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생각해 본 21세기 조경문화
키워드로 생각해 본 21세기 조경문화
Landscape culture of the 21st century as a keyword
21세기 조경문화
조경문화라고 이름붙일 만큼 조경이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고 우리사회 곳곳에 자리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일면 시기상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화라는 개념이 어떤 집단 또는 일반 대중이 생산해낸 무형의 공통분모라는 전제를 안고 생각해 본다면, 조경이 진정한 문화의 한 분류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 및 확대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을 대중성이라는 말로서 표현한다면 문화라는 의미는 “차별화되고 독특한” 이란 또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어디 나가서도 조경한다는 소리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는 몰라도 대충 좋은(?)직업이라는 반응을 내보이기도 하는 세상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이 조경을 문화의 위치에까지, 그것도 일부 특정집단에 의한 것이 아닌 대중적 문화라는 정체성 속에 파고 들기 위해서는, 그리고 진실로 원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할 듯하다.
이제부터 두서없이 펼치는 몇 마디는 21세기 조경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편집진의 열정을 높이 사고, 그에 맞추어 조경문화라는 이슈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아주 작은 생각을 적어본 것이다. 이미지니어, 상상력, 역발상 그래, 나는 이미지니어다. 맞다. 그런데 그게 뭘까.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이미지메이커랑은 어떤 점이 다를까.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분명히 틀리다. 이미지메이커는 말 그대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럼 이미지니어는? 이것도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같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지만 실상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이미지메이커는 ‘만든다’의 의미가 강하다. 이것은 물리적인 변화일 뿐이다. 가령 헝클어진 머리를 젤이나 스타일링폼을 이용하여 멋쟁이로 만드는 것, 점잖은 양복을 벗겨내고, 요즈음 유행하는 쫄티에 밀리터리룩을 입혀, 자유스러움을 표현하는 것, 즉 무엇인가를 덧붙이고, 빼고 해서 만들어지는 이미지 그리고, 어떤 대상이다. 그것은 향수가 될 수도, 그림이 될 수도, 그 무엇이라도 좋다. 하지만 이미지니어는 그게 아니다. ‘produce’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것은 물리적인 변화가 아닌 화학적 변화를 말한다. 사실 이미지니어는 1955년에 만들어진 월트디즈니의 세계최초의 창의력집단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재미있는 일을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화학적 상상력, 실체가 없는 무엇을 실체로 만드는 것이다. 즉 딱딱해진 우리 사고의 틀을 왕창 깨부수고, 딱딱해진 머리가 안된다고 하는 일을, 설마를 뛰어넘어 가능함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게 오늘날의 디즈니를 만들었던 원동력이다.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면 영원한 이등이고, 모방자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미지니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상상력과 역발상이다. 상상력이야말로 현시대에 우리사회 최고의 화두가 아닌가. 이미지니어는 상상력과 역발상을 통해 탄생한다. 이는 조경분야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성공한 자를 따라하기보다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또 다른 차원에서 찾아보는 노력이 우리가 원하는 상상력이 아닐까. 이것이 우리가 상상력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기 위해서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 “설마”를 뛰어 넘어 “어떻게”를 생각해 볼 일이다. 상상력은 우리의 세상을 풍부하게 해주는 마술이다. 지난 세월 지구의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이들의 상상력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생활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소통
얼마전부터인가 소통이라는 단어가 우리 주위를 맴돌고, 급기야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에게 소통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막히지 않고, 잘 통함” 또는 “뜻이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라고 한다. 조경을 천직으로 아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소통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조경 자체가 소통을 전제로 하는 매개이다. 자연과 사람, 인공과 자연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를 전제로 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조경이야말로 훌륭한 소통의 매개이자 수단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과연 소통의 행위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소통의 또다른 전제는 쌍방이다. 절대로 일방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조경을 예술의 한 형태라 할 지라도 조경은 예술보다는 디자인의 개념에 더 가깝다.
예술은 작자의 의도에 따라 다분히 일방적일 수 있으며, 오히려 관객의 이해를 요구한다. 하지만 디자인은 소비자의 요구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다. 그러므로 소비자의 주축인 상대를 이해하고, 공통의 분모를 지향해야 한다. 즉 상호작용을 통한 또다른 생산이 바로 디자인이라는 결과의 과정이며, 이러한 관점에서는 조경이 예술과 다른 분명한 디자인의 속성을 갖고 있는 이유라 할 것이다.
