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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광장의 계절을 보내며
광장의 계절이다. 지난 가을과 겨울 광화문광장을 촛불로 타오르게 한 집회 참가자 연인원이 3월 초면 1,5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 차디찬 계절의 뜨거운 광장을 한 외신은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민주주의라 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도시 문화에서는 낯선 공간이었던 광장에 그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호 특집 ‘광장의 재발견’의 배경에는 최근의 국정 농단과 ‘광화문광장 현상’이 광장이라는 공간과 문화에 대한 다각도의 해석을 요청하고 있다는 진단이 자리한다. 그러나 도시의 그 어느 곳보다도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와 활동이 교차하는 공간인 광장을 어떻게 설계하고 경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이번 특집을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이번 광장 기획은 또한 월간 『환경과조경』이 공동 주최하는 제14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과 켤레를 이룬다. 공모전 취지문을 아래에 옮긴다.
“광장보다 골목과 길이 더 친숙했다. 꽤 오랫동안 광장은 우리의 것이 아닌 서구의 것이었다. 광장과 같은 빈 땅을 필요로 하는 집단적 종교 활동도 없었고, 군중의 집합이 동반되는 시민 사회의 성숙 역시 뒤늦게 발현되었다. 사람들은 가로의 일종인 선형의 시장에서 만났고, 아이들은 골목에서 뛰어 놀았다. 개인이나 마을 단위의 대소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마당이면 족했다. 그도 아니면 사람들은 당산나무 그늘을 찾았다. 우리네 광장의 역사가 짧은 까닭이다.
한강 백사장과 여의도광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관제 집회와 종교 집회의 시기를 거쳐, 본격적으로 광장이 주목받게 된 계기로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을 꼽지 않을 수 없다. 2002년 월드컵 당시의 대규모 거리 응원도 광장의 흥분을 온 국민에게 선사했다.
하지만 세기가 바뀌기 시작할 무렵부터 전 세계적으로 광장은 공원과 유사한 하나의 오픈스페이스로 변신하며, 그 고유한 특질을 잃어갔다. 공원 같은, 광장 아닌 광장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고,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의도광장은 여의도공원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서울광장엔 잔디가 깔렸다. 청계광장 역시 일상적 이용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부도, 시민도 비일상적인 대규모 집회용 광장보다는 녹색 옷을 입은 일상적인 오픈스페이스를 선호한 탓이다. 광활한 비움보다는 불확정적이며 유연한 설계가 더 각광받았다. 그 사이 오프라인에서의 직접적 만남은 온라인상에서의 새로운 사회적 관계망, 이른바 SNS로 대체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난 것에 비례해서 광장에는 녹음을 드리우는 녹색의 면적이 커져갔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광장의 의미와 쓰임은 무엇일까? 혹은 무엇이어야 할까? 광장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신선한 모색을 초대한다. 작아져만 가던 광장을 다시 호출한, 슬프고도 우울한 시국은 ‘광장의 재발견’에서 절대적인 단서가 아니다. 우리는 이 엄중한 시기를 지나 다시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야 하니까.”
특집의 첫 번째 글 ‘아고라포비아’에서 박승진 소장은 설계자들이 갖는 광장공포증을 다루지만, 광장 설계를 둘러싼 거의 모든 핵심 쟁점들도 샅샅이 조회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광장은 대중 민주주의의 상징이면서 전체주의의 통치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엇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광장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사용된다.” 그는 광장공포증을 극복하는 태도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며 글을 맺는다. “좋은 광장을 만드는 데 있어서 위대한 설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열정적인 협력 그룹, 뛰어난 집단지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편집자로서 가장 굵은 형광펜을 그은 문장은 “광장은 다수의 군중을 위해 존재하지만, 외로운 도시 산책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어쩌면 도시에 더 많은 광장이 필요한 이유다”였다.
전상인 교수는 ‘광화문광장인가, 광화문극장인가?’에서 도시의 계획·설계와 문화라는 관점으로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의 몇 가지 쟁점을 검토한다. 이 글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광화문광장은 광장이 아니라 극장”이라는 주장이다. 광화문광장은 “그 자체의 전통으로 빛나는 시민의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연출과 기획을 기다리는 미장센”이며, 그것이 “하버마스가 말하는 공론의 장이 될지, 푸코가 말하는 권력의 장이 될지 선택은 우리의 몫”이라는 해석은 토론을 초대한다. 반면, ‘광장, 군중, 이벤트’에서 김세훈 교수는 최근의 평화 집회가 광장이라는 도시 공간을 재발견할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고 진단하고, “다양한 집단의 사회적 활동을 풍부하게 담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즐겁고 쾌적한 광장, 그리고 이벤트에 몰입하는 경험과 함께 자유로운 참여 선택의 여지를 주는 광장”을 위한 과제를 탐색한다. 특히 ‘군중관리학’에 토대를 둔 정교한 광장 설계와 이벤트 계획의 가능성을 짚는다.
