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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계림 - 자연과 어우러진 이름 없는 조경가들의 자취
    조경을 하는 사람이 자연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으며, 이를 위해 우리와 스케일이 다른 자연경관을 음미하는 것도 필요한 것일거라는 생각에 자연경관이 빼어난 계림을 소개하고자 한다. 동양권의 일본이나 싱가포르의 조경이 현대적이고 세련된 반면 동양의 정서와 동떨어진 모던한 서구의 현대적인 조경이 유입되지 않은 중국의 중소도시의 조경은 좀더 친근감이 가고 아기자기하다. 특히 자연환경을 살리고 자연경관을 잘 이용한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 북경이나 서안의 조경이 권위적이고 장식적이지만 중소도시, 특히 계림은 빼어난 풍광 그 자체가 손댈수 없는 미적가치를 지닌다. 石林속에 존재하는 都市 오! 이런… 새벽 안개에 호텔창문밖의 풍경은 경이로웠다. 눈앞, 바로 앞에 거대한 바위산이 겹겹이 겹쳐있었고, 어젯밤 공항에서의 이동 중 무엇을 보았더라면 그 느낌이 줄었을지도 모르지만 문뜩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가히 신비롭기까지 하다. 계림은 계수나무가 많은 도시라는 뜻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계수나무와는 다른 상록성 교목을 지칭하며 가로수로 계수나무가 심어져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만해도 계림을 비롯한 광서장족자치구 외부와 고립되어 있었고 근대에 들어 광주(廣州)나 상해(上海)가 상업도시로 성장할 때도 다른 지역과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계림이 외부세계에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은 중국 정부의 개혁 정책과 때를 같이 한다. 계림의 개방은 자치구 안의 도시 중 최초로 계림을 개발도시로 선정하였고 계림이 갖고 있는 자연환경을 보존하는데 역점을 두고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빚어낸 자연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인위적 개발보다 자연환경이나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것이 계림의 최대 매력이다. 계림은 아열대 몬순기후에 속해 온화한 기후이고 중국에서 비가 많이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계림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경관은 과거 바다속 해저였으나 지각 변동에 의해 융기되어 육지가 된 후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작용을 통해 독특한 경관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석회암 봉우리는 10만 개에 이르며 도시가 발달하면서도 고스란히 그 형태를 유지하거나 최대한 보존과 이용이라는 절묘한 선택을 하고 있다. 김 정 수 Kim, Jeong Su·아르떼 환경디자인 소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 2002년03월 / 167
  • 조경은 예술을 필요로 하는가? - 조경과 미술
    현대에 들어와 조경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달라지긴 했으나 조경은 아직까지도 대규모 원예와 유사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그 동안 많은 조경가들이 설계안을 내고 경관론을 전개하며 조경의 개념을 건축적인 것으로 변환시키려 했으나 여전히 조경은 꽃과 나무를 심는 작업 또는 환경미화작업 정도의 개념으로 강하게 고착되어 있는 것이 현실임을 어쩔 수 없다. 과거에 한 학회에서 정원 예술이란 말을 썼다가 문외한 취급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한편으로 조경직 종사자들 또한 예술인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어 조경이 예술에 들지 못하는 열등한 직업인 듯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흔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볼 때 한국 사회에서는 정원과 예술은 별개의 두 분야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과연 조경과 예술은 이처럼 거리가 먼 두 학교(學敎)일까? 정원 예술이란 말은 사실 유럽과 아시아 미술사에서 일반화된 용어이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하여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은 신생국들에서는 생소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조경과 예술의 관련이 몇 세기에 걸친 오래된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성립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신생문화권에서는 조경, 정원, 예술은 각각 다른 영역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조경가 옴스테드의 센트럴 파크에서부터 조경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조경과 예술은 다른 것이고 정원 예술이란 말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베르사이유를 설계한 르노트르를 조경가로 생각하는 유럽인들의 입장에서는 조경, 정원, 예술은 모두 한 분야에 속하며 정원 예술이란 용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도 유럽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 정원은 분명히 예술의 한 분야이다. 조경의 정체성에 있어 미국, 캐나다, 한국의 입장과 유럽, 중국, 일본의 입장은 이처럼 서로 차이가 있으며 때로는 상반된 입장이기도 하다. 조경과 예술의 관련은 이렇게 볼 때 궁극적으로 조경의 근원과 정체성에 관한 문제로 귀착해 들어간다. 따라서 조경과 예술의 관련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마치 미국 서부의 계곡에서 알프스 산의 호수와 산장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거꾸로 알프스 산에서 미국 서부의 사막지대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조경과 예술의 관련은 같은 주제로 전혀 다른 두 분야를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현대 미술과 조경의 관련을 이야기할 때 흔히 부딪히는 문제는 바로 동문서답식 논리 전개의 문제이다. 미국에서의 예술과 조경의 개념은 유럽과 많은 점에서 다르며 유럽적인 인식을 바탕에 깔고 미국의 예술과 조경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큰 오해에 계속 부딪치게 된다. 예를 들어 월터 드 마리아의 대지 미술은 유럽적 개념으로 볼 때 예술도 조경도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예술과 조경의 관련을 이야기할 때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조경과 근접한 예술작품들로 충분히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전통적인 관점이 아닌 전혀 다른 관점에서 조경과 예술의 관련을 이야기해야 한다. 유럽에서 예술, 특히 미술은 가끔 지나치게 숭배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유럽의 미술사가들이 미술의 한 분야에 포함시켜 조경을 이야기할 때 조경의 한 면을 지나치게 미화시키고 극찬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이 대부분 조경의 전통적 관점으로 논리의 근간이 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좀더 정확한 파악이 필요하다. 조경을 예술의 분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예술적인가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한데 유럽에서조차 이런 기준은 사실상 정립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림과 유사한 조경을 예술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17세기부터 자리잡기 시작한 일반적인 통념이다. 무엇이 조경에서 예술적인 것이고, 무엇이 예술에서 조경적인 것인가 하는 정의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그런 정의를 구체적으로 내린 경우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문헌에서 보이는 조경과 예술의 관련을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눈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1) 풍경화에 담긴 경관 인식과 풍경화의 재현으로서의 조경 2) 정치, 종교 예술에 표현된 상징적 경관과 상징의 실현으로서의 유토피아적 조경 3) 랜드 아트, 어쓰 아트, 현대 조각 등의 현대 미술 조류에 담긴 메타포로서의 경관과 그 작품들. 이 세 범주는 흔히 서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혼합되어 설명되고 있다. 조경과 예술의 상관성과 그 역사를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 범주를 분명히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박 정 욱 Park, Jung WookLand Plus Art 연구소장 (본 원고는 요약문 입니다)
  • 조경은 예술을 필요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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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2년03월 /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