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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근대적 공간의 탄생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삶의 패턴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 불과 100여 년 전 일이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과 생활을 새롭게 재편한 이른바 근대적 공간은 개항기와 일제 식민지기를 거치며 도입, 이식, 강제 등 다양한 경로로 생산된다. 도시의 건축과 공간, 생활과 문화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번 10월호 특집 ‘모던 타임즈’는 근대적 시간과 공간 개념이 우리 삶에 배치되던 시기에 도시 공간과 문화가 어떤 풍경을 그리며 전개되었는지 탐사한다. 탐사의 대상은 공원, 식물원, 유원지, 풍경 사진이다.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는 “왜곡된 근대와 공원의 탄생”에서 당시의 공원을 타자의 입장에서 재구성된 공간, 동도서기를 실천하는 정치 도구, 식민지 도시 시설이라는 세 측면으로 해석한다. 김정화 박사의 글 “근대인의 자격, 식물원 소사이어티”는 식물원의 탄생과 확산의 배경이 되었던 인물, 단체, 학회, 모임 등을 조명하고, 근대의 콘텍스트 속에서 취미, 교양, 식물원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한다. 김정은 박사는 “기차를 타고 도착한 또 다른 세계”에서 유원지의 수용과 여가 문화의 조직을 다룬다. 철도의 부설과 도시의 변화, 이에 따른 행락 공간의 재편을 월미도유원지와 뚝섬유원지를 중심으로 엮은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일상을 떠나 환상의 공간을 찾아 나선 도시민의 삶을, 철도 노선을 따라 재구성된 도시 교외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명준 박사의 글 “일제 식민지기 풍경 사진의 속내”는 풍경 사진이 국내에 수용되던 당시의 시각 문화를 검토한다. 특히 풍경 사진에 내재된 자연을 감상하고 인식하는 방식, 이른바 ‘시각 체제’에 주목한다.
이번 특집의 의도가 공원, 식물원, 유원지, 풍경 사진이라는 네 가지 렌즈를 통해 근대적 공간 문화의 양상을 조감하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또 다른 목적은 최근 들어 부쩍 증가하고 있는 근대기 조경 역사·이론 연구를 대중적인 톤으로 소개하고, 나아가 연구의 경향성과 지향점을 설계하는 디딤돌을 놓는 데 있다. 이번 특집에 참여한 네 명의 필자 외에, 최근 김해경 박사, 서영애 박사, 우연주 박사 등 다수의 연구자가 근대기의 도시 공원과 공간을 주제로 한 다각적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모처럼 풍성하게 생산되고 있는 역사·이론 연구들의 대상과 시간 스케일에 큰 교집합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별도의 해설보다 연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소중할 것 같다. 특집에 참여해 준 네 명의 필자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졌고, 그들의 응답 중 일부를 간추려 전한다.
왜 ‘근대기(또는 일제 식민지기)’에 관심을 두고 논문을 써 왔는가?
“지금 현재 도시 공간과 시설의 핵심, 그리고 우리가 공원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기원, 특히 문화, 공공성, 행정이 탄생한 시기이기 때문이다”(이명준). “우연히 만났다가 이 시기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정말 이랬어? 이런 놀라움이 컸다. 생각보다 지금과 비슷했다. 물론 지금은 기술이 더 발달했고 디자인은 훨씬 세련됐지만, 그 원형은, 근본은 그대로다”(김정은). “그 이전 시대에 비해 개개인의 사람이 보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의 연구 대상이 주로 저명한 문인이나 정치가의 문집과 정원인 데 비해, 근대기에는 수면 아래에 있던 더 많은 사람들, 다양한 직업
의 사람들, 여성, 소설가, 화가, 정치가, 학자들의 생각과 생활이 드러나기 때문에 흥미롭다”(김정화). “그동안의 역사 연구가 사고思考에 집중했다면(또는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근대기의 연구는 실증적 접근이 가능하고 연구 방법이 매력적이어서 끌린다. 도시 공간과 문화에서 나타나는 전근대와 오늘날의 간극을 이 시기의 공부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연성 있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한다”(박희성).
당시의 도시 공간, 환경, 시설, 문화, 생활을 ‘지금’ 연구해야 할 이유는?
“도시 개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재생에 주목하고 있는 현재, 공원이나 광장과 같은 도시 시설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진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재검토는 생성의 지점에서 출발해야 하므로 근대기 연구의 성과는 현재적 의미를 지닌다”(박희성). “근대기와 현재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기 때문에 ‘지금’ 연구해야 한다. 현재가 근대기와 너무 가깝다면, 예컨대 해방 직후라면, 근대기를 떨어뜨려 놓고 보기 힘들 것이다. 한편 너무 멀지 않기 때문에 그 시대에 시작된 여러 공간의 형태와 시설이 지금도 유효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이 흥미를 유발하고 ‘지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김정화).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명준).