광장을 광장답게 쓰는 방식이 정해져 있다, 정해져 있지 않다는 지점에서 두 필자의 견해가 엇갈린다.
특집에는 남기준 편집장의 ‘‘광장의 재발견’에 단 편집자 주’와 편집부의 조사와 토론을 바탕으로 김정은 편집팀장이 갈무리한 ‘편집부가 추천하는 광장 10선’을 함께 싣는다. ‘광장 10선’은 지난 10년간 『환경과조경』에 실린 광장 프로젝트 전수를 놓고 에디터들이 열띤 토론과 투표를 통해 선정했다. 환경조경대전 출품을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광장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실험을 접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이번 특집 ‘광장의 재발견’은 완성본이 아니다. 지금, 여기, 한국 사회와 조경계의 교집합이 있다면 그 중심에 광장이 놓이기에, ‘광장의 재발견’은 현재진행형 프로젝트다. 광장을 다시 생각하며 도시사, 건축사, 조경사의 내로라할 고전들을 계속 뒤적거리지만, 그래도 자꾸 손이 가는 책은 최인훈의 『광장廣場』이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 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 누구나 밑줄 그어놓았을 1961년 판본의 서문 한 대목이다.
희망의 새봄을 맞는 『환경과조경』에 몇 가지 뉴스가 있다. 김정은 편집팀장이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먼저 전한다. 논문 주제는 한국 근대 유원지의 공간문화사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정확하게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국내 조경과 건축 전문지 역사상 최초의 박사 기자가 탄생한 셈이다. 하지만 2014년 6월호부터 합류해 서른 세 권의 잡지를 만든 조한결 기자가 대학원 진학을 위해 퇴사한다는 아쉽고 섭섭한 소식도 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조 기자는 『환경과조경』의 지면 혁신을 실천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잡지 곳곳을 업그레이드시킨 유능한 편집자였다. 미술사를 전공할 그의 새로운 항해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편집자가 아닌 필자로 『환경과조경』 지면에 곧 등장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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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젖은 광장, 마른광장
지난 해 12월 9일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핑계 삼아 다음날 새벽까지 통음했다. 오후에야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찾아간 미용실. 머리를 다듬던 원장이 말했다. “오늘은 우리 꼬맹이들 데리고 가려고요.” 지난 6주 동안 그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토요일마다 촛불을 들었다. 8시가 넘어서야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서둘러 광장으로 달려가 자정 넘어서까지 거리를 지켰다. “하도 구호를 외쳐서 목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내 직업이 정치 뉴스를 다루는 것임을 알면서도, 원장은 나를 단골로 대한 지난 8년 동안 한 번도 정치 얘기를 건넨 적이 없었다. 그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232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숫자가 탄생했는지 알게 되었다. 내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내가 경험했던 광장은 잠깐 타오르다 달콤한 케이크 위로 녹아버리는 막대 촛불 같은 것이었다. 2008년 봄 광화문광장. 그 전해 말 531만의 큰 표 차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금세 촛불의 성난 함성에 부닥쳤다. 그러나 거세게 타올랐던 촛불은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시작 일인 6월 10일을 기점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청와대 뒷산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후 이내 잦아들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이 다소 까다로워졌고 ‘한반도 대운하’가 ‘4대강’으로 바뀌었지만, 근본적으론 변한 건 없었다.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대한 감시·사찰·검거가 이어졌고, 검찰의 가혹한 망신 주기 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4년 뒤인 2012년엔 이번 겨울 수백만 명을 거리로 내몬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뿐만인가. 2014년의 광장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나.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가슴깊이 아파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왔다 간 광화문광장에선 유가족을 능멸하는 행위가 자행됐다. 단식 농성을 하는 가족들 곁에서 ‘자장면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슬픔과 공감이 있던 자리엔 진영 논리가 횡행했다. 광장에서 튄 분노의 불꽃은 이내 마른 장작처럼 화다닥 탄 뒤 한줌 재로 스러졌다. 마른 광장은 희망을 잠시 조우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광장은 달랐다. 마음에 차오른 물기. 그건 나만이 느낀 게 아니었을 게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느낀 따뜻함 밑바닥엔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소리친 광장엔 울분과 통한이 서려 있었다. 광장은 축축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던 2014년 당시, 나는 매일 국회로 출근해 하루 종일 정치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취재하는 일을 했다. 흔히들, 갈등은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는 동력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갈등을 표출하고 사회화 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샤츠 슈나이더)라는 관점이다.
