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에서의 공공성, 착함에서 현명함으로
공공적 조경, 착한 조경?
조경현상설계만 모아 놓은 책자를 펼친다. 그리고 그 안의 글을 읽어 본다.
지역의 고유성과 문화적 기억 남기기
부지 내에 조용하고 교육적인 레크리에이션에 기여
지역 생태계를 보호
경관 체험과 다양한 문화 활동의 참여
커뮤니티 형성 및 아이덴티티를 강화
사회와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시도
맑고 밝고 바르면서도 아름다운 언어들이다. 글뿐만 아니라 패널을 장식했던 이미지가 담고 있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바닥분수 사이를 뛰어 다니고, 근육질의 남자는 조깅을 하고 멋지게 차려입은 여자는 잔디밭을 거닌다‘. 착한’ 글과 그림이고 ‘착한’ 조경이다.
이유주현(2007,『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나무도시)은 공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직업중‘조경은 직업적 성격상 가장 공공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반론의 여지는 별로 없을 듯하다. 불특정 다수는 조경의 궁극적인 클라이언트이고, 그들이 사용하는 공공공간은 조경의 주요 대상이 되니 말이다. 조경이라는 실천은 분양가를 얼마나 올릴 수 있는지(건축에서처럼), 어떤 부동산 효과를 갖는지(도시계획에서처럼) 별로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이에 지친 도시와 도시민들을 다독거려야 한다. 그래서인지 정부와 기업의 테두리 밖에서(제 3의 영역) 공공선을 추구한다는 시민단체의 활동과 만났을 때 많은 시너지 효과를 낸다. 대구에서 일었던 담장 허물기 운동이나 한평공원 만들기 등이 그 예이다.
세속의 면밀한 계산에서 벗어나 있고 착한 언어를 쓰는 조경. 권력이나 돈과는 별 상관없어 보인다. 조경이라는 작업은 탈정치적이고, 탈자본적인 듯 하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마냥 공공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