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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정원박람회가 남긴 것
    짙은 가을 풍경으로 풍성한 11월, 이번 호에는 『환경과조경』이 주관한 제3회 서울정원박람회(9월 22일~26일)를 비롯해 제5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9월 29일~10월 1일), 동탄여울공원 공공정원의 수상작과 초청작을 싣는다. 지난 몇 년간 붐을 이룬 여러 정원박람회의 성과와 의미를 진단하는 지면을 기획했지만, 아쉽게도 내년 봄으로 미루기로 한다. 최근의 정원박람회 열풍은 보다 면밀한 평가와 섬세한 토론을 요청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아쉬운 대로 우선 주변의 반응을 간단히 취재해보면, 정원박람회의 다층적 지향점을 이제는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정원 문화의 확산과 정원 산업의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보다는 하나에 집중한 목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후화된 도시 공원 재생의 계기라는 또 다른 좌표를 지향한다면 박람회 전반의 틀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여러 지자체의 과시적 전시 행정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몇 년간의 정원박람회는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수용하고 선도한 동시대 녹색 문화의 생생한 한 장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길게 보자면 이미 5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 정원박람회에 어떤 패턴이나 프레임이 생겨 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테면 박람회의 주제와 참여 작품 다수가 낭만적 감상이나 노스탤지어에 호소하는 성향, 일회성 보여주기나 장식적 취미로 흐르는 경향이 고착되고 있다는 우려다. 정원박람회가 감성 취향만을 앞세우기보다 ‘지금, 여기’의 도시 이슈에 적극 개입하는 매체가 되어야 한다면, 적어도 사회적·환경적 의제를 담은 주제를 제시하거나 철저한 미학적 실험을 통해 전문적 해법을 제안하는 장이되어야 할 것이다. 그간의 정원박람회는 조경이라는 전문 직능과 학제에 무엇을 남겼는가. 이 문제는 심도 있는 토론과 장기적인 평가를 요청한다. 하지만 적어도 정원박람회가 신진 조경가의 등용문이자 실험실 역할을 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제도권 조경계가 침체된 상황에서 설계 시장의 메커니즘에 동승해 조경가로 성장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청년, 신인, 소장, 신진 조경가가 이 막막한 장벽을 뚫을 수 있는 돌파구가 최근의 정원박람회였다는 점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적지 않은 수의 신인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실험하고 구현할 기회를 얻고, 자신의 이름을 공론장에 알리고 활동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주목할 만한 여러 신진 조경가가 있지만, 우선 2015년 이후 서울정원박람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코리아가든쇼 등에서 수상하고 이를 계기로 한강예술공원 시범사업,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등에 초대되기도 한 최재혁 소장(스튜디오 오픈니스)과 이메일로 대화를 나눠 보았다. 정원박람회를 통해 더 많은 신진 조경가가 탄생하길 기대하며 그의 이야기 일부를 옮긴다. 처음 정원박람회에 출품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처음엔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서였다. 정원 설계하고 만드는 오피스에 근무를 하면 자연스레 실제로 만들어보고 싶은 아이디어들이 쌓여간다. 대개의 주택 정원과 오피스 정원에서는 클라이언트의 삶의 공간을 디자인해야 하므로 설계와 시공에 제약이 많다. 평소에 상상만 하며 꿈꾸던 공간과 디테일을 실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정원박람회에 망설임 없이 출품했다." 정원박람회는 조경가 최재혁 개인에게 어떤 득과 실을 남겼나? “온전한 나의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해 보고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그 예산을 지원받았다는 것 자체가 큰 소득이었다. 몇 차례의 박람회를 통해 재료, 스케일, 공간감에 대한 설계적 감각과 시공 과정을 훈련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디자이너로서의 나를 알릴 수 있던 점 또한 큰 득이었다. 보통 정원박람회를 하면서 실이 생기는 경우는 직장 생활에서 마찰이 생기는 경우인데, 내 경우에는 당시 직장의 대표가 크게 배려해 주셔서 문제를 겪지 않았다. 