이 경우 정치는 밀실의 개인들을 불러내 자신의 목소리를 분출하도록 하는 광장이다. 그러나 유족들에게 한국의 정치는 광장이 아니었다. 같은 해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주도권을 쥔 여권은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한 ‘지배적 사회 갈등’이었던 세월호 문제의 본질을, 자신들의 존립에 유리한 갈등, 즉 ‘색깔론’으로 대체했다. 야당은 당내 분열과 실력 부족으로 여권의 이런 행태를 제어할 수 없었다. 도무지 좌우를 따질 일이 아닌 사회적 대참사가 정쟁으로 전락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족들은 보상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탐욕스런 집단으로, 좌파와 결합한 불온한 세력으로 몰렸다. 유족들은 밀실에 갇혔다. 지난 해 4·13 총선 때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출마하자 유족들은 도라에몽 인형 탈을 쓰고 선거 운동을 했다. ‘세월호 유족’이 공공연히 나섰다가 표 떨어질 것을 우려했던 까닭이다. 유족들은 ‘투표로 아이들의 미래를 바꿉시다’라는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주장을 펼칠 때조차 인형 탈 뒤로 숨어야 했다.
올 겨울 광장. 시민들은 진실의 외침을 다시 응시했다. 밀실에 유폐됐던 진상 규명의 호소를 응원했다. 촛불이 밝혀지기 시작하던 11월 초까지만 해도 광장 한편에서 쭈뼛거렸던 유족들은 날로 탄핵의 열기가 고조되자 전면에 나섰다. 11월 28일엔 노란 종이배 304개를 태운 ‘세월호 고래’ 풍선과 함께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2014년 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며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앞에서 무릎 꿇고 빌기까지 했던 창현이 아빠 이남석 씨는 시위대 맨 앞에 서서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갔던 날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달라’며 1000일 가까이 바쳤던 간절한 기도가 드디어 응답 받았다고 생각했다.”
올 겨울 광장. 수백만 명이 모였는데도 질서와 평화가 유지된 것은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이 쓰는 ‘시민의식의 성숙’이란 ‘중립적’ 표현은 이 광장의 경이로움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인내와 절제, 그 밑에 자리한 것은 304명을 떠나 보낸 우리들의 눈물이었다. 광장은 젖어 있었다.
이유주현은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19년을 살았다. 1997년 「한겨레」 신문에 입사해 문화부, 사회부, 정치부 등을 거쳐 왔다. 한때 조경가를 꿈꾸기도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일과 일 아닌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보려고 하면서도 늘 휘청거리며 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주름이 멋지게 잡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공저로 『소울 플레이스』, 『공원을 읽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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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스케이프] 계절은 반복된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면 새해의 시작이 언제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1월 1일은 당연히 새해 첫날이고, 음력 설날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나누기도 합니다. 한 해에 시작이 두 번이라 새해 결심하기 더 좋다는 분들도 있더군요. 작심삼일이 한참 지난 뒤에 음력설이 돌아오니까 뭐 그리 틀린 말도 아닙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3월이 또 다른 시작입니다. 겨울방학 동안 한참 못 보던 학생들이 새 학년을 맞아 학교로 돌아옵니다. 게다가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신입생들을 보면 또 다른 의미에서, 어쩌면 선생 입장에서는 더 절실하게 새해의 시작이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행정적으로도 3월부터 새로운 ‘학년도’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3월이 학교에서는 새해의 시작입니다.
