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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수앞바다 장군도의 풍경이 아련한 곳 ; 전남 여수시 중앙동
    지는 그나마 개발의 여파가 덜 미쳐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동안 지자체의 근시안적 개발정책으로 일부는 상당부분 그 자연성을잃어가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오동도가 그 대표적인 예로 보인다. 지난 1968년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동도는 7백미터가 넘는 긴 방파제가 육지로 연결된 아름다운 섬이었지만 지금은 횟집을 비롯한 각종 상업시설과 유희시설 등 섬전체가 돈벌이를 위한 공간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해상공원으로 만든답시고 바닥은 온통 시멘트에다 장삿집만 늘어나고 있으니 오동도 고유의 아름다운 자태가 유지되기는 만무한 것이다. ‘친환경적인 개발’이라는 말이 이젠 보편화되고 있는 요즘, 오동도 역시 그 고유의 자연성을 최대한 살려나가면서 그에 맞는 적절한 시설과 엄격한 보존관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얼마전 여수에 내려가 내가 살던 고향집 주변을 둘러본 적이 있다. 아버님마저 떠나오신지 꽤 오래된 우리집은 마당도 건물도 모두 달라져 있었고 주변으로는 덩치큰 아파트들이 키낮은 주변 건물들을 위압하듯 버티고 있어 어색함을 감출 수 없었다. 예전의 모습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것이야 인간사 어딜가나 마찬가지겠지만 늘 그 곳에 그러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길 바라는 것은 나만의 향수어린 이기심일까? 그래도 아직 몇몇 고향 친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바쁜 방송생활속에서도 불쑥 찾아가 싱싱한 회 한접시에 소주한잔 나누는 정겨움을 맛볼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내겐 큰 행운이리라. 이번 주말에는 여수에나 한번 내려갔다 와야겠다. 가을에 보는 장군도가 아름다울 것이다. ※ 키워드: 여수, 전남, 중앙동, 장군도, 풍경 ※ 페이지 136 ~ 137
    • / 1999년11월 / 139
  • ASLA,‘ 왕후의 밥 걸인의 찬’ ; ASLA 100주년 기념 세미나
    Urbanism: Visions for the next 100 Years 다음에 올 새로운 세기의 비전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Sustainability와 New Urbanism이 그것이다. ·Sustainability : 지속가능한 개발 혹은 발전이라는 개념으로 이미 금세기 후반부에 등장한 이것은 인류문명의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단순히 보수 혹은 개조 정도의 컨셉에서 발상을 전환하여 공간을 다루는 모든 부문에서 적용되어야 할 과제다. John Lyle의 말을 빌면, “우 리의 행동과 환경의 패턴을 바꾸어야 함은 물론, 디자인의 컨셉설정이 새로워져야 하고, 복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New Urbanism : Neo-traditional Design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개념은 지금까지의 디자인 방향을 전환하여 일종의 전통 회귀적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기존의 도시화가 가져왔던 사회적 문제와 병폐를 치유한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적정규모의 공동체 단위를 찾고 이 단위들이 서로서로 전이 공간을 통해 지역적 통합을 이룩하는 방식이다. 결국, 두가지 개념 모두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복합화 이론Complexity Theory에 주목해야 한다. Professionalism in the 21st Century 앞으로의 시대는 전문가의 시대라는 보편적 예측에도 불구하고 현재 다음과 같은 4가지 모델이 제시되고 있다. ·세계 공동체가 본격화되고 조직 관리의 전문화가 진전됨에 따라 전문 분야의 일상화가 진행될 것이다. ·지식사회의 발전이 가속화됨에 따라 전문가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인간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틈새시장이 발달함으로써 전문 분야의 다기화가 증대된다. ·후기 현대사회가 극단적으로 다양화의 길을 걸으면서 전문가들은 감성적 접근과 해결책 모색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 하에 조경의 21세기는 다음과 같이 예측할 수 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조경은 법률분야와 같이 사회의 지도적 엘리트 계층에 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표준화가 계속 진행됨에 따라 부문이 위축되는 지표는 아직없다. 조경은 여전히 손과 머리가 작업을 주도하는 부문이기 때문이다. ·조경 부문의 수직 체계화 및 다변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의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자격증을 디자인, 프로젝트 관리, 학문 분야로 세분화하고 있고, 뉴질랜드에서는 조경학 석사 학위 소지자가 부문의 Underclass로 자 발적으로 편입하는 경향도 일어나고 있다. ※ 키워드: ASLA, ASLA100주년, 세미나 ※ 페이지 144 ~ 147
