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찬 ([email protected])
수생식물원 조성 시 유의사항
비오톱biotop 개념이 도입되면서부터 국내 조경 현장에서도 크고 작은 연못들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습지원, 생태연못 등의 이름으로 자연의 습지 환경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형태의 연못들이 생겨난 것이다. 거기에 꽃창포 등의 자생하는 수생식물을 비롯해 외국의 수생식물 품종들까지 식물시장에 유통되면서 식물원에서만 사용되는 개념으로 여겨졌던 수생식물원Water Garden이 여러 형태로 응용되어 만들어지고 있다.
식물원이 다양한 수생식물의 수집 및 전시에 중심을 둔다면 조경 현장에서는 수경관조성이라는 외부 형태적디자인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 때문에 다양한 호소생태계 중에서도 그 경관이 다채롭고 뛰어난 습원이나 습초지 등을 모티브로 하여 디자인적으로 재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전히 생태적인 측면이나 미적 완성도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서 조성되고 있는 습지원이나 생태연못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축축한 땅wet land’의 부재다. 기존에 조성된 대부분의 연못은 물이 있는 연못 속과 물이 없는 연못 밖이 명확하다. 그러나 자연의 습지는 이 사이 부분이 물이 스며드는 축축한 땅으로 존재하며 심지어 그 규모가 엄청나다. 또한 이곳에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식물들이 가득하다. 물론 어떤 형태의 연못을 만들 것인가는 조성 목적이나 만드는 이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축축한 땅을 만들고 거기서 생육하는 호습식물Water loving plants을 심는다면 생태적으로도 경관적으로도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축축한 땅에서 자라는 호습식물이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식물은 아니다. 노루오줌, 앵초, 곰취 등 그늘이 지는 곳에 흔히 심는 식물들 중에 호습식물이 많다. 노루오줌속Astilbe , 앵초속Primula , 비비추속Hosta , 곰취속Ligularia 등은 대표적인 호습식물로 부엽토가 많은 그늘이나 반그늘에서도 잘 자라지만 햇빛에 노출되는 축축한 땅에 심으면 개화기가 오래가고 생육 상태가 더욱 좋아진다.
다음은 수변식물의 이용 방법에 대한 문제다. 수변식물은 연못 가장자리를 따라 생육하며 축축한 땅과 깊은 수심 사이 공간을 장식한다. 갈대, 부들, 고랭이, 사초류 등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집단적으로 형태를 이루어 물과 땅 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갈대나 부들은 현재도 많이 이용되고 있는 수변식물이다. 문제는 연못의 규모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동일하게 식물을 배식한다는 점이다. 연못이 작을 경우 갈대와 같은 식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번성하여 머지않아 연못 전체를 점령하게 된다. 때문에 연못을 계획할 때에는 연못의 규모와 식물의 특성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규모가 작은 연못에는 천일사초, 쇠털골과 같은 식물이 적합하며 갈대나 부들은 저류지나 골프장 등의 대규모 연못에 식재하기 좋다.
김봉찬은 1965년 태어나, 제주대학교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하였다. 제주여미지식물원 식물 과장을 거쳐 평강식물원 연구소장으로 일하면서 식물원 기획, 설계, 시공 및 유지관리와 관련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2007년 조경 업체인 주식회사 더가든을 설립하였다. 생태학을 바탕으로 한 암석원과 고층습원 조성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 이사, 제주도 문화재 전문위원, 제주여미지식물원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조성 사례는 평강식물원 암석원 및 습지원(2003), 제주도 비오토피아 생태공원(2006), 상남수목원 암석원(2009), 국립수목원 희귀·특산식물원(2010),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암석원(2012) 및 고층습원(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