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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간 공감] 경의 풍경, 서석지
    영양에 있는 서석지瑞石池는 조선의 3대 민가 정원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겨울 스튜디오 직원들과 서석지를 답사하고 나서 같이 보고 싶은 마음에 멤버들을 설득해 두 번째 길에 올랐다. 여름 정원을 보고 싶어서다. 아쉽게도 정원이 보수 중이라 고즈넉함은 느끼기 어려웠지만, 겨울 정원을 상상하며 정원에 담긴 의미들을 되새기고 정원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보았다. 서석지는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1577~1650)이 광해군의 실정에 벼슬을 포기하고 낙향하여 만든 정원이다. 마음을 달래고 학문을 익히며 그가 생각한 이상향을 만들었을 터다. 그래서 정원 곳곳에 그의 사상과 철학이 배어있다. 사소한 바위 하나에도 이름을 지어 의미를 두었다. 작은 마당에 있던 서석군瑞石群을 살려 연못을 만들고 전면에는 강당인 경정敬亭을, 측면에는 서재인 주일재主一齋를 두었다. 작은 마당엔 연못 이외의 다른 요소가 없다. 담장과 연못 사이에 통행을 위한 좁은 통로만 있을 뿐이다. 경정은 연못에 떠 있듯 놓여있고, 주일재의 연못 기단은 기단의 일부를 앞으로 내밀어 사우단四友壇이라는 화단을 두었다. 경정이 다소 불안하게 마당을 채우고 있는데, 이를 주일재가 낮고 편안하게 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사람들과 모여 토론하는 자리는 웅장하게, 자신이 공부하는 공간은 편안하게 만든 것이다. 경정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씩씩하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1호(2016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이 연재를 위해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대학교정욱주 교수와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여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이들은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며, 2014년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유쾌한 답사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 김용택 / 2016년09월 / 341
  • [리질리언스 읽기] 리질리언스 향상을 위한 전략, 적응과 전환
    숲의 리질리언스 향상 전략, 나무들의 대화 ‘생명의 상자The Life Box’는 숲 보전을 위한 프로젝트로, 상자 속에는 토양만 포장되어 들어있다. ‘아무것도 없는’ 상자에 수분을 공급하고 며칠만 기다리면 하얀 실이 토양에 퍼져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하얀 실 뭉치가 바로 곰팡이의 균사다. 이같이 곰팡이가 퍼진 토양은 숲이나 공원의 토양으로 보충된다. 토양 속의 곰팡이는 나무의 뿌리와 공생 관계를 형성하여 나무가 영양소와 수분을 잘 흡수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숲 혹은 공원의 나무가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전화선을 설치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6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에서 생태학자 수잔 시마드Suzanne Simard는 ‘나무들은 어떻게 대화하는가How trees talk to each other’라는 강의를 통해 곰팡이 균사로 구성된 전화선이 숲과 공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므로, 기후 변화와 여러 교란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인 리질리언스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녀는 숲에서 가장 오래된 ‘어미 나무Mother Trees’가 곰팡이 균사를 통해 다음 세대의 나무와 연락을 주고받고, 다음 세대의 나무들도 균사를 통해 다른 나무와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이러한 나무들 간의 활발한 네트워크는 하나의 거대하고 체계적인 숲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커뮤니티가 성장할수록 나무들 간의 연결성이 증대될 뿐만 아니라 영양소와 정보가 자원으로 축적되어 잠재력이 향상된다. 커뮤니티에서 증가된 연결성과 잠재력은 예상치 못한 교란에 적응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이는 숲 커뮤니티의 리질리언스를 향상시킨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1호(2016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전진형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습지생태계 조성과 생태환경회복기술 개발,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활용한 도시 내 저탄소 경관 디자인 요소 개발 및 야생생물 군집 변화 모델링등 생태계 복원 및 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학적 이론과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다양한 디자인 시뮬레이션을통해 설계 단계부터 시공 후까지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여 대상지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생태적 조경 설계와 유지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교육하고있다. 최근에는 생태환경의 보존과 인간의 이용 및 개발의 조화라는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을 통한 생태회복성(eco-resilience)에관심을 갖고 이를 조경 분야에서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 전진형[email protected] /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 교수 / 2016년09월 / 341
