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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스케이프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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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준의 이런 생각, 저런 고민] 식재기능인과 군식
지난 호에서 목도를 조경기능인이 갖춰야 할 중요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장비로 작업을 하니 목도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지고, 새로운 세대는 목도를 배우려 하지 않으며 배울 필요도 없다. 조경기능인이 목도 다음으로 갖춰야 할 기술로는 관목을 군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예전에 삼양동에서 일을 나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기능인의 군식능력은 신기에 가까웠다. 군식을 하고 나면 거의 전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관목의 높이를 잘 맞추고 모양새를 내 식재를 했다. 나무를 심으면서 도장지는 손으로 분질러 버리니 향후 특별한 전정을 할 필요가 없었고, 심은 후에 흙도 깔끔히 정리하니 관목 사이의 흙속에 자갈이 보이는 법이 없어 관수 후 자갈을 골라내지 않아도 됐다. 심는 속도도 아주 빨라 하루에 1500여 주는 거뜬히 심었다. 하루는 어느 공장을 조경하는데 부지가 아주 넓어 관목을 심을 곳은 많은데 비해 수목의 수량이 부족해 난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기능공은 걱정 말라며 아메바 형태로 심을 자리만 그려주면 철쭉을 멋들어지게 심겠다고 공언했다. 형태를 그려주니 심을 곳을 갈퀴질해 중앙에 해당하는 부분을 약간 볼록하게 잘 정리한 다음, 키가 제일 큰 철쭉을 중앙에 심고 등고선 형태로 30×30cm 규격의 철쭉을 50cm 간격으로 심어 나갔다. 너무 간격이 넓어서 보기 싫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바닥의 흙이 훤히 보이지만 돌이 보이지 않게 잘 정리하면서 심어나가니 깔끔했다. 아메바 형태의 넓은 면적에 150여 주의 철쭉을 조금 거리를 두고 보니 중앙에는 나무가 바로 섰으나 외부로 갈수록 약간 외부로 기울어져 방사선 형태로 심은 군락이 마치 그림 같았다. 관계자들 중 너무 엉성하다든지 양만 늘렸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몇 년 뒤에 그 공장을 갔더니 철쭉이 잘 자라 서로 가지가 붙어서 바닥에 흙도 보이지 않고 탐스럽게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널찍하게 심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다. 물론 식재 후 가꾸는 사람의 공력이 많이 들어갔겠지만 말이다. 평수가 큰 고급빌라의 조경공사를 맡았을 때, 그 기능공이 군식을 잘 한다고 자랑했더니 담당감독이 그렇게 군식을 잘 한다면 아무리 물량이 많이 들어가도 좋으니 빌라 입구의 10m2 남짓한 공간에 철쭉을 마음껏 모양을 내 심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 기능공은 물량을 최대한 늘려 심듯 뿌리를 포개 빽빽이 빈틈없이 심었다. 잔가지가 겹치고 정돈되게 올라온 것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군식한 철쭉 위에 고양이를 올려놓아도 나무가 흐트러지지 않게 심었다. 사용된 철쭉은 거의 1000주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른 봄 공사였는데 한 달 후에 철쭉꽃이 피니 잎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꽃만 보이게 심은 것이다. 감독도 소요되는 철쭉의 양을 보고 놀라 두 번 다시는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고 그 기능공이 일을 할 때는 옆에서 웃음을 머금고 지켜만 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빌라 앞을 지나 갈 때마다 그 철쭉 군식을 본다. 잔가지가 촘촘히 올라온 것이 보기만 해도 ‘잘 된 군식 처리란 이런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한 번은 비탈면에 눈향나무로 피복식재를 하는데 두 사람이 식재에 참여했다. 한 무더기에 40여 주의 눈향나무를 군식 처리했는데, 20여 무더기를 식재한 것으로 기억한다. 식재가 끝나고 나니 ‘갑’이 식재한 눈향나무의 끝이 살아서 머리를 쳐들고 있는 형상이고, ‘을’이 심은 무더기는 두루뭉술하게 처리돼 있었다. 눈향나무의 끝이 살아서 생기가 넘치게 심은 형상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한 그루도 하자가 날 것 같지 않았다. 금세 무성하게 비탈면을 덮을 것 같은 활력을 느끼게 했다. 그 후 두루뭉술하게 식재한 ‘을’도 상당히 실력 있는 기능인이었지만 생기가 넘치게 식재한 ‘갑’에게 항상 오금을 펴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식재를 할 때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어떻게 보고 다루느냐에 따라 똑같은 자재를 주었는데도 이토록 모양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지 놀라움을 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나중에 현장을 가니 식재한 눈향나무의 하자는 비슷하게 났으나 끝이 살아있는 나무의 성장은 훨씬 나아 보였고 몇 년이 지났는데도 실력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철쭉이나 회양목을 군식하라고 하면 그냥 빽빽이 심는다. 그러고 전정기계로 깔끔히 다듬으면서 모양을 잡는다. 군식능력이 별로 필요하지 않고, 실력 있는 군식 처리 기능인도 많지 않다. 자신이 식재한 관목이 어떠한 대우를 받는지 생각하는 기능인이 없는 것 같다. 높게 심은 것이 별로 어울리지 않으면 전정으로 잡으면 되고, 빠른 기간에 많은 물량만 처리하면 되는 시대가 돼 버린 것이다. 이렇듯 조경은 학교에서 첫 수업시간에 배우듯 도면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예술이다. 기능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솜씨에 따라 아름답게 표현되느냐 아니냐가 결정될 때가 많다. 물론 자재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훌륭해 그냥 던져 놓아도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고급자재라면 시공하는 기능인의 능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므로 이런 솜씨가 좋은 기능인이 필요한 것이다. 처음 조경 일을 하면 삽으로 나무를 심을 구덩이를 파고, 물이나 떠 나르고, 잡일을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조경기능인으로 칼(전정가위)을 차고 다닐 정도로 인정을 받으려면 상당한 숙련이 돼야 한다. 예전에는 목도도 못하고 군식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전정가위를 차고 다니면 기술자들이 핀잔을 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경밥을 조금만 먹었다 하면 전정가위를 옆구리에 차고 다닌다. 예전에도 전정가위를 차고 다닌다는 것이 뻐길 정도의 자랑스런 직업(?)은 아니었을 것이지만, 조경기능인들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있었다. 기능인력은 고령화 돼 가는데 신규로 조경 기능을 배울 사람은 없는 현실을 볼 때마다 시공업계의 앞날이 어두워서 걱정이다. 신경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에서 ‘한국의 아파트 옥외공간 변천과 조경의 시대별 특성’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장원조경의 대표이사로 조경과 생태복원에 관한 연구 용역, 소재 개발, 설계, 시공, 유지관리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천안 연암대학과 단국대학교에서 조경경영, 조경시공 및 재료, 실내조경, 조 경수목학 등을 강의하였으며, 현재 전문건설협회 조경식재공사업협의 회 운영위원, 서울시 건설기술심의위원, 경기도 공공주택검수위원, SH 공사 건설디자인위원, 서울지방항공청 신공항건설심의위원 등으로 활 동하고 있으며, (사)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가든디자이너, 큰물에서 놀자”
야노 티 가든디자이너 “톱디자이너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은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일본의 가든디자이너 야노 티 작가는 세계적인 가든디자이너가 되려면 ‘한국인으로서의 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은 디자이너의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노 티 작가는 “나를 있게 한 국가, 사회, 문화, 역사 등에 대한 공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형성된 정체성이 세계의 가든디자이너와 경쟁할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정원의 세계화를 위해 가든디자이너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야노 티 작가는 오랜 고민 끝에 “이질적인 것과 만나라”고 짧게 답했다. 그는 정원을 만드는 사람끼리 머리를 맞댈 것이 아니라 정원을 모르는 일반인과 학생을 작업에 참여시키라고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풍토라는 고유색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바람과 흙이 만나서 풍토가 된다. 여기서 흙은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고 바람은 지나가는 외부인이다. 이 두 개를 더해야 풍토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야노 티가 만드는 정원의 지향점은 ‘이용’이다. 그는 가든디자이너도 보여지는 정원을 만드는 사람과 이용하는 정원을 만드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뉜다며 본인은 후자에 속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환경과 교육 영역에서 정원과 가든디자이너의 역할을 강조했다. “내가 만든 정원은 ‘파란하늘 교실’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원이라는 공간에서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든디자이너는 마을만들기같은 넓은 차원의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그는 정원을 통해서 가든디자이너가 진출할 수 있는 영역, 환경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경가, 융합에서 길을 찾다
정미란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 교수 “건축가들이 벽돌을 쌓아서 건물을 짓죠. 하지만 토목하는 사람이 벽돌을 잘 쌓는다고 해서 건축이 토목과 라이센스를 공유하지는 않잖아요.”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정미란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는 산림기술자들의 조경 진출이나, 조경과 산림의 학문 통합 논란을 보며, 전문분야로서 조경의 위상이 바닥에 떨어진 데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나무를 잘 심는다고 같이 조경을 하자는 것은 맞지 않다는 뜻이다. 그가 보기에 미국은 조경이 라이센스license(면허)지만 한국은 자격증certificate이어서, 한국 조경은 상대적으로 전문성을 인정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다. 물론 미국 조경가들에게는 그만큼 큰 책임이 수반된다. 그래서 “이게 좋겠다, 저게 좋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코멘트는 들어본 적이 없단다. 조경은 전문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 조경의 질은 떨어질 거예요. 조경전문가로서 훈련되지 못한 사람들이 조경을 담당했을 때 받게 될 폐해가 크다는 걸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조경은 전문분야고 명백하게 조경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 합니다.” 정 교수는 한국에서 조경설계사무소를 다니다가 2000년에 훌쩍 미국으로 건너갔다. ‘기회가 왔을 때 준비돼 있는 조경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는데, 주변의 권유로 일리노이대학교 어버너-섐페인에서 조경을 더 공부하게 됐다. 현재는 좋은 기회로 지금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연환경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서울정원박람회, 작가에게 바란다
이정철 푸른수목원 원장 “정원 바람은 불고 있지만 현장에서 식물을 다루는 전문가는 적다. 해외에서 공부한 가든디자이너는 많지만 가드너는 찾기 힘들다. 이런 불균형이 왜 생기는 것일까?” 이정철 푸른수목원 원장은 2016 서울정원박람회 작가정원의 코디네이터다. 지금 그의 역할은 단순히 작가정원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서울시와 서울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를 연결하고, 주최 측과 가든디자이너를 조율하는 역할까지 한다. 그의 존재는 시공현장에서 더욱 돋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작가정원 코디네이터를 서울시로부터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손부터 내저었다. 푸른수목원 원장이라는 본업에 충실하고 싶었다. 그러나 서울시가 처음 개최하는 중요한 정원박람회였고, 개최일은 가까워 왔다. 특히 정원 현장이 급했다. 누군가가 나서야 했던 상황이었다. 책임감이 강한 그로서도 더는 모른척 지나칠 수 없었다. 사실 현장에서 작가정원을 지휘하는 데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민간의 풍부한 현장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공직에 있는 인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정철 원장은 대학에서 관상원예를 공부했다. 학과 내에 조경과 화훼 전공 교수진이 모두 있었다. 친구들은 조경회사, 종묘회사 등 여러 분야로 진출했다. 나무보다는 초본류를 좋아했던 이 원장은 첫 직장으로 ‘한택식물원’을 선택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초본류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그곳에 들어가 바닥부터 시작했다. 매일 현장에서 흙을 만지고 식물을 가까이 두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 덕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원장은 오랫동안 정원을 만들어오면서 지금의 정원 열풍에 낯설다고 했다. 조경과 원예를 전공한 가든디자이너가 새로운 정원문화를 만드는 두 개의 축이라고 했다. 다만 정원 열풍이 너무 설계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어 걱정이다.