    • / 1999년11월 / 139
  • 18세기 실경화와 조경
    경복궁 향원지 「北闕圖形」(북궐도형)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정신문화원 장서각, 고려대학교 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다. 북궐은 경복궁의 별칭으로 조선시대에는 삼대 궁궐이있었는데 북쪽의 경복궁을 북궐(北闕), 동쪽의 창덕궁과 창경궁을 동궐(東闕), 서쪽의 경희궁을 서궐(西闕)이라 불렀다. 「北闕圖形」지도는 고종 대에 중건된 경복궁의 건물 및 문루 등의 배치를 그린 평면도 중 향원지(香遠亭) 부근에서 북문인 신무문(神武門)에 이르는 지역이 표현되어 있다. 이 지도에는 가로 세로 각 1.14㎝의 적색 방안(方眼) 위에 각 건물의 구조 및 크기가 나타나 있는데 칸과 칸을 검 은 먹선으로 구분, 각 칸에는 방(房), 청(廳), 주(廚), 문(門) 등의 건물 쓰임새를 기록하였다. 또한 주요 건물에는 건물 이름, 공포형식, 칸수, 기둥의 높이와 간격등을 기입해 놓았다. 「景福宮配置圖」는「北闕圖形」과 거의 유사한 배치도이나, 이 지도가 좀 더 이전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전체 지도의 크기는 세로 265㎝ 가로 407㎝에 달한다. 전체적으로 이 지도가 이전 지도보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건물의 명칭, 기능 등이 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후원(後苑) 에 속하는 향원지는「北闕圖形」과 조금 다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향원지는 1456년(세조 2)에 조성되어 취로정(翠露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연꽃을 심었다고 한다. 연지(蓮池)의 북쪽에는 1873년(고종 10년)에 건청궁(乾淸宮)을 지으면서 연지를 개축, 섬에다 2 층의 육모정인 향원정을 지었다. 또한 북쪽 건청궁에서 향원정에 들어가는 나무다리를 설치하고 이를 취향교(醉香橋)라 하였다. 최근 향원지의 실측도와「北闕圖形」과「景福宮配置圖」에서의 향원지의 형태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옛 지도에서는 연못 내의섬 안의 육모정이나 북쪽에 설치된 다리 등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향원지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생각된다. ※ 키워드: 18세기, 실경화, 조경, 실경화와조경 ※ 페이지 156 ~ 157
    • / 1999년11월 / 139
  • 위대한 조경가 옴스테드의 역정
    호사다마의 역정 동생 존이 사망한 뒤 부인 메리는 세명의자녀를 하트포드에서 혼자 키우다가 옴스테드 사무실 가까운 맨하탄으로 옮겨오게 된다. 옴스테드는 자기와 가장 절친했던 동생의 부인이 혼자 조카들과 고생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와 자주 들러 위로하고 조카들과 놀아주는 동안 메리와 정이 들어 1859년 6월 13일 옴스테드 37세, 메리 29세에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낳았다. 신혼여행을 갈겨를도 없이 옴스테드는 공원공사 감독에 바빴는데 1858년 겨울에 이용할 수 있도록 6개월만에 스케이트장 겸 연못을 완성했고, 산책길 조성은 다음 여름까지 마쳤다. 그리고 국내 처음으로 잘 훈련되고 유니폼을 입 힌 24명의 경비원이 배치되어 질서를 유지시키고, 드라이브길에 상업용 차량은 금지시켰으며, 속도를 완속시키고, 동물을 풀밭에 방목하지 못하도록 했다. 도박이나 매춘도 철저히 막고 밤에는 공원의 문을 닫았다. 그러나 너무 과로한 나머지 건강이 악화되어 1959년 9월 28일에 위원회로부터 5백 달러와 6주의 휴가를 얻어 결혼한지 3개월만에 부인과 애들을 동반하지 않고 혼자서유럽 공원여행을 떠났다. 옴스테드는 시간을 헛보내지 않고 리버풀에 도착하자 바로버큰헤드공원에 다시 찾아 시공·관리·운영에 관한 자료를 입수했고, 이틀후에는 버밍험에 들려 하수처리공장을 견학했으며, 시장을 만나 새로 개장한 아스톤공원에 관하여 인터뷰를 가졌다. 팍스톤을 만나기 위하여 챠트워즈에도 들렀으나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또 스코틀랜드 원예가 로돈(JohnCaludius Loudon)이 설계한 더비식물원도 찾았을 뿐만 아니라 농촌지역과 런던 대공원들을 답사했고, 파리로 건너가 대공원들과 교외 공원들도 둘러 보고, 브루쉘의 공원들도 찾아갔다. 이런 답사외에도 책과 계획 도면, 기술정보를 입수하고 사진사를 고용하여 기록사진을 찍기도 했으며 수목을 구입하여 뉴욕으로 실어보내기도 했다. 