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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타이완, 중국, 멕시코 SWA 프로젝트의 포장 사례를 중심으로
    미국, 서로 다른 포장의 조화미국의 포장 사례들은 한 공간속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페이빙이 어떻게 조화되고, 어떤 관계로 그 공간의 목적과 부합하게 적용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아시아와 유럽은 일반적으로 페이버paver를 많이 활용하는 반면, 미국권은 콘트리트 페이빙을 상대적으로 좀 더 많이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례는 모두 SWA의 프로젝트로 구성되었다.Arizona Center 아리조나 센터Santana Row 산타나 로우 Lewis Avenue 루이스 애비뉴SOKA Univeristy 소카대학Fashion Island 패션 아일랜드타이완, 같은 재료 다른 연출Lite-On 라이트 온중국, 돋보이는 실험성과 스케일Zobon City 조본 시티Beijing Finance Street 베이징 금융가멕시코, 자갈로 수놓은 남미의 정취Capella Ixtapa 카펠라 이스따빠Las Ventanas 라스 벤따나스
  • 아랍에미리트, 전통 문양의 접목
    Plam Jumeirah 팜 쥬메이라Mall of the Emirates & Kempinski Hotel 에미레이츠 몰 & 켐핀스키 호텔Jumeirah Beach Residences 쥬메이라 비치 레지던스Dubai Autodrome 두바이 오토드롬Burj Dubai 버즈 두바이Arenco 160 luxury villas 아렌코 160 빌라 주거단지
    • / 2009년09월 / 55
  • 독일의 포장, 도시 생태성 회복에 기여
    포장은 자연 상태의 도로에 교통의 편의성을 높이고 이용자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설치되어 왔다. 특히 이용자 중심의 도로포장은 교통량 증가에 따라 그 수요가 증가하게 되었는데, 유럽에서의 그 역사는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시대 도로나 광장의 주요 도로를 돌을 이용하여 포장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산업혁명을 통해 교통량이 증가하고 도로포장공사가 확충되면서, 19세기 중반 유럽의 도로포장이 법제화 되고 그 기준안이 마련되었다. 이후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아스팔트 도로포장이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그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1970년대 이후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거리나 차량 통제 거리에 대한 의미와 중요성이 커지면서 보행자거리, 역사보존구역, 광장 등에 관심이 증가하여 다양한 형태의 포장재료 및 유형이 나타나게 되었다. 유럽 및 독일 내 포장의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사실 최근의 추세는 과거 기본적인 교통의 편의성 제공 외에 포장 본연의 기능성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 물론 포장은 그 재료의 특성상 다양한 패턴을 통해 공간을 구분을 하는 등의 기능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또한 본래 취지인 심미성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으며, 지역성을 표출하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존의 심미적 기능성과 현재의 차이점은 도시 생태성 회복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필수 조경공간에서의 투수성 회복이 바로 그것인데, 기존의 불투수성 포장으로 인해 토양의 담수량이 낮아지고 지하수 함양량이 점차 줄어드는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인데, 유럽의 관점은 조금 다른 것이 요즘 한창 제기되고 있는 물순환계획과 연계되어 있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도로포장면적은 약 95% 수준이며, 이중 약 75%가 자동차도로 및 고속도로 등의 아스팔트 포장으로 조성되어 있고, 나머지 약 25%가 보행자도로 및 일반도로, 광장과 공원용지 등의 포장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 공간에 투수기능을 첨가함으로써 기존의 맹목적인 불투수성 면적을 극복하고자 하고 있다. 현재 독일은 각 지역별로 최소 5%에서 최대 20%까지 투수성 포장면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이며, 이 수치는 증가 추세에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필자가 살고 있는 독일 하노버시의 경우 보행자도로 및 일반도로, 광장, 공원용지 주차장 등에서 이러한 기능형 포장이 어떻게 설치되어 있으며, 어떤 재료와 형태로 이를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를 짧으나마 입체적으로 소개하고자 우선 집 앞을 나서 보았다.