최근 ‘조경학’ 분야의 적지 않은 학자와 연구자가 이 시기와 주제를 다룬 논문을 생산하고 있는 배경이나 이유는?“
무엇보다도 다른 시기에 비해 신문, 잡지, 보고서, 사진 등 자료가 다양하고 풍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가 상대적으로 쉬운 이유도 있다. 일본어와 근대기 한국어 자료는 비교적 해석하기 쉽다. 이런 조건에 연구자 나름의 흥미가 더해져 연구의 양이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김정화). “우선 아카이브와 데이터베이스가 잘 구축되어 자료 접근이 용이해진 환경을 들 수 있다. 일찌감치 근대기에 주목해 연구 성과를 낸 건축학, 도시학, 역사학(도시사)의 영향도 있고, 그리고 대한제국기와 일제 식민지기에 대한 객관적·비판적 시각이 등장하는 학계의 분위기도 작용하고 있다. 근대 관련 전시, 학술 심포지엄, 시민 강좌 등 이 시기를 관심 있게 주목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박희성).
이번 호부터 세 달간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이어갈 조경가는 이재연 소장(조경디자인 린)입니다. 긴 추석 연휴로 이번 10월호의 배송이 열흘 이상 늦어질 전망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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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던 타임‘즈’, 모더니티‘들’
파리 뤽상부르 정원 근처를 산책하다 보면 하원 맞은편 아케이드 벽에 붙은 특이한 석판을 볼 수 있다. 직선의 띠에 일정한 간격으로 눈금을 새겨 두고, 그 위에는 ‘MÈTRE’라는 글자를 박아 넣었다. 옆에는 이 석판이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가 규정한 ‘1미터’의 기준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별스럽다 여길 수 있지만 한때 왕의 발足 크기가 길이의 표준이었고 그마저도 파리와 지방에서 달리 쓰였음을 알게 되면, 이 ‘기준’이 가진 의미가 달리 보인다. 길이뿐 아니라 무게와 부피, 도시 간의 거리를 측정하는 도로 원표point zéro, 시간 등 ‘표준’의 대부분이 18~19세기에 정해졌다. 누구의 기준이 표준이 되는가는 국가적 위신이 달린 중요한 문제였고, 이 표준에 따라 통제된 시공간이 서구 근대의 배경이 되었다.
그런데 이 근대의 표준은 언제, 어디일까. ‘일반’적으로는 사유의 중심축이 신학에서 인간 이성 중심으로 이동한 르네상스 이후, 특히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기를 근대의 기원으로 본다. 기존 질서(도그마)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정신이 서구 근대를 추동한 힘이었고, 이를 근대성 혹은 모더니티라고 부른다. 이성, 보편, 상식, 합리성, 진보, 계몽, 합목적성 등이 모더니티의 가치를 담는 키워드이고, 이 기준을 좇는 일이 중대했던 때를 근대라 한다.
근대/모던 타임즈는 언제이고 어떤 근대성/모더니티를 어떻게 추구했는가는 흥미로우면서도 민감한 주제다. 우선 명칭부터 보자. 조경학뿐 아니라 서구에서 들여온 학문의 연구에서 가장 정교하게 다루(었)어야 할 부분으로 용어의 번역을 꼽는다. 일상적 의미와 학문적 용례가 다른 경우도 조심스러우나, (일본의 번역어를 다시 옮긴 경우가 많은) 번역어와 외래어/외국어의 의미의 결이 다른 경우는 해당 맥락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부터 정해야 한다. 근대와 모던 타임즈, 근대성과 모더니티는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서구화와 근대화가 동일시되는 것은 제3세계 국가들의 발전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를 ‘ctrl+c, ctrl+v’의 등가적 복제로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참여한 루브르 학교의 박물관학 여름 국제 세미나에서도 이 질문은 반복되었다. 올해의 주제인 ‘정원의 박물관학’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강연은 풍요로웠으나, 프랑스에 위치한 역사적 정원으로 대상이 한정되었고, 이를 정원 예술의 ‘기준’으로 삼는 점은 어쩔 수 없었다. 역사적 정원의 복원과 복구, 재창조의 문제에 대해서도 피렌체 헌장의 가치만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참여자들의 비평과 토론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음을 상기시켰다. 케브랑리 박물관 컬렉션에 대한 비판과 이어진 토론은 근대성과 종속성, 주체성의 관계를 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비서구 미술 = 원시 미술’이라는 오래된 양분법적 도식과 이를 둘러싼 담론조차도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흡수해버리는 동화주의의 힘은 강력했고, 수많은 중국풍 혹은 일본풍 정원의 정통성에 대한 필자의 질문은 특정 양식의 양상으로 치환되기 일쑤였다.
