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조경, 현대조경 하듯 합시다
경복궁, 그리고 문화재 보존의 국가적 사업에 대한 생각들
조선총독부청사를 해체하던 일은, 일제잔재를 없애며 동시에 경복궁 일대의 대대적인 문화재복원사업의 단초로 떠오른 일이었다. 국가적인 사업이자 민족적인 대원(大願)의 일이었을 것이지만, 나는 그 일에 대해 좀 어긋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총독부청사 해체 사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너무 복원하는 일에만 매달려 추진되는 것처럼 보이던 것도 못마땅했다. 후자의 일 때문에 전자의 생각이 든 것이므로 결국 둘은 하나로 귀착된다. 즉 철거와 복원으로 치닫는 일사천리의 사업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놓고 나의 의견을 이야기할 기회나 장소도 없었을 뿐 아니라 나서서 무슨 이야기를 하기 좋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들여다보지도 않았을 논문 하나를 덜렁 내놓은 외의 어떤 의견도 공식화된 적은 없었다. 경복궁 복원과 맞물려 조선총독부청사 해체 문제가 논의되고 있었을 때, 사실 논의가 아니라 무조건 찬성하고 있어야 하는 분위기였고, 그 일을 반대했다가는 친일파 신세가 되기에 딱 좋은 분위기였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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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청사의 건축물 자체를 보존하는 것이라거나 일제 잔재를 없애야 하는 것이라는 등의 찬반 의견들이 있을 수 있지만, 무슨 한 가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두루두루 연관된 일을 냉철하게 살피고 선후를 가려 일을 추진해야 할 일이다. 대상의 규모나 영향력이 클수록 선후와 주위를 세심히 살펴야하는 일은 제곱비로 증가하는 법이다. 총독부청사 해체문제는 광화문의 처리와 관련되고 광화문의 처리는 세종로 문제와 이어지며 세종로 문제는 서울 사대문의 도시경관과 무관하지 않게 되어있다. 아무도 공개석상이나 매스컴에서 광화문 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광화문은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과 맞물려 참으로 많은 사연을 간직한 구조물이었다. 1920년대 조선총독부 청사건립이 구체화되고 있었을 즈음, 광화문은 헐려나갈 참이었다. 다행히 행동하는 일인(日人) 지식인의 호소에 의해 겨우 되살아나 지금 국립민속박물관 전용 출입문이 있는 곳으로 옮겨 놓았었다. 그리고 6.25를 겪으면서 지붕이 날아간 채 석조의 홍예부분이 앙상하게 살아남아 있었다. 1960년대의 모습이었다. 그 후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 왔다. 1970년대였다. 당시 유행하던 방법을 따라 시멘트 콘크리트 방식으로 문루도 복원되었다. 원 자리에 옮겨온 것이 아니라 중앙청으로 사용되던 총독부청사 바로 앞에 반듯하게 건립되었다. 세종로에서 광화문을 보면서 진행할 때 세종로와 축이 맞아 총독부청사와도 잘 균형이 맞게 자리 잡은 것이었다. 원래 자리로 가게 되면 세종로 축과도 총독부청사와도 반듯하게 어우러지지 않게 되어 있었다. 즉 총독부청사는 정남향을 하였고 세종로는 그 축 방향으로 반듯하게 나 있다. 경복궁의 주축은 약 4도 가량 튼 방향으로 앉아서 남대문과 관악산 정상부를 향하게 되어 있다. 총독부청사는 경복궁을 가려놓고 있으면서 세종로와 어긋난 부분을 차폐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현재의 광화문의 간략한 내력이다.
한창 총독부청사 해체문제가 거론되고 있던 즈음 어느 TV 방송사 뉴스에서 청사해체와 근정전 일곽의 복원이 이루어졌을 경우를 시뮬레이션 한 모습을 비쳐주면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었다. 눈 깜짝할 만큼의 순간처리로 슥 지나가긴 했지만 세종로 일대와도 반듯하게 조감되어 있었다. 약간의 눈속임이었든지 별 생각 없이 미숙하게 처리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강의시간에서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주면서 ?장차 여러분들의 몫?임을 강조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총독부청사를 해체하고 근정전 일대를 원형으로 복원하려면 광화문까지 이어지는 부분으로 계속 확대되어야 할 것이며 또한 지금 현재의 세종로와의 축의 문제와 이 일대의 도시경관 차원에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충분히 검토한 종합계획으로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었다. 어도와 맞지 않는 광화문을 놓고 나눈 두 남자의 이야기. 이제는 누구에게나 그런 모습이 훤히 들어나게 되어 있다. 어떻게든 무슨 조치가 있어야 할 일이다.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Michael Van Valkenburgh
빨간 머리의(Red-Haired), 집중력 강한 혹은 진지한 (Intense), 콧수염이 있는 (Mustache), 명확한 논리를 가진(Articulate), 끊임없이 변하는 혹은 변덕스러운(Volatile), 네모난 얼굴의(Square Face) 등으로 신문기사에 적힌 것을 보았다. 필자가 보기에는 아주 그의 특성을 잘 끄집어낸 단어들이라고 보여진다. 좀 더 붙여보자면 유머가 많고(Humorous), 열정적이고(Passionate), 괴팍한 정도?
