 전해질 때도 있습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7호(2018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전개
    이번 연재에서는 프로젝트의 ‘전개’를 다룬다. 먼저 경험, 감각,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를 소개한 뒤, 대상지의 역사와 지역의 대표 경관 및 기능을 형태적으로 풀어 내는 전개를 이야기하기로 한다. 수목원, 업 클로즈 앤드 퍼스널(Up Close and Personal)1 지난 연재에서 다룬 바와 같이, 여주관광단지 오림 수목원(이하 오림 수목원)설계 당시 개개인의 고립이 심화되고 형식적 관계만 남은 현대 사회에서의 수목원의 역할을 고민했고, ‘자연과의 교감’을 핵심에 두었다. 수목원이 힐링 요법이나 체험 프로그램 위주의 공간을 넘기를 바랐다. 사소한 바람, 냄새, 온도, 거미줄, 나뭇잎이 사각거리는 소리 등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각과 그로 인한 울림이 있는, 기억에 남는 장소이기를 원했다. 그래서 ‘감각’이 중요했다. 시각적 자극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장식적 수목원과는 달라야 했다. 물리적 계획과 형태적 특성은 덜 중요했다. 오림 수목원 설계는 큰 스케일에서는 다른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을 토대로 발전시켰지만, 공간의 세부적 구현과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는 직관적, 감각적, 감성적 요소를 사용했다. 오감이라는 감각의 종류보다는 경험의 시퀀스에 따라 ‘맞이하기, 홀리기, 탐험하기, 배우기, 보상 받기’라는 기승전결식의 프로그램, 다양한 동선과 이동 속도의 리듬, 건축물을 활용한 문지방 효과 등이 공간 구조의 뼈대를 이룬다. 경험적 스케일에서는 구체적 상상력이 설계를 전개했다. 그중 특히 흥미로웠던 ‘조향사의 숲’과 ‘밀리건의 숲’을 소개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7호(2018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로, 광범위한 분석과 접근 방법을 통해 대상지의 공간적 가치를 향상시키고 그 장소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인문·사회적으로 긍정적 변화를 끼칠 수 있는 핵심적 해법을 제공한다. 이호영은 고려대학교에서 원예학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으며, 조경설계 서안, 미국 에이컴(AECOM), 오피스 ma(office ma)에서 조경과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해인은 서울대학교와 UC 버클리(UC Berkeley)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하버드 GSD에서 조경 설계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에이컴과 파퓰러스(POPULOUS)의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다양한 조경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www.hldgroup.net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박진 어반비즈서울 대표 달콤한 공존
    자연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종종 사람들이 발견하기 힘든 스케일에 존재한다.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오늘도 묵묵히 예쁜 꽃을 피우고 있는 자연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봄날, 회양목에 달린 작은 꽃들을 보았는가? 본래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사정없이 깎이고 사람들의 발길질에 상처 입은 채 길거리의 먼지와 차의 매연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아무도 예쁘다, 멋있다, 알아주지 않는 회양목의 꽃은 꿀벌에게 소중한 식사를 제공해 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런 회양목에게 조용히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사람들, 도시의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박진 대표가 2013년에 설립한, 도시에서 벌을 키우는 기업 ‘어반비즈서울’이다. 만드는 꿀의 양은 적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만드는 상품은 도시의 작은 것들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배려의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양봉을 통해 벌을 따라가다 보니 무심코 지나치던 자연이 보였다. 벌꿀은 벌이 꿀을 생산하는 시기에 따라 겉보기뿐 아니라 맛도 변한다. 개화하는 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벌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꽃을 관찰하게 된다. 자연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생산된 꿀은 오염되어 있을 거라고 짐작할 법하지만, 검사 결과는 선입견과 다르게 나왔다. 오히려 살충제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 안전하다. 과수원 근처에서 키우는 벌들은 농약 때문에 죽기도 한다. 토요일 오전에 모인 도시 양봉 교육생들은 임산부부터 퇴직자까지 무척 다양했다. 새로운 취미를 찾는 사람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부터, 그저 자연이 좋고 환경에 관심을 둔 사람들, 부업이나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수업은 열띤 질문과 의견 교환으로 활기가 넘쳤다. 계절은 이미 가을로 접어들고, 거리에는 낙엽이 나뒹굴었다. 혜화동의 벌꿀 카페 아뻬 서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어반비즈서울의 양봉가들을 조용히 읊조리고 있었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7호(2018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와 대구,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정원 탐독] 정원, 지금 우리는 어디에
