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광표 ([email protected])
오카야마 고라쿠엔
오카야마 고라쿠엔岡山 後樂園은 오카야마번의 2대 번주藩主였던 비젠備前의 다이묘이케다 쓰나마사池田綱政(1638~1714)가 만든 별저다. 그는 정무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죠쿄貞亨 4년(1687)에 공사를 시작하여 겐로쿠元祿 2년(1689)에 1차 공사를 완료하였는데, 당시에는 다옥茶屋과 정원으로 구성된 단순한 꾸밈새를 가진 것이었다(万城あき, 2013).
고라쿠엔의 1차 공사는 쓰나마사의 가신家臣이었던 쓰다 나가타다津田永忠가 총괄하였으며, 석조石組 등 정원에 관련된 일은 하리마播磨1 사람인 나가세 토이다레長瀬問誰가 담당하였다. 나가타다는 새로운 땅을 얻기 위한 개간 및 매립 사업과 아사히가와旭川의 홍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방수로防水路 정비 사업 등으로 번의 재정을 부흥시킨 사람이었다. 쓰나마사는 이러한 그의 능력을 높이 사서 고라쿠엔 공사의 총감독을 맡겼는데, 나가타다는 사창미社倉米를 전용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여 공사를 완료하게 된다. 한편, 작정作庭의 책임자였던 토이다레는 교토에서 오가사와라小笠原의 예법과 엔슈류遠州流의 작정술을 배운 예인藝人으로, 쓰나마사의 초청으로 교토에서 오카야마로 와서 고라쿠엔의 정원 공사를 맡게 된다(大橋治三·齊藤忠一, 1998).
1차 공사는 쓰나마사가 머무르면서 쉴 수 있는 간소한 건물을 짓고, 건물 남쪽에 작은 산小山을 축산하였으며, 동쪽의 대부분의 땅은 전답田畑으로 개간하는 등 매우단순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에 그린 ‘후락원회도後樂園繪圖’가 전해지고 있어 그 전모를 알 수 있다. 1차 공사가 끝난 후 정원을 방문한 쓰나마사는 “손을 댄 경색景色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의 경색을 볼 수 있으니, 이 정원에 오면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을 수 있겠다”라고 좋아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감개感慨는 『절음집竊吟集(세쓰긴슈)』에 전해진다(万城あき, 2013).
1차 공사가 끝난 다음 해인 겐로쿠 3년 봄에 쓰나마사는 에도江戶로 올라가면서 고라쿠엔에 대한 토지의 확충과 건물의 증축을 명한다. 이때 확장한 토지에는 궁장弓場과 마장馬場, 그리고 쓰나마사의 개인적 신앙의 대상이었던 여의륜관음을 모신 자안당慈眼堂(지겐도)이 차례로 지어졌으며, 연양정延養亭(엔요테이, 1687년 건립) 서쪽으로 현재의 영창의 칸栄唱の間(에이쇼노간)이라고 부르는 건물의 원형이 된 취정翠亭(스이테이)을 짓는다. 겐로쿠 4년에 에도에서 돌아온 쓰나마사는 공사의 결과에 매우 만족하고, 그해 여름에는 가신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그 후 겐로쿠 연간元祿年間에 걸쳐 현재의 동외원東外園이 조성된 토지의 확충을 계속 진행하였고, 겐로쿠13년에는 북쪽의 토지를 확대함으로써 고라쿠엔의 외형을 갖추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겐로쿠 13년을 ‘고라쿠엔의 일단을 완성한 해’라고 보는 것은 고라쿠엔의 정원이 완성되었다는 의미가 아니고, 정원 조성을 위한 기반이 갖추어진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쓰나마사가 만든 고라쿠엔의 모습은 ‘어다옥어회도御茶屋御繪圖’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는 개수된 부분에 종이를 덧대어 그린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정원을 거닐면서 쓰나마사의 취향에 따라 수정이 가해졌다는 느낌이 발견된다(万城あき, 2013).
쓰나마사의 작정 이후에 그의 아들인 쓰구마사継政는 정원의 중앙에 유심산唯心山(유이신잔)을 축산하였으며, 표주박 모양의 못인 택의 못沢の池(사와노이케)과 화엽의 못花葉の池(가요노이케)을 연결하는 구불구불한 곡수로를 만들어 지천회유식 정원의 모습을 만드는데, 이러한 작정으로 인해서 정원의 경관이 크게 변화된다. 또한 손자 하루마사治政는 검약을 상징하는 경작지를 조성하기도 하였는데, 이곳은 한때 잔디밭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고라쿠엔은 후대 다이묘들에 의해서 계속해서 정원요소가 첨가되면서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메이와 연간明和年間(1764~1772)에 이르러 비로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大橋治三·齊藤忠一, 1998).
고라쿠엔은 처음에 오챠야 오야시키御茶屋御屋敷라고 불렸고, 오카야마성의 뒤편에 자리를 잡고 있다하여 고엔後園으로도 불렸으나, 메이지明治 4년(1871)에 ‘근심을 먼저 하고 나중에 즐거움을 누린다先憂後樂’는 정신 아래 조성됐다는 점이 강조되어 고라쿠엔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2
홍광표는 동국대학교 조경학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경기도 문화재위원, 경상북도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 사찰 조경에 심취하여 다양한 연구와 설계를 진행해 왔다. 현재는 한국 전통 정원의 해외 조성에 뜻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전통조경』, 『한국의 전통수경관』, 『정원답사수첩』 등을 펴냈고, “한국 사찰에 현현된 극락정토”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 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