특별히 실이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정원박람회의 수상이 다른 프로젝트 수주 등으로 이어졌나? “몇 차례 수상을 한 것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일반적인 조경 설계 프로젝트와 달리 정원은 손수 만든 결과물을 보여주고 평가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올해 초 독립한 이후 여러 지인들로부터 조경 설계 또는 정원 시공을 의뢰받아 진행하고 있는데, 박람회에 참여해 수상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의 정원박람회 붐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몇 해 전에는 정원박람회가 단발성 행사로 그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의 흐름을 보면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면은 일반 대중에게 정원에 대한 인식을 키워주고 있다는 점,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 층에게 디자이너로서 훈련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최근 정원박람회는 조성 후 존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박람회 장소, 작품 수, 전시 위치 선정 등에 있어서 더 신중을 기했으면 좋겠다.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구체적인 바람을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다. 작품을 선정할 때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지, 향후 유지·관리상 문제가 없게 설계했는지를 보다 높은 비중으로 평가해야 한다." 지난 9월 8일 마감한 『환경과조경』 주최 ‘2017 조경비평상’의 응모작은 두 편이었습니다. 심사를 맡은 ‘조경비평 봄’ 회원들은 밀도 있는 토론 끝에 손은신(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 박사과정)의 평문 “더 새로운 공원을 향하여: 공원은 진화하는가?”를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수상작 전문과 심사평은 올해를 마무리하는 12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수상자 손은신 씨가 이론과 실천의 접면을 가로지르며 조경 문화의 성숙을 주도할 비평가로 성장하길 기대하며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2017년11월 / 355
  • [칼럼] 정원박람회에 대한 세 가지 바람
    2004년이었을 것이다. 『환경과조경』의 남기준 편집장이 독일의 정원박람회에 대한 단행본을 쓸 의향이 있는지 물어왔던 것이. 그래서 2006년 탄생한 것이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정원박람회가 만든 녹색 도시를 가다』이다. 순천시 도서관 사서 나옥현 씨가 그 책을 읽고 노관규 전 순천시장에게 추천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순천시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을 때 그리고 “우리 순천시에서 정원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이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감히 “예”라고 대답했다. 그 무모한 대답에 대한 책임은 순천시 공무원들이 모두 떠안아야 했다. 그리고 2013년, 순천시에서 정말로 국제정원박람회가 개최되었다! 나는 이를 순천의 기적이라고 일컫는다. 따지고 보면 이 기적의 출발선상에는 남기준 편집장의 남다른 혜안이 있었다. 지금은 순천국제정원박람회장이 들어선 그 땅에 적지 않은 개발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과감하게 생태 도시를 표방하고 “개발 대신 정원을!” 선택한 순천시의 용기와 결단에 다시 한 번 갈채를 보낸다. 정원박람회가 결의되고 나서 개최될 때까지의 힘겨운 행보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정원박람회가 뭐예요?”라고 묻던 공무원들이 점점 전문가로 변신해 가던 일. 중앙의 협력 부서를 찾기 위해 담당 공무원이 환경부, 문화부, 경제부 등등 차례로 문을 두드렸다가 “우리 소관이 아닌데”라는 대답을 듣고 쓸쓸하게 돌아서야 했던 일. 결국 마지막에 산림청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때 나는 산림청 팬이 되었다. 서울정원박람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 동탄 공공정원 등등의 반가운 소식이 차례로 들려온다. 직접 찾아가 보지 못해도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세 가지 바람이 있다. 우선 정원박람회가 도시 발전의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도시에서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정원 문화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고 깊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 8월 이곳 베를린에서 열린 행사에 갔다가 한국 문화를 홍보하러 오셨다는 귀한 분을 만났다. 그분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조경이 꽃꽂이랑은 다른 겁니까?” 