세미나 마지막 날의 공동 연구 발표를 알제리 출신의 건축학도와 함께 준비했다.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 위치한 함마 정원과 서울의 용산공원을 미술관과 공원의 관계 측면에서 간단히 비교, 소개하기로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민지화와 근대화가 동시에 진행된 나라 출신이라는 공통점에서 출발했으나, 식민지 시기를 보는 온도는 사뭇 달랐다. 알제리는 격렬한 저항과 내전을 겪은 후 백여 년 만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오늘날의 프랑스 이민자 문제는 이에 기원을 둔다고 배웠으나, 프랑스에 대한 그의 태도는 예상과 달리 적대적이지 않았다. 프랑스 건축가가 프랑스식으로 설계한 국립미술관과 외래 식물의 현지 적응을 위한 온실이 딸린 정원, 동물원이 여전히 탈식민지 수도의 중요한 공공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반일 교육을 받고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를 목격하며 자란 필자에게는 이 점이 놀라웠는데, 역으로 그는 내가 놀라워하는 것을 신기한 듯 보았다. 해방을 기준으로 하면 한두 세대 정도 차이가 나지만, 근대화를 이룬 식민지기에 대한 태도는 그가 더 ‘쿨’했다.
우리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뒤풀이에서 나온 이야기 또한 오늘 이 장소에 모인 우리가 사실은 각기 다른 지점에 있음을 상기시켰다. 서유럽 출신의 누군가에게 모더니티는 과거의 유산이지만, 근대화(새마을운동!)를 이룬 한국을 동경하는 부르키나파소 인에게는 지향점이 된다. 근대(성)의 기준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바뀌고 동시대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근대의 시간들과 근대성들이 복잡하게 얽혀 공존한 이 상황이 탈근대적이라고 웃어넘겼으나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같은대학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술과 조경의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관련 도서 몇 권을 함께 쓰고 옮겼다. 최근 옮긴책으로는 자이미 레르네르의 『도시침술』(푸른숲, 2017)이 있다.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의 ‘건축, 환경, 경관’ 연구실에서 박사후연수를 막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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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스케이프] 공유, 땅 그리고 우주
“자연은 시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쉽게 경험될 수 있으며 새로운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공유도시의 또 다른 질서가 만들어진다.”
올 가을은 유례없이 긴 연휴로 왠지 풍성한 느낌입니다. 휴일이 많아서만 풍성한 게 아니라 볼거리도 정말 많습니다. 정원박람회만 해도 서울정원박람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순천시의 대한민국 한평정원 페스티벌, 거기에 동탄2신도시 공공정원까지. 조경과 정원에 대해 늘어난 관심이 다양한 행사와 전시로 이어지고 있는 점은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한순간 지나치는 유행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4호(2017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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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작은 정원 이야기
설계 철학이나 설계 방법론이 아닌 현실적 대응에 대해
당신의 설계 철학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설계 방법론에는 어떤 게 있습니까? 설계를 직업으로 삼은 이들의 인터뷰에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다. 나의 설계 철학은 무엇일까? 그놈의 철학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주입식으로 교육받은 어린 시절, 철학 과목을 통해 칸트와 데카르트를 배웠다. 철학책에 나오는 고뇌의 산물일 것 같은 단어와 뭔가 있어 보여야 하는 글이 철학이라면, 나에겐 설계 철학이 없다. 고심에 가득 찬 멋진 설계 산물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녹록지 않은 작업 현실 속에서 현장과 설계, 설계와 현장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모든 현장이 같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설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충실히 직면하며.
설계는 현장을 바탕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실현 가능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모든 설계 현장에 직접 가서 조사해야 설계가 완성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허락하는 한 무조건 현장에 가서 봐야 좋은 설계가 나온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현장이 가진 문제가 설계의 단초이고 그 문제의 해결이 설계의 시작이다. 현장에 설계의 답이 있으니 현장에서 답을 찾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설계의 반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현장 답사를 가면 먼저 문제점을찾고 그 땅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하늘을 나는 고래’와 같은, 머릿속을 말랑말랑하게 떠도는 상상의 즐거움만은 간직한 채 말이다.