계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봄의 출발이라 할 3월이 진정한 새해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왜 하필 봄이 아니라 한창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새해가 시작된다고 정했을까. 자연스럽게 모든 생명이 싹트기 시작하는 봄부터 새해가 시작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계절을 이야기할 때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말하기 훨씬 편할 텐데. 첫눈도 마찬가지인데, 1월 1일에 눈이 온다고 첫눈이라고 하진 않잖아요.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또 있었던 모양입니다. 춘분을 새해의 기점으로 삼는 문화권도 있었다고 하니까요. 한 겨울에 시작하는 이유를 굳이 찾자면,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을 기준으로 했을 것 같습니다. 낮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가 양력 12월 22일 근처니까 그때부터 새해가 시작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그래도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삼은 게 천문학적으로 딱 맞는 것도 아닙니다. 열흘쯤 차이가 있으니까요. 세상에는 별 이유 없이 정해진 원칙이 꽤 많으니 이 정도로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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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하는 법] 도주
도주의 출발점으로 한 잔의 커피를 지목한 것은 안데스 산맥의 아라비카종 커피나무Coffea Arabica 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가
자유로를 달린다. 커피에서 무오년戊午年 동짓날 마셨던 사약死藥 냄새가 날 때면 일을 멈춰야 한다. 임계점에 다다른 일상의 압력이 만들어낸 무중력의 기억 저편에서 더께 두꺼운 편린을 붙잡고 호명되지 않은 들풀 지천의 벌판을 헤적이는 것 외에 다른 방편은 없다.
1990년 1월 1일자 「한겨레」 신문 21면에 새해 특집으로 초록색 바탕에 ‘비무장지대를 녹색평화마당으로’라는 흰색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복학하고 대학 사학년에 올라가던 겨울, 신문을 보면서 이걸로 졸업 설계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대상지로 발표했을 때 담당 교수님은 무척 난감해 하시며 다시 잡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랬다. 천지 분간을 못하던 시절이었다.
2000년 ‘조경공방나무’ 누리집을 만들고 작업했던 ‘열린 프로젝트(www.ateliernamoo.xyz/openprojects/intro.htm)’에서 난지도와 함께 비무장지대를 하겠다고 호언했지만 난지도만 팔 개월 정도 진행하고 끝을 냈었다. 2002년에서 2003년 사이 청계천을 두고 열린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마무리에 대한 결론도 없이 잘려 나간 고가처럼 예리한 단면을 드러내며 멈췄다. 한계에 대한 인식과 결말조차 열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특별한 아쉬움은 없지만, 그렇게 마음의 심연으로 가라앉은 설계 기제機制는 푸른곰팡이가 피어 의식 속에서 멀어져 갔고 일상에 묻혀버렸다. 그 사이에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이 도륙屠戮되는 것을 목도해야 했고, 2011년 그 몹쓸 정권이 ‘비무장지대 개발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는 풍문이 역병처럼 돌았다. 덜덜거리는 자동차에 시동을 거니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에서 라디오머리 톰이 물었다. ‘당신, 유령 말을 탄 채, 누구의 군대인가?’
이수학은 2003년부터 아뜰리에나무를 꾸리고 있다. www.ateliernamoo.xyz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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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까다로운 부지와 조금 '다른' 재료
멋들어진 고가 철교 아래로 녹음이 우거진 수변 목재 데크 산책로boardwalk가 보인다. 지난 호에 소개한 피어 C 파크Pier C Park의 사례에서도 등장했던 수변 목재 데크 산책로는 수변 공원에서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바닥면은 목재 데크로 마감했고, 단정한 수형의 교목이 드리우는 그늘 아래 앉아서 쉬어갈 수 있는 나무 벤치가 더해져 물과 나무와 녹음이 어우러진 친근한 공간을 마련했다. 사진으로 읽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목재 데크 산책로는 약간의 경사로 오르막을 형성하는 한편, 멀어질수록 그 폭이 좁아져 원근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짐작하건데 오르막의 끝에는 활짝 열린 강 건너의 조망이 펼쳐지리라. 목재 데크의 패턴은 소실점을 따라 종방향 또는 횡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고 비스듬한 사선으로 처리되어 산책로의 방향성에 색다른 결을 더하고 있다.