  • 프랑스 바닥포장 나들이, 단순함과 자연스러움의 조화
    프랑스는 과거 대부분의 도로 포장 재료로 석재(사괴석)가 이용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사괴석 포장의 과거 도로를 어느 거리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도시 중심대로만이 아닌 주택가의 소로, 보행로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석재가 가진 특성을 살린 다양한 포장방식을 통하여 각각 다른 성격의 동선을 분리, 차별화하고 있으며, 많은 도시들은 과거와 같이 현재도 포장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관리 및 보수를 하고 있다. 과거에 마차를 타고 달렸던 그 길 위를 지금은 자동차가 달린다. 마모되어 매끈한 석재의 표면에서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절로 느껴진다.
    • / 2009년09월 / 55
  • 핀란드 목재 데크, 자연과의 조화
    핀란드 UPM사의 UPM ProFi Deck로 시공된 사례들이다. 일반 합성목재와 달리 천연펄프와 고밀도 폴리에틸렌을 사용하여 리그닌(lignin)과 인체에 유해한 화학성분이 없고, 변색이 적으며,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적인 소재이다. 다양한 색상, 모양 및 장식 패턴, 곡선 및 웨이브와 같은 개성적인 디자인을 표현할 수 있다. 가운데가비워져 있는 중공형 구조로서 견고하면서도 가벼워 취급이 용이하다. 자료제공 _ (주)파워우드, 사진 _ UPM
    • / 2009년09월 / 55
  • 한국의 전통수경관(2) 수경관의 형식 1
    지당1) 개관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당은 조경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수경요소로 취급되어 왔다. 특히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하게 되고, 주변환경과의 경관적 맥락성을 가지고 조성된다는 이유 때문에 지당은 중요한 시각적 대상이 되어왔다. 기원전 2500여 년경에 조성된 이집트 주택정원의 썬큰폰드를 비롯해서 고대 로마시대의 아드리아누스빌라에 조성된 카노푸스, 인도 타지마할의 중심축선 상에 조성된 직선형 폰드, 스페인 알함브라궁원 깊숙한 곳에 있는 도금양(myrtle)의 중정에 만들어진 폰드, 프랑스 베르사이유궁원의 워터빠뜨레(water parterre), 중국 수저우 쭈오쩡위웬(拙政園)에 조성된 연당, 일본 우지 뵤도인(平等院)의 정토지(淨土池) 등을 보면 정원에서 지당이라는 것이 어떠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어찌하여 작정자가 지당이라는 형식의 수경관을 바로 그곳에 조성하였는지를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실로 정원에서 지당이라는 수경관은 없어서는 안 될 막중한 비중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삼국시대부터 조경공간에 못을 만들어왔음은 『삼국사기』 등과 같은 고문헌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인 경주의 안압지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수경관조성기법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손색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일본의 정원에 조성된 지당의 형식이나 상세를 보면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조성된 수경관형식이 전이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당시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지당 조성 기술이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서기(日本書紀)』 추고천황(推古天皇) 20년조(612)에 “백제에서 귀화한 노자공(路子工)이 궁실 남쪽 뜨락에 수미산을 꾸미고 오교를 놓았다”는 기록(김용기, 1996:406에서 재인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당은 상당부분이 그 원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변형되었거나 멸실되고 말았으니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극히 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불국사의 구품연지는 복원되지 못한 채 묻혀 있고, 궁남지는 변형의 정도가 심하여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향후 우리나라에 조성되었던 지당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를 통해서 과거에 조성되었던 우수한 지당을 발굴, 복원함으로써 옛 모습을 제대로 갖춘 정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2) 지당의 형태곡지형(曲池形) 삼국시대의 지당가운데에서 곡지형태를 가진 것으로는 경주의 안압지, 구황동원지, 용강동원지가 대표적이다. 