  • [시네마 스케이프] 걸어도 걸어도 일상의 가치, 풍경의 깊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수필집 『걷는 듯 천천히』에서 풍경과 영화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어떤 풍경을 마주한 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내 쪽에 있는가, 아니면 풍경 쪽에 있는가? 나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세계를 생각하는가, 세계를 중심에 두고 나를 그 일부로 여기는가에 따라 다르다. 전자를 서양적, 후자를 동양적이라고 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후자에 속한다.” “작품도 감정도 일단은 세계에 내재해 있고, 나는 그것을 주워 모아 손바닥에 올린 뒤 보여줄 뿐이다.” ‘걸어도 걸어도’(2009년 개봉작, 2016년 8월 재개봉)는 감독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의 소회를 반영하고 있다. 삶의 어떤 순간, 한 가족의 기억을 담고 있다. 영화를 위한 구성이라기보다 생의 어느 한 부분을 툭 잘라서 보여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부모가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다른 세상으로 부모를 떠나보낸 자식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이건 다 내 이야기’다. 마지못해 억지로 한 일, 듣기 싫은 잔소리, 끝내 못 들어드린 부탁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오래 생각난다. ...(중략)... *환경과조경341호(2016년9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겨레 영화 평론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조경을 제목으로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영화를 삶의 또 다른 챕터로 여긴다. 영화는 경관과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관계 맺는지 보여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텍스트라 믿고 있다.
  •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 위기의 시대,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도모하다 2016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국가관 리뷰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열 이상으로 제15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열기가 뜨겁다. 올해의 총감독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제시한 주제 ‘전선에서 알리다’ 때문이다. 이 주제에 응답한 다수의 국가관들은 미학적 견해를 내려놓고, 전 지구적인 위기와 분쟁에 대응하는 건축의 사회 참여를 고민한다. 이번 글에서는 국가관의 화두를 통해 건축의 사회적 제안과 시대적 논의에 접근하고자 한다. 총감독이 기획한 본 전시는 다음 호에 이어서 살펴볼 예정이다. 세계는 이주, 난민, 전쟁, 재난, 주거난, 경제 위기, 분쟁, 테러 등 여러 심각한 문제들이 끊이지 않는다. 점점 더 극심해지는 사회적 위기를 의식한 것일까? 올해 건축 비엔날레는 이 위기의 현실 속으로 뛰어 들어가 건축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도모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렇게 전면으로 나선 적은 거의 없었다. 고고한 건축 미학을 유보한 데에는 올해 건축전의 총감독으로 선정된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의 사회적 의식이 바탕이 된다. 그는 올해의 주제를 ‘전선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로 두어, 지구적인 위기 속에서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고자 한다. 전장에서 건축의 적은 삶의 공간을 위태롭게 하는 세상의 온갖 위기들이다. 건축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제공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65개의 국가관들 다수가 자국의 사회적 위기, 도시 문제, 건축적 위기 등의 문제를 내걸어, 이를 해결하려는 건축적 시도가 여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이번 글에서는 여러 국가관의 이슈 중 난민 문제, 로컬의 건축 쟁점, 폐허로부터 재생, 위기의 환경이라는 네 카테고리에 주목해 오늘날 건축이 모색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과 제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41호(2016년9월호)수록본 일부 심소미는 독립 큐레이터이며 미술과 도시 관련 비평을 쓰고 있다.‘신지도제작자’(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2014) 등 현대 미술과 도시 연구를 매개한전시 기획을 해왔으며, 도시 개입 프로젝트 ‘마이크로시티랩’(2016)을 선보일 예정이다.2016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연구자 레지던시에 입주해 활동 중이다.