글 _ 이병훈 (de factory 소장)
에디터 _ 백정희
디자인 _ 이은미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Landscape culture of the 21st century as a keyword
21세기 조경문화
조경문화라고 이름붙일 만큼 조경이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고 우리사회 곳곳에 자리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일면 시기상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화라는 개념이 어떤 집단 또는 일반 대중이 생산해낸 무형의 공통분모라는 전제를 안고 생각해 본다면, 조경이 진정한 문화의 한 분류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 및 확대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을 대중성이라는 말로서 표현한다면 문화라는 의미는 “차별화되고 독특한” 이란 또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어디 나가서도 조경한다는 소리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는 몰라도 대충 좋은(?)직업이라는 반응을 내보이기도 하는 세상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이 조경을 문화의 위치에까지, 그것도 일부 특정집단에 의한 것이 아닌 대중적 문화라는 정체성 속에 파고 들기 위해서는, 그리고 진실로 원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할 듯하다.
이제부터 두서없이 펼치는 몇 마디는 21세기 조경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편집진의 열정을 높이 사고, 그에 맞추어 조경문화라는 이슈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아주 작은 생각을 적어본 것이다. 이미지니어, 상상력, 역발상 그래, 나는 이미지니어다. 맞다. 그런데 그게 뭘까.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이미지메이커랑은 어떤 점이 다를까.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분명히 틀리다. 이미지메이커는 말 그대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럼 이미지니어는? 이것도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같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지만 실상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이미지메이커는 ‘만든다’의 의미가 강하다. 이것은 물리적인 변화일 뿐이다. 가령 헝클어진 머리를 젤이나 스타일링폼을 이용하여 멋쟁이로 만드는 것, 점잖은 양복을 벗겨내고, 요즈음 유행하는 쫄티에 밀리터리룩을 입혀, 자유스러움을 표현하는 것, 즉 무엇인가를 덧붙이고, 빼고 해서 만들어지는 이미지 그리고, 어떤 대상이다. 그것은 향수가 될 수도, 그림이 될 수도, 그 무엇이라도 좋다. 하지만 이미지니어는 그게 아니다. ‘produce’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것은 물리적인 변화가 아닌 화학적 변화를 말한다. 사실 이미지니어는 1955년에 만들어진 월트디즈니의 세계최초의 창의력집단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재미있는 일을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화학적 상상력, 실체가 없는 무엇을 실체로 만드는 것이다. 즉 딱딱해진 우리 사고의 틀을 왕창 깨부수고, 딱딱해진 머리가 안된다고 하는 일을, 설마를 뛰어넘어 가능함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게 오늘날의 디즈니를 만들었던 원동력이다.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면 영원한 이등이고, 모방자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미지니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상상력과 역발상이다. 상상력이야말로 현시대에 우리사회 최고의 화두가 아닌가. 이미지니어는 상상력과 역발상을 통해 탄생한다. 이는 조경분야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성공한 자를 따라하기보다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또 다른 차원에서 찾아보는 노력이 우리가 원하는 상상력이 아닐까. 이것이 우리가 상상력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기 위해서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 “설마”를 뛰어 넘어 “어떻게”를 생각해 볼 일이다. 상상력은 우리의 세상을 풍부하게 해주는 마술이다. 지난 세월 지구의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이들의 상상력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생활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소통
얼마전부터인가 소통이라는 단어가 우리 주위를 맴돌고, 급기야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에게 소통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막히지 않고, 잘 통함” 또는 “뜻이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라고 한다. 조경을 천직으로 아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소통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조경 자체가 소통을 전제로 하는 매개이다. 자연과 사람, 인공과 자연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를 전제로 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조경이야말로 훌륭한 소통의 매개이자 수단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과연 소통의 행위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소통의 또다른 전제는 쌍방이다. 절대로 일방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조경을 예술의 한 형태라 할 지라도 조경은 예술보다는 디자인의 개념에 더 가깝다.
예술은 작자의 의도에 따라 다분히 일방적일 수 있으며, 오히려 관객의 이해를 요구한다. 하지만 디자인은 소비자의 요구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다. 그러므로 소비자의 주축인 상대를 이해하고, 공통의 분모를 지향해야 한다. 즉 상호작용을 통한 또다른 생산이 바로 디자인이라는 결과의 과정이며, 이러한 관점에서는 조경이 예술과 다른 분명한 디자인의 속성을 갖고 있는 이유라 할 것이다.
글 _ 이병훈 (de factory 소장)
에디터 _ 백정희
디자인 _ 이은미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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