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동 단위를 넘어서 이사하는 인구비율은 연20%에 가깝다. 유럽의 10배, 일본의 4배, 대만의 3배이며, 미국의 2배이다.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왜 이리 자주 옮겨 다닐까? 높은 인구 이동률은 그 도시의 정주체계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경제활동을 위한 자발적인 이사도 적지 않겠지만, 사실은 도시개발 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에서 보편화된 뉴타운과 재개발, 초고층 재건축 중심의 스펙터클한 개발사업은 지역주민을 흩어지게 하고 정주성을 낮추는 주범이다. 그리고 도시문제의 상당 부분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서울과 수도권은 양적으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시이고 거대생활권이다. 그러나 질적으로 따지면 그 위치가 한참 내려간다. ‘경제’나 ‘산업’을 떠나 미래적인 개념의 살기 좋은 도시를 꼽을 때 우리 도시들의 이름을 찾기는 힘들다. 일찍이 미국의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포드가 개념화한 ‘메가 머신(mega machine)’이 바로 우리들의 도시 체계인지 모른다. 전통의 커뮤니티는 하나 둘 사라지고, 온갖 소비적 커뮤니티와 사생활적 커뮤니티만이 번성한다. 그 속에서 구성원들은 개인으로 파편화되며, 시민이 아닌 소비자가 되어간다. 그들의 꿈은 갈수록 도시공간적인 스펙터클에 흡수되어 고유의 매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어렵게 되고 있다.
숱한 대규모 개발이 주거단지를 만든 대신 다수의 커뮤니티를 파괴했다. 이제 기대하는 것은 메가 머신이 하사하는 미래주의적 대개발이 아니다. 오히려 좀 소박하지만, 도시민 스스로 이끌어가는 공간창출과 관리이다. 그 대안으로 커뮤니티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 공동체 붕괴와 과도한 도시화가 부른 단절, 소외,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이 기법의 핵심은 공동체의 재구성을 공간적으로 돕는 데에 있다. 물론 근대성의 상징인 ‘도시’와 전근대성의 흔적인 ‘공동체’를 조화시키기는 쉽지 않다. 둘의 특성들을 하나하나 톱아보면, 개념적으로 서로 대척점에 서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커뮤니티 디자인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영국 국가통계청은 행복을 위해서는 ‘건강, 관계, 일,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고 정의했다. 이 중에서 관계와 환경, 건강은 거주공간과 직결된다. 커뮤니티 디자인은 이웃과의 관계와 좋은 거주환경에 초점을 둔다. 그렇게 될 때 건강한 삶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커뮤니티는 서구에서도 최근 몇 십 년 동안 무척 인기가 높아진 용어로 꼽힌다. 도시화의 부작용과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기 때문일 것이다. 커뮤니티 디자인에 좀 더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