나의 설계 방법론은 무엇일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이 문장은 수단이나 방법이 어찌 되었든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뜻일 것이다. 부정의 의미일까, 정말 목적만 이루면 아무런 상관없다는 긍정의 말일까. 아마 정도(正道)를 벗어나 교묘한 행위로 목적을 이루려는 처세에 능한 사람들에 대한 일침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릴 적부터 좀 엉뚱하게 해석해 왔다. 모로 가는 것을 돌아간다고 생각을 했다. ‘돌아가면서 이것저것 더 많은 것을 보며 가는 것이 더 좋지 않나?’라고 말이다.
이 속담이야말로 설계 방법론을 설명하는 데 적당한 것 같다. 설계에 정답이 없다는 말을 주문처럼 하곤 한다. 서울 가는 길이 하나만 있을까? 우리가 하는 설계에 정도라는 게 있을까? 그럼 대체 설계의 정도는 뭐지? 길로 치자면 상행 고속도로 같은 걸까? 그럼 우리는 고속도로만 이용하는 설계를 해야 하는 걸까? 교통 방송에서 흘러나온다. “지금은 막힌 곳이 없어 서울까지 두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합니다.” 문제는 이 두 시간이다. 두 시간 안에 서울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빠른 길인 고속도로를 모두가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울 가는 길에 보이는 것이 모두에게 똑같다. 설계하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빠른 손놀림(?)과 신속한 판단으로 설계를 진행해야 납품 일정을 맞출 수 있다. 그러면 어찌하란 말인가? 스스로 답변해 본다.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서울 가는 많은 샛길을 찾아두자. 더 많은 다른 풍경을 보면서 갈 수 있는 자기만의 샛길을 만들어 보자. 운전만 할 줄 알면 길이 아닌 곳으로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설계오우가(設計五友歌)
플러스 펜: 설계하는 사람은 유독 펜에 대한 욕심이 많다. 나도 펜을 좋아해서 많은 펜을 사고 잃어버리고 또 펜이 다 닳으면 다시 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 왔다. 여러 펜 중에서 아직 애용하고 있는 펜은 M사의 플러스 펜이다. 이제는 유사 펜의 대명사가 된 이 펜은 일단 싸고 선의 굵기를 힘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몇 장 그리면 끝이 닳아 뭉툭해져 잉크가 떨어지기 전이라도 펜을 바꿔야 선이 제대로 표현되는 난점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B 계통의 연필만큼은 아니어도 굵기 조절이 자유로운 장점에 익숙하다. 중간에 다른 펜으로 바꾸기도 했지만 플러스 펜의 자유로움을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노랭이: 노랭이(옐로우 스케치 페이퍼 또는 롤 페이퍼)가 비싸서 신참 때는 흰색 롤 페이퍼만 쓸 수 있었다. 노란색 종이 위에 그리는 고참이 부러웠다. 그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더 멋지게 보이는 것 같았다. 고참들이 퇴근한 후 밤을 새울 때면 슬쩍 고참 자리의 노랭이 위치를 이동시킨다. 베이스에 가볍게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노랭이를 유명 여배우가 밟는 시상식 레드카펫처럼 펼치고 손을 깨끗이 씻는다. 회심에 찬 짧은 의식이다. 종이 안으로 파고들어 갈 듯한 자세로 고쳐 앉고 세심하게 찬찬히 그려간다. 누가 보면 내가 전문가 같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TV 드라마의 어느 장면을 떠올리며 그리고 또 그린다. 컴컴한 사무실 한편 깜빡이는 스탠드 불빛 아래, 밤새 장렬히 전사한 수많은 노랭이 시체가 난지도처럼 수북이 쌓인다. 결과물은 그리 신통치 않지만 쌓인 노랭이 시체만큼 스스로의 만족감도 수북해진다. 물론 아무 종이에나 그려도 설계안이 좋으면 멋지다는 걸 아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손으로 그리는 사람이 현격히 줄었다. 캐드에서 바로 설계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캐드 프로그램에서 줌인과 줌아웃을 반복하다 보면 전체적인 스케일 감을 잃어 공간의 스케일이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엉뚱한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적당한 스케일의 정지된 출력본을 놓고 자꾸 그려볼 것을 적극 권장한다. 그래야 공간의 규모, 전체적으로 통일된 스케일, 사이트 전체를 보는 힘을 설계 내내 잃지 않는다.
