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영애 ([email protected])
“저는 오즈 야스지로우 영화 별로 안 좋아해요. 너무 심심하잖아요”라고 남자가 이야기하자 찬실은 버럭 화를 낸다. “심심한 게 뭐가 어때서요? 별거 아닌 게 제일 소중하잖아요. 보석 같은 게 영화에 다 나오잖아요. 영이 씨 눈에는 그런 게 안 보여요?” 찬실의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왜 찬실은 복이 많은 사람인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알게 된다. 대화의 발단은 이렇다. 찬실은 평소 마음에 품은 연하의 남자 영과 술을 마시게 된다. 일본식 술집에 나란히 앉아 찬실은 제일 좋아하는 오즈 야스지로우 감독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고 즐거워한다. 하지만 눈치 없는 영이 그 감독의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분위기를 깨 버린 것이다.
사실 상황만 보자면 찬실은 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소위 예술 영화를 찍는 감독의 프로듀서로 오랜 시간 동안 일했지만, 감독이 돌연사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나이 마흔이 되는 동안 일만 열심히 했지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서울에 저런 동네가 아직도 있나 싶을 정도의 산꼭대기 단칸방으로 이사하는 날, 찬실은 “완전히 망했다”고 탄식한다. 생계가 막막해지자 친한 배우 소피가 도와주겠다고 하지만 찬실은 거절하고 소피의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런 찬실에게 어느 날 희한한 일이 생긴다. (후략)
* 환경과조경 399호(2021년 7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기술사사무소 이수에서 일하고, 연세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가르치며,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에서 공부하고 있다.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역사도시경관으로 보는 서울 남산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환경과조경』에 ‘시네마 스케이프’를 연재했다. 특집호 의뢰를 받고 작년에 본 이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현재 넷플릭스로 볼 수 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은 일상의 보석을 캐는 일과 같다. 최근 오픈한 BoLA 홈페이지(www.bola.kr)에서 다시 영화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