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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공중 산책로, 프롬나드 플랑테
  • 환경과조경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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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뒥 데 자르에 조성된 카페와 상점. 조성 당시 원래의 아치 형태를 보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황주영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ée는 여타 조경 작품들과는 다른 계기로 우리에게 알려졌다. 프롬나드 플랑테의 조성 과정에는 프랑스 현대 조경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된 화려한 국제공모전도, 거대한 규모와 난해한 설계 언어로 무장한 설계안도 없었다. 조성당시에는 라빌레트 공원Parc de La Villette이나 앙드레시트로엥 공원Parc André Citroën, 베르시 공원Parc de Bercy 같은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 프로제Grands Projets에 가려 큰 이목을 끌지도 못했다. 조성된 지 1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영화 ‘비포 선셋Before Sunset’(2004) 덕분이었다. 9년 만에 재회한 연인이 서로의 기억을 더듬으며 감정을 재확인하는 장면의 배경이 되면서, 프롬나드 플랑테는 주민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즐기는 파리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뉴욕의 하이라인이 유명해지면서 고가 폐선부지를 활용한 공원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프롬나드 플랑테와 그 아래의 비아뒥 데 자르Viaduc des Arts도 함께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산업혁명의 유물이지만, 처치 곤란한 골칫거리가 되어 버린 도심 내 고가 폐선부지를 철거하지 않고, 그 위에 공원을 조성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참신하고 획기적인 방안이었다.


근대 대도시와 철도

19세기 서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산업혁명과 도시화의 증거 중, 여전히 그 자취를 깊게 남기고 있는 것으로는 철도를 들 수 있다. 전에 없던 규모와 속도로 물류와 사람이 이동할 수 있는 철도는 진보의 상징이었다. 오스만화로 더 잘 알려진 제2 제정기 프랑스에서도 철도는 국가의 자부심이었고, 철도역은 도시를 대표하는 근대의 대성당이었다. 효율성이 우선시 되었기에, 도심 한복판을 철로가 가로지르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845년 ‘작은 벨트’라는 뜻의 도시철도Petite Ceinture가 최초로 파리에 등장했고, 도심 내외를 연결했다. 1859년 운행을 시작한 바스티유 선은 바스티유와 뱅센느 숲Bois de Vincennes 사이를 왕복했고, 파리 동쪽의 12구를 직선으로 관통했다. 1969년 RERRéseau Express Régional(지역고속전철망)이 도입되면서, 도시철도는 운행을 중단했다. 이후 남겨진 고가 폐선부지는 도시의 진보와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시기를 뒤로 한 채, 철거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도심 내 흉물로 전락했다. 이는 근대 산업 유산의 공통적인 문제였고, 이 난제에 대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안은 미테랑 대통령 시기의 프랑스에서 등장했다.

프롬나드 플랑테는 독자적인 공원 조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랑 프로제에 포함된 바스티유 국립 오페라 극장의 형성에 수반된 주변 환경 정비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새로운 오페라 극장을 위한 국제공모전의 지침에서 파리 시 당국은 광장까지 이어지는 연속된 산책로가 철로의 플랫폼과 동일한 높이로 조성되어야 함을 명시했다.1 1979년에 APURAtelier parisien d’urbanisme(파리 도시설계연구원)이 연구에 착수했고, 파리의회의 프로그램 승인(1987), DUPDéclaration d’utilité publique(공익사업인정)를 통한 고가 철로 인근 사업 구역 조성(1990)이 진행되었다. 이어 공모전에서 당선된 건축가 필리프 마티유Philippe Mathieux와 조경가 자크베르즐리Jacques Vergely의 안을 토대로 단계별로 공원이 조성되어 1993년에 완공되었다. 이와 별도로 진행된 하단부 개조 공사에서는 건축가 파트릭 베르제Patrick Berger의 안이 당선되었다. ‘예술의 고가 다리Viaduc des Art’라는 이름이 붙은 길이 약 1.5km의 이 구역은 프롬나드 플랑테가 시작되는 아브뉘 도메닐Avenue Daumesnil의 1번지에서 129번지에 해당하고, 고가 하단부의 아케이드를 상점가로 개조했다. 기존 철로의 아치 구조를 최대한 유지했고, 일관된 유리 진열창의 배열을 통해 연속성을 강조했다. 총 64개의 볼트 중 56개가 수공예 장인들의 아틀리에와 매장, 갤러리,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조성되었고, 나머지 8개는 통로 기능을 하여 도시 조직의 지속성을 재창조한다.


설계적 특징

프롬나드 플랑테는 파리 12구에 위치한 공원으로서, 길이 약 4.5km, 총 면적 약 65헥타르이며, 세계 최초로 9m 높이의 폐선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한 사례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 요건의 기술로는 프롬나드 플랑테라는 장소의 특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 대상지는 과거 철로였던 곳이고, 거대한 식재나 수경 시설을 도입하기 어렵다. 철로 구조를 유지했기에 상단 플랫폼은 폭 9m 정도로 협소했고, 설계자들은 단순함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를 둘러싼 도성 윗길에 조성된 17세기의 공공 산책로에서 영감을 받은 설계는 중앙의 폭 2.5m의 보행로를 따라 대칭을 이루는 정형식 양식을 기본으로 한다. 하단 볼트의 기둥에 해당하는 부분마다 보리수나무를 식재하여 리듬감을 주었는데, 이곳의 토심을 2m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기술적 난제였다. 작은 테마 정원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여, 선형의 공간을 걷는 동안의 단조로움을 피하게 했다. 식물로 만들어진 정형식 문으로 구분된 각 정원은 토피어리나 화이트 가든, 트렐리스, 퍼골라, 파빌리온, 장미나 대나무 정원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었다.2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 사이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을 보는 일에 관심이 많고, 관련된 책몇 권을 함께 쓰고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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