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도시 속의 테마경관 탐색(2) _ 역사도시의 고도
    역사 경관이란 시간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경관의 변모과정을 파악하여 지구의 생성으로부터 인간이 지구상에서 존재하기 시작한 과거사를 통해서 경관을 어떻게 이용했는가하는 측면, 과거 어떤 시대, 어떤 지역의 기술, 문화, 사건 등 인간의 자취와 사연이 깃들인 장소들에 대한 인식 등 넓은 의미로는 인간이 오락이나 기타 목적으로 보전해온 자연지역들까지도 이에 포함한다. 이는 지금까지 주로 먼 역사유적지에 치중했던 것에서 이제는 현재와 가까운 시간대의 경관까지도 역사경관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으며, 종전의 관이나 상류계급의 문화 유산에만 치중하던 기준에서 탈피하여 우리의 일상적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시민들의 삶의 현장이나 장소 그 자체의 보전이나 활성화가 요구되며 보다 총체적이고 진실한 역사의 연속성을 도시 내재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볼 때 본고에서는 오랜 도시역사의 나이테만큼이나 지워지지 않고 어떤 강한 환경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자존심과 같은 대상이며 교훈으로써 존재하는 역사도시의 옛길들 중 로마의 비아 사크라(Via Sacra)와 파리 몽마르뜨(Montmartre) 언덕의 거리, 영국 요크(York)의 샴블즈(Shambles)거리 그리고 일본 나라(奈良)의 나라마찌(奈良町)를 탐색하여 시사점을 찾아보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역사도시인 경주 쪽샘거리와 비교해 보았다. ※ 키워드 _ 테마경관, 도시경관, 고도, 역사도시 ※ 페이지 _ 86-91
    • / 1999년05월 / 133
  • 어머니가 쥐어 주시던 단감이 그리운 곳 _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군
    고향.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다. 고향에서 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그렇게 인생을 살아간다. 모두에게 고향은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며 가슴 따뜻한 곳이기에 삭막하기만 한 도시생활을 벗어나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만 간다. 나도 충분히 공감한다. 내 자신이 매우 힘들고 고달플때, 그리고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낄때, 고향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는 예전의 그 풋풋한 공기와 바람을 만나면서 삶의 활력을 찾고 어머니의 된장국과 보리밥을 먹으면서 도시에서 생겼던 온갖 병을 깨끗이 치유하곤 했다. 그리고 다시 도시로 가서 치열한 삶을 살아갔다. 지금 나는 하루하루가 바쁜 도시생활의 일정속에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며 나름대로 충실한 삶을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고향으로 꼭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있다. 김원일의 소설‘노을’을 보면 봉화산이라는, 말이 달리는 모양처럼 생긴 바위산이 하나 나온다. 봉화산에는 오래된 절터가 있고 옆으로 드러누운 부처님 와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가야시대의 것이라고 하여 자왕골이라고도 한다. 1946년 8월, 나는 봉화산과 자왕골을 등지고 있는 김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어릴적 나는 그곳에서 칡을 캐고 진달래를 따고 꼴을 먹이러 소를 몰고 다니기도 했다. 친구들과 나는 소를 골짜기에 몰아넣고 개울가에서 목욕도 하고 물장구도 치며 놀았다. ※ 키워드 _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군, 고향, 노무현 ※ 페이지 _ 72-73
    • / 1999년05월 / 133
  • 젊음의 도시 부천, 회춘(回春)의 도시 의정부
    그동안 몇 회에 걸쳐 여러 중소도시들을 답사하면서 느낀 것 중의 한가지는 그 도시의 위치조건과 제반 여건을 감안한다면 도시의 살림살이가 들여다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공원을 거닐다 보면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그 도시의 배경이 담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울 수도권 인접도시들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고 내일에 대한 모습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그중 서울의 서쪽인 한강하류에서 새롭게 커가고 있는 경기도 부천富川시와 서울 북부 도봉산 너머의 의정부議政府시는, 한강의 의미와 수도로서의 위상 조건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가를 비교하기로 하였다. 