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연소 ([email protected])
빛은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죽녹원竹綠苑 죽림에 스며드는 따듯한 빛은 대나무 그림자를 만들고, 대나무 그림자는 죽녹원 산책로를 밝히는 빛의 선형으로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린다. 빛을 디자인하기에 앞서 자연의 모습, 죽림 그대로의 경관미를 나타낼 수 있는 빛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그래서 대나무 숲의 선형 자체를 한국적 수묵화의 모습으로 승화시키기로 했다. 빛의 모습은 대나무 숲의 어둡고 무서운 이미지 대신, 편안하고 따뜻한 저녁노을처럼 그 속에 흐르게 했다. 산책로는 대나무의 자유로운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이 만들어 내는 빛 그림자로 한 폭의 수묵화가 되는 것이다. 무섭거나 어두운 공간이 아닌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기를 나는 소망했다.
전국 대나무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하는 전라남도 담양군, 그 속에는 담양의 죽림을 상징하는 숲이 존재한다. 바로 ‘죽녹원’이다. 이곳은 담양군이 성인산 일대에 조성하여 2003년 5월 개원한 대나무 정원으로, 담양읍 향교리에 약 16만m2의 울창한 대숲이 펼쳐져 자연의 풍광을 담고 있다. 여기엔 죽림과 죽향竹香을 느낄 수 있는 2.2km의 산책로가 있다.
서양에서는 판도라 이야기를 빌려 인간의 본성 가운데 선과 악으로 빛과 그림자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면, 동양은 자연의 이치를 빌려 음과 양으로 그 의미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음은 그림자이고 양은 빛인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빛은 삶과 희망과 백색에, 그림자는 죽음과 절망과 검은색에 비유되기도 한다. 심지어 하늘과 지옥으로까지 비화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림자 없이 빛은 절대 정의될 수 없다는 점이다. 나의 그림자는 내가 꿈꾸는 빛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죽녹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죽림이 만들어 내는 빛 그림자에 의해 구불구불한 산책로 선형은, 따듯하고 부드러운 화선지가 된다. 그 위로 죽림의 음영이 만들어 내는 선형미가 여백의 미를 담아내는 동양화의 화폭에서처럼 길을 감아 돈다. 이러한 점이 담양 죽녹원 빛의 디자인 콘셉트다.
빛 디자인에서는 공간을 밝히고 안전을 확보하는 점도 중요하지만, 그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이해와 시각의 순응이라는 심리학적인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KS A 3011 권장 조도 중심의 획일화된 디자인이 아니라, 공간의 특성을 고려한 조도와 감성을 나타낼 수 있는 빛을 찾아내어 표현하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담양 죽녹원에 대한 나의 생각은, 빛이 아닌 그림자라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찾아주자는 것이었다. 처음 여기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죽림의 푸름과 자연스러운 풍광이, 밤이 되어서는 그와 달리 매우 깜깜하고 무서웠던 기억이 있었고. 그래서 주간과 다른 야경의 모습 속에 빛과 그림자라는 두 가지를 계속 머물게 했던 것 같다. 빛이 비추어지면 그림자가 생겨난다. 낮의 모습이 빛이 라면 밤은 그림자가 되어 어두운 이미지로 떠오른 다. 이런 그림자를 어둡고 무서운 존재가 아닌 아름답고 부드러운 존재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림자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주간의 죽림의 경관미를 훼손시키고 싶진 않았다. 나의 작은 빛은 여기서 출발해 죽녹원만의 전원적인 자연 풍광을 느낄 수 있도록 절제된 빛으로 디자인되기 시작하였다.
이연소는 1969년생으로, 건국대학교 예술대학에서 미술학을 전공하고 명지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문화재 야간경관에 대해 연구했다. 이어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문화재 야간경관에 미치는 조명 물리량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명지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로 강의했고, 2005년 도시경관조명 설계전문회사 ‘유엘피 빛공해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청계천 복원 건설공사 3공구 경관조명 설계’, ‘서울시 한강르네상스 야간경관 마스터플랜’, ‘서울특별시·부산광역시·대전광역시·대구광역시·구미시·원주시·충주시 야간경관 기본계획’ 등을 진행했다. 도시 경관에서 조명이라는 획일화된 공간의 계획이 아닌 빛(光)이라는 감성적 관점과 ‘새로운 빛의 언어인 절제’라는 콘셉트를 주제로 활동하는 조명 디자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