    식물이 없는 정원 료안지(龍安寺)라는 일본 정원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다소 논란이 있었다. 만들어진 시기와 정원을 디자인한 사람에 대해서 이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료안지는 대략 15세기 즈음에 조성된 정원으로, 일본의 선불교 사상.여기에서 비롯한 디자인을 젠 스타일이라고 한다.에 바탕을 두고 만든 돌과 자갈 위주의 이른바 ‘가래 산세이’(마른 정원)의 가장 오래된 형태다. 문제는 이 정원의 담장 안에는 이끼 정도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식물이 없다는 점이다. 돌과 자갈로만 구성되어 식물을 키우지 않는 이 공간을 정원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정원 전문가들은 식물이 없다 할지라도 인간의 주거 공간 안에 조성된, 자연의 물성과 인간의 예술 행위가 공존하는 공간을 정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사찰 정원이 그 안에 식물을 담지 않았던 것은 정신 수련이라는 목적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버려서 마음속에 그 무엇도 담지 않으려고 한 수행이 결국 화려한 꽃을 피우는 식물을 담장 밖으로 보낸 셈이다. 생존을 담은 정원 역사학자들은 서양 정원의 모태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파라다이스 정원’으로 본다. 그렇다면 식물이 자라기 힘든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의 사막에서 정원을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막의 삶에서는 물을 끌어오는 일이 가장 중요했고, 그 물을 해결하는 데 정원이라는 공간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십자 형태의 물길을 이용한 사분원(Char-bagh)도 결국 이 필연적 생존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 형태는 이집트와 고대 로마의 정원을 거쳐 훗날 서유럽 깊숙이 전파되면서 15~16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정원과 17세기 프랑스의 바로크 정원으로까지 이어진다. 마치 거대한 카펫을 펼친 듯 패턴을 수놓은 17세기 파르테르(parterre)정원의 등장은 서양 정원의 정형적 형태미의 꽃이다. 왜 이토록 형태와 패턴이 중요했을까. 페르시안 카펫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유목 생활을 해야 했던 이들에게는 정착의 삶이 없었다. 계속 이동하는 삶 속에서도 꿈꾼 아름다운 정원은 정착의 상징이다. 그래서 카펫에 화려한 정원을 수놓기 시작했다. 수많은 식물의 꽃을 그려 넣었고, 급기야는 정원의 평면도가 그 안에 자리 잡기도 했다. 정원의 꿈이 타일로 만들어져 벽에 붙고 카펫에 새겨졌으며, 그 안에서 다양한 패턴과 형태가 생겨났다. 그래서 정원은 이루고자 하는 꿈이었고 생존이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7호(2018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 리틀 칼리지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정원생활자』,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시네마 스케이프] 공작
    갑자기 이리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백주대낮에 남북한 지도자가 손을 꼭 잡고 군사분계선을 왔다 갔다 하질 않나, 지상파에서 평양 시내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질 않나. 지난해만 해도 상상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 틈을 타고 북한에 대한 포럼이나 전시회 등이 봇물 터지듯 열리고 있다. 몇 개월 앞을 예측할 수 없으니 북한 관련 행사를 기획하기 부담스럽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얼마 전부터는 구글 어스가 평양의 지도와 3차원 뷰를 제공하고 있다. 저 아파트엔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저녁 반찬으로 무얼 먹을까. 휴일에는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그들은 이미 다양한 경로로 남한에 대해 알고 있다는데 오히려 우리는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 대통령이 금단의 땅으로 향한 며칠 동안 실시간으로 평양의 경관을 볼 수 있었고, 북한 주민들의 인터뷰를 들었다. 영화 ‘공작’은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대북 첩보 활동을 펼친 공작원의 이야기다. 북한의 핵 개발로 위기가 고조되던 1990년대 초반 상황을 다루고 있다. 핵 시설의 정보를 얻기 위해 사업가로 위장한 박석영(황정민 분)은 베이징에서 북한의 리명운(이성민 분)과 접촉한다. 북한에서 촬영할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남북 합작 광고를 제안하고 평양에 가서 최고 지도자를 만나기에 이른다. 친숙한 첩보 장르지만 익숙한 총질이나 액션 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서로 속내를 숨긴 채 대화로만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건조하고 차갑게 그리던 전반부 분위기와는 달리 신파에 가까운 뜨거움으로 전환된 후반부가 다소 아쉽게 느껴지지만, 재현된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다. 1990년대 공간의 재현은 물리적 요소를 사실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창작자의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데다 특수한 시대의 폐쇄적 공간을 다루기에 기대가 됐다. 화려한 액션 신보다 인물과 상황에 집중하는 영화 스타일에 비춰 볼 때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영화의 주요 무대인 베이징의 특급 호텔과 야시장, 평양시 전경과 김정일 별장, 영변 구룡강 장마당 등을 재현하기 위해 분위기가 유사한 곳을 찾거나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세트를 제작했다고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7호(2018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내 아버지의 고향은 군사 분계선에서 멀지 않은 장단이다. 내 아이보다 어린 나이에 형의 손을 잡고 떠나온 후 눈을 감을 때까지 헤어진 부모를 영영 만나지 못했다. 고향의 뒷산이 빤히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울곤 했다는 그의 청년기 에피소드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