안압지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볼 때 신라 문무왕 14년(674)에 조영된 못으로 시대가 흐르면서 황폐되어 있던 것을 1975년 3월 24일부터 약 1년간에 걸쳐서 발굴조사를 하였으며, 지금은 원형을 복원하여 놓은 상태이다. 우리나라 고대 지당 가운데에서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압지는 땅을 파내어 물을 끌어들이고 그 파낸 흙으로 가산(假山)을 만들고 섬을 쌓아 만든 인공지로, 그것의 전체 범위는 동서 200m, 남북 180m로 거의 방형구역 안에 조성되어 있으며, 못의 전체 면적은 15,658㎡이다. 안압지는 전체적으로 ‘ㄱ’자 형을 하고 있고,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직선과 곡선이 다양한 변화를 가지며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호안을 조성하였는데(고경희, 1989:21-22), 못을 중심으로 동쪽과 북쪽 편은 자연스러운 곡선의 구릉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서쪽과 남쪽 편은 건물지로 조성되어 있어서 대조적인 경관을 보이고 있다.안압지 조성 이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구황동원지(九黃洞園池)와 용강동원지(龍江洞園池)는 안압지와 같이 굴곡진 호안으로 되어있으며, 지중에 섬을 두고 있어 안압지와 유사한 형식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구황동원지는 남북최대길이 46.3m, 동서최대너비 26.1m 규모의 곡지로서 대체적인 평면형태는 동북우가 말각된 장방형에 가깝다. 호안석축 내부의 면적은 1,049㎡(약 317평)로 측정되었다. 못 안에는 대소 2개의 섬이 남북방향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08:69,78). 용강동원지 역시 굴곡진 호안으로 조성된 곡지로, 동쪽 호안이 38.6m, 서쪽 호안이 65m, 남쪽 호안이 33m로 되어 있다. 못 안에는 2개의 인공섬이 있으며, 아래쪽 섬 동측부에서 교각의 적심석으로 보이는 유구가 노출되어 교량에 의해 중도와 동쪽 호안에 접한 건물이 연결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백지성, 하진호, 2002:40).부여의 궁남지(宮南池)는 원형의 변형 정도가 심하여 원래의 형태를 알 수가 없으나, 일제강점기에 그려진 도면을 보면 이 못 역시 곡지형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 35년(634)에 조성되었으니 안압지나 용강동, 구황동원지 등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못보다 그 조성시기가 훨씬 앞선다. 고구려시대에 조성된 정릉사의 진주지 역시 호안이 굴곡진 형태를 가진 곡지형 지당이다. 진주지의 못 안에는 4개의 섬이 있어 신선사상에 근거하여 조성된 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주지에서는 탄화된 연꽃씨가 발견되어서 연지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못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이렇듯 고대에 조성된 지당을 보면 곡지형 못이 많이 나타나고 있어 당시로서는 이러한 곡지형 못의 조성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축조연대로 볼 때, 이러한 신라, 백제, 고구려시대의 곡지형 못이 일본에 축조된 못의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이러한 곡지형 못이 고려, 조선시대로 가면서 그 모습을 감추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지금까지 경주 불국사의 구품연지는 타원형 못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발굴조사도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구품연지 역시 곡지에 가까운 타원형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구품연지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조성된 것으로 발굴조사결과 연을 심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정토정원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구품연지라는 명칭이 정토신앙의 구품연대에서 연유한 것이고 그 위치가 범영루 아래에 있어 안양루 올라가는 연화·칠보교와 연관이 있음은 그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구품연지는 동서장축 39.5m, 남북장축 25.5m, 깊이 2~3m 정도 되는 연지로 연못 주변에는 큰 돌을 쌓았다고 한다.
