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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환경·문화도시 프라이부르크 이야기(1) - 키워드를 통해 본 프라이부르크의 중층성
  • 에코스케이프 2009년 여름

이야기를 시작하며

나는 지금 바쁜 도시 서울을 떠나, 독일 프라이부르크 근교에 머물고 있다. 재충전을 의미하는 ‘연구년’이라는 성격과 이 도시의 특성은 많은 부분에서 묘하게 조화되고 있다. 나는 앞선 두 해의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이곳에서 공부하는 큰 아이 주변의 환경을 둘러보았다. 이 도시에 대한 첫인상은 강렬하다고 할 수 없었으나, 돌아와서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심코 지나친 도시 구석구석의 정경도 새롭게 반추되곤 하였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뒤늦게 살펴보니 ‘독일의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고 있었다. 바야흐로 ‘환경의 세기’를 맞아, 이 도시는 잡지와 신문, 공중파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심지어 대기업의 이미지 광고 등을 통해 폭 넓게 주목 받고 있는 중이었다. 또한 여러 지자체와 환경단체 역시, 이 도시를 보다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아가 이 도시를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노력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었다.

이렇듯 오늘날의 프라이부르크는 UNDP(유엔개발계획)가 제시한 ‘선례에 의한 발전(development by good example)’의 역할 모델 중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나는 가능하다면 여행안내서 수준의 표피적 인식과 선행 자료의 수준을 넘어, 조경가 개인의 입장에서, 그리고 잠깐 동안이나마 이 도시에 머물러 사는 생활인의 관점에서 프라이부르크라는 텍스트를 읽어보기로 한다. 도시를 보다 심층적으로 읽기 위한 시도는 보다 바람직한 도시환경을 지향하는 조경행위와 여러 갈래에서 상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독일의 환경수도’로 지칭되는 프라이부르크는 특히 ‘생태적’ 관점을 위주로 조명되어 왔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러한 해석 관점으로 인해 ‘보존과 개발’, ‘생태와 디자인’의 측면이 융합되지 않는 이항대립구조로 파악되는 것을 경계하려 한다. 즉, 건강한 도시환경을 위해 이들 관점은 통합되어야만 하며, 이곳 프라이부르크는 이러한 사례를 부분적으로나마  대변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에 프라이부르크를 보다 통합적이고도 총체적인 맥락에서 해석하기 위해 ‘문화·환경도시’라는 개념을 활용코자 한다.

본고는 도시 읽기의 첫 단추로서 우선 프라이부르크의 입지 여건을 개괄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도시 발전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른 중층적 키워드를 통해 ‘이 도시의 경쟁력’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차후에는 도시 구조를 형성한 원동력인 소프트웨어 관점에서의 논의와 더불어, 세부 환경 구성 양상과 디테일 소개 등이 연재될 예정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프라이부르크의 입지

독일 남서부 거의 끝단에 위치한 프라이부르크는 2009년 현재 넓이 약 150㎢, 인구 23만의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규모의 도시이다. 오늘날 이 지역은 남쪽으로 스위스, 서쪽으로 프랑스와 접하여 유럽의 남북과 동서를 잇는 관문도시로서 기능하고 있다. 예로부터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핵심을 이루는 이 도시 남·북 방향 쪽으로는 산악지대가 둘러쳐져 있으며, 도시 내에 포도밭 또한 상당부분 입지하고 있어, 도시의 3분의 1 이상이 녹지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프라이부르크는 검은 숲(Black Forest)을 의미하는 ‘흑림-슈발츠발트(Schwarzwald)’의 핵심도시로도 기능한다. 남부 독일 쥐라산맥 서쪽 면에 펼쳐진 길이 2백킬로미터, 폭 60킬로미터의 울창한 삼림지대를 일컫는 ‘흑림’이라는 명칭은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위주의 진한 색 수림이 햇빛이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울창하게 형성되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오늘날 프라이부르크는 독일 서남부 흑림의 남부와 여기에서 발원된 맑고 풍부한 물이 관통하는 드라이잠(Dreisam)강 상류지역의 많은 부분을 도시의 세력권으로 두고 있다.  

프라이부르크의 시가지는 뮨스터 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전통의 구도심Alt-Stadt과 확장된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과거 성읍도시 시절에 구도심의 경계를 이루었던 성곽은 오래 전에 대부분 소실되었다. 또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뮨스터 대성당을 제외한 구시가지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으나, 거의 원형을 계승하면서 시가지를 재건하였고, 현재는 고리모양의 링으로 명명하는 도로 안쪽을 구도심구역으로 특히 보존하고 있다.

키워드를 통해 본 프라이부르크의 중층성

자치, 자유, 자유교역

원래 독일은 긴 역사를 통해 인접국가인 프랑스와는 대조적으로 지방분권과 자치제도를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프라이부르크의 분권과 자치정신은 국가적 특징보다도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즉, 태동기로부터 여러 세력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는 이 도시의 입지조건으로 인해 프라이부르크는 특수한 도시성격을 기반으로 성장한다.

오늘날 이 도시의 홍보안내책자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대체로, 1091년 듀크 베르톨드 3세(Duke Bertold Ⅲ) 때의 권력자 콘라드 폰 재링겐(Konrad von Z?hringen)이 도시를 형성하면서 그 명칭을 ‘프라이부르크 임 브라이스(Freibrug im Breis)’로 칭하고 인접한 지역 및 국가 간의 자유교역을 행하는 시로서의 특권을 부여하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도시명칭 앞부분 Fri는 영어의 free로써 ‘자유’ 즉 ‘자유교역’을 뜻하고, brug는 ‘성(城)’을 뜻한다. 프라이부르크를 이루는 핵심언어 ‘자유’는 도시명칭과 도시의 기능으로서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정신적 풍토를 형성한 기반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후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설립(1457년) 이후 이러한 정신은 더욱 강화되어 시민주체와 자치의식을 더욱 성장케 하였으며, 오늘날 환경운동으로 계승·발전된 측면을 갖는다.

태양, 바람, 물

독일 내 프라이부르크의 자연환경은 매우 우수한 편에 속한다. 즉 프라이부르크는 흔히 음산한 것으로 회자되는 일반적인 독일의 기후보다 훨씬 풍부한 일조량과 청명한 기후를 자랑한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이 도시가 속한 바덴(Barden)지역을 일찍부터 유럽 제 2의 백포도주 산지로 성장시켰으며, 흑림에 기댄 프라이부르크를 여가와 휴양의 도시로, 근래에는 태양에너지의 도시(solar region)로 성장시킨 원동력이었다.

한편, 프라이부르크 구도심에는 그들이 자랑하는 명물의 환경이 존재한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간선수로와 별도로 형성된 도시수로 베힐레가 그것이다. 대개 폭 50cm 내외, 혹은 그보다도 작은 규모의 베힐레는 도심지 내 연장길이만 9km에 달한다. 로마시대의 산물로서 유일하게 유럽에 남아 있는 이 도시수로에 대한 기록은 1246년의 것부터 존재한다. 이 도시수로 베힐레는 흑림에서 시작된 물을 드라이잠 강을 거쳐 도시로 유입시킨 것으로, 로마시대 때 통풍이 어려운 좁은 길에 맑은 바람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후일 청소나 빨래, 화재에 대비하기 위한 시설로도 전용되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베힐레는 여러 환경적 효과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도시경관과 의미 및 상징의 측면에서 프라이부르크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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