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관 엑토건축 대표((사)문화도시연구소 상임대표,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 10년, 이 오랜 시간 동안 농촌의 복지 특히 농촌건축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건축가가 있다. 바로 주대관 건축가(엑토건축 대표, (사)문화도시연구소 상임대표)이다. 그의 대안에는 낡고 허문 집을 고쳐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고민이 담겨있다.
독거노인주택, 저소득층주택, 장애인 주택, 귀농자 주택, 마을도서관, 농촌형 임대주택까지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거복지 대안 모색을 위해 노력해 온 그에게 ‘사회참여’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은 “전문가에게 ‘참여’는 전문가의 작업영역 그 자체일 뿐”이라고 답한다.
사회적인 활동과 참여에 언제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러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신가요?
1997년 어느 봄날 강원도 태백시의 탄광촌을 지나고 있었는데, 길가의 5층 아파트 발코니 창문이 모두 닫혀 있는 것이 이상해서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더니 차창 밖 마을에 인적이 없다는 것, 탄광촌 마을이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차를 세웠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석탄산업 호황기에 탄광촌은 검은 노다지를 찾아 꿈을 찾아 전국에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과 가족들로 북적이는 곳, 거리와 산천이 모두 검은 색이지만 광부들 스스로 건축가가 되어 판자를 구해서 뚜덕이어 지은 집들로 이루어진 도시였는데, 이제 그 도시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그 전날에도 나는 농부건축가가 지은 집-집주인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스스로 구상하고 스스로 노동하여 지은 집-이 최고의 집이라고 학생들에게 열변을 토했었는데, 광부건축가의 집들이 이렇게 허망하게 집이 아닌 폐허나 심지어 개집이 되어 있었던 사실은 내가 알고 있던 건축에 대한 지식과 집에 대한 생각들 모두를 부정하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후 2년을 고민하고 준비하여 1999년 가을에 몇몇의 건축가들과 함께 그 마을에 다시 가서 탄광촌회생작업이라는 것을 시작했었습니다.
다양한 사회참여 활동 속에서 전문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결국 사회참여는 전문가가 마을이나 지역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마을’이나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지역’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공간이고 또 살아갈 공간이며, 따라서 많은 사회적인 것들이 축적되어 경관화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과 경관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고려해야 된다고 봅니다. 여기서 사람의 문제는 디자이너가 흔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성이나 영감의 원천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라포(rapport: 상호신뢰관계)를 형성하되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지역의 경관에 대한 깊은 리서치와 이해가 필요합니다. 경관이란 자동차나 고속열차를 타고 지나며 보이는 풍경이 아니라,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 지역이나 마을의 전부 – ‘지역적 총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그 마을이나 지역의 사람과 시간이 공간상에 축적되고 기록된 어떤 것이기 때문에, 지역의 건축과 장소와 경관 속에는 그 지역의 문화와 지리는 물론 사회적/경제적 신뢰와 연결망, 생산과 분배, 부와 빈곤까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경관의 독해를 통해서만이 전문가로서 지역을 이해하고 지역을 디자인하고 지역을 도울 수 있다고 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결과가 전문가의 시각에서 볼 때 안타까움이 있더라도 거주자들의 충분한 토론과 타협 그리고 합의agreement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역할이 조정과 중재의 역할을 포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관이 그 지역의 사회적인 것들조차도 포괄하고 있다고 보면, 여기서의 합의는 단순한 결과로서의 합의가 아니라 미래의 경관에 대한 가능성 즉, 지역의 미래 그 자체라고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마을이나 지역은 주민들이 가꾸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사회적 참여가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희가 2002년부터 시작한 어린이건축교실프로그램은 그간의 참여와 홍보에 의해서 일반인들의 건축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 초등학교용 건축교과서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문가의 사회참여는 이 사회의 혜택을 더 많이 받은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지만, 아울러 자신이 속한 전문영역과 그 전문가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여준다고 믿습니다. 참여를 통해, 조경가나 건축가가 이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일이야말로 어려운 상황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