마침 필자가 태어난 곳의 주변이기도 하고 성장기 때의 정서가 남아 있는 곳이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우선 경인(京仁) 전철에 올라탔다. 1960년대 말(1967년)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을 때,“ 도로가 달린다”라고 신기해하기도 하였고 스튜어디스(초창기의 안내양)들도 멋쟁이였기에 서울을 벗어나는 나들이로는 인기가 있었던 코스였다. 특히「소사」의 복숭아는“수밀도”라 하여 수원의 딸기, 안양의 포도와 함께 소문난 맛으로 유명했었고, 요즈음과 같이 4, 5월 복사꽃이 필 때에는 들판의 아지랭이와 함께 서울의 젊은이들을 유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과 붙어버려 그나마의 한적한 경치는 볼 수도 없게 변모되어 버렸다. 부천시는 1973년 시로 승격되기 전까지만 하여도 일명 “복사골”이라는 마을이었는데 경인 철도가 전철이 되면서 ’98년말 현재 78만의 대도시로서 25년 동안 무려 12배 이상의 인구증가를 보여주고 있다. ※ 키워드 _ 부천, 의정부, 공원탐방, 도시탐방, 도시이야기 ※ 페이지 _ 76-79
    • / 1999년05월 / 133
  • 18세기 실경화와 조경(10)
    옥류천 주변 _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창덕궁은 광해조에 복구되기 시작, 후원(後苑)의 경우 인조대에 들어와서 수많은 정자가 새로 건립되고 물을 끌어들여 조경을 하여 현재와 같은 큰 규모로 만들어졌다. 우선 인조14년에는 후원의 가장 북방에 옥류천(玉流川)을 개착(開鑿)하고 옥류천 주변에 환서정(歡逝亭), 운영정(雲影亭), 청의정 등을 세웠다. 환서정은 후에 이름을 소요정(逍遙亭)으로 고치고 운영정도 태극정(太極亭)으로 바꾸었다. 옥류천 주변의 제일 윗쪽에 청의정, 그 아래에 태극정, 그 아래에 소요정과 농산정(籠山亭), 그리고 제일 밑에 취한정(翠寒亭)을 지었다. 소요정 바로 위에는 어정(御井)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그 아래 바위를 다듬어 샘물이 돌아 흘러 아래로 떨어지도록 하였다. 바위에는 인조 어필(御筆)로 옥류천이라는 글씨를 새기고 그 아래로 작은 폭포를 조성했다. 숙종이 지은「逍遙觀泉詩」(소요관천시)에는 이 작은 폭포의 경관이 잘 묘사되어 있다. 궁궐지(宮闕志)에는“청의정은 태극정 서쪽에 있는데 이는 물을 모아 연못을 만들고 못 가운데에 섬을 만든 것으로 인조 14년 병자년(丙子年)에 세웠다”라고 기록하였다. 청의정이 있는 연못은 장방형으로 동궐도(東闕圖)에 나타나 있는데 지금도 장방형의 벼농사를 짓는 곳이다. 청의정은 초가지붕으로 연못을 이룬 곳에 벼를 심어 왕이 농부의 벼농사를 실제로 체험해보고 그 볏집으로 해마다 지붕을 만들었다고 한다. ※ 키워드 _ 옥류천, 창덕궁, 실경화, 전통조경 ※ 페이지 _ 80-81
    • / 1999년05월 / 133
  • 생태적 조경과 풍수(3) _ 터, 부지, 연못은 어떻게 조성하나
    살기 좋은 땅이라면 어떤 곳일까?『 정감록』에 나타난 십승지(十勝地)는 다분히 병란(兵亂)이나 탐관오리의 악랄한 토색질을 피해 살 만한 곳이 추천되었다. 그렇지만 현대에 와 그곳을 찾아보면 모두가 전답 없는 첩첩산중이라 사람이 둥지를 틀고 살기에는 적합치 않다. 이는 음양의 기가 잘 갈무리된 길지보다는 바깥 세상이 전쟁에 시달려도 그곳만은 배불리 먹고 불안에 떠는 일이 없을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택리지』는 풍수학적 입장에서 먼저 지리(地理)를 꼽았다. 즉, 재물을 얻기 쉽거나 인심이 좋거나 산수가 수려하기보다는 자연환경이 사람 살기에 적합하냐 그렇지 않느냐를 우선시하였다. 사람은 비록 영물(靈物)이긴 하지만 초목이나 동물과 같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생명 활동이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빛, 물, 온도, 공기 그리고 먹거리가 조화를 이룬 터가 중요하다. 좋은 땅이란 초목이 무성히 자라고, 물은 깊으며, 흙이 부드러워 사람까지도 살기 적당한 곳을 일컫는데, 이런 땅도 끊임없이 바람과 물[양기]의 영향을 받는다. 즉 땅은 음(陰)이고 정(靜)이니, 양(陽)이요 동(動)인 양기의 흐름에 따라 풍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길지(吉地)를 말하며 물이 빠져나가는 수구를 먼저 말한 것은 부지 내의 땅과 생명체에 영향을 준 양기가 최종적으로 빠져나가는 한계가 바로 수구이기 때문이다. 즉 수구를 지나 버린 양기는 부지 내의 생명체에 더 이상 어떤 변화의 기운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 키워드 _ 풍수, 풍수조경, 생태적조경, 전통조경, 풍수사상, 터, 부지 ※ 페이지 _ 82-85
    • / 1999년05월 / 133
  • 나의 길 나의 직업 _ 설계 익히기와 가르치기