모눈종이: 모눈종이는 디테일을 그릴 때 애용한다. 나는 캐드보다 손 그림에 익숙하다. 모눈종이에 인쇄된 모듈은 곧 스케일의 축소판이다. 정확한 수치를 요구하는 실시 설계에서는 스케일을 맞추어 그려서 바로 전달해 실시 설계 도면을 만들게 할 수 있으니 모눈종이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설계의 친구 중 하나다. 선 굵기와 도면의 전체 포맷을 맞추는 것부터가 디자인의 시작이라고 배웠다. 요즘에는 이것까지 강조하면 지나친 참견이 되는 것 같아 내용에만 탈이 없으면 넘
어가는 편이지만.
빵빵이: 일명 ‘빵빵이’라 불렸던 템플릿(template)은 손으로 제도하던 시절 수목을 규격화해 그리는 도구였다. 크고 작은 여러 개의 구멍이 나 있어서 빵빵이라 불렸다. 이 도구를 써서 그릴 때는 주의 사항이 몇 가지가 있었다. 연필(샤프나 홀더)로 그릴 때는 구멍에 홈이 있는 부분이 바닥에 닿게 그리고, 로트링 펜으로 그릴 때는 구멍에 홈이 위로 가게 해서 그려야 잉크가 도면에 묻지 않는다. 펜으로 원 하나를 그리는 건 엄지와 중지를 이용해 손가락 마디로 펜을 거의 한 바퀴 돌리는 신공을 발휘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기도 했다. 원 한 개에 펜 한 바퀴의 신공. 그래야 동그라미 선의 굵기가 일정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 펜 굴리기는 자를 이용한 제도에서 모든 선을 그을 때 사용되던 비법이다.
원색 한국식물도감: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할 때 그동안 원 없이 놀았으니 이제 제대로 전공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녹색 비닐 표지의 『원색 한국 식물도감』을 구입했다. 그러나 이 책은 자생 식물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서 식재 설계 수업의 수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여, 책꽂이 구석에 존재감 없이 처박혔다. 졸업 후 설계사무실에 극적으로 취업한 나는 1990년대 초 어느 여름 강원도 산골의 리조트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된다. 이때 다시 이 식물도감을 꺼내게 되었다. 설계와 시공을 함께 하게 된 필자는 당시 사무실 수장인 정영선 선생을 통해 현장의 어마어마한 자연 자원을 접하고 주로 대상지의 자생 식물을 이용해 시공을 하게 된다. 어느 게 잡초이고 어느 게 활용 가능한 수종인지 구별할 능력이 없는 난감한 상황. 집에서 세 시간 반 걸리는 현장행 버스에서 식물도감을 책 읽듯 읽었다.
도감은 무릇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처음에는 읽는 것 조차 힘들었지만, 현장에서 식물을 채취하고 도감에서 찾아보며 계속 도감을 읽어가자 점점 현장 식물에 친숙해졌다. 마침내 도감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채집 식물을 보고 도감에서 금방 찾아내는 단계까지 다다랐다. 수십, 수백 번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물 이름과 특성을 파악하게 되었다. 표지가 닳고 떨어져 투명 테이프로 몇 번이나 붙였다. 이런 과정을 이 프로젝트 이후에도 여러 번 반복했다. 식물과 친해져 식재 설계가 두렵지 않게 되었다. 사실 조경 설계를 할 때 식재 설계가 가장 어려운 것은 여러 독자나 나나 마찬가지다. 30년 가까이 조경 설계를 했으면서도 식재 설계가 아직도 가장 어렵다.
지금은 친구에서 빠진 담배. 예전에는 정말 많이 피웠다. 전자담배로 바꾼 요즘, 숨 쉬듯 연기를 생산하며 일을 하고 있기는 하다. 이제 담배는 설계를 더 오래 하기 위해서는 피해야 할 친구가 되어버렸다. 그저 추억 속의 설계 친구 중 하나로 기억하고자 한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 글을 보며 좀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오우가에서 왜 술이 빠졌냐고. 술은 친구가 아니다. 사랑이다.
작은 공간을 탐하다
#1 한 의뢰인이 우리 회사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인터넷으로 보고 알음알음 찾아 전화를 걸었다. 5만여 평의 수목원을 조성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그 후로 7년째 네 번의 사이트 변경과 콘셉트 변경, 수많은 보고를 통해 비로소 마스터플랜이 최종 결정되었다. 이제야 구체적인 투자비의 윤곽이 잡히고 설계가 실현되려 하는 프로젝트다.
