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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 Publicness through Keyword
  • 환경과조경 2010년 3월

키워드로 들여다 본 공공성 이야기

공공성에 대한 단상(斷想)
지극히 주관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도시를 포함한 공공공간에 있어서 ‘공공성’이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이후 실시된 지방자치제도 이후의 일이며, 본격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월드컵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된다. 지방자치제의 실시로 서울시의 ‘공원녹지확충 5개년 계획’처럼 각 지자체별로 공공공간의 공공성 대한 행정의 인식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으며, 2002년 월드컵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응원의 물결은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었던 그곳을 시민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서울광장’으로 변모시키는 도화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울광장의 조성은 공간의 민주화를 이룬 첫 걸음이었기에 도시공간의 ‘공공성 개념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남다른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조경 및 건축공간을 비롯한 공공공간의 ‘공공성’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인센티브 _ 공공성 확보에 유효한 방법인가
개인적으로 도시공간의 공공성이란 것을 처음 느껴본 것은 서울올림픽을 전후에 거리에 설치되기 시작한 개방화장실 푯말을 본 이후인 것으로 기억된다. 거리에서 언제든 이용 가능한 화장실이 생겨난 것은 공공성의 개념이 미처 부각되지도 않았던 당시 시대상과 결부해보면 ‘사적 공간의 공공 공간화’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진일보한 것이었다. 하지만 도입 초기 많은 건물주들이 ‘수도요금 감면’등의 혜택만 받아갔을 뿐 실제로는 개방한 곳이 적어서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눈치가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오늘날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는 공개공지 역시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공개공지는 건물을 소유한 민간 건축주가 용적률 인센티브 등의 혜택을 받는 대신 자신의 땅 일부를 일반 시민들에게 제공하도록 한 것이지만 서울시내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단지에서 일반인들을 위한 공개공지를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보도보다 현저하게 높은 곳에 위치해 있거나 단지 내부 또는 후면에 조성돼 있는 공개공지는 아직도 인센티브만 배불리 챙겨먹을 줄 아는 그들만의 전유공간일 뿐이다.
어디 이것뿐일까. 최근 공공기관이나 신축건물에 도입되고 있는 옥상정원도 어디까지나 건축과정의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될 뿐 실제 일반인의 출입을 반가워하는 공공기관은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성의 확보를 위한 인센티브의 제도는 과연 유효한가, 공개공지의 완전한 공공화는 여전히 멀기만 한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건축선 후퇴 _ 정자동 카페거리는 불법?
분당 정자동 카페거리. 지난 2004년부터 점포 앞에 하나둘씩 들어선 테라스들이 마치 외국의 노천카페를 연상시켜 젊은이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된지 오래이다. 그런데 이곳의 야외 테라스들이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보니 모두 불법이었다고 한다. 테라스가 들어선 곳이 보행편의 및 도시미관(개방감)을 위해 2m 정도를 비워두어야 하는 ‘전면공지’였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관할구청이 이를 검찰에 고발했으나 검찰은 불법 건축물(건축 및 용도변경)로 볼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불법과 무혐의 사이에는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하게 얽힌 간극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테라스 자체는 거리의 활력을 불어넣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 보행자의 입장에선 보행로 축소 등 쾌적한 보행환경을 저해하는 역기능이 있다. 또한 애초에 허가나 신고사항이 아니었던 테라스의 철거는 점포 주인들의 재산권의 침해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렇다고 관리·감독의 의무가 있는 행정기관이 불법을 방치할 경우 도시 전체로 불법이 확산될 수 있어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 질 수 있는 우려도 간과할 수 없는 점이다.
이와 같은 다양한 간극들 사이에서 과연 어떤 가치 판단이 옳은 것일까…, 그저 혼돈스럽기만 하다.

1% 미술장식품 _ 해머링맨의 통 큰 일보가 보여준 가능성
공개공지와 더불어 건축비용의 1% 이하를 반드시 미술장식에 사용하도록 한 건축물 미술장식제도는 도심에서의 예술의 활성화와 도시 환경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제 도입되고 있는 미술장식품들이 이런 소기의 목적에 부합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미술장식품들이 그저 건축물의 사용 승인을 받기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보니 건축주들은 그저 대지경계선 안에 들여 놓기에만 바빴을 뿐 소위 말하는 작품성이나 건물 및 도시환경과의 조화 등은 일찌감치 관심밖에 일로 밀려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모범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광화문 흥국생명 앞에 우뚝 선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이 바로 그것.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지경계선이라는 제도에 갇혀 작품이 건물에 바짝 붙어 있다 보니 불과 미술장식품이 잘못 설치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혀왔으나, 최근 건물주인 흥국생명(비용지원)과 서울시(행정지원)의 협력으로 이 거대한 거인이 비좁은 건물 한 귀퉁이가 아닌 도심의 거리로 한 발자국 나오게 됨으로써 도시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공공미술로 거듭나게 되었다. 건물주가 미술장식품을 건물이 아닌 도시 공간적 맥락으로 바라볼 때, 행정기관이 대지경계선이라
는 제도적 틀에서 벗어나 공공을 위한 행정력을 발휘할 때 미술품을 통한 도심공간의 공공성이 강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예라 하겠다.

公+共그리고 조경
“공공성公共性.” ‘공평함’을 뜻하는 ‘公’과 ‘함께 하다’ 또는 ‘같이 하다’를 뜻하는 ‘共’의 합성어인 이 말을 한자 그대로 풀이해보면, ‘公’은 ‘내 것(私)을 열고 나눈다(八)’는 뜻으로 “내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을 의미하며, 또 다른 ‘共’은 두 사람이 물건을 맞들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문자로 “일을 함께 하거나 같이 나눔”을 뜻하므로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공적, 공정, 공익 등의 의미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경에서의 공공성의 의미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애초에 이번 특별기획의 기획안이 만들어질 당시, 공원이나 광장 같은 도시 공간에서 시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공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조경은 공공성이 태생적으로 깔려있다는 전제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런 이유에서인지 우리들의 조경행위에 대한 공공성을 주제로 한 학문적 논의는 턱없이 부족해보인다. 더구나 근대 공원의 효시가 된 센트럴 파크가 탄생한지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오면서 ‘공원-도시’의 관계가 더 이상 ‘선-악’의 관계로만 성립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 태생적 공공성이 여전히 유효한지의 여부는 우리 스스로를 활발한 논의의 자리로 초대하고 있다. 더욱이 조경의주무기라 할 수 있는 공원녹지가 정치와 결합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서 조경의 공공성은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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