    한국종합조경공사가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하에 탄생한 것(1974. 8. 1)은 정권 전성기인 유신시대였다. 육사8기출신의 최종성 사장의 창립인사말에도 있듯이 조경공사는“조경사업을 전담하는 유일한 단일업체”로서 정부 및 산하기관의 투자와 비호로 발족된 공사(公社)적 성격을 가진 주식회사였다. 심지어 당시 김종필 총리의 지시로 정부 및 유관기관에서 발족하는 조경사업은 반드시 이 회사에서 전담토록 했으니 유신정권에나 있을 법한 조경분야의 와일드 카드 같은 존재였다. 이 회사는 몇년후 11개의 새로 발족된 종합조경회사 중의 한 회사로 삼부토건에 속한 자회사가 될 때까지 이러한 특전을 누리면서 성장한다. 우리나라에 조경학과가 생긴지 채 4년이 안된 때라 졸업생도 없고 조경전문가의 선발에도 한계가 있었다. 당시 나는 환경대학원 2년차로서 졸업논문을 앞에 두고 있었지만 이 회사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오휘영 청와대조경담당비서관의 설계과장을 맡아달라는 제의에 따라 창립 때부터 참여하게 되었다. 설계분야의 초기 구성원은 쟁쟁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 오레곤주립대학에서 조경학 학부과정을 졸업한 장문기 부장(몇년전 아까운 나이에 갑자기 서거하여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한다)을 비롯하여 성균관대 김유일 교수와 그 부인 김윤 희, 경원대 우정상 교수, 청주대 장태현 교수, 고려대 심우경 교수가 설계부에 있었고, 서울대 김귀곤 교수와 안동만 교수가 기획실에 있었으며 경원대 민경현 교수(작고)가 관리이사로 최상직에 있었다. 이 때는 고속도로건설, 관광지개발, 성역화사업 등으로 국토의 여기저기가 파헤쳐 졌고, 따라서 그 뒷처리가 필요한 시기였다. ※ 키워드 : 조경가, 서울시립대, 이규목, 설계교육, 한국종합조경공사 ※ 페이지 : 30-35
    • / 1999년05월 / 133
  • NGIS와 지하시설물 전산화 구축
    현재 이러한 국가 GIS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지하시설물도 전산화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지리정보체계의 활용범위는 광범위하고 분야별 목적에 따라 그 정보의 수준도 달라진다. 분야별 목적에 따라 같은 주제라 할지라도 분석의 단위에 따라서 요구되는 정보의 양이나 내용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한편 구체적인 시스템에 대한 설계단계에서부터 수요자의 요구와 목적에 부합하는 정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자료의 활용도와 중요도에 따라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하게 된다. 정부차원의 활용범위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민간분야보다는 일반적으로 공공분야에서 보다 진보된 그리고 광범위한 이용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공간계획시 우리의 상황에 적합한 활동과 공간정보의 활용은 행정업무, 계획업무에 관련되어 있다. 특히 도시계획, 국토계획, 지역계획, 교통, 관광, 환경, 문화 등 분야별로 요구된다. 현재 조경분야에서도 토지이용을 이상적인 생태도시에 근접하는 도시구조로 변화시키도록 하기 위하여 기존의 자연환경 및 인문·사회환경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GIS를 분석도구로 활용하여 토지이용 용도별 적지분석을 시행한 후, 용도별 토지소요량을 적지에 배분시키는 방법 등 많은 분야에 GIS를 활용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GIS의 개념과 이해, 국가 GIS란 어떤 것인지 그리고 NGIS체제 내에서 지하시설물관리 체계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현재 추진중인 사업에 관한 간략한 소개와 이러한 사업을 통해 얻게 되는 효과 등에 관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 키워드: NGIS, 신기술, 전산화 ※ 페이지 : 60-63
    • / 1999년05월 / 133
  • 헬버 헤이스터트 앤드 피 _ Helber Hastert & Fee
    말레이시아에서 최초로 시행된 국가적 규모의 종합적 관광개발 기본계획을 위해 구성된 다양한 분야의 협력팀에 HHF(Helber Hastert & Fee)의 전 직원이 참여했다. 이 계획의 목적은 말레이시아의 전통적인 명소인 쿠알라룸푸르와 페낭으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농촌 및 해안 지역으로 관광객을 분산시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지역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위해 자연적, 경관적, 문화적 자원을 보전하는 정책을 정의하는 것이었다. 이 계획의 후속 계획으로 지명도 있는 관광 및 리조트 지역 내에 민간 부문의 투자를 고무시킬 수 있는 지역 차원의 관광개발계획이 수립되었다. HHF는 국가 전역에 걸쳐 리조트와 여타 관광 시설에 적합한 지역을 찾아내고 계획을 수립하는 일, 그리고 새로운 방문자의 호기심을 끌고 다양한 활동을 창출할 수 있게 하는 구상안을 마련하는 일에 주력했다. HHF는 또한 다음과 같은 국가적 차원의 조경적·환경적 이슈와 정책을 제시했다. 