#2 의뢰인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쉽고 간단하게 이것저것만 넣고 끝내 달라는 요구를 할 때도 있다.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설계 전문 회사이니만큼 조금은 다른 콘셉트를 넣고 디자인에 쏟는 시간을 최소화해 속전속결로 끝을 내는 경우도 많다. 대지 조성과 건물 신축을 하고 준공 마지막에 조경 공사가 들어가니 어떤 경우는 까맣게 잊고 있는 프로젝트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현장이라며 전화가 오고 그때서야 이런 설계를 한 적이 있던가 자문하기도 한다. 고민을 많이 하지 않은 설계 대상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3 본인이 거주할 주택을 지으려는데 정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현장에 가보니 골조는 거의 다 완성되었고 작은 마당과 작은 중정이 있는 개인 주택이다. 건축주는 아파트에 살다가 정원을 가지고 싶어 그간 모은 돈을 털어 집을 지었다고 한다. 자금이 부족하니 예산 안에서 최대한 멋지게 부탁한다고 한다. 건축주는 이미 본인의 정원을 그리고 있었다. 두세 차례 협의를 통해 정원의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3주 후 건축주는 그토록 그리던 정원을 갖게 되었다고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한다.
대구 우방랜드, 인천국제공항, 행정중심복합도시 첫마을, 웨이하이포인트 골프 리조트, 하노이 반치 콘도 마스터플랜, 백학관광리조트 등 다수의 마스터플랜과 조경 설계. 내 이력을 대외적으로 소개할 때 전방에 배치하는 프로젝트명이다. 모두 수만 평에서 수백만 평에 이르는 면적을 자랑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규모가 회사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수행한 프로젝트 규모에 의뢰인들은 신뢰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저 정도의 규모를 수행했으면 내가 맡기는 프로젝트도 잘 하겠지라는, 일종의 위안을 받나 보다.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고 고유 규모를 유지하려면 본인을 위해서도, 그리고 수장을 따르는 직원을 위해서도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규모 프로젝트나 사회적 이슈가 되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회사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더 크게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프로젝트가 그러하지는 못하니 회사 운영을 위한 프로젝트도 생기기 마련이다. 즉 어렵지 않게 진행하고 작업을 끝내서 높은 설계비는 아니어도 회사의 운영을 조금 더 원활하게 하는 프로젝트다.
크고 작은 신경을 많이 쓰며 험난한 과정을 거쳐 설계가 완성된다.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을 기다려야 설계가 실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 시간이 참으로 길다. 어떤 경우는 공사 시기에 수종이 품절되어 수종을 바꾸는 설계 변경을 하자는 연락이 오기도 한다. 중요한 공간, 수종이 바뀌면 분위기가 너무 달라지는데….
정원은 의뢰인과 일대일로 대화하며 풀어간다. 대화 중 의뢰인의 성향을 파악하게 된다. 대화 중간중간 좋아하는 나무며 꽃 이야기를 한다. 정원의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방향을 잡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 내가 알고 있는 꽃 이야기, 어딘가를 여행하며 본 풍경과 감흥, 계절별로 찾아오는 꽃과 단풍과 열매 이야기를 수다 떨듯 늘어놓기도 한다.
어떤 의뢰인은 “난 그거 싫더라. 어디 가면 뭐 있던데 그게 좋더라. 그리고 여기는 뭐 있으면 좋겠고 이거는 꼭 어딘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며 본인이 설계를 다 하는 경우도 있다. 의뢰인의 말을 도면에 옮겨 본다. 합리를 반영하고 불합리를 걸러내며 그의 마음에 들 만한 아이디어를 짜서 회심의 일격 기회를 엿본다. 아이디어가 내 맘에도 쏙 드는 경우는 빨리 협의할 날짜가 오기를 손꼽는다. 그렇지 않을 때는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 “이걸 보여주면 깜짝 놀라겠지.” 기대를 안고 만난다. 의뢰인의 반응을 살핀다. “그거 언니네 집에도 비슷하게 했는데, 난 그거 싫더라.” 의뢰인의 한마디로 팔월 어느 더운 날 강아지 혀끝 쳐지듯 축 늘어진다. “이런 비전문가. 이 설계대로 하면 정말 좋아지는데, 가치를 몰라보고, 역시 너무 평범한 사람이야, 그냥 평범하게 해 줘버려?”
뭉개진 자존심은 회복되질 않는다. 그래도 고객님이 오케이 할 때까지 다시 심기일전, 다시 그리고 보고 고치고 근사한 CG 장전. “아, 좀 평범한 것 같은데.” 기대 반 걱정 반. “네, 이거 좋네요. 이렇게 되면 정말 예쁜 정원이 되겠네요.” 의뢰인의 반응이 의외로 좋다. “내가 잘못 봤나? 안목이 좀 있으시네?”