그 질문을 받자 문득 존경하는 고 박경리 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2004년도 청계천 복원사업 공사가 한창일 때 그분께서 신문에 투고한 글을 읽었다. 선생께서는 “청계천 복원 공사에 조경하는 사람들이 왜 끼어들어”라고 일갈하셨다. 그때 정말 놀랐다. 글을 끝까지 읽어보니 ‘조경하는 사람들은 비싼 시설물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계신 듯 했다. 많은 사람과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백이면 백 정원이나 조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저마다 다르다. 이는 앞 못 보는 사람들이 코끼리 더듬는 것과는 양상이 다르다. 그들이 앞을 보지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확실히 더듬어지지 않는 정원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정원박람회를 찾는 방문객들이 많아지고 거기서 정원의 수많은 얼굴과 만나게 되면 정원 문화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바람은 정원박람회를 통해 한국 정원이 재발견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옛것의 재현이 아니라 우리 정원의 정체성을 찾아 가는 것이다. 내 경우 여기 독일에서 많이 시달리고 있다. 한국 정원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 이따금 들어오는데 옛것을 소개하고 나면 “지금은?”이라는 질문이 반드시 따른다. 정원의 전통이 한때 단절되었음은 이해하겠는데 언제 다시 연결되어 어떤 모습으로 거듭났는지 혹은 날 것인지 궁금해 한다. 나도 그것이 알고 싶다. 나 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에 동료들과 후배들이 그 대답을 찾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혹은 함께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우 어려운 숙제다. 이 숙제를 풀어보기에 정원박람회보다 더 적절한 곳이 있을까?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정작 종주국 독일에서 정원박람회가 난항을 겪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첫 조짐은 아마도 2013년 함부르크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번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정원박람회가 10월 15일 우울하게 문을 닫았다. 2백5십만 명의 방문객을 기대했으나 그 반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평균에도 못 미친 것이다. 올해 날씨가 너무 안 좋았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있다. 날씨가 정말 안 좋긴 했다. 오프닝 날 추위에 덜덜 떨었고 봄꽃이 다 얼었으며 여름 내내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정말 날씨 탓이었을까? 작품이 좋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높은 완성도를 보인 백 헥타르의 마스터피스였다. 볼거리도 많았고 음악회 등의 크고 작은 이벤트만 자그마치 팔천 건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정원박람회 피로 현상이 시작된 것일까? 독일은 정원 포화 현상을 겪고 있나? 그럴지도 모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국토에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정원박람회가 시작되었고 통일 이후에는 구동독의 발전을 돕기 위해 또 한 번 크게 탄력을 받았다. 그리고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전 국토의 정원화 작업이 마무리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느긋하게 즐기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우리도 정원 포화 현상이 오는 그날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걸어야 할 것 같다. 제주도, 충청도, 강원도를 지나는 동안 어느새 통일이 되어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에서도 정원박람회가 개최되는 그날을 상상해 본다. 고정희는 공학박사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농교육학을 전공한 후, 베를린 공대에서 환경조경학을 전공했다. 베를린에서 써드스페이스 환경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조경과 환경을 접목시키는 과제에 주력. 정원의 역사와 정원 문화에 대한 집필 활동을 겸하고 있다. 독일 칼 푀르스터 재단 부회장, 베를린 건축가협회 조경분과 멤버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2019년 독일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맞아 개최될 ‘조경의 모더니즘’ 전시회와 학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개인 소유의 정원, 즉 나만의 낙원보다는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중요시 하고 있다.