세계유산, 그들만의 리그? 아니 되오
심준용A&A문화연구소 소장 원주의 폐사지(이하 원주 사지)가 연속유산으로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 과연 어떤 가치가 근거로 제시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올해 연속유산인 ‘한국의 서원’의 세계유산 신청이 철회되고, ‘한국의 전통산사’가 조건부로 등재 신청 대상에 선정됐다. 원주 사지는 흥법사지, 법천사지, 거돈사지 세 곳을 말하는데 남한강을 중심으로 한 고려 초기의 정치 체계 등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주고, 사찰과 속세의 관계를 규명하는 흔적이다. 원주 사지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연구용역의 책임연구원을 맡고 있는 심준용 A&A문화연구소 소장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해당 문화재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까지 설득할 수 있는 객관적 시각이 필요하다”며 연구 초기부터 적소에 필요한 전문가가 배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소장은 원주 사지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적확한 연구와 전문가를 연결하는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자국의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선조들의 유산을 보존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도 중요한 이유지만, 세계유산 등재는 자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문화유산이 위치한 지방자치단체, 유산과 연관된 단체 및 이해당사자들의 관심은 더욱 크다. 국가별로 신청 가능한 유산의 개수는 연간 2점으로 제한돼 국내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할만한 보편타당한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심 소장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각 유산과 관련된 전문가가 세계유산의 연구 및 등재 전 과정을 추진하고, 신청서를 작성하는 후반에서야 세계유산 전문가와 인접분야 전문가가 접근하다 보니 등재가 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원주 사지의 세계유산과 관련해서는 10년 동안 세계유산위원회 한국 대표단으로 참여하고 있는 조유진 문화재청 자문위원을 초빙해 함께 연구에 참여하고, 연구 초기부터 사지 주변의 경관적 가치와 입지 분석 등을 위해 조경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인접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저성장시대, 특집 도시재생에서 길을 찾다
전국적으로 도시 쇠퇴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도시를 3470개 읍·면·동으로 구분했을 때, 이 가운데65%인 2239개가 인구감소와 경제성장률 저하, 노후건축물의 비율이 증가하는 등 쇠퇴 과정을 겪고 있다. 저성장이 이어지고 장기불황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도시 쇠퇴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에 과거의 물리적인 개발을 벗어나 저성장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도시재생이 각광받고 있다. 도시재생은 지역주민과 함께 지역의 물리적 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회복, 거주환경 개선, 사회적 경제조직의 창출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도시재생사업은 급격한 상황변화에 맞춰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추진되다 보니 그 과정에서 한계와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어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함께 떠오르는 상황이다. 이번 호 특집에서는 국내에서 정책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의 현황과 과제를 진단하고, 국내·외 사례를 통해 전반적인 흐름을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개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점에 조경이 도시재생 과정에서 어떻게 역할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도시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인문학적 시각에서바라본 도시재생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봤다. — 도시재생사업의 현황과 과제 _ 구자훈 — 국내·외 도시재생사업의 경험과 사례 _ 이재준 — 도시재생에 있어서 조경가의 역할 _ 김연금 — 대화론적 도시의 맥락 짓기 _ 최춘웅
도시재생사업의 현황과 과제
도시재생 정책의 과정 및 사업추진 현황우리나라의 도시재생 정책의 추진 과정은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도시재생법)’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도시재생법 제정 이전에도 도시활력증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돼 오던 살고 싶은 도시만들기, 소도읍 육성사업, 농촌마을 종합개발 사업 등 다양한 소규모 지원사업이 있었다.한편 2007년부터 추진되어 오던 ‘건설교통 R&D 혁신로드맵’에 의한 10대 중점 전략 프로젝트 중 도시재생사업단 연구의 결과물로서 본격적인 도시재생정책의 필요성 제기와 창원, 전주 테스트베드 사업을 통한 시범적 모델의 운영 등을 통해서 도시재생법이 제정됐다. 이 특별법의 특징은 사업법이 아닌 지원법적 성격을 띠며, 현장 중심의 협력적 운영체제를 통해서 재생정책의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법이다. 이 법이 지원법적성격을 갖고 있다는 의미는 도시재생활성화지역 내 각종 사업은 기존 사업법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이 법에서는 이를 지원하기 위한 국가적 공모사업과 협업적 지원체계를 명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법을 근거로 2014년 선도사업 지역으로 도시경제 기반형 2개소(부산 동구, 충북 청주시), 근린재생형 11개소(일반규모: 서울 종로구, 광주 동구, 전북 군산시 등 6개소, 소규모: 대구 남구, 강원 태백시, 충남 천안시 등 5개소) 등 총 13개소의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사업은 4년 간 국고지원 250억 원, 근린재생형 도시재생사업은 재생사업의 규모에 따라서 4년간 60~100억 원의 국고를 지원하고, 지자체 재원으로 같은 비율의 금액을 마련하여 해당 지역의 재생사업 기반을 구축하는 마중물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2015년에는 일반지역이라는 이름으로 도시경제기반형 5개소, 근린재생형(중심시가지형 9개소, 일반형 19개소) 등 총 33개 사업지를 선정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도 새뜰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을 국고지원 50억 이내(국고지원 비율 70%)로 2015년 85개소, 2016년 66개소를 선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도시재생 정책의 단계별 추진 전략국토부가 작성한 ‘도시재생 기본방침’에 의하면, 우리나라 도시재생 정책은 3단계로 나누어 도입기(2014~2017년), 성장기(2018~2021년), 성숙기(2022년 이후)로 구분하고 있다. 도입기에는 선도사업을 대상으로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방향을 제시하고, 지원해 성공모델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향후 성장기, 성숙기에 지자체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도록 계획하고 있다. 이것은 도입기인 초기 단계에는 아직 지자체의 도시재생 인식과 경험이 부족하므로 국가가 중심이 되어 도시 재생사업 지원을 위한 재원을 확충하고, 부처별 협업사업의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또 도시재생지원기구 및 R&D 연구단의 적극적인 실증연구를 통해서 성공모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국내·외 도시재생사업의 경험과 사례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는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도시는 진화한다. 도시의 진화는 인류가 살아온 삶의 흔적들과 궤적을같이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우리나라의도시는 지난 50년간의 개발성장시대를 거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후유증도 크다. 농촌과 중소도시는 쇠락하고 비수도권과 수도권, 원도심과 신도심은 경제, 사회, 문화 등 많은 분야에서 불균형을 이루었다. 특히 원도심은 산업, 업무, 일자리가 공동화되고 슬럼화돼 범죄를 비롯한 각종 도시문제의 온상지가 되고 있다. 이런 도시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서 시대적으로 전 세계가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이 요구된다. 도시재생은 2013년 제정된 “도시재생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2조에 잘 정의돼 있다. 즉 도시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활성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추진되는 사업들을도시재생사업이라 한다. 그간 도시재생사업은 국내외적으로 다양하게 추진돼 왔는데, 그중 특히 조경의 입장에서 주목할 만한 대표적인 사업들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사업의 경험과 사례를 검토하고자 한다. 국내·외 도시재생사업들 도시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한 도시재생사업은 국내외적으로 많은 사례가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역사적으로 1950년대 도시 재건축Urban Reconstruction과 1960년대 도시 활성화Urban Revitalization, 그리고1970년대와 1980년대의 재개발Urban Redevelopment을 거처 1990년대 이후에 도시재생Urban Renaissance측면에서 추진돼 왔다. 