  • 독일의 환경·문화도시 프라이부르크 이야기(2) 도시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와 결과론적 경관
    들어가며 지난호의 예고대로 오늘은 프라이부르크라는 ‘하드웨어’를 가능하게 한 도시의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우리가 무심히 접하는 도시라는 실체 뒤에는 이를 가능케 한 조영(造營)의 논리와 철학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 선례에 대한 연구는 표피적 깊이를 넘어, 그 내면의 동인(動因)을 추적하는 방향으로도 접근될 필요가 있다할 것이다. 프라이부르크는 많은 부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도시이다. 더욱이 그린시티(green city)와 태양의 도시(solar region) 이미지를 획득한 프라이부르크는 이제 독일을 넘어 ‘세계의 환경수도(Green Capital of the World)’로까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으며, 전시, 교육, 관광사업 등 다방면에서 후광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측면은 이 도시가 태양광설비 등 첨단과학에 기대어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비용요소로 간주되어 회피해왔던 생태의 측면을 통해 도시환경의 인간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달성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프라이부르크는 '부드러운 생태(soft ecology)'와 ‘딱딱한 경제(hard economy)'를 조화롭게 결합함으로써 ‘개발과 보존’이라는 이원성의 문제를 ‘환경적 경제(environmental economy)’라는 시너지효과로 승화시켰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오늘날 프라이부르크가 주목되는 이유는 그동안 상반되는 가치로 여겨져왔던 ‘개발과 보존’, ‘경제와 생태’를 슬기롭게 조화시킨 데에 기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측면은 오늘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풍미하는 ‘녹색성장’의 개념과 잘 연결된다. 물론 녹색성장의 개념은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 즉, “미래의 경제는 ‘그린’에 있다.”라는 1968년 로마클럽(Club of Rome)의 명제가 작금의 ‘그린뉴딜(Green New-Deal)정책’을 설명하는 문장으로도 손색이 없듯 오랜 연원을 갖는다. 또한 경제적 관점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속가능성과 인간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녹색성장개념은 도시계획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메가리드 헌장(1994)’과 맥을 같이 한다. 나아가 이 개념은 모더니즘의 폐해를 비판한 포스트모더니즘 관련 논의들, 즉 전통적 가치를 중히 여기는 비판적 지역주의의 ‘장소성(genius loci)개념, 보행과 근린성을 장려하는 뉴어바니즘(new urbanism)의 사조, 어반스프롤(urban sprawl)현상에 대항하는 스마트 그로스(smart growth)운동의 노선 등과 긴밀히 연결된다. 이러한 연유 등에 의해 프라이부르크의 도시경관에는 새롭고도 다양한 지층들이 발견된다. 향후 녹색성장이 만들어 낼 도시경관의 면모를 가늠케 하는 프라이부르크의 소프트웨어는 이제 우리 조경계의 관심을 요청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보는 이에 따라 조경의 영역을 넘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는 부분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의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을 뜯어보는 것은 환경과 생태, 경관을 다루어야 하는 조경분야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줄 것으로 기대케 한다. 다소 건조할 수 있는 내용이나 관심을 부탁드린다. 역사적 전환의 계기 독일 내 다섯 번째 정도의 역사도시 프라이부르크는 근대기에 있어서도 비교적 양호한 기반시설을 구비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오늘날 이 도시의 현재를 있게 한 원동력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인프라와 산업시설이 초래한 악영향으로부터 발견된다. 즉, 1960년대 프라이부르크 시민은 급격한 공업화가 야기한 산성비로 인해 그들의 긍지이자 자부심이었던 흑림이 서서히 파괴되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며, 환경의 문제를 자각하기 시작한다. 더구나 1973년 10월부터 시작된 제4차 중동전쟁으로 에너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조된 1974년, 연방정부와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rtemberg) 주는 프라이부르크 근교 비일(wyhl)지역에 서독의 스무 번째 원자력발전소 건설계획을 발표한다. 이 사건은 그동안 성숙되어 온 환경적 자각을 실천적 참여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제공한다. 즉 흑림지역 내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시민운동은 녹색대안운동을 촉발시켜 1975년 이 원자력발전소를 포기케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독일 녹색당을 탄생케 한 계기로도 작용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생활환경과 습관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모색되었다. 즉, 원자력발전소의 반대운동을 계기로 형성된 ‘환경과 생태’에 대한 논의와 생활양식의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시민중심의 환경운동을 정착시켰으며, 오늘날 친환경도시 프라이부르크를 탄생시킨 모태를 이룬다. 한편, 1980년대의 대기오염에 의한 산성비로 흑림을 포함한 독일 일대의 산림피해는 엄청났다. 여기에 1986년 발생한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프라이부르크를 보다 본격적인 환경도시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이룬다. 즉, 같은 해 프라이부르크 시의회는 만장일치로 원자력의 영구폐기를 결정하였으며, 환경보호부서를 설립하는 최초의 도시가 된다. 이후 프라이부르크는 건강한 도시환경을 위해, 환경단체와 시민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참여하는 행정체계를 구축하였다. 즉, 그들이 자랑스럽게 지칭하는 조직인 프라이부르거 믹스(freibruger mix)를 통하여 제반 환경정책을 총체적이고도 유기적으로 펼쳐왔다. 상기의 과정은 일반적인 도시의 경우와 다른 몇 가지 측면을 보여준다. 즉, 지엽적일 수 있는 초기의 ‘원자력발전소 건설반대’의 문제를 교통과 에너지 등 환경의 전 분야로 확산시킨 점, 그리고 이를 통해 삶의 방식을 바꾸는 사회개조운동으로 연결시킨 점, 아울러 이 과정을 통해 그들만의 사회적 협력체계를 공고히 한 점 등이 특히 주목된다. 이제 프라이부르크의 환경관련정책을 편의상 교통과 에너지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한다.
