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1883년 개항을 기점으로 폭발적 성장을 하였다. 항만을 매립하고 도서지역을 편입시켜 도시의 면적이 170배나 확장되었다. 1968년 원도심은 인천 전체 면적의 53%였고 그 중 남구가 48%를 차지할 만큼 경제·상업·행정 업무의 중심지였으나 현재 남구는 인천 전체면적의 2.3%에 불과한 구도심으로 전락해버렸다.
도시주거환경정비 재개발 사업과 같은 꿈같은 사업들이 이곳 남구를 들썩이게 했다. 정비예정구역은 인천시의 1.5%였지만 남구 전체 면적 중 19.7%가 해당되었다. 신기루를 꿈꾸던 주민의 희망과는 반대로 정비예정구역은 실질적인 추진을 이루어내지 못하다 결국 해제되었다. 해제된 지역 3.5㎢ 중 남구에 해당하는 지역은 1.8㎢로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우리1가 만난 제물포 지역도 지정과 해제를 겪으며 경제적,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는 곳이었다. 일부 주민단체는 여전히 꿈같은 조감도를 제시하며 이행하지 못한 책임을 행정기관에게 묻고 있었고, 행정은 그런 그림을 다시 그려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역주민과 행정기관과 함께 할 대상지는 제물포역을 중심으로 인천축구전용경기장과 도화역 사이의 긴 공간이었다. 경인선이 놓여 지역의 왕래가 단절되어 있었으며, 인천대학교가 송도로 이전함에 따라 학생 소비자를 잃은 대학로와 대형마트 옆 텅 빈 시장은 방치되어 있었다.
주민들을 만나며 5가지 계획의 조건들을 내세웠다. “작은 사업으로 계획합니다. 전면철거 재개발 방식의 사업은 없습니다. 누가 무엇을 할지를 먼저 생각하겠습니다. 주민들이 주체로 나설 일을 찾아보겠습니다. 지역의 역량에 보다 깊게 밀착 하겠습니다.”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그 안에 주민이 주체가 되는 제물포역세권의 활성화방안을 수립하여야 했다. 좀 더 빠른 추진을 위해 처음에는 역세권 주민들을 한 번에 만났다. 의제들이 구역별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대상구역을 세 곳으로 나누고 각각의 대상구역의 사람들을 나누어 만났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실제로 무엇인가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우린 이것을 시범사업이라 불렀다. 이로써 연구와 계획과 실행이 동시에 진행되는 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