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민 ([email protected])
2014년부터 연재한 ‘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는 이제 설계의 매력에 눈을 뜨기 시작한 학생들, 1년에서 3년차 정도의 설계사무소의 초보 조경가를 독자로 상정하고 썼던 글이다. 7년이 지났다. 아마도 독자들이 조경가로 설계를 계속하고 있다면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팀장이나 실장의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독립해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막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7년 전에는 선생 혹은 선배의 입장에서 글을 썼다면, 지금은 같은 동료로서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 글은 연재를 다시 돌아보는 글이 아니라, 그때 미처 끝내지 못하고 미루어두었던 연재의 마지막 원고일지도 모르겠다.
슬럼프인가
이 소장은 전에 없던 고민이 생겼다. 이제 설계사무소를 차린 지 이제 2년이 지났다. 우려와는 달리 젊은 감각의 신생 회사를 찾아주는 클라이언트는 많았고, 일은 금세 혼자 처리하기 벅찰 정도로 늘어났다. 좋은 파트너들을 영입했고 새로운 감각을 갖춘 신입도 들어왔다. 예상한 것보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다. 그런데 최근 내가 잘하고 있냐는 의구심이 자꾸 생긴다. 아마도 가장 아끼던 직원이 갑자기 사직서를 내고 퇴사를 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실망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최근 야근이 많기는 했지만, 만성적으로 늘 야근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돈을 많이 벌어야 할까? 아니면 직원들의 복지와 만족을 더 우선해야 할까? 고생할 것이 뻔한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면 도전해야 할까? 도대체 좋은 조경설계라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나는 조경을 왜 하는가?
조경학과 학생
한 대학의 조경학과에서 세 학생이 동기로 만난다. 나이도, 고향도, 생각도 달랐지만 함께 공유한 것이 있었다. 바로 지향점이었다. 처음에는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의 내용과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보수적인 교수들은 새로운 변화에는 눈을 감은 채 과거의 원칙만 강조했다. 하지만 옆의 건축과에서는 혁신적인 건축가들을 교수진으로 초빙해 구시대와 결별을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을 실험하고 있었다. 세 학생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새로운 도시와 건축에 대한 글들을 모여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축가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조경은 어때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여러 차례의 실망과 좌절 끝에 그들은 깨달았다. 이 학교에서 아무도 새로운 조경에 관해 관심조차 두지 않고,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면, 우리가 그 새로운 조경을 만들면 된다고.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조경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건축 전문지에 투고하기 시작했다. 편집자들은 젊은 학생들의 생각을 신선하게 받아들였고, 그 글들은 당시 저명한 건축 전문지에 실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미국 모더니즘 조경의 시작이었다. 이 삼인방은 하버드 대학교 조경학과에 같이 입학한 26살의 에크보Garrett Eckbo, 24살의 카일리Dan Kiley, 23살의 로즈James Rose였다. (후략)
* 환경과조경 399호(2021년 7월호) 수록본 일부
김영민은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번역했으며, 2014년부터 2015년까지 『환경과조경』에 ‘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를 연재했다. 연재 내용을 바탕으로 설계 방법론을 정리해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한숲, 2016)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