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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따로 또 같이
    이번 5월호 특집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는 어쩌면 『환경과조경』 역사상 가장 빠르고 쉽게, 아주 우연히 기획되어 일사천리로 진행된 특집일 것 같다. 원래는 이 지면에 최근의 디자인 테크놀로지 변화상을 심도 있게 다룰 계획이었다. 조사, 취재, 독서, 토론을 반복하다 벽에 부딪힌 편집부는 디지털 조경계의 ‘최강 덕후’ 나성진 소장을 초대해 조언을 구하던 중 급기야 항로를 돌렸다. 테크놀로지 특집을 위해선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함을 깨달았고, 오히려 대안적 연대를 꿈꾸며 새롭게 문패를 내건 그의 오피스 ‘얼라이브어스’의 지향점과 운영 방식에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얼라이브어스의 경우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의 연대를 실험하는 대안 그룹이 젊은 조경인들 사이에서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급박하게 진행된 취재와 섭외에도 불구하고 꽃길사이, 빅바이스몰, 얼라이브어스, 자연감각, 정원사친구들, 조경이상, 팀 동산바치, 하루.순, 이렇게 여덟 그룹이 이번 기획에 흔쾌히 동승해 주었다. 이 그룹들의 성격, 지향, 구성 형식에서 공통분모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기존의 회사, 기성의 학/협회와 결을 달리하고, 지연이나 학연에 바탕을 둔 집단주의를 경계하며, ‘뭉쳐야 산다’는 구호를 불편해하면서 ‘따로 또 같이’ 연대하는 형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교집합이 적지 않다. 대안 매체를 꿈꾸고 있는 팟캐스트 ‘꽃길사이’는 13회에 걸친 인터뷰를 방송하며 점차 청취자 수를 늘려가고 있는 프로젝트 그룹이다. 조경, 건축, 도시설계, 커뮤니티 디자인 등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들이 연대한 ‘빅바이스몰’은 ‘노들꿈섬 운영 공모’와 ‘공원산책’ 시리즈로 이미 이름을 알린 바 있다. “각자 자신이 설정한 비전에 따라 움직이며, 그룹에 개인을 맞추고자 하지 않는다. 각자의 동선은 평행할 수도 있고, 교차할 수도 있다. 상황에 맞게 협력의 방식을 정하고 함께한다”는 빅바이스몰의 연대 방식은 느슨하지만 동시에 관계 지향적이다. 조경과 건축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기반을 두고 학제간 디자인을 실천하고자 하는 ‘얼라이브어스’는 프로젝트 그룹보다는 단일 설계사무소에 가깝지만, 구성원 대부분이 독립 소장인 독특한 파트너십을 실험한다. 세 오피스가 프로젝트에 따라 연합하는 그룹 ‘자연감각’의 활동 영역은 전통적인 조경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설계뿐 아니라 기획, 시공, 운영과 관리, 제품과 서비스 기획으로 범위를 넓혀 단기 성장과 이윤을 추구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탐색하고 있다. 기획, 설계, 시공을 나누지 않고 정원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정원사친구들’은 정원박람회 출품을 계기로 결성되었지만 전시는 물론 민간과 공공 프로젝트로도 무대를 넓혀 왔다. 이들은 “둘 이상만 모이면 정원사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일반적인 회사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다.” 2015년과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YAP 프로젝트의 조경을 맡으며 힘을 모은 ‘팀 동산바치’는 말 그대로 프로젝트 그룹이다. 서로 다른 경험과 노하우를 합쳐 단일 오피스가 풀기 힘든 일을 해결하고자 한다. 조경, 도시설계, 건축 분야 소장 연구자들의 연합체인 ‘하루.순’은 분야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도시 문화 콘텐츠를 기획·운영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다른 그룹들과 달리 별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지난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렸던 ‘돈의문박물관마을’의 한 건물에 온실 ‘하루’와 문화실험실 ‘순’을 운영하며 시민 참여형 소통 플랫폼을 제공한다. ‘조경이상’은 비즈니스의 색채가 전혀 없는 모임이라는 점에서 앞의 그룹들과 다르다. 뜻을 함께 하는 30, 40대 조경가들이 모여 조경의 현실을 새로운 시선으로 진단하고 조경의 잠재적 역량을 실현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모임 내부의 탐색기를 끝내고 지난 3월부터 전국 ‘순회 특강 시리즈’로 활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이번 지면을 끝내 고사한 그룹으로는 ‘조경모색’이 있다. 