    • 고정희[email protected] /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 2017년11월 / 355
  • [그들이 설계하는 법] 다섯 가지 시선
    숨겨진 풍경 찾기_우면동 H 주택 정원 2011년 7월 어느 날, 갑자기 불어난 빗물이 우면산 아래 조용하고 아늑한 형촌마을을 덮쳤다. 건축주의 회고에 따르면, 검붉은 흙물이 집 주변을 온통 휘감으며 대문과 담장을 무너뜨리고 길과 마당을 뒤덮어 집들만 물 위에 동동 뜬,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무서운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는 수마의 흔적을 치우다 지쳐 결국 우리 사무실에 정원 공사를 의뢰했다. 아담하고 오래된 2층 주택의 작은 정원. 산림청이 수해 대책 차원에서 정원의 규모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무지막지한 자연석으로 석축을 쌓아놓은 상태였고, 곳곳에 수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안전이 우선이었던 건축주는 처음에는 물로 인한 피해만 없으면 된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점차 쌓여있는 자연석 덩어리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편 우면산 자락과 맞닿은 이 주택은 창을 열면 산의 녹음과 공기가 집안으로 들고 새들의 울음이 바로 방 안까지 전해지는 곳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주변 산의 경치는 아주 훌륭하지만 자연석 석축이 오히려 산의 흐름을 정면으로 막고 서 있다. 산의 흐름을 가만히 살펴본다. 암반의 흐름을 살핀다. 산림청이 마구 쌓아놓은 석축에 눌린 정면의 작은 둔덕이 계속 눈에 거슬린다. 꼼꼼히 살펴보니 그 작은 둔덕이 암반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주변에 일부 노출된 암반을 보니 둔덕은 같은 암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드러나 있는 모습이 훌륭하다. 과연 이 아래 멋진 암반이 자리하고 있을까? 모 아니면 도다. ...(중략)... 이재연은 특별할 것 없는 학벌과 스펙에 그저 풍류를 좀 즐길 줄 아는 이 시대의 평범한 조경쟁이다.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17년을 근무한 후 2006년 조경디자인 린(주)을 설립해 현재에 이르렀다. 서안에서 국내외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정원 공사의 디테일에 매료돼 린을 창립한 후 설계와 ‘정원 공사’를 병행하고 있다. 직접 설계하지 않은 것은 공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5호(2017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콘크리트의 가능성 1 - 포장
    해외 옥외 공간의 포장에서 콘크리트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재료다. 특히 미국의 공원이나 광장 등 공공 공간의 포장에는 경제적인 측면, 생산과 시공의 용이성을 이유로 콘크리트 포장석이나 현장 타설 콘크리트를 쓰는 것이 보편적이다. 사진의 공원에서도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포장석을 사용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콘크리트 포장석과는 재료 자체의 물성, 유닛 하나의 크기, 형태와 놓인 방식 등이 상당히 다르다. 우선 포장석 하나의 크기가 약 30 × 360cm, 두께가 12.5cm에 달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포장석보다 훨씬 크다. 이 정도 크기라면 포장석이라기보다는 널plank이라고 칭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일반적인 포장석은 긴 구간을 따라 이음매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맞추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보통 번갈아 어긋난 이음매로 레이아웃을 짜는데, 이 공원의 경우는 오히려 재료의 긴 방향을 따라 이음매를 정렬했다. 널의 가로 방향으로는 이음매가 번갈아가면서 위치하는 길이쌓기running bond 패턴으로 재료를 배열했다. 유별나게 크고 무거운 콘크리트 널을 완벽하게 정렬하기 위해 콘크리트 침목sleeper과 받침대pedestal로 격자형 구조를 짜고, 그 위에 스페이서spacer를 이용해 콘크리트 널을 일정한 간격으로 올려놓았다. 플랜터에 인접한 널은 약간 위로 높아졌다가 다시 낮아지며 끝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형태인데, 폭이 좁아지면서 생겨난 틈 사이로 식물이 비집고 들어와 자라고 있다. 식물뿐만 아니라 녹슨 철로 또한 이 틈 사이로 끼어들어 마치 식물이 철로와 콘크리트 구조물을 뚫고 나와 자라는 듯한 모습이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5호(2017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안동혁[email protected] /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 / 2017년11월 / 355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박동훈 총괄디렉터, 필동문화예술공간 예술통 작은 공간의 아름다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이런 언급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선 그 장소에서 해가 뜨고 움직이며 지는 것에 대해 무척 잘 알아야 한다.” 북한산 인수봉이 만져질 듯이 맑은 늦여름 날, 충무로역에 내려 남산 자락의 필동으로 걸어 올라갔다. 거리에서 박동훈 총괄디렉터를 만났다. 도시에 대해 묻자 그는 재생 이전에 ‘재발견’을 말했다. 오랫동안 열심히 바라본 경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크게 대단할 것도 없는 세상을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 나고 자라는 대로의 자연, 여기 내가 자라온 도시가 가장 큰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다는 단순한 긍정이 그 밑바탕이었다. 