따라서 그동안 학술적으로도많은 도시재생사업 사례들이 연구돼 왔다. 정리해 보면 대체로 영국과 프랑스의 도시재생사업은 근린지역재생사업과 연계됐고, 독일은 새로운 도시개발보다 기존 도시를 우선하는 사업으로, 미국은커뮤니티 운동과 연계된 중심시가지 활성화 사업으로, 일본은 마을만들기 차원의 도시재생사업과 연계돼 추진돼 왔다. 또한 우리나라는 최근 공공 측면의정책공모사업과 마을만들기와 연계돼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도시재생사업 중에서 필자는 대표적인 국내외 이전적지를 활용한 공원재생사업이나 문화예술재생사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영국의 이전적지 공원재생사업 1980년대부터 시작된 영국의 재생사업은 대처 정부,메이저 정부, 그리고 블레어 정부를 거치면서 새로운추진기구와 정부 보조금을 활용했다. 처음엔 물리적인 부동산 재생으로 시작했지만 최근엔 사회적인 재생으로 발전되고 있다. 최근에는 공공부문, 민간부문,지역공동체 등 모든 주체가 협력관계를 형성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협력을 통한 대표적인 영국의 이전적지 공원재생사업으로는 런던의 마일엔드 공원과버밍엄 동부공원을 들 수 있다. 먼저 런던의 마일엔드 공원은 런던 밀레니엄 프로젝트 중 가장 조용하게 추진됐지만 최고의 성과물로 평가받는다. 공공기관, 시민연합, 민간사업체들이 좋은협력관계를 형성해 당시 2차 대전 폭격으로 황폐화된 산업지대를 남북방향의 긴 선형 공원으로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 마일엔드 공원의 특징은 혁신적 모양의 녹색브리지, 테라스식 정원, 카트라이더 레이싱 트랙, 익스트림 스포츠 공원, 놀이동산, 개방된 녹지공간 등을 들 수 있다(이수빈, 2015). 또한 버밍엄 도시의 동부공원 역시 주목할 만하다. 2013년에 완성한 동부공원은 버밍엄시에 130년 만에 처음으로 조성한 가장 큰 공원으로 단절됐던 도심지를 이어주면서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동부공원 역시 버밍엄시와 WasteConstruction 회사, 그리고 설계가 파텔 타일러가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은 물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성공할 수 있었다. 동부공원 재생사업의 성공은 이후 런던의 다른 유사한 재생사업들이 추진되는 과정에 좋은 선례가 되어 투자와협력관계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서울연구원, 2015). 독일의 이전적지 공원 및 문화예술 재생사업 1970년대 이후 구도심의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코자정책적으로 도입한 독일의 재생사업은, 경제적 이익과 공공성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전통과 역사보전, 환경적인 측면에서 추진돼 왔다. 최근에는 도시재생사업에서 시민참여와 민주적 절차와 방법이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이전적지를 활용한 독일의 대표적인 공원과 문화예술 재생사업은 란트샤프트 공원과 우파파브릭을 들 수 있다. 란트샤프트 공원Landschaft Park은 독일 뒤스부르크도시의 ‘IBA Emscher Park Project’의 일환으로 티센 제철소 건물을 재활용한 독일 최대 규모의 환경공원이자 생태교육의 장이다. 원래 이 부지는 유럽 최대의 공업단지로 명성을 떨쳤던 루르 지역으로, 1970년대의 탈공업화의 영향으로 주요 산업인 석탄광업과제철공업이 몰락하는 바람에 공장과 석탄채굴장이폐쇄된 채 방치됐었다. 독일 정부와 뒤스부르크 시는이곳에 방치된 공장들을 철거하려는 정책을 추진했으나, 주민들의 강한 반대로 철거보다 환경공원으로재생사업을 추진했다. 조경가 피터 라츠를 주축으로도시계획가, 건축가, 환경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옛 제철소 건물을 그대로 보존한채 공원화를 진행했다. 부지 내 기존 자재를 나르던철로는 산책공원으로, 용광로 안은 물을 채워 스킨스쿠버장으로, 광석저장고 외벽은 암벽등반 공간으로활용하는 등 기존의 산업시설을 잘 활용해 란트샤프트 공원을 세계적인 친환경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약 25억 유로가 투자된 란트샤프트 공원은 10년간의재생사업 기간을 거쳐 1997년 개장한 이래 연간 5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베를린의 우파파브릭 역시 주민들의 적극적 재생의지와 협력으로 성공한 사례다. 이 부지는 원래 폐허로 방지된 옛 필름공장을 예술인들이 점령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다가 공장주들의 제안으로 1979년에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당시에 모인 예술인들이주로 재생이라는 테마로 실험적 예술에 몰두했기 때문에 우파파브릭은 버려진 재료들로 창작활동을 하는6주간의 공장 문화페스티벌을 자연스럽게 시작하여성공시켰다. 페스티벌이 성공한 이후 우파파브릭은 음악, 카페, 레스토랑, 제과점 등의 길드를 형성해 재정적으로 자립하면서 오늘날의 우파파브릭으로 자리잡게 됐다. 베를린 중심부의 우파파브릭은 현재도 도시형 생태마을이자 문화공간, 교육공간의 복합적인 문화생태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다(이덕진, 2014). 이재준은 2015년 말까지 5년 동안 수원시 제2부시장으로 재임하며 민간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행정을 시 행정에 도입하고, 침체된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 넣는 마을만들기와 도시재생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등 한국형 마을르네상스의 선도적 모델을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기여했다. 협성대학교도시공학과 교수, 국토해양부 토지규제심의위원회 위원, 환경부 중앙환경우원회 위원, 행정자치부 녹색환경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도시재생에 있어서 조경가의 역할
역할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내는 것‘도시재생에 있어서 조경가의 역할’은 어느 차원에서의 도시재생을 말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도시 관리 패러다임 변화로서의 도시재생인지,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도시 관리 정책과 사업으로서의 도시재생인지에 따라 논의의 초점은 다르다. 전자는 다소 추상적으로 논해져야 할 것이다. 반면 후자에 대한 논의는 한국 사회에서 도시재생사업이 갖는 사회·경제적 의미와 함께 조경가의 사회적 위상, 분야 간의 힘겨루기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먼저 후자의 경우, 쉽지 않다. 부동산경기 침체와 저성장 기조라는 경기 흐름 속에서 건설시장은 작아지고 있고 이에 따라 분야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많은 다른 분야에서 조경가가 다루는 외부공간과 경관을 넘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조경가가 아니면 안 된다고 내밀 수 있는 카드도 강력하지 않다. 도시재생사업이라고 다를 바 없다. 2013년 12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 이후 각 지자체는 새로운 지역개발모델로서 도시재생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게 됐고, 비전과 전략 수립, 실행사업 수립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런데 계획 수립을 진행할 업체 선정의 입찰기준이 대형 엔지니어링 업체에 맞춰져 있다. 사업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로 하는 전문분야는 도시계획과 건축설계다. 사업을 총괄하는 MP들도 주로 도시계획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서울형 도시재생 선도모델 사업에서 광역 차원일 경우 MP와는 별도로 도시재생지원센터에 센터장을 두는데, 몇 곳에서는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이 센터장을 맡고 있다. 도시적 차원의 사업이다 보니 도시계획분야의 전문가는 당연히 필요하고 도시를 이루는 주요 구성요소인 건축물에 대한 전문가도 필요하다. 그리고 재생사업에서는 다양한 주체들이 교류하는 공론장의 활성화, 시민참여가 중요하므로 현장에서 주민들과 몸으로 부딪히며 근력을 키워 온 이들도 필요하다. 그런데 조경가는? 경관을 다룬다고 하지만 경관을 관리하는 제도적 수단을 명확하게 갖고 있지 않다보니, 큰 그림을 짜는 단계에서 조경가의 필요성이 그리 크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조경분야가 일궈 낸 시선과 언어, 사람은 가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경가가 발 디디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계획 수립 이후 실행사업에서는 조경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서울형 도시재생 선도모델 사업의 하나인 ‘동작구 상도4동 도시재생활성화 계획(안)’을 보더라도‘어린이집 중심 골목공원 조성’, ‘역사테마 둘레길 조성’, ‘양녕대군 묘역개방 및 주민 이용 지원’, ‘옥상텃밭, 한평상자텃밭 등 도시텃밭 조성’같은 사업은 조경가의 손길을 요구한다. 그러나 공사의 내용이 정비 수준이라 공사비는 낮을 수밖에 없다. 설계비도 현재 제도에 따라 공사비에 근거해 산출하다 보니 작다. 시공하는 이들에게나 설계하는 이들에게나 그리 실리적 이지 않은 셈이다. 그러니까 도시재생사업의 큰 흐름을 잡는 데 있어서나, 실행에 있어서나 조경가는 살짝 비켜 서 있다. 그렇다면 전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당연히 조경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어렵게 말하면 개념적 차원이고, 편하게 말하면 말하는 건데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문밖의 보이는 것 모두가 조경의 대상이 아니던가. 조경학개론에 나열돼 있는 조경가의 특성에 따르면 조경가는 재생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적임자다. 그런데 말은 말로 끝나기 쉽다. 이렇게 전자건, 후자건 조경가의 역할에 있어서 낙관적이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리 낙담하지는 말자.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 아직 가야할 좌표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가능성은 있고 답이 흐릿하다면 문제를 바꾸면 된다. ‘조경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조경이 어떻게 역할을 만들어낼 수 있냐?’로.
