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광표 ([email protected])
후몬지 정원
후몬지普門寺는 메이도쿠明德 원년(1390) 세쓰간説巌(설암) 화상이 개창하였고, 에이로쿠永祿 연간(1558~1569)에 영주 호소카와 하루모토細川晴元(1514~1563)가 정비한 절이다. 후몬지는 쇼호正保 2년(1645)에 본래 있던 자리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건됐으며, 용계성잠龍溪性潜에 의해서 새롭게 부흥되는 역사적 사실을 보인다(大橋治三·齊藤忠一, 1998).
용계는 16세인 겐나元和 3년(1617)에 후몬지로 출가하였으며, 이후 주로 료안지에서 주석하였다. 칸에이寬永 4년(1627) 자의사건紫衣事件이 일어나면서 묘신지妙心寺산내가 2파로 의견이 갈리게 되었는데, 한 파는 막부의 횡포에 강력하게 저항해야 한다는 경파硬派였고, 다른 한 파는 막부의 지시에 순순히 따라야한다는 연파軟派였다. 자의사건이 해결되고 나자 연파는 산내에 고립되었고, 연파에 속해있던 용계역시 료안지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쇼오承応 3년(1654) 용계는 50세의 나이로 후몬지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바로 그 해 7월 5일 중국 황벽종의 인겐隱元(은원)이 나가사키長崎 고후쿠지興福寺(통칭 남경사)의 일연성융逸然性融과 단월檀越의 초청으로 일본에 와서 다음 날인 6일에 고후쿠지에서 개법開法을 하고, 그 다음 해에는 소후쿠지崇福寺에 살면서 설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용계는 같은 해 8월 인겐을 묘신지로 초청하여 종풍 개혁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 9월에는 후몬지에도 초청하여 승당을 열었다. 용계는 이윽고 인겐의 제자가 되었는데, 인겐의 제자가 되면서 원래 당호인 용계종잠에서 용계성잠으로 명호를 바꾸게 된다.
후몬지의 정원은 인겐을 맞이하면서 비로소 축조된다. 작정은 요련사에 주석하던교쿠엔玉淵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교쿠엔은 흥성사 산내의 탑두塔頭와 가쓰라리큐桂離宮의 작정에 참여한 인물이며, 후대에는 라쿠호쿠洛北에 소재한 원통사의 정원을 만들었던 석립승石立僧이다.
정원은 평원산수화平原山水畵풍의 고산수양식을 보인다. 중앙에 커다란 출도를 배치하고 왼쪽 구석에는 고롱석조枯滝石組를 만들었다. 학도鶴島 모양의 석조에는 커다란 돌 하나를 높이 세웠는데, 그 오른쪽에는 2단으로 된 마른 폭포를 만들어 물이 떨어져 흐르는 모양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우측의 용첨석은 윗부분이 평평한 돌로 높이 세운 입석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시 그 앞에는 석교를 놓았는데, 석교에 연결되는 좌우의 석조 역시 강력한 힘을 느끼게 한다. 이 석교는 하부가 지면에 닿도록 설치한 특이한 디자인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석교를 바닥에 닿도록 만든 정원은 일본은 물론 중국이나 한국의 정원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정원의 오른쪽 공간의 경우에도 만灣이 깊고 길게 들어가도록 조성하여 정원이 바다의 들쑥날쑥한 경관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쇼세이엔
쇼세이엔涉成園은 진종본묘真宗本{廟(신슈혼뵤)인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의 별저別邸다. 히가시혼간지는 케이쵸慶長 7년(1602) 12대 주지인 교뇨敎如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절을 지을 땅寺地을 하사받아서 이룩한 절이다. 그 후 13대 주지 센뇨宣如는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德川家光로부터 히가시혼간지 동측의 토지를 하사받고 쇼오承応 2년(1653) 이곳에 은퇴 후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은거소를 마련한다. 이 은거소에는 섭성원이라는 당호가 붙여졌는데, 이 말은 당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 1절 “원일섭이이성취園日涉而以成就”에서 ‘섭涉’자와 ‘성成’자를 따온 것이다. 별저를 이룩한 후 센뇨는 별저의 경계부에 탱자나무枳殼(기각, 가라다치)를 심어 산울타리로 삼았는데, 이러한 까닭에 별저의 이름을 ‘탱자나무 집’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집에는 탱자나무 집이라는 이름 이외에도 히가시혼간지의 하옥부下屋敷(시모야시키), 신옥부新屋敷(싱야시키), 백칸옥부百間屋敷, 동전東殿, 동원東院, 기각어전枳殼御殿 등 다양한 별칭이 있다.
홍광표는 동국대학교 조경학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경기도 문화재위원, 경상북도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 사찰 조경에 심취하여 다양한 연구와 설계를 진행해 왔다. 현재는 한국전통 정원의 해외 조성에 뜻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전통조경』, 『한국의 전통수경관』, 『정원답사수첩』 등을 펴냈고, “한국 사찰에 현현된 극락정토”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 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