이대영(스튜디오 엘), 이상기(조경설계사무소 온), 이진형(조경설계 서안), 장재삼(지드앤파트너스) 소장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2016년 자신들의 현재를 스스로 읽고 타인과 공유하고자 그룹 이름과 같은 제목의 전시회를 개최했고, 올해는 ‘경청 시간’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홀수 달에 열리고 있는 ‘경청 시간’은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청년들을 강연자로 초대한다. 이 ‘따로 또 같이’ 그룹들에 앞서 『봄, 조경 사회 디자인』(2006)을 출간하며 활동을 시작한 ‘조경비평 봄’은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2008), 『공원을 읽다』(2010), 『용산공원』(2013)을 연이어 발표하며 단행본 출판을 통해 지속가능한 비평 환경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지만, 지난 몇 년간은 소식이 뜸하다. 조경비평 봄이 지향했던 “조경 비평의 실천 환경 구축, 조경 담론의 생산 기지 조성, 조경 이론과 실천의 연결, 조경과 사회의 상호 개입을 위한 네트워크 조직, 조경 비평의 유통과 저장을 위한 매체 실험”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비평의 생산뿐 아니라 소통을 가능하게 할 새로운 플랫폼이 요청되는 상황이다. 느슨한 연대의 첫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이달 특집의 그룹들이 ‘따로 또 같이’ 조경계를 북적이게 하는 다양한 플랫폼이 되기를 기대한다. 플랫폼은 어떤 시스템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토대나 기반 모듈이기도 하지만, 본래는 기차역의 승강장이다. 플랫폼은 많은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다. 편하게 모이고 즐겁게 흩어질 수 있어야 정체되지 않는다. 그래야 건강한 플랫폼이다. 5월호와 6월호의 ‘그들이 설계하는 법’에는 김호윤 소장(조경설계 호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자 여러분의 큰 기대와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김정은 편집팀장이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환경과조경』을 떠나 『SPACE』의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아쉬운 소식을 전한다. 『건축인(POAR)』, 『공간(SPACE)』, 『와이드』를 거쳐 2013년 9월 『환경과조경』에 참여한 김정은 박사는 2013년 10월호(306호)부터 2018년 5월호(361호)까지 총 56권의 잡지를 만들며 『환경과조경』의 지면 혁신을 이끌고 문화적 지평을 넓혀 왔다. 그의 기획력과 편집 능력으로 가득한 쉰다섯 권의 과월호를 다시 펼쳐본다. 아쉬움과 막막함을 가슴 깊이 묻으며 그의 새로운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더 다채로운 형식으로 조경의 경계를 폭넓게 넘나들며 『환경과조경』은 물론 독자 여러분과 연대할 것이라 기대한다. 따로 또 같이.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2018년05월 / 361
  • [이미지 스케이프] 벚꽃 편지지
    비 오는 날 가장 운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여러분은 어디를 추천하시겠습니까? 정답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저라면 자동차 앞 좌석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듣는 음악은 정말 운치 있지요. 음악이 더해진 비 오는 창밖 풍경은 한 편의 영화가 됩니다. 특히 앞자리는 창에 맺힌 빗방울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어 더욱 매력적입니다. 가끔 윈도 브러시를 작동시키면 하늘에 그려진 그림을 지우고 새 그림을 그리는 느낌도 듭니다. 비 올 때 한 번쯤 여유를 갖고(이게 중요한 포인트!) 시도해 보시길. 작년 이맘때쯤, 비 오는 봄날이었습니다. 차를 세워둔 연구실 뒤편 길에는 벚꽃이 한창이었는데, 낮 동안 내린 봄비로 꽃잎이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덕분에 차는 꽃잎으로 단장을 한 상태였죠. 아주 예뻤습니다. 앞자리에 앉으니 하늘을 배경으로 한 꽃잎들이 더욱 예뻐 보였습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주신하[email protected] /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 / 2018년05월 / 361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종이 작업