잠시 기운 빠지는 얘기를 하자면, 우리 사회의 도시재생은 아직 기술적 사안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다. ‘시민의 합의’,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라는 당위적 선언은 50조라는 숫자 앞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허무하게 사그라져 버렸다. 다들 4대강 사업의 두 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수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미 수표의 액수는 정해졌으니 그럴듯해 보이는 영수증 처리만 남았다. 그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지역과 동네에 대한 애정과 애착, 그 눅진한 감정이 빠져 있는 수많은 ‘사업 시나리오’에서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진정성을 그리워한다. 정작 주연은 없이 연출만 가득한 공연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느라 두꺼운 페이지와 긴 표와 맥 빠진 수사를 낭비하고 있는 투자 유치 보고서들을 보고 있자니, 피곤에 절은 누군가의 단견과 매몰된 시야에 의존하는 작금의 도시재생 촬영장이 불안하고, 또 불행하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5호(2017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최이규[email protected] /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 2017년11월 / 355
  • [정원 탐독] 문학 속의 정원과 사람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정원 서양 문학사의 큰 기둥 중 하나로 14세기 이탈리아의 대문호 보카치오Giovanni Boccacio의 『데카메론』을 꼽는다. 『데카메론』은 하나의 서사가 아니라 백 편의 이야기를 담은 일종의 액자 소설이다. 『데카메론』이 발표된 1350년은 유럽 인구의 5분의 1을 앗아간 대참사 흑사병이 돈 지 2년이 지났을 때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심은 일곱 명의 젊은 여인과 세 명의 남자로, 이들은 흑사병이 번진 도시 피렌체를 떠나 한적한 시골 저택에 함께 기거한다. 이들은 모두 사랑하는 가족, 이웃, 친구를 죽음의 도시에 버려두고 도망친 마음의 빚을 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거운 빚을 거두기 위해 춤추고 노래하고 게임을 즐기며 원초적인 기쁨에 매달린다. 가장 중요한 일과는 매일 밤 여자 중에서 한 명의 여왕과 남자 중에서 한 명의 왕을 정해 이들이 정하는 주제에 따라 열 명이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다. 체류 기간은 14일이었지만 일주일에 이틀은 이야기를 멈췄기 때문에 열흘에 걸친 열 명의 이야기가 곱해져 총 백 개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보카치오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저택과 정원을 『데카메론』에 매우 상세하게 묘사했다. 또 이야기의 좌장이 되는 왕과 여왕이 정하는 주제도 식물, 정원, 인간의 예술, 자연으로 흘러갔다. 보카치오가 설정한 시골의 저택과 정원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의 모습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당시 이탈리아 정원은 직선과 기하학적 형태, 완벽한 균형과 축으로 구성되고, 그 안에는 건축물, 조각물, 다리 등 인간의 예술이 가득한 곳이었다. 사실 이것만 본다면 정원을 지극히 인위적인 인간의 공간으로 봐야 할 테지만, 이 장소가 들어선 정원의 자리가 산중턱의 자연 환경을 그대로 끌어안고 그 안에 심어진 식물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둘러싸여 있다. 보카치오가 말하듯, 자연과 인간이 합작으로 만들어낸 완벽한 작품이 바로 정원인 것이다. ...(중략)...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환경과조경 355호(2017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오경아[email protected] / 오경아가든디자인연구소 대표 / 2017년11월 / 355
  • [이미지 스케이프] 오로라타프
    서울정원박람회 다녀오셨나요? 그럼 꽃으로 둘러싸인 ‘여의지’도 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오로라타프Aurora Tarp’도 보셨겠군요. 작년 서울정원박람회에 등장했던 오로라타프가 올해도 다시 중앙 무대 앞에 자리를 해서 이젠 제법 박람회의 안주인 같은 느낌입니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화려한 색감도 일품이지만 바람이 만들어 내는 소리와 움직임도 아주 멋집니다. 마치 대나무 숲에 들어와 있는 느낌도 들고. 오로라타프? 앞의 ‘오로라’는 쉽게 이해가 가는데, 뒤쪽의 ‘타프’는 좀 생소합니다. 오로라는 하늘을 배경으로 다양한 형태와 색을 만들어 준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타프는 무슨 뜻일까요? 구글신에게 물어봤습니다. 역시 이미지들이 쭉 올라오는군요. 텐트하고 비슷한데 천장 부분만 있어서 야외에서 그늘을 만들어 주는 장비라고 합니다. 캠핑을 좀 해 보신 분이라면 이미 친숙한 용어겠네요. 그러고 보니 공원이나 둔치에서 많이 본 것 같습니다. 타프tarp는 타폴린tarpaulin의 줄임말로 사전적 의미로는 타르 칠을 한 방수천, 방수외투, 방수모인데, 실제로는 햇볕과 비를 막는 천막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로라를 닮은 그늘막이라는 말이군요.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5호(2017년 11월호) 수록본 일부
    • 주신하[email protected] /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 / 2017년11월 / 355
  • [시네마 스케이프] 아이 캔 스피크 파인 땡큐, 앤 유?
