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형석 ([email protected])
시작
필자가 맡은 부분의 처음 제목은 ‘우정상의 설계철학’이다. 설계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나의 설계철학도 아니고 선생님의 설계철학이라니…. 게다가 기라성 같은 선배들 대신 내가 쓰는 게 맞는건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미리 말씀드리고 시작하려고 한다.
이 글은 철학이라기보다는 선생님이 평소에 말씀하셨던 내용과 작품집에서 나오지 않았더라도 나와 연결됐던 에피소드를 재료로 언저리에서―게다가 막 대학을 졸업했을 당시 어린이의 시각으로― 선생님의 설계방법에 대해 보고 느낀 개인적인 서술임을 밝히고자 한다.
에피소드
설계를 대하는 사고방식과 태도에 따라 설계 결과물(깊이감, 지속력, 만족도)의 그레이드가 달라진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설계에 대한 선생님의 방법은 일을 사랑한 그의 삶만큼이나 심플했던 것 같다. 그는 두려움 없이 일에 임하셨고 또 그렇게 만들어내셨다.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얻은 경험을 주관적으로 해석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내가 그려줄게”
납품 날짜가 임박하면 누구나 마음이 불안해지고 야근과 철야가 발생하게 된다. 요즘에도 그렇겠지만 20여 년 전쯤에는 더 심했다.
그렇게 정신이 없을 때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제도 테이블에서 T자로 도면―그 당시에는 모두 수작업―을 만들어 주시곤 했다.
주로 입면도를 많이 그려 주셨는데 아마도 그것이 갖는 의미는 배열된 시설과 수목의 높이와 공간의 폭을 느끼게 해 주는 수단 중의 하나로 유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러한 작업을 통해 평면에서 놓치기 쉬운 공간의 스케일감을 많이 확인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밤이 지나면 멋진 설계 결과물과 또 다른 부산물―많은 담배꽁초와 쌓인 커피잔―을 함께 주셨던 기억이 있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하룻밤만 새면 된다고 하시면서 할 수 있다고 긍정 에너지를 주셨다. 나이와 상관없이 설계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한다’라는 본보기를 보여 주신 것 같다.
#2 “그냥 그려”
선생님은 건축 베이스로 건축적 관점에서 일처리를 많이 하셨다. 아는 분들도 건축, 구조, 설비 등 분야가 다양했다.
따라서 작은 규모의 경우 건물의 설계도 해야만 했다. 필자가 처음 그린 도면이 화장실이었으니까 건축, 조경 구분이 별로 없었던 듯하다.
특히 조경시설물이나 구조물의 경우 구조계산이라는 단계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때 주변 지인들과 협업을 많이 하셨다.
지인들과의 협업이 충분히 가능하니 나온 말씀이 “그냥 그려”인 것이다. 고민하지 말고 디자인 위주로 그냥 그리라는 것이다.
그 당시에 지인들을 쉽게 섭외해서 일처리를 하니 인적 네트워크 형성도 설계 방법 중의 중요한 하나임에 분명하다.
#3 “전화해서 물어봐”
“스테인리스 강관 길이가 2m 이상은 밴딩이 안됩니다.”
“그 목재는 방부처리가 안 됩니다.”
“그 규격의 수목은 국내에 없답니다.”
이때부터 설계 담당자의 손길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아마 선생님이 압박을 해서 그렇겠지만 정말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시작돼 반드시 한 군데는 있을 전문업체를 찾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고 설계에 반영이 된다. 선생님은 시공도 같이 관여하셨는데, 설계와 시공을 병행하는 다른 분들과 조금 차이점이 있다면 모든 것의 기준이 설계가 된다는 점이었다. 실무를 10년 동안 하다 보니 알게 된 거지 그 당시에는 뭐 이렇게 귀찮게 고려할 게 많은지 사실 괴로웠다.
그것은 시공이 많이 까다롭고, 돈이 좀 더 들어도 좋은 설계안을 구현한다는 뜻이라 생각된다. 설계안이 나온 후 전화해서 시공이 가능한지 설계에서 좀 더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수정을 했다. 대부분은 현장에서 수정한다고 그냥 진행하는데 선생님은 설계를 끝내고 현장에서 그대로 하는 것을 원하셨고 그렇게 했다. 그래서 필자도 설계 초짜들이 하는 실수들이 현장에서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고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 이렇게 조금 힘들어도 두 분야를 병행한 경험은 설계가로서 귀중한 자산이 아닐까 싶다.
오형석은 새로운 조경 문화를 고민하던 젊은 조경가 7인과 의기투합해 만든 프로젝트 그룹을 기반으로, 2005년도에 디자인로직을 설립했다. 그동안 디자인로직을 이끌며 새로운 외부 환경에 대한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으며, 또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을 갈구하고 있다.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 후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서인조경과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LH 조경 부문 자문위원, 인천시 도시디자인 자문위원, 코레일 조경 심의위원을 역임했고, 한국도로공사 사옥, 한남더힐 설계공모전에서 당선됐으며, 세종문화회관 예술 정원, 호텔 롯데 제주, 용현 SK VIEW 등을 설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