  • [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식물의 르네상스
    #93 식물원, 식물 수집, 식물 사냥 조각, 조형물, 분수가 아무리 근사하고 알레고리적 의미가 흥미롭다고 하더라도 식물과의 조화 속에서 비로소 빛이 난다. 르네상스 정원들을 보면 녹색 기하학이 지배하여 회양목, 주목, 사이프러스 외에는 별다른 식물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녹색 기하학의 정원’이라고 정의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르네상스 정원들은 조성 당시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두 후세에 복원된 것이며 고증을 통해 ‘이러했을 것이다’라고 유추하여 최대한 실제와 근접하게 재구성한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구조적 기본 틀과 개념을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실제로 자라고 있었을 식물을 재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높은 유지·관리비 때문에 포기하고 녹색 테두리를 두른 반듯한 기하학 속에 모래를 깔고 만다. 그러나 당시 정원을 직접 목격한 여러 증인에 따르면 수천 가지의 식물이 자라 풍성하고 화려한 것이 마치 낙원과 같았다고 한다. 물론 과장은 있겠으나 수많은 식물이 심겼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르네상스 정원이 완성될 즈음에는 휴머니스트들이 고문서 수집과 조각상 수집에 이어 식물 수집에 열을 올렸다. 그 많은 식물을 수집하여 정원이 아니면 어디에 심었겠는가. 다만 심는 방법이 지금과 많이 달랐다. 식물을 서로 자연스럽게 섞어 심은 것이 아니라 유형별로 나누어 따로따로 심는 것이 불변의 원칙이었다. 마치 오케스트라 구성과 같았다.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를 나누고 그 안에서 악기 종류에 따라 음악가들을 배치했듯, 르네상스 정원에는 교목, 관목, 수벽, 유실수, 초본 식물들의 위치가 따로 지정되어 있었다. 엄격해 보이지만 이들이 철따라 서로 어우러져 내는 수많은 화음은 풍성하고 화려했고, 때로는 웅장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1호(2016년 9월호) 수록본 일부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비롯 총 네 권의 정원·식물 책을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고정희[email protected] /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 2016년09월 / 341
  • [칼럼] 랜드스케이프, 더 비기닝
    올해 어느 때인가부터 일 때문에 속이 쓰리면 인류사 책을 짬짬이 읽었다.저마다 두꺼운 책 중 앞부분,정원과 조경의 시작이 궁금해서 시간을 거슬러갔다.복잡다단한 현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대략1만 년 전 농업 혁명이 일어나던 때다.여기서 실용적 가치와 심미적 가치를 따져서 농업과 정원을 엄밀히 구별한다는 것은 꽤 난감한 주제다.그보다는 우리 인류가 나름의 목적과 의도를 지니고 자연을 가꾸는 행위를 시작했다는 데 초점이 있다. 사들인 여러 권의 책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은 것은 올해 인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순위에 상당 기간 올라 있던『사피엔스』.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인 저자 유발 하라리는1만 년 전 지구에서 벌어진 혁명에 대해 다소 도발적인 견해를 내놓는다.알고 보면 농업 혁명은‘역사상 최대의 사기’라는 것이다.몇몇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밝혀졌듯이 초기 농업인의 영양 섭취와 건강 상태는 이전 시기 수렵 채집인에 비해 상당히 열악했다.농경을 시작한 결과 정착 생활을 하고 발아 단계의 도시와 문명을 창조했지만,어찌되었든 농지를 돌보기 위해서 전에 없던 가혹한 노동이 줄기차게 필요했다.인류라는 종의 관점에서는 개체수가 급격하게 늘었으니 진화의 법칙에서는 성공한 셈이지만,인간 개체의 입장에서는 처절하게 실패한 혁명이었다.인류가 거대한 진화의 법칙에 속은 것이다.더 매몰차게는 밀이나 쌀을 비롯한 일부 곡물의 성공적인 생존 전략에 인류가 선택 당했을 따름이다(고정희의 책 제목『식물,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는 이런 의미에서 더욱 절묘하다). 150억 년 전 물질과 에너지가 모인 아주 작은 점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대폭발하면서 생겨나 지금도 끊임없이 팽창하는 우주.언젠가는 다시 수축하면서 원래 블랙홀로 돌아가기까지 우주론과 물리학으로 설명하는 시간과 공간.그 망망한 흐름 속에서 잠깐 미미하게 살다가 다시 먼지로 돌아가는 셈이니 인간의 비루한 삶이란 애초부터 그랬던 것이다.또 지구에 터를 잡은 생명체라면 어쩔 도리 없이 도도한 진화의 법칙에 매일 수밖에 없다.법칙으로 환원되는 세계는 치밀하고 지루하며 끔찍하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작은 출구 하나를 열어 두었다.터키에 있는 괴베클리 테페는 약1만2천 년 전의 유적이다. 20여 곳에 달하는 기념물을 이루는 돌기둥은 총200개 이상이고,가장 큰 것은 무려 높이5.5m,무게7톤이었다.또 미처 완성하지 못한50톤의 돌기둥이 근처 채석장에서 발견되기도 했다.놀라운 점은 이 유적의 건설 시기가 농경의 시작보다 앞선다는 사실이다.또 이 유적에서30km떨어진 카라사다그 언덕은 밀의 변종이 최초로 생겨난 발상지로 밝혀졌다.그렇다면 수렵과 채집을 겸하던 모종의 집단이 어쩌다가 먼저 공동체를 이루고,종교를 비롯한 자신의 문화와 신념 체계를 만들었으며,이를 배경으로 아직까지 목적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기념물을 지었을 가능성이 있다.