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광표 ([email protected])
개요
쿄호亨保 원년(1716)부터 텐메이天明 8년(1788)까지를 에도 시대 중기라고 한다. 이시기에 이르게 되면 에도는 막부의 신하幕臣, 다이묘의 가신藩士, 낭인浪人, 평민町人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한 계층이 모여 사는 도시로 발전하게 되며, 새로운 문화의 창조 작업이 활발하게 전개돼 고유의 에도 문화가 꽃을 피우게 된다. 특히 평민들 중 다양한 방면의 예술 영역에서 고도의 수련을 받은 이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지배계층인 무사들을 능가하는 문화 활동을 전개해 봉건 신분을 소멸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역전시키기도 하면서 신선한 문화를 창출하게 된다(西桂, 2005). 이윽고 에도 문화가 정통성을 가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에도 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교토가 일본 문화의 중심지였으나, 이시기가 되면 교토의 문화가 에도로 옮겨지고 에도 고유의 문화가 창출돼 에도가 일본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하게 된다.
에도 중기의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정원 문화에 있어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다이묘와 사사寺社의 정원보다는 유력한 평민들의 주거지에 정원을 만드는 일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당시 소수에 불과하던 작정가들로서는 그 많은 일들을 충분히 소화할 수 없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급기야 엄청난 작정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정원을 만드는 지침서들이 발간되기 시작하는 특이한 일이 벌어지게 되며, 일반 대중들은 이러한 지침서를 통해 정원을 만들게 된다. 이것은 정원을 만들고자 하는 많은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편법으로 나타난 결과로, 정원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작정가에 의해서 발현됐던 창작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역기능을 낳기도 했다. 당시 평민가에 만들어진 정원들을 보면 석조石組가 줄어들고 식재가 풍부해지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지침서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정의 결과로 보인다. 즉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석조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비교적 쉬운 식재 기법을 통해 정원을 조성했던 것이다.
쿄호享保 20년(1735)에 발간된 기타무라 엔킨北村援琴의 『축산정조전전편築山庭造伝前編』은 그 당시의 작정비전서作庭秘傳書의 대표적인 것이다. 이 책의 이름은 본래 『축산정조전』이었으나 후에 아키사토 리토秋里籬嶋가 같은 이름의 책을 펴내고 후편이라고 칭하자, 엔킨이 본래의 『축산정조전』을 증보해 『축산정조전전편』으로 이름을 바꿔 간행하게 됐고, 그 후 바뀐 이름이 통용된 것이다(西桂, 2005). 이 책을 보면, 모범이 될 만한 뛰어난 경승지, 석조와 수목의 배치법, 진·행·초眞·行·草 1의 격을 분별하는 법 등 총론적인 것에서부터, 지천池泉과 폭포, 축산의 야쿠이시役石 2와 야쿠기役木 3의 해설, 수목이나 초화류의 유지관리에서 주의할 사항, 석등롱과 쵸즈바치手水鉢 등 각론까지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자연을 떠나서는 정원이 존재할 수 없다는 기본론이 강조돼 있고, 작정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곧 공간 분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정원의 정체성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이들 작정비전서들이 일본정원의 정형화를 초래해 이전의 정원에 비해서 일본정원의 격을 낮추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정원을 대중화, 생활화했다는 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작정이 지방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나게 했고, 그 지방의 소재를 사용한 독특한 정원들이 나타나게 됐다는 점은 작정비전서가 일본정원문화사에 기여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교쿠센엔 정원
교쿠센엔玉泉園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인 에도 초기에 가가 마에다加賀前田 번藩의 중신 와키타脇田 가家에서 조성한 무가정원武家庭園이다. 정원의 조성은 초대 나오가타直賢로부터 4대 쿠헤에九兵衛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 동안 진행해 에도 중기에 완성됐다. 이 정원은 남동쪽 언덕 위에 조성된 가가번주 마에다 도시나가利長의 겐로쿠엔兼六園보다 약 120년 정도 오래된 역사를 가진다. 이 정원은 총면적이 2370m2으로 언덕을 잘 이용해 상하 2단으로 조성됐고 못을 중심으로 하는 지천회유식정원 양식을 보인다. 정원은 본정本庭, 서정西庭, 동정東庭으로 구성된다. 와키타 가 2대 나오요시直能는 우라센케裏千家의 시조인 천선수종실千仙叟宗室로부터 차를 배운 인물로, 정원의 최상단에는 천선수종실이 차를 지도한 쇄설정灑雪亭(사이세쓰테이) 노지가 있다. 약 400년 전에 건축한 것으로 알려진 이 쇄설정은 가나자와 金沢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져 있어 정원의 역사를 가늠케 한다. 또한 옥천저玉泉邸 내에는 교토에 있는 우라센케 한운정寒雲亭(간운테이)의 건립 당시 모습을 그대로 모방해 지은 다실도 있어 이 정원이 노지정원으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홍광표는 동국대학교 조경학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경기도 문화재위원, 경상북도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 사찰 조경에 심취하여 다양한 연구와 설계를 진행해 왔다. 현재는 한국전통 정원의 해외 조성에 뜻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전통조경』, 『한국의 전통수경관』, 『정원답사수첩』 등을 펴냈고, “한국 사찰에 현현된 극락정토”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 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