옴스테드는 이번 여행을 통해 그의 시야를 넓힐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브라운의 작품이나 베르사이유의 기하학적인 궁원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고, 6주간이 3개월로 연장되었는데 돌아오자 많은 업무가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중앙공원 설계작품이 영국과 유럽 조경가들 에게 널리 알려져복스와 응모 당시는 초보자였으나 이제는 유능한 베테랑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첫해 겨울 연못이 얼자 스케이트광들이 몰려들고 마차길은 마차행렬이 줄을 이었으며, 산책하러 온 사람, 백조에 먹이 주러 온 사람, 호수에서 보트타러온 사람 등 큰 호응을 얻게 되었고, 1859년 7월부터는 위원회에서 토요일 오후 무료 음악연주회도 개최하여 많은 시민들을 끌어 들였다. 이 중앙공원은 아주 마술적인 장소가 되었고, 기분좋은 레크레이션 장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맛볼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공사비가 증액되어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당초 공사비는 1백50만달러로 책정됐는데, 1년후 설계변경으로 2백만달러로, 1860년 1월에는 2백50만달러로 증액되어야 했으며, 공사를 완공하는데는 1천3백만달러 이상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한다. 옴스테드가 유럽여행중 위원회에서는 1859년 10월 5일 회계검사관으로 그 린(Andrew Haswell Green)을 임명했는데 그는 매우 꼼꼼한 경리인이었다. 옴스테드보다 2살 많지만 서로 자라온 과정에 공통점도 많아 친구로서 잘 지낼 수 있었고 옴스테드가 감독으로 임명받고 일등으로 당선되는 데도 큰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옴스테드가결혼한 뒤에 독신이었던 그린은 자주 옴스테드 집에 들러 식사도 하고, 특히 유럽여행중 혼자있는 메리를 자주 찾아 다니며 사이가 가까워진데다가 그린이 회계검사관으로 임명되어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바람에 그린과의 사이가 악화되어 공사진행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는 1861년 1월 22일 정식사표를 제출했으며, 그후 중앙공원 공사에 옴스테드는 미지근히 참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한 마차사고로 영구적인 절름 발이 신세가 되는 등 설상가상으로 불행이겹치기도 했다 ※ 키워드: 조경가, 옴스테드, ※ 페이지 148 ~ 155
    • / 1999년11월 / 139
  • 경관이라는 화두
    경관을 화두로 삼기까지 이렇게 조경 공부를 시작한 지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한것이 여럿이지만,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나의 관심사는‘경관’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여느 관심사가 아니라 외람되지만‘화두’라고 부르기로 하고 이것을 알고 깨닫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삼고 있다. 이 말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저 조경의 대상이 되는 차원의 경관이 아니라, 세상 그자체, 나와 다른 이들의 삶과 불가분인 세상 그 자체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봄(視)’에서 시작하여‘앎(知)’을 거쳐 나의 존재와 세상의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명제인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관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에서‘경관예술론’이라는 과목을 강의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 과목은 1981년에 전임강사가 된 후에도 계속 맡아 왔고, 그 후‘경관의 해석’이라고 이름을 바꾼 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이것이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한 10년간 가르친 다음이었다. 경관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그 뜻은 어떠하다는 것을 가르치면서 곰곰이 생각 하게 되고, 잘 가르치기 위해 여러 책을 뒤적이면서 좀 더 알게 되고, 그래서 경관을 조경이 아닌 다른 눈으로 보고 느끼게 되면서 더욱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지리학과 생태학에서 보는 경관의 의미와 의의를 알게 됨으로써 과학적 이해가 깊어졌다면, 문학과 예술에서 보는 경관의 의미와 의의를 다시 한번 살펴봄으로써 문화적 이해가 깊어지는 것으로 자각된다. 그러나 원체 둔재인지라 20년을 공부해도 여전히 잘 모르겠고, 그래서 내친 김에 평생의 화두로 삼게 된 것이다. ※ 키워드: 경관, 조경 ※ 페이지 30 ~ 35
    • / 1999년11월 / 139
  • 우리시대의 설계언어 ; 프랑스 - 정원, 대자연을 설명하는 화두