이렇게 예상 밖으로 농업 혁명은 실용적 목적보다는 이런 사회 문화적 동력에 의해서 생겨난 것일 수 있다.이렇게 본다면 오로지 과학의 법칙으로만 인간 환경을 설명할 수 없다.초기 인류사를 통해서 짐작하는 정원과 조경의 탄생은 대략 이런 풍경이었다. ...(중략)... *환경과조경341호(2016년9월호)수록본 일부 허대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졸업 후1999년부터18년째 조경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으며,느슨한 설계연대를 지향하는 스튜디오 테라(STUDIOS terra)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7년 전부터는 개인 주택정원,어린이 집과 학교의 외부 공간,놀이터,가로 공원,호텔 조경설계 및 감리 등 하나하나 성격이 다른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수행하고 있다.공간을 설계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나중에 그 곳에 머무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땅에 뿌리를 박고 실천하는 조경 설계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철새협동鳥합』을 여럿이 함께 쓰고,제프 마노의『빌딩블로그』를 함께 번역했다.
  • [조경의 경제학] 경관, 경제 활동의 배경에서 대상으로
    경관의 경제학은 가능한가?경관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이 낳은 수많은 것들로 이루어진 경관은 신이, 또는 대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한 무상 공여물이다. 문화 경관, 나아가 도시 경관조차 그러하다. 사람의 손이 닿아 형성된 도시도 그것을 조망하는 입장에서 보면 마치 산이나 바다와 같이 누가 보여주려고 일부러 만든 적이 없는(만들 수도 없는) 광활한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도시는 사람이 만들었지만, 도시 경관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이러한 경관이 경제 활동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경관을 경제 활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정당할까? 애덤 스미스(1723~1790)를 출발점으로 본다면 경제학의 역사는 참으로 짧다. 그러니 그것이 다루어본 대상도 매우 한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 충만한 경제학자라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경관에 대해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여기서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이란 경관이 거래되어 가격이 형성되고, 가격에 의해 적정한 수요량과 공급량이 결정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경제학적 관점에서 경관을 고찰하기 전에 경제학자나 조경학자가 경관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면 그 작업의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자는 자연환경이 인간의 경제 활동에 세 가지 측면에서 유용하다고 본다. 자연환경은 경제 활동을 위한 자원을 제공하고(resource supplier), 경제 활동의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처리하고(waste assimilator), 자연 또는 경관 그 자체로 쾌감을 준다(direct source of utility). 그런데 이 중 첫 번째 유용성을 다루는 분야는 자원경제학, 두 번째 유용성을 다루는 분야는 환경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상당한 연구가 진행되어 있으나, 세 번째 유용성을 심도 있게 다루는 경제학의 분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연이 아닌 도시의 경관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에 비해 조경학자는 경관 분석에 대한 접근 방법으로서 생태학적 접근 방법, 미학적 접근 방법, 철학적 접근 방법과 나란히 경제학적 접근 방법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자연환경의 가치를 화폐 단위로 측정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어 경관 시장의 메커니즘과 같은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경관의 경제학이 이렇게 전문가들에게 홀대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경관의 가치가 낮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경관이라는 대상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다루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 환경과조경 341호(2016년 9월호) 수록본 일부 민성훈은 1994년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2년간 일했다. 그 후 경영학(석사)과 부동산학(박사)을 공부하고 개발, 금융, 투자 등 부동산 분야에서 일했다. 2012년 수원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가장 오래 가졌던 직업은 부동산 펀드매니저다.