  • Spring City Golf & Lake Resort
    위치 _ TangChi YiLiang, Kunming city, Yunnan, China 652103규모 _ Golf course 36holes (Lake course - 7,204yards, Par.72 / Mountain course - 7,453yards, Par.72), 1998년 개장설계 _ Lake course - Robert Trent Jones Jr. / Mountain course - Jack Nicklaus 중국 윈난성의 쿤밍은 해발 2,000m에 가까운 대표적인 고원 도시로, 겨울 평균 기온 10도, 여름 평균 기온 19∼25도로 일년 내내 온화한 봄기운을 보여 ‘춘성(春城)’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언제나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고,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쿤밍, 바로 이곳에 세계 100대 골프장 중의 하나로 꼽히는 Spring city(春城) Golf & Lake Resort(이하 春城G.C)가 있다. 春城 G.C는 총 36홀로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가 설계한 레이크 코스(Lake course) 18홀과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마운틴코스(Mountain course) 18홀로 구성되어 있다. 두 개 코스 모두 세계 100대 코스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이번에 만날 코스는 마운틴코스다. 마운틴코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산을 끼고 코스가 조성되어 있어 업(up hill), 다운(down hill)이 심한 다이나믹한 코스이다. 세상에서 가장 잘 관리된 유리알 그린에 7,453야드나 되는 긴 전장은 비거리가 늘어나는 고원임을 감안하더라도, 쉽게 정복할 수 없다. 마운틴코스의 시작은 오른쪽으로 경사진 편안한 홀로, 코스 좌측 언덕에서 잘 생긴 빌라들이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다. 계곡으로 기울지 않도록 그린을 떠받치는 듯한 벙커가 그린과 잘 조화되고, 그린 주변의 화관목들이 어우러져 3번 홀은 가장 아름다운 파3홀로 기억된다. 능선 사이로 멀리 하늘만 바라보이는 9번홀. ‘볼은 어디에 도달했을까?’ 흥분된 마음으로 페어웨이에 도달하면 숨겨졌다 펼쳐지는 광경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전략적으로 배치된 많은 벙커와 조형이 특색 있었던 11번홀, 넓게 펼쳐져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해지는 12번홀, 물과 조화로운 벙커와 그 뒤로 그림처럼 펼쳐진 빌라 단지로 13번홀은 한 폭의 그림을 완성시켰다. 17번홀에서는 완전히 다른 경관을 형성한다. 키 큰 나무들이 호위하듯 홀을 감싼다. 클럽하우스를 향해 올라가는(up hill) 마지막 18번홀은 그린을 가로막고 있는 계곡이 관건이다. 자신 있게 계곡을 넘기는 투 온, 모험보다는 안전한 쓰리 온.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묘미가 있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고원에서 호쾌한 비거리를 맛보는 것, 최고의 피서가 아닐까?