    대자연과 정원, 생태소(生態素) 오늘날 경관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곧 환경전체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경관을 만드는 모든 단계의 작업 과정에서 환경과 생태학, 도시와 인간의 문제 등이 마치 조경의 고유영역인 듯 이야기되고 있다. 여기서 새로운 현상으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경관이 더 이상 한정된 공간만을 다루는 화두(話頭)가 아니란 점이다. 지리학, 도시계획, 인류학, 지질학, 역사학, 예술 등의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언어를 길어 올리며 마치 대우주를 다루는 듯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되자 땅을 직접 일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경관과 그들의 언어는 어느 한 편으로 밀려나 잊혀지고 있다. 지도를 펴고 바라볼 때 도로만 바라보며 그 사이에 끼워진 땅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사실 우리는 언젠가는 문제점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그런땅들을 만날 때 그 땅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경관을 논하기 전에 땅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새나 짐승이 사는 황무지, 갈아놓은 전답, 개간 예정 잡목림, 수렵 금지구역, 밀림, 소택지 등등 땅의 다양한 모습들은 세계 각처에 걸쳐 한이 없다. 프랑스를 보면 마끼, 가리그, 마또랄, 말레, 샤빠랄, 핌보 등과 같이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농부와 정원사들만의 직업적인 토속어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 은어(隱語)들은 모두 땅이나 토종 식물들을 지칭하고 있다. 이런 지역성은 모두 매우 뿌리 깊은 언어의 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세계는 굳게 닫혀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사실 지중해로 면한 프랑스 남부 시골의 화초들을 보면 칠레나 호주, 캘리포니아, 남아공 등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토종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간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가시나무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해서 가 시나무과란 화초군의 범주를 만들어 볼 수있다. 즉 가뭄에 잘 견디며, 불에 잘 타고, 땅딸막한 형태이며, 가시가 있고, 침엽수 계통이며, 질기고 덤불을 이루는 특성을 지니는 식물로 그 공통점을 잡아낼 수 있다. 여하튼 각 지역마다 다르게 부르고 약간씩 다른 특성을 나타내는 것은 그 식물의 기의(記意enonce , 註: 記表와 記意의 언어학적 구분에 따름)인 셈이며 공통적인 것은 그 식물의 존재 양식이다. 이 존재양식을 지칭하기 위해 비옴(biome), 즉 생태소(生態素)란 단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특별한 어휘가 지정되어 있지 않다. 식물의 이름은 그 식물이 자라나는 지방을 표현하는 은어적특성이 강하므로 식물의 다양한 이름을 이해하는 것은 또한 지구상의 여러 지역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정된 한 지역과 그 외부의 여러 지역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서로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것은 정원과 대자연이 서로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연관성을 가지는 것과 같다. 정원은 대자연에 기의(enonce)를 부여한 형태이며 대자연과 생태소(biome)를 공유하고 있다. ※ 키워드: 프랑스, 정원, 대자연, 자연 ※ 페이지 50 ~ 57
    • / 1999년11월 / 139
  • 조경석다루기
    금강산 일만 이천봉! 노래로도 불려지듯이 이 얼마나 절묘하고 아름다운 암경(岩景)인가. 창조주가 인간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설악산의 암경이나 계곡의 아름다움에 반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자연의 폭포를 본떠수석(樹石)과 치석(置石)으로 꾸민 인공폭포가 삼국시대 중기의 뜰에 등장하였다. 우리나라를 위시하여 중국과 일본의 전통정원의 가장 중요한 공통적인 특징의 하나는 뜰을 꾸미는데 주재료로 자연석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신선사상에 입각 한 옛 선조들의 멋과 정서를 엿볼 수 있는대목이다. 