    설계를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설계하는 법’에 대한 원고 의뢰를 받은 후의 중압감은 표현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2015년 10월, 단 사흘간의 고민을 통해 설계사무실을 열 때의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라는 사람의 설계 철학은 무엇인지 무한 갈증을 느끼며 잘 다니던 회사를 무작정 퇴사했다.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나의 설계 철학은 무엇일까? 이번 원고의 주제는 다행히 ‘설계하는 법’이기에 그나마 무게를 덜고 나의 설계 방법을 써 내려가 보기로 한다. 2003년 여름, 신입 인턴사원으로 설계사무소 생활을 시작했을 때 아는 것이 무엇이 있었으랴. 무작정 주위를 살피며 배워볼 만한 건 무엇이든 배우려 하던 시절이었다. 일반적인 설계사무실의 구조가 그러하듯 사무실 전체가 드로잉에 많은 시간을 투여하고 있었고 나 또한 드로잉을 잘해보려는 욕심으로 가득했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드로잉을 잘해야 조경을 잘한다. 디자인을 잘해야 조경을 잘한다. 실시 설계를 잘해야 조경을 잘한다. 계획안을 잘 잡아야 조경을 잘한다. 나무를 많이 알아야 조경을 잘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시절, 조경 설계에 무식하게 접근하던 내 모습을 지금은 잊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잘한다’ 시리즈가 지금의 기초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종이 작업’은 아름답다. 물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 한해서지만. 드로잉 도구를 이용한 감각적 표현과 멋과 기교를 낼 줄 아는 이의 무한한 펜 스킬은 많은 이에게 종이 작업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나 또한 손 드로잉을 통해 디자인을 하고 공간을 구성하지만, 설계를 시작하고 10년간은 어떻게든 드로잉을 잘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던 기억이 난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프로젝트에서 종이 작업 공부를 한 셈이다. 종이 작업의 절대 강자 드로잉은 설계 작업의 가장 화려한 방법으로 인식되며 국내 조경 설계의 가장 큰 흐름으로 자리 잡았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인가 드로잉은 내게 지루함의 연 속으로 다가왔다. 언제부터인가 사이트 베이스 맵 위 에 옐로 페이퍼를 깔고 드로잉을 하는 멋진 조경가의 이상이 즐겁지 않고 반복적인 일상의 연속이 되어버린 바로 그때,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드로잉만 을 통한 설계 방법은 일면 원시적인 방법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보고 배운 게 그뿐인지라 조경 설계에 입 문한 후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매여 있던 것이다. 종이와 펜을 잡고 있던 나는 내 종이 작업의 한계를 보고 말았다. 프로젝트의 종류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른바 아파트 조경 설계가 저급한 설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20년 가까이 내 손을 거쳐 간 아파트 프로 젝트의 숫자만 건설기술인 경력 증명에 10쪽 넘게 기 재되어 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10여 년의 종이 작업 의 한계를 보았을 때, 또 맡겨진 아파트 프로젝트. 하지 만 그때는 조금 달라졌다. “저 이번 아파트 프로젝트에 는 일주일에 한 번 현장에 나가 볼게요.” 에버랜드 디자 인 그룹의 책임 디자이너 시절, 좋아하는 파트 장에게 나지막이 드린 나의 소망 섞인 통보였다. 허락을 구하 는 듯했지만 실은 통보였다. 현장에 나가고 싶었기에.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현장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이해함과 동시에 무수히 많은 이 해관계와 맞물린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다시 생 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설계가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 인가? 이 모든 이해관계자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설계를 하고 있는가? 소나무의 얼굴 방향이라도 알고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말하기는 쉬운 공간감은 느끼며 설 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현장 소장의 애로 사항이 무 엇인지 인식하며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식재 소재 의 국내 시장 수급 현황을 파악하며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건설사 대표 소장의 안목과 성향을 파악하고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현장 작업 반장의 고착된 식재 방식을 알고 설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책상을 버린 것, 잘한 일이었다. 그 현장에서만 6개월 간 많은 이견과 충돌이 있었다. 