    외국 영화를 보다 보면 그렇게 완벽하지 않을 때도 “퍼펙트”라고 표현하거나, 누가 봐도 곧 죽을 상황인데도 “잇 윌 비 오케이”라고 답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뭐, 나쁘지 않아”,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 정도가 솔직한 표현일 텐데 말이다. 실제로 “하우 아 유?”라는 인사에 진짜 “파인 땡큐, 앤 유?”라고 답하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영화에선 한 번도 못 봤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는 이 대사가 자주 나온다. 씩씩한 나옥분(나문희 분)은 자신 있게 “파인”을 외친다. 누구보다 괜찮지 않은 그녀가 괜찮다고 외칠 때마다 관객의 눈 주변은 뜨거워진다. 민족 최대의 명절(대체 이 표현은 누가 먼저 쓰기 시작했을까. 명절이라니, 게다가 민족 최대라니, 오 노!) 연휴 기간에 본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괴짜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는 가벼운 터치의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무슨 이야기를 영어로 하고 싶은지 그 이유가 밝혀지는 중반 이후부터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영화다. 이 원고가 실릴 때는 할머니의 비밀(?)이 이미 비밀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뒤늦게 영화를 볼 관객을 위해 가슴까지 뜨거워지는 중요한 사연은 아끼기로 한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9월 2일~11월 5일). 서울시는 돈의문 뉴타운 지구에 포함되었던 돈의문 옆 새문안 마을을 철거하지 않고, 한옥과 일본식 주택과 옛 골목길을 그대로 살려 마을 전체를 재조성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며 진짜 마을을 만들어낼지 천천히 지켜볼 일이다. *환경과조경355호(2017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가까운, 또는 먼 이웃
    대규모 단지의 재개발이 이루어지려면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영구적이든 한시적이든 이주를 해야만 한다. 새로 지어진 건물에 원래 살던 이들이 항상 입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입주할 수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임시로 거주할 만한 공간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재개발을 늦추지 못해 강제 철거를 하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폭력적인 과정에서 삶을 파괴당하는 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그곳에 터를 잡고 살던 고양이를 포함한 동물들이 철거 과정에서 압사당하기 일쑤고 드넓은 배밭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등, 그 땅을 기반으로 지속해 온 생태계 전체가 거대한 삽 앞에서 무력하게 스러지곤 하는 것이다. 때문에 둔촌주공아파트 단지의 대규모 재건축이 예정되면서 동네 고양이들을 돌보던 이들은 고양이들의 안전한 이주를 고민하게 되었다. ‘둔촌냥이’는 봉우곰스튜디오의 김포도 작가, 마을에숨어의 이인규 작가, 개인 활동가 정미진 씨가 함께 둔촌주공아파트 단지 내에 살던 고양이들의 이주를 위해 만든 일시적 모임이다. 이들은 고양이를 도시 공동체의 한 일원이라 여기고, 생태적 이주를 모토로 고양이가 최대한 자발적으로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 프로젝트로 (재)건축의 논리가 자연과 공존으로 좀 더 폭넓은 관점을 가지게 되었으면 한다는 이들의 활동은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록될 예정이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55호(2017년 11월호)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