발켄버그는 뉴욕주의 농가에서 태어나 그곳의 주립대에서 역사를 공부하다가 Cornell University로 학교를 옮겨 식물과 디자인 그리고 미술사를 배우게 된다. 한 때 Dan Kiley 의 심플함과 공간의 크기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22세 되던 해에 미국의 모든 Dan Kiley 의 작품을 돌아볼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된다. Cornell을 졸업한 후 그는 University of Illinois-Champaign/Urbana에서 M.L.A를 받고 Carr, Lynch Associates1을 포함한 캠브릿지(Cambridge)의 여러 곳에서 실무 경험을 쌓게 된다. 1982년 그는 자신의 사무실을 차리고 그때부터 하버드 대학의 줄을 타게 되어서 1991년에서 1996년에 걸쳐서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Graduate School of Design, 이하 GSD) 의 조경학과 과장으로 근무하게 된다. 지금은 Charles Eliot Professor of Landscape Architecture로 재직하고 있다. 주택정원(Residential)부터 대기업(Cooperate)의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스케일의 작고 큼에 상관없이 작업을 하던 그에게 규모가 큰 프로젝트로 도약하게 된 계기는 인디아나(Indiana)주의 콜럼부스(Columbus)에 있는 65에이커(이 프로젝트는 후에 85에이커의 규모가 된다)의 밀 레이스 공원(Mill Race Park 1989-1993)이다. 그 후로 펜실배니아(Pennsylvania)주의 피츠버그(Pittsburgh)에 있는 앨리게니 강변 공원(Allegheny River Front Park)를 비롯, 미국 최고의 여자 대학교인 월슬리 대학 매스터 플랜(Wellesley College Master Plan), 맨하탄(Manhattan) 안에 있는 티어드롭 공원(Teardrop Park), 그리고 최근에 결정된 뉴욕의 브룩클린 브리지 공원(Brooklyn Bridge Park-이 프로젝트는 브룩클린(Brooklyn)의 센트랄 파크(Central Park)라고 여겨진다)에 이르기까지 그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의 조경에도 관심이 있었던 그는 1993년도 미국에서 활동중인 한국 건축가 우규승씨와 함께 호암재단의 한국 전통미술관과 현대미술관을 위한 매스터 플랜 프로젝트에 프로포잘을 내기도 했었다.
발켄버그의 사무실 (Michael Van Valkenburgh Associates)...
에서 일하면서 가장 놀라왔던 점은 그의 수목 재료에 관한 열정이다. 학창시절에 디자인 수업과정에서 수목 디자인 부분에 많은 고려를 두지 않았던 필자로서는 그의 이러한 열정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많은 조경가들이 건축가와의 보이지 않는 긴장 속에서 두각을 나타내고자, 혹은 좀 더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 수목재료 보다는 형태(Form)가 중심이 되는 작품을 추구하는 경우를 간간히 봐왔던 터라 그의 수목에 대한 논리와 생각은 왜 그가 다른 조경가와는 다른 지가 더욱 뚜렷해진다. 발켄버그와 함께 어떤 프로젝트에 대해서 수목 디자인을 하는 시간이 되면 그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생기 있는 목소리로 변하고 얼굴에 미소가 돈다. 그가 이 디자인 시간에 나열하는 많은 나무와 관목의 이름들은 듣고만 있어도 헷갈리는 데 발켄버그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어느 곳에 무엇을 배치 하면 좋을지를 마치 눈 앞의 그림을 보고 있는 듯이 이야기 한다. 나중에 그가 말한 나무와 관목들의 이미지를 다 찾아서 콜라쥬를 해보면 그의 감각에 한 마디로 입이 딱 벌어진다. 그의 이런 능력은 매일 일상생활에서 관찰하고, 읽고 주변의 전문가들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욱 더 깊어진다. Michael Van Valkenburgh Associates(이하 MVVA)에서 발간되는 매일 신문이 있는데 일주일에 다섯 번씩 그의 수목 칼람이 연재된다. 주로 자신이 좋아하는 수목이나 주말 동안 다니면서 본 감명 깊었던 나무나 관목에 대한 이야기 또는 그 수목에 관련된 그의 사연들을 적는다. 매일 다른 도시로 여행하면서 매일 이렇게 칼람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열정이 남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여러 군데로의 출장이 그의 수목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작년 봄에 GSD에서 개최되었던 Large Parks - New Perspective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조경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재료는 수목이다. 이는 시간을 초월한 재료(Timeless Materials)이다". 이러한 발켄버그의 면모는 최근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에 나온 그의 기사를 보면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완성된 조경공간은 그 공간에 속한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원에서 시작된다. 정원에 무엇을 심어보지 않은 조경건축가는 재료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직업의 본질은 재료에 있다. 다시 말하면 단지 벽돌이나 돌, 물 같은 것이 아닌 조경의 매체, 식수 재료들, 그 향기, 벌레들, 그리고 이런 것들을 경험했을 때 느끼게 되는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김 소 형 Kim, Soheyung · Michael Van Valkenburgh Associates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