    • 민성훈[email protected] / 수원대학교 도시부동산개발학과 교수 / 2016년09월 / 341
  • [그들이 설계하는 법] 연필을 놓는 법
    19 불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의 멋진 점은 제목과는 다르게 역설적으로 소설 속에서 불멸이 배제된다는 것이다. 소설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첫 번째 주인공의 얘기가 한참 전개되고 있을 때 주인공의 주변을 스쳐 지나간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배경 인물이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며, 소설은 그 사람의 관점에서 다시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세 개의 연작 중편은 여러모로 쿤데라를 연상시킨다. 한강이 인정하건 아니건 ‘몽고반점’과 ‘나무불꽃’으로 이어지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쿤데라에게 바치는 일종의 오마주처럼 보인다. 물론 쿤데라조차도 에리히 레마르크의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한 수 배운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그들은 하나 같이 인생의 본질은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며, 또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불멸』에서 우리로 하여금 무한한 애정을 갖게 만든 여자 주인공은 소설 중간에 (자살을 시도하는 어떤 멍청이 때문에) 뜬금없이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쿤데라의 다른 소설에 붙여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제목은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에 붙였어야 했다. 또 다른 주인공이며 여자 주인공의 아버지이기도 한 남자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과 관련된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자신의 물건, 자신에 대한 기록을 포함하여 자신을 기억하게 할 만한 모든 것들을 모조리 없애기 시작한다. 자신이 죽었을 때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려고 말이다. 쿤데라는 이 주인공을 통해 어차피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니 그럴 바엔 아예 기억되지 않는 것도 가치가 있다는 점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건 우리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지독하고 잔인한 페이소스기도 하다. 하지만 이 터무니없는 페이소스가 이렇게 마음에 와 닿으니 참 터무니없는 일이다.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몇천 년을 버텨왔으니 앞으로도 영원할까. 앞으로 잘하면 몇백 년, 더 잘하면 몇천 년 갈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 * 환경과조경 341호(2016년 9월호) 수록본 일부 진양교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조경학과 및 도시지역계획학과에서 공부했으며, 강원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1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2년부터 CA조경기술사사무소를 열고 실무의 최전방을 절절하게 체험하고 있다. 2010년 봄부터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의 전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주요 설계 작품으로 하늘공원, 한강 반포공원 등이 있으며, 저서로 『기억과 상징으로의 여행』, 『건축의 바깥』 등이 있다.