그 옛날에는 나무심기를 수석(樹石)정원의 부대공사쯤으로 생각했으나 언제부터인가 돌쌓기(놓기)가 나무심기의 부대공사쯤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는 조경에서 돌의 위치가 상당히 중요하며, 돌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아름다운 조경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법면에 돌을 쌓을 때 토사의 붕괴를 막는 축대 개념으로만 생각하고 한가지 방법으로만 알고 쌓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조형미를 살려서 설악산을 옮겨 놓을 수도 있고 금강산을 옮겨 놓겠다는 정신으로 쌓는다면 보다 훌륭한 자연미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선조들이 만든 성곽모양을 재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창조적인 사고와 기술적인 경험이 풍부한 작가의시공능력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돌을 쌓기 전에는 그 주위의 경치, 가령 뒷 배경에 산이 있으면 그 산의 높이, 모양, 경관, 혹은 주위에 물이 흐르는지아니면 건물이 있는지 건물이 있으면 얼마나 떨어져 있으며 모양이 어떤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전체적으로 주변의 환경에 따라 폭포의 위치, 높이, 모양, 연결부위의 연 못의 크기, 모양을 선정하여 상상을 하며머리 속에 앞으로 만들 작품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예측되는 광경을 그림으로 그리는것도 좋은 방법인데 제대로 된 그림에 따라 작품다운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릴 줄 알면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사물을 보는 시각의 변화를 느낄 수 있으며 거 기에서 새로운 창작의 눈이 떠지는 것이다 ※ 키워드: 조경석 ※ 페이지 158 ~161
    • / 1999년11월 / 139
  • 세계의 공원순례 ; 다링하버의 탬버롱공원 ; 도시복합재개발의 중앙에 위치한 역사적 의미의 공원 -
    호 시드니의 다링하버는 워터프론트(Water Front), 도심재개발(Redevelopment)의 대명사로 불 리어지고 있으며 다용도 복합 토지이용의 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시드니 도시역사 발전과 맥을 같이하며 영화와 부침의 양면을 모두 경험한 독특한 지역으로 이제는 도시민의 가장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다. 격자형의 시드니 중심가를 바라보고 왼편에는 도심에 산소를 공급하는 거대한 식물원이 생태를 기반으로 하여 오페라하우스까지 연결되어 있다. 바둑판과 같은 도로 패턴위에 고층건물로 숲을 이룬 중심부 바로 옆의 다링하버는 상대적 의미로 인위적으로 조성된 탬버롱공원(Tumbalong Park)이 현재와 미래의 도시공원이 어떠한 모습으로 그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역할이 틀린 두 개의 공간을 자연형의 공원과 인공형의 공원의 양면으로 모두 만족시키는 시드니의 도시개발계획은 시민들에게 자연친화적인 공간과 도시적 문화와 레저활동의 주무대 공간으로 두 개의 대규모 공원을 제공하는 전략적 기획을 통해 시드니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든 것이다. 1년에 1천5백만명 이상이 다녀가는 다링하버의 중앙에는 탬버롱공원이 있다. 이 공원을 중심으로 양옆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미래를 상징하는 각종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시드니 수족관, 컨벤션 및 종합전시장, 세계 최대규모의 아이맥스 영화관, 세가월드의 실내주제공원, 카지노, 국립해양박물관, 중국정원, 하버사이드쇼핑센터, 파워하우스 박물관, 호텔 등의 건물이 탬버롱공원 을 중심으로 양측에 펼쳐져 있다. 이 건물과 시설물을 하나의 주제로 엮어주는 역할을 탬버롱공원이 하고 있는 것이다. 탬버롱공원은 시드니 시민들이 수시로 방문할 수 있도록 모노레일이 시 중심가와 연결되어 있다. 탬버롱공원은 시드니에서도 두 번째로 큰공원으로 이곳의 어린이놀이터는 공원과 건물간의 완충역할을 하며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통해 공원에 온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재즈페스티벌, 서커스, 음악프로그램, 크리스마스 축제 등 다양한 이벤트가 탬버롱공원의 중앙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다링하버 전지역에서 1년에 7백여 건의 이벤트가 벌어지 고 있다. ※ 키워드: 다링하버, 탬버롱공원, 공원, 호주 ※ 페이지 140 ~ 143
    • / 1999년11월 / 139
  • 갯벌, 영원의 주름
    잡초와 야생화, 나뭇가지와 잎맥, 벌레와 거미줄을 거쳐 도달한 것이 바로‘갯벌’이다. ‘갯벌’에는 지금까지의 관심과 생각들이 집약되어 있다. 갯벌은 너무도 큰 상징의 세계이다. 드러내어‘생명체’를 그리지 않아도, 무한히 많은 생명들이 얽혀 숨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물이며 동시에 땅인 중간지대, 천변만화하는 주름들의 반복패턴, 햇빛과 물과 바람이 만들어내는‘환경’과 ‘생명’을 굳이 나눌 수 없는 막막한 에너지의 장이다. 이렇게 귀가 먹먹하도록 현란한 무늬의 홍수 속에서, 혹은 온몸이 해체되어버릴 것같은 적막함 속에서, 붓 들고 춤추는 자. 바로 그 모습이 현재의 나의 지향점이다. 또한, 무지막지한 경제논리에 맞서 치열하게 캠페인을 전개해 나가는 분들에게 늘빚진 마음을 갖고, 그림쟁이로서 작은 힘을 보태고 싶은 것이다. 이른바‘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란‘제대로 된 작품을 만 드는 일’임을 믿기 때문이다. ※ 키워드: 갯벌, 바다, 생명체, 영원, 환경 ※ 페이지 134 ~ 135
    • / 1999년11월 /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