과천 한편에 자리한 꽃 시장은 이맘때면 늘 분주하다. 설계에 적용했던 식물의 상태를 살핀다. 이번 정원은 운이 좋다. 공사 기간에 맞게 식물의 상태가 아주 좋다. 가끔 끝물에 걸리거나 그해 식물 재배 상태가 좋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수종을 바꾸는 경우가 허다하다. 메인 식물을 고르고 그해에 새로 나온 수종을 살핀다. 월동 여부를 알아보고 개화 기간, 음지성과 양지성, 군식이 좋을지 독립성이 좋을지, 초장의 길이와 잎 색깔을 살핀다. 설계 도서에 없는 새로운 수종은 그해 시기에 맞아떨어지는 건축주에게는 귀한 선물이 된다. 땅을 갈아 엎고 배수로를 만들고 자연석 공사와 기타 구조물 공사를 마치면 교목 식재로 들어간다. 현장 조사 시 가릴 곳과 트여줄 곳을 현장에서 다시 실측해 식재한다. 관목 식재가 끝나면 계절별 다년생 초화류로 정원을 꾸민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했는가? 정원을 만들고자 하는 의뢰인은 이미 교목보다는 꽃피는 관목에, 큰 꽃보다는 작은 꽃에, 원색보다는 파스텔 계통의 색에 더 감동한다. 하여 교목이 정원의 경관 틀을 만든다면 관목과 초화는 정원의 감동을 만든다. 내가 관목과 초화에 더욱 신경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원 100평을 기준으로 공사 기간이 약 3주 정도 소요되는 게 일반적이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별다른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면 상상하고 설계하며 꿈꾸던 무형의 형상이 하나둘 형체가 되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설계하며 생각했던 것의 오류가 바로바로 확인되어 더 나은 방법을 찾게 된다. 시간이 있는 직원은 현장에 나와 식물과 디테일을 배운다. 일부러 각 정원 설계 담당자를 정해 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설계하기도 많이 바쁘다는 걸 알지만 본인이 설계한 현장을 바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덩그러니 건축물만 지어진 대지에 풍경을 창조하는 작업. 생활하는 사람 가까이에 자연을 들이는 일. 흙가루 만지며 꽃의 표정을 읽고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 주택의 안과 밖 풍경을 고려해 머무는 곳에 대한 애정을 듬뿍 안겨주는 일. 늘 미완의 작업이지만 시간이 완성으로 이끌어 간다. 그래서 작은 공간을 만드는 이 일을 사랑한다. 이 작은 공간을 사랑한다.
“모든 시인은 단 한편의 시를 꿈꾼다. 그 한편으로 자신의 생과 이 세계에 완벽하게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언어의 구조물을 꿈꾼다. 그러나 시는 그 자체로 결핍이며 미완이다. 시 앞에서 시인은 항상 탄식할 수밖에 없다.” _ 남진우 ‘신성한 숲’ 중에서(첫 회)
이재연은 특별할 것 없는 학벌과 스펙에 그저 풍류를 좀 즐길 줄 아는 이 시대의 평범한 조경쟁이다.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17년을 근무한 후 2006년 조경디자인 린(주)을 설립해 현재에 이르렀다. 서안에서 국내외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정원 공사의 디테일에 매료돼 린을 창립한 후 설계와 ‘정원 공사’를 병행하고 있다. 직접 설계하지 않은 것은 공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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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주차장 = 정원?