    • 진양교[email protected] / CA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 2016년09월 / 341
  • [에디토리얼] 출판기피증
    짐작하건대 『환경과조경』에서 독자 여러분의 시간을 가장 덜 빼앗는 꼭지는 ‘워크 & 크리티시즘work & criticism’, 특히 외국 작품이 실린 지면일 것 같다. “그냥 사진발 아닐까?” “페이스북 링크에서 두 달 전에 이미 본 건데?” “설계비 제대로 받을 수 있고 공사비 넉넉해서 좋은 재료 쓸 수 있으면, 설계자가 합리적인 조건으로 감리까지 할 수 있으면, 우리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뭔가 다르고, 근사하네! 다음에 시간 날 때 제대로 읽어보자.” 적지 않은 독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작품 지면을 빛의 속도로 넘기실 것이다. 작품을 설명하는 텍스트를 정독하는 독자는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환경과조경』 리뉴얼을 기획하던 3년 전 가을, 가장 큰 혁신이 필요한 지면은 작품 꼭지라고 많은 사람이 입을 모았다. 사진의 질을 높인다, 해외와 국내 작품의 비율을 잘 조율하는 건 물론이고 국내 작품을 적극적으로 발굴한다, 사진만 나열하는 화보식 구성을 극복하고 가급적이면 비평을, 아니면 설계 노트나 인터뷰라도 함께 싣는다는 큰 편집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해외 작품의 비율을 낮추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조경 전문지가 국외의 최신 경향이나 디자인 쟁점에 지면을 할애하는 게 잘못된 방향은 아니다. 다양한 경로의 취재와 조사, 여러 단계의 검토 회의를 통해 양질의 외국 작품을 선정하려고 애쓰고 있다. 실은 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잘 알려진 유수의 세계적 사무소든 가진 거라곤 의욕밖에 없는 동구권의 신생 사무소든 대체로 해외의 조경설계사무소에서는 반응이 아주 빨리 오기 때문이다. 게재 의사를 타진하면 대부분의 경우 잘 정리된 텍스트, 저작권이 해결된 사진, 출판에 최적화된 도면과 그래픽 등이 한 묶음으로 며칠 안에 바로 날아온다. 작은 사무실이더라도 홍보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를 따로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디자인이 크게 바뀌었어요. 초기 콘셉트와 완전히 달라져서 우리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재하도 업체가 시공을 한 터라 완성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감리 계약을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니 설계 이후의 과정에 참여하기 어려운 실정이에요. 우리가 설계한 거라고 도저히 보기 어렵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점점 터무니없어져서 결국 산으로 갔어요. 말도 하기 싫어요.” “이제 겨우 완공해서 식재가 아직 볼품없을 텐데요.” “준공 직후라 지주목이 나무보다 더 주인공이에요.” “관리가 안 되어서 엉망이에요.” 홍길동도 아니고 자기 작품을 자기 작품이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 근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국내설계사무소에 연락을 하면 흔히 들을 수 있는 하소연이다. 섭외 단계부터 녹록지 않다. 어렵게 섭외가 되더라도 게재까지 걸리는 시간이 해외 작품보다 서너 배는 더 길다. 작품 구하기부터 지난하다 보니 비평 의뢰는 말할 것도 없다. 조경설계사무소가 넘쳐나는 이 땅에 작업의 양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예전처럼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대부분의 조경가가 작품 게재를 꺼려하거나 기피하는 현상. 우선 시스템 상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설계와 감리, 설계와 시공이 호흡을 함께 할 수 없는 제도적 여건 속에서 설계자의 의도대로 작품이 완성되기 어렵다. 잦은 설계 변경과 클라이언트의 비합리적 요구를 겪고 어렵게 실현해낸 작업이지만 만족스럽기 쉽지 않다. 적어도 수천 명의 손에 들릴 잡지를 통해 공개하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물론 겸양의 미덕이라는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잡지 편집자로서의 편향된 시각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조경가들에게 출판에 대한 마인드가 조금 부족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매체를 통해 작품을 출판한다는 것은 현재의 산물과 그 수준을 기록하고 공론의 영역에 소통시키는 과정의 첫걸음이다. 이런 거창한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다. 출판은 홍보와 마케팅을 위한 아주 현실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출판에 신경 쓰고 정성 들이는 게 오히려 경제적이다. 열악한 설계 환경, 미비한 제도, 침체된 경기에 대처하기도 벅찬데 작품은 대체 뭐고 출판이 무슨 소용이냐는 반론이 벌써부터 들려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신세 한탄, 소모적이다. 불안감과 피로감을 확대 재생산할 뿐이다. SNS에 작품 이미지를 올리는 것처럼 즐겁게 『환경과조경』의 문을 두드려주시면 좋겠다. 『환경과조경』의 작품 지면은 일생일대의 역작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동시대의 실험과 성과를 함께 나누고 이야기하는 생산적 공간을 지향한다. 모처럼 이번 달에는 오피스박김과 이화원의 근작 여섯 개를 담는다. 지난 10년간 자신만의 설계 문법을 실험하고 구축해 온 그들의 작품에 독자 여러분의 시선이 오래 머무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