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 생태가 어우러진 생태하천 조성 시대로의 변화
서언
우리나라 하천정비의 역사를 살펴보면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재위 887~897년) 때 최치원 선생이 함양읍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함양읍의 서쪽에 있는 위천 강가에 나무를 심어 만든 대관림을 조성한 것을 하천정비의 시작으로 볼 수 있으며, 이곳은 현재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된 함양상림으로 불리고 있다.
조선시대 한양이 수도로 정해지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하천이 오염되고 하천과 주변 지역이 훼손되어 북악산과 남산으로부터 토사가 쓸려 내려와 청계천(개천) 바닥에 퇴적되고 홍수가 잦아지자 조선 태종 때 개거도감(開渠都監)을 설치하여 하천정비를 하였고 세종 때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쓸려내려온 토사로 인하여 청계천은 하천으로의 구실을 다하지 못하였는데 영조 때에 이르러 준천사를 설치하여 대대적인 준설을 하였고, 조선시대 마지막까지 주기적으로 준설을 하며 관리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토지확보와 산미증식계획과 연계해 수확량 증대를 위한 관개용 저수지, 보, 농수로 등 수리사업의 일환으로 하천정비가 이루어졌으며, 전국적으로 조직된 수리조합을 통해 추진되었다. 하천개수공사를 위해 조선총독부는 1915~1928년까지 14년간에 걸쳐 대영강, 청천강, 대동강, 재영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용흥강, 성천강, 만경강 등 14개 하천에 대한 1차조사를 끝내고, 이어서 1939년까지 압록강, 두만강, 안성천, 삽교천, 동진강, 형산강, 안변남대천, 성천남대천, 수성천, 금진강, 서천남대천 등 11개 하천을 조사하고 1차 하천조사사업이 끝날 무렵부터 일제는 식량조달에 있어 홍수 피해가 큰 만경강 등 주요 하천의 중요부분에 대한 하천개수를 1940년경 거의 완료하고 1925년부터 1945년 패망 때까지 크고 작은 715개 하천에 대한 치수사업을 시행하였다.
해방 후 1960년까지 15년간 건국 초기의 하천사업은 소규모 농업용 저수지 축조와 치수용 제방 축조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하천에 대한 관심은 최소한에 머물러 대부분 자연하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하천정비가 본격화 되었고, 하천관리의 방향도 경제발전 및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라 급격하게 변화하게 되었는데 196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 하천관리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국내 하천정비사업의 시대적 변천과정과 최근 동향을 대표적인 사례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