  • 계수나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어릴 적에 즐겨 불렀던 윤극영의 동요 ‘반달’ 중에 나오는 상상의 나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전설속의 그 나무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달에 살고 있는 나무가 계수나무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계수나무는 계수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원산지는 일본이며, 우리나라에는 일제시대에 들어왔다. 냇가 등의 양지바른 곳에 분포하며, 수고는 7∼10m 정도까지 자라고, 수피는 회갈색으로 세로로 갈라져서 박편상으로 떨어진다. 원줄기는 곧추 자라지만 굵은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짧은 가지가 있다. 소지는 대생하며 동아는 자홍색이다. 잎은 대생으로 넓은 심장형이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잎의 크기는 길이 4∼8cm이며, 너비는 3∼7cm 정도로 끝이 다소 둔하다. 잎의 앞면은 녹색, 뒷면은 분백색(粉白色)이고 5∼7개의 손바닥 형태의 장상맥(掌狀脈)이 있다. 엽병은 길이 2∼2.5cm로서 붉은빛이 돈다. 가을에는 황색 또는 붉은색 단풍이 아름답다. 꽃은 3∼5월경에 잎보다 먼저 엽액에서 피는데, 암수딴그루(자웅이주)로서 개화기에는 카라멜과 같은 달콤한 향기가 난다. 화피가 없고 소포가 있다. 수꽃은 많은 수술이 있으며 꽃밥은 길이 3∼4mm로서 선형이고, 암꽃은 3∼5개의 암술로 되며 암술머리는 실같이 가늘고 연한 홍색이다. 그리고 열매는 골돌과로 8월경에 3∼5개씩 달리고, 길이는 15mm 정도로서 굽은 원주형이고, 씨는 편평하며 한쪽에 날개가 있다. 계수나무의 학명은 Cercidiphyllum japonicum Siebold & Zucc.로서 속명 중 Cercis는 박태기, 잎이라는 뜻의 phyllon의 합성어로서 박태기나무의 잎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콩과에 속하는 박태기나무(Cercis chinensis)와 다른 점은 박태기나무의 잎은 호생(互生)하고, 계수나무의 잎은 대생(對生)의 형태이어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종명인 japonicum은 원산지인 일본을 의미한다. 계수나무의 영명은 Katsura Tree이며, 중국명은 계(桂) 또는 계수(桂樹), 일본명은 カツラ이다. 계수나무의 중국명인 계(桂)가 우연하게도 일치하여 여러 다른 나무의 이름에도 사용되었는데, 세종 16년(1432)에 문무과에 급제한 사람들이 임금님께 올린 감사의 글을 보면 "외람되옵게도 저 구름 사이의 계수나무 가지를 꺾게 되어, 궁궐에서 이름이 불리게 되고..."하는 내용이 있다. 이 문장에서 나타나는 계수나무는 벼슬을 얻었을 때의 상징나무이었고 상상의 나무로만 존재한다. 그리고 수정과에 들어가는 톡 쏘는 매운 맛을 내고 한약재나 향신료로도 쓰이는 계피(桂皮)라는 나무껍질이 있다. 계피는 명칭에 계라는 한자가 있어 계수나무로 종종 오인 받는데, 중국남부에서 실제로 자라는 녹나무과의 육계나무(Cinnamomum loureirii Blume, 肉桂)의 껍질이다. 육계나무는 시나몬(cinnamon)이라는 향신료를 만드는 나무로써 인도, 스리랑카 지역이 주산지이다. 또한 계수나무와 비슷한 명칭을 가진 월계수가 있다. 녹나무과의 월계수(Laurus nobilis, 月桂樹)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신(河神)의 딸 다프네가 아폴론에 쫓기다 다급해지자 나무로 변해버렸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중국인들이 번역할 때 월계수라 하였다. 월계수는 사철 푸른 상록수로서 잎을 향료로 사용하며, 승리의 표시로 월계관을 만드는 이 나무는 번역을 하면 달나라에서 자라는 계수나무로 알려지게 되었다. 계수나무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우리가 흔히 동요로 알고 있는 달에 있다는 계수나무는 중국의 달토끼 전설에 의한 것이라 한다. 달토끼 전설로는 예전 중국인들은 달나라에는 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었으며, 부처님이 전생에 매우 가난해서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만 하였는데, 그런 부처님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서 토끼 한 마리가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들어 부처님의 배를 배부르게 해 주었다. 