대화론적 도시의 맥락 짓기
나는 도시재생 일번지라고 할 수 있는 세운상가―정확히 말하면 신성·진양상가―에서 4년째 사무실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북적이며 소란을 피우고, 밤에는 거리에 앉아 먹고마시는 사람들이 골목을 점령하는 정신없는 곳이다. 이미 정신없이 소란스러운 이곳을 활성화하려는 계획들은 실패로 돌아갔고, 최근 재개된 세운상가 도시재생사업은 철거 후 청계천과 같은 공원을 조성하려던 조경중심계획에서 공중데크를 보강하고 상업공간화 하는 상업활성화사업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내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데크 공간은 크게 의미가없어 보인다. 진양꽃상가 상인들의 경우만 데크 위로카니발 밴이 올라와야 화환을 실어 나르기 때문에 작년 데크의 구조안전을 이유로 차량을 차단하려고 할때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을 했었다. 주차장으로서의 의미 외에 큰 의미가 없는 공간이다. 막상 상인들과 주민들은 데크를 없앤 삼풍·풍전호텔블록을 부러워한다. 거리가 환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물론 어색하게 수리된 삼풍상가의 외관을 나도 좋아하지않지만 원하는 대로 고치고 쓰는 자유로움이 좋다. 세운상가의 공중데크를 억지로 고쳐서 다시 쓰려는이유는 옛 추억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주변의 도시가 변해서 더 이상 주변을 내려다 볼 수 없고,대신 불편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앞 건물의 창속을 들여다보게 되는 공중데크를 보전한다는 것은 계속 변하고 있는 주변 환경과 관계없이 공중데크를 유물화하겠다는 의지 때문인 것 같다. 데크를 없애고 그아래 거리에 좋은 보행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여러가지 상황으로 볼 때 적합할 것 같은데, 반대로 데크의 존재감을 더 강화하고 돋보이게 하려는 생각은 실증적 구조체를 페티시로 만드는 것이다. 지나치게 데크 자체에 집착해 그 주변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도시란 계속 변화하는 도시다. 옛 것은 유물화하고 박제화하는 대신 마음대로 고치고 바꿔서쓰고, 매일 반짝거리게 닦는 대신 더러워져도 크게 티가 안 나는 거리를 따라 오래된 것과 새 것이 나란히있고, 다양한 배경과 상황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의 공유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곳이 좋은 도시다. 옛 건물들을 의도적으로 철거하지도, 보존하지도 않기 때문에 새 건물과 옛 건물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고서로 새로운 의미를 찾아 새로운 관계를 끊임없이 만들어 갈 수 있는 곳이 좋은 도시다. 좋은 도시는 억지로 재생사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체적으로 생명력이 유지되어 끊임없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말도 마지막 말도 없다. 대화의 배경에는 경계가 없다. 가장 깊은 과거와 가장 먼 미래 속으로 연장된다. 아주 먼 과거의 대화 속에서 생성된 의미일지라도 완전하게 이해될 수 없다. 나중의 대화에서 항상다시 재생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의 어떤 현재 순간에서도 엄청난 양의 잊혀진 의미들이 있지만 나중에다시 기억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을 것이다. 어느 것도완전히 죽지 않기 때문이다.”_ 미하일 바흐찐Mikhail Bakhtin(1895~1975) 대화론적 도시Dialogic City 좋은 도시의 생명력은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모여서로 대화하고 협력하는 다원형 그리고 대화론적dialogic 관계들 속에서 유지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나뿐만이 아닌 다른 이들도 대화의 주체인 것을 인정하고, 다양한 주체들 간의 대화를 통해서 세상을 인지할 수 있다는 사고의 틀이 대화론이다. 대화론적 도시는 통합된 미학이 없어도 아름답고, 일관적인 스토리가 없어도 흥미롭다. 대화론적 사고를 바탕으로 만든 도시는 비종결적 대화가 계속 진행되듯이 지속적인 재생의 능력을 갖고 있다. 억지로 재생사업을 할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변증법적 사고를바탕으로 만든 도시는 궁극적으로 닫힌 종결을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생적이기보다 인위적이고,나눔과 대화보다 대립과 차별을 지향한다. 서울의 많은 부분을 보면 대화적이기보다 대립구조를 갖고 있다. 아파트단지들은 주변의 도시와 구분돼 있고, 주택들도 주변과 차단된 옹벽이나 담장으로 분리돼 사적인 마당과 공적인 거리가 구분돼 있다. 옆집과 대립하고, 옆 단지와 분리하고 경쟁한다. 모든 영역과 지역에서 경계선이 가장 중요하고 나와 남의 구분이 철저하다. 남과 다를수록 존재감이 드러나고, 옛 것을 없애야만 새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개발에서 재생으로 변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지금 변증법적 대립을 대화론적 관계성으로 바꾸는 노력이전제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생명력을 가진 도시를 만들 수 없다.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이 바뀌고, 존재의근거를 지속적인 대화 속에서 찾을 때 우리의 도시환경이 근본적으로 거듭날 것이다. 건축가 최춘웅은 최근 범분야적 활동주체로서 건축설계 이외의 영역에 개입하는 건축가들의 단체인 레어콜렉티브(RARE Collective)를 결성했다. 재생(Regeneration), 참여(Activism), 연구(Research), 교육(Education) 분야를 중심으로 서울의 다양한 도시환경적 이슈들을 다루는레어콜렉티브는 현재 최춘웅, 최승호, 표창연, 그리고 이다미 네 명의 멤버로 구성돼 있으며 최근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와 함께
난이의 작은 정원
조경시공 난이수목원(대표 이재균), 동백조경공사(대표 김인태), 청풍농원(대표 천인용)위치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가산리 일원면적 약 2000m2 ‘난이의 작은 정원(이하 난이 정원)’은 한 조경인이 아내에게 바치는 세레나데다. 정원 이름인 ‘난이’도 아내의 아명兒名이다. 정원 한쪽 비석의 문장에도 아내에 대한 애정이 담겼다. 그 마음은 그대로 정원에서 보여진다. 손수 정원을 만든 이 집의 주인은 나무 하나를 심고, 돌 하나를 쌓는 데 정성을 실었다. 난이 정원은가족애가 투영된 행복한 정원이다. 난이 정원은 충북 단양의 도락산 자락에 있다. 도락산은 소백산과 월악산 중간에 있는 964m 높이의 바위산으로, 우암 송시열 선생이 ‘깨달음을 얻는 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또한 즐거움이 뒤따라야 한다’라는 뜻에서 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정원에서는 단양팔경인 사인암舍人岩, 상·중·하선암下仙岩과 병풍처럼 펼쳐진 월악산의 산세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고, 주변의 절경까지 정원 속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지형적 장점 살린 2개의 정원난이 정원은 전체 면적 2000m2 규모의 경사지를 평탄화한 다음 앉힌 개인 정원이다. 정원 구성도 주택과 접한 상단과 중심정원이 있는 하단으로 구분된다. 정원의 상단과 하단 사이를 오르내리기 위한 목재계단도 설치돼 있다. 목제계단과 트렐리스는 주변 녹지에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도록 중저채도의 녹색으로 표면처리했다. 목제계단과 접하는 주변의 단 차이는 암석 배치와 돌틈식재로 자연의 모습과 닮도록 했다. 경사지 한쪽에 폭포와 연못을 조성해 지형적 이점까지 적극 활용했다. 전문가 3인의 협업시스템이 정원의 또 다른 특징은 설계와 도면 없이 오로지 개인의 감각과 경험만으로 만든 정원이라는 점에 있다. 정원의 주인이 오랜 시간 동안 조경시공에 몸을 담가온 전문가였기 때문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었다. 여기에 정원에 어울리는 다양한 소재를 보유한 전문가와 자연의 형태를 연구하고 이것을 정원에 적용시켜 온 전문가가 있었다. 이런 3인의 협업이 감각적인 예술 정원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전체 시공은 정원의 주인인 이재균 난이수목원 대표가 진행했고, 식재공사와 시설물설치공사는 김인태 동백조경공사 대표가 맡았다. 김 대표는 이 정원에 식재된 수목을 농장에서 직접 키우고 수형을 가꿔온 장본인이다. 나무와 암석을 배치하는 등 정원에 디테일을 입히는 작업은 천인용 청풍농원 대표가 도맡아 했다. 그는 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모사하기 위해 산과 계곡을 직접 찾아다녔다.이재균 대표에 따르면 설계도가 있는 일반 정원이었으면 한 달이면 족히 조성까지 마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이 정원을 만드는 데 2년의 세월이 걸렸다. 사실 지금의 모습은 처음 조성했던 것을 1년 전에 한번 갈아엎은 다음에 만들어진 그림이다. 정원의 주인이자 작정자인 나 자신이 만족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홍콩으로 떠난 청춘 유랑] 홍콩기행(3): 스트리트 퍼니처
첫 홍콩, 거리에서 만나다 지난겨울 환경과조경 통신원 임기가 끝났다. 시원섭섭함을 느끼고 있을 무렵 우연히 ‘홍콩’에 갈 기회가생겼다. 전문가 자문과 함께 자신만의 ‘테마’를 담은여행기를 글로 만들어 내는 기획 답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잠시 고민했지만 뭐가 대수겠는가. 기회가 없어서 문제지 기회만 있다면 생각없이 질러보는 것도 대학생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여러 경험을 통해내 한계를 깨닫고 발전하는 기회로 삼고 싶어 덜컥도전하게 됐다. 물론 이 부족한 원고를 보게 될 독자분들에겐 죄송하지만 미리 양해를 구한다. 어린 꿈나무가 후학으로 자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너그럽게 봐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평소 여행을 다닐 때 거리의 경관을 유심히 관찰하는편이다. 각각의 장소만의 특징이 묻어나기 때문이다.답사 전, 내가 이해하는 홍콩은 다문화국가로 다채로운 거리경관을 이루는 곳이었다. 그 거리들이 어떤 경관을 이루고 있을지, 각 경관을 형성하는 구성요소는어떤 오브제들이 있을지 좀 더 세부적으로 접근해 보기로 했다. 지난 3월 홍콩에 도착한 나는 설레는 맘으로 3박5일동안 기사에 담을 이야기를 모았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멋진 기회를 주신 관계자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일행들 이름을 서로 언급하는 것은 생략한다. 언니 오빠들이 내 맘을 알아줄 것으로 믿는다. 거리 속에서 보물찾기, 스트리트 퍼니처 우리가 여행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살고 있는 장소에서 느낄 수 없는 그 장소의 고유한일상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가장 쉬운 방법중 하나는 그 나라의 거리를 걸어보는 것이다. 유명관광지, 오래된 마을, 숙소 앞의 골목 어디든 좋다. 거리는 일상이다. 하루에도 다양한 거리들을 걷고 달린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공간과 공간을 연결해 주는 거리는 도시의 첫인상이라고 할 수있다. 거리의 풍경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가운데‘스트리트 퍼니처’는 시설물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큰 특징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다 만나는 벤치,가로등, 휴지통 등은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도로 위에설치된 시설물을 통칭하는 용어다. 단순히 시설물의역할 뿐만 아니라 지역이 가진 고유의 문화를 설명해주는 작품이 되고, 그 나라의 문화가 되기도 한다.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세계인이 찾는 관광국가로 어떻게 거듭났을까? 거리를 통해 그 과정을 찾아보고 싶었다. 이름이 알려진 수많은 거리 중에서도홍콩의 변화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는 세 곳을 선정해봤다. 과거의 모습 그대로 멈춰있는 타이오 마을, 홍콩에서 서양을 느낄 수 있는 스탠리, 깊숙이 자리 잡은 서양의 모습과 중국의 전통적인 모습이 공존하는센트럴의 거리. 그 안의 의자, 계단, 환경그래픽 순서로 3가지 스트리트 퍼니처가 거리에서 가지는 역할을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각 거리의 전체적인 풍경을바라보는 거시적 관점에서부터 관광객의 측면에서 보는 미시적 관점까지 살펴봤다. 1. 워터프런트(Waterfront) _ 윤호준 2. 습지(Wetland) _ 박성민 3. 스트리트 퍼니처(Street Furniture) _ 조유진 4. 식재(Planting) _ 김수정 5. 야간 경관(Nightscape) _ 이향지 6. 영화(Movie) _ 백규리 조유진은 1994년생으로 동신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있다.2015년 ‘환경과조경’ 통신원을 맡아 조경 관련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학생이자 조경인으로서 심도 있게 조경을 탐색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가로경관에 대한 관심이 많다. 여행과 도전을 좋아하여 유랑 중인 청춘이다.
