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한결 ([email protected])
몇 년 전 아버지께서 시골에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을 때 엄청난 불안감이 엄습했다. 멀쩡히 다니시던 직장을 뒤로 하고 전원생활이라니! 이전부터 나무나 꽃을 키우시는 일을 좋아하셨고 생태나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으셨던 아버지께서는 시골에 내려가신 뒤로 아예 ‘생태주의자’를 자처하셨다. 적당히 제초제를 치라고 어머니와 내가 그렇게 말씀을드려도, 아버지는 허리가 꼬부라지실 때까지 손으로 잡초를 뽑으셨다. 아버지가 손수 가꾼 정원을 내게 처음으로 보여주셨을 때, (아버지께 미안하지만) 나는 그것이 정원이 아니라 정글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더할 나위없이 친환경적이었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이 환경적으로는 완벽한 정글 같은 정원을 어떻게 하면 번듯하게 바꿀 수 있을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신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저녁 밥상에 내놓은 채소도 사실은 실망스러웠다. 아버지의 정원에 사는 온갖 풀벌레들이 선심쓰듯 남겨놓은 채소에 감지덕지하며 부족한 듯 배를 채워야 했다.
우리 가족이 전원으로 이사한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드디어 ‘웰빙’을 실천하게 되었냐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말이 좋아 ‘웰빙Well-being’이지 사실은 온갖 불편함과 고된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삶이다. 최근 ‘에코라이프스타일’로 유명한 모 연예인이 블로그에 ‘모순덩어리 삶’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관심을 받았다. 그는 ‘개는 사랑하지만 가죽 구두를 신’으며 ‘숲을 사랑 하지만 집을 짓는다’고 했다. ‘웰빙’, ‘에코 라이프스타일’ 등 최근 유행하고 있는 생활양식은 사실 그리 낭만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짚신과 가죽 구두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삶이다. 그런데 여기 이 모순덩어리 삶에 대해 ‘조화로운 삶’
이라 부르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에게 ‘조화로운 삶’에 대한 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또 반쯤은 ‘조화로운 삶이라니, 어디 들어나 보자’ 하는 불손한 마음으로 책을 집었다. 그들이 말하는 ‘조화로운 삶’에 비추어 내 모순덩어리 삶을 반추해본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헬렌 니어링·스코트 니어링, 『조화로운 삶』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 스코트 니어링이 남긴 말이다. 그의 말에는 ‘삶의 방식’ 그 자체보다는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담겼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삶과 불편하지만 소박한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과정 그 자체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성숙하게 만들 것이라는 작가의 신념에 용기를 얻는다.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움과는 반대로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편리함, 이기주의, 물욕 등의 유혹에 맞선 투쟁의 기록이다. 니어링 부부는 도시를 떠나 버몬트 숲 속으로 들어가며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독립된 경제를 꾸리는 것,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것,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사는 것이 그 목표였다. 이 목표를 위해 그들은 채식주의를 지킬 것, 자급자족할 것, 노동은 시간을 나눠서 할 것, 기계에 의존하지 말 것, 남는 음식은 필요한 사람에게 줄 것 등의 세부 원칙을 만들고 철저하게 지켰다. 그들은 이 과정에서 때로는 쓰라린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유기물로 된 퇴비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차례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위해 노력했지만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버몬트 주민들은 쉽사리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의 과정을 고백하는 그들의 문체는 투쟁적이기보다는 담담하고 진솔하다. 목표의 성공 여부보다는 ‘희망과 인내, 그 일에 쏟아 붓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1
담담하고 서정적이기까지 한 니어링 부부의 글에 이끌려 낭만적인 환상을 품지 말기를 당부한다. 니어링 부부는 속편, 『조화로운 삶의 지속』에서 이렇게 주의사항을 전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일은 어느 순간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거듭되는 고민 속에서 내린 결정이고, 그 결정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앞날을 내다보고 만족스러운 결과에 이르는 결정이어야 한다. 처음 3년을 보내기가 가장 힘들고 어렵다. 적어도 그만큼은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한다.”
나는 내 본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즐겁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앞서 소개한 『조화로운 삶』은 『월든』이 출간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에 출간된 책이다. 니어링 부부보다 100년을 앞서 소로는 문명으로부터 벗어난 월든 호숫가에서 손과 발의 노동만으로 생활을 꾸려 나갔다. 두 책이 비슷한 점도 많지만, 수기적 성격이 강한 『조화로운 삶』에 비해 『월든』은 실험적, 연구적 성격이 강하다.
그는 책의 ‘경제’ 챕터에서 당시의 식량 가격을 종류별로 정확하게 기록했으며 자신의 수입과 지출을 세세하게 정리해 놓았다. 또한 계절 별로 변하는 호수의 풍경과 자신이 보고 관찰한 동·식물의 행동과 특징을 아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한 예로 그는 호수에서 낚시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호숫가로부터 낚시를 한 지점까지의 거리, 닻을 내린 지점의 수심, 낚싯줄을 드리운 길이까지 기록했다. 그의 자질구레하고 세밀한 기록은 19세기 중반 미국의 풍속사에 마니아적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모르겠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