부처님은 토끼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토끼의 영혼을 달나라로 보내주고, 이 토끼는 달나라의 계수나무 아래에서 신비한 절구에 불멸의 선약을 넣고 오늘도 약을 만들기 위해 절구질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 다른 중국 전설도 있다. 옛날 중국의 오강(吳剛)이라는 사람은 신선이 되는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잘못하여 월궁(月宮)의 계수나무를 자른 죄로 옥황상제로부터 벌을 받게 되었다. 결국 그는 달나라로 귀양을 가서 도끼로 계수나무를 찍어 넘기는 힘든 일을 계속해야만 했다. 그러나 애처롭게도 오강이 계수나무를 찍을 때마다 상처 난 곳에서 금세 새 살이 돋아났다. 오강의 처절한 도끼질은 지금도 계속되지만 달나라의 계수나무는 넘어지지 않고 영원히 건재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달 속에 토끼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생각과 달을 신성하게 여기는 믿음이 어우러져 또 다른 신앙적 믿음이 만들어졌다. 어떤 의식을 갖출 때 사용하는 의장기 중 월기라는 것이 있다. 이 월기에는 둥근 달과 함께 그 속에 토끼가 그려져 있다. 우리 조상들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의 모습을 상상하며 평화롭게 사는 이상향을 그리며 살았다. 그리고 아이누족들이 믿고 있는 계수나무 전설도 있다. 옛날에 오다스동굴이라는 영웅은 계수나무와 들메나무로 배를 만들었는데 들메나무의 배는 무거웠으므로 계수나무의 배만 애용했다고 한다. 어느 날 밤, 배를 매어둔 곳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머리카락이 긴 여자와 곱슬머리의 여자가 엉켜 싸우고 있었다. 오다스동굴은 소란스럽게 싸우는 여자들에게 소리를 쳤으나 두 여자는 계속해서 싸웠다. 그러던 중 머리카락이 긴 여자가 "너는 매일 밤 고기잡이에 데리고 나가 귀여움을 받으니 만족하냐? 나는 언제나 육지에 올려져 있어 마르고 여위어 가고 있지 않느냐?" 며 소리를 쳤고, 오다스동굴은 소리를 지른 머리 긴 여자를 칼로 베었다. 그러자, 여자는 들메나무의 배가 되면서 두 동강으로 갈라졌다고 한다. 곱슬머리 여자도 상처를 입은 채 계수나무의 배로 변해 버렸다. 들메나무로 만든 배가 소란을 피웠다는 사실을 깨달은 오다스동굴은 화가 나 배를 불태워 버리고 다시는 들메나무로 배를 만들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그래서 배에도 신이 있다고 믿어 정월과 시기에 맞추어 제물을 차려 제사지내고 무사를 비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아이누는 계수나무를 하나의 수호신의 나무로 받들었다고 한다. 또한 심장형의 잎 때문인지 계수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고백하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계수나무는 냇가 등의 습지가 있는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내공해성이나 내염성이 강한 편이다. 계수나무의 잎은 윤이 나고 더러운 곳에서도 먼지가 잘 달라붙지 않아서 예부터 성품이 온화하고 고결한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내공해성은 보통이며, 내한성과 내염성도 강한 편이다. 중용수이며 맹아력이 강하고, 내건성은 비교적 약하여 토양수분이 풍부한 곳에서 생육이 잘되나 건조지에서는 생육이 양호하지 못하고, 비옥한 토양을 좋아한다. 지표부근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나오나 어릴 때 제거하여 하나의 줄기로 키우면 좋은 녹음수, 가로수 및 독립수가 될 수 있다. 번식은 실생이나 삽목, 취목, 분주 등으로 증식시키며, 실생의 경우 발아율이 높은 편이다. 계수나무의 병해로는 탄저병, 백엽고병이 발생하는데 다이센 M-45 500배액이나 구리수화제 400배액을 살포하여 방제한다. 충해로는 제비나방, 하늘소 등의 피해가 발생하는데 디프수용제 1,000배액이나 파라티온 50배액을 피해 구멍에 주입해 구제한다. 원추형의 수형과 심장형의 잎, 가을철 황색이나 붉은색으로 물드는 단풍, 향기로운 꽃이 아름다운 계수나무는 공원이나 정원에서 경관수나 독립수로 식재한다. 또한 가로수나 관상용, 녹음수로도 사용 가능하다. 계수나무의 2009년 조달청 가격은 H3.0×R6 72,700원, H3.5×R8 102,000원, H4.0×R10 165,000원, H4.0×R12 240,00원, H4.5×R15 409,000원으로 거래되고 있다.