[옥상녹화] 일본 옥상녹화 단상
1. 착생양치류 호주의 열대우림 20여 년 전에 방문했던 호주 케언즈에 그사이 스카이레일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모노레일과 달리 전체길이 7.5km의 장대한 케이블카가 열대우림 위에 끝없이 이어지는 시설이다. 옛날에는 케언즈의 산속 관광지인 큐란다(쿠란다)에 가려면, 모 철도 프로그램의오프닝 영상으로 유명한 등산철도를 이용해야 했다. 물론 이 철도는 지금까지도 인기가 많고 상당히 낭만적이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이 단점이다.이와 비교해 스카이레일을 이용하면 큐란다에 도착하는 시간이 절반 밖에 걸리지 않는다.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이긴 하지만, 스카이레일을 처음 승차한 사람들은 도중에 두 개 역에서 내려 열대우림의 보드워크boardwalk 산책을 반강요당한다. 이착생양치류것을 포함하면 1시간 반 정도가 걸려서 철도와 별 차이가 없어진다. 우리는 관광객이기도 해서 가이드의안내를 따라 당연히 보드워크로 향했지만, 되돌아오는 길에 개별 행동이 가능해서 시험해 보았는데, 이역에 있는 관계자에게 “No thank you!”라고 말하고산책 코스를 패스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처음 간 사람들에게 이 보드워크는 놓칠 수 없는체험 포인트다. 이곳은 시간을 더 들여서라도 사진을 찍고 싶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열대우림의 깊숙한 곳을 부담 없이 산책할 수 있다. 이 근처 삼림에는 가시나무와 같은 날카로운 식물들도 있고, 인간을 죽이기도 한다고 전해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새인 큰화식조(火食い鳥、食火鶏、학명Casuarius casuarius )가 살고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는아마추어가 산중을 걸어 다니는 것은 자살 행위와도다름없다. 그런 위험한 숲을 산책하는 기분이라니! 이런 것을 새로운 경험으로 여길 수 있다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산책로는 요소요소에 설치돼 있으며, 퀸즈랜드주 숲의 왕자, 카우리파인 거목이나 열대우림을 대표하는여러 가지 식물들이 잘 보이도록 효율적으로 배치돼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놀라운 것은 사진과 같이 수목에 붙어 자라는 거대한 착생양치류이다. 현지인들은 ‘basket fern’이라고 부르며, 학명은 Drynariarigidula, 일본에서는 카고시다カゴシダ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드리나리아 리기둘라(고란초과 드리나리아속)이다. 이런 착생양치류의 동료로는 박쥐란이 유명하다. 고란초과 양치류는 케언즈 주변 숲 속은 물론 거리수목에도 대량으로 착생하고 있는 것이 보일 정도로이곳에서는 대중적인 식물이다. 케언즈 주변 열대우림의 수고가 높은 나무에 높은 빈도로 착생하고는 있지만, 이 정도로 거대하게 자란 것은 드물다. 특히 이수목의 상부에 여러 겹이나 다른 주식이 붙어 있어서수분 무게까지 포함하면 나무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야마다 히로유키는 치바대학교 환경녹지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원예학연구과와 자연과학연구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도시녹화기술개발기구 연구원, 와카야마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부교수를 거쳐 현재 오사카부립대학교 대학원 생명환경과학연구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토교통성의 선도적 도시 형성 촉진 사업과 관련한 자문위원, 효고현 켄민마을 경관 수준 녹화사업 검토위원회 위원장, 사카이시 건설국 지정 관리자 후보자 선정위원을 역임했다. 일본조경학회 학회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도시 녹화의 최신 기술과 동향』, 『도시환경과 녹지-도시 녹화 연구 노트 2012』 등을 비롯해 다수의 공저가 있다. 한규희는 1967년생으로, 치바대학교 대학원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일본의 에디(EDY)조경설계사무소, 그락크(CLAC) 등에서 실무 경험을 익혔고, 일본 국토교통성 관할 연구기관인 도시녹화 기구의 연구원으로서 정책 업무 등에 참여해 10여 년간 근무해 오고 있다. 특히 도시의 공원녹지 5개년 계획의 3차, 4차를 담당했다. 일본 도쿄도 코토구 ‘장기계획 책정회’ 위원, 서울시 10만 녹색지붕 추진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연구 논문과 업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 한국에서는 어번닉스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여러 권의 단행본을 함께 감수하고 집필하면서 기술 보급에도 힘쓰고 있다. 번역 한규희 _ 어번닉스 대표, 일본 도시녹화기구 연구부 연구원
[이미지로 만나는 조경] 물이 빛을 만났을 때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솟아오르는 물이 빛을 만나면 그야말로 형형색색形形色色으로 변합니다. 모양도 색깔도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한참을 멍하게 보다가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진 찍는 조건으로는 거의 최악에 가깝습니다. 충분한 빛이 부족해서 셔터를 오랫동안 열어둬야 하는데, 피사체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이니까요. 초점이 잘 맞는 정확한 사진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합니다. 대신 빛을 만나 화려해진 분수를 배경으로 흐릿해진 경계의 사람들이 잡히네요. 역시 나쁜 게 있으면 좋은 것도 생기기 마련인가 봅니다. 몇몇 사진은 꽤 그럴 듯한 그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사진은 그렇게 찍은 수 십장의 사진 중의 하나입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좋은 점! 일단 많이 찍고 건질 거 찾아보기. ^^ 더운 여름 며칠 째 짜증만 내다가 시원한 분수 사진으로 잠시나마 열대야를 이겨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입니다. 일기예보로는 9월까지 덥다고 하던데, 다들 건강하게 여름 마무리 하시길.(연재글을 쓰다보면 가끔은 미래와 대화하는 기분도 듭니다)
[도시생태복원] 도시의 생태적 공간 증진 방안(3)
지난 글에서는 도시에서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해 생태적 공간을 만드는 방안으로 면적인 공간, 선적인공간, 그리고 점적인 공간으로 나누어 접근해 보았다. 이번 시간에서는 생태적으로 우수한 공간의 보전, 기능이 떨어진 공간의 향상, 훼손된 지역의 복원, 그리고 새로운 지역을 창출해 내는 기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번에 소개할 접근방식 역시 도시의 생태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실행하는 방법이 된다. 도시의 생태적 공간을 증진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먼저 생태적으로 우수한 공간의 보전은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접근방법 중 하나이다. 도시차원에서든 택지 차원에서든 생태적으로 우수한 공간은 보전을 원칙으로 한다. 여기서 생태적으로 우수하다는 말은 다양한 생물종이 풍부하게 서식한다는것을 말한다. 보전이라는 것은 개발하지 않고 그 기능이 지속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지역은 생태네트워크차원에서 주변의 자투리 공간이나코리더로 생물종을 공급source하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생태네트워크의 구성항목 중에서 핵심지역이다. 보전가치가 높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보전가치평가가 있다. 생태네트워크를 구성하려는 대상지의특성이나 규모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으로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 비오톱가치평가도 1등급 지역, 법정 보호지역 등이 그 대상이 된다. 이러한 곳이없는 지역을 대상으로 할 때는 상대적으로 가장 보전가치가 높은 곳을 대상으로 한다. 다만 핵심지역이 되는 곳이 항상 1등급 지역 혹은 법정 보호지역일 필요는 없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내가 계획하려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서 상대적 보전가치를 평가하고 접근하면 된다. 따라서 새롭게 만든 공간이거나 복원한 지역도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거나 제기능을 한다면 핵심지역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기능이 떨어진 공간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8월 원고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인간중심적이거나생물종이 서식하기 어려운 공간을 생태적으로 만드는 것도 향상의 좋은 방법에 해당한다. 산림의 경우에도 녹지자연도 등급이 낮거나 과거 속성수 혹은 사방용 등으로 외래종 중심으로 식재한 곳도 좋은 대상이 된다.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는 외래 생물종이 우점하거나 칡이나 환삼덩굴과 같이 다른 생물의 생육에 지장을 주는 곳도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자생종이더라도 한 종이 지나치게 밀식하거나 우점하고 있어 다른 생물종의 서식이나 이동에 장애가 되는 곳도향상의 대상이다. 하천은 인공적으로 정비됐거나 위해성 교란이 심한곳을 생태적인 하천으로 복원하는 것이 있다. 엄격한의미에서 이것은 하천 복원에 해당할 수도 있지만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해서 생물서식능력을 향상시킨다면 생태적 기능의 향상 기법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기능이 떨어진 공간을 향상시키면 당장은 핵심지역으로서 생물종 공급원의 기능이 약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충분히 제기능을 할 수 있다. 세 번째 방식은 훼손된 공간의 복원이다. 이 방식은이 연재에서 다양한 대상을 소개했었다. 폐철도나 폐도로를 복원하거나 도심의 버려진 공간, 훼손되어 불법 경작만 이루어지는 공간 등이 좋은 대상이 된다.버려져있는 습지나 숲을 훼손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도 당연히 이 기법에 해당한다. 잘 복원된 공간이 생태적으로 우수해져서 도시생태네트워크의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유럽의 경우훼손됐던 습지를 잘 복원해 람사르 사이트로 등록한곳도 많다. 조동길은1974년생으로, 순천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고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생태복원 및 환경계획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넥서스환경디자인연구원의 대표이사로서 생태복원, 조경, 환경디자인, 경관 등 다분야를 통합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 생태계보전협력금 반환사업, 자연마당 조성 등 생태복원 사업과 남생이, 맹꽁이 등의 멸종위기종 복원 관련 R&D 사업을 이끌고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서 생태복원 분야에 대해 강의하고 있으며, 저서로는『생태복원 계획 설계론』(2011),『자연환경 생태복원학 원론』(2004) 등이있다.