사실 앞의 사진에서 보이는 목재 데크는 천연 재료가 아니다. 인공적으로 실제 목재와 흡사하게 만든 제품이다. 이는 재생 목재의 분말과 재생 플라스틱을 혼합해 만든 인공 목재 데크로 별도의 벌목을 하지 않고 재생 재료만으로 만들어진 환경 친화적인 재료다. 잘 만들어진 인공 목재의 경우, 그 색상과 무늬가 천연 목재의 널과 간단히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유사하고, 천연 목재와 같이 널마다 미묘하고 자연스러운 색상의 차이가 있다. 인공 목재 데크는 천연 목재보다 강도가 강해 쉽게 파손되거나 휘어지지 않고, 때가 타거나 벌레 먹지 않아 유지 관리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천연 목재와 마찬가지로 외부 온도에 따른 재료의 온도 변화가 크지 않아, 덥거나 추운 환경에서도 재료가 인체에 닿았을 때 친밀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연 목재가 주는 특유의 촉감과 질감을 인공물로 100% 재현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사례의 장소에서도 안전 난간의 손잡이와 벤치의 상판과 같이 인체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부위의 재료는 천연 목재를 사용했다. 바닥면의 인공 목재 데크는 이들 천연 목재의 색상과 근사한 제품을 선택하여 시각적으로 공간의 통일성을 추구한 것이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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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전유성 코미디시장 CEO
코미디의 메카, 청도
잠깐 개인적인 회상을 언급하자면, 캐나다 유학 초기에 그곳 친구들로부터 흔히 들었던 말이 “너 너무 진지해 보여!You look so serious. Relax!”였다. 물론 사람에 따라 편차가 크겠지만, 돌이켜보면 비단 나 자신뿐만이 아니라 한국 유학생이나 교민들의 인상은 유럽이나 남미 출신들에 비해 대체로 긴장돼 있었다. 나는 그런 인상이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전쟁의 여운이 남긴 오랜 대결 구도 속에서 우리 편이 아니면 적으로 몰아붙이는 상황, 0.1점 차로 갈리는 승자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분위기에서 눈치 보며 살다보니 상대적으로 우리 얼굴에는 여유의 자연스런 주름이 새겨질 틈이 없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다. ‘전투적’이라는 말이 칭송받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피부도 보톡스 해서 전투적으로 빵빵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도시와 공간에 대한 계획도 어딘지 모르게 아래아 한글로 작성된 공문서의 표 마냥 줄과 열을 맞춰 착착 번호 매겨진 어색한 느낌이다.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고 이식된 듯한 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청도에서 전유성이 해오고 있는 활동은 도시재생, 농촌 재생의 희한한 대안적 옆길 같은 깨달음을 주었다.
지금 30~40대는 예전 인사동의 명물 찻집 겸 주점, ‘학교종이 땡땡땡(이하 학교종)’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시절 교실을 옮겨 놓은 듯한 특이한 공간. 거리를 걷는 여느 연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전유성은 그저 코미디만 하는 코미디언이 아니라는 인상을 깊이 심어주었다. 짝궁과 금 그어놓고 함께 쓰던 진초록의 2인용 책상과 삐걱거리는 코딱지만 한 나무 걸상에 앉아 추억과 차를 곁들이는 곳, 당시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할 데이트 코스였다. 떠드는 사람이 적혀 있는 칠판 위에 걸린 교훈은 ‘공부해서 남 주자’였고, 급훈은 ‘음주운전하면 진짜 학교 간다’였다. 개그맨 지망생들의 공연도 있었고 전유성이 직접 마술쇼를 보이기도 했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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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탐독] 노자와 플라톤으로 읽는 정원
요즘 우리는 ‘인문(학)’과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듣는다. 특정 단어를 많이 쓴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화제라는 뜻이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만큼 결핍됐다는 의미기도 하다. 어느 철학자는 “인문이란 인간이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풀어나간 무늬”라고 했고, 또 다른 철학자는 21세기가 왜 간절히 노자를 읽게 하는지 역설하기도 했다. 왜 지금 우리는 다시 인문학을 외치고 있을까. 그 답을 찾다 보면 만나게 되는 단어가 바로 힐링이나 치유다. 우리가 보낸 20세기는 지난 수천 년의 인류 문명 역사를 다 합친 것보다도 더 급격한 삶의 변화를 만들어낸 시기였다. 그 변화의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과학과 기술의 힘이었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꿈꿔보지 못한 편리하게 향상된 물질적 삶을 얻게 됐지만 그 과정에서 정신의 결핍으로 인류 자체가 가야 할 방향성을 잃고 아픈 상황이기도 하다.
노자의 도덕경과 정원
기원전 8세기에서 3세기에 이르는 시기를 중국 역사에서는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른다. 봉건제의 틀을 갖췄던 주周나라가 멸망하자 충성을 맹세했던 지역의 수많은 가신들은 세력을 모아 나라를 세웠고, 이 틈에 하루에 한 번씩 새로운 나라가 나타나고 무너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적 대혼란의 시기가 찾아온다. 그러나 달리 보면 이 시기는 가신마다 뛰어난 인재를 필요로 한 덕에 그야말로 문화, 인문, 철학이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이때를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시대라고도 한다. 제자란 학자를 말하고 백가란 백 개의 가문을 이뤘다는 뜻인데, 그중에 노자와 공자도 있다.
