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광표 ([email protected])
헤이안 신궁 정원
헤이안 신궁은 메이지 28년(1895) 헤이안 천도遷都 1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창건됐다. 신궁의 사전社殿은 헤이안 시대 도성 내의 궁성에 있던 조당원朝堂院1을 약5/8 크기로 축소·모방해 건축했으며(岡野敏之, 1994:24), 못을 중심으로 하는 정원은 협찬회協賛会의 조영사업으로 축조됐다. 헤이안 신궁의 정원은 본전을 중심으로 서쪽에 만든 서신원西神苑, 본전 바로 옆에 만든 중신원中神苑2, 동남쪽에 만든 동신원東神苑 그리고 서신원 남쪽에 조성된 남신원南神苑으로 구분한다. 이 정원들 가운데 1100주년 기념제까지 완성된 정원은 백호지白虎池를 중심으로 하는 서신원과 창룡지蒼龍池(소류치)를 중심으로 하는 중신 원이었다. 그 후 메이지 30년(1897)에 서신원과 중신원을 계류로 연결했으며 메이지 44년(1911)부터 타이쇼大正 5년(1916)까지 서봉지栖鳳池를 중심으로 하는 동신원이 완성돼 헤이안 신궁 정원의 면모를 갖췄다(大橋治三·齊藤忠一, 1998). 이 정원들은 쇼와昭和 44년 동신원의 남쪽을 일부 개조했을 뿐 모든 것이 조성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메이지 시대 정원양식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신원의 건축은 기코 세이케이木子淸敬와 이토 치유타伊東忠太가 담당했고(岡野敏之, 1994:24), 정원은 전체적으로 오가와 지헤에小川治兵衛(1860~1933)의 설계와 시공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지헤에는 메이지 시대와 타이쇼 시대를 풍미했던 작정가로 교토의 무린안無鄰庵, 도쿄의 큐 후루카와저旧古河邸의 정원, 오사카의 게이타쿠엔慶沢園(경택원) 등 동서에 걸쳐 수많은 정원을 만든 장본인이다. 헤이안 신궁 정원은 지헤에가 조성한 많은 정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小野健吉, 2004).
남신원은 계류형 수로와 수로의 흐름이 넓어진 듯 보이는 못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수양벚나무紅枝}垂桜가 많아 꽃이 피면 장관을 이룬다. 특히 꽃이 떨어질 때는 원로와 수로 그리고 못이 온통 꽃잎으로 뒤덮인다.
서신원은 신궁의 창건과 함께 조성됐다. 서신원의 중심은 백호지로 이 명칭을 붙인 것은 사신상응四神相應을 의도한 것이다. 백호지에는 못가에 군데군데 호안을 겸한 돌을 놓았는데 이것은 지헤에가 조성한 다른 정원에서도 볼 수 있는 작법으로 단순한 포석이 아니라 돌의 우아한 표정을 읽을 수 있도록 한 높은 수준의 기법이다. 못의 북동부에는 높이가 2m 정도 되는 폭포가 있다. 물이 2단으로 떨어지도록 돌을 조합한 롱석조滝石組(다키이시쿠미)로서 헤이안 신궁의 정원에서는 유일한 폭포이다. 못의 남동부에는 창포밭을 만들어 창포가 피는 계절에는 못 주변으로 창포꽃이 만개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못의 남서쪽에는 너무 높지 않도록 축산을 하고 그 위에 징심정澄心亭이라고 이름을 붙인 다실을 하나 두었다. 이곳에는 가마쿠라 시대에 조성한 보광인탑宝筺印塔의 기초를 이용한 츠쿠바이蹲踞(준거)가 있다.
홍광표는 동국대학교 조경학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경기도 문화재위원,경상북도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 사찰 조경에 심취하여 다양한 연구와 설계를 진행해 왔다. 현재는 한국전통 정원의 해외 조성에 뜻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전통조경』, 『한국의 전통수경관』, 『정원답사수첩』 등을 펴냈고, “한국 사찰에 현현된 극락정토”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 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