헬버 헤이스터트는 조경계획과 설계 영역에서 전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다양한 유형의 공공 및 민간 클라이언트들에게 계획과 설계 용역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강점은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요구되는 계획과 설계와 기술을 성공적으로 통합할 수 있다는 점에 있으며, 종합기본계획 / 부지계획 / 관광 및 리조트계획 / 커뮤니티 및 신도시계획 / 레저 / 레크리에이션계획 / 정책 및 전략계획/ 워터프론트계획 / 교통계획 등의 계획 업무에 탁월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회사의 성공을 가져 온 가장 큰 요인은 수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헬버 헤이스터트가 통합시키는 강력한 조경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HHF만의 뛰어난 능력 중의 하나는 어떠한 규모의 계획과 개발이든 간에 자연 환경과 인공 환경의 관계를 세심하게 이해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조경에 기반을 두는 생태적 접근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적절한 자연 환경과 인공 환경의 종합을 낳는다. 대규모 프로젝트와 소규모 프로젝트를 넘나드는 HHF의 경험은 위에서 말레이시아에서 수행한 몇몇 프로젝트를 사례로 하여 소개된 바와 같다. 지난 20여 년간 남태평양, 남미, 북아프리카, 유럽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 다양한 범위의 계획과 조경 용역을 수행해 왔다. 물론 각각의 나라나 지역마다 특유의 고유한 문화적, 사회적, 환경적 조건이 있겠지만, 우리의 경험은 전체는 아니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계획 및 설계 원칙이 존재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 키워드: 해외조경업체, 해외회사, 리조트개발, 설계사 ※ 페이지 : 54-59
    • / 1999년05월 / 133
  • 한 모퉁이 빈 자리
    4월 초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꽃샘 추위가 매섭더니 모처럼 정말 봄기운을 느끼게 하던 날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 먹게 되었습니다. 충정로의 식당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왔을 때, 봄볕이 정말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아 참, 햇살이 좋다.”김광석의 노래가 절로 생각나는 날이었죠. 어디 가서 커피 마실까? 물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을 때,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형, 우리 여기 앉아서 햇살이나 쬐다 가죠.”식당이 있던 건물 앞에는 돌로 만든 벤치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 남자가 나란히 앉아 봄볕을 받으며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 친구가 잠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점심 먹고 어디 잠시라도 앉아 쉬었다 갈 데가 있으면 참 좋겠어요.” 서울은 절망적입니다. 여의도 공원을 놓고 대통령이 했다는 말씀 때문에 절망적입니다. 여의도 광장을 공원으로 바꾼 것은 잘못이었다고 했다죠. 이제 우리에겐 광장이 없다고 한탄하면서요. 그 얘기를 들으며 저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대통령에겐 여의도 5.16 광장(!)이 감회 서린 장소였겠지요. 민주화 운동의 추억이 서린 곳으로 말입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꽉꽉 채우기’로만 머리 속이 채워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비어 있는 공간이 사람의 삶에 필수적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할 것 없이 모든 분야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공원을 만들어도 반드시 시멘트로 포장이 됩니다. 몇 억씩 들여 혐오스러운 환경 조각은 만들어도 건물 앞에 제대로 된 쉼터는 만들지 못합니다. 걸을 수 없는 도시, 쉴 곳이 없는 도시, 그 곳이 서울입니다. 빈 자리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어느날, “여의도 공원은 정말 잘 한 일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 이었다”라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서울에는 그리고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절망도 갈 데까지 가면 그때부터 희망을 향해 떠오를 수 있다고 어떤 작가가 말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말을 믿으며 이렇게 쓸쓸한 절망을 이야기했습니다. ※ 키워드 _ 경관, 정원, 뜰, 정원문화 ※ 페이지 _ 74-75
    • / 1999년05월 /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