[옥상녹화 A to Z] 정원이와 알아보는 옥상녹화의 모든 것(8)
정원 팀장님!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구의 기후가 변화무쌍해 식물이 생존하기 어려운 여름이었습니다. 장마는 마른장마였고 예년보다 더위가 심각했습니다. 팀장 그래요. 엘니뇨나 라니냐로 인해 그리고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기후가 변동하고 있습니다. 지구촌 모두가 몇십 년 만의 이상기후를 경험했고, 극심한 더위와 가뭄, 홍수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죠. 조경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설계하는 우리도 이런 변화를 주시하고 이에 알맞은 설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시작하기 전에 이번 달에 열리는 행사에 관해 설명을 좀 할게요. 9월 26일 서울시청에서 한일 국제 세미나가 진행됩니다. 한국과 일본의 옥상녹화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예요. 참석하면 옥상녹화를 설계하는데 좋은 참고가 될 거예요. 정원 그런 국제세미나에는 꼭 참석해야겠네요. 팀장님도 참석하시나요? 팀장 물론입니다. 제가 이번 세미나에서 발표자로 나와 옥상녹화로 유명해진 세계의 건축물을 설명합니다. 옥상녹화를 통해 생명을 얻고 하나의 걸작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유명한 건축물들을 소개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정원 재미있을 것 같네요. 꼭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팀장 지금까지 설계를 위한 여러 가지 기초적인 지식에 대해 배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뉴욕의 조경을 통해 잘 조성된 옥상녹화가 얼마나 많은 경제적, 공간적 역할을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지금까지 배운 것을 토대로 실제 옥상조경을 설계하는 방법을 배워보겠습니다. 우선 작은 상업건물의 옥상을 예로 들겠습니다. 초기 설계의 도면을 보고 문제점을 파악하고 변경된 도면과 실제 시공된 모습들을 보면서 공부하도록 할게요. 먼저 설계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처음에 해야 할 것은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정원 알겠습니다. 저도 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실력을 발휘해서 열심히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체크리스트가 무엇인가요? 팀장 옥상조경의 설계를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확인해야 할 항목입니다. 옥상조경설계뿐만 아니라 일반 건축설계에서도 항목은 다르지만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활용해야 합니다. 정원 그렇군요. 설계를 위한 기본 전제조건도 있지만 설계를 위해 확인하고 파악해야 할 사항들이 더 있다는 거군요? 팀장 그렇죠. 물론 이 체크리스트에 없는 부분들은 별도로 다루도록 할게요. 그것은 이미 지어져 있는 건물에 옥상녹화를 하는 경우와 경사형 지붕에 옥상녹화를 하는 것인데 확인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별도로 설명할게요. 체크리스트를 한 번 볼까요? 정원정말 설계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군요. 알고 있던 것도 있지만 좋은 옥상정원을 만들기 위해 세심한 것 하나하나 신경을 써야 하네요. 하지만 설명만으로는 혼란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사용용도에 따른 구분이나 방수의 문제 등도 쉽지는 않은 것 같고요. 화단조성도 무엇을 확인해야 할지 애매합니다. 팀장 대부분 앞에서 배운 것들이지만 필요한 부분은 추가로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법정면적이나 수목수량은 각 지자체마다, 특정 지구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때그때 확인을 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리고 일부 지자체는 시에서 정한 수목을 꼭 일정수량 심도록 정해놓기도 합니다. 물론 법적으로 조경 면적이나 수량을 따르지 않아야 하는 건축물도 있고요. 법적 조항은 이전에 배운 대지의 조경이나 생태면적률을 참고하면 됩니다. 정원 그렇군요. 법적 조항을 알아보고 이것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아 설계를 해야 하는 거네요. 팀장 맞아요. 그리고 사용용도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떤 때에는 법적 최소기준만 맞춰 시공하려는 경우가 있고, 어떤 때에는 옥상을 가든파티나 야외결혼식이나 야외공연까지 가능한 정원을 조성하려는 경우도 있답니다. 물론 이런 경우는 많지 않지만 건축물의 용도나 사용하는 사람들의 취향에 알맞은 설계를 해야겠지요. 회사의 사옥을 설계한다면 직원들의 휴게공간, 운동공간, 업무공간 등을 반영하면 되고, 병원의 옥상을 설계한다면 환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해야겠지요. 또 extensive와 intensive의 개념에 대해서는 교육 초기에 설명했지만 다시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extensive라는 개념은 토심을 낮게 하고 관리요구도를 낮춰 이용의 목적이 아닌 생태적 기능에 충실한 녹화를 하는 것입니다. extensive 옥상녹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옥탑에 조성하거나 특수한 목적을 위해 조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사용을 겸하는 intensive 옥상녹화를 원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정원 저도 extensive 옥상녹화에 관심은 많지만 제대로 된 사례를 국내에서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김진수는 다양한 경험을 거쳐 12년 전부터 옥상정원 분야에 전념해 오고 있다. 현재 (주)랜드아키생태조경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며, 독일 ZinCo GmbH사와 기술협약을 맺어 옥상녹화 시스템을 국내에 보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주)랜드아키생태조경은 도시 집중화로 인해 지나치게 상승한 땅값으로 새로운 녹지 조성이 어려운 상황에서 옥상 공간을 가치 있게 재탄생시킴으로써 생태조경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고자 한다.
[식재기법] 그늘정원 조성 기법(8)
국내에서 재배되는 정원식물은 수 천종에 이른다. 전통적인 조경수목을 비롯해 꽃과 열매가 좋은 자생식물들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 최근에는 원예시장에도 국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외국의 다양한 품종 도입이 점차 증가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동절기가 비교적 긴 우리나라에서 겨울정원을 위한 좋은 식물은 아직까지도 많이 부족하다. 전문 식물원에서 외국의 겨울정원Winter Garden의 개념을 도입해 정원을 꾸미기도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의 이야기다. 여전히 많은 정원에서 겨울은 다소 황량하고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록교목을 매우 선호한다. 정원에서 소나무를 많이 이용하는 이유 중 겨울철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일 것이다. 더욱이 기후적 요인으로 인해 침엽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록교목들이 제주를 비롯한 남부지역에서만 월동이 가능한 우리나라의 경우 그 희귀성으로 인해 상록수에 대한 선호도는 더욱 높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상록교목이 중심이 되는 정원은 겨울철 볼거리를 위한 대책일 수도 있지만 바꿔 생각해 보면 다른 계절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정원이기도 하다. 상록교목은 정원을 일 년 내내 변화감이 거의 없는 일률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짙은 그늘은 하부식생을 단순하게 바꿔 풍성한 계절성과 다양한 볼거리를 빼앗아 버린다. 이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상록관목이다. 낙엽교목을 중심으로 정원을 조성해 하층의 식생을풍성하게 연출하고 계절의 변화감을 세심하게 도입하되 부분적으로 상록관목을 이용해 하부에서 단단하게 정원의 골격을 잡아주는 것이다. 단 이때 사용되는 관목은 첫째, 내한성이 뛰어나야 하고 둘째, 꽃이나 잎이 아름다워야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진달래과 식물을 들 수 있는데 국내에서는 마취목으로 불리는 피에리스속Pieris , 다소 생소하지만 일부 마니아층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칼미아속Kalmia, 전문적인 식물원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에리카속Erica 그리고 최근 각광받고 있는 만병초속Rhododendron 등이 있다. 물론 겨울정원을 꾸미는 방법은 다양하다. 잎을 떨구고 마른 가지가 사각거리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소재와 배식디자인을 고민하다 보면 다양한 조성기법이 나올 수 있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는 온대지역은 신의 선물과 같은 것이어서 계절의 세심한 변화감을 잡아내고 표현하는 일은 정원사의 가장 큰 책무일 것이다. 단 필자는 몇 가지 새로운 소재를 활용해 기존의 문제점을 쉽게 개선하고 그늘정원과 연계해 새로운 주제원을 제시하고자 한다. 김봉찬은 1965년 태어나, 제주대학교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하였다. 제주여미지식물원 식물 과장을 거쳐 평강식물원 연구소장으로 일하면서 식물원 기획, 설계, 시공 및 유지관리와 관련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2007년 조경 업체인 주식회사 더가든을 설립하였다. 생태학을 바탕으로 한 암석원과 고층습원 조성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 이사, 제주도 문화재 전문위원, 제주여미지식물원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조성 사례는 평강식물원 암석원 및 습지원(2003), 제주도 비오토피아 생태공원(2006), 상남수목원 암석원(2009), 국립수목원 희귀·특산식물원(2010),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암석원(2012) 및 고층습원(2014) 등이 있다.
[식물디자인의 발견] 자크 마조렐
마조렐 가든의 역사마조렐 가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사람을 잘 알아야 할 듯하다. 마라케시에 마조렐 가든을 만든 사람은 프랑스의 예술가, 자크 마조렐이다. 그는 이 정원의 레이아웃을 잡았고, 이 안에 선인장과 바나나, 야자수, 대나무를 근간으로 하는 자생력 강한 식물 디자인을 완성한 사람이기도 하다. 마조렐은 자신의 정원을 1947년에 일반인에게 공개했고, 이 정원을 즐기러 오는 프랑스인들이 상당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마조렐은 1962년 뜨거운 마라케시의 사막기후로 인해 생긴 풍토병으로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는 비극적으로 1962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그 후유증으로 끝내 마라케시로 돌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주인을 잃은 마조렐 가든은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원래 모습을 잃고 심하게 훼손돼 갔고 사람의 기억에서도 사라진다. 이 정원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1980년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과 그의 파트너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e에 의해서였다. 특히 이브 생 로랑은 인근 국가인 알제리 태생으로 마라케시인들과 마찬가지인 베르베르인의 뿌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는 마조렐가든을 구입한 뒤 정원을 마조렐 시대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할 계획을 세운다. 이때 고용된 사람이 마라케시의 위대한 가든 디자이너이자 민족식물학자인 아브데르작 벤챠바네 Abderrazak Benchaabane였다. 가든 디자이너, 식물학자, 교수, 향수제조자로 다방면에서 활동했던 아브데르작은 마조렐 가든 복원 작업에 임하면서 10년간 철저한 고증의 절차를 밟았다. 그는 마조렐이 심은 식물의 수종에 정확한 학명을 붙여주는 과정을 통해 정원 안에 12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본격적인 복원 작업이 이뤄지는 동안 그는 식물을 325종으로 늘렸고, 여기에 마조렐이 직접 디자인한 물길 시스템을 보완해 새로운 물관리체제를 완성했다. 훗날 아브데르작은 이브 생 로랑의 권유로 자신의 또 다른 전공을 살려 Jardin Majorelle’이라는 향수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복원을 마친 이브 셍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는 이 정원의 이름이 바뀌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마조렐이라는 예술가의 정원을 사랑했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들이 한 일은 마조렐이 작업 공간으로 썼던 건물을 ‘베르베르인의 문화와 예술을 보여주는 미술관’으로 개방한 일이다. 지금도 이 정원은 여전히 ‘마조렐 가든’으로 불린다. 2008년 이브 생 로랑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뒤, 피에르 베르제는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뼈를 마조렐 가든에 뿌렸고, 그를 기리는 작은 상징물을 세웠다. 마라케시는 이브 생 로랑이 마라케시와 베르베르인의 문화와 자긍심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공을 인정해 정원 앞을 지나는 길에 ‘이브 생 로랑’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마조렐 가든의 교훈마조렐 가든은 마라케시라는 지역을 충분히 고려한 자생이 가능한 식물을 이용한 식물 디자인이 이뤄진 점, 자크 마조렐이라는 예술가의 뚜렷한 예술적 감각이 정원 안에서 강렬하게 부각이 되고 있는 점, 그 지역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 건축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 마지막으로 이 모든 요소가 오래된 틀 속에 머물지 않고 현대적으로 해석됐다는 점에서 탁월한 가든 디자인, 식물 디자인이 실현된 장소로 여겨진다. 전통의 해석은 두 가지로 가능하다. 하나는 원형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학습하게 하는 복원의 측면이 있다면 다른 하나는 현재진행형으로서 새롭게 재해석된 시도가 있다. 그런데 자칫 전통이라는 것이 처음 의미에만 발목을 잡히게 되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적용돼야 할 전통이 미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마조렐 가든은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지금의 의미로 다시 해석한 작품으로, 우리의 현대 전통 정원을 재해석 하는 방법으로 좋은 사례가 될 듯하다.