종이 작업과 비교하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즐거움도 있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주변에 많은 사람이 생겼다. 독창적 디자인은 개인이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디자인의 완성인 목적물은 결국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목적물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설계와 시공이 분리 발주되는 국내 건설 현장의 프로 젝트 진행 방식에서 발생하는 현장 소장의 다양한 설 계 변경 요구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며, 여 우처럼 영악하게 행동해야 했다. 내가 설계한 현장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들어 가 현장을 조율하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해관 계가 엉킨 실타래를 풀 해법을 찾았다. 나의 디자인에 부합하도록 그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나의 설계가 보였다. 종이 작업, 필요한 만큼의 생각만 정리할 수 있으면 된다. 각자의 방식에서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하 겠지만, 설계 행위는 결국 물리적 재료와 환경을 활용 해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행하는 과정의 일부에 지 나지 않는 것 아닌가. 디자이너라는 호칭에서 오는 자 만심을 버려야 한다. 종이 작업 중심의 표현을 위해 디 자이너가 존재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건이 주어지지 않아 그렇지 못한 프로젝트가 비일비재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핑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책상에 앉아 유려한 디자인 선형을 뽑아내며 행복해 하고 실현되지 못할 다양한 개념과 설계 전략을 채우며 만들어내는 종이 작업에서 지금도 프로페셔널한 느낌을 받고 있는 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종이 작업에 한정된 디자이너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앞서, 전체 프로젝트의 목적물 완성을 위한 철저한 목적 의 식과 이를 아우르는 유연한 사고를 통해 해법을 찾는 프로젝트 매니저로 설계가의 역할을 확장했으면 한다. 국내 설계 업계에 많은 어려운 점이 있는 것,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나 또한 종이 작업에서 끝이 나는 현실 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항상 도전하며 기회를 찾고자 한다. 디자인(행위의 기교)하지 않는 디자인(사고의 산물) 추측하건대, 국내 조경 설계 시장의 90% 이상은 건축 부문의 협력사로 진행되는 건축 외부 공간 조경 설계 일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판단이다. 몇 개의 설계사무소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70~1980년대 부터 주로 진행되어 온 조경 설계에서 평면 드로잉은 의사 결정의 절대 강자였다고 본다. 2015년 10월, 급 히 설계사무실을 개소하며 처음 맞닥뜨린 건축 설계공 모 프로젝트에서 잊고 지내던 국내 조경 설계의 현실 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패턴 좀 그려주세요.” 포장 패턴을 뜻하는 게 아니다. 아는 사람은 알 만한 요구 사항이다. 자존심이 상한다. 마음이 아프다. 속이 상한다. 화가 난다. 무수히 많은 프로젝트 중 가장 밑바닥 조경 설계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10여 년의 종이 작업에서 벗어나 프로젝트 매니 저의 시각에서 설계를 하던 나의 모습에서 하루아침 에 조경 패턴을 그리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잊지 못할 사건이다. 잊지 않으리라 지금도 생각하며, 그 건축사 사무소와는 결별했다. 아니, 결별을 당했다. 그들이 말하는 조경 패턴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건축 설계공모에서 무수히 많이 보이는, 건축 물을 중심으로 한 큰 흐름이 보이는 선형 패턴 작업. 나도 예전에 했으며 지금도 다들 많이 하는 그 디자 인.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계획안을 잡지 않 았다. 아니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약간의 강렬한 펜 스킬을 이용한 ‘행위의 기교’를 보여주었다. 계획안을 보낸 지 10분 정도 지나 실무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장님, 보내주신 계획안 잘 봤습니다. 그런데 약간 흐름이 보였으면 합니다. 중심에서 뭔가 잡아주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그런 패턴 있잖아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200%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3일 동안 협의가 진척되지 않았다. 