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광표 ([email protected])
타이쇼大正 시대는 타이쇼大正 천황의 재위 기간인 1912년부터 1926년까지의 15년간을 가리킨다. 타이쇼 천황은 메이지 천황의 아들인 요시히토嘉仁로, 메이지明治 천황이 죽은 후 1912년 7월 천황으로 등극한다. 그는 병약하여 일본 근대사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하지는 못했으며, 특별히 남긴 업적이 없다.
타이쇼 시대의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군사력과 군비산업이 비약적으로 확충되었고, 만주를 유효하게 지배하였으며, 조선과 대만을 식민지화함으로써 생산 활동과 경제 규모가 급격히 커졌다. 그러나 막대한 전비 지출과 해외 공략에 따른 재정 지출이 급증하면서 국채와 외채는 누적되고, 국민의 부담은 가중됐다.
만성적인 경제불황으로 침체된 일본경제를 회생시킨 것은 유럽에서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일본의 대외 수출은 3배로 늘어났고, 공업 생산액은 5배로 증가했으며, 경공업과 함께 제철·기계 제작과 같은 중공업까지 발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 일본은 무역 흑자국이면서 채권국이 됐다. 서구 열강이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연합국으로 참전했던 일본은 중국에 대한 침략을 더욱 본격화하면서 동맹국 독일의 중국 이권까지 차지해 버리고 말았다.
일본은 1920년대 들어 경제 규모의 확대와 교육의 확충으로 전국적인 사회·노동·농민운동이 전개되었고, 도시 중산층들에 의한 자유주의적 민주정치 요구도 증가했다. 타이쇼 시대를 중심으로 일본의 정치·사회·문화의 각 분야에서 민주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회를 지향하려는 운동과 풍조가 나타났는데, 이것을 타이쇼 데모크라시Democracy라고 한다. 이 풍조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세계적인 움직임과 일본 국내적으로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도시 중간층과 무산계급의 성장, 그들이 정치적, 시민적인 자유를 추구하게 된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타이쇼 시대의 건축과 조경문화를 한마디로 특정하여 말하기는 곤란하다. 정원문화 역시 메이지 시대의 양식적 특징이 지속되는 현상을 보이는 정도에 그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내용이 없다.
홍광표는 동국대학교 조경학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경기도 문화재위원,경상북도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 사찰 조경에 심취하여 다양한 연구와 설계를 진행해 왔다. 현재는 한국전통 정원의 해외 조성에 뜻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전통조경』, 『한국의 전통수경관』, 『정원답사수첩』 등을 펴냈고, “한국 사찰에 현현된 극락정토”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 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