생과 사의 흔적이 뚜렷한 공자에 비해 노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게다가 노자의 말씀을 담았다는 도경과 덕경을 합친 ‘도덕경道德經’ 역시도 발굴된 자료에 따라 첨삭이 지속적으로 일어난 흔적이 있어 한 사람의 작업이기보다는 인쇄가 없던 시절, 비단과 대나무에 글을 베껴 쓰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은 혹은 어떤 집단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도 본다. 그러나 누구에 의해서든 이 도덕경이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일본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문화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철학이 된 게 분명하다. ...(중략)...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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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스케이프] 너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는, 어디에나 있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도시의 풍경을 사람들이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영화의 후반부,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타키가 입사 면접 때 두서없이 더듬거리던 내용을 정리하면 아마 이런 내용일 게다. ‘사라지다’, ‘풍경’, ‘기억’, 영화의 주제를 요약하는 대사다.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였다. 자습 시간에 국어 선생님이 칠판에 크게 ‘조경’이라는 한자를 쓰셨다. 만들 조造, 경치 경景, 유망한 분야라고 소개한 이 두 글자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될지 그 분은 몰랐겠지. 그 순간, 수학과 미술을 좋아하던 한 여학생은 주저 없이 ‘풍경 만드는 일’을 평생 하리라 마음먹었다.
풍경을 만드는 근사한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손으로 그리던 일을 기계가 대신 해주게 되었지만 시간은 늘 부족하다. 얼버무리듯 하나씩 마무리해 갈 뿐이다. 다음엔 잘해야지 다짐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풍경을 만드는 일 따윈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매번 다른 사람과 만나고, 다른 조건으로 새로 시작해야 한다. 매일 공부해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따뜻한 풍경은 대체 언제 만들 수 있을까. 영화 ‘너의 이름은’은 근사한 풍경이 이미 우리 일상에 있다고 말해주는 영화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길 건너 가로등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쯤 자세히 보라고 말해주는 영화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 본 두 한국 영화, ‘죽여주는 여자’와 ‘미씽:사라진 여자’는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노인 빈곤, 소외 계층, 이주 여성 인권, 모성애와 워킹맘 등 쉽지 않은현실의 민낯을 대하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영화는 때론 판타지로, 때론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통해, 서로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깨어있도록 만든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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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도시와 이주 ― 믹스라이스
동료 작가들과 회의를 마치고 차 한 잔을 하고 있을 때 어느 순간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걸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크고 단호하게 변하던 그 목소리는 알고 보니 조금 전까지 우리와 함께 이야기 나누다 전화를 받으러 나간 어느 작가의 목소리였다. 좀처럼 격앙된 모습을 보인 적 없던 분이기 때문에 적잖이 놀랐고, 걱정되는 마음에 조심스레 무슨 일인지 묻자 그는 프로젝트 과정 중에 알게 된 어느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수단에서 온 지인이 최근 불법 체류 문제로 한국에서 강제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내전이 진행 중인 수단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보석을 위해서는 2천만 원이 필요하고, 난민 신청을 하기도 어렵다는 내용의 통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일은 몇 해가 지나도 결과를 알 수 없는 길고 지난한 과정으로 익히 알고 있는 바. 하지만 2천만원쯤이야 호기롭게 내어놓을 수 있는 여유, 아니 그 2천만 원 자체도 없는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주민을 위한 봉사 활동도 다니는 그는 답답함 한편에 냉정하게 말해야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건축이나 도시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듯, 오스만 남작이 방사형으로 계획한 파리는 구역마다 뚜렷한 성격을 갖는 동시에 중심부와 외곽 지역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계층화되어 있다. 방리외banlieue, 즉 외곽 지역에는 주로 이민자인 빈민층이 살고 있다. 과거 노동자를 위해 지어진 획일적인 공영 주택이 이민자들의 터가 된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방리외에도 부촌이 있다. 도식적으로 생각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지만 도시 공간의 사회적 계층화를 짚을 때 종종 언급되고는 하는 것이 프랑스어로 교외suburb를 뜻하는 이 방리외다. 도시 공간이 형성되는 방식은 각 도시, 공간마다 고유한 특수성을 갖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 되었든 이처럼 도시 공간은 각 지역, 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이는 신scene을 가지며 많은 경우 사회적으로 계층화되어 있기도 하다. 이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주체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도시계획이 이를 조장하고 주변화된 이들을 더욱 주변화하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