그 일은 버리는 프로젝트가 되고 말았다. 다소 반항적인 드로잉을 끝으로 경험적 사고와 현실적 해법 설계 표현의 중요한 방법인 드로잉이 기교가 되어 조 경 패턴으로 인식되고, 그런 인식을 가진 협력사(또는 발 주처)의 의사가 국내 조경 설계 시장을 오래 전부터 무 너뜨리고 있었다. 조경 설계의 내공이 성장도 하기 전 에 조경 설계란 고작 패턴 만들기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모두 그렇지만은 않을 테지만, 아주 많은 경우 외 부의 인식이 그렇게 고정된 현실에서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되짚어 볼 필요도 있다. 우리가 먼저였다. 예전 의 나도 그랬고, 다른 많은 이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 멋스럽게 드로잉을 하고 행위의 기교를 부리며 디자인 을 하는 것이 조경 설계의 전부인 것처럼.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며 프로젝트를 선별해 수주하기란 매우 어렵다. 처음 사무실을 열며 다짐했던 많은 생각이 무너지며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며 다듬어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주요 프로젝트인 경우에는 다양한 접근을 위해 창의적 사고와 경험적 사고를 바탕으로 임하고 있다. 10년 동안의 시공사 디자인 그룹 재직 경험이 지금 설계의 근간을 만들고 있다. 국내의 어느 설계 조직에서 디자인 제안 후 5~6개월 이내에 준공하는 모습을 1년에 대여섯 번 경험하며, 시공하는 동안의 현장 지원과 조율을 경험할 수 있을 까 싶다. 이번 원고를 쓰며 확인해보니 다양한 프로젝 트에서 디자인 제안부터 실시 설계, 그리고 현장 지원 과 조율까지 경험했다. 설계의 전체 프로세스를 진행 하며 얻은 경험적 사고를 통해 습득한 현실적 해법은 기본적인 창의적 사고와 함께 설계를 해나가는 중요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현실적 사고와 해법을 찾기 위해 개념적 의미는 배제한다. 쉽게 말해 말장난은 하지 않으려 한다. 전략적 사고로 도출되는 언어가 아닌,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 위한 표현은 지향한다. 과거의 내가 드로잉과 종이 작업에 미쳐 있었다면, 요즘 설계가들은 언어적 유희를 통해 만들어낼 수 없는 대상의 개념을 표현하려고 하 는 것 같다. 어떠한 행위의 기교가 아닌 목적 대상이 있는 사고의 산물로서 디자인을 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인: 예장 행위의 기교에서 벗어나 목적 대상의 본질에 대해 생각 했다. 남산이다. 흔히 알고 있듯이 애국가에 등장하는 서울의 남산은 서울의 앞산이며 안산(案山)이기도 하다. 비슷한 성격의 사업을 장충과 회현에서 진행했으며, 예장(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 설계공모)은 마지막 남은 남산 자락의 재생 사업이었다. 앞서 진행된 회현이나 장충과 달리 복합 기능을 담는 공간으로 조성되어야 했다. 이 점이 남산 자락 재생의 근본 목적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었는데, 약 7,000평의 사이트는 곤돌라 스테이션과 버스 주차장의 기능을 수행하며 동시에 남산 재생이라는 목적을 달성해야 했다(이후 2016년에 곤돌라 스테이션은 취소되었다). 이율배반이다. 하지만 설계는 항상 문제와 함께 시작한다. 이를 해결하는 자가 설계가다. 시작부터 가지고 있는 문제, 그리고 프로젝트가 진행 되며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와 이견 속에서 설계가는 본래의 목적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다. 그림이 필요하면 그려야 하고, 대화가 필요하면 대화해야 하고, 설계가의 자존심이 걸림돌이 된다면 가차 없이 버릴 줄 알아야 하며, 현실과 타협해 야 한다면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선 충분히 타협해야 한다. 숲이다. 디자이너의 얄팍한 기교와 과장은 사전에 차단되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 숲으로 만들어라. 무엇을 행하려고 하는 이들의 욕망을 잠재워야 한다. 그것이 1,000만 시민의 숲을 대하는 설계가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2년 4개월, 고된 시간이었다. 아니 비루한 싸움이었다. 프로세스의 각 단계를 넘기며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다. 공모부터 설계 준공까지, 그리고 예정된 설계 변경까지, 프로젝트 PM을 직접 수행했다. 건축사사무소의 협력사로 시작한 프로젝트이기에 저작권을 가지고 오지도 못하지만 그만큼 나에게는 애절한 프로젝트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었다. 철거와 터파기는 6개월 전에 완료됐으며, 예전과는 달 리 이제 나의 역할과 권한이 제한되어 있다. 설계 준 공과 동시에 현장 설계 변경에 대한 조율 권한이 없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준비했다. 