날카롭고 반듯하게 제작된 철제 경계에지다. 1cm 이상의(1/2인치) 두꺼운 내후성강weatherproof steel을 마치 얇은 종이를 접듯 예각을 살려 제작했다. 두꺼운 종이를 접을 때도 그렇듯이, 철판을 구부리거나 접으면 그 모서리가 둥글게 휘어 날카로운 디테일을 만들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의 사례는 디자인한 평면과 높이에 맞추어 거푸집을 짜고, 금속을 주조한 후, 모서리와 접힌 안쪽 면을 매끄럽게 다듬은 후가공의 결과물이다. 예각의 모서리나 다른 철판과 T자로 만나는 부위 어디에도 이음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세심하게 가공된, 공예품 수준의 솜씨 좋은 경계에지 디테일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정도 디테일을 적용한 장소가 일반적으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기 쉬운 주차장의 연석이라는 점이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4호(2017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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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안완배 문호리 리버마켓 감독
시장은 디자인이다
경기도 양평 서종면 문호리의 리버마켓은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일 년쯤 전에 안완배 선생의 강연에서 셀러와 자녀들이 함께 모델이 되는 패션쇼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렇지만 매달 셋째 주말에 맞춰 가는 게 쉽지 않았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조카들 데리고, 밀리는 강변북로를 꾹 참고 통과해 드디어 서종 도착. 결과적으로 우리는 6시간을 머물렀다. 날씨도 덥고 뙤약볕이었지만, 1.2km 구간을 오르내리며 구경하고 체험하고 강변에서 쉬다 보니 어느덧 해질녘이다. 예상보다 쇼핑도 많이 했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4호(2017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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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정원 생활] 괴테의 정원, 충동과 열정을 다스린 예술의 장
독일 최고의 대문호로 불리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는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 신학, 법학은 물론 과학, 지질학, 원예학, 광물학에도 해박했다. 여덟 살에 시를 쓰고 열세 살에 시집을 낼 만큼 타고난 문재로 소설, 산문, 희곡에 걸쳐 방대한 업적을 남겼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고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이 되어 정치가로서 재능을 떨치기도 했다. 튀링겐 지방의 여러 숲을 찾아다니며 식물을 깊이 연구한 식물학자이면서, 사람 앞니 뼈를 최초로 발견한 비교해부학자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괴테는 고전주의 미학에 근거한 조화와 완전성을 갖춘 인간상의 전형으로, 불멸의 예술적 가치를 주창한 선도적 문학사상가로, 인간 정신과 자연을 파괴해 온 근대 과학에 최초로 반기를 든 인문과학자로 칭송된다. 그의 작품에 일관된 휴머니즘은 동독과 서독의 정신적 융화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있다. ...(중략)...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지금은 대학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선유도공원 계획 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환경과조경354호(2017년 10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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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프란츠
서양 현대 철학자들이 아시아 중에서도 한반도의 상황을 예시로 들어 자신의 철학 사상이나 이론을 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유일한 분단국으로 북한에서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지만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대범함(?)을 지닌 민족, 짧은 기간에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대다수가 힘들다고 느끼는 나라. 명료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마르크스와 자크 라캉의 정신 분석에 기반한 이론가로 알려진 슬라보예 지젝은 최근 저서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박준형 옮김, 문학사상, 2017)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이렇게 본다. “일제강점기 피해는 심각해서 한국인은 끔찍한 상처를 잊고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잊지는 말되 용서하라’는 니체의 표준화된 공식을 완전히 반대로 적용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즉, 일본의 잔학성을 ‘잊되 절대 용서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지젝은 용서는 하지만 절대 잊지 않겠다는 태도에는 언제까지나 죄책감을 느끼게 하겠다는 강력한 협박의 뜻이 교묘하게 담겨 있다고 해석한다. 어쩌면 잊지 말아야 할 일을 자주 ‘잊는’ 한국인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으로도 들린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지난 8월 말, 그간의 연재를 묶어 단행본 『시네마 스케이프』를 선보였다. 책이 나오기까지 마음 써 주신 분들, 출판 북토크에 와 주신 분들, 격려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출간을 계기로 더 분발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다시 초심이다.
*환경과조경354호(2017년 10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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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내부의 난민들
“도대체 저 사람은 상식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우리는 가끔 타인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에 화가 날 때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상식이란 결국 나 개인이 ‘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즉 어느 정도 이미 합의된 사회적 약속이며 나와 내 주변에서 통용된다고 내가 믿는, 학습에 기반을 둔 스스로의 믿음이자 지레짐작이다. 언어가 합의를 ‘가정’해야만 그 위에 가상의 건물이라도 지을 수 있듯이, ‘상식’ 역시 불가능한 합의를 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자신이 학습한 그룹 이외의 집단이나 상대에게 나의 상식이 통용 가능한지 실험해 보지 못한 채 사회의 상식을 상정한다. 그것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 채 어떤 상황에 대응했다가 상처를 받거나 가시 돋친 말로 상대의 몰상식을 탓한다. 내가 사회와 공유한다고 믿고 있는 상식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우리의 상식, 도덕, 법과 제도는 우리 모두를 담거나 모두에게 동일할 수 있는가? ‘우리’는 누구일까? 내가 속한 사회의 주류 상식이 내 상식과 달라 어려움을 겪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정 수준의 다름이야 인정하고 공생을 타진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 또는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의 상식이 그들과 공생 불가능할 정도로 나의 상식과 다르다고 느낄 때, 특히 그런 상식을 기반으로 한 사회, 도덕과 법, 제도를 포함한 사회가 나와 맞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언어, 상식, 사회가 모두를 제대로 담지 못하는 애초에 불가능한 합의, 거짓 합의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우리는 어째서 이에 근거하여 모든 것을 세우고 있는 것일까?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54호(2017년 10월호)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