  • 쉬땅나무
    분포중부이북의 표고 100∼2,200m의 계곡과 산록에서 자생하는 낙엽활엽관목으로 높이 5∼6m에 달하고 지리적으로는 일본, 만주에 분포한다. 들메나무, 물푸레나무, 산개벚지나무, 분비나무, 시닥나무들과 혼생하며 주로 도로변 주위에 군생한다. 양지를 좋아하지만 음지에서도 강하며 습지를 좋아하지만 건조한 곳에서도 잘 견디어 낸다. 적응성이 강하여 제반입지에서 잘 생육하며 맹아력이 강하고 대기오염에서도 잘 견디어 낸다. 특성쉬땅나무라는 이름은 꽃이 달린 모습이 수수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줄기는 땅에서 여러개로 올라와 큰 포기를 이루며 가지 끝은 아래로 숙인다. 잎은 호생하며 기수익상복엽(奇數翼狀複葉)으로 길이 20∼30cm이며, 소엽은 13∼23개이고 길이 6∼10cm, 넓이 1∼2cm로서 복거치가 있고 엽병에 털이 있다. 꽃은 양성으로 새 가지 끝의 복총상화서(複總狀花序)에 길이는 10∼20cm이고 화경과 더불어 털이 있다. 꽃의 지름은 5∼6mm로서 6월부터 7월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백색으로 핀다. 열매는 5개의 골돌(??)로 길이 6mm 정도이고 꽃받침잎과 꽃잎은 각각 5개이며, 꽃 받침잎은 삼각상 난형이다. 수술은 40∼50개로서 꽃잎보다 길고 자방은 5개이며 털이 없고 이생(離生)한다. 종자는 9월에 익으며 우두상(乳頭狀)의 털이 밀생한다. 용도산야에 비교적 흔하게 자생하는 수목이면서 자연스런 멋이 좋은 수목이므로 공원 등에 식재하면 좋다. 단식보다는 몇 그루씩 점식하거나 군식하는 것이 좋으며, 강변, 연못가, 도로변 등에 열을 지어 심는 것도 좋다. 또 수세가 강하고 천연하종발아가 되어 군집을 형성하며, 건조 및 척박지에서도 잘 자라므로 황폐지나 절개지 등의 사방공사용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꽃은 꽃이 흔치 않은 6∼7월 여름철 내내 순백색으로 가지 끝에 피어나 아름답고, 꽃에는 많은 꿀이 있어 밀원식물로도 이용되며, 관상용, 산울타리, 경계식재용, 군식용, 피복용 등으로 이용된다. 기능성으로는 어린 순은 나물로 먹지만 쓰고 떫은 맛이 있어서 데쳐서 오랫동안 울궈 나물로 해 먹는다. 나무껍질을 가을에 채취하여 진통제로 이용되기도 하고 쓴맛을 내는 성분은 구충약용으로 이용된다. 잎에는 sorbifolin 즉 scutellarein-7-o-xylorhamnoside이, 꽃에는 kaempgerol-3-arabofuranoside, astragalin, quercetin-3-glucuronide, isorhamnetin-3-glucoside, scutellarein, chlorogen酸(산), arbutin, scutellarein-7-o-α-l-rhamnoside 및 flavonoid 화합물이 함유되어 있다. 약효는 활혈(活血), 거어(祛瘀), 소종(消腫), 지통(止痛)의 효능이 있으며, 골절, 타박상을 치료한다. 0.6∼1.2g을 분말(粉末)하여 복용하며, 악심(惡心), 구토가 있으면 감량(減量)한다. 외용으로 분말을 조합하여 도포(塗布)하여 사용할 수 있다. 번식방법 번식은 종자를 파종하거나, 혹은 뿌리목에서 계속 가지를 쳐서 많은 줄기가 자라게 되므로 이를 파내어 나누는 근주로 쉽게 묘목을 얻을 수 있다. 가지치기를 했을 때 잘린 가지에서 새눈이 잘 나오기 때문에 울타리용으로도 많이 식재한다. 꺾꽂이는 3월 경 잎이 피기 전에 전년생 가지를 15cm 내외로 잘라 2/3 정도를 꽂는다. 다른 이름으로는 밥쉬나무, 개쉬땅나무라고도 한다. 잎의 뒷면에 선점이 있는 것을 점쉬땅, 꽃이 필때 뒷면에 털이 없는 것을 청쉬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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