시공 중에 현장 설계 변 경을 할 수 있는 사항이 어떤 것이 있을 것이며, 변경 사항이 예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설계의 근본 목적을 훼손할 것인지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행했다. 이제 내일이면 최종 납품이다. 2년 4개월의 기나긴 여정이 일단락되는 순간이기 도 하며, 새로운 시작이 전개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원고를 쓰며 잠시 컴퓨터의 프로젝트 폴더들 제목에 담긴 지난 시간의 애환을 떠올려 본다. 다양한 나의 모 습이 스쳐 지나간다. 거만한 아티스트, 프로페셔널 엔지니어, 속없이 비비적대는 설계가, 수다쟁이 동네 남 동생, 고집불통 협상가, 나무 찾아 헤매는 산사람, 세 속에 물든 사업가, 피곤에 찌든 설계쟁이, 이 모두가 나의 모습들이었다. 예장을 설계하며 본래의 목적을 지켜내기 위한 나의 모습들이었다. 그게 바로 이번 호 원고에서 보여줄 수 있는 나의 설계 방법이 아닌가 싶다. 김호윤은 기술사사무소 아텍과 삼성에버랜드 디자인 그룹에서 조경가로서 영업, 설계, 공사의 관계를 조율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는 조경설계 호원(Landscape Design Office HOWON)을 설립·운영하고 있으며, 바른 설계 집단을 구성하고자 기본을 중시한 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박길종 길종상가 관리인 미술이 만드는 도시
    도시에 대한 지배적 인상은 대개 사람의 눈높이 근처에서 만들어진다. 작은 화분 하나, 닳은 문고리 한 짝, 계단 난간의 유려한 선이나 담뱃재를 떠는 휴지통 모양의 영리함에서, 혹은 미술관 리플릿이 놓인 책장이나 쉼터의 벤치, 동네 술집의 아담한 간판에서 우리는 한 도시의 시민들이 공동으로 성취해 낸 문화적 수준을 느낀다. 거대한 건축물이나 도로는 세계화된 자본과 권력의 의지를 통해 단시일내에도 이식될 수 있지만, 전능한 자본의 물결도 습관의 층과 결이 배어든 수천수만 가지의 일상적 오브제까지 적실 수는 없다. 어느 나라의 고속 전철도 속도는 비슷할지 몰라도 객실 의자의 팔걸이와 테이블의 부드러움, 쿠션의 지지력에는 나라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작가와 장인들이 쌓아온 노력의 세월, 실력의 민낯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디테일, 그리고 딱 그만큼의 사회적 눈높이가 쌓여 물건은 기쁨의 대상이 되고,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사랑스런 경관이 된다. 우리는 어떤 문제든 돈으로 사서 해결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너무 쉽게 버리고 갈아치우는 시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한다는 광고성 문구가 이상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부엌은 셰프의 주방이 되어야 하고, 침실은 특급 호텔 같아야 하고, 거실은 쇼룸이 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수많은 디자인 매체가 부추긴다. 인테리어 데코 상품을 파는 사람은 스스로를 라이프스타일 디렉터라 칭한다. 남이 정의해 준 멋을 스스로 찾아낸 것이라 착각하며 물건에 치여, 스타일에 치여 사느라 다들 피곤하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습관적인 고급 지향, 틀에 박힌 데코, 현실과 불일치한 책상머리의 허세가 거리를 꽉꽉 채워진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있다는 개탄이 적지 않다. 잘 만든 하나보다는 형편없는 다량이 비좁게 들어찬 도시. 이제, 기름기 걷어내는 도시의 재편이 절실하다. 소박하고 영리하며 지적인 길과 광장. 현명한 사람이 꾸민 집처럼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인정하는 디자인.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가구 디자이너 박길종이 어떤 잡지에서 툭 뱉은 한마디가 마침 눈에 들어왔다. “사용하는 게 있으니까, 새로 만들 필요도 없구요.” 물건에 자신을 맞추지 않고, 물건을 자기 삶의 기준에 맞게 만들 수 있는 흔치 않은 디자이너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소개된 그의 집 또한, 인테리어가 없는, 그냥 ‘집’이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최이규[email protected] /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 2018년05월 / 361
  • [정원 탐독] 자연과 함께 디자인하기