[전통정원] 일본의 명원29
이스이엔 일본 국가지정 명승 이스이엔依水園은 별도의 구역에 조성된 2개의 정원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전원前園이고, 다른 하나는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후원後園이다. 전원과 후원은 못과 계류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각각 정원이 조성된 시대의 양식적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어, 한 공간에서 두 시대의 명원을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일본 특유의 의장을 지닌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산슈테이三秀亭(삼수정)라는 당호를 가진 건물이 나타난다. 이 건물은 엔포延宝 연간年間(1673~1681)에 키요스미 도세이淸須見道淸가 만든 별저別邸이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엔포 4년에 일본 황벽종黃檗宗의 개조開祖 인겐 류키隠元隆琦(은원륭기, 1592~1673)의 법을 이어받아 우지宇治 황벽산黃檗山 만후쿠지万福寺(만복사)의 제2조가 된 목안 쇼토木庵性瑫(목암성도, 1611~1684)가 이곳에 들러서 정원의 배경이 되는 세 개의 산, 가스가야마春日山, 와카쿠사야마若草山, 미카사야마三笠山의 수려한 경관을 보고 즉석에서 건물에 산슈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산슈테이 앞에 조성된 못은 3산을 배경에 두고 2개의 중도中島를 못 안에 배치하였는데, 호안의 석조나 구도龜島를 상징하는 중도, 못 가에 배치한 등롱 등에서 에도 시대의 작법을 볼 수 있다. 산슈테이에서 두 개의 섬을 연결하는 다리는 3산을 향하도록 방향을 잡아 차경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작법 역시 차경효과를 정원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에도 시대의 개념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 못 상부에 스신테이水心亭(수심정)라는 이름의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본래 의도하였던 차경의 효과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으니 이것은 본래 정원의 개념을 생각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후정에서 전정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테이슈겐挺秀軒이라고 이름 붙여진 아담한 규모의 다실이 하나 있다. 이 다실은 엔포 연간에 키요스미 도세이가 건축한 것으로 다실 옆으로 요시키가와宜寸川가 흐르고 있어 맑은 물소리가 청아하게 들리는 한적한 곳이다. 메이지 시대에 후원을 조성한 세키도 지로関藤次郞는 이 건물을 새로 지은 다실 세이슈안淸秀庵의 대합待合 공간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건물 벽면의 원창이나 바닥의 환호丸炉에서 일본 고유의 다실건축의 양식적 특징을 볼 수 있다. 테이슈겐 주변의 다정茶庭은 메이지 33년(1900)에 우라센케裏千家 제12대 종장宗匠 유묘사이又玅斎가 설계하였고, 그가 하나하나 꼼꼼히 감수하여 작정한 것이라고 한다. 이때 작정한 정원은 외정과 내정으로 구성되는데, 편립문編笠門을 기준으로 내정에는 세이슈안이 있고, 외정에는 테이슈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외정과 내정은 후원의 수자지水字池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개울로 인해 공간이 구분된다. 이스이엔이 들어선 이 땅은 도다이지東大寺 앞을 흐르는 요시키가와宜寸川가 통과하는 곳으로, 이 요시키가와의 물은 나라奈良 표포漂布(사라시)의 생산을 위해서는 없어서 안 되는 것이었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오면서 세키도 지로는 표포업을 시작하여 많은 돈을 벌었는데, 그러한 재력에 힘입어 메이지 30년에 산슈테이의 동쪽 편에 새로 산장을 짓고 이름을 스신테이라고 붙인다. 그리고 물 때문에 가업이 성립된 것을 기억하고, 이제 다시 청류淸流에 의지하여 여생을 즐기겠다는 생각으로 산장 전체의 이름을 이스이엔依水園이라고 짓게 된다. 그야말로 함의含意된 뜻이 깊고 풍류적이어서 가히 명원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어 보인다. 이스이엔의 전정은 다실인 산슈테이에 앉아 못과 그것의 배경으로 차경되는 3산의 경관을 관조하는 지천감상식 정원양식과 못에 가설한 다리를 건너고 계류를 따라 형성된 동선을 회유하는 지천회유식 정원양식이 혼합된 정원이다. 산슈테이에 앉으면 못 후면의 언덕과 그 배경으로 3산의 산경山景이 중첩되면서 가시되었을 터인데, 지금은 스신테이가 시각의 전개를 가로막고 있어서 부분적으로 밖에는 차경효과를 얻을 수가 없다. 후원 역시 스신테이에서 수자지水字池의 경관과 후면부에 차경되는 와카쿠사야마若草山를 비롯한 3산과 도다이지東大寺 난다이몬南大門 등을 관조하며 즐기는 지천감상식 정원과 수자지 후면부의 축산과 수자지 그리고 계류를 어슬렁거리며 회유하면서 즐기는 지천회유식 정원이 혼합된 산수정원이다. 이 정원은 교토 우라산케裏千家의 다인인 마에다 즈이세쓰前田瑞雪(1833~1914)의 지도를 받아 하야시 겐베林源兵衛(임원병위)가 작정한 작품이다. 후원은 전원에 비해서 탁 트인 개방감을 느낄 수 있으며, 정원의 면적도 전정보다 넓어 일견 남성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후원의 중심인 수자지의 수원은 정원 옆으로 흐르는 요시키가와에서 끌어들인 물로, 정원 상부 멀리에서부터 물을 도수하여 못 남쪽부에서 폭포형식으로 입수되도록 하고 있다. 수자지 한 가운데에는 중도를 만들었으며, 맷돌臼石로 사와타리沢渡り를 놓았는데, 이것은 후원의 특별한 의장으로 헤이안진구에서 볼 수 있는 와룡교과 유사하다. 중도에는 텐표天平의 초석이 몇 개 박혀 있다. 이것은 이 땅이 본래 도다이지 서남원西南院의 옛 터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땅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후원에는 수자지를 조성하면서 파낸 흙으로 축산을 하고, 후면부의 3산과 도다이지 난다이몬의 차경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주로 관목을 식재하였으며, 잔디로 처리하였는데, 축산의 스카이라인이 후면부 3산과 시각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스이엔은 1939년 해운업으로 성공한 나카무라 가문이 매입하여 전원과 후원을 합해서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1975년 정부로부터 국가지정 명승으로 지정을 받았고, 네이라쿠寧楽 미술관이 관리하고 있다. 홍광표는 동국대학교 조경학과,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경기도 문화재위원,경상북도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사찰 조경에 심취하여 다양한 연구와 설계를 진행해 왔다.현재는 한국전통 정원의 해외 조성에 뜻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저서로『한국의 전통조경』,『한국의 전통수경관』,『정원답사수첩』등을 펴냈고, “한국 사찰에 현현된 극락정토”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또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지오맥스를 이용한 조형가벽
인간과 자연을 생각하는 기업 (주)디자인 가교가 개발한 ‘지오맥스 Geomax’는 탄소배출량이 높고 산업폐기물이 발생되는 시멘트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으로서, 천연골재와 마사토 등 자연소재를 주성분으로 하기 때문에 기존 GRC(glass fiber reinforced cement), FRP(fiber reinforced plastics) 공법을 대체하는 차세대 친환경 기술이다. 기존의 GRC공법은 시멘트를 이용한 기술로서 공해가 심하고 균열이 쉽게 일어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디자인 가교에서는 기존 공법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차세대 기술을 연구하여 지오맥스를 이용한 새로운 조경시설물 소재를 개발했다. 지오맥스는 천연 미네랄과 세라믹 분말을 이용하여 개발한 바인더로서 시멘트보다 우수한 물성을 발휘하고, 비료의 성분과 유사한 성분 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토양 오염이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 소재다. •주성분: 천연골재(모래 포함), 마사토, 바인더(GP, MB 바인더)•형태: 천연의 흙과 바인더 분말을 혼합하여 성형하므로 원하는 모든 형태의 성형이 가능 조형가벽조경공간에서의 가벽은 공간과 공간을 구분 짓는 차폐 기능은 물론 미적 조형 언어를 손쉽게 전달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휴게의 기능과 포토존의 역할로도 자주 도입돼 다기능적 집합체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스토리텔링 story telling특화된 공간의 스토리 구성에 사용할 수 있는 ‘스토리 가벽’은 ‘스토리story’의 설명과 이야기의 서사적 기능을 기본으로 텔링telling을 언어voice가 아닌 조형성을 갖춘 형상으로 전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야기 속 공간으로 이끌려 그 속에서 정서적 감응을 교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연출된다.‘지오맥스 조형가벽’은 규격화되거나 동일한 형태의 제품은 없으며, 놓여지는 공간과 테마에 맞게 새롭게 디자인하고 여러 형태로 연출하여 제작한다. 순수한 자연그대로의 물질로만 구성돼 있어서 누구나 만지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미적 형태와 기능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조경시설물이다. 문의: T. 02-564-3680, www.gagyo329.com
[기자수첩] 표류하는 조경학, 어디로 가오리까
얼마 전 안양으로 예비군훈련을 다녀왔다. 지난해까지는 마포구 망원동 소속이라 고양에 위치한 훈련소로 훈련을 받으러 갔다. 올해 초 관악구 신림동으로 이사하고 주소지를 옮겼다. 신림동은 안양에 있는 훈련소를 이용해야 해서 낯선 곳으로 훈련을 받으러 가게 됐다. 예비군 통지서와 인터넷, 지역주민의 안내를 통해 약 2시간이나 걸려 겨우겨우 훈련장에 도착했다. 요즘은 9시에서 1분만 초과해도 들여보내 주지 않아 시간을 넉넉히 잡아 여유롭게 갔다. 근처에 훈련장이 여러 개 위치한 경우 혹시나 훈련장을 잘 못 찾는다면 다음에 다시 가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연차가 아무리 찼더라도 신분 확인을 끝낼 때까지는 조금은 졸이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다행히 주변에 다른 훈련소가 없어 맞게 찾은 듯 했고 각 동별로 구역을 나눠 신분 확인 및 접수를 진행했다. 신림동 줄에 서서 기다리다 내 차례가 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조교가 아무리 뒤져보고 검색해 보아도 난 신림동 소속이 아니었다. 접수가 끝난 서림동 소속 접수대에서 미접수자 명단을 방송해 간신히 내 위치를 찾았다. 알고 보니 신림동은 과거 행정구역이 13개로 나눠져 있었고, 현재 13개 동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분리된 것이다. 사는 곳 주소는 분명 신림동이지만 행정구역상 나는 서림동 주민센터에 속한 주민이었다. 분류가 애매하지만 어쨌든 명확한 소속을 찾아 안정을 찾았다. 최근 조경학과는 학문영역의 소속이 불분명해져 불안한 상황이다. 한국연구재단은 산림과 조경을 통합된 학문으로 분류하고, 교육 정책의 근거자료가 되는 통계청 한국표준교육분류에서도 조경은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지 못했다. 심지어 타 분야에서 주장하는 ‘조경 건축’이란 용어가 건축에 속한 한 분야로 분류돼 있는데, 통계청 관계자는 ‘조경’이 틀린 용어가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조경이란 용어조차 정통성을 다른 용어에 빼앗길 처지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부터 조경학과가 만들어졌다. landscape architecture를 조경으로 번역하고 학과를 만들어 40여 년을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공간이 조경의 이름으로 만들어졌고, 조경진흥법이 제정됐음에도 조경이 독자적인 학문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조경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학문분류에도 여기저기 이름은 보이지만 독자적인 영역은 불확실하다. 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안정감을 찾을텐데, 조경분야의 대처는 지지부진하다. 조경학이 표류하는 동안 학생들도 흔들리고 있다. 관련 기사를 접한 한 학생은 심각하게 한 마디 했다. “저는 어디로 가야 하죠?”
[기자수첩] 다시 요동치는 용산공원, 국토부 책임 ‘정조준’
서울시와 야당, 시민단체들이 국토교통부와 용산공원 계획안에 대해 강하게 성토하고 나서면서 용산공원이 다시 정치적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8월 23일 국회에서는 서울시와 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용산공원시민포럼이 공동으로 ‘용산공원에 묻다’라는 주제로 ‘용산공원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공원 관련 전문가들을 비롯해 김종인 더민주 대표,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 변재일 더민주 정책위원장, 성장현 용산구청장등 굵직한 야당 의원들이 대거 참석해 정부에 용산공원 계획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강하게 요구했다. 이날 제기된 내용은 기존 용산공원 계획안은 사전조사도 없이 나온 졸속적인 계획이며, 국토부가 구시대적인 정부 주도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에 참가자들은 ▲면밀한 조사부터 시작해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조성하되 ▲계획부터 조성, 운영관리까지 시민참여 방식으로 전환하여 ▲각종 추가된 계획으로 줄어든 터를 온전하게 회복해 공원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한마디로 “기존 용산공원 계획안은잘못된 계획이므로 판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꺼낸 카드가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의 전면 개정이다. 조명래 교수는 최초로 조성되는 국가공원인데도 국가성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다면서, 이법에 ‘국가공원’의 성격을 정의하자고 말했다. 그리고서울시가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시민 주도방식, 터 복원, 장기적인 계획 수립 근거, 시설 이전방안 등을 규정하자고 했다. 안타깝게도 모든 잘못의 원인은 국토부를 향하고 있다. 지금 용산공원 사업은 “국토부 담당 공무원과 친국토부 전문가, 영혼 없는 용역사가 주체가 되고, 시민은 그저 관객”이라면서, 국토부의 폐쇄적인 조성과정에서 문제를 찾는 분위기다. 사실 국토부가 이 사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주장은이미 있어왔다. “공원을 만들어 본 적도 없는 국토부가 용산공원을 만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인데, 국토부 입장에서는 뼈 아픈 지적일 수도 있고, 중앙부처가 직접 공원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정치적 의도라고 폄훼하기에는 그간 도시공원에 등한시한 국토부의 행적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고, 중앙부처가 공원을 만들 필요가없다는 입장이라면 용산공원을 못 내놓을 이유가 없는 셈이 된다. 무슨 답변을 해도 국토부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됐다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녹색 패러다임에 대한 국토부의 전환적인 모습은 언제쯤 볼수 있을까
[지자체탐방] 어린이대공원
“박정희 대통령의 어린이대공원과 내가 생각하는 어린이대공원은 다를 것이다. 당시에는 아이들에게 놀이 공간을 주고 싶었겠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고 싶다. 또한 그것이 우리 시대 어린이대공원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1970년대 조성된 어린이대공원은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변화의 외풍도 컸으리라. 공교롭게 현재 서울에 있는 어린이 및 청소년 인구가 1960년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져서 160만 명이란다. 하지만 500만 시대의 160만 명과 지금 1000만 시대의 160만 명은 분명 다르다. 이강오 어린이대공원 원장은 공원이 겉으로 보기에는 변하지 않는 것 같아도, 사실 인구나 사회나 경제의 변화만큼이나 공원 밖 세상과 호흡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변화하는 시대마다 공원의 역할이 달라져 왔고, 그 역할에 대해 사회를 향해 외쳐야 하는 몫이 우리에게 있다고 했다. 어린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세 가지 전략 어린이대공원이 위치한 능동 일대는 기존에 골프장 부지였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어린이대공원을 지으라고 한 것이 1970년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 개장한 것은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로, 개장 당시 면적은 71만9400m2였고, 현재는 53만6088m2에 달한다. 이중 시설이 약 39.7%를 차지하고 있다. 2006년에 무료 개방하고 2007년 재조성사업을 시작해 2009년 36년만에 새롭게 조성한 모습으로 재오픈했다. 그리고 최근 어린이대공원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소식이라면 지난해 6월 20일 시민단체 출신 이강오 원장이 부임한 것이 아니었을까. 공개채용 방식 자체도 화제였지만, 이강오 원장이 어떤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도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관료적 조직에 새롭게 수혈된 이강오 원장의 지난 일년을 들여다봤다. 처음 이강오 원장이 부임해서 만든 것은 공원의 혁신안이었다. 기존 혁신안도 있었지만 시장이 바뀔 때마다 내려오는 형식적인 계획안으로 직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래서 외부 인사가 아닌 내부 직원들의 의견을 담아 6개월간의 작업으로 ‘어린이대공원 발전방향’을 만들었다. 이 안에는 어린이대공원이 어린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세 가지 전략이 담겼다. 첫째는 ‘지구를 위한 동물학교’다. 지금까지 아이들은 동물을 왜곡해서 봐 왔다.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동물들은 서울에 있는 아이들이 태어나서 첫 번째로 만나는 야생동물이다. 이 동물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야생동물에 대한 평생의 이미지가 심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야생동물에 대한 정확한 이미지를 보여주자고 한 것이다. 두 번째는 ‘울림이 있고 설렘이 있는 숲과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다. 어린이대공원의 가장 큰 자산은 숲과 나무들인데 지금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이용가능하고, 다양한 식물을 볼 수 있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숲으로 탈바꿈시켜 주자는 것이다. 세 번째는 ‘야외놀이 플랫폼’이다. 어린이대공원은 어린이들이 놀기 위해 만든 공간이므로, 가장 매력적인 놀이 공간이어야 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콘텐츠를 결합시키고자 했다. 기존의 행정이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핸드폰이 게임어플의 플랫폼이듯이, 어린이대공원이라는 공간에 누구든지 프로그램을 끼워넣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동물원을 어찌하오리까…해법은 집단지성 세 가지 전략들이 사연 없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특히 ‘지구를 위한 동물학교’를 내세운 동물원과 관련된 줄거리는 길다. 처음 이강오 원장이 부임했을 때 일부 직원들 사이에는 경계하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특히 동물원은 최근 동물복지운동이 커지면서 문을 닫으라는 외부의 공격이 지속적으로 있었던 상황이었고, 더군다나 시민단체에서 원장이 온다고 하니 더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강오 원장은 동물원 스스로 발전계획안을 짜도록 했다. “다만 현 서울시장의 방향이 세계적 흐름과 다르지 않으므로 배척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시장의 결정이라고 해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하진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렇게 토론을 통해 도출한 결론이 ‘교육 동물원’이다. 직원들이 꺼내 놓은 생각을 모아 놓으니 사실 박원순 시장과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구체적인 방향이 다른데, 이것은 충분히 협의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시장은 가축을 적극 활용하여 어린이체험교육을 하자는 건데, 동물원은 기존의 동물을 가지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동물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다. 과거에 동물을 전시해서 바라보던 엔터테인먼트적 기능이 아니라, 현대 동물원은 오히려 야생동물의 종다양성을 지키는 근거지 역할을 하고 있다. 과연 그런 기능을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가 이슈이고, 많은 한계가 있겠지만 어린이 교육을 전문화해 간다는 데 합의한 것이다. 이강오 원장이 시민사회에서 늘 해왔던 집단지성을 끌어내어 합치시키는 프로세스가 힘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동물원에 당장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육사나 수의사들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 “인적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공간을 바꿔봐야 쓸모가 없다”는 것이 이 원장의 생각이다.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도 처음 단체가 조직되는 과정에서는 6~7명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점점 동지를 끌어 모으면서 공간을 혁신해 갔다. “어린이대공원도 충분히 교육할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때, 그 정도의 가치나 스토리가 생기고, 우리 안에 콘텐츠가 쌓이면 기회는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