    인간 대 식물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는 과실수는 인간과 가장 오래, 깊게 인연을 맺고 사는 지구의 생명체다. 특히 사과나무는 그리스·로마의 신화는 물론이고 여러 종교의 성경에도 빠짐없이 등장할 정도로 인류의 문명과 인연이 깊다. 현재 사과는 재배종이 7천여 개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다. 그런데 여러 ‘품종’으로 불리는 이 다양한 사과는 인간에 의해 변형된 식물로, 자연 상태에서 사는 자생종과는 다르다. 한때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은 최대 사과 재배지였다. 그 흔적이 아직 가로수에도 남아 있지만, 도시 뉴욕의 상징이 사과라는 것도 이를 잘 증명한다. 지금도 사과는 좀 더 크고 단맛이 강화되도록 끊임없이 재배종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원래 자연에서 생존했던 야생의 사과는 잊혀졌다. 지나친 유전적 변형이 일어난 품종 사과나무가 급속히 자생력을 잃어가고 단맛의 증폭이 다른 영양분의 결핍을 일으키는 등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품종 사과의 어머니격인 야생 사과는 카자흐스탄 인근의 중앙 유럽 산악 지대에서 자라는 ‘말루스 푸밀라(Malus pumila)’로 최근 밝혀졌다. 물론 이 야생 사과의 특징은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사과 품종들과는 매우 다르다. 열매도 작을뿐더러 그 맛도 시고 떫어서 지금의 사과 맛이 아니다. 먹기에 적당하지 않지만 이 야생 사과는 재배종 사과의 유전적 결함을 치료하고 사과 고유의 특징을 다시 복원하는 데 꼭 있어야 할, 생물학적으로 귀한 식물이다. 사과나무뿐만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되는 인류와 식물은 그야말로 동고동락해 왔다. 애증과 공생의 고리가 아주 깊고 복잡하다. 인간은 식물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기에 식물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지만, 식물 입장에서도 인간이 아니었다면 지구 전체에 지금과 같이 번식하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인간만큼 식물을 파괴하는 생명체도 없지만 인간만큼 식물을 키우기 위해 애쓰는 생명체도 없는, 서로에게 참 묘하고 복잡한 공생 관계다. 사과나무에 얽힌 자생종과 재배종의 문제가 최근에는 정원에서도 고스란히 일어나고 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오경아[email protected] / 오경아가든디자인연구소 대표 / 2018년05월 / 361
  • [시네마 스케이프] 쓰리 빌보드 강렬하고 품위 있는 추모 공간
    전투복을 입은 주인공과 “죽은 딸을 위해 세상에 맞서는 엄마”라는 카피를 보고, 폭력과 차별에 맞서 장쾌하게 복수하는 영화를 상상했다. ‘쓰리 빌보드’는 우리가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형의 영화다.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도 없고, 절대적인 영웅도 없다. 주인공인 엄마는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지 않다. 누구보다 싸움도, 욕도 더 잘한다.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행동할 뿐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매번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고, 관객의 예상도 번번이 빗나간다. 폭력과 분노가 충돌해서 빚어낸 결과로 남는 것은 고요와 숭고함이다. 누구하나 우아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없는데 희한하게도 품격이 느껴진다. 한편의 블랙 코미디가 끝날 때쯤 기어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뜨거움의 정체가 궁금하다. 인종 차별, 젠더, 가족주의, 그 어떤 장르로도 묶이기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영화다. 주인공의 추모 공간과 그 추모 방식이 낳은 영향에 주목해 보자. 영화의 첫 장면, 안개 낀 한적한 도로변 들판에 서 있는 세 개의 낡은 대형 광고판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것이 앞으로 초래할 사건과는 달리 아름답고 시적인 풍경이다. 여기저기 찢겨진 채 방치된 광고판은 1980년대 이후로 그 기능이 멎었다.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 분)는 광고 회사를 찾아가 계약금을 걸고 광고를 의뢰한다. “내 딸이 죽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된 건가? 웰러비 서장”, 몇 개의 단어로 광고판을 차례로 채운다. 경찰서장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공권력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이 대담한 광고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방송에도 보도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1호(2018년 5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모처럼 좋은 영화가 많은 계절이다. 어제 본 영화를 오늘 본 영화가 덮어쓰고, 오늘 본 영화는 내일 또 어떤 영화로 묻힐지 모르겠다. ‘쓰리 빌보드’는 